김지연_반려빚

정현은 다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가도 그래도 저건 다갚고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죽으면 어차피 다 끝인데그걸 왜 굳이 다 갚으려는 건지 스스로가 이해 안 되기도 했지만그래도 정현은 빚진 것 없이 깨끗하게 죽고 싶었다. 자신의 부채를 언제나 부모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상속 포기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가족들이 자신의 속사정을 낱낱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늘 저거 어디 가서 사람 구실은 하고 살려나,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변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동안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빚이 일억 육천이나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됐다. 다른 가족들보다 장수를 하든가 빚을 다 갚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과로하며 살고 있으니 장수는 이미물건너간 것 같고 살아 있는 동안 빚을 다 갚는 수밖에 없었다.
빛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 P206

해설 전청림_망한 삶의 천재

반려빚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특정한 빚을 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빚을 지는 일 없이는 꾸려질 수 없다는 성찰이 중요하다. 우리의 모든 미래는 돈이 든다. 청년의 좌절과 N포를 거쳐 2020년대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희망의 불모지에 진입했다. 이 희망의 사막 속에 사는 청년에게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서투르고 부족한 사회의 설명일 뿐이다. 마침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와 ‘돈미새(돈에 미친 새끼)‘라는 자조적 멸칭에 도달한 청년은 이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삶 자체가 끝없는 경제적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의식(食)을 갖출 돈, 집, 그 안을 채울 가구와 살림뿐만 아니라 가성비와 가심비를 만족시켜줄 온갖•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안정감조차 이해타산적 계산 없이는 상상될 수 없다. - P236

해설 성현아_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명확함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세계 앞에서 생겨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다. 반면, 세계는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입장에서 언제나 불명확하다. 여기에서 바로인간의 비통한 열망과 그에 응해주지 않는 세계 사이의 영원한대립이 생겨난다. 부조리란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카뮈는 삶이 가치 없다고 판단하여하는 자살은 부조리를 해소해버리므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를 살려놓고 직시하며, 이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반항이란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것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부조리를 끈질기게 인식하며 그와 집요하게 싸워내려는 열정적인 태도야말로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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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14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빚 ㅎㅎㅎ 대박인데요 ㅋㅋㅋ 웃픕니다...김지연 작가의 단편을 몇 개 읽었는데 특유의 개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햇살과함께 2024-05-15 00:16   좋아요 1 | URL
제목이 다한 ㅋㅋㅋ 맞아요 김지연 작가 독특한 날카로움이 있어요

다락방 2024-05-15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빚 때문에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담아갑니다. 땡투 들어오면 접니다.

햇살과함께 2024-05-16 20:58   좋아요 0 | URL
저와 평생 함께한 반려빚 ㅋㅋㅋ 🤣
 
스티프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죽음 이후의 신체 활용에 대한 다양한 - 때론 엽기적이고 때론 감동적인 - 이야기를 위트있게 풀어낸 책. 생태적 관점에서 사체 퇴비화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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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불길 밖으로, 퇴비통 안으로 - 최후를 장식할 새로운 방법

한 가지 우스운 사실은, 미국에서 화장을 처음 도입할 때 가장 강력하게 내세운 장점이 매장에 비해 공해가 덜하다는 점이었다. 1800 년대 중반에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그릇된 믿음이 하나 있었다. 시체가 매장되어 부패하면 유독가스가 생겨나며, 이게 지하수를 통해 흙 속으로 스며들면 그곳의 땅에 치명적인 독기가 피어올 라 공기가 오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병든다는 것이다. 화장은 깨끗하고 위생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미국 최초의 화장 광고행사가 그렇게나 실패하지만 않았다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 P293

그녀는 삽으로 퍼올린 퇴비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한다.
"퇴비를 지저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죠. 사랑스러워야 해요. 낭만적이어야 하고요." 그녀는 죽은 시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 한다. "죽음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죠. 신체가 뭔가 다른 걸로 바뀌죠. 나는 그 다른 걸 최대한 긍정적인 걸로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자들을 정원폐기물 수준으로 낮췄다고 비난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내 말은 정원폐기물을 인체 수준으로 높이자는 거죠." 그녀가 말하려는 뜻은 유기물은 뭐든 폐기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두 재활용해야 한다. - P299

누가 냉동건조 과정이 왜 필요한지 묻는다. 위마사크는 수분을 제거하지 않으면 땅에 묻기도 전에 작은 조각들이 부패하기 시작하여 냄새가 날 거라고 대답한다. 질문한 사람은 인체의 70퍼센트가 물이기 때문에 물을 제거하면 안된다고 되받는다. 위마사크는 우리 모두의 몸속에 있는 물은 날마다 바뀐다고 설명한다. 빌려온 것이다. 들어왔다가 나가고, 내 몸에서 나온 물 분자가 다른 사람들의 물 분자와 섞인다. 그녀는 질문한 남자의 커피잔을 가리킨다.
"당신이 마시고 있는 커피는 당신 이웃 사람의 오줌이었어요."
기업을 상대로 발표회를 하면서 중역들에게 ‘오줌‘이라는 말을 내던질 수 있는 여자에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P313

위마사크는 퇴비화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폐기물처리 차원이 아니라 정중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한편, 품위 있는 마지막에 대한 유족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중요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품위는 어느 정도 포장에 달려 있다. 근본으로 깊이 내려가면 품위 있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방법이란 없다. 그게 부패든 소각이든 해부든 조직분해든 퇴비이든 마찬가지이다. 이들 모두 궁극적 으로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 잘 포장된 완곡한 표현을 세심하게 적용시켜야만 - 매장, 화장, 해부학기증, 수분환원, 생 태학적 장례식 등과 같이 -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온다. - P316

12장 저자의 유해 - 그녀는 어쩔 생각일까?

진열대 위의 장기가 되는 길은 단 한 가지, 합성수지 보존체가 되 는 방법뿐이다. 플라스티네이션이라 부르는 이 방법은 예컨대 장미꽃 봉오리나 인간의 머리 같은 유기조직에 함유되어 있는 수분을 액화 실리콘 폴리머로 바꾸어 유기체를 영구히 보존한다. 플라스티 네이션은 군터 폰 하겐스라는 독일인 해부학자가 개발했다. 합성수지 보존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하겐스 역시 해부학 프로그램을 위한 교육용 인체를 만든다. 그러나 그가 유명해진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된 합성수지 전신보존 전시작품 ‘쾨르페르벨텐Korperwelten 때문이다. ‘인체의 세계’라는 뜻인 이 전시회는 지난 5년 동안 유럽을 순회하면서 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동시에 짭짤한 수입도 올렸다(현재까지 8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서울과 부산에서도 ‘인체의 신비 한국 순회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렸다. 2002년 4월부터 2003년 9월까지 1년 6개월에 걸친 전시회 동안 서울에서는 200만 명, 부산에서는 1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대한매일〉 2002년 7월 9일자 에서는 전시기획자인 독일 관계자들이 한국 전시를 두고 "전시품‘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반응이 제일 적은 게 커다란 특징"이라 말했다고 한다. (옮긴이 주) - P326

대부분의 경우 폰 하겐스에게 기증된 인체는 중국의 플라스티네 이션 시티라는 곳에서 보존처리된다. 200명의 중국인 근로자들이 그에게 저임금으로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기법은 극도로 노동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다. 한 명을 처리하는 데에 1년 이상이 걸린다(폰 하겐스의 특허가 만료된 뒤 미국의 다우코닝이 개선한 기법에서는 처리시간이 10분의 1로 줄었다). - P327

만일 내가 나의 신체를 과학에 기증한다면 내 남편 에드는 내가 해부실습실에 누워 있는 장면뿐 아니라 거기서 내가 겪을 모든 일까지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지만, 내 남편은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인체에 대해 까다로운 성격이다. 눈에 손을 대야 한다는 이유로 콘택트렌즈를 끼지 않겠다는 사람이니까. 수술채널도 남편이 출장가고 없는 날에만 보아야 했다. 2년 전 내가 하버드 두뇌은행에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 했을 때 남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난 골 은행에는 반대라우."
남편이 나를 어떻게 하고 싶건 그건 남편 뜻대로 될 것이다(장기 기증만은 예외이다. 내가 만일 쓸 만한 장기를 지닌 뇌사자가 된다면 누군가는 그걸 활용해야 한다. 남편 성격이 까다롭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 만일 에드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렇다면 나는 시신기증 양식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신체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잔 사체에 대한 책을 한 권 썼대." 그리고 어떻게든 가능하다면 내 사체가 윙크하는 모습이 되게 할 것이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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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들만 읽기. 본문 핵심이 명료하게 잘 요약되어 있는 듯. 문장도 어렵지 않고 잘 이해되어 좋다.

가부장제와 자본축적. 이 책의 원제
영원한 성장
신자유주의
프레카리아트 - 안정된 직업 없이 저임금·저숙련 노동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계층을 가리키는 단어
가정주부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여성, 식민지, 자연에 대한 폭력과 원시적 축적
성별노동분업과 국제노동분업의 관련성

한국어판 서문

자본주의 하의 가사노동에 대해 논하면서, 나는 노동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 전반에 대해 특히 가사노동에 대해 좀 더 자세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통해 정말로 나는 눈을 뜨게 되었다. 맑스도 가사노동에 대해 비슷한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가사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이 노동은 임금노동자의 "생산노동과는 대조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었다. 일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임금노동과 동등한 수준에 놓기 위해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이들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자본주의의 계속적인자본축적과정을 위해서는 왜 이런 무급노동이 필수적인지를 연구했다. - P7

여기서 다시 한 번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식민화 사이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이는모두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은 누구도 이것을 폭력의 한 형태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계는 더 이상 1986년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여성, 자연, 국민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야 한다.
중요한 변화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세계경제가 재편된 것이다. 이는 1980년 초에 일어났다. "신경제는 영국에서 대처 Margaret Thatcher가 처음 도입했다. 뒤이어 레이건Ronald Reagan이 미국에서 같은 일을 했다. 유럽연합도 "신경제"라는 이름의 정책을 적용했다. 오늘날 사실상모든 국가가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는 세계적 자유시장이 빈곤을 없애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와계급 사이의 불평등을 없앨 것이며, 자본재와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세계를 개방하겠다고 설교한다. 신경제 주창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모두를 위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창출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의 주요 원리는 세계화, 자유화, 사유화, 일반 경쟁이다. 이런 원리는 국가가 자국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이를 이윤을 추구하는 초국적 기업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9

이전보다 요즘 더 많은 이들이 묻는다.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1986년, 나는 이런 파괴적 체제에 대한 대안 수립을 시도했다. 나는 이를 자급적 전망subsistence Perspective이라고 불렀다.
이런 전망을 실현하려면 생활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부유한 국가에서는 소비 습관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여전히 해방이라고 부른다. 소비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시작하고, 더 나은 세상을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지금도 나는 다른 비전, 좋은 삶을 위한 다른 전망은 없다. 내놓을수 있는 것은 자급적 전망뿐이다. 이 책의 한국어 출판이 이런 미래에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P11

개정판 서문

그러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의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부장제가 일종의 하부구조로 계속 존속하고 있다고만 하면 옳은 것인가?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후진적 관계들을 일소하겠다는 근대성의 위대한 공약이 왜여성문제로만 오면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봉건제는, 적어도 선진 공업화된 세계에서는, 폐지되었다. 그런데, 왜 젠더 사이의 가부장적 관계는 폐지되지 않고 남아 있는가? - P19

이런 폭력은 단순한 봉건적 ‘잔재‘가 아니다. 이런 폭력은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자본주의의 피와살이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다. 이는 바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이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 아니라, 자본의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되지 않으며(Waring 1988),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임금노동은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 P20

이런 노동관계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강제, 즉 순전히 필요성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이 체제의 비밀이다. 폭력은 비단 여성의 노동과 몸을 착취할 때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가사와 여성구타에 대한 담론에서 분명해졌다. 폭력은 유럽의 초기 자본가가 외국 영토를정복하고 복속시키고 식민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런 식민화가 없었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아메리카의 영토와 사람에 대한 약탈과 강탈이 없었다면, 근대의 노예제가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순조롭게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력은 맑스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부른 과정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맑스는 이런 폭력과 원시적축적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보다 앞선 시기의 특징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 식민지, 오늘날 용어로는 개발도상국, 그리고 모든 생명과 생산의 기반이 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폭력과 원시적 축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의 노동이나 식민지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연 역시 일방적이고 착취적인 방식으로, ‘공짜‘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성과 식민지를 ‘자연‘으로 취급했다. 여성과 식민지는 ‘자연이 되었다. 그래서 폰 벨호프와 벤홀트-톰센 그리고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을 따라, 계속되는 원시적 축적이 근대 자본주의의 비밀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 P21

그들은 또한 제기된 새로운 방법이 도덕적이거나 금욕적인 것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덜 해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 혹은 덜 하는 것을 통해 삶의 질과 행복까지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는 기독교 혹은 개신교 윤리가 세속화된 자본주의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해방‘은 일종의 영적 혹은 도덕적 마음 상태, ‘청렴결백‘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었다. 이런 윤리는 ‘깨끗한 옷 운동(노동조건개선운동)‘과 여러 공정무역 운동들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해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삶‘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이다. - P32

대안은 없다는 티나TINA 증후군에 사로잡히는 대신, 하늘에서떨어지는 초인을 기다리거나 기술을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여기며 기다리는 대신, 자급적 삶이라는 대안SITA, Subsistence Is The Alternative[자급이 대안이다]을 가능한 지향점으로라도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P35

초판 서문

모든 여성이 남성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다고 말하는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성별 사이에는 서열 구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관계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다른 사회적·국제적 구분도 있다. 이는 페미니스트운동이 계급의 이슈, 혹은 착취적인국제노동분업과 제국주의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편, 사회과학자들이 주장했던 ‘여성문제‘는 2차적 모순이며 이데올로기, 상부구조, 혹은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여성이 놓인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페미니스트운동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하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와 끝없는 자본축적과 ‘성장‘의 패러다임 사이의 관계,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식민지에 대한 착취와 예속의 관계에 대해 풀리지않는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학술적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상을 사는 모든 여성에 대한 관심이고, 정치적 목적을 가진 실체인 페미니스트운동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타당한 답변을 찾지못한다면 페미니스트운동은 자본의 축적이라는 파괴적인 모델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세력에게, 느려지고 있는 ‘성장‘ 과정에 자양분을 주기 위해 여성운동의 활력을 필요로 하는 세력에게 흡수되어 버릴 것이다. - P38

오늘날 여성의 현실을 규정하는 구조적 이데올로기적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본축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세계적 차원의 여성운동은 이 체제와, 이것에 얽혀 있는 성별노동분업과 국제노동분업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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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날 먹어봐 - 의료 목적의 식인행위와 사람고기 만두 이야기

12세기 아라비아의 거대한 저잣거리에서는 버려도 아깝지 않을 가방 하나와 돈 보따리를 짊어지고 제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간혹
"밀화인"이라 불리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밀화인이 란 꿀에 함빡 절인 사람의 유해이다. 다른 말로 ‘인간미라 밀과‘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름만 보면 오해하기 쉽겠지만, 꿀에 절인 중동 지방의 일반 밀과와는 달리 이것은 디저트로 쓰이지 않았다. 이 밀 과는 외용약으로 또-이런 말을 해서 유감이지만-내복약으로 쓰 였다. 조제에는 물론 조제자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특이하게도 내용물이 될 사람 자신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 P249

……아라비아에서는 70~80세 되는 노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 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바치기도 한다. 이들은 늘 목욕하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꿀만 섭취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는 꿀만 배설 하게 되고(대· 소변이 모두 완전히 꿀이다) 그 뒤 사망한다. 동료들은 그를 꿀로 가득 채운 석관에 재워놓고 봉인한 후, 겉에다 몇 년 몇 월 인지를 표시한다. 100년이 지나면 봉인을 뗀다. 밀과가 만들어져 있 는데, 사지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났을 때 치료약으로 이용한다. 소 량을 내복하면 즉시 증상이 가신다. - P250

타박상이나 기침, 소화불량, 복부 가스팽만 등과 같은 가벼운 병 증은 며칠이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의 효력에 대 한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용법이나 용량을 정 확히 따진 투약실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바람을 타고 떠도는 소문 에 근거했다. ‘편도선염에 걸린 피터슨 부인에게 똥을 좀 드렸더니 이젠 괜찮아졌대요.‘
104년 동안 의사들 사이에 베스트셀러 참고서 자리를 지켜온 《머 크 매뉴얼)의 편집자 로버트 버크로우에게, 효력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기상천외한 의약품들이 어떻게 생겨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 게 말했다.
"어느 실험에서 25~40퍼센트의 사람들이 설탕으로 만든 알약이 진통효과가 있다고 응답했지요. 이런 결과를 두고 볼 때, 일부 그런 치료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약으로 쓰이게 됐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겁니다."
그는 또 "평균적인 병증의 평균적인 환자가 평균적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을 때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한" 것도 1920년대에 들어 서고부터였다고 덧붙였다. - P257

사체를 재료로 만든 약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요리문 화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자신이 무엇에 익숙해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골수로 류머티즘을 치료하고 땀으로 연주창을 치료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인간의 성장호르몬으로 왜소증을 치료하는 행위보 다 심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우리는 사람의 피를 다른 사람의 몸 에 주입하는 것에는 전혀 혐오감을 품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 한다. 귀지를 약으로 쓰던 옛날 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본초강목》의 1976년도 영문판을 편집한 버너드 리드는 다 음과 같이 지적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활성원소와 호르몬 • 비타민, 질병에 대한 독 특한 치료제를 찾아 온갖 종류의 동물조직을 조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아드레날린, 인슐린, 에스트론, 월경독 등의 발견으로 볼 때, 대상이 주는 불쾌감을 극복해야만 가치 있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 P258

실험에 착수한 우리는 돈을 각출하여, 시립 시체보관소에서 사체를 샀다. 병들어 죽거나 늙어 죽지 않고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골랐다. 이렇게 우리는 두 달 동안 사람고기만을 먹으며 지 냈고, 다들 더 건강해졌다.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회고록 《내 예술, 내 인생》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다. 그는 어느 파리 모피상인이 자기 고양이에게 고양이 고 기를 먹여 고양이 모피가 더 질겨지고 윤기 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1904년에 함께 해부학을(당시 미술학도들에게 해부학 공부는 필수였다) 공부하던 동료 몇몇과 함께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리베라가 이 이야기를 꾸며냈을 수도 있다. 하 지만 현대에 와서도 인간을 약재로 사용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기 때문에 소개한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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