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침이 4에서 5사이를 가리키면 신호가 온다.


2. "너 왜 이렇게 사람 말하는데 몸을 뒤척이니?"라는 옛 친구의 말이 떠오르면서 다시 컴퓨터를 열심히 쳐다보는 척만 한다.


3. 커피를 방금 마셨는데, 포트를 다시 'ON' 상태로. 이미 그날의 에너지는 그날을 위해 다 썼다는 반응이다.


4. 야근 할 겁니까라는 비의지적,무의지적 질문이 사무실을 떠돌아다닌다.


5. 어이 해야죠. (하지만 '먹튀' 생각 가득)


6. 갑자기 내 책상 옆 책꽂이에 책들이 다 잘 있는지 쓰다듬는 눈빛으로 챙겨본다. 


7. 그리고 조금 더 원고를 본다. (이미 마음은 집에)


8.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저녁은 뭐 먹지 하는 기분으로 내일 가방을 쌀 때도 있다.


9. 내일 가방이란, 결국 손과 어깨에 아무 부담도 주지 않은 채 워킹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의 여부.


10. 바람이 차네? 파주 날씨를 한번 욕해준다.


11. 컴퓨터를 끈다.


12. 퇴근 카드를 찍는다.


13. 고개를 숙인다. 


14. 다른 건물을 쳐다본다.


15. 버스가 방금 지나갔다.


16. 어색한 사람들과 어색한 눈빛을 교환한다.


17. 질주하는 버스를 잡기 위해 손으로 미리 여러 번 흔들흔들 신호를 보낸다.


18. 탄다.


19. 손에 무엇을 쥔 아가처럼 교통카트가 든 지갑을 꼭 쥔다.


20. 연습할 오늘의 랩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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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점 


                                            김신식


청각 손상의 위험이 있으니 너무 높은 

소리로 듣지 마세요란 말을 무시한 채

그 빠른 랩 가사를 꼭꼭 씹어먹는다


듣고만 있으면 돋아날 줄 알았던 살점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오징어 눈알이

되어버렸다


끄덕일 줄만 알면 맨드리 있게 짜일 줄

알았던 쥐난 발가락은 발악 끝에

차라리 겨울잠을 자자며 스스로를

포기한다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라고 묻기가

무섭게 눈꺼풀이 무겁다

오늘도 불면이다

살점이 떠나 방황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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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 2013-05-11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식 시의 독자임요!!
 

마음이 맵다 


                    김신식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기사의 선의가 

나의 괜한 심술을 찌푸린다

그런 거 있잖나 술에 취해 졸다가

다시 깨어나보니 모두 망가져버린

그래서 이런 선의가 가시는 정작 아닌데

객쩍은 방어의 주문


눈이 감기고 졸리는 시간 기사는 날 위해

볼륨을 줄여주고 난 거기에 맞춰

이어폰을 낀 채 심술을 또 부리고


아무 이유 없는데 엄마에게 왜 이리

맛없냐며 찬거리까지 따지던 심술은

주머니 속은 돈을 가득 구기고 구겨

기사 당신이 또 선의를 베풀면 이 돈을 더 구기겠다고


눈을 떠보니 세상은 그대로

어디서도 연탄 기운은 남아 있질 않아 그치만 매워

어디서부터 언제 어떻게 그런 거 다 망가뜨린

연탄 기운은 어디에 어디에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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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레비'를 틀어놓고 자면 나름 알람 효과가 있다. 꼭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있는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고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린다. 사실 새벽기도 주기라는 것이 몸에 스며들어 있어서 04:30분 가까이에 몸에 반응이 오지만. (그렇다고 드림 워커니 뭐니 하는 신조에 휩쓸린 시간 지키기엔 동참하고 싶지 않다) 


2. 칫솔을 찾는다. 아니, 그 전에 몸을 한 번 긁는다. 너무 '드라마스러운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 '미디어화'된 인간 아니던가. 여기에 큰일까지 보면 더 드라마스럽겠지만, 내 뱃속이 차마 그것까진..


3. 클래식을 틀어놓는다. 요즘은 쥴리아 피셔의 연주를 듣는다.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란 바흐의 음악에 조금 몸을 느끼하게 만들어놓는다. 그래야 회사에 가서 온갖 들이대는 자극에 맞설 수 있다.


4. 세수를 한다. 클렌징폼이 다 떨어져간다. 그래서 통을 거꾸로 세워놓았다. 기분탓일 텐데 거품이 제법 많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부쩍 늘었다. 거품을 '강박적'으로 낸다. 면도를 자주 했더니 턱 주위가 거칠다. 이제 나도 아빠의 턱을 갖게 되었다. 


5. 향기가 너무 세지 않은 바디로션을 찾는다. 몸 구석구석을 만져준다. 


6. 팬티를 찾는다. CK에서 이젠 리바이스 드로즈가 좋다. 


7. 옷을 뒤적거린다. 대학교 4학년 때 산 옷들을 아직도 입는다. 

오래되어 '비냄새'가 나는 옷들은 신호가 온 건데,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집에서라도 입자고 혼잣말을 건넨다.


8. 밤에 켜두었던 컴퓨터 본체를 만져본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랑 함께 살 때 집에 불이 날까 걱정되어 구식 테레비의 뒤를

손으로 만져보던 버릇이 이렇게 넘어왔다. 시스템이 뭔가 이상한지 윈도우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 되어 늘 짜증난다. 아침

짜증지수 조금 올라간다. 잘 하지도 않으면서.


9. 마을버스에 가득찰 사람들 모습에 인상을 미리 찌푸려본다. (어차피 앉아갈 거면서)


10. 신호등 안 지킬 저 무시무시한 차들을 미리 째려본다. (나도 안 지킬 거면서)


11. 탄다. 


12. 내린다.


13. 들어간다.


14.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힐링해드린다. (아 진짜 왜 이리 쓰레기가 많아!)


15. 컵 씻는다. 


16. 포트에 물 담는다.


17. 앉아서 회사 메신저를 켜둔다.


18. 오늘의 한마디를 바꾼다.


19. 달력을 본다. 


20. 조금 눈을 붙인다 


+ 9시다. 오늘도 지옥이거나 혹은 좀 더 괜찮은 지옥이거나.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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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


                              김신식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먹다가

뜬금없이 브래지어를 검색해봤다


이 고기만큼 입에 달라붙는 건

뭘까

부라자 브라자 부래지어

다시 뜬금없이 우리 할매 브라자


열무국수로 입을 헹구다가

아바바바버버브처럼

부라자 브라자 부래지어

이번엔 (조금) 의도하고

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


고기는 생각보다 많이 탔고

소주병은 처량하게 나를 보고

오늘은 그렇게

당신들과의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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