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주 음악처럼’(87~88쪽)


시작은 그리 아름다운 얘기가 아니다. 열일곱 살에 덜컥 임신한 여학생 얘기니까. 그렇게 만든 남자는 어딘가로 가고 없다.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자 어머니는 꼴좋다며 딸을 쫓아낸다. 무책임한 아버지는 가출하고 없다. 학생은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혼자 사는 선생님은 자기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에 아름다움이 조금씩 붙기 시작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않다. 노인은 재산을 훔치러 들어왔다며 아이를 구박하고 폭력으로 대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선생님은 시골에 사는 두 노인한테 도움을 청한다. 농사를 짓고 소를 치는 노인 형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순박한 농민을 닮은 그들은 엉겁결에 아이를 받아들인다. 오갈 데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로 학교를 안 다니고 외톨이로 살아서 목장과 농장 일 말고는 아는 게 없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여자와 살아 본 적도 없다. 무슨 얘기든 해서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 아이한테 기껏 한다는 얘기가 곡물과 소에 관한 얘기다. 콩과 소의 가격이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어색한 순간들을 거치면서 그들의 집은 서서히 아이의 집이 되고, 그 아이가 그곳에서 학교를 마저 다니다가 낳은 아이의 집이 된다. 그들은 부모보다 더 부모가 되어 준다. 생물학적 가족이 해체된 자리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들어선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살아온 두 노인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소들을 돌보던 그들이 인간을 돌보면서 평생 자신들에게 붙어 있던 외로움을 떨쳐낸다. 그들에게 타자는 지옥이 아니라 구원이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 『플레인송』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레고리오 성가 같은 무반주 종교음악처럼 소박하고 꾸밈없고(플레인) 순수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인지 모른다.




....................

‘무반주 음악처럼’이라는 글의 전문을 옮겼다. 

저자가 모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이고, 책 <따뜻함을 찾아서>에 실린 글이기도 하다.

일간지에서 처음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것은 ‘글이 참 아름답구나’였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느껴졌고 게다가 읽는 재미도 있었다.

소설을 간단히 요약하여 인용하면서도 아름답게 쓸 수 있다니....

이렇게 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걸까? 

감탄하며 읽고 나서 필사해 두었다.


일간지에 매주 연재되는 왕은철 님의 글들을 보면서 

이 글들이 언젠가는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책이 나와서 반갑게 구매했다.

여러분도 글을 감상해 보시기를.... 















왕은철, <따뜻함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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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19 18: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왕은철 선생이 역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에세이도 쓰셨나 보네요.

쿳시 전문가로만 알고 있네요 저는.

페크pek0501 2023-12-20 13:01   좋아요 1 | URL
번역가로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죠. 에세이도 몇 권 쓰셨어요.
쿳시뿐만 아니라 찰스 디킨스, 호세이니 등 많은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어요.
따뜻한 겨울 보내십시오.^^

모나리자 2023-12-19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땨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군요. 두 노인들과 아이와 어린 엄마가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사람사는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여유있는 시간 보내시겠네요. 눈구경도 따뜻한 방에서 해야 좋더라구요.ㅎ
편안한 날 보내시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12-20 13:05   좋아요 2 | URL
그렇죠? 저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글은 읽고 싶은 책이 생기게 하나 봅니다.
여유가 있어 1월부터 수강할 강좌 하나를 찜해 두었어요.
어제 어머니와 걷기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눈이 오는 바람에 중단했어요. 눈과 비는 실내에서만 환영할 것들이에요. 아, 연말!! 연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잘 지내십시오, 모나리자 님.^^

서곡 2023-12-23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내일이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군요 즐겁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3-12-25 16:58   좋아요 1 | URL
하하~~ 이제야 서곡 님의 댓글을 봤어요.
서곡 님도 즐거운 성탄절과 연말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131~132쪽)




5천 명이 죽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


이런 말을 덧붙이자.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132쪽)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다 :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132쪽)


⇨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 없고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라는’ 글을 난 이렇게 이해했다.  


한 명의 기혼 여성이 죽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녀의 부모를 죽인 것과 같다. 그녀의 배우자를 죽인 것과 같다. 그녀의 자녀를 죽인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들 가족은 모두 그녀가 죽기 전의 인생을 살 수 없을 것이므로. 


게다가 그녀가 알고 지낸 사람들까지 범위를 확대해 보면,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131~132쪽)

이런 말을 덧붙이자.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132쪽)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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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12 1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경우 한사람의 죽음이 주변의 많은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겠지만,

왠지 아닌 사람도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페크pek0501 2023-05-13 12:42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 님, 예리하십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딱 말씀해 주셨네요.
1인가구가 많은 요즘 고독사도 일어나는 만큼 그런 점도 헤아려야겠네요.
새파랑 님의 댓글 한 줄이 제 사고 영역을 넓혀 주었습니다.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0^

stella.K 2023-05-12 1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보다 커피군요.
아무리 책이 좋아도 당 떨어지면 아무 것도 못하죠.ㅋㅋ

페크pek0501 2023-05-13 12:45   좋아요 1 | URL
책과 커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ㅋㅋ 둘 다 너무 좋아해서요.
장소가 벅스였던 것 같은데 네 명이 만났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늘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로 올린 사진입니다. 저만 글과 사진의 조합 의미를 느끼는...ㅋㅋ

yamoo 2023-05-13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의 에세이인가요??
음...신형철의 평론은 정말 읽기 힘들더라구요. 뭐, 신형철만 그럻겠습니까. 평론가들의 책 몇권을 본 이후로는 다시는 안 봅니다. 유일하게 열심히 읽는 평론가는 김현 정도.

<인생의 역사>가 에세이면 한 번 구매해서 봐야 겠으요~~

페크pek0501 2023-05-13 12:47   좋아요 0 | URL
작년 10월에 나온 신간인데 저자한테 이 책처럼 많이 팔리는 책은 처음일 것 같습니다.세일즈 포인트가 어마어마합니다. 팬이 많아진 것으로 추측합니다. 저는 팟캐스트를 통해 팬이 된 경우인데 목소리도 좋지만 저자의 지적 세계의 탁월함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구매했어요.^^

레삭매냐 2023-05-14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잔 라떼에 담긴 하투하투~
멋지네요.

오늘은 급 소나기가 온다는 말
이 있던데, 카페에 가서 실컷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저.

페크pek0501 2023-05-14 16:50   좋아요 1 | URL
커피 속 하트가 예쁘지요. 예뻐서 사진을 찍어 놓고 마셨어요.
오늘 소나기는 오지 않지만 공기는 좋아서 산책하기 알맞은 날 같습니다.
저도 레삭매냐 님과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ㅋㅋ그래서 몇 번이나 책을 들고 카페에 갔었지요. 후훗~~
 


















<슬픈 인간>

일본 작가들의 산문을 실은 책.



마사무네 하쿠초, ‘한 가지 비밀’(98~102쪽)에서



최근 『뒤마 이야기』의 번역본을 읽는데 문득 마음을 자극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은 누구나 과거에 자기가 한 짓을 털어놓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여길 만한 일을 적어도 한 가지는 갖고 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썼다.(98쪽)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웃음거리만 될지도 모르고 마음이 후련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비밀을 누구나 하나둘쯤은 갖고 있고 그걸 품은 채 무덤까지 갈 것도 같다고 나는 공상한다. 

나한테는 그런 비밀 없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되도록 비밀로 해두고 싶은 일이야 몇 가지 있지만, 그걸 고백할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할 정도로, 그런 거창한 비밀은 없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자기 일생을 되돌아봤을 때 과연 그럴까. 나는 그런 비밀다운 비밀, 절대 털어놓고 싶지 않은 비밀을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다. 일본의 근대소설에서는 자연주의 부흥과 함께 사소설이라는 것이 유행하여, 작가 자신의 실제 생활과 실제 심경을 철저하게 표현하고자 한 작가들이 속출했는데, 과연 그 모든 작가가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을 만큼의 비밀을 작품 속에 낱낱이 털어놨을까.(99~100쪽)



이 특별한 비밀. (중략) 가족과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평화가 유지된다. 수십 년씩 친하게 지낸 친구도 나의 진상을 모른다는 걸 체험하고 있다. 우리는 지인에게 오해 받고 있다고 탄식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오히려 오해 받고 있기에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며 진실을 안다면 서로 서먹해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고독하다고 할 수 있겠다.(101쪽)   


   


최근 『뒤마 이야기』의 번역본을 읽는데 문득 마음을 자극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은 누구나 과거에 자기가 한 짓을 털어놓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여길 만한 일을 적어도 한 가지는 갖고 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썼다."(98쪽)

이 특별한 비밀. (중략) 가족과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평화가 유지된다. 수십 년씩 친하게 지낸 친구도 나의 진상을 모른다는 걸 체험하고 있다. 우리는 지인에게 오해 받고 있다고 탄식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오히려 오해 받고 있기에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며 진실을 안다면 서로 서먹해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고독하다고 할 수 있겠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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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27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소설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소설, 메타픽션, 자전소설 기타등등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ㅎ
이젠 사소설의 위상도 높아진 것 같아요. 에니 아르노 땜에.

페크pek0501 2023-04-27 23:23   좋아요 2 | URL
사소설은 그 나름대로 견인력이 있지 않나요. 쓸 수만 있다면 괜찮죠.
김영하 팟캐스트에서 사소설을 쓰는 일본 작가를 소개한 적 있는 것 같아요.
자전소설은 체험을 소재로 쓰되 허구적 상상력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사소설과 다르겠지요.
메타픽션은 잘 모르겠네요. 허구보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온다고 말한 작가가 있긴 해요. 영화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면 더 관심이 가긴 하더라고요^^

젤소민아 2023-04-27 23:39   좋아요 2 | URL
ㄴㄴ 사소설은 미야모토 테루가 참 좋은 것 같아요~
다사이 오자무의 딸 쓰시마 유코도 좋고요.

저도 ‘사소설‘의 경계가 좀 헛갈려요.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은 딱 사소설 같던데 아니라고 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 체험만 단순하게 서술한 ‘사소설‘은 아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이의 죽음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책임감에 시달리는 청년의 모습을 통해 출구 없는 현실에 놓인 현대인에게 재생의 희망이 있는지 물음을 던진다.]https://www.mk.co.kr/news/culture/4617223

그리고 ‘메타픽션‘은 소설속에서 소설을 어떤식으로든 언급하는 걸 말한답니다~.

단순히 인물이 소설책을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메타성이 얕겠지만
소설 속에서 ‘소설‘이란 세게와 차원을 인정하고 그걸 다루고 있다면 메타소설이 된다고요.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같은 소설이 농도짙은 메타픽션이고요~

페크님, 제 리뷰에 ‘공감‘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톡톡 칼럼‘ 사러 총총히~~ㅎㅎ

페크pek0501 2023-04-27 23:45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 님, 전문가 같으십니다.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메타픽션에 대해 배웠네요. 저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보다 작가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에 더 맘이 끌리더라고요. 만약 전쟁 소설이라면 취재해서 쓴 것보다 전쟁터에서 실제 경험한 것을 쓴 것이 관심이 더 가죠.
앞으로도 고급 정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stella.K 2023-04-28 15:21   좋아요 1 | URL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메타픽션이 아니라
오토픽션이었어요. 어뜨케...엉엉~

페크pek0501 2023-04-30 09:46   좋아요 1 | URL
괜찮아염. 그럴 수도 있지요. 덕분에 제가 배운 게 있잖아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yamoo 2023-04-28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소설이 뭔지 궁금했는데.....덧글 읽으면서 사소설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되었네요..ㅎㅎ

저는 근데 일본 소설들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해요. 오쿠다 히데오를 끝으로 졸업했는데...

나쓰메 쏘세키는 읽어볼 예정입니다~~

페크pek0501 2023-04-30 09:56   좋아요 1 | URL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좋아합니다.
이 산문집은 영미권 산문집을 읽고 나서 좋은 것 같아 일본 산문집으로 사 봤어요. 같은출판사에서 나옵니다.
프랑스 산문집도 갖고 있어요. 산문을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읽고 있어요.^^

레삭매냐 2023-04-29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밀이란 정말,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비밀이지 싶습니다.

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비밀의 마력은 깨지니깐요.

페크pek0501 2023-04-30 09:5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을 것 같아요. 없었으면 하는 일, 후회되는 일 등
그러나 비밀이 없는 삶은 좀 싱거운 것같이 느껴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이명원,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자기 언어’를 가지면 ‘자기 세계’를 갖는다(60~61쪽)에서



정작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실패한 아기일지라도, ‘말(언어)’을 배움으로써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못 놀라운 통찰이었다. 저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면세계에 애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을 통해 그 흔적을 극복할 가능성도 언제나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말은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가공해내기도 하고, 지나온 삶의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결정론적인 저자의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은 꿈꾼 만큼만 살 수 있다. 내가 말을 배움으로써 어둡고 고통스러운 자기모멸의 터널을 벗어난 것처럼, 상처로 충만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멋진 어른이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육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상처에 대한 사회문화적 보상 체계다. 그러니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말과 같다는 진술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61쪽)


⇨ 이 글에서 책은 보리스 시륄니크의 『관계』라는 책을 말한다. 



정작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실패한 아기일지라도, ‘말(언어)’을 배움으로써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못 놀라운 통찰이었다. 저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면세계에 애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을 통해 그 흔적을 극복할 가능성도 언제나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말은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가공해내기도 하고, 지나온 삶의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결정론적인 저자의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은 꿈꾼 만큼만 살 수 있다. 내가 말을 배움으로써 어둡고 고통스러운 자기모멸의 터널을 벗어난 것처럼, 상처로 충만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멋진 어른이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육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상처에 대한 사회문화적 보상 체계다. 그러니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말과 같다는 진술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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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27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도 읽어봐야 하는데…ㅠ

페크pek0501 2023-04-27 23:24   좋아요 1 | URL
이 책을 들춰 봤더니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필사하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올려봤어요.
시류를 타지 않는 글이 많아 좋더라고요.
 

















나희덕,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124~128쪽)에서 발췌



멕시코시티의 시장 구석에 나이든 인디언이 양파 스무 줄을 매달아놓고 앉아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이 그에게 양파 한 줄에 얼마냐고 묻자, 그는 십 센트라고 대답했다. 그럼 양파 스물 줄을 전부 사면 얼마나 싸게 줄 수 있느냐고 흥정을 붙였다. 하지만 인디언 노인은 그에게 스무 줄 전부를 팔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인이 물건을 손쉽게 팔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마다하는 이유를 묻자, 인디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붉은 서라피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하며 함께 담배를 태우고, 아이들과 곡물에 관해 얘기 나누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종일 여기 앉아서 스무 줄의 양파를 팝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모든 양파를 한 손님에게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는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124~125쪽)



시튼이 편집한 《인디언의 복음》에서 읽은 양파장수 이야기다. 만일 요즘 이렇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아마 굶어 죽기 십상일 것이다. 시간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오늘의 시장 원리에 비추어보면 단번에 떨이할 기회를 놓친 인디언 노인은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노인에게 양파를 파는 일이란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장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매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나누는 인간적 교감이야말로 그가 종일 시장에 앉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윤이다.(125~126쪽)


⇨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야기다. 인디언 노인이 삶을 향유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작고 소박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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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7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저 첫 문단의 이야기 전에 한 번 들어 본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람은 지금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봄은 지금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계절이죠.
새로 피어나는 꽃이나 나무의 잎사귀를 보면 얼마나 반갑던지.
영낙없는 양파장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런데 저 사진 왼쪽이 언닌가요? ㅎ

페크pek0501 2023-04-07 11:32   좋아요 3 | URL
와우!!! 우리가 텔레파시...
저도 지금 님의 서재에 댓글 달고 왔는데...ㅋㅋ

서니데이 2023-04-07 2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마음도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긴 한데.
수작업으로 만드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는 그런 마음이 조금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많이 판매되는 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건 또 다른 어려움이거든요.^^;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4-10 16:20   좋아요 1 | URL
댓글을 이제야 씁니다. 잘 지내시죠?
삶의 여유는 필요한 것 같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어 산책하기 좋은 날이에요. 저는 어제 그제 밖에 나갔으므로
오늘은 쉬려 합니다. 좋은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3-04-08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사람한테 다 팔면 거기에 있기 어렵겠습니다 양파 파는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좋아하는군요 그렇게 사는 것도 즐겁겠습니다 페크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4-10 16:22   좋아요 0 | URL
시장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물건을 많이 파는 것도 좋지만 손님과 나누는
이야기로 즐거울 수도 있을 듯싶어요.
하루하루가 편안하다면 행복한 거겠지요? 좋은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