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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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죽음을 끌어안고 사는 그들.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에 둘러싸인 그들. 20대의 그들. 그들의 청춘.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가야 할 여수가 있다. 타야 할 야간열차가 있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달리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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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그녀의 머릿속에 무엇이 스쳐 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지치고 외로운 얼굴에 여수 아닌 여수(旅愁)가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윽고 자흔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밤, 열시 삼십오분 차예요. - P42

어둠의 사육제

그때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그 중년 여자에게 친밀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사로잡히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지하철에서 발을 밟혔다. 나는 머쓱한 얼굴을 한 그 발의 주인을 매정스럽게 쏘아보았다. 자선을 요구하면서지나가는 노인과 고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토큰 하나라도 그들에게 쥐여주어야 마음이 편해지곤 했던 기억들을마치 남의 일이었던 것처럼 회상했다. - P92

서울에 올라와서 보낸 사 년 동안 나는 내 힘으로 산 것이 아니라 희망의 힘으로 살아왔었다. 나는 무엇이든 견디어낼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미운 오리 새끼처럼 세상의 구석에 틀어박혀 원치 않는 일에 시달리고 있지만, 언젠가 진짜 삶이 시작되고 말 것이라고 주문처럼 믿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진짜 삶이 과연 한 발 한 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때 인숙언니는 떠났다. 나는 그녀로인해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삶이나에게 등을 돌리자마자 나 역시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걷기시작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날에 속살을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 P115

질주

인규가 유일하게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달리는 일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달리기 경주에서 매번 일등을 하곤 했다.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는 매일 아침 독신자 아파트의뒷산에 난 등산로를 달리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도 그는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규는 계속해서 달리고 싶었다. 달리다가 숨이 차서 고꾸라지고 싶었다.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먹고 마셔온 것을 모두 토해낸 뒤 앰뷸런스에 실려 가고 싶었다. 인규는 세상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마냥달리고만 싶었다. - P205

그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달릴 때뿐이었다. 그때만은 별들의 운행이 그의 귀에만 거대한 음향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피부를 뚫고 나가 바깥 공기와 섞여 춤추는 기분이었다. 오로지 그때에만 인규의 영혼은 자신의 가련한 몸뚱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 몸뚱이는 인규의어린 시절 동구 밖 공터에 버려져 있었던 진규의 몸뚱이와 같았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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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청소년들아, 김만중을 만나자 만남 4
김만중 지음, 무돌 그림, 림호권 옮김, 박소연 / 보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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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글로 소설을 쓰는 남자사람 양반이라니. 서포 김만중도 시대와 불화한 사람이구나.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영광을 얻는 권선징악적 구도에 꿈에 나타난 귀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전형적인 옛이야기지만 의외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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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시종의 물음에 다만 한숨만 길게 쉬더니 자기 신세를 한탄할 뿐이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목숨이 길지 짧을지, 복이 많을지 불행이 많을지는 하늘이 정해 준 운명이니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제 내 신세를 생각하면 불행을 내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옛말에 ‘하늘이 만든 불행은 피할 수 있어도 자신이 만든 불행은 피할 수 없다‘ 하였다. 누구를 탓하겠느냐. 이제 내 어디로 가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겠느냐."
어린 시종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말을 골라 부인을 위로하였다.
"옛날 영웅들과 지조 높은 부인들도 곤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니다. 지금 아씨께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밝은 하늘이 내려다보고 굽어살피고 계시지 않습니까. 앞으로 바람이 검은 구름을 몰아내어 해와 달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어찌 잠깐의 불행으로 귀중한 몸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 P91

<사씨남정기》가 쓰인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김만중이 남해에 유배되었을 때로 짐작된다. 홀로 지낼 어머니가 걱정된 김만중은 글 읽기를 즐기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뒤에는 다른 의도도 숨겨져 있다.
당시 숙종은 첫 왕비가 죽자 새로운 왕비 인현왕후를 맞이했다. 인현왕후가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가운데 1688년 숙종이 총애하는 후궁 장씨가 아들을 낳고 이듬해 그 아들을 원자로 삼을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당시집권 세력이었던 서인은 이를 반대하였다. 아직 인현왕후가 젊기에 성급하게 후궁의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서인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끝내 장 씨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고 장 씨의 지위를 희빈으로 높였다. 줄곧 반대하던 서인 세력은 결국 파직되거나 유배 보내졌다. 결국 인현왕후는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장희빈이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서인 세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던 김만중 또한 유배를 가게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사씨남정기》의 등장인물을 당시의 실제 인물과 연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총명함과 판단력을 잃었던 유연수는 숙종을, 현숙한 정실부인이었으나 쫓겨나게 된 사정옥은 인현왕후를, 첩으로 들어와 아들을 낳았으나 사정을 쫓아내려고 갖은 악행을 저지른 교채란은 장희빈을 떠올리게한다. 당시 사람들도 이 소설을 읽고 우리와 같은 것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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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낫짱, 김하강입니다
김송이 지음, 김두현 그림 / 보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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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의 조선인 차별 뿐만 아니라 만국에 공통된 계급 차별 여성 차별에도 눈 뜨는, 차별에 폭력으로 맞서기보다 배움으로 깨우쳐 나가는 재일조선인 여성 청소년의 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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