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세 명인 우리 집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나머지 두 명은 나의 책읽기를 응원해 주는 편이다. 불편할건데도 두 사람은 내가 여기저기 흩어놓은 책에 별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별 관심이 없지만, 벽돌책을 읽고 있으면 슬며시 앞표지의 제목을 보기도 한다.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삼 개월째 읽고 있는 중이라 두 사람은 저절로 제목을 외우고 있다.

 

내가 딸아이에게 작정하고 잔소리를 좀 하려고 하면, “엄마, ‘특성 없는 남자‘, 읽어야지! 독서 동아리 얼마 안 남았잖아하며 딸아이는 자리를 피한다. 어제는 갑자기 남편이 특성 없는 남자가 누구야? 왜 특성이 없는데?”라고 물었다. 생각지도 않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살짝 당황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 얼마 전 어떤 분이 나에게 기습적으로 한 질문이 생각났다.

 

그날도 대화중간에 갑자기 질문을 받았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어요?” 또는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였을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 마들렌?”이라고 답했다. 내 대답에, 질문을 한 그 분은 순간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지만, 책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확신 있게 잘 대답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든가, 어떤 책이 좋으냐, 또는 그 책은 왜 좋은가에 대한 대답 말이다. 나에게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겐 감동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잃시찾이나 특성 없는 남자는 몇 번씩 읽어야 조금 이해되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아질 책이다. 한 책을 여러 번 읽으며 파고드는 것보다, 죽을 때까지 다 읽지 못하겠지만, 재미있고 좋은 새로운 책을 더 많이 읽기를 원하기에 매번 나의 책읽기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생각을 멈추고 남편을 바라본다. 이 사람은 내가 한 대답에 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가능성도 거의 0%에 가깝다. 당연히 내가 틀리게 말해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특성 없는 남자의 이름은 울리히야. 나이는 32세고 능력도 뛰어나고 잘 생겼어. 이 사람은 처음에 군사학교를 졸업해 장교가 되었지만 그만두고 공학을 공부하지만 또 그만두고 수학을 전공해 수학자가 되었어. 지금은 1년 정도 자신에게 인생의 휴가를 주고 있어. 울리히는 사람마다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나, 사고, 개념이 가진 고정적 특성을 거부해. 이것들을 해체시키기를 원하지. 그래서 특성 없는 남자야. 현실보다는 가능성의 영역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매사에 이론적이야. 항상 뒤에서 앞에서 한 말을 뒤집고 있어. 울리히의 말은 언제나 모호해. 울리히는 좋게 말하면 자기식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기부정과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야.”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자는 특성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울리히같은 가능성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런저런 현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일어난 일을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실현된 것으로 여긴다(3-p.605~606)’고 해석한다.



 











로베르트 무질의 저자 최성욱은 울리히는 현대인의 비실체성불안정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항상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그에게 자아는 고정되고 확실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다. 그에게 자아란 매우 잠정적이고 가변적이다. 이처럼 주체가 더 이상 고유한 실체가 아니라고 판명된다면, 이것과 연관된 불변의 특성도 더 이상 주체에게 부여할 수 없다. 무질에게 실체의 상실은 곧 특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p.198

 

울리히의 정체성은 그만의 고유한 특성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울리히의 특성은 이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데 그것은 외부 환경은 언제나 변하며, 이의 영향을 받는 울리히의 특성 역시 항상 변화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특성 없는 남자는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따라서 그에게 한 가지 고정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p.206]

 

작가 무질에 의해 특성이란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특성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특성은 보통 주어진 것이고 울리히의 아버지로 대표되는 특성 있는 남자는 언제나 그 세계를 확고히 지키려고 한다. 특성은 변화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시대와 세계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만이라면 사람들은 또 하나의 거대한 특성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울리히의 특성 없음은 변화를 받아들이되 지향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 지향점의 이해가 아직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지나치게 울리히가 정의한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가진 특성을 아무데서나 남발한다. 부담스럽다. 주어지고 선동된 특성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특성 없는 남자 2(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평행운동이 소요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요제프 황제 제위 70주년을 기념하고 오스트리아의 찬란한 정신을 도모하고자 한 애국대운동은 여러 반발에 부딪히고 각 특성을 가진 군중들은 시위에 참여한다.

 

시위현장에서 각기 다른 의지를 가진 개인들은 한순간에 단일한 의지의 군중(2, p.466)’으로 변한다. 평소에 절제와 신중함을 가진 사람이라도 군중이 되면 극단으로 밀고 가는 재주가 생긴다. 흥분하고 에너지를 방출한다. 보이지 않은 특성을 가진 이들이 조종하는 것에 저항 없이 동조한다. 보이지 않은 특성은 그들을 움직여 쉽게 자신들의 특성을 전파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가장 내적 저항이 작은 점들이다. 그들이 직접 지르기보다 그들의 선동으로 더 많이 나오는 외침, 그들의 손에 들어간 돌멩이, 그들이 폭발시키는 감정, 이것들이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서로의 흥분을 상승시킨 다른 사람들이 미친 듯이 그 길을 밀고 나아간다. 그들은 주위의 행위에 반은 강요로, 반은 해방으로 느껴지는 집단적 성격을 부여한다.

-2, p. 466]

 

지하철에서나, 동네 공원, 산책길에서 이어폰 없이 유튜브를 큰 소리로 듣는 어르신들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선동과 지시로, 그것을 절체절명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군중 심리가 무섭다. 울리히의 특성 없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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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3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누군가에게 뭘 권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반면에 뭔가에 꽂히면 악을 쓰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릅니다. 불편한 사람은 이를 선동질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 선동 속에도 엄연한 진실이 있다는 거죠. 무관심은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페넬로페 2025-12-13 10:56   좋아요 0 | URL
네, 쉽게 권하지 못하는게 맞습니다. 특히 책은 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책 마다 각자 읽는 방식이나 해석이 다 달라서요.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무관심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 같아요.

Falstaff 2025-12-13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십니다. ㅋㅋㅋ
저 다니는 도서관에서는 한 남자가 복도에서 이 책을 들고 걸으면서 몇날며칠 동안 읽더라고요. 며칠 후 개가실에서 책 구경을 해보니 책 세 권이 전부 등이 꺾여 너덜너덜.... ㅋㅋㅋ 도서관 빌런이었습니다. 그이는, 아니, 딱 그이 혼자 책 다 읽었을 겁니다. 저는 안병률 선생 번역으로 읽었는데, 그냥 활자만 읽어서 아무 생각 없습니다.

페넬로페 2025-12-13 10:59   좋아요 1 | URL
도서관의 빌런들 많지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책에 문장도 따라 적고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읽고 있어요. 3권 읽다보니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겠더라고요. 안병률 번역자의 번역은 어떤가요?

책읽는나무 2025-12-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성 없음의 특성이로군요.
특성 없는 남자는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특성이 너무 강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하겠고…음…심오합니다.
그래도 벌써 2권!
올 해는 페넬로페 님과 함께 하는 특성 없는 남자로군요.^^

페넬로페 2025-12-13 11:03   좋아요 1 | URL
특성이란 단어를 삼 개월동안 계속 생각할줄은 미처 몰랐어요 ㅎㅎ
어렵지만 무질의 시도가 조금은 이해되고 있어요.
책나무님, 이 책 소장하고 계시니 같이 읽으시죠🙂

책읽는나무 2025-12-14 13:09   좋아요 0 | URL
실은 아직 3권 다 못 갖추고 2권만 들고 있어요. 페넬로페 님의 리뷰를 다 읽고 한 번 시도해보겠습니다만…어려울까봐 자신이 없네요.^^˝
아직은 재밌는 책?에 자꾸 손길이 먼저 가네요.

yamoo 2025-12-1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펠넬로페 님 특성없는 남자 리뷰 보고 저도 읽고 있습니다! 밴빌의 <오래된 빛>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이 작품, 완전 제 취향 저격인 작품이었네요!! 저는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도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그 특유의 작가적 관념을 읽는 게 좋았는데, 무질은 훨씬 순화된 맛이 있네요. 지금 1권 딱 중간 까지 읽었는데, 이 소설은 오스트리아의 세기말 적 풍경을 캐릭터에 잘 형상화시킨 작품인 듯해요. 세기말의 불안정성을 캐릭터로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주인공 울리히고 작가는 특성없는 남자라는 성격을 부여했죠. 저는 소설에서 시대성을 캐릭터에 잘 담아내는 작품을 선호하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는 원탑이란 느낌이 팍 들고 있습니다. 아직 초반부 읽고 있지만 무질이 왜 서양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겠더군요. 무질은 줄리언 반스가 오래 전에 말한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는 걸 체험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끼도 잘 잡고 관념적 유희도 덤으로 엊어줍니다. <생도 퇴를리스의 혼란>은 재미없어 읽다 덮었는데 특성없는 남자 다 읽고 다시 들춰봐야 겠어요. 제겐 <특성없는 남자>가 올해의 발견 쯤 됩니다! ㅎㅎ 펠넬로페 님 리뷰 못봤으면 읽을 엄두를 못냈을 텐데...여튼 감사합니다!!ㅎㅎ(책은 진작에 사 두었었어요..ㅎㅎ)

페넬로페 2025-12-13 11:08   좋아요 0 | URL
yamoo님, 저와 같은 책 읽고 계신다니 너무 반가워요. <특성 없는 남자>를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질이 한 문장 한 문장을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가 다 좋습니다. 다만 이것을 제가 아직 다 연결시키지 못해 꼭 재독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줄리언 반스의 말이 실감되네요.
조만간 저도 <오래된 빛> 읽어보겠습니다.
 
아무튼, 데모 - 데모하러 간다 아무튼 시리즈 63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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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하면 떠오르는 단어인 구호, 투쟁, 스크럼, 최루탄, 물폭탄, 구금, 고문, 남영동대공분실을 정보라 작가는 타자, 고통, 관심, 이해, 연대, 참여, 실천, 나눔으로 전환시켜준다. 행동하는 지성의 정수를 보여주며, 움직이지 않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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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12-11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완독을 못 했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5-12-11 21:50   좋아요 1 | URL
저도 읽으면서 넘 부끄럽더라고요. 정보라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어서 완독하시길요.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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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해 잘 모른다. 관심과 흥미는 있지만,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머리를 타고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SF소설을 읽을 땐 약간 조심스럽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오독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 소설집의 비구름을 따라서을 읽으며 나는 반투막을 통해 이동되는 사물에서 인간의 소통을 생각했고, 요즘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금방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상품이 연상되었다. 작가의 해설에서 이 소설은 가능한 미래, 혹은 평행우주를 상상(p.379)’해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 단초가 된 소설이라고 한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과 평행우주에 대해 먼저 알고 있어야 이 소설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SF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은 김초엽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나서였다. 과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지 않지만 그 책은 읽는 순간 뭔가가 느껴졌다. 과학적 사실과 가설, 미래 세계 속에서 지금의 우리와 삶, 철학이 보였다. 무엇보다 책에 확실히 문학이 들어있어 좋았다.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기대를 많이 했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보다는 감동이 적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이 여러 목적을 두고 쓴 것이라 보편성이 약간 떨어졌고, 작가가 말하고자 한 주제가 다양하지 못했다. 소재를 사물에 많이 둔 것도 조금 지루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양면의 조개껍데기였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그 어떤 모습으로도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솜솜 피부관리숍에서는 물고기, 부엉이, 펭귄, 늑대, 고양이, 모래, 바위 등의 인공피부 제작이 가능하다. 마법사의 요술봉에 의해 한 번에 하고 변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신체적 기능을 고려한 과학적 변신이었다.

 

원래 안드로이드였던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을 받아 거의 사람처럼 보인다.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외관이 덮여있어 피부가 변할 염려도 없다. 하지만 수브다니는 물이나 산성 물질에 내구력이 높지 않는 금속 피부를 원한다. 물에 녹이 스는 금속 기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반 인간화된 수브다니는 연애도 하고, 예술도 하고, 배신도 당한다. 그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수브다니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녹이 슬어도 괜찮은 자신의 정체성으로.금속 기계로 여름휴가를 떠난 수브다니는 그곳에서 평온을 얻는다.

 

 

내 안에 분명 여러 자아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세력을 갖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동일한 힘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 셀븐인 샐리(라임)와 타자아 레몬은 성향이 완전 다른 본성들이다. 거의 독립적 개체인 그들은 한 몸에서 같이 존재하기 쉽지 않다. 둘이 뭔가의 타협을 이루었어도, 완벽하게 공평할 수 없었고, 레몬의 예민함과 스트레스로 돌발적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을 매번 느끼고 신경 써야 하는 라임은 매번 피곤하다. 라임은 자기 몸에서 레몬의 자아를 강제 분리하지만 깊은 바다 속 잠수의 위험한 상황에서 정작 레몬은 라임을 구한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자아들,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나, 그것들이 연결되고 충돌하는 세계의 나는 힘들고 아프고 외롭다. 나를 이해하고 지탱하기 버거워 나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타인을 제대로 볼 힘도 없다. ‘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생소하고 어색하다. 내 속의 자아를 분석하기도, 통합시키기도 어렵다. 그냥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구이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른다. 의무와 책임으로만 구성된 나의 껍데기가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 작가는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 굉장히 직접적인 서술로 나의 자아를 이해시킨다. 좋은 방법이었다.

 

이 소설집에서는 사물이 다양하게 나온다. 그 많은 사물에 다양한 이야기를 입히는 건 세상에 대한 시선을 넓게 갖는다는 것이다. 소통과 이해, 문제의식을 사물을 통해 서술한 작가의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안목이 특별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위해 압구정 CGV에 가야했다. 영화를 보고 그 옆의 블루보틀 카페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필 사방에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천지로 늘려있는 압구정에서 읽는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훨씬 더 진하게 그 의미가 다가왔다. 언제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은 변신의 욕구가 있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든 끝이 없다. 변하면 변할수록, 변하고 싶은 욕망이 더 생기고 자신은 잃는다. 차라리 녹슬기를 원한 수브다니가 그곳에서 절실히 이해되었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읽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카페를 나와 샤브 전골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올해의 첫 눈이 내렸다. 기분 좋은 첫 눈을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왔고, 거의 50분 정도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첫 눈은 완전 폭설로 변해있었고, 도로는 내린 눈이 두껍게 쌓여있었다. 집으로 가는 잠깐 동안 내 옷과 머리에 눈이 쌓이고, 거리의 차들 역시 눈으로 덮인 채 겨우 가고 있었다. 그 날 서울은 눈으로 교통대란이 일어났고, 경기도에 사는 어떤 사람은 퇴근 후 집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라고 했다.

 

미래의 세상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발전할 것이다. 여기 이 책에서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인간과 AI는 자연을 어떻게 상대할지 궁금하다. 그 모든 가상의 가능성, 평행 세계, 우주와 연결되는 세상이 되면 비와 눈은 오지 않을까? 자연현상은 극복되거나 아니면 그 어떤 자연환경에서도 미래의 인간은 안전할지 궁금하다. 다음 김초엽 작가의 책은 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원래도 불완전한 소통 체계에 그렇게 많은 불일치를 더할 필요가 있을까? 이상한 건 그들이 그 무수한 문자 형식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다는 거야.

이런 거죠. 원래 우리 언어는 불완전하잖아요. 기록도 불완전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문자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는 왜곡이 생겨요. 우리는 문자 그 자체에 담긴 정보로만 서로 소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문자를 이렇게 수많은 다른 꼴로 새기는 거예요. 문자로는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더 잘 전해보고 싶은 거예요. 어렵죠?”

그게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더 잘 전하고 싶어서 더 많은 불일치를 만들어내다니.

-p.127, ‘진동새와 손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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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잉어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7
비키 바움 지음, 박광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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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작가 로베르트 무질비키 바움의 소설을 동시에 읽었다. 각자의 삶이 다 다르겠지만 굵직한 국가의 운명아래 놓이는 건 비슷하기에 두 작가의 인생과 작품을 비교하게 된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되고 두 작가의 작품은 출판을 금지 당한다. 무질은 스위스로, 유대인이었던 바움은 미국으로 망명해 집필을 계속한다. 아직 완독하지 못한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에 비해 바움의 단편집 크리스마스 잉어(Der Weihnachtskarpfen)는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비키 바움의 문장은 상징이나 비유 없이 직설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에다 상황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그것이 세련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여러 감정을 유발시킨다. 이 책은 첫 번째 소설인 크리스마스 잉어에서 불행의 모습을 조금 보여주기 시작하여 점점 그것이 커져 마지막 백화점의 야페에서 정점을 이루어 터져버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외된 자의 폭발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위험하지만 황당하고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크리스마스 식탁엔 잉어 요리를 올리는 관습이 있다. 아이가 셋이 있는 라너 집안의 말리 고모는 126일부터 이 집에 와 크리스마스 요리를 준비한다. 고모의 증조모가 적기 시작해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가 들어 있는 너덜너덜한 공책을 들여다보며 고모는 부엌을 진두지휘한다. 오래 준비해온 만큼 매년 풍성하고 화려한 요리로 가득 찬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부터는 잉어는커녕 다른 재료도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런 형편에, 기어이 잉어(어리고 가늘고 빈혈기가 있는)를 구해 우여곡절을 겪는 크리스마스 잉어는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황폐함을 다룬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식탁에 오른 잉어를 보며 모두 다 죽음을 연상하며 왜 전쟁을 통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주제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여태껏 해 온 관습에 얽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시대와 환경에 맞게 살면 되는 거지 꼭 잉어를 죽여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어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말리 고모를 보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마지막 말리 고모의 큰 소리의 흐느낌은 전쟁에 대한 비판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될 수도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의 집을 자주 보여준다. 대개 그들의 집엔 큰 옷 방이 있다. 사계절 옷을 종류별로 한 곳에 정리해놓은 그 공간이 난 늘 부럽다. 작은 집에 살면 에서의 친칸 부인을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그녀의 고민은 너무 작고 오래전부터 용량이 넘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옷장대신 새 옷장을 사는 것이다. 몸이 아플 정도로 친칸 부인의 모든 촉수는 새 옷장 구매에 몰려있다. 가난한 친칸 부인의 하루는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다. 피곤하지만 쉴 틈이 없다. 식구들마다 다른 식사 시간, 청소, 시장 보기, 뜨개질, 다림질, 설거지, 재봉틀 앞에 앉아 옷 만들기, 속옷 수선과 양말 깁기.친칸 부인은 똑같은 일을 하는 수십만 부인 중의 한 사람일 뿐인 걸 알지만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녀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는, 가난한 그녀는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으며, 종종걸음 치며 가계를 꾸려나가야만 한다.

 

수중에 90마르크만 있는 친칸 부인은 비 오는 날 새 옷장을 사러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다. 형편없는 옷장도 최소한 300마르크는 필요하다. 결국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중고 옷장을 선택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앓아눕는다. 폐렴이었다.

 


제화 수습공이며 지능이 조금 낮은 열일곱 살 야페 플룬트는 백화점 진열창 안에 놓인 다채로운 빛깔의 실크 넥타이를 본다. 친칸 부인보다 훨씬 더 가난한 야페는 순간 그 실크 넥타이에 꽂히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한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그의 욕망은 집요해졌고, ‘그것은 그에게 하나의 목표이자 여정이 되었다. 야페는 돈을 열심히 모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얻고 해서 겨우 1마르크를 모은다. 백화점에 간 야페는 넥타이의 가격이 6마르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마르크의 넥타이를 원한 야페의 욕망은 1마르크의 넥타이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야페는 아무도 없는 저녁에 텅 빈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훔치기로 한다. 어두운 곳에서 넥타이를 훔치는데 성공한 그는 이 실크 넥타이가 자신의 누더기 같은 옷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때부터 백화점 순례를 시작한 야페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채 모든 물건을 손에 넣고 음식을 먹어본다. 야페는 속이 거북할 정도로 욕망에 들떠’ ‘쇼핑 놀이를 하며 광기에 사로잡힌다.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백화점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다. 백화점의 야페를 읽으며 계속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설마 야페가 더 이상 뭔가를 할까라는 우려와 점점 더 시원해지기도 하는 내 감정이 야페와 함께 춤을 추었다.

 

 

마주렌 총독의 딸이었고, 음악가 차이콥스키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던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레 폰 가브릴로는 정치적인 문제로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가브릴로프스키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은 아마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한 달에 35마르크의 연금 수급을 하고 18마르크를 집세로 낸다. 나머지로 한 달을 살아야하는 그녀는 굶주려야 하고 낡아빠진 코트와 스타킹, 구두를 대신할 새 물건을 살 수 없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애완동물인 스컹크도 있다. 그녀의 약혼자인 백작이 그녀에게 준 선물이다. 언제나 냄새를 풍기고 위험한 동물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그 동물을 차마 버릴 수가 없다. 굶주림이란 제목에 맞게 가브릴로프스키의 삶은 눈물겹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나 죽음을 응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폐렴에 걸린 친칸 부인과 백화점에서 광기어린 행동을 하고 있는 야페와 가브릴로프스키의 스컹크가 죽기를 바랐다. 친칸 부인이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건강해져도 그녀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친칸 부인의 모터는 다시 가족들을 위해 돌아갈 것이다. 야페는 어떤가? 결국 사형 당했을 것이다. 삶이 힘들어 망상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으며 매번 굶주리는 가브릴로프스키에게 스컹크는 그녀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뿐이었다. 그들에게 오만한 나를 용서해달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직 12월 초인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벌써 크리스마스 느낌이 난다. 행복과 따스함이 가득하다. 모든 것이 넘치게 빛나고 있어 이 세상이 풍요로워 보인다. 거기에 가난과 소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은총 받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끊임없이 제공되는 물질의 향연뿐이다. 마법같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앞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생각날 것 같다.

 

4개의 단편은 전체 분량이 170쪽 정도의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다. 큰 주제의 흐름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무력감과 자본주의에 의한 소외이지만 나는 그것을 떠나 각 인물의 삶이 먼저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이 있든 없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거기서 오는 무게감은 변함이 없다.

 

하필 크리스마스는 겨울에 있다. 겨울에 읽는 이 소설은 나에게 많은 우울감을 주었다. 절절했던 그들의 삶, 또는 나의 삶이 무거운 눈에 가지가 부러지는 나무처럼 나약하게 보인다.

 

 

[“병에 걸리면 안 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오늘은 그녀의 모터가 다시 제대로 작동했다. 어제 다른 강둑으로 밀어 보내 막연하게 피했던 의무를 오늘은 다시 되찾았다. 오늘 그녀는 건강의 회복을 과업으로 받아들였다.

-‘중에서

 

몸이 불타면서 그는 파멸이 불러오는 넘쳐흐르는 끝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1층부터 4층까지 사방이 불길에 덮여 바닥이 퍼렇게 녹아 움직이고, 아래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났다. 기이한 것은 불이 강물처럼 넘치는 가운데 이상한 침묵과 평온함이, 일종의 고요와 적막이 이 광란 속에 흘렀다는 것이다.

-‘백화점의 야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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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12-06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2-07 0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5-12-09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젠 오스트리아 작가까지 읽으시는군요~!! 뭔가 작품의 상황이 다 아이러니 하네요~!!

페넬로페 2025-12-09 21:58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오래간만이예요.
잘 지내시죠?
우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도작가님의 <가난한 사람들>이 연상되더라고요.
 

사장은 원래 단단한 재료로 조각을 하다가 유동적이고 쉽게 뭉개지는 재료로 넘어왔는데, 그랬더니 형상을 조형하는 방식도, 감각하는 방식도, 상상하는 방식도 바뀌더래요. 사장은 이런 생각에 도달했죠.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바뀌지 않을까? 우리가 매끈한 가죽과 살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까끌까끌한 털로 뒤덮인 존재라면, 혹은 석고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잘 부스러지는 존재라면? 인간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매끈한 피부는 인간의 본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미치고 있을까? - P15

음, 사장의 표현대로 그건 몹시 실험적이었어요. 그 정도로 과감한 피부라면 재료가 본질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한 가지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었어요.
"어, 좋아요. 그런데 ・・・・・・ 대체 누가 이런 피부를 원하는 거예요?"
제가 묻자, 사장이 눈을 또르르 굴리더니 "글쎄, 꽤 많은사람이?" 하고 대답했던 게 기억나요. - P16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줘요. 그 욕망 중 쉽게 승인되는 것들은 거대한 시장을 이루죠. 하지만 승인받지 못한 욕망들도 결국은 어디론가 흘러들어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요. 그런 갈망은 쉽게 떨쳐버릴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 P17

맞아요.그동안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균열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잘 밀봉해왔다고 믿었지만 한번 틈이 생기면, 사실은 그 전에도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죠. 계속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위태로웠는데, 겉으로는 부서지지 않았으니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견디다 못해 빠그작, 이미 갈라졌고요" - P64

원래도 불완전한 소통 체계에 그렇게 많은 불일치를 더할필요가 있을까? 이상한 건 그들이 그 무수한 문자 형식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다는 거야.
"이런 거죠. 원래 우리 언어는 불완전하잖아요. 기록도 불완전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문자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는왜곡이 생겨요. 우리는 문자 그 자체에 담긴 정보로만 서로소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문자를 이렇게 수많은 다른 꼴로 새기는 거예요. 문자로는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더 잘 전해보고 싶은 거예요. 어렵죠?"
그게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더 잘 전하고 싶어서 더 많은불일치를 만들어내다니.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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