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이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은 이미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잘살아야 하는데, 잘사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나 기능의 점진적 향상이 아니다. 잘산다는 말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성이야말로 인간 행복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80쪽)


인간성이란 인간다운 기능이다. 인간의 기능은 생식, 감각, 사유로 나뉜다. 생식은 식물도 하는 일이며, 감각은 동물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내재된 기능이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사유를 인생의 본질로 삼았을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따라서 행복은 사유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80~81쪽) 


쇼펜하우어(1788년생)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에 있는 글이다.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사유하며 ‘선한 삶’을 사는 데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유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겠네. 선한 삶을 살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겠네. 여기서 경제적 요건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 및 축복은 전적으로 선의 향수에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혼자만 그 선을 향수하고 있다고 자만하는 것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복지를 홀로 향수하기 때문에, 또는 자신이 남들보다 더 혜택 받고 운이 좋기 때문에 자신을 더 축복 받은 존재로 간주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 및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61쪽)


예를 들면, 인간의 진정한 행복 및 축복은 전적으로 지혜와 참된 인식에 있을 뿐,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 또는 다른 사람들이 참된 인식을 갖고 잊지 않다는 것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지혜, 즉 그의 진정한 행복에 아무것도 보태는 것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기뻐하는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염두에 두고 기뻐하며, 그러므로 앙심이 깊고 악의가 있는 동시에, 진정한 지혜를 모르고 충실한 생활의 평안도 알지 못한다.(61쪽)


스피노자(1632년생)의 「신학정치론」에 있는 글이다.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지혜와 참된 인식에 있을 뿐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해서 행복이 있는 게 아니고, 자기만 참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행복이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자신이 남들에 비해 더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행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타인의 불행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지혜와 ‘선한 삶’이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겠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은 내용이 쉽지 않은 책이라서 술술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스피노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읽고 있다. 다행히 유튜브를 통해 스피노자 관련 강좌를 많이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 





***

내 생각 : 

쇼펜하우어나 스피노자 같은 위대한 철학자가 아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인생에는 행복한 날과 불행한 날이 교차하기 마련 아닌가. 맑은 날도 있고 비바람 치는 날도 있는 것처럼.


누구나 다 알 듯이 부자라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부자가 아니라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부자인가 빈자인가 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속에 행복은 이미 깃들어 있다. 아무리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행복은 멀어진다. 두 철학자가 말한 지혜와 ‘선한 삶’을 추구할 때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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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2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이가 들면 좀 더 마음도 넓어지고 관대해지고 그럴줄 알았거든요. 근데 갈수록 더 쫌생이가 되는 느낌. 싫은건 왜 더 많이 싫어지고, 보기 싫은 사람은 왜 더 보기 싫어지는지.... 지혜와 선한 삶은 거저 주어지는게 아니네요.

페크pek0501 2025-02-13 10:59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이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써 주신 듯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속 좁은 선배뻘보다 후배뻘 사람을 만날 때가 더 즐거워요. 조심할 게 없어서요. 저도 만나기 편한 선배가 되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아요. 너그러움, 어디 파는 데 없나요? 하하~~

stella.K 2025-02-13 11:41   좋아요 1 | URL
고독이란 약국에 가서 알아보시면 약을 줄지도...ㅋㅋ 쇼펜하우어 책 읽어보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25-02-13 11:57   좋아요 1 | URL
갑자기 나타나신 스텔라 님! 고독이란 약국이 어디 있나요?ㅋㅋ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다 보면 진지한 글도 있지만 코믹한 글도 만날 수 있습니다.

숲노래 2025-02-12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고스란히 즐거이 부르는 노래로 흐른다면, 주머니에 돈이 있든 없든 그저 즐겁습니다. 마음에는 아무 노래가 안 흐르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든 있든 그저 안 즐겁겠지요. 돈살림이 어느 만큼인지 쳐다볼 노릇이 아니라, 마음살림을 얼마나 즐겁게 노래로 일구는가 하고 바라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하루에 열끼나 스무끼를 먹어치워야 배부른 삶일 수 없듯, 얼마나 벌어들이느냐에 치우치다가는 으레 마음을 잊고 잃을 테니까요.

페크pek0501 2025-02-13 10:55   좋아요 0 | URL
오! 숲노래 님,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잘 지내시죠?
아이들 사진 올린 것을 보곤 했는데 그 귀엽던 아이들이 많이 컸겠습니다.
돈살림만큼이나 마음살림도 중요하겠죠. 자기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가까운 길로 가는 지름길인 듯합니다. 좋은하루보내십시오. 댓글, 고맙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거리에서 거지에게 돈을 주어본 일이 거의 없다. 한겨울에 벌거벗고 울부짖는다거나 끔찍한 불구라든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거나 해서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가엾은 거지를 보고 주머니를 뒤적이다가도 문득 마음을 모질게 먹고 그냥 지나친다. 이렇게 마음을 모질게 먹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30쪽)


그날도 나는 빗속의 거지 앞에서 핸드백을 열려다 말고 이 거지 뒤에 숨어 있을 번들번들 기름진 왕초 거지를 생각했고, 앉은뱅이도 트릭이란 생각을 했고, 빗물이 콸콸 흐르는 보도 위에 저렇게 질펀히 앉았는 것도 일종의 쇼란 생각을 했고, 그까짓 몇 푼 보태주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것 외에도, 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나를 생각했다.(31쪽)


요컨대 나는 내 눈앞의 앉은뱅이 거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를 못하면서 거지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예비지식을 갖출 만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비지식 때문에 나는 거지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확인한 그의 비참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속아만 산 사람처럼, 정치가의 말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세무쟁이를 믿지 않던 버릇으로, 외판원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장사꾼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거지조차 못 믿었던 것이다.(31쪽)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통증과 함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누를 수 없다. 믿지 못하는 게 무식보다도 더 큰 죄악이 아닌가도 싶다.(31쪽)


작가가 가엾은 거지를 보고 그냥 지나친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고백하며 자기반성의 소회를 담고 있는 에세이다. 거지 동냥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으로 나뉠 듯하다. 


앉은뱅이의 배후에 왕초 거지가 있다는 것은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어도 동냥을 외면하기보다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주는 게 낫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오죽하면 동냥까지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둘째는 앉은뱅이라도 돈벌이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걸인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걸인들이 있는 것이라며 적선을 반대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걸인들에게 적선하지 말고 생계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계 기반을 마련해 주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들은 당장 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게 시급한 형편이라면 어쩔 것인가.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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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2-12 0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보면서 박완서 작가 글이 아닐까 했는데, 맞았네요 예전에 한번 읽기는 했지만... 그래도 박완서 작가 글은 많이 보면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작가 글도 비슷하겠습니다

지금은 글에 나온 것 같은 사람이 거의 안 보이는 것 같네요 사는 걸 아주 다르게 바꿔주는 건 무척 힘들 듯합니다 오래 그렇게 살면 다르게 사는 건 힘들겠지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2-12 16:06   좋아요 0 | URL
박완서 작가 님의 글은 개성과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 있죠. 소설도 잘 쓰시지만 에세이도 수작이 많아요. 이 책은 작가가 생전에 남긴 660편의 에세이 중에서 따님이 가려 뽑아 엮은 것이라, 아마도 작가 님이 남긴 가장 나은 에세이집이 될 것 같아요. 소설도 많이 쓰셨는데 에세이만 660편을 쓰셨다니 위대한 분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재래식 시장에 가끔 갈 때가 있는데 거기서 앉은뱅이를 보곤 합니다. 사실 적선하는 게 왕초 거지만 배부르게 하는 거라고 해서 뭐가 정답인지 단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고양이라디오 2025-02-12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읽어보고 싶네요.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저도 한 때 박완서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요, 지금은 ‘속는셈치고 라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5-02-12 16:08   좋아요 1 | URL
아마 이 책을 읽으시면 좋다, 할 것입니다. 돌직구를 던지는 글이 있거든요.
예. 속는셈치고~~~ 좀 속으면서 살자고요.^^

잉크냄새 2025-02-12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지하철을 타던 시절에는 주머니에 잔돈을 넣고 다녔어요. 음악을 틀고 지하철 바닥을 기며 구걸하는 분들을 보면 그 분별심이 들기 전에 그냥 잔돈을 바구니에 넣었어요. 몇 푼의 적선이 고민과 갈등과 의심보다는 맘을 편안하게 하더군요.

페크pek0501 2025-02-13 11:06   좋아요 0 | URL
아, 일부러 동전을 준비하시는 잉크냄새 님,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갈수록 세상은 각박해지는 듯합니다. 얼마라도 적선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그래도 이 세상이 훈훈한 세상을 향해 가는 걸 증명하는 듯 여겨집니다. 저도 모른 척하지 않고 적선에 동참하겠습니다. 좋은하루보내십시오,^^

바람돌이 2025-02-12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동냥하는 분들 보이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넣곤했는데 요즘은 주머니에 돈이 없어요. 동냥하는 분들이 안 생기려면 국가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와야 하고, 또 동냥이 밥벌이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걸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항상 그런 이성과 잠시의 내 마음의 편안함이 갈등을 일으키게 하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5-02-13 11:15   좋아요 0 | URL
댓글 중 ‘주머니에 돈이 없어요‘하는 부분은 반전입니다.ㅋ 혹시 카드만 갖고 다니시는 건 아닌지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없어지려나요. 오늘 부산 세모녀의 극단적 선택, 의 신문기사를 보고 놀랐고 가슴 아팠네요.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헤아리며 살아야겠습니다.^^
 




*

가난한 사람들이란 원래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라 할 수 있죠. 나는 그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뒤틀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는 눈조차 전혀 다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곁눈질해 보고, 언제나 겁먹은 눈으로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혹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꼴사나운 놈이라고 욕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거나 아닐까, 이쪽에서 보면 어떻고 저쪽에서 보면 어떨까 하고 나를 흉보고 있는 게 아닐까?―이런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이고 따라서 누구한테도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엉터리 문학가들이 별의별 수작을 다 늘어놓는다 해도 가난뱅이임에는 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140~141쪽, 하서 출판사.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다고 느껴지는 글을 발견할 때 나는 감탄한다. 이 글을 읽고도 감탄했는데 여기서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을 경험한 적이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난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래전 그의 다른 작품 「죄와 벌」을 읽을 때 이미 그가 탁월한 역량을 가진 작가임을 알았다. 살인자가 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서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인자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할 만큼 작가는 심리학자여야 할 것 같다. 





















**

공연을 하는 서커스단에서 지내는 난쟁이는 키가 작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난쟁이가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어느 날 키가 커져 버렸다. 95센티미터였던 그의 키가 무려 175센티미터가 되었고 게다가 아주 잘생긴 미남으로 변했다. 난쟁이의 이름은 발랑땡이었다. 발랑땡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동료들의 공연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발랑땡은 공연장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제르미나 양을 바라보았다. 곡마사는 말 위에 서서 팔을 관중 쪽으로 뻗어, 갈채에 웃음으로 답하고 있었는데, 발랑땡은 그녀의 웃음이 결코 자신에게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고독이 지겨웠고 수치스러웠다. 그는 조금 전에 빠따끌라끄, 자니도 형제들, 줄넘기 곡예사 프림베르 양, 피프를랭과 일본인들 등 써커스단의 동료 대부분이 무대 위에서 줄지어 행진하는 것을 본 터였다. 그들의 공연이 모두 그를 새로이 좌절하게 했다.

“끝났어.” 그가 한숨지었다. “결코 공연장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 이제 바르나붐 써커스단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어.”(마르쎌 에메의 ‘난쟁이’에서)

-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280쪽. 


서커스단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키가 크고 미남인 것은 인생을 사는 데 유리한 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커스단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소설의 글감이 될 수 있는 이유일 듯하다. 


키가 커진 그는 서커스단에서 쓸모가 없어진 존재가 되었으므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 뒤 난쟁이였던 시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가족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경험도 없으니 생계를 위해 취업하기조차 힘들 테니 말이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에 수록된 마르쎌 에메의 소설 ‘난쟁이’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것, 무엇이든 그 가치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난쟁이의 키가 커진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뒤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풀어 가는 재미있는 단편 소설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다른 작품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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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2-06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한 작품이예요.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읽어보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25-02-06 22:02   좋아요 2 | URL
가난한 사람들, 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저 역시 좋아합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에는 14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데 하나씩 읽어 보는 재미가 있답니다. 330쪽까지 읽었어요. 추천합니다!!!

서니데이 2025-02-06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 유리창을 보니 가을에 찍은 사진이네요. 천장도 일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 보면 밝은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의 문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것 같았는데, 없어진 이전의 것들을 아쉬워한다면 새로 생긴 것들을 좋아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2-07 12:5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지난 가을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언젠가 써먹어야지 했는데 이제 올렸네요. 하나의 문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표현, 참 좋네요.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요. 서니데이 님도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2025-02-07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7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8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9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5-02-07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시절이 길었대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자신이 가난했다고 다 그렇게 쓸 수 있는건 아니죠. 도스토예프스키니까.... ㅎㅎ 마르셀 에메라는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니 또 좋네요. ^^

페크pek0501 2025-02-08 13:08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창비세계문학단편선, 덕택에 새로운 단편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어요. 국가별 시리즈라서 하나씩 읽어 볼 생각입니다. 위의 책은 프랑스편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5-02-12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궁금하네요ㅎ

도스토옙스키는 심리묘사의 천재임이 틀림없습니다ㅎ 최근 톨스토이도 읽고 있는데 역시 심리묘사의 천재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5-02-12 16:11   좋아요 1 | URL
제 고민 중 하나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시리즈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어떤 것을 읽느냐, 예요. 읽을 책이 많아 몇 달째 고민만 합니다.ㅋ^^

고양이라디오 2025-02-13 21:12   좋아요 0 | URL
행복한 고민이네요ㅎ 전 <안나 카레니나> 읽고 있는데 너무 좋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인생책이고요.
 


꼬리 

                       이병률


네발 달린 짐승에게 

꼬리가 있는 이유는


​좋은 풍경 앞에서

다리 네 개를 잠시 접고

꼬리라도 깔고 앉아 풍경이라도 보라는 이유


​네발 있는 동물에게

꼬리가 달린 이유는


다급히 기다리는 것이 있을 때

날개 삼아 꼬리를 펼쳐놓고

기다림을 기다리라는 이유


​양지바른 자리에

천 리를 깔고 앉아

만 리를 기다리는 운명을 명심하라는 이유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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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2-06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서인지, 초록색 잎이 있는 화분과 공간이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사진 잘 봤습니다.^^

페크pek0501 2025-02-07 13:05   좋아요 1 | URL
왠지 모르게 이 사진이 맘에 들었어요. 이 사진도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일 듯해요. 카페의 뒷문일지도 모르겠어요. 항상 폰을 휴대하고 다니니 사진으로 남기기가 간편합니다. 어제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 친정에서 올 때 조심히 왔어요. 눈길에서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났어요.^^
 

노인은 후처의 학대에 못 이겨 그 괴로움을 잊으려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노인은 남의 집에 얹혀사는 아들 포크로프스키를 사랑했다. 아들을 일주일에 두 번씩 꼭꼭 찾아왔으며, 아들의 얘기 외에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포크로프스키는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청년이었다. 책을 좋아했으나 공부를 계속하기에는 몸이 약했다. 결국 그는 숨을 거두고 만다. 


장례식은 안나 표도로브나가 맡아서 치렀다. 몹시 초라하고 값싼 관을 사고, 짐마차도 불러왔다. 장례식 비용에 충당한다며 안나 표도로브나는 그의 책과 물건을 모두 가져갔다. 노인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시끄럽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 책들을 빼앗아 가지고 주머니에 가득 쑤셔넣고 모자 속에까지 넣고는 사흘 동안이나 가지고 다녔다.(81쪽)


아들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므로 이제 유품이 된 그것들은 노인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 되었으리라. 


드디어 관에 뚜껑이 덮이고 못을 꽝꽝 박은 다음 짐마차에 실었다. 마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81쪽)


다음 글을 읽으면 아들의 관을 실은 마차를 쫓아가는 노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노인은 그 뒤를 쫓아가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는 몹시 떨렸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주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머리는 비를 맞아 흠뻑 젖어 있었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살을 에는 듯한 진눈깨비가 사정없이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마차 주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낡아빠진 프록 코트 자락은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주머니에서는 책들이 비죽이 나오고, 손에는 무슨 책인지 커다란 책을 한 권 부둥켜안고 있었다. 길 가는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이 가련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노인의 주머니에서 진흙탕 위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불러 책이 떨어졌다고 가르쳐 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마차 뒤를 쫓아갔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81~82쪽)


「가난한 사람들」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같이 슬픈 광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기억에 남아 옮겨 적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하서 출판사의 책인데 절판된 모양이다. 

오래전에 구매했다.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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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1-20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지금은 없어진 삼중당 문고로 읽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책 중 하나랍니다.
인용해주신 부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머리 속에 그려지네요.

페크pek0501 2025-01-21 10:38   좋아요 0 | URL
아, 나인 님은 읽으셨군요. 저는 오래전에 사 놨는데 앞부분만 밑줄이 처져 있는 걸로 보아 완독을 못한 것 같아요. 책이 두껍지 않아 금방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을 잃은 사람처럼 가엾게 느껴지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어요. 이런 명작을 이제야 읽고 있네요. 좋은하루보내세요.^^

coolcat329 2025-01-21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참 강렬했어요. 뒤에 나오는 단추 에피소드! 아 ㅠㅠ

페크pek0501 2025-01-24 15:21   좋아요 1 | URL
강렬한 소설이지요. 단추 에피소드까지는 제가 읽지 못했나 봅니다. 어제 읽은 부분은 고골의 ‘외투‘를 읽고 나서 그 평을 쓴 마카르의 편지, 인데 슬픈 얘기지만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 외투에 대해 그렇게 엉뚱하게 읽을 수도 있다니 참 재밌는 소설입니다. 저도 외투를 서너 번 읽은 것 같은데 읽을 적마다 해석이 달라져서 참 헷갈리는 소설로 기억합니다. 아, 멋져요!!

coolcat329 2025-01-24 15: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 부분도 진짜 웃겨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5-01-24 15:54   좋아요 1 | URL
고골의 ‘외투‘에 대해 평을 쓴, 마카르의 편지 중에서 일부 소개할게요. 혼자 보기 아까워요. :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일까요? 이것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이걸 읽는 사람 중에서 나 같은 가난뱅이에게 외투를 사 주겠다고 나서는 친구가 생길까요, 장화를 새로 맞추어 주는 친구가 나타날까요? 천만에, 독자는 이것을 다 읽고 나면 다시 그 다음을 요구할 뿐입니다.(중략) 하기는 작자가 끝에 가서는 생각을 달리 먹고 관대하게 취급했더군요.(중략) 훌륭한 시민이었다. 자기 동료들로부터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중략)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좋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바렌카, 나는 이 작품이 매우 못마땅하다는 것을 정식으로 밝혀 두는 바입니다.
- 저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용^^

감은빛 2025-01-23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난한 사람이라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처럼 정말 눈 앞에 그 모습이 그려지는 묘사네요.

자식의 죽음이라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겠지요.
그것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살면서 절대 겪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자식을 먼저 잃는 일이겠지요.

이 글을 읽으면 자꾸 아까운 목숨들을 잃은 대형 참사들이 떠오르네요.
세월호도, 이태원도, 이번 비행기 참사도 너무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요.
가장 안타까운 사고였던 씨랜드 참사도 떠오르구요.
세상에 그 어린 아가들이 불 속에 갇혀서......

에휴, 괜히 기분이 더 쳐지네요.
책 소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1-24 15:16   좋아요 0 | URL
요즘은 물가가 오르고 해서 거의 다 가난한 것 같습니다.
슬픔이 배어 있는 듯한 소설이지요. 쉽게 쓴 듯하지만 묘사가 뛰어납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자식의 죽음일 것 같아요.
대형 참사 소식을 접하면 그 유족이 그 아픔을 어찌 견디고 살지 헤아리게 됩니다.
좋은 소설이 너무 많아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다 읽고 싶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2025-01-25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1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6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6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