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하순 <빨간모자 울음을 터뜨리다>출력물을 받고 단숨에 읽고 한 줄 평을 썼는데, 드디어 책이 나왔다. 

  

뒤표지에는 독자들의 한 줄 평이 실려 있다. 이름을 보면 알만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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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중 3 막내가 1시간만에 후딱 읽고 눈물을 훔치며 쓴 짧은 서평도 실려 책을 두 권이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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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족의 성폭력을 소재로 했대서 아이에게 읽히기 꺼렸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꼭 읽혀야 될 책이라 생각돼서 추천했다. 청소년들도 이젠 온실 속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성폭력의 안전지대는 없다. 이 책을 읽고 성폭력 예방과,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지혜로운 해결법을 얻을 수 있기 바라며, 대박을 기원한다.


"가슴이 먹먹했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으나 실제로도 있는 일들이었다. 제발 참지도 말고, 방관하며 모른 척 덮어두지도 말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용기를 내야 한다. 바구니를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가던 빨간모자가 마침내 용기를 내고 진실을 밝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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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1-0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줄 평으로도 먹먹해져요. 의미있는 책에 반가운 이름들이 가득해요.^^

순오기 2010-11-04 09:39   좋아요 0 | URL
한 줄 평이 책 내용을 모두 말하고 있지요.
모두 알만한 이름이지요.^^

프레이야 2010-11-0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경인줄 알았지요.^^
15자로 하라기에 전 어찌나 축약했던지요.ㅎㅎ

순오기 2010-11-04 09:41   좋아요 0 | URL
자기 이름 나온 건 괜찮은데 학교 이름이 나와서 '쪽' 팔린대요.ㅋㅋ
민경이는 출력물에 적어 놓은 감상을 그대로 알려줬고,
나는 한 줄 평을 여러개 적어 보냈는데, 그중에서 편집자가 선택했어요.
우린 말이 많아서 짧게 요약하는 게 어려워요.ㅠㅠ

희망찬샘 2010-11-05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표지에 저도 아는 분이 여러분 계시는군요. 한 발만 앞섰어도 서평 기회가 닿았을 책인데... 이렇게 만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마음에 담아 두어야겠습니다.

순오기 2010-11-05 20:54   좋아요 0 | URL
한줄 서평 쓴 분들, 다 알만한 분이죠.^^
희망찬샘은 바쁘셔서 그랬을까요~~~~
 

슈퍼스타 K 2, 우리 아이들 덕분에 금욜 밤 빠져들게 된 프로그램이다.
지난 주, 장재인의 아버지와 잘 아는 고등 독서회원이 문자 응원을 부탁해도 참여하지 않았는데  
22일 밤, 허각을 응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결과는  
야호~ 허각이 됐다.  

많은 이들이  존 박이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대반전~ 꿈은 이루어진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사회에서 
외모가 안 따라 줘도, 
학벌이 좀 딸려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게 하는 건 
많은 사람들의 바른 생각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랑스러운 밤이었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추가해요.^^  

케이블채널 Mnet '슈퍼스타K'의 콘셉트는 무한 경쟁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신청을 할 수 있고 이 가운데 실력과 인기도에 따라 주인공을 선발한다.
이런 기준이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공정사회'와 일맥상통하며 '슈퍼스타K'는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우승은 실력과 선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선택은 인터넷 투표 10%, 문자 투표 60%, 심사위원 점수 30%로 이뤄진다.
70%가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투표로 이뤄진다는 의미다.
심사위원들은 시청자들에게 음악적 의견을 제시할 뿐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22일 2억원 상금의 최종 우승자로 '허각'이 결정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101508580962577 

'슈퍼스타K'가 '공정사회' 외치는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친서민', '자율과 책임', '상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원하지만 현실은 '공정사회'와 거리가 있다. 서울대 입학생은 10명 중 3명은 강남이나 특목고 출신이고 서민들이 이 험난한 경쟁을 뚫고 좋은 직장을 얻더라도 이른바 '똥돼지', 특혜로 입사한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들이 버티고 있어 허탈감을 준다. 전 외교부 장관은 딸을 특채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사임해 국정감사에도 불참하고 해외로 나갔다. 이는 '개그콘서트'에서도 조롱거리가 됐을 정도다.

일자리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만들어내고 있고 주식부자의 80%는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됐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부의 세습과 함께 헤게모니의 세습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재미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보이는 책이 대형서점에서 11주 연속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슈퍼스타K'는 지난 방송에서 이례적으로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단 두 번의 생방송만을 남겨두고 있다. '공정사회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슈퍼스타K'를 통해 퍼지고 있지만 윗분들의 생각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저 TV에서 '슈퍼스타K'를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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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0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10-24 01: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젠 무슨 재미로 살까요?ㅋㅋ
아류 프로그램이 나오겠지만 슈스K를 따를까...^^

양철나무꾼 2010-10-23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슈스케2 보느라고 잠잘 타이밍을 놓쳤어요~ㅠ.ㅠ

순오기 2010-10-23 10:12   좋아요 0 | URL
어제는 잠잘 타이밍을 놓쳐도 만족스러웠지요.^^

hnine 2010-10-23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인지 못알아듣는 아줌마 여기 있어요 ㅠㅠ

순오기 2010-10-23 10:12   좋아요 0 | URL
나인님을 위해 사진과 기사 추가했어요.^^

hnine 2010-10-23 20:08   좋아요 0 | URL
친절한 순오기님,
진도 못따라가는 학생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이 프로의 인기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크군요.

행복희망꿈 2010-10-2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문으로만 듣던 슈퍼스타K를 몇주전부터 생방송으로 봤어요.
확실히 노래는 허각이 잘 하더라구요.
존박이 지금까지 인기가 높았던건 아무래도 외모덕을 많이 본것 같아요.^^
저도 어제 결과를 보고는 그래도 역시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좋은 결과가 있어서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되네요.^^
어제 부른 언제나~ 노래 좋더라구요.ㅎㅎ

순오기 2010-10-23 10:14   좋아요 0 | URL
존박의 외모가 따라 준다 해도, 노래 실력은 역시 허각이지요~
어제 그 노래는 허각을 위한 노래 같았어요.^^

마노아 2010-10-2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우리집도 허각을 위해 기꺼이 문자 투표에 참여했어요. 이번 시즌 처음이었네요. 어찌나 기쁘던지요.^^

순오기 2010-10-23 11:49   좋아요 0 | URL
우리도 쇼스케 봐도 문자 참여는 어제 처음이었어요.
허각이 돼서 기쁘지요~~~ ^^

stella.K 2010-10-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프로그램도 있었군요.
잠을 설치게 할만큼 좋은 프로인가 봅니다.
저는케이블 tv가 없어서리...ㅜ
요즘 드는 생각은 정말 뭐 라나라도 잘해야겠다 싶어요.
얼마나 좋을까요? 부러라~

순오기 2010-10-23 11:51   좋아요 0 | URL
우리도 케이블 아닌데 유선에서 해주니까 볼 수 있어요.
어제는 엄청난 사람들이 문자 투표에 참여했어요.
허각을 응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 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올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겠죠.

세실 2010-10-2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치듯 지나간 방송이네요.
허각도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화이팅입니다.

순오기 2010-10-24 01:18   좋아요 0 | URL
허각은 앞으로 죽죽 뻗어 나가기를...^^

프레이야 2010-10-2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이 보길래 저도 가끔 건너서 봤어요.
참 잘 부르더군요. 슈스케2가 그거였어요? 아이고 어찌나 약자를 많이 쓰는지 요즘.ㅎㅎ
공정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 이룰 수 있겠지요.
우리딸도 허각이 노래는 잘 부른다고 인정하네요.ㅎㅎ 사랑비.

순오기 2010-10-24 01:19   좋아요 0 | URL
애들이 엄청 좋아하죠~ 나도 그래서 보게 됐어요.^^
허각이 노래도 잘하고 고생해봐서 그런지 인간성도 괜찮은 듯...

실비 2010-10-2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보긴했는데.. 허각이 됐군요
나중에 재방송할때 처음부터 봐야할듯 +_+

순오기 2010-10-24 01:19   좋아요 0 | URL
우리 본방 보고 재방도 또 봅니다.^^

같은하늘 2010-11-0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실제 방송은 못보고 가끔 소식은 들었는데...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되요.^^
친정에 갔다가 새벽에 하는 재방을 보는데, 깜박 잠들어 노래는 못 듣고 얘기하는 부분만 본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요.ㅎㅎㅎ
 
중3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8월 기록

드디어 오늘 10월 17일, 6개월의 빛고을독서마라톤이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중3 막내의 9월 독서기록을 옮겨온다.  

70. 8월 31일~9월 1일, 합★체

최규석이 표지를 그렸다고 해서 알게 된 책이다. '난쏘공 쌍둥이 형제의 코믹무협 열혈성장분투기'라는, 대체 책의 내용이 뭔지 짐작도 못하게 만드는 띠지가 참.. 인상깊었다. 키가 작은 오합, 오체 형제. 합쳐서 합체. 학생인 나로서는 합과 체가 학교에서 겪을 반응들이 예상이 되었다. 왜 하필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는지.. 게다가 쌍둥이인지라 그들의 별명은 자연스럽게 '합체'가 되었다. 키가 작은 오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두근거려 하는 모습, 약수터에 있는 자칭 약수도사 계도사, 국어선생님이 읽게 시킨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읽으면서 난쟁이인 아버지를 떠올리며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는 모습들이 나오면서 개그와 현실의 씁쓸함이 잘 어우러졌다. 계도사가 알려준 비법대로 합과 체는 방학을 맞아 33일간 계룡산 '형제동굴'에 키를 키우는 수련을 하러 간다. 신비스러운 동굴의 분위기에 정말 무슨 일이 벌어날지, 기대가 됐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하루가 끝날 때까지 총 4번을 하는 수련에 점점 익숙해지는 합체. 형제동굴에 울려퍼지는 '합,체' 소리가 정말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반전을 때리다니... 짐작하지 못 한 내가 바보인건가. 들고 온 라디오에서 계도사 할아버지가 치매걸린 노인에다가 성추행으로 집에 돌아갔다는 경찰의 사연이 방송되면서, 수련을 진심으로 믿었던 체는 절망과 배신감에 빠지고 만다. 오히려 조금 덜 믿었던 합은 그나마 나았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통 뒤에는 다시 행복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계도사가 진짜 도사든, 도사가 아니든. 수련이 진짜든, 진짜가 아니라 마음의 힘이든 효과를 본 이는 있었고 합체 쌍둥이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비록 키가 한 순간에 쑥 자라는 게 아니라, 둘의 마음이 쑥 자란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바지 길이를 왜 이렇게 줄였냐,며 소리치는 학주를 피해 씩 웃는 둘의 미소가 보기 좋았다. 

 

71. 9월 2~4일, 100인의 책마을 

'읽을만한 책들을 추천하고 알려주는 서평집이면서도, 누구나 책에 관한 경험과 자신의 삶에 침투한 독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책'이 바로 100인의 책마을이다. 엄마가 인터넷 서점에서 서평가와 인터넷 서재를 운영하고 계셔서 엄마가 아는 분들도 몇 분 계셨다. 김보일씨는 자신이 고통스러운 달리기를 하면서 겪었던 생각들, 경험과 연관된 책들을 추천해준다. 이분 뿐만이 아니라 다들 어찌나 글을 잘 쓰는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책으로 연관시키는 글솜씨들이 감탄스러웠다. 인간이 외면하고 뛰어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생의 시간. 특히 '월든'에서 인용된 문장은 감동스러웠다. 비단 이 주제뿐에서가 아니라 책마을에서 굉장히 많이 월든이 나와서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나 주변사람들이 소곤소곤 거리면서 책을 추천해주는 듯한 글도 있었다. 과연 제목처럼 100인의 '책마을'스러운 느낌이었다. 글쓰기에 대해, 그리고 읽어볼만한 책들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인생과 관련된 책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책은 힘들고 지칠때 만나는 좋은충고, 인생의 길잡이,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도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책들에 대해 서술하는 걸 보면서 나도 내 인생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책을 만나고 싶었다. 여기서 본 '책 파도타기'는 책에서 언급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건데, 마치 웹 서핑을 하듯이 책들을 파도 타며 읽을 수 있었다.  김수정씨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다가 주인공에게 빠져 그녀의 책을 죄다 찾아 읽어봤다고 한다. 내게 그런 작가는 아직 없지만, 그래도 좋은 작가들은 많이 만난 것 같아 다행이다. 환경 활동가의 시점, 마라토너의 시점, 기독교인의 시점 등등. 개인의 관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추천하는 책과 그에 대한 이야기도 다 달라서 좋았다. 정말 독서가들의 마을이 있어서 옆집, 이웃집 사람들에게 책에 대한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간 콰지모도와 에스페랄다의 사랑 얘기로만 알고 있었던 노트르담 드 파리의 실제 주인공이 사실은 그 시대의 파리라는 것을 '껌정드레스'의 글로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책들을 증거로 들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걸 보면 '아,그래서 그렇구나'하고 납득이 갔다. 이래서 사람들이 책을 찾나보다. 고전 영화의 배경을 이해시켜주는 책들도 한 번 쭉 보고 싶었다. 책과 함께하는 여행, 책에서 찾는 음악. 다양한 분야와 책의 연관이었다. 책을 통해 패스트푸드의 위험성과 환경파괴를 알게 되어 절제하고, 환경오염과 대체에너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앞으로 책을 찾을 일이 생기면 이 책에서 찾게 될 것 같다. 

 

72. 9월 5일, 마더구스 

마더구스는 전부터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외국 책이나 TV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인용되어 나오고, 여러모로 영미권 사람들의 문화에 많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도 뭔가 매력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록으로 노래 CD가 있어서 함께 들으면서 읽었다. 마더구스 이야기는 운율이나 리듬이 매력이다. 맨 처음에 나온 동요인 'Ring a ring O'Roses'가 옛날에 읽은 책에서 나온 놀이에 사용되는 노래라는 걸 알고 반가웠다. 이것도 마더구스 이야기 중 하나였구나, 하는데 진짜 생각보다 엄청 보편화된 노래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식으로 하면 강강수월래쯤 되려나? Jack be Nimble 같이 짧으면서도 놀이와 같이 할 수 있는 동요들이 아이에게는 참 좋을 것 같다. 디들, 피들, 히코리, 히키티 등등 재미있는 발음의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고, 내가 마더구스에 관심 가지게 된 이야기이도 한 구두 속에 사는 할머니와 험프티 덤프티 이야기도 있었다. 마더구스는 마치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들려준 전래 동화, 동요처럼 느껴졌다. 

 

73. 9월 6~7일,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피터래빗으로 유명한 베아트릭스 포터의 시골집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집이다. 집이 주라고는 해도, 베아트릭스 포터의 일생과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소개해 놨기 때문에 동화처럼 아름다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했던 캠필드 플레이스의 다정한 복도, 계단 난간의 조각장식, 잔잔한 빛고 냄새, 가장 사랑했던 아래층등을 애정 있게 서술해 놔서 집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우리집을 이 정도로 사랑할 수 있을까? 미래에 내가 살 집이 어디든, 이만큼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 시골집의 드넓은 자연풍경들, 피터래빗이나 자연 풍경 등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 따뜻하고 멋있었다. 베아트릭스와 윌리엄이 신혼집을 차린 캐슬 코티지는 신록이 생생한 풍경 속에 하얗고 빨간 집이 어찌나 멋있던지 정말 그림 같았다. 저런 집에 산다면 저절로 즐거운 마음이 들 것 같았다. 그만큼 멋있는 집이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성지나 다름없다는 힐 탑. 그녀가 아끼고 사랑했던 만큼 그녀의 작품 속에서 힐 탑의 모습이 곳곳이 드러나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집에도 감정이 있다면, 그녀가 살았던 집들은 참 행복할 거다. 주인이 죽어도 자신을 찾아오고, 애정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림책 속에서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집에 대한 흔적을 남긴 그녀가 부러웠다. 나무로 만들어 건강한 갈색이 드러난 침대에 퀼트 이불이 덮인 침실 사진은 정말 멋있었다. 비단 이 사진뿐만 아니라 사진에 찍힌 모든 집안들이 다 멋있어서 사진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목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이지만, 실상은 그녀의 일생에 대해 쓴 책이었다. 그녀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언젠가 그녀가 쓴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74. 9월 8~9일, 아이의 뇌에 잠자는 자기주도학습 유전자를 깨워라 

자기주도학습, 참 좋은 말이다. 학원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스스로 공부 하는 것. 학원비도 줄이고 입시에도 도움 되고 끈기와 결단력도 기르고. 일석삼조다. 학원을 안 다니는 나로서는 책 제목대로만 되면 참 좋겠다. 책을 보면 엄마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계획을 짜 뺑뺑이를 돌리고 아이는 시키는대로만 하는데, 난 그렇게 안 자라서 참 다행이다. 대부분 공감이 갔지만 보면서 고개가 갸웃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물 마시는 거 하나까지도 상관이 있나? 육각수가 어떻네, 실온의 생수가 가장 좋네 하는 부분들은 좀 너무 세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런 종류의 '이대로만 하면 전교1등이! 우와!' 하는 책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론적인 부분이야 남들 다 아는 얘기다. 다만 실천이 문제지. 그렇게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입 아프게 떠드는 건 아닌가 싶어 좀 책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진다.

처음 정리 할 때 좀 까칠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개념노트 정리 같은 것들은 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아이의 문제집을 줄여라'라는 부분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시험때가 되면 문제집을 폭풍같이 사대는 아이들이 이해 안 간다. 몇 번째 개선이니 어쩌니 해도, 내용의 엄청난 변화는 없는 것이 틀림없는데 말이다. 난 문제집 한 권을 다 풀면 답을 다 가리고 한 번 더 풀거나, 없는 문제집은 오빠가 썼던 걸로 풀고 있다. 그래도 시험 전날이나 시험 당일 뭐 긴장을 풀거나, 시험지를 한 번 훑어본다거나 하는 것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라 그냥 가볍게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정말 자기주도학습을 하려면 나에게 맞는 공부계획을 잡고 마음 독하게 먹고 해야 할 것 같다. 곧 시험이고, 고등학교 입학이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는 생각 하고 있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열심히 해야지! 

 

75. 9월 10~12일,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2 

예당아트에서 방영되었던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 책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클래식이라길래 막연히 '재미없는 이미지'라 엄마가 채널을 멈출 때마다 돌리라고 성화였고, 언니마저 빠져들자 TV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음악과 설명이 들리는 것 까진 어쩔수없는지라 그냥 들었더니 이게 또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이게 무슨 곡이고, 작곡가가 누구고, 이 사람이 왜 이걸 작곡했고 하는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노래를 들으면 별 감흥이 안 살지만, 조윤범이 그걸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들려주니까 아~ 그렇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권도 괜찮게 읽었는데 2권이 도서실에 있는걸 보고 바로 빌려왔다. 비발디의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클래식계의 신정환'이라고 소개해주는 걸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도 나왔을 거다. 헨델이나 파가니니 같은 작곡가들의 삶과 일화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여기 나온 클래식들을 차근차근 들어봐야겠다.  

그동안 쇼팽, 쇼팽 하고 불러왔는데 원래 이름이 '호핀'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랬다. 이젠 이름도 함부로 못 부르겠다. 심지어 쇼팽을 주인공으로 한 X-BOX게임도 있다는 사실에 깜짝. 대체 무슨 내용일까?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의 제자였고, '소나티네'를 작곡한 무치오 클레멘티의 제자였던 사람이 바로 리스트다. 역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생각났다. 피아노는 잘 모르지만, 리스트의 곡은 어려운 곡이 많다고 어디서 들었다. 비록 연애는 바람둥이에 불륜남이었지만 유명한 곡이 많아 벅스 바니에서 헝가리 랩소디 2번을 연주하는 것도 봤다. 그리고 노다메 칸타빌레!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한 번, 작년에 음악선생님이 한 번 보여주신 노다메 칸타빌레는 둘 다 드라마 버전이었는데, 애니버전에서 엘가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단다. 생각해보니 노다메에도 여기 나온 곡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파워클래식에는 거의가 유명하거나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이라 더 읽기 쉬운 것 같다. 

'나비부인'의 작곡가 푸치니는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었다. 뭐, 안 그런 사람이 있겠냐많은. 하긴 그에 비하면 푸치니의 인생곡절은 평탄한 축에 끼일 수도 있을것이다ㅎㅎ. 돈이 없어 음악원에 입학하고도 초라하게 살았던 푸치니, 스승이 대본을 구해다 주어도 몇 번을 말아먹기 일쑤로, 한 번만 더 실패하면 잘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놓고도 유부녀와 사랑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정말 사랑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나보다. '마농 레스코'가 첫 성공을 거두었지만 공연은 적자였고, 나중에야 돈을 벌게 되었다. 푸치니는 상당히 동양에 관심을 많이 가진 작곡가였다. 나비부인의 배경도 일본이고, 투란도트도 중국이 배경이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동양이긴 하지만, 노래들은 정말로 아름답다. '잔니스키키'에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음악 수행평가로 들었던 곡이기 때문에 잠시 반가움을 느꼈다. 폴 포츠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스타가 된 걸 보면, 시대를 뛰어 넘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라흐마니노프와 슈트라우스 등의 고전 작곡가와,코틀랜드, 존 윌리엄스 등 현대 자곡가들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76. 9월 13~14일, 지식e5  

사람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 수많은 위험을 무릎쓰는 것일까? 에베레스트 등복을 맨 처음 시도한 사람은 영국인들이었다. 그러나 맨 처음 정상에 오른 사람은 영국인도, 이방인 등산가도 아닌 셰르파 텐징이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신의 땅이라 하여 오르지 않던 셰르파들을 영국인들은 비웃었지만, 에베레스트 첫 정복자로 역사에 남은 사람은 결국 그 셰르파였다. 그 사실이 좀 아이러니했다. 등산은 무식한 짓이 아니라, 오르면서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을 찾는 일인 것 같다. 공 하나로 전국민에게 기쁨을 줬던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도 나왔고, 전쟁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새긴 판화는 감동이었다. 혁명은 별 것이 아니다,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지배당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몸을 통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되찾는 콜롬비아의 아이들. 그들은 비로소 가해자나, 피해자로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스페인의 프랑코 군부가 내란을 일으키자 첼로 연주자 파블로 카잘스는 첼로연주로 그들에게 저항한다. 군부의 협박도 받고, 망명자 신세가 되지만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는다. 파블로 카잘스도 감동이었지만, 공연연출가 탁현민씨와 한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스타골든벨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김제동에 대해 얘기하면서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도 수용하지 못하는 미디어 구조와 사회에 대해 비판을 했다. 연예인이라고 사람이 아닌가, 우리 사회의 잔인함과 권력자들의 야욕에 희생된 일인 것 같다. 사막 위에 오아시를 만든 파올로 루가리! 불가능으로만 비유됐던 표현을 실제로 이루어낸 걸 보면 사람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명과 창조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데, 또 한구석에서는 파괴와 무분별한 개발만을 해대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참 명언이다. 지식e를 보면 우리시대와 그 이전에 대한 엑기스를 뽑아 보는 것 같다. 

 

77. 9월 15~16일, 좋은 여행 

만화가 이우일이 직접 그리고 쓴 여행책이다. 나는 아직까지 해외든 국내든, 그냥 훌쩍 떠나고 싶어 떠나는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삶에 지치고 회의가 들 때, 훌쩍 떠나고 싶다. 차를 빌리느라 십여 년만에 처음 운전을 해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는 이야기, 서핑을 배우느라 애를 쓴 이야기,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그리스에 가서 여유를 즐기고 온 이야기까지. 보다보면 나까지도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여행지의 푸른 하늘과 빛나는 바다, 오가는 사람들, 도시의 풍경 등이 멋있었다. 처음엔 여행을 어찌 해야 할지 허둥거리던 이우일씨도 이제 몇 번 여행을 하자 숙련된 여행자처럼 느긋하게 여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본으로 출장을 가서 일정에 따라서 끌려가는 것처럼 여행을 했는데,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나도 간다면 패키지 여행이 아닌, 조금 힘들겠지만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배낭여행이 하고 싶다. 

둘이 가는 여행은 마가 끼나보다. 특히 애인끼리 간 여행에서 낯선 상황에 서로 몰랐던 모습들을 발견하고 싸울 수도 있다는 글들을 많이 보았다. 이우일씨는 현태준씨와 함께 도쿄를 여행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대판 싸우고 3년동안 연락을 끊었단다. 택시비가 20만원이 넘게 나왔으니 그럴만도 싶다, 하다가도 생각해보면 참 귀엽게 싸운 것 같다. 두 분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겠지만ㅎㅎ. 베트남, 그리스, 일본, 파리 등. 아내와 딸과 함께 재미나게 세계를 돌아다니시는 걸 보면 부럽다. 서로 추억도 만들고, 외국도 구경하고. 그게 다 돈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생각하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할 줄 모르는 낯선 이국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하는 걸 보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뒷장에 보면 가족들의 사진이 있는데, 정말 책에 나온 그대로 같다. 정말 책 제목 그대로 '좋은 여행'이다. 

 

78. 9월 18~19일, 노무현이, 없다 

보고 참 많이 울컥했던 책이다. 노무현씨를 잘 몰랐던 내게, 인간 노무현의 우직함과 정치인 노무현의 소신과 원칙을 알게 하고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씨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 알게 해 줬다. 살아 계실 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볼 것을 왜 돌아가시고 난 뒤에나 안타까워하는 지 후회된다. 아직도 그 분의 모습이 이렇게 생생한데, 내가 역사에 남을 인물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 평론가, 신부, 요리사, 일생의 친구 분 등. 그 분을 알아왔던 분들이 쓴 자신이 본 노무현씨의 모습이 그 분을 전혀 모르는 내게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알면 알수록 참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이라 중간중간 눈물이 날 뻔 했다. 분명 그 분이 실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있었다. 본인이 인기없는 대통령이라고 할 만큼 지지율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시민과 함께 하시는 분이셨고, 가장 높은 곳에서 국민을 받들려고 노력하셨다. 우리의 대통령과 정치가 중에 어디 그런 분이 있으셨던가. 봉하마을의 한 노인 택시기사가 '우리도 누군가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 그런 마음이었다. 

책을 통해 알게 본 고 노무현씨는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과거사 청산에 많은 힘을 쏟으셨다. 제주 4.3사건에 대해 최초로 사과하신 것도 역사를 바로잡고 나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앞을 내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퇴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셔서도 일반 시민의 자리에서 농촌을 살리겠다는 포부를 품고 직접 행동하셨다. 손자, 손녀들을 태우고 자전거로 달리고, 손님들을 만나고, 농사일도 하시면서 그렇게 살아가시는 대통령도 참 보기 좋고 훈훈했더랜다. 결국 재임기간 내내 말이 많았던 언론들과 정치판의 물어뜯기식 공격의 못 볼 꼴, 험한 꼴 많이 보시고 가시긴 했지만 그러므로써 우리 안의 살아있는 영웅이 되셨다. 이제 그 분의 희생으로 우리가 무언갈 깨닫고, 일구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책임을 짊어졌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자발적인 추모와 애도가 이어졌던 걸 보면 영 희망이 없는 얘기도 아닌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노무현씨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이제 그 분이 하셨던 많은 일들을 더 찾아보고 알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 노무현씨의 명복을 빈다. 부디 훌훌 털고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 

  

79. 9월 20~21일, 간송 전형필 

간송 전형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전혀 모르는 인물이었다. 책 표지에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이라는 문구가 있어서 '아, 저 사람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수집했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저자인 이충렬씨가 간송 전시회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순전히 이걸 보려 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들락거렸다는 걸 보고 보통 수준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알게 된 간송 전형필씨의 생애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자손이 없는 둘째 할아버지를 위해 손자로 입양되었고, 그로 인해 두 집 유산을 물려받아 억만장자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던 중,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우리 문화재가 외국으로 팔려가는 걸 알고 분개한 그는 인생의 길을 정하게 된다. 우리의 문화와 얼을 지키는 조선의 대수장가가 되기로! 서화와 글씨 공부를 하기 위해 오세창이 수집본을 엮은 책을 보며 공부를 했는데, 정말 위창 오세창도 대단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간송은 그렇게 겸재, 현재, 혜원과 단원, 삼국과 고려시대의 이름 없는 화가들의 작품까지 우리의 역사를 잇는 큰틀에 따라 수집품을모으기 시작한다. 

조선미술관의 오봉빈, 벗이 된 이상범과 노수현, 믿을 수 있는 거간인 이순황과 신보 등, 전형필은 점점 더 인맥을 넓혀가며 골동품계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그는 좀 비싸다 싶어도 그 수집품에 맞는 가격이라 생각하면 흥정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문화에 대한 예우라 생각했고, 자연히 거간꾼들도 좋은 물건이 나오면 그에게 먼저 연락하게 되었다. 정말 전형필이 수집하는 과정을 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 소리 나오는 금액들과 쉬지 않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열정. 그 때에는 독립운동가들도, 백성들을 계몽하는 지식인들도 있었지만 간송이 한 문화재 수집도 우리 나라의 얼을지키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껏 남아있는 것도 별로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혜원, 단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불상과 석탑들까지. 그는 범위를 가리지 않고 모았다. 아버지의 유훈이기도 했던 훈민정음 혜레본을 구했을 때는 정말 감탄사가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사유재산을 오롯이 나라를 위해 비친 훌륭하신 분이었다. 다음에 간송 전시회가 열리면 나도 꼭 가고 싶다. 

 

80. 9월 22~24일, 젤리코 로드 

'젤리코 로드'하면 뭔가 통통 튀고 분홍색 젤리같은 느낌이 나서 왠지모르게 평화로운 이야기일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기 가족의 교통사고를 언급하는 것에서 바로 환상을 깼다. 이 책은 22년전의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나니와 웹, 같이 교통사고를 당한 테이트, 그들을 구한 피츠, 그들의 친구인 사관생도 주드 이 5명의 아이들의 얘기와, 영토전쟁에서 젤리코 학교 지휘관을 맡게 된 테일러 마컴의 이야기를 평행선처럼 그려낸다. 처음에는 왔다갔다 하는 이야기에 '이건 대체 뭐지?'싶었지만 곧 해너 아줌마의 과거이자, 테일러가 본 원고라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살짝 복잡했지만 지휘관이 되어 아이들과의 마찰에 고생하는 테일러, 해너 아줌마와 테일러의 관계 등 '이 테일러 마컴이라는 아이는 뭐지?'하고 궁금하게 만들었다. 덧붙여 웹과 테이트, 다섯 아이들의 이야기도 순서가 없이 뒤죽박죽을 나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예전에 함께 여행을 떠났던 사관생도 지휘관 조나 그릭스, 시내 아이들의 우두머리인 채즈 샌탠젤로, 테일러의 친구인 라파엘로 등 그들 사이에 얽힌 이야기가 서서히 드러나 기대되었다. 

기숙사 아이들과의 사이도 최악이고, 해너 아줌마의 집에서는 얘스에서 그녀를 데려갔던 준장이 원고를 훔쳐간다. 점점 궁지에 몰려 절망하는 테일러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샌태젤로와 그릭스, 라파엘로와 벤, 기숙사 아이들과 리처드 같은 기숙사 대표들과도 점점 사이가 풀려지며 우정을 쌓게 되는 걸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특히 조나 그릭스! 테일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며, 예전에 테일러의 어머니를 찾으러 함께 얘스행 기차를 탔던 사관생도 그릭스가 너무 멋있었다. 다섯 아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웹의 죽음이 나오고, 언뜻 무겁게 얽힐 수도 있는 분위기를 그릭스와 테일러가 서서히 사랑을 인정하고 다른 아이들의 유쾌한 모습에 부드럽게 풀려갔다. 영토 전쟁에서는 서로 한 방씩 치고 빠지면서도 다 같이 모이면 친구처럼 지내는 게 귀여웠다. 공과 사를 지키는 모습이랄까? 사실 영토전쟁 자체도 다섯 명의 친구들이 장난으로 만든 것이지만 말이다. 테일러는 원고를 읽어 가면서 해너 아줌마와 자신의 관계,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잔인하게 대했던 아버지를 죽인 그릭스의 상처가 드러난다. 몇 년 전, 테일러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역으로 갔을 때 그릭스는 자살하기 위해 서 있었다. 그러나 테일러 때문에 그는 죽지 않았고, 그때부터 테일러를 위해 살아왔다.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강한 인연으로 묶여있는 이 둘이 부러웠다. 마치 다섯 아이들의 테이트와 웹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릭스와 테일러는 과거의 끈을 풀기 위해 테일러의 어머니를 찾으러 떠나고, 그 곳에서 테일러는 잃어버렸던 기억들과 마주한다. 테일러의 옆집에 살았던 샘이라는 남자아이는 왠지 모를 슬픔이 있었다. 어린 남동생이 불행에 빠져서 어둡게 성장한 느낌이었다. 성 도착자와 함께 남겨진 샘은 어떻게 지냈을까. 마음이 착잡했다. 그러나 그동안 무서워했던 준장이 다섯 아이들의 사관생도, 주드라는 것을 알게되고 해너 아줌마와 테일러의 어머니까지 모두 만나게 된다. 마침내 얽혀있던 모든 끈들이 풀린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처음엔 뭐지? 싶다가도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다 읽을때까지 뗄 수 없게 만든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81. 9월 25~26일, 순례자의 책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책에 대한 불온한 상상'. 저자의 머릿말에 나와있는 문장이다. 보통 무섭고, 형벌의 이미지가 강한 저승을 거대한 도서관에서 자서전을 쓰는 공간으로 만든 것 자체가 그렇다. 상동야화는 조선시대에 한 아름다운 남성이 죽은 사건을 패설과 연결시켜 풀어가는데, 그 얘기 자체가 기묘해서 무슨 괴담을 보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정인을 범한 아버지의 얘기를 한이 서린 책으로 낸 여자를 보니 책이란 것이 참 여러가지 용도로 쓰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비블리오마니아의 붉은도서관'은 책에 미친듯이 집착해 인피로 책을 만들고, 친구의 딸조차 죽인 삼촌과 진실을 알고도 삼촌과 같은 길을 걷는 조카, 그 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하인이 있어 소름을 끼치게 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집착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당분간 책을 좀 껄끄럽게 느낄 것 같다. 

무슨 괴담 모음집으로 봐도 좋겠다. '들은대로'는 일본의 이동책장수와 관련된 괴담이었는데, 정말 소름끼쳤다. 일가족 몰살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도 소름끼쳤지만, 그걸 들은 손님이, 전까지만 해도 친절하고 사람 좋았던 손님이 좋은 이야깃거리를 건졌다며 흥분해서 떠나는 모습이 더 소름끼쳤다. '책'이란 게 그렇게까지 사람을 묶고 홀릴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책으로 보고 책을 읽듯 한 인간의 인생을 읽어내리는 이야기,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책을 찾는 신하의 이야기 등 그 외에도 상상력이 뛰어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이 책에 대한 불온한 상상을 하게 하는 건 맞지만, 그것 말고 별다른게 없어 아쉬웠다. 단순히 소름끼치는 괴담집을 한 권 읽은 느낌이었다. 책에 대한 다양한 역사를 알게 된 건 좋았다. 

 

82. 9월 27일, 고구려 평양성의 막강 3총사 

귀여운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소년들의 일상을 일기처럼 써서 고구려 시대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주인공은 경당에 다니는 건무다. 경당이란 말이 낯설었는데, 조선 시대의 서당쯤으로 글공부도 하면서 무예에도 힘을 쏟는 그런 곳인 것 같았다. 건무와 어릴 때부터 단짝인 우담이,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를 따라 화공이 되고 싶어하는 사후 이렇게 셋이 삼총사이다. 셋은 경당에 처음 온 낯선 아이, 부기연과 서로 적대한다. 왠지 말투도 마음에 안 들고 처음 와서 떡을 돌리는 것도 거슬렸던 것이, 점점 부기연이 아이들을 자신에게 끌어 모으자 완전히 갈라진 꼴이 되었다. 우담이 아버지에게 부탁해 단검도 갖고, 사냥과 씨름 대회에서 부기연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때 사람들의 삶은 어땠는지 나온다. 그리고 부기연이 멧돼지에게서 삼총사를 지키면서 이 넷은 화해하고 좋은 동무가 된다. 음, 솔직히 그럴 것 같았다. 처음부터 부기연은 착한 아이 낌새가 나서 이 훈훈한 결말이 날 줄 알았다. 

 

83. 9월 28~30일 성공과 좌절 

전에 '노무현이, 없다'를 읽은 다음에 노무현씨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마침 학교 도서실에 성공과 좌절이 있길래 냉큼 빌려오게 됐다. 부엉이 바위에서 홀연히 떠나신 이후로, 우리를 울렸던 유서와 함께 마무리 짓지 못한 회고록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알아줄 거라는 사람들, 대통령으로서 하고자 했던 것들과 지나온 삶의 이야기, 시민으로서 성공하리라 마음먹었던 것들.. 정리되지 못하고 끝난 글이라 생각나는대로 쓴 단문으로 끊기는 글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립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다. 짧은 회고록이 끝나고는 사람들과 이야기한 내용, 사람사는 세상 카페에 올렸던 글, 나누었던 의견들을 정리해서 써놓았다. 읽어나갈수록 '노무현'이 보이는 것 같았다. 대통령으로써 오랜 시간 품어왔던 꿈들,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 처음에는 노동자들의 대변인이 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후에는 우리 사회의 풀리지 않은 문제들과 갈등들을 정리하는 마지막 대통령이 되고자 하셨다.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정책에 관한 말을 듣고 고민을 써 놓으셨다. 줄서놓기 정책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라디오에서 '사교육 없는 교육'을 강조하고, 방과후 학교를 하고있는 학교에서 격려를 했다는 말에 안심을 했다가도 또 그냥 한 말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았다. 하긴 대통령이셨으니까. 나의 다음 사람이 어떨지, 이 나라는 어떻게 될지, 관심과 걱정이 많으실 것 같았다. 방과후 학교가 참여정부의 핵심 전략으로 시행되었다는 거에 깜짝 놀랐다. 학원을 잘 안 다녀서 어떨 땐 그걸로 공부도 하고, 사물놀이 등 취미도 배우면서 매우 유용하게 이용했는데 시행된지 얼마 안 됐다는 건 몰랐다.  만약 지금 노무현씨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많이 응원하고 지지할 것 같다. 분명 전에 대통령을 하셨는데,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고 기억이 안 난다. 어려서, 관심이 없어서. 시민에서 시작해서 시민으로 돌아가신. 정말 진정한 서민의 대통령이셨다. 그 때문에 여러가지 구설수에 많이 오르셨지만 모든게 잘 마무리 되는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보내드리지 못 해 아쉽다. 

아직도 가끔 인터넷을 둘러보면 '노무현 때문에 경제가 다 망했다' 이런 글들이 다 보인다. 그걸 볼 때마다 어이가 없어 코웃음도 안 나온다. 저런 사람들은 저걸 어떻게 믿는걸까, 노무현 대통령께선 이런 얘길 들으실때마다 기분이 어떠셨을까. 그런데 이 책에서 그런 얘기들에 대해 조목조목 짚으며 반박하셨다.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절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됐다. 지금 대통령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 기대된다. 남북정상회담 얘기하실때 걸어서 가시던게 기억났다. 그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애들이랑 다 같이 보고 뭔지도 잘 모르면서 좋아했는데. 그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북한과의 일은 또 어떻게 될지. 온통 흉흉하고 무서운 얘기들 뿐이라 정말 어떻게 될 지 겁이 날 때도 있다. 이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 부분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께선 참 균형을 잘 잡으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 북한 모두 자칫 잘못하면 위험해 질 수 있는 카드들인데 그 균형을 잘 잡으면서 나라를 굴려 오셨다. 언론도, 결국 그 분이 살린 언론이 그 분을 죽인 게 아닌가. 보면서 내내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이 생각을 했다. 

 

이제 10월만 정리하면 끝이다. 수정은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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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3 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10월 기록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10-19 23:32 
    2010년 4월 19일부터 10월 17일까지 6개월 26주 182일간의 제5회 빛고을 독서 마라톤이 끝났다.  중3 막내랑 둘이 가족 풀코스를 도전해 목표는 무난히 달성했다. 민경이는 93권 23,539쪽을 읽었다.  84. 10월 1~2일, 나쁜 사마리아인들  학교 논술대회의 책이라 읽었다. 그동안 말은 몇 번 들어봐서 흔쾌히 집었는데, 음.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전호인 2010-10-1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끊임이 없는 마라톤!
아웅, 엄청난 독서량에 숨이 턱에 찹니다.
대단합니다 모두들!!!!!

순오기 2010-10-19 01:22   좋아요 0 | URL
우리딸이 나보다 훨씬 빨리 읽기 때문에 더 많이 읽어요.^^

혜덕화 2010-10-17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 3 아들이 이 책을 다 읽고 썼단 말입니까?
정말 놀랍군요.
반성합니다.
책만 읽고 한 줄 기록도 남기지 않고 몇 달 후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저의 게으름을......

순오기 2010-10-19 01:23   좋아요 0 | URL
중3 아들이 아니고 딸이에요.^^
아들은 고2~ 가운데요.
우리도 독서마라톤 아니면 기록을 남기는 일은 거의 없답니다.

양철나무꾼 2010-10-1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핀이라구요?^^
전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 궁금해요~

순오기 2010-10-19 01:26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 호핀은 너무 낯설죠~ 그냥 쇼팽이라고 부르자고요.ㅋㅋ
조윤범씨는 책보다 TV로 봐야 제맛이 사는 남자에요.
즉석에서 음악도 연주하면서 진행하는 입담이 끝내주지요.^^
 

독서마라톤에 참여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예전에 KBS 토요스페셜 <한국사전>의 간송 전형필을 보고 한국사전 책도 사봤지만, 제대로 된 책으로 간송을 만나는 건 좀 늦었다.

책으로 만난 전형필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엄청난 갑부여서 놀라고, 그 재산을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데 몽땅 털어넣은...
돈의 가치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어서 또 놀랐다.
삼성 그룹의 부정 축재 상징이 된 미술품 '행복한 눈물'과는 차원이 다른 갑부의 돈 씀씀이!!  

간송 전형필을 읽고, 우리가 모르면 안되겠다 싶어 고등학교독서회 11월도서로 정했다.
이 책을 같이 읽은 중3 막내는, 간송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면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간송 전형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전혀 모르는 인물이었다. 책 표지에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이라는 문구가 있어서 '아, 저 사람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수집했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저자인 이충렬씨가 간송 전시회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순전히 이걸 보려 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들락거렸다는 걸 보고 보통 수준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알게 된 간송 전형필씨의 생애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자손이 없는 둘째 할아버지를 위해 손자로 입양되었고, 그로 인해 두 집 유산을 물려받아 억만장자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던 중,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우리 문화재가 외국으로 팔려가는 걸 알고 분개한 그는 인생 길을 정하게 된다. 우리의 문화와 얼을 지키는 조선의 대수장가가 되기로!  (중략)

그는 좀 비싸다 싶어도 그 수집품에 맞는 가격이라 생각하면 흥정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문화에 대한 예우라 생각했고, 자연히 거간꾼들도 좋은 물건이 나오면 그에게 먼저 연락하게 되었다. 정말 전형필이 수집하는 과정을 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 소리 나오는 금액들과 쉬지 않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열정. 그 때에는 독립운동가들도, 백성들을 계몽하는 지식인들도 있었지만 간송의 문화재 수집은 우리 나라 얼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껏 남아있는 것도 별로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혜원, 단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불상과 석탑들까지. 그는 범위를 가리지 않고 모았다. 아버지의 유훈이기도 했던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했을 때는 정말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사유재산을 오롯이 나라를 위해 바친 훌륭한 분이었다. 다음에 간송 전시회가 열리면 나도 꼭 가고 싶다. (2010.9.21)

 
드디어 간송미술관 가을전시회가 공지되었다.    

간송미술관 가을전시 '화훼영모대전'

2010.10.17(일)~10.31(일)까지 / 무료

간송미술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  전화번호 02-762-0442   
김시, 野牛閒臥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매년 봄.가을 두 차례만 문을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가을에는 동.식물을 소재로 한 '화훼영모'(花卉<令+羽>毛)를 화제로 내세웠다.

미술관이 소장한 화훼영모화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인 공민왕(1330~1374)의 작품부터 이당 김은호의 작품까지 600여년의 세월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100점의 화훼영모화로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른 기법 차이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한 전시다.
  
저세한 기사는 여기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4700716 
 

(왼쪽) 정선, 秋日閑描 (오른쪽) 심사정, 敗蕉秋描

 


어린이와 같이 보기에 좋을 거 같아서,
어머니독서회 11월 토론도서로~

조선시대에도 그림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
목차를 보니 대단한 사람들이 줄줄이~ ^^ 

제1부 서화 수장에 빠졌던 왕과 왕자들
1장 조선 최고의 훈남 컬렉터-안평대군
2장 운명이 등 돌린 불운한 장남 수장가-월산대군
3장 왕은 왜 그림을 보았을까-성종
4장 미술을 사랑한 폭군-연산군 056
5장 김홍도의 풍속화는 왜 해학적일까-정조
6장 요절한 비운의 군주 패트론 -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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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송미술관 2010 가을전시회 소식을 듣고
    from 제발 제발 2010-10-16 11:15 
         간송미술관 옆에 성북초등학교가 있어요.  학교하고 미술관 정문이 기역자로 바로 붙어있구요. 제가 다닐때(1977~1982)는 미술관 철문이 늘 닫혀있었어요.  어쩌다 열렸을 때 흘깃 보면(그땐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거든요) 건물은 안보이고 무성한 숲 느낌만 났어요. 간송미술관이라는 사실도 졸업하고 훨씬 뒤에 알았어요. 누구한테 물어볼 생각도 안했고, 묻지
 
 
2010-10-15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10-15 16:57   좋아요 0 | URL
나도 한번도 못 가봤어요. 이번에는 막내를 위해서도 꼭 가봐야 할텐데...

꿈꾸는섬 2010-10-1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너무 유익한 정보에요.^^ 전 아직 간송미술관 못 가봤어요. 가보고 싶은데 갈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순오기 2010-10-16 13:11   좋아요 0 | URL
이번엔 꼭 가보려고 날짜 맞추고 있는데, 워낙 스케줄이 빡빡해서리... ^^

2010-10-16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0-10-1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보고 싶어요~ ㅎ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순오기 2010-10-19 00:51   좋아요 0 | URL
후애님 한국 왔을때 전시회하면 딱 좋은데~ ^^

세실 2010-10-1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1년에 달랑 2번만 문을 연다구요. 대단한 미술관이네요.
요즘 게을러서인지 서울가는 것도 귀찮은데...음
출장길에 들러봐야 겠습니다.

순오기 2010-10-19 00:51   좋아요 0 | URL
일년에 두 번만 하기에 매니아들이 목빼고 기다리겠죠.^^

비로그인 2010-10-1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훼영묘화라니, 아이들도 좋아하겠군요.
중앙박물관에서 하는 고려불화대전이랑 같이 보면 하루 서울 나들이로 딱이겠네요. 다 보기 힘든 그림들이라서요.

순오기 2010-10-19 00:52   좋아요 0 | URL
서울나들이 한번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좋지요~ ^^

양철나무꾼 2010-10-17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manci님 말처럼,중앙박물관이랑 세트로 묶어 전 꼭 출동하겠어요.
이 가을에 꼭이요,불끈~!!!

넋놓고 앉아있다 보니 10월도 어느새 반이나 지났어요.

무엇이든 열심히 하시는 그 열정이 참 부럽기도 하지만,
독서마라톤 너무 긴 여정인 듯 해서...혹 건강 상할까 걱정됩니다~^^

순오기 2010-10-19 00:53   좋아요 0 | URL
마라톤 잘 끝났어요~
그냥 책 읽고 짧은 기록 남기는 거니까 건강을 해칠 일은 없지요.^^
 
중3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7월 기록

2010년 4월 18일부터 시작된 6개월간의 빛고을 독서마라톤, 엄마와 같이 가족 풀코스(42,195쪽 읽기)에 도전한 8월의 기록을 남긴다. 8월엔 너무 더워서, 혹은 꾀가 나서 그랬는지 많이 읽지 못했다. 8월 23일 개학이라 밀린 방학숙제 하느라 그랬나... ^^

 

56. 7월 31~8월 1.2일, 숨그네 

(7월 31일 기록에 이어서~)
수용소에는 수감되어 노동을 하는 그들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더 있었다. 경비원 카티라는 여자는 백치였고, 인간이 아니라 수용소의 애완동물로 취급 받았다. 수용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카티를 보면서 묘하게 위로 받았을 것 같다. 이렇게 인간적인 면모도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빵 도난 사건'을 보면서는 또 달랐다. 빵을 나누어주는 펜야라는 여인은 그 추한 외모와는 다르게 신성해 보일 정도로 빵을 자르고, 나누는데 공정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성스러울 정도의 빵을, 배고픈 천사의 유혹을 이겨내고 아껴놓았는데 어느 날 돌아와보니 카를리가 사람들의 빵을 다 먹어치웠었다. 정말, 이 책을 보면서 사람이 이런 극한된 상황에서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무덤덤할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 주먹으로 입을 쳐서 이가 빠지고, 머리를 물양동이에 집어넣고, 목을 조르고. 피투성이가 된 그를 엄동설한에 끌고나가 단체로 오줌을 지리고. 그래놓고도 그게 끝나자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는 게 더 무서웠다. '빵의 법정은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처벌만 내릴 뿐이다.'라는 문장이 박혔다.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선, 결코 이해할 수 없을것 같다. 

레오는 마음이 뒤숭숭한 꿈을 꾸고 해몽을 부탁하지만, 보잘 것 없는 결과에 실망하고 만다. 울지 않기 위해 향수를 다른 것으로 바꿔 담담하게 만들고, 감정을 삭이는 모습이 수용소의 메마른 현실 같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물물교환에서 바꾸려고 베아에게 부탁한 스카프가 투어 프리쿨리치에게 매어지면서, 언제쯤이면 스카프의 값을 할 거냐고 레오는 물었다. 시간이 흘러 투어는 그를 감자 작업장으로 보내는데, 작업을 하는 동안 그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갈지, 아니면 감시하는 사내가 그를 도망자로 처리하고 총으로 쏠지, 언제 자신을 죽일지 고민하며 쉴 새 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투어가 스카프 값을 감자로 계산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감자더미를 훔쳐 돌아온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언제 죽을지, 살지 생각하는 게 가슴 아팠다. 정상적이라면 그런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을 거지만, 그 곳에선 정상적인 게 없었을 거다. 레오는 5년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5년을 빼고 평생 살았던 집과 방의 물건들은 낯설었으며,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한 인간의 피폐함과 정신적 무너짐이었다. 

 

57.  8월 3~4일,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책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열정과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표지에 있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듯이 사람은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책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세상과 인물들을 창조시키는 것과 같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누군가가 쓴 책 한권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은 책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쭉 훑어간다. 중세에 양피지 두루마리에서 수서본으로 진화했는데, 화려한 삽화들과 손으로 쓴 필체들이 매력적이었다. 저런 책들은 읽는 게 아까울 것 같다. 책 수집가와 애서가들이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화려한 삽화들과 수서본 그림들, 그 때 당시 쓰였던 도구들의 사진이 많이 있어서 복잡하고 어려울 줄 알았던 예상을 깨고 의외로 술술 읽혔다. 지나간 시대의 역사가 된 책을 또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묘한 일이다. 

애서가들의 수집품인 수서본. 소유주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는게 이해가 간다. 금판에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코덱스 아우레우스'는 진짜 보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책 하나만 팔아도 몇년은 놀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밖에도 특이한 모양으로 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심장 모양의 가곡집, 백합꽃 모양의 수서본 등 책이 아니라 예술품 같았다. 초기에는 집단 낭독이나 묵독을 했는데, 수도사들이 주로 묵독을 했다. 수도원의 관행에서 독서가 의무와 참회로 인식되었다 하니, 교회와 책도 빼 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정말로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정리 한 것 같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책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다. 그 장엄한 책의 역사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책에 빠져들게 된다. 

 

58. 8월 6~8일,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표지의 활짝 웃고 있는 이하영씨의 사진이 내 예전 미술 선생님을 닮으셨다. 그 분도 매우 범상치 않은 분으로, 말 하는 것도 되게 조곤조곤하고 뭔가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셨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비슷해지나보다. 그래서 어쩐지 더 흥미를 느끼며 책장을 펼쳤다. 젊은 나이에 산에 어떻게 필이 꽂혔는지, 집도 손수 짓고 몇 개월 안 된 세쌍둥이를 데리고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용타 싶다. 그래도 나중에 엄마랑 나눈 얘기는 그 아줌마가 처음에 돈이 있어서 그럴 수 있었다는 것.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은 그야말로 꿈에서나 나올 얘기인가 보다. 아무튼 이 겁 없는 아줌마의 행보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런지, 점점 궁금해졌다. 밥심으로 일 하는 남자들을 독려해가며, 자기가 살게 될 집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보면서 참 설레고 행복했을 것 같다. 그 후로도 여러 채의 집을 손수 지었으니, 살아가는 게 뭐든지 핸드메이드인 설피밭 생활에서 집까지 손수 만들다니 참 스케일이 큰 분이다ㅋㅋ. 산 속에서 세쌍둥이와 함께 살아가며,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모습이 참 편안해 보였다. 

늘 사람이 적은 고즈넉한 산 속 마을에서만 살면서 도시의 문화생활을 잊어버리고 살던 아줌마는 한 번 큰 일을 당했다. 벌통을 청소해 주던 중 침에 찔려 열을 내서 없애버리자고 한 게, 잘못된 처방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민박 손님중에 의사선생님이 있어 응급실로 실려가서 해독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죽을 수도 있었을 걸 생각하니 얼마나 아찔했을까 싶다. 사람 목숨이란 게 참 조그마한 벌침 몇 방에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무게가 한 없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듯 싶다. 그래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력함을 이해하며 그것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아줌마의 마음가짐은 참 아름다웠다. 글을 꾸준히 읽다보면 문장이 미사여구를 써서 수식하지 않고 그저 조근조근 써지는데, 술술 읽히면서도 전달이 잘 된다. 잔뜩 피어있는 꽃들과 숲 속의 풍경을 나열할때면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듯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가짐이 스님의 마음과 닮아있는 듯 싶다. 사람은 자연에서 살다보면 점점 자연을 닮아가나 보다. 

지나가는 손님이 있어 머물 곳이 여의치 않을 것 같으면 방 한 켠을 내주고 식사를 내오고, 이런 게 일상이라는 게 신기했다. 손님이 들고 나감에 따라 아줌마 마음도 그냥 초연해지는 것 같았다. 나물을 캐고, 말리고 이런 모습을 보면 그냥 평범한 아줌마 같은데, 조용히 숲 길을 걸으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삶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가는 걸 보면 어느 절의 스님같이 고즈넉한 마음씨가 보이기도 했다. 어느 면으로 보나 부러웠다. 산 속 마을이 가구는 적더라도, 다들 얼굴을 익히고 살아 어느 때고 전화 한 통으로 찾아가 할머니들이 두부도 해 주고, 나물도 해 주고 그 집에서 같이 잠도 자며 살아가는 걸 보니 도시에서는 없는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눈 길 덮인 곰배령을 걸어가다 조용히 핀 꽃송이들을 보고, 겨우내 숨 죽였던 나무들이 새 순을 틔우고 생물이 활기를 띄우는 걸 바라보면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 싶었다. 언젠가는, 일생에 한 번은 나도 산 속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고 싶다. 

 

59. 8월 9. 12일,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맑고 쾌청한 하늘과 은빛 갈대들, 바람에 휘날리는 저녁 즈음에 노을진 풍경,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우중충한 들판 등. 같은 장소라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진들이 있었다. 김영갑씨가 루게릭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몇 쪽을 읽어나서야 알았다. 불치병에 걸린 작가가 자신의 사진인생을 담담히 쓰는 형식이었는데, 와, 정말 남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을만한 삶이었다. 자기는 몇 끼를 굶는 한이 있어도 필름과 인화지 값은 아끼지 않고,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라도 일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하고. 오로지 사진에만 미쳐서 개인적인 영달이나 일신을 가꾸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 보였다. 밥벌이는 안 되지만 하고 싶은 사진은 마음껏 찍고 다니는 그가, 신기하고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렇지만 난 절대로 김영갑씨처럼은 못 할 것이다, 아니, 안 할 것이다. 자유롭게 다니는 모습이 부럽기는 했지만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외면하고, 중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근근히 살아가는 모습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그가 찍은 사진들은 너무 예뻐서, 막눈인 내가 봐도 뭔가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김영갑씨의 아버지는 젊은 날 알콜중독으로 폭군 행세를 했지만, 늙어서는 그걸 미안하게 여기고 자식들에게 자상하게 대하려고 많이 노력하셨다. 마치 대한민국 원주민의 최규석 작가의 아버지 같았다. 자식들은 어릴 땐 부모님을 이해 할 수 없고 미워해도, 커서는 그래도 사랑하고 닮아가는 듯 싶다. 김영갑씨도 비록 술을 마시고 가족을 폭행하던 아버지를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한다고 썼다. 그게 바로 부모님과 자식의 질긴 끈이 아닐까. 다른 사진들은 모두 하얀 바탕에 있었는데 아버지의 죽음 바로 뒷장인 갈대사진만 검은 바탕이라, 아버지에 대한 애도의 표현임을 알았다. 늘 보는 일상의 아름다움이라도 항상 새로이 대하려 하고, 마음속의 이미지를 잡아내기 위해 몇날 며칠을 노력하는 사진작가들. 사진이란 그저 찍는게 다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루게릭병에 걸려 밥 한 숟갈도 떠먹지 못하고 점점 몸이 굳어가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갤러리를 완성하고 간 김영갑씨. 마지막 순간에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만족했을 것 같다. 온 힘을 다해, 자기의 모든 걸 태워서 일생을 참 열심히 살았던 분이다. 

 

60. 8월 10~11일, 파라다이스 

오빠가 이 표지를 보고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길래 베르베르 책이라고 대답했더니, '왠지 그럴 것 같은 표지'라고 했다ㅎㅎ. 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파피용'하고도 비슷한 느낌이다. 어쨌든 베르베르의 실력이야 검증된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있을 법한 미래, 있을 법한 과거를 주제로 역시나 과격하기까지 한 상상력들을 자유롭게 펼쳐 놓았다. 지구의 오존층이 세제곱미터단위로 남아있는 상황, 사람들은 환경을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 버리고 오염자들을 사형시키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다. 환경오염자들이 공원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고, 새 출근수단으로 투석기를 이용하는 만화 같은 상황.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점점 꽃으로 진화해가는 남자와 여자들. 사람들이 나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성기 주위에 꽃장식을 하고 꽃가루를 내뿜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베르베르 소설에서 흔히 드러나는 것은 인간 외의 존재가 인간처럼 행동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우리들을 관찰하는 관점이다. 이번에도 잊혀버린 고대문명을 발견하는 줄 알았던 역사학자가 실은 개미였고, 그들이 관찰하는 거대종이 사라진 우리 인간이었다. 보면서 자주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내일 여자들은'이라는 있을 법한 미래는 파라다이스 중에서 가장 긴 이야기다. 길면서도 SF와 액션, 로맨스 등이 골고루 들어가 있어 스펙타클하다. 과학자인 마들렌은 어느날 밤부터 미래에 여자들만이 남은 꿈을 꾸게 된다. 생명이 방사능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실험을 계속하면서 마들렌은 그 꿈과 자신이 하는 일이 묘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방사능을 견딜 수 있도록 생쥐를 난생으로 바꾸는 걸 성공하자 '어떤 것'을 원하는 괴한들에게 쫓기게 된다. 바로 방사능에 견딜 수 있고 수컷이 없어도 번식하는 최초의 난생 인간 여자. 결국 그 꿈에 나오는 미래를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시대적으로 알파걸이 트렌드인 요즘, 레즈비언인 그녀의 엄마의 여성찬미론이 흥미로웠다. 언젠가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있을 법한 미래'다. 영화의 거장 또한 스케일이 큰 이야기였다. 정말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존경스럽다. 현실은 그 어떤 잔인한 영화보다 끔찍할 수 있다. 결국 큐브릭의 영화에 얽힌 비밀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과거를 모른 채 넘어갔다니 씁쓸하다. 

 

61. 8월 13~15일, 강남몽 

옛날에 서울 강남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데 그걸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박선녀라는 중년의 귀부인이 있는데, 그녀의 생활로 그 시대 상류층들의 삶이 어땠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박선녀는 한때 남산 정보부에서 일했던 남산 영감의 후처다. 옛날에는 여자가 남자를 잘 잡아야 팔자가 핀다고 했는데, 선녀가 남자 잘 잡아서 공마담이나 문회장같은 여자들과 함께 땅 얘기, 돈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참 팔자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시대 누구는 그렇게 피땀흘려 노력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는데, 그들은 회사원의 몇 달 월급치 돈을 한꺼번에 쇼핑에 쓰고.. 그러던 박선녀가 백화점에 갔다가 무너져 콘크리트 아래에 갇히게 된다. 그녀는 젊고 예뻐서 물장사를 하다가 마담이 되고, 인맥을 발굴해 사업을 벌여 돈을 벌고 그렇게 성장했는데 아무리 빛이 안 보이는 직업일지라도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은 지금 우리나라의 꿈의 도시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강남에 살고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강남에 입주하길 원한다. 2장에는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가 해방 후 미군에서 정보관으로 일하는 김진, 3장에는 부동산 땅 투기로 돈을 번 심남수의 얘기가 나오면서 강남을 지금의 도시로 만드는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일조했는지 그 과정을 보여 준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 나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한 게 아니니, 일제 치하에서 벼슬을 했던 사람들이 해방 후에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떵떵거리는 걸 보니 씁쓸했다. 정작 짓밟힌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말이다. 제 한 몸 부지하고 돈을 벌기 위해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짓거리들을 하는 걸 보면 속이 쓰려왔다. 심남수나 고위관리들이 땅을 싼 값에 사 비싼 값에 팔아치우면서 이익을 얻고, 잔뜩 거품을 일게 해 놓은 걸 보면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건 그 당시 강남이 얼마나 헛점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지표같다. 가격은 말도 안 되게 높은데, 그 내부는 정작 부실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만들었지만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2장과 3장이 위에 있는 고위관료들이 강남을 형성해 온 이야기라면, 4장과 5장은 아래에 있는 하층민들의 강남 형성기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는 조폭인 홍양태와 강은촌이 나와 조폭세력의 부흥과 몰락을 보여주고, 5장에서는 백화점의 여점원과 그녀의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게 삶을 꾸려왔는지 보여준다. 김진, 심남수, 홍양태, 여점원 모두 1장에서 나온 박선녀의 삶과 관련이 있어 이들이 모여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라고 나타내는 듯 싶었다. 새삼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도에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아무튼 지금의 강남은 각자의 적나라한 욕망들이 뭉쳐서 형성된 것 같다.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 돈을 벌려는 욕망, 세력을 확산하려는 욕망 등등... 황석영씨의 책은 강남몽까지 3권 정도밖에 못 읽었는데, 특히 강남몽에서 인물 개개인의 삶을 나타내면서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이야기와 역사의 흐름을 드러내는 방식이 뛰어나다. 

 

62. 8월 16일, 초록바이러스 


표지의 작고 깔끔한 겉모습이 귀여웠다. 요즘 마음이 심란한지라 동시를 읽고 치유하고 싶어서 봤는데, 내가 무덤덤한건지 아니면 이 시가 내 취향이 아닌건지 별로 감동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가장 공감이 가는 시는 '금붕어.' 인터넷만 들어가면 3초만에 내가 뭐 하려고 켰는지, 어딜 들어가려고 했는지 딱 잊어버리고 만다ㅋㅋ. 어떤날은 원래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려고 인터넷을 켰는데 뜨자마자 너무 자연스럽게 평소에 즐겨 가는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파블로프의 개인가... 그리고 꽃구경이라는 시도 마음에 들었다. 벚꽃 구경을 간 식구들은 번데기가 맛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새 운동화를 사야겠다는 말만 하는데 오직 누렁이만 코에 묻은 벚꽃을 떼려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누렁이만 제대로 벚꽃 구경하고 온 듯 싶다. 

 

 


63. 8월 17~19일, 문화편력기 

미식견문록은 다양한 나라의 특별한 음식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설명한 책이었고,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어린시절 소비에트 학교에 다녔을 때의 세 명의 각기 다른 친구들의 삶을 그 시대 공산주의와 연관해서 쓴 책이었다. 문화편력기는 내가 세 번째로 읽는 그녀의 책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확실히 어릴 때부터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음식들을 맛 보니까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아 책도 많이 쓴다고. 많은 경험은 인생에 도움이 된다. 그녀는 각 나라의 사람이나, 역사, 속담 등 전반적인 문화에 걸쳐 자신이 겪고 본 이야기를 써 놓았는데, 그게 또 부러웠다. 나도 나중에 꼭 다양한 나라들을 여행해봐야겠다. 아주 간단한 일인데도 다른 사람의 직업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오호츠크 사람들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국가원수들의 유형 같은 건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리고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 본 리차의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뭔가 낯선 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일본 경제학자 중에는 지식을 나열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서, 요네하라 마리는 어릴 적 충격받았던 시험 문제들을 회상한다. 시험지의 문제가 전부 O,X형의 문제와 오지선다형의 객관식으로 나와 단순한 지식의 암기만을 강요했었던. 외국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적어나가고, 문제의 핵심을 보게 하는 시험을 풀어왔던 그녀가 그걸 생각하고 씁쓸해하는데 아주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시험도 똑같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창의성이 없는게 본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진짜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무언가 깨달음을 줄 수 있을만한 공부가 아니다. '좀비 같은 젊은이들'에서는 무표정, 무감동의 일본 젊은이들을 걱정하고 있는데, 마지막 줄이 개 전문잡지 편집기자가 한 말이었다. '애완견이 산책하다 다른 개를 만나도 반응이 없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 손에서 자라면서 개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진 모양이다.' 섬뜩한 말이었다. 

드디어 다 읽었다. 길지 않은 책이었는데 3일이나 걸려 버렸다. 그래도 읽어가면서 타문화에 대한 관용과, '거기 사람들도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은 부모님에 대해 쓴 부분이었다. 그녀의 책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분들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자매에게 있어 '뚱뚱하고 공산당'인 굉장한 사람이었다. 어린 눈에도 부유하고, 떠도는 공기부터가 다른 친가의 편안함과 재력을 거부한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매일 밤 재밌는 이야기와 마술을 보여주신 아버지는 예상대로 참 좋은 분이었다. '정말 마지막까지, 나는 줄곧 보살핌만 받는 사람이었다.'라는 문장에서 그녀의 쓸쓸함과 서글픔, 그리움을 느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딸들을 독립적으로 키우고, 독설을 내뱉는 쌀쌀한 면이 있었던 어머니가 말년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치매를 앓다가, 남편의 곁으로 떠나는 걸 보면서 정말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한 때는 홀로 서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경멸감을 느꼈으나, 결국 이해하고 사랑한 걸로 보아 모든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이해하고 사랑하나 보다. 부모가 그런 것처럼. 

 

64. 8월 20일,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은 101가지 

짧고 간결하게 미술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필자가 오페라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이 느낀 당혹감을 미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겪지 않도록 설명해 주는 책인데, 참, 정말 간결하다. 왼쪽 페이지에는 그림이, 오른쪽에는 전시관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짧은 문장들이 써져 있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다던지, 전시관은 백만장자의 것이 아니라는지. 나중에는 일반 미술에 대한 명언이나 미술품을 이해하는 법에 대해 써져 있다. 미술은 그냥 보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지식으로 중무장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수준의 상식은 갖추고 있는 편이 좋은 것 같다. 미술관을 가 본지도 오래고, 사실은 그림을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 책을 보니까 미술관에 가고 싶어졌다. 

 

65. 8월 21~22일,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철학'이라? 우리에겐 상당히 낯설고, 익숙지 않은 단어다. 철학을 생각하면 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골치아프고 빙빙 꼬아놓은 질문들만 맴도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라니. 프랑스 사람들이 상당히 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과연 프랑스 아이들은 어떻게 철학을 이해할지 궁금했다. 사범대학 교수로 철학의 대중화와 학교 철학 교육에 힘써왔던 저자는 어린 아이들도 철학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후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써서 나중에는 프랑스 법으로 학교에서 30분 정도의 철학 토론수업이 인정되었다. '생각한다는 건 무엇인가',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것인가', '철학이란 뭔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아이들이 생각하고, 의견을 정리해나가는 모습은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똑똑히 말하는게 신기했다. 역시 어릴때부터 말하기 연습과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는 프랑스의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이란 것이 깊이 들어오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철학 수업은 주로 토론으로 행해졌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나'라는 주제에서, 아이들은 많은 걸 배우기 위해서, 남을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또한 컴퓨터로 학교를 대신할 수 있지 않느냐는 교사의 말에 대체할 수 없는 학교만의 특징을 말했다. 학교가 있기 전에는 어떻게 사람들이 배웠을지까지 흘러간 아이들의 의문이 놀라웠다.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왔던 아이들도, 이렇게 멋지고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도 나은 것 같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이미 지식 축적과 인격 함양의 밀접한 관계까지 알고 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을 받아온 프랑스 아이들의 미래가 기대됐다. 단순히 배배 꼬아놓은 말장난인줄 알았던 철학이, 누군가에게는 그전의 세계를 깨뜨리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덧붙여 당연한 걸로 생각해왔던 것일수록 깊이 들어가면 더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철학할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는 책이다. 

 

66. 8월 23~24일, 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오늘은 개학날, 방학내내 학교도서실에 한번도 안갔는데 개학하니 자연스레 발길이 가더라. 어린시절 소년병이었던 저자가 경험을 살려 반성하고, 전쟁이란 왜 일어나는지, 전쟁을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쓰고 있다. 학교 국어시간에 개화기부터 해방과 6.25전쟁까지의 문학의 흐름을 보고 있기에 여기 주로 나오는 일제강점기의 배경이 낯익었다. 읽으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당하는 사람과 가하는 사람의 생각 차이가 그렇게 다르다는 거다. 실제로 일본사람들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가고, 우리나라를 침략했을때도 그것은 아시아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며, 모두들 이 전쟁을 좋아할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걸, 일본인들은 전쟁에서 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언제 어디서나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실상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시대도 평화의 시대는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한창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등, 사회의 격변기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 때 모든걸 겪어내고, 이겨내셨던 분들이 더 존경스럽다. 지구가 좌우로 갈라졌던 냉전 등을 내가 겪었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사토 다다오는 일본이 잘못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서 좋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걸 해 낸 사람이나 나라는 별로 많지 않았다. 자기 나라의 수치를 되짚는일이 좋을 리가 있으랴. 나치의 잘못을 인정하고 독일 청소년들에게 잘못과,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반성을 일깨우게 하는 독일도 대단한 나라다. 전쟁은 과연 인간의 본능일까. 어떻게 해서도 멈출 수 없을까. 인류가 나온 이후로 전쟁은 끊임없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났으니, 그걸 막을 수는 없는걸까? 많이 생각하게 하는 문제다. 

 

67. 8월 25일, 세번째 별명 꿀꿀이 


귀여운 북녘동화다. 우리나라 말로 고쳤다고는 해도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보이는지라 북한의 동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영어로는 pig, 애칭으로는 꿀꿀이로 불리는 돼지가 어째서 '꿀꿀이'가 됐는지 상상해서 써 낸 동화다. 소, 닭, 개, 염소 등 다른 동물가족들과 주인은 함께 힘을 모아 오순도순 다정하게 사는데, 그 중 먹을 것만 탐내고 욕심만 부리던 돼지는 앞문과 뒷문을 없애 이웃들이 먹을 걸 구걸하러 오지 못 하게 만든다. 그러나 병에 걸린 돼지는 꿀을 먹어야만 낫게 되고, 자신이 없애버린 문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가족들의 도움으로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평소에 이런 돼지같은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참 나쁘다. 어쨌거나 그 뒤로 돼지는 '꿀꿀'소리밖에 못 했다는 이야기. 너구리 이야기를 보면서는 도깨비감투 욕심을 부리는 너구리가 혼쭐이 나는 꼴을 보면서 헛된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한 게 최고다. 

 

 

68. 8월 26일, 고것참 힘이 세네 


딱 100쪽짜리 남녘동화다. 어느 마을에 이리 말해도 퉁, 저리 말해도 퉁퉁거리는 퉁이 부부가 있었다. 그래도 본디 심성은 착한지라 대문 앞에 쓰러진 거지를 도와줬는데 웃음덕에 집안이 일어날거라고 말하는 거다. 무슨 소린가 싶어 쫓아냈는데 그 다음부터 퉁이어멈의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여자아기가 쑥 튀어나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럼 퉁이는 계란으로 치자면 무정란인가. 퉁이 안에 있는 DNA는 누구의 것인가. 도깨비도 있는 세상이니 요술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잠깐 신기했다. 아무튼 퉁이의 웃음소리가 심술만 부리던 도깨비를 웃게 만들고 대궐같은 집과 젊어진 부모님까지. 웃음 덕분에 잘 살게 될거라던 거지의 말이 맞았다. 웃으면 복이 온다더니, 딱 그 짝이다. 복 많은 삼복이도 전형적인 게으름뱅이 교육용 동화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처럼, 부자 부모님에게서 나와 잔뜩 뒹굴거리며 살던(부럽다) 삼복이를 똑똑한 부인이 사람노릇하게 만든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69. 8월 27일, 이상한 귓속말 


북녘동화 특유의 요소들을 잔뜩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생소한 북한말들, 이야기 안에서 너무나 정의롭고 올바른 아이들로 그려지는(진짜일까?ㅋㅋㅋ) 북한 아이들, 우리나라와 다른 분단모임이나 나무심기 과제 등이 재미있었다. 착실한 소년이었던 순학이가 자신의 안에서 얌체같은 말만 하는 귓속말의 꾐에 꾀여 글동냥을 하고, 동무에게 답을 알려주는 등 우리나라에서는 별 문제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위신이 떨어지고 부끄러움을 당한다. 여기 나오는 아이들은 참 모두 정직하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분단모임 부분이었다. 귓속말의 꾐에 빠진 걸 안 순학이가 모두 정직하게 털어놓자 다들 순학이를 응원해준다. '우리는 귓속말을 미워하지 순학 동무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순학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동무입니다.' 아무리 동화라지만 좀 오글오글 하긴 했다. 장난꾸러기 잠병정들에 나오는 수남동무도 일과표를 그대로 지키는 아주 착실한 소년이었다. 누가 보면 북한 아이들은 모두 그런 줄 알겠다. 그래도 자신의 책임을 지켜가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긴 했다. 

 

 

70. 8월 31일~ 9월 1일,  합★체


최규석이 표지를 그렸다고 해서 알게 된 책이다. '난쏘공 쌍둥이 형제의 코믹무협 열혈성장분투기'라는, 대체 책의 내용이 뭔지 짐작도 못하게 만드는 띠지가 참.. 인상깊었다. 키가 작은 오합, 오체 형제. 합쳐서 합체. 학생인 나로서는 합과 체가 학교에서 겪을 반응들이 예상이 되었다. 왜 하필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는지.. 게다가 쌍둥이인지라 그들의 별명은 자연스럽게 '합체'가 되었다. 키가 작은 오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두근거려 하는 모습, 약수터에 있는 자칭 약수도사 계도사, 국어선생님이 읽게 시킨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읽으면서 난쟁이인 아버지를 떠올리며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는 모습들이 나오면서 개그와 현실의 씁쓸함이 잘 어우러졌다. 계도사가 알려준 비법대로 합과 체는 방학을 맞아 33일간 계룡산 '형제동굴'에 키를 키우는 수련을 하러 간다. 신비스러운 동굴의 분위기에 정말 무슨 일이 벌어날지, 기대가 됐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하루가 끝날 때까지 총 4번을 하는 수련에 점점 익숙해지는 합체. 형제동굴에 울려퍼지는 '합,체' 소리가 정말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반전을 때리다니... 짐작하지 못 한 내가 바보인건가. 들고 온 라디오에서 계도사 할아버지가 치매걸린 노인에다가 성추행으로 집에 돌아갔다는 경찰의 사연이 방송되면서, 수련을 진심으로 믿었던 체는 절망과 배신감에 빠지고 만다. 오히려 조금 덜 믿었던 합은 그나마 나았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통 뒤에는 다시 행복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계도사가 진짜 도사든, 도사가 아니든. 수련이 진짜든, 진짜가 아니라 마음의 힘이든 효과를 본 이는 있었고 합체 쌍둥이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비록 키가 한 순간에 쑥 자라는 게 아니라, 둘의 마음이 쑥 자란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바지 길이를 왜 이렇게 줄였냐,며 소리치는 학주를 피해 씩 웃는 둘의 미소가 보기 좋았다. 

  

*이틀 혹은 사흘에 걸쳐 읽으면서 교육청 사이트에 남긴 600자 감상평을 옮겨왔다.
이제 9월과 10월 기록만 옮기면 중3 막내의 6개월 독서마라톤 기록을 오롯이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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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3 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9월 기록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10-17 18:10 
    드디어 오늘 10월 17일, 6개월의 빛고을독서마라톤이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중3 막내의 9월 독서기록을 옮겨온다.   70. 8월 31일~9월 1일, 합★체 최규석이 표지를 그렸다고 해서 알게 된 책이다. '난쏘공 쌍둥이 형제의 코믹무협 열혈성장분투기'라는, 대체 책의 내용이 뭔지 짐작도 못하게 만드는 띠지가 참.. 인상깊었다. 키가 작은 오합, 오체 형제. 합쳐서 합체. 학생인 나로서는 합과 체
 
 
라로 2010-10-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다!!
지금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저도 나갔다 와서 다 읽을거에요!!

순오기 2010-10-12 04:44   좋아요 0 | URL
어제 올려두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수정했어요.
어제는 고딩 아들, 오늘은 막내 시험감독하러 가야 돼요.^^

saint236 2010-10-1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많이도 읽으셨군요. 게다가 페이퍼도 이렇게 자세하게 쓰시다니..전 귀찮아서 아직 8월에 읽은 책도 못올리고 있습니다.

순오기 2010-10-12 04:45   좋아요 0 | URL
의무적으로 기록을 남겨야 하니까~ 좀 밀려서 쓰기도 하지만 나름 성실 기록이지요.^^

hnine 2010-10-1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쓸수 있는 중3학생과 얘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

순오기 2010-10-12 04:46   좋아요 0 | URL
읽어보니 엄마보다 정리를 잘했다고 생각드는 고슴도치 엄마에요.^^

꿈꾸는섬 2010-10-1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해요. 박수~~~짝짝짝

순오기 2010-10-12 04:46   좋아요 0 | URL
작년과 올해 두번째 참여인데~ 내년에는 하지 말자 그러고 있어요.ㅋㅋ

섬사이 2010-10-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저희 아들과 같은 중3, 서로 너무 다르군요. 끙~~~

순오기 2010-10-12 04:47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둘째도 중3이군요~ 오십보 백보겠지요.^^

자하(紫霞) 2010-10-1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정녕 중3의 글솜씨란 말입니까?

순오기 2010-10-15 17:00   좋아요 0 | URL
하~ 답글이 늦었어요.
달콤한 초콜릿 덕분에요.^^

프레이야 2010-10-1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3일만에.. 대단해요.^^ 짝짝짝!!!
오기언니 닮아 정말 부지런하고 알차고 속이 깊네요.
중3이면 보통 책과 멀어지고 문제집이나 풀려고들텐데 말에요.

순오기 2010-10-15 17:01   좋아요 0 | URL
읽는 거는 아무리 두꺼운 책도 금세 뚝딱 읽는데, 사이트에 올리는 게 귀찮아서...
우리 애들은 학원이나 문제집으로부터 좀 자유로우니까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10-1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도 유전인가 봅니다.하긴 자기는 늘 텔리비전만 보면서 자식들은 공부하기를 바라는 것도 이상하지요.

순오기 2010-10-15 17:02   좋아요 0 | URL
음~ 우리애들 텔레비전도 많이 봐요. 드라마는 잘 안봐도 오락프로는 잘 봐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10-16 16:36   좋아요 0 | URL
저도 연예계 소식은 좍 끼고 있는 거 아시죠?

라로 2010-10-1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탄을 하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왜 심란할까요? 민경양이 요즘???가을타나???ㅎㅎ
으샤으샤하길 바래요~~~~.

아예 언니의 서재에 민경양의 리뷰 카테고리를 만들면 어떨까용???^^;;

순오기 2010-10-15 17:05   좋아요 0 | URL
어디 심란하다고 써 있나요?ㅋㅋ
카테고리는 진즉 해 놨는데 엄마가 게을러서 잘 안 올려요.ㅜㅜ

전호인 2010-10-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엄마의 그딸이에요.
누가 두모녀를 말릴 수 있답니까?
알라디너의 에너자이져!
그리고 주니어.
그 기가 느껴져요.
팍팍 ^*^

순오기 2010-10-15 17:07   좋아요 0 | URL
독서는 막내가 엄마보다 한 수 위~ ^^

후애(厚愛) 2010-10-1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대단해요.^^
저도 박수 짝짝짝~~~

순오기 2010-10-15 17:07   좋아요 0 | URL
아~ 후애님이다!!
오랜만에 돌아왔군요~ 반가워요!!
박수는 전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