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악은 거의 항상 무지에서 비롯되고, 또 무식한 선의는 악의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사람들은 악하다기보다는 선하다. 사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지는 더하기도 덜하기도 하며, 바로 이것이 미덕 또는 악덕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서 누군가를 죽일 권리를 자신에게 인정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이며, 분명 가능한 통찰력 없이는 참된 호의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을 것이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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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20 2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사진 좋네요!
전 까뮈 아직도 못 읽었어요.
전 이제 고전 소설 못 읽을지도 몰라요. ㅠㅠ

페크pek0501 2024-12-22 12:54   좋아요 2 | URL
사진은 어느 카페에서 찍었답니다.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아 맘에 들었어요.
저는 카뮈의 이방인보다 페스트를 더 좋아합니다. 재독에 이어 세 번째 읽고 있어요. 좋은 문장이 많아서요.
두 번째로 읽을 땐 너무 오래전에 읽어 마치 처음 읽는 것 같았지요. 세 번째 읽는 것은 문장 공부를 위해서예요.
그 대신 스텔라 님은 다른 책을 많이 보시잖아요. 어떻게 그 많은 고전소설을 다 보겠어요. 저도 읽지 않은 게 참 많답니다.^^

서니데이 2024-12-21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서울엔 오늘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주말부터 날씨가 추울 것 같아요.
오늘부터 내일까지 체감기온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12-22 12:55   좋아요 2 | URL
어제는 하루종일 나가 있었네요. 그래서 오늘은 집 콕, 하고 싶은데 나갈 일이 있어요.
날씨가 춥긴 한가 봐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눈에 띕니다.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시와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희선 2024-12-22 0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식한 선의... 그런 걸 하는 사람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그런 적 있을지도... 모르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이것도 안 좋을지... 페크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4-12-22 12:58   좋아요 0 | URL
요즘 정치계 소식을 접하면서 떠오른 글을 올려 봤어요. 무지한 선의로 하는 행동은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법합니다. 확신은 금물인데 우리 모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지요.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점 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2024-12-24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0년 12월이다. 한 명문고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학생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떠나고, 한 명만이 학교에 남는다. 그는 문제아 ‘털리’(남)다. 그의 아버지는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고, 재혼한 어머니가 새 남편과 여행을 갈 계획이라서 집으로 갈 수 없게 된 것. 가족이 없고 고집불통인 역사 선생인 ‘폴’(남)과 아들을 잃어 슬픔을 가슴에 지닌 주방장 ‘메리’(여)도 학교에 남는다. 이리하여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학교에 남게 된 것에 불만이 가득한 털리는 자기가 싫어하는 역사 선생과 주방장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것도 불만이다. 가족의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 세 사람은 과연 어떻게 보내게 될까?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 셋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따뜻한 우정이 쌓여 간다. 털리는 이제 두 사람이 싫지 않다. 학교에서 말썽을 자주 피워 퇴학을 당한 경험이 있는 털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다. 메리가 만든 음식을 셋이 먹으며 털리는 이들을 가족처럼 느낀다. 


정신 병원에 있는 친부를 찾아갔다는 이유로 털리는 또 퇴학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 털리를 대신해 폴은 자신이 그 책임을 지고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를 떠난다. 이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학생의 인생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역사 선생 폴은 바람직한 교사상을 보여 준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삐딱하게 굴던 털리의 변화된 모습에 있다. 털리가 역사 선생과 주방장과 지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들 셋은 사이가 좋아졌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문제아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때로는 타인이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자신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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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2-20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어요. 올해 본 좋은 영화 중 한편이었지요.
현대로 오면서 전통적 가족의 의미도 변해가고, 타인과의 관계도 변해가는 것 같아요. 가족끼리의 연대감은 얕아짐과 동시에 가족 아닌 타인과의 관계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늘어가는것 같지요.

페크pek0501 2024-12-20 15:26   좋아요 0 | URL
아! 나인 님도 보셨군요. 올해 2월 개봉, 이었다고 하네요. 저는 영화모임에서 결정된 영화라서 봤어요.
남보다 못한 가족이 있긴 해요. 그래서 끊고 지내는 이들이 있는데 전문가들도 그것이 더 낫다고 하네요. 계속 만나면서 서로 상처받는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타인도 얼마든지 가족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영화 같았고 문제아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메시지도 느껴졌어요.^^

잉크냄새 2024-12-20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 크리스마스 전날 혼자 남으면 스릴러나 공포로 빠지기 쉬운데,,,영화 자체가 반전입니다.

페크pek0501 2024-12-20 15:26   좋아요 0 | URL
크하하~~~ 저는 잉크냄새 님의 댓글이 재밌는 반전, 이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yamoo 2024-12-20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영화 재밌을 거 같습니다! 찜해두겠어요~~ㅎㅎ

페크pek0501 2024-12-20 15:29   좋아요 0 | URL
흐뭇함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저도 야무 님의 영화 추천 목록을 적어 두었답니다. 하나씩 하나씩 꼭 볼 생각이에요. 영화를 많이 봐야겠단 생각을 요즘 합니다.^^

stella.K 2024-12-20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 같아요. 이 영화로 토론회 하셨나 봐요.
전 지난 주 <나이브스 아웃>인가 하는 영화 좀 보다 말았어요.
뭔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중간에 드라마 <굿 파트너> 보느라.
이 드라마 정말 정신없이 빠져들어요.
이혼 전문 로펌이 배경인데 진짜 이혼 전문변호사가 감수를 했다나 스토리텔러로
참여했다나 뭐 그랬던 것 같아요.
장나라 너무 말라서 약간 살 좀 키우고 나와도 좋을텐데 하며 보고 있어요. ㅎ
혹시 시간되시면 함 보세요.

페크pek0501 2024-12-22 12: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영화 본 뒤 토론하고 짧게 리뷰 써서 이메일 제출하면 매달 도서상품권을 받는답니다. 아마 구청에서 지원하는가 봐요. 우리 멤버들이 쓴 리뷰를 담아 책을 내기도 했더라고요. 그냥 우리끼리 보는 얇은 책으로요.
오! 굿 파트너,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그렇게 재밌나요? 전 요즘 드라마를 전혀 안 봅니다. 유튜브에 빠져서...ㅋ
장나라, 가 나오는 것 스쳐 본 것 같은데 그 드라마인가 보네요. 내용은 모르겠고... 한번 볼게요.

희선 2024-12-22 0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아라는 말도 별로 안 좋을 듯합니다 이건 한국에서 쓰는 말이겠지요 사람한테는 다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걸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도 알 듯합니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더 많지만...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함께 지내다 괜찮게 지내는군요


희선

페크pek0501 2024-12-22 12:46   좋아요 0 | URL
지적하신 대로 문제아, 라는 말이 좋은 뜻은 아니니 삼갈 낱말이네요. 희선 님 덕분에 알았네요.
이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문제아가 될 수밖에 없던 환경 조건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마음은 착한 아이였어요. 영화나 소설을 보면 인간에 대한 관찰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유익한 점이에요.
오늘은 날씨가 춥다고 하는데 이따 어머니와 산책하기로 했는데 추우니 나가기 싫어져서... ㅋㅋ그래도 나갈 거예요. 유익하지만 하기 싫은 걸 하고 나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1.

내가 온라인 활동이 뜸한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바쁘게 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한다면 오프라인에서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서다. 매월 책을 읽고 가야 하는 독서 모임과 스터디 모임, 영화를 보고 가야 하는 영화 모임 등이 있다. 그밖에 주 1회의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책을 읽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번 겨울 학기 강좌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책 두 권이 포함되어 있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은 잘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2.

내가 온라인 활동이 뜸한 또 다른 이유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집은 텔레비전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해 놨다.) 어제는 유튜브 동영상으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고 감탄했다. 그 정도로 춤을 잘 추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할까? 그의 춤 동작에서 발레를 배워야만 할 수 있는 동작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분야든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 우물을 파야 한다. 이런 생각을 했다. 


 


3.

요즘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즐겨 보며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가 1954년생이라고 하니 71세일 텐데 나이 들어 머리가 희끗한 것도 보기 좋고 그의 목소리도 듣기 좋다. 며칠 전 본 영상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살인 사건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치정 살인’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는 것이 놀랍다. 가해자의 90프로가 남성이라고 하는데 부정을 저지른 여성을 죽이거나 불륜 관계에 있는 상대편 남자를 죽인다고 한다. 대체로 남성은 우발적으로 죽이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힘이 약해 우발적으로 죽일 수 없으므로 치밀한 계획을 해서 죽인단다여성이 한 남성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계획을 세워 남성을 죽이는 경우가 있단다. 


치정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쥘 아메데 바르베 도르비이’의 ‘무신론자들의 저녁식사’라는 소설이다. 


부부처럼 사는 두 남녀가 있다. 여자는 많은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바람둥이다. 여자가 아기를 낳았을 때 남자는 자신이 아기의 아버지임을 의심치 않고 자기 아들인 양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어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아기가 죽자 남자는 미칠 듯이 괴로워했다.  


어느 날 여자가 쓴 편지를 발견한 남자는 누구에게 보내느냐고 여자에게 물었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편지를 빼앗았으나 편지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 남자는 알 길이 없었다.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는 이 일로 흥분하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툰다. 이를 옷장 속에서 듣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메닐그랑’이었다. ‘메닐그랑’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러 사람에게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아! 우리 아기!’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지요. ‘당신 씨가 아니야!’

나는 야생 고양이의 목멘 울음소리 같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소령의 파란 눈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했어요. 그는 하늘을 가를 듯한 욕설을 내뱉었지요. 

‘그럼 누구의 씨야? 가증스러운 악녀 같으니!’ 그가 물었고, 곧바로 더 이상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어떤 소리를 내질렀어요. 

하지만 그녀는 하이에나처럼 계속 웃어댔어요. 

‘넌 죽어도 알 수 없을걸!’ 그녀가 그를 비웃으면서 말했지요. 그녀는 이 넌 죽어도 알 수 없을걸!이라는 조롱의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그를 힐책했고, 말하기가 싫증나자, 믿을 수 있겠습니까? 팡파르처럼 노래로 불렀소! 그러고 나서 제정신이 아닌, 자신이 손아귀에 쥐고 있다가 망가뜨릴 꼭두각시에 불과한 이 남자를 이 말로 실컷 후려쳤고, 이 말을 채찍 삼아 팽이처럼 돌렸으며, 이 말로 불안과 의심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증오의 힘으로 파렴치해져서, 자기와 관계를 가졌던 모든 연인의 이름을 말했고, 장교단 전체를 들먹거렸어요.

‘그들 모두를 가졌어.’ 그녀가 외쳤어요.(무신론자들의 저녁식사‘에서.)

-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183~184쪽.


‘무신론자들의 저녁식사’라는 소설에서 발췌했다. 이 소설은 14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는 책에 담겨 있다. 

    

남녀가 치열하게 싸울 땐 소설 속의 여인이 상대편 남자에게 자기와 관계를 가졌던 모든 연인의 이름을 말했듯이, 상대편이 분노를 참지 못하도록 심한 말을 해 댄다. 그래서 우발적으로 치정 살인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남자가 화를 참치 못하고 여자를 죽이려고 한다. 그것을 눈치챈 메닐그랑이 옷장에서 튀어나와 남자를 죽여서 여자를 살려 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정 살인이 많은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남녀 관계에서 미움과 질투의 불이 맹렬히 타오를 때 누군가를 죽일 만큼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4.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형부와 처제가 불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충격적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던가.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불륜 행위가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식주의자」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한 글이 매일신문에 실려 그 글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왔다. 


『한 학부모 단체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선정적(煽情的)이라며 도서관 비치를 반대했다. 형부와 처제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내용 등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내용을 다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재혼한 삼촌이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역시 도서관에서 퇴출돼야 한다. 근친상간·불륜·동성애·살인이 곳곳에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도 마찬가지다.』 - [매일칼럼]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정서적 양극화, 김교영 논설위원, 2024-11-04. 


이 글에 동의한다. J. 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도 동성애자로 짐작이 될 만한 사람이 나온다. 청소년인 주인공 홀든이 어느 선생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어 잠이 들었는데 뭔가 이상해서 눈을 떠 보니 선생이 그의 앞에 있었고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남자 선생은 청년으로 보이는 홀든에게 홀딱 반한 듯하고 동성애자인 듯하다.)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홀든은 다급히 그 집을 나온다. (자기 아내가 딴 방에 있는 집에서 아직 미성년자인 제자에게 딴마음을 먹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해 불륜을 다룬 명작은 많다. 어쩌면 불륜이라는 소재로 「안나 카레니나」를 명작의 대열에 올라서게 한 점이 톨스토이의 위대한 점인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했다. 


  


5.

「채식주의자」에서 아내에게 불륜 현장을 들켜 버린 다음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박감이 넘친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벌거벗은 상체가 아내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셔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욕실 쪽에 내던져진 셔츠에 팔을 끼우며 그는 말했다.

“여보, 내가 설명할게. 이해하기 쉽진 않겠지만……”

아내는 갑자기 높아진 목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구급대를 불러놨어요.”

“뭐라구?”

아내는 희끗하게 질린 얼굴로,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영혜도, 당신도 치료가 필요하잖아요.”

그녀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수초의 시간이 걸렸다.

“……나한테 정신병원에 들어가라는 거야?”

그때 매트리스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도, 아내도 숨을 멈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가 시트를 걷어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는 보았다. 

“나쁜 새끼.”

아내는 낮은 소리로,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애를…… 저런 애를.”

아내의 젖은 입술이 파들거렸다. 

- 한강, 「채식주의자」, 175~177쪽.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를 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변하고 싶다. 불륜을 저지른 대가는 혹독했으므로 「채식주의자」를 읽은 청소년들은 불륜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나 독자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는 것이 소설의 임무는 아니다. 독자에게 이런 인간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려 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소설의 임무다. 문학을 인간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고 위로를 받거나 주인공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설의 장점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6. 

「채식주의자」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 다음 글이 떠올랐다. 


한 민족에게 선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다른 민족에게는 웃음거리나 치욕으로 여겨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많은 것들이 여기서는 악이라고 불리고 저기서는 자줏빛 영광으로 장식됨을 보았다.

일찍이 그 어떤 이웃이 다른 이웃을 이해한 적은 결코 없었다. 한 민족의 영혼은 이웃 민족의 망상과 악의를 언제나 이상하게 여겼다.

민족은 저마다 가치의 표지판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98~99쪽.

















정답을 알 수 없을 때가 많아 정답을 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했다.




7.

신의 아름다움이 신의 모습을 가리듯, 그대 하늘은 그대 별들을 숨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90쪽.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에 집중하느냐가 관건이다. 


미남의 용모에 반해 버린 여성은 그 남성의 나쁜 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미녀의 용모에 반해 버린 남성은 그 여성의 나쁜 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빼어난 용모가 그의 다른 점을 가린다. 신의 아름다움이 신의 모습을 가리는 것처럼. 이런 생각을 했다. 




8.

오늘 뽑은 시 한 편을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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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29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부모들의 저런 항의는 우리 학교 때도 있어왔는데 변함이 없네요. ㅎ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아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한결 같은 것 같습니다.

적당히 바쁜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언니는 지금 가장 좋은 때를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사진 멋지네요. 이제 본격 겨울입니다. 건강 축나지 않게 조심하시고 가끔 소식 전해 주세요.^^

페크pek0501 2024-11-29 18:54   좋아요 1 | URL
청소년들이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충격적인 사건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금서 조치를 한다는 게 의미가 없지요. 오늘 제가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건은, 장모와 사위가 연인처럼 입에 뽀뽀하는 걸 아내가 cctv로 봤다는 거였어요.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네요. 아내가 상처가 컸을 것 같습니다.

사진은 그저께 눈 오는 날에 찍은 거예요. 오랜만에 글을 올렸는데 언제나 스텔라 님이 반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 제가 글을 올리지 않더라도 스텔라 님께는 근황을 비댓으로라도 알리겠습니다.^^

yamoo 2024-11-29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번까지 쉬지 않고 읽어 내려 갔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학부모들의 저런 항의는 저런 책을 읽지 않았다는 반증 아닐까요. 오이디푸스왕이나 채식주의자 등을 읽었다면 이런 소리를 떠벌이지는 않았을 건데요...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오프라인에서 바쁘면 서재 활동이 뜸해지지요. 그건 저도 동감 100배 입니다! 바쁘고 즐거우면 장땡이죠!ㅎㅎ
저는 넷플 설치한 이후로 월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보아야할 영화와 드라마가 아직까지는 넘치니까요..흐흐흐~~

페크pek0501 2024-11-29 19:55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쓸 게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써 보면 쓸 것이 없다는...ㅋㅋ
일찍이 고 마광수 교수가 한국 사회의 엄숙주의와 도덕주의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지요.
요즘 tv는 뉴스만 보고 유튜브를 많이 봅니다. ‘아는 변호사‘의 유튜브도 보는데 의견 개진이 명쾌해서 좋습니다. 넷플릭스에는 볼 영화가 차고 넘치고 정말 시간이 없어 아쉬울 지경입니다. 볼 만하면 잠 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몸을 움직이기 위해 오프라인 모임도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감은빛 2024-11-29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바쁘게 잘 지내고 계신 듯 보여요. 책도 많이 읽으시고, 영화도 보시고, 모임에서 사람들도 만나시고.

언제나 어디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문제 제기부터 하는 사람들은 꼭 있어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건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만 알게 되고, 보이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죠.

페크pek0501 2024-11-29 20:00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오랜만에 글을 올리니 반가운 분들을 댓글창에서 다 만나네요. 감은빛 님 잘 지내시지요?
요즘 유튜브만 봐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문제 제기하는 분들도 다양을 채널을 통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겠어요. 유튜브로 참 편리한 시대입니다. 겨울철 달리기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조만간 글 보러 가겠습니다.^^

cyrus 2024-11-29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처음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해 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제가 읽은 책의 좋은 점과 매력을 알리는 일이 어려웠어요. 처음에 읽었을 때 좋아서 독서 모임 도서로 선정했는데, 다시 읽어보니까 별로였어요. 이럴 때 정말 난감해요. ^^;; 오랜만에 보는데 크게 반갑지 않은 책을, 독서 모임 선정 도서 아니었으면 안 읽었어요. 이 책 때문에 제가 산 책들의 독서를 많이 미뤘어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4-11-29 20:04   좋아요 0 | URL
아, cyrus 님 반갑습니다. 독서 모임 경험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저도 읽지 않아도 될 책을 독서 모임의 선정된 책이라 읽게 되고 제가 꼭 읽고 싶은 책은 뒤로 미뤄 놓게 되어 아쉬운 점이 있어요. 그래서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또 제가 추천한 책이 선정된 적이 있는데 다른 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개인 취향의 문제라는 걸 깨닫곤 하지요. 그래도 사람들과 만나 책 얘기를 하는 건 즐겁습니다. ^^

잉크냄새 2024-11-30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소설과 도덕책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페크pek0501 2024-12-03 12:50   좋아요 0 | URL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없는 게 있겠습니까? 오히려 형부와 처제 사이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위험해 보입니다.^^

모나리자 2024-12-01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프라인에서 바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멋집니다! 페크님.^^
저도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네요.ㅜㅜ
요즘은 이전에 전혀 생각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몰입하고 있답니다.ㅎ
저도 비슷한 이유로 <채식주의자>를 읽다 놓았는데 언젠가 다시 잡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편견이란 의도적으로 고치려 하지 않으면 고정관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2월에도 화이팅 하세요.^^

페크pek0501 2024-12-03 12:55   좋아요 1 | URL
되도록 몸을 많이 움직이려 하는데 겨울이 되니 외출이 살짝 귀찮고 그렇습니다.ㅋㅋ
저도 넷플릭스와 유튜브 때문에 시간이 참 잘 갑니다. 특히 유튜브로 장자 강의, 논어 강의는 동영상이 얼마나 많은지 한 권 공부하려면 20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할 것 같아요. 장자 강좌-최진석 교수, 논어 강좌-전호근 교수.
오! 새로운 몰입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인간이란 편견덩어리, 고정관념덩어리이지요. 인간은 어리석다고 봐요. 12월에 모나리자 님도 파이팅, 하시길요...^^

모나리자 2024-12-04 20:53   좋아요 2 | URL
불경 독송 듣기와 암송입니다!!
독송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스님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할 때 들으면 명상이 따로 없습니다.ㅎ 유튜브는 정말 재미도 있고 유익하고 공부할 거리가
넘치네요. 대단한 발명품입니다.
한 가지 경전은 모두 외워서 날마다 암송하고 있답니다.^^

페크pek0501 2024-12-05 16:58   좋아요 1 | URL
오!! 불경 듣기와 암송, 좋은데요. 저도 해야겠어요. 저도 올해 불경을 공부하려고 여러 책을 샀답니다. 필사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유튜브 보면서 실내 자건거를 타면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 유튜브 없이 못 살 것 같아용... 유튜브 없이는 운동도 못해용... 반가웠습니다.^^

희선 2024-12-02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많이 와서 힘들기도 했겠지만, 눈이 와서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습기가 덜했다면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제각 사는 곳은 눈은 안 오고 비만 왔습니다 비 오다가 눈이 날린 적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못 봤습니다

바쁘게 지내시는군요 그게 좋은 거죠 페크 님이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4-12-03 12:56   좋아요 1 | URL
눈 대신 비가 온다면 기온이 낮지 않았기 때문일 듯해요.
희선 님도 늘 하시는 일,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24-12-03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서울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들었는데, 사진도 많이 찍으셨군요. 이번에 내린 눈이 습설이라서 많이 무겁다고 들었는데, 나무에 내린 눈을 보다가 초록색 잎이 보여서 얼마전까지 많이 춥지 않았던 11월이 생각납니다. 저희 집 근처에는 이제 막 은행나무가 노랗게 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겨울이 된 것처럼 달라졌어요.
하루에 시간이 24시간이 되는데, 바쁘기 시작하면 시간이 매일 부족한 느낌이예요. 스마트폰만 있어도 잠깐 사이에 재미있는 영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바쁜 일들이나 중요한 일들이 생길 때도 있고요. 오프라인 모임을 하시는 것까지 하면 평소 시간관리 잘 하시고 부지런하게 보내시는 날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제부터 다시 날씨가 추워졌어요. 한파주의보라고 들었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12-05 16:49   좋아요 1 | URL
정말 이변이죠. 단풍잎 위에 눈이 쌓이기도 했으니까요.
정국의 혼란으로 뉴스를 자꾸 보게 되는데 이것 또한 이변입니다. 어제 발레, 하러 갔더니 모두가 이 얘기를...
서재의 달인, 사실 이번 해엔 글을 많이 올리지 못해 마음을 비웠는데 뜻밖에도 되었네요. 주체 측이 큰 인심을 쓴 듯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함께 되어 기쁩니다.
오프라인 모임도 중요하고 혼자서 책 읽는 시간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 드니 점점 나가는 게 싫어져서 일부러 나갈 일을 만들어 놓습니다. 하지 않을 수 없게 말이죠.
겨울 날씨가 갑자기 찾아와 패딩을 입고 목도리에 부츠까지 신고 다닙니다. 서니데이 님도 따뜻하게 챙겨 입어 감기 걸리지 않게 다니세요. 또 뵙기를...^^

2024-12-03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5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시로(남)가 요지로(남)에게 돈을 빌려 준 적이 있다. 요지로는 그 돈으로 마권을 몇 장 사서 돈을 몽땅 날려버렸다고 말하고는 갚지 않는다. 그러더니 미네코 씨(여)한테 가서 돈을 받으라고 한다. 자기가 산시로에게 꾼 돈이 있어 갚기 위해 돈을 빌리러 왔다고 말하니, 미네코 씨가 자기를 믿을 수 없다며 산시로가 직접 와서 받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산시로는 미네코를 만나 돈을 받았고 그날 전람회에 가기도 하며 둘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요지로가 산시로에게 돌연 빌린 돈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달이 밝은 비교적 추운 밤이다. 산시로는 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변명을 듣는 것도 진지하지 않다. 어차피 갚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지로도 결코 갚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갚을 수 없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가 산시로에게는 훨씬 재미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남자가 실연한 나머지 세상이 싫어져 결국 자살을 하려고 결심했는데 바다도 싫고 강도 싫고 분화구는 더욱 싫고 목을 매는 것은 더더욱 싫어서 어쩔 수 없이 권총을 사왔다. 권총을 사온 후 아직 목적한 바를 실행하기도 전에 친구가 돈을 빌리러 왔다. 돈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어떻게든 꼭 좀 빌려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소중한 권총을 빌려주었다. 친구는 그 권총을 전당포에 맡겨 임시변통했다. 형편이 나아져 전당포에 맡긴 물건을 찾아 돌려주러 왔을 때 권총의 주인은 이미 죽을 마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남자는 친구가 돈을 빌리러 왔기 때문에 목숨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일도 있으니까 말이야.”

요지로가 말했다. 산시로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높이 뜬 달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돈을 받지 못해도 유쾌하다.

- 나쓰메 소세키, 「산시로」, 247~248쪽. 


“웃으면 안 되네.”

요지로가 주의를 주었다 산시로는 더욱 우스웠다.

“웃지 말고 잘 생각해보게. 내가 돈을 갚지 않았으니까 자네가 미네코 씨한테 돈을 빌릴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산시로는 웃음을 그쳤다.

“그래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 자네,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

- 같은 책, 248쪽.


⇨ 요지로는 자신이 돈을 갚지 않아 산시로가 미네코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산시로가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꽤 그럴듯한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 「산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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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이 올해 마지막 가을 모습이겠죠? ㅠㅠ

페크pek0501 2024-11-12 12:23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벽 안이 경복궁인데 그 부근(서촌)에 좋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한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했어요.
단풍을 보자마자 바로 사진을 찍었어요.
아마도 단풍이 곧 사라질 거고 겨울이 오겠지요. 실컷 봐 두어야 하겠습니다. 굿 데이!!!

모나리자 2024-12-01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지요.
그후 저는 도쿄 여행을 가서 도쿄대학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도 보고 왔지요. 문득 그립네요.

페크pek0501 2024-12-03 13:07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 님처럼 산시로를 읽고 나서 그 연못을 보러 갔다는 분들 있더라고요. 그런 문학기행도 있고요.
작가 덕분에 유명한 연못이 된 셈이죠.
 



코다(CODA)는 청각 장애인인 부모나 보호자에 의해 양육된 사람을 말한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코다 ‘루비’는 부모와 오빠가 모두 청각 장애인이라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면 수화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 가족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 가는데 고등학생인 ‘루비’도 고기잡이배를 타고 함께 일한다. 가족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루비가 수화 통역을 해 줘야 하므로 그녀가 꼭 필요하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거래할 때에도 수화 통역을 해 주는 그녀가 없으면 안 된다. 루비는 새벽에 고기잡이를 한 뒤 학교에 간다. 수업 시간에 잠이 들 정도로 고단하고, 옷에서 생선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가족을 도우며 산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남학생을 따라 합창단 동아리에 들어간다. 거기서 루비의 노래를 들은 선생님은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음악 학교인 버클리 대학에 갈 것을 권유한다. 버클리 대학에 가고 싶은 루비. 그리고 그녀가 떠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어머니, 아버지, 오빠. 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루비로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하기에 대학에 가서 꿈을 이루고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에 가면 자기가 없이 가족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루비의 가족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자기들의 생계를 위해 루비를 붙잡아 둘 것인가 아니면 루비의 더 나은 인생을 위해 그녀가 떠나도록 할 것인가? 오빠는 그녀에게, 너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는 잘 살았다고 말하며 떠나라고 한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는 루비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쪽으로 결정한다. 


가족의 결정에 따라 루비는 자신의 꿈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떠나기 직전에 그들 가족이 그녀와 껴안는 마지막 장면은 가족 간의 깊은 사랑이 느껴져 훈훈한 감동을 준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루비도 멋지지만,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루비가 가족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하지 않고 그녀를 떠나보내는 가족도 멋지다.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나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영화다.


** 인상적인 장면 : 루비는 심사 위원들만 참석하는 오디션장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청각 장애인인 어머니, 아버지, 오빠는 오디션장에 몰래 들어가 2층 객석에 앉는다.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루비가 노래하는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때 어머니, 아버지, 오빠를 발견한 루비는 가족을 위해 수화로 가사를 전달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

이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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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0-18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못 봤지만, 이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 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는 안 봐도 영화 소개 하는 걸 라디오 방송에서 듣기는 해요 그렇게 길게 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니 요새는 라디오가 잘 안 나와서 잘 못 듣기도 했네요

청각장애인 식구 사이에서 자기 혼자만 들으면 거기에서 조금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더군요 이건 소설에서 봤어요 여기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 같네요 부모나 오빠하고 사이가 좋으니...


희선

페크pek0501 2024-10-18 16:2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장애인 연기를 하는 가족 세 명이 실제로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요즘 라디오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유튜브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장애인이어서 딸을 낳을 때 장애인이길 바랐다고 하는 대사가 나와요. 이것 역시 소외감과 관련이 있을 듯해요. 네 명의 가족이 모두 낙천적인 성격이라 보기가 좋았어요. 어려움을 겪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영화였어요. 희선 님, 가을비가 오는 날이니 뜨거운 국물로 저녁 드시면 좋겠습니다. 날이 쌀쌀하니 제가 얼큰한 두부찌개가 먹고 싶네요. 마침 소고기도 두부도 있으니 고춧가루 넣어 오늘 해 먹어야겠어요. 답글을 달다가 저녁 반찬을 해결하네요.ㅋㅋ 잘 지내십시오.^^

서니데이 2024-10-18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이 영화 괜찮다고 들었는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군요.
전부터 넷플릭스 가입하고 싶긴 한데, 그러면 볼 게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시작을 못하겠어요.
아마 휴대전화에서 분리가 어려울 거예요.
오늘 비가 와서 기온이 많이 내려갑니다.
10월의 평년 기온에 가까워진다고 하지만, 하루 사이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니까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10-22 17:19   좋아요 1 | URL
넷플보단 유튜브를 많이 보게 됩니다. 저희 집은 티브이를 kt 통신사로 바꾸면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TV화면으로 볼 수 있게 설치했던 것 같아요. 전화 한 통화만 하면 기사 님이 나와 해 줍니다. 유튜브를 TV화면으로 보니까 좋은 강의를 많이 시청할 수 있어 좋습니다. 만약 장자, 강좌를 찾으면 19강까지 강의가 있을 정도예요. 강사님들도 많아 장자 강의를 누구 것으로 들을지도 고민하게 되어요. 무료의 온라인 강의인 거죠.
오늘도 비가 옵니다. 내일부턴 추워질 듯해요. 이렇게 해서 시간은 겨울을 향해 가는 거지요.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옷 입으세요. 고맙습니다.^^

stella.K 2024-10-18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본 영화네요. 영화 좋았죠?
상 받을만하다 했죠.
이 영화와는 꼭 같지는 않지만 이번 주 <인간극장>은 안구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었어요.
34살의 의산데 2년전 낙마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는데 꽤 밝고 씩씩하더군요.

페크pek0501 2024-10-22 17:21   좋아요 1 | URL
아, 보셨군요.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제가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그렇게 씩씩하게 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온 가족이 구김 없이 밝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인간극장>에서도 그렇군요.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나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갖고 산다는 게 쉽지 않지요. 본받을 점입니다.^^

yamoo 2024-11-02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영화가 있었네요. 넷플도 유튭과 비슷하게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내가 봤던 영화 위주로 추천해 줘서 이 영화를 놓쳤나봅니다. 이거 이번 주 찾아서 꼭 보겠어요! 불끈~

페크pek0501 2024-11-03 14:40   좋아요 0 | URL
넷플 알고리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요. 기대 없이 봐서 그런지 괜찮은 영화였어요. 특히 장애인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부모와 오빠 등 세 명이 실제로 장애인이라고 해서 더 인상적으로 본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모나리자 2024-12-01 1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길어서 나누어 볼 때도 있어요.
넷플 드라마를 즐겨보는 1인입니다. 그래선지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네요.ㅜㅜ

페크pek0501 2024-12-03 13:09   좋아요 1 | URL
호호~~ 저도 나눠 볼 때가 있어요. 한번에 다 보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서요. 제가 영화광은 아닌가 봐요.
넷플과 유튜브 때문에 독서 시간이 아무래도 적어지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