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주사위를 피실험자에게 제공해서 그걸 던져 나온 두 개의 숫자를 더하게 한 뒤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한다. 실험이 끝난 뒤 피실험자가 말하는 숫자에 맞게 현금을 준다. 1+1부터 6+6까지 말이다. 물론 피실험자들이 진실을 말했는지를 알아 낼 방법은 없다.

 

 

그는 두 번째 실험도 했다. 이번엔 거짓말 탐지기를 두고 했기 때문에 피실험자가 거짓말을 하면 기계가 반응함으로써 거짓말임을 알게 했다. 단 이 실험으로 생기는 모든 수익은 피실험자가 갖는 게 아니라 피실험자가 선택한 단체에 본인의 이름으로 기부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실험 중 어느 쪽이 수익을 많이 냈을지 궁금하다.

 

 

실험 결과에 대한 내 예상은 이랬다. 자기가 수익을 가질 수 있는 데다 거짓말 탐지기도 없었으니 첫 번째 실험이 두 번째 실험보다 큰 금액이 나왔으리라는 것.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첫 번째 실험보다 두 번째 실험에서 더 큰 금액이 나온 것이다. 즉 자신이 돈을 갖지 않고 단체에 기부하는 두 번째 실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6+6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것도 놀라운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 탐지기에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게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의 선이나 대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때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심지어 거짓말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만이 오직 거짓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128쪽)

 

 

이 기막힌 이야기는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국민들을 속여서 선동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겠다. 인간의 무서운 이면을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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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13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의라고 생각한다면 거짓을 거짓이 아니라고 인식한다는게 오싹하네요 사람의 마음이란 알면 알 수록 모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0-09-13 22:39   좋아요 1 | URL
그렇죠? 모를 게 사람의 마음 같아요. 깊은 동굴 같아요.
악인만이 악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선한 마음으로도 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생각하면 오싹해지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채 잔인한 고문을 할 수 있는 건가 봐요. 자신은 사회를 위해서 대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파이버 님, 좋은 가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3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행위를 숭고하고 아릅답다고 받아들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페크pek0501 2020-09-14 12:01   좋아요 1 | URL
이타심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좋게 볼 건 아닌가 봅니다. 잘못 판단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제대로 보는 건지 저도 헷갈릴 때가 있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역사가 언젠가는 밝혀 준다고 하는데 이것도 저는 확신할 수 없겠더라고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관건일 듯해요.
좋은 가을날 보내세요...

희선 2020-09-14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사람이 희생하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그 한사람이 나만 아니면 된다 여기기도 하잖아요 그 한사람은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는데... 한사람과 여럿에서 고르기보다 모두가 살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겠지요 어떤 말은 좋은 뜻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런 거 잘 알아봐야 할 텐데... 많은 사람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 생각해야겠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9-14 12:05   좋아요 1 | URL
한 사람을 희생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하면 대부분 찬성할 수 있지만 그 한 명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면 아마도... 누군가를 희생하며 얻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것 같군요. ㅋㅋ

벌써 9월입니다. 올해도 다 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금방 연말이 달려올 것만 같아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제 책에 대해 소개하려니
쑥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밑줄긋기를 작성해 봤습니다.
 
책을 내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뒤에 겪어야 할 일도 
용기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 책을 출간하고 부끄러운 자의 소감. 

 

 

 

 

 

 

 

 

 

 

 

 

 

 

 

 

 


<피은경의 톡톡 칼럼>

 

 

 

여러 주제를 다룬 이 책에서

밑줄긋기로 이런 주제를 골랐습니다.

 

'열렬하게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는데 왜 결혼하고 나면 달라지는 걸까?'

 

 

 

 

열렬하게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는데 왜 결혼하고 나면 달라지는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로 결혼 생활이 갖는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다. 부부는 서로 편안한 가족이면서 동시에 설렘을 주는 연인이어야 하는데, 이 둘은 양립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는 좋은 화장품 냄새가 났던 과거의 여성이 아니고 앞치마를 두른 채 김치와 된장 냄새를 풍기는 주부다. 물론 아내의 시각에서도 남편의 모습이 변해 있긴 마찬가지다. 이제 남편은 지난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잡던 이가 아니라 피곤에 지쳐 귀가하는 남성이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밤마다 우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하는 부모 역할까지 해야 될 테니 말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낭만적 느낌이 멀어져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을까’, 16~17쪽)

특히 결혼하면 한 공간에서 둘이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친숙해져 자기 관리에 소홀해진다. 자연히 서로 상대측 단점을 세세히 알게 된다. 예를 들면 그가 얼마나 게으른지 알게 되고, 얼마나 씻기 싫어하는지 알게 되고, 자주 방귀를 뀌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다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연애할 때 몰랐던, 그의 결점까지 알게 되어, 갖고 있던 환상은 유리컵 깨지듯 박살난다. 마침내 달콤한 사랑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을까’, 16쪽)

연애와 결혼을 비교해서 간단히 말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의 환상에 빠져 상대의 장점에 주목하는 게 연애라면, 그 환상이 깨져서 상대의 단점에 주목하는 게 결혼이라고.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상대의 단점마저도 포용하고 싶은 게 연애라면, 상대의 단점으로 인해 싸우고 나서 그 단점을 개선시킬 것인가 아니면 참아 줄 것인가로 고민하는 게 결혼이라고.(‘결혼 전 숙지 사항 일곱 가지’, 31쪽) 

‘그들은 연애를 하며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말하는 건 가짜 러브스토리다. ‘그들은 연애를 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뒤에는 불화를 겪으며 다투기도 하고 서로 미워하기도 하였습니다.’라는 게 진짜 러브스토리다. (‘결혼 전 숙지 사항 일곱 가지’,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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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08-14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드려요~ 진짜 언제부터인가 이분 책내시겠다 싶었는데..현실로..ㅎ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0-08-14 15:18   좋아요 0 | URL
과분한 말씀,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2020-08-14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4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20-08-14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간만에 들어왔더니 기쁜 소식이 있네요.^^
바로 보관함으로 쏘옥~

축하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0-08-15 12:55   좋아요 0 | URL
후애 님,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기쁜 소식이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막시무스 2020-08-14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글 읽을때마다 어는정도 예감했는데 묶여진 모음집은 어떨지 기다해봅니다!
즐거운 연휴되십시요!

페크pek0501 2020-08-15 12:56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 님, 반갑습니다.
님도 즐거운 연휴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0-08-14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를 읽었었어요. 댓글로 만나는 서재 이웃도 동족이 될 수 있을까요.
페크님, 즐거운 광복절 연휴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0-08-15 12:56   좋아요 1 | URL
블로거들은 모두 저의 동족입니당~~
즐겁게 보내십시오.

희선 2020-08-15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내서 기뻐도 그다음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겠습니다 읽어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 생활을 돌아보기도 할 테니...

오늘부터 17일까지 쉰다더군요 지금은 쉰다 해도 어딘가에 가기보다 집에서 편안하게 쉬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가까운 공원을 걷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많은 사람이 있으면 안 좋겠지만...

페크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8-15 12:59   좋아요 0 | URL
자기 책을 홍보한다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책 내는 것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듯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며, 마음을 비우고 책을 하나 냈다는 성과에 의미를 두자, 그랬네요. ㅋ
저는 집콕 입니다. 산책을 자주 하는 걸로 바깥 바람을 쐬기를 대신하려 해요.
희선 님도 편안한 주말을 보내세요. 늘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0-08-15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출간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북플을 하다보니 작가님들과 이렇게 실제로 댓글을 주고 받을 수도 있네요. 축하드리면서 축하드리는 저도 축하받는 기분이고 신기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8-15 13:00   좋아요 2 | URL
이하라 님, 작가님이라니 어색합니다. ㅋㅋ
같이 기뻐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님도 편안한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초딩 2020-08-15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글 보고 출판에 대해 알아보다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로 생각이 번지고는 주제가 마땅치 않다가
아 난 누군가에게 지식을 공유할 삶을 살고 있을까로 자문했습니다 ㅎㅎ
:-)
아 그리고 전자책은 언제 나오나요? :-)

페크pek0501 2020-08-15 21:46   좋아요 1 | URL
ㅋㅋ 전자책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처음 초딩 님의 닉네임을 보고 초등학생인가, 했어요. 그래서 지나치다가 어느 날 보니깐 글 수준이 보통 아니셔서 초딩이 아니구나, 했답니다. ㅋ

지금 충분히 누군가에게 지식을 공유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초딩 2020-08-15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종이책 주문했습니다~~~

페크pek0501 2020-08-15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초딩 2020-08-15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출간응 통해서 (제가 아는 한에서만이라도) 북플에거 엄청난 소통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더 알아가고 교류하고요 ~~~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먼저합니다 :-)

페크pek0501 2020-08-16 12:24   좋아요 1 | URL
엄청난 소통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ㅋ
어쨌든 서로를 알아가고 고류하는 현상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뉴스를 통해 집이 엉망이 되어 버린 수재민과 이재민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집 마당에 장맛비가 너무 많이 들어와 이재민이 된 경험을 했었어요. 위험하다고 판단한 우리 가족은 여관에 가서 며칠을 보냈죠. 며칠 뒤 빗물이 빠져 집에 와 보니 가구뿐 아니라 방바닥도 마루바닥도 다 망가져 있었어요. 교과서가 비에 몽땅 젖어 버려 제가 페이지를 넘기며 종이를 말리려고 애썼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장맛비로 인한 홍수 피해 지역이 빨리 복구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왜 이렇게 세상 살기가 어려워지는 걸까요. 장맛비 피해로, 코로나19로, 경기 침체로 어렵게 사는 이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그런데 하필 이때, 이 어려운 시기에 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책 소식을 전하면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책을 내겠다는 꿈을 28년 만에 이룬 저의 첫 책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 책의 제목은 <피은경의 톡톡 칼럼>입니다. 아는 선배님이 지어 주신 제목이고 그 선배님이 출판사를 연결해 주기도 하였으니 제게 도움을 많이 주신 분입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양해를 구합니다. 제가 지금 좀 피로한 상태입니다. 오늘 친정어머니의 당뇨 약과 안약을 타러 큰 병원에 갔는데 사람들이 많아 기다리다가 지쳤어요. 워낙 약골인지라.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책에 대한 소개를 길게 하지 못하겠네요. 제 책의 ‘책머리에’에 있는 한 조각을 뽑아 그대로 옮기는 걸로 대신합니다.

 

 

.......................
나의 동족들에게

  나의 동족인 블로거들이 이 책을 읽고 수필과 다른 칼럼의 맛을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 ‘이런 글이 생활칼럼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어.’ 하고 도전해 보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생활칼럼이 하나의 장르로서 인기를 누리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
  블로거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세상을 향해 의견을 내거나 주장하고 싶은 게 있을 터이다. 그것을 칼럼이란 형식에 담아 보라고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그러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피은경의 톡톡 칼럼>의 ‘책머리에’에서.          
.......................

 

 

 

 

 

추신 1)
책 속의 제 얼굴 사진이 나이 들어 보입니다. 실물은 그것보다 젊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추신 2)
부모를 보살피지 않고 사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모를 보살피며 사는 자식에겐 복을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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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9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gimssim 2020-10-08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랫만에 서재에 들어왔더니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군요.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책을 얼른 사보아야겠어요.

2020-10-08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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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 아니라 글을 쓰는 자라면 아마 누구나 글이 길지 않은 한 편 한 편에 하나의 주제를 담는 수필에 매료되어 본 경험이 있으리라.

 


좋은 수필을 만날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친구들에게 그 영화를 꼭 보라고 말하고 싶듯이, 좋은 수필집을 읽고 나면 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그 수필집의 일독을 권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열정적인 ‘책 애호가들’에게 추천한다. 민혜의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라는 수필집을.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를 읽고 내가 밑줄을 긋고 싶은 대목을 다음과 같이 뽑아 보았다.

 


고독이란 정체된 듯싶으면서도 실은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는 생물이었다. 나름의 맛과 감촉도 지녔다. 어느 날은 쌉쌀하면서도 달착지근하여 그대로 머물고 싶어지는가 하면, 어느 날은 날감자 맛처럼 아리고, 중증의 증상으로 덮쳐올 때면 땡감처럼 떫어 내 심신을 오그라지게도 했다. 사전은 다시 쓰여 져야 하리라. 고독이란 단어의 정의만큼은. - ‘고독이나 한 잔’ 중에서.

 

 


눈물은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다. 어떤 명징한 이론을 들이댄다 해도 눈물이란 내게는 여전히 신비의 액체다. 눈물은 투명한 액체로 희비를 이끌어내지만, 격정을 담은 피눈물이라도 장대비처럼 억세게 긋는 법이 없다. 서리서리 한 얽힌 눈물도 그저 유순하고도 맥없이 아래를 향해 흐를 뿐이니 동(動)이되 정(靜)의 성정을 지닌 듯하다. 거짓 감정을 섞기에도 웃음 쪽이 눈물보다 수월할 거란 생각에 나는 인간이 내보이는 웃음보다 눈물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 ‘크라잉 룸’ 중에서.

 

 


안타깝게도 삶의 극점에서 인간은 간혹 자살로 비극적 결말을 내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라고 한다. 그러나 자살이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동물성의 선택일 뿐 식물들이라면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낼 것 같다. 그 선험적 직감으로, 인내와 끈기로, 영특한 전술로. 
사는 일이 위기라고 여겨질 때마다 나는 홀로 산에 들어 내가 보다 식물적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초목에도 저마다의 곡절과 간난신고가 있어 나는 그네들이 온갖 수형으로 보여주는 정경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묵언과 은유의 대가들이 풀어내는 아포리즘을. 한데 인간을 관장하는 뇌의 외피에 하필 식물원을 조성한 것은 조물주의 은미(隱微)한 기호(記號)가 아니었을까. - ‘어느 날의 데포르마시옹’ 중에서.

 

 


근래 읽은 어느 책을 보니 파리지앵이 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싼 옷이라도 튀지 않게, 싼 옷이라도 고급스럽게 보이게.’
이쯤 되면 우리와는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른 것 같다. 그 의식 속엔 부자와 빈자를 아울러 배려하는 인문학적 사고가 깃들여있는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착각이라 할 것인가. 아무려나 우리의 정서로는 아직은 어림없을 얘기일 것 같다. 돈 들여 비싼 옷 구입하고 튀지 않게라니, 상대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면 자진신고를 해서라도 눈길을 끌어 모아야 본전 뽑는 일 아니겠나. - ‘파리지앵처럼 살아보기’ 중에서.

 

 

 


좋은 수필집을 한 권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드디어 찾았다. 

 

 

 

 

 

 

 

 

 

 

 

 

 

 

 

 

 

해드림 출판사에서 수필집 공모를 통해 당선시킨 원고로 만든 수필집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책인 셈이다.

 

 

 

 

목차

 

 

작가의 말-삶이란 결국 저마다의 위치에서 웃고 우는 일 | 4

 

키스에 대한 고찰 | 14
마늘 까던 남자 | 19
비아그라 두 알 | 26
베토벤을 만났을까 | 31
산 | 36
들 | 43
너에게 보낸다 | 49
모던 타임즈 | 55
예외적 인간 | 60
남편을 빌리던 날 | 65
비 오는 날 오후 세시에 | 70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75
비스듬히, 비스듬히 | 79
하트 세 개 꾹꾹꾹 | 85
(이하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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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7-17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니의 책이 드디어 나왔나 보다
기대하고 읽었더니 그게 아니네요.ㅠ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0-07-17 20:15   좋아요 1 | URL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ㅋㅋㅋ
제 책 제목엔 칼럼, 이란 낱말을 넣었답니다. 출간이 8월 중순 예정.
그런데 꼭 9월에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무슨 출판사가 어찌나 바쁜지... 제 책 앞에 몇 권의 책이 줄 서 있답니다.
제가 재촉을 하는데도 이 모양입니당~~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 출판사는 호황이에요.

초딩 2020-08-10 13:4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줄 알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8-12 18:38   좋아요 0 | URL
드디어 제 책이 나왔습니다. ㅋ
초딩 님, 댓글 감사합니다.

수이 2020-07-1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파리지앵 문장들 넘 잼나요. 근데 저는 비싼 옷 입어도 티 안나더라구요. 그래서 기왕지사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싸구려로만 입어주겠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는 거 같아요. 친구분 수필집 출간 축하드려요 :)

페크pek0501 2020-07-17 20:51   좋아요 1 | URL
저는 왜 날씬한 몸에 멋을 안 내느냐고 물어서 이렇게 대답하죠.
나 멋 엄청 낸다. 튀지 않게 무난하게 옷을 입는 게 내 멋의 기준이다. 일부러 이렇게 입는 거다. ㅋㅋ
너무 튀는 옷은 부담스러워요.

친구 아니고 아는 선배님이시죠. 진짜 글 잘 쓰는 분이시라 이런 페이퍼를 올리는 게 하나도 부담이 없죠. 문장력이 끝내 준답니다. 사유 깊은 글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어요. 강추합니다.

서니데이 2020-07-17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모전 수상작품인가봅니다. 저는 처음 듣는 작가지만, 소개를 읽어보니 유명한 분인가봅니다.
처음엔 낯선 표지를 보고, 페크님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0-07-18 11:18   좋아요 1 | URL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필자의 역량이라기보다 운발인 것 같아요.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 좋은 책이 많잖아요. 이 분의 책도 그렇게 될지 몰라 이 페이퍼를 올렸어요.ㅋ
공모전 수상작품인 만큼 믿도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벌써 주말인 건가요? 이 빠름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아까운 시간, 히잉...
서니데이 님도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

희선 2020-07-18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크 님 책이 나왔는지 알았습니다 그건 좀 더 나중이군요 페크 님이 갖고 싶은 수필집이라니 기쁘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은 공모전에 뽑히고 책이 나와서 기쁘시겠네요 멋은 드러내지 않을 때 더 빛나지 않나 싶어요 수수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말입니다 페크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7-18 11:20   좋아요 1 | URL
좋은 책 하나 갖고 아끼며 읽는 맛이라는 게 있죠.
제가 수수한 걸 좋아하나 봐요. 시선 집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싫더라고요. 그런 면에선 내성적이에요.

희선 님도 편안한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0-07-18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8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반대의 놀라운 힘

 

  『이 책으로 가장 이뤄내고 싶은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신념대로 발언’하는 자유다. 집도의에게 잘못된 부위를 수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상사가 진행한 계획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가장 친한 친구가 사려는 고가의 드레스가 사실 그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자유 말이다. 아마도 우리의 의견이 틀렸다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해도 상대방의 생각을 자극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소신껏 발언함으로써 집단 내 의사결정과 판단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샬런 네메스, <반대의 놀라운 힘>에서.

 

 
  친한 친구가 사려는 옷이 사실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신이 솔직히 말을 해 줬으나 그래도 그녀가 그 옷을 산다고 해도 말을 해 줄 필요가 있다. 그 친구가 다음번엔 그런 종류의 옷을 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솔직히 말하는 데 익숙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다시 말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이들이 많아지면 우린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2.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제롬 케이건의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는 ‘인간을 완성시키는 12가지 요소’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책이다. ‘21세기의 몽테뉴’라 불리는 저자의 첫 수상록이라고 한다. 심리학, 철학, 사회학, 과학을 아우르는 저자라고 하니 기대해도 좋겠다. 예를 하나 들면 ‘왜 사람들은 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결과가 다를까?’ 하는 문제에 대해 심리학자인 저자가 그 이유를 밝혀 놓는다.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가 인간으로 변신되어 가난한 구두장이 집에서 8년째 머물면서 겪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모든 사람 각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글을 읽고 나니 인간이란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타인의 사랑에 의지해 살아가기도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타자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남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알겠다. 

 

 

  최근 감동적인 기사 한 편을 봤다.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전국에서 16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활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기사였다. 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들은 사람이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 톨스토이가 옳다는 걸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4.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에게서 유머 감각을 배우고 싶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답.

 

 

...............
질문 : 와 책이 굉장히 많군요! 이 많은 걸 다 읽으셨어요?
대답 1 : 아니요. 저 가운데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이미 읽은 책을 무엇 하러 여기에 놔두겠어요?

 

질문 : 와 책이 굉장히 많군요! 이 많은 걸 다 읽으셨어요?
대답 2 : 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지요.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을 말입니다.

 

질문 : 와 책이 굉장히 많군요! 이 많은 걸 다 읽으셨어요?
대답 3 : 지금부터 다음 달까지 읽어야 할 것들입니다. 다른 책들은 대학의 연구실에 놓아두지요.
...............

 

 

 

 

 

 

 

 

 

 

 

 

 

 

 

 

 

 

 

 

누가 나에게 똑같이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
질문 : 와 책이 굉장히 많군요! 이 많은 걸 다 읽으셨어요?
페크의 대답 : 아니요. 한 권도 읽지 않았어요. 저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라서요.

 

질문 : 와 책이 굉장히 많군요! 이 많은 걸 다 읽으셨어요? 
페크의 대답 : 아니요. 한 권도 읽지 않았어요. 책으로 채워진 책장이 폼 나는 것 같아 책을 사 모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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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0-04-2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감각은 정말 탁월하죠.
저 책에 나온 내용 중에는 이탈리아 정치, 사회적 맥락을 모르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 뉘앙스 만은 확실히 읽을 수 있었어요.

저 책을 다 읽으면 ‘웃으면서 화 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번을 읽어도 그런 방법은 배울 수 없을 것 같아요.

집에 돌아가면 저도 저 책을 다시 한 번 들춰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0-04-21 21:04   좋아요 0 | URL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반갑네요. 잘 지내시죠?
코로나19로 직업적인 일에 지장은 없으신지요?

에코의 유머 감각은 읽는 데 지루함이 없어서 좋죠. 대학자가 어떻게 그런 감각이 있는지 감탄스럽죠.

저도 ‘웃으면서 화 내는 법‘을 읽은 것 같지 않네요. 유머를 가지고 산다면 화 낼 때도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다, 여유를 갖고 살자, 뭐 그런 뜻인가 봐요. ㅋ
저도 이미 읽은 책인데 들춰 보다가 재밌는 것 같아 옮겨 봤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