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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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사는/읽는 유일한 수상작품집. 올해 작품 중에는 김지연의 <반려빚>과 김기태의 <보편 교양>이 흥미로웠다. ‘빛’이 아닌 ‘빚’을 반려라 여기며 사는 화자와 입시에 올인하는 고등학교에서 인문 교양 수업을 실현하려는 교사의 고군분투가 웃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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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_반려빚

정현은 다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가도 그래도 저건 다갚고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죽으면 어차피 다 끝인데그걸 왜 굳이 다 갚으려는 건지 스스로가 이해 안 되기도 했지만그래도 정현은 빚진 것 없이 깨끗하게 죽고 싶었다. 자신의 부채를 언제나 부모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상속 포기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가족들이 자신의 속사정을 낱낱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늘 저거 어디 가서 사람 구실은 하고 살려나,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변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동안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빚이 일억 육천이나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됐다. 다른 가족들보다 장수를 하든가 빚을 다 갚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과로하며 살고 있으니 장수는 이미물건너간 것 같고 살아 있는 동안 빚을 다 갚는 수밖에 없었다.
빛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 P206

해설 전청림_망한 삶의 천재

반려빚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특정한 빚을 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빚을 지는 일 없이는 꾸려질 수 없다는 성찰이 중요하다. 우리의 모든 미래는 돈이 든다. 청년의 좌절과 N포를 거쳐 2020년대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희망의 불모지에 진입했다. 이 희망의 사막 속에 사는 청년에게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서투르고 부족한 사회의 설명일 뿐이다. 마침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와 ‘돈미새(돈에 미친 새끼)‘라는 자조적 멸칭에 도달한 청년은 이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삶 자체가 끝없는 경제적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의식(食)을 갖출 돈, 집, 그 안을 채울 가구와 살림뿐만 아니라 가성비와 가심비를 만족시켜줄 온갖•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안정감조차 이해타산적 계산 없이는 상상될 수 없다. - P236

해설 성현아_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명확함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세계 앞에서 생겨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다. 반면, 세계는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입장에서 언제나 불명확하다. 여기에서 바로인간의 비통한 열망과 그에 응해주지 않는 세계 사이의 영원한대립이 생겨난다. 부조리란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카뮈는 삶이 가치 없다고 판단하여하는 자살은 부조리를 해소해버리므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를 살려놓고 직시하며, 이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반항이란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것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부조리를 끈질기게 인식하며 그와 집요하게 싸워내려는 열정적인 태도야말로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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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14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빚 ㅎㅎㅎ 대박인데요 ㅋㅋㅋ 웃픕니다...김지연 작가의 단편을 몇 개 읽었는데 특유의 개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햇살과함께 2024-05-15 00:16   좋아요 1 | URL
제목이 다한 ㅋㅋㅋ 맞아요 김지연 작가 독특한 날카로움이 있어요

다락방 2024-05-15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빚 때문에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담아갑니다. 땡투 들어오면 접니다.

햇살과함께 2024-05-16 20:58   좋아요 0 | URL
저와 평생 함께한 반려빚 ㅋㅋㅋ 🤣
 

김남숙_파주

도대체 뭘 했어요? ......정호가요.
현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현철은 짧게 말했다. 그런 것은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모르겠네요. 그냥 매일 그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혔으니까. 아니, 이미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저 새끼 전역하면 진짜다 끝이다. 생각하면서 버티고. 근데 진짜 끝이더라고요. 허무하게. 허무해서 더 화가 나더라고요. 사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도 해요. 근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넘어가면 나는 다음번에 또 이렇게 넘어가겠구나, 하는 생각.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상상하니까 내 다음이 무서워지고, 내가 무서워지고. 무서워지니까 또 밉미치게 밉고. 이해 안 되겠지만 그래서 그랬어요. 전역하고 나서 매일 생각했어요. 목 조르는 생각, 칼로 찌르는 생각.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골라내다보니 이렇게 시시해진 것도 같고. 그땐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삼 년이 어저께 같아요. 그 생각에 묶여서 시간이 안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현철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결혼하실 겁니까?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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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_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두 사람은 잘못된 동작의 예시로 늘 뽑혔다. 둘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총체적으로 문제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몸에 힘을 빼지 못하는 일이었다. 힘을 빼야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다 빼면 안 되고...... 이게 대체무슨 말인가. 희주는 잘못된 답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빼는 거면 빼는 거고, 주는 거면 주는 거지. 그게바로 균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너무 몸에 힘을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바로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면 주호는 자기가 지금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지못했다. 분명 힘을 뺐다고 생각했는데 강사가 소리쳤다. 이렇게몸에 잔뜩 힘을 주면 어떡해요! 또 주호가 이번엔 몸에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강사가 말했다. 아예 몸에 힘을 빼면 안 된다 했잖아요. 코어 잡고 중심은 안 흔들려야지! 주호는 자신의 몸이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장난 기계처럼 오작동하고있는 자신의 몸은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죠" - P86

김기태_보편 교양

땀과 열기와 웃음 속에서 곽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품에 안았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속 ‘늙은 교수‘를 떠올린 날이 있었다. 현실과 괴리된, 정체된, 그래서 화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고 해설되는 이미지. 그 늙은 교수는 적어도 ‘노트를 끼고‘ 강의에 출석하며 밤마다육첩방에서 시를 쓰는 성실한 제자를 두었다. 나는 늙지도 않았고 교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늙지도 않았고, 부분의 판단은 유보했다. - P114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머그잔에는 『노인과 바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 P115

있는 꿈도 없는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했다. 그러나 학생 주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다는,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새 교육정책을 얼마간 환영했다. - P117

‘수업 첫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수업 마지막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다.‘
3월이 지나며 곽은 수업중에 창밖을 자주 보게 되었다. - P122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인간은 굴종을 원해" 운운했던 영화 속 파시스트 악당들을 떠올리며자신이 그런 의심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번은 종료령도 듣지 못하고 잠든 채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을 거라 짐작하며 어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자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짜증내는 기색 없이 입가의 침을 훔치며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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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_이응 이응

이번에도 내가 쏜 화살을 찾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잃어버린 화살을 찾으려면 같은 방향으로 한번 더 활을 쏴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봐."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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