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퍼시벌 에버렛 작가의 소설 제임스를 읽기 위해 먼저 이 두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동화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어 계속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있다. TV에서 방영된 만화도 여러 번 봤다. 특히 톰 소여가 폴리 이모의 명령으로 높이가 3미터나 되는 30m 판자 담장을 회반죽으로 칠해야 할 때, 그의 기지로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담장을 칠하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 부분은 책의 처음에 속하는데 그동안 내 기억은 딱 여기에서 멈추었던 것 같다.

 

그 뒤의 내용은 이제껏 한 번도 읽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웠다. 개구쟁이 톰,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년은 황당하고도 게걸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머리 회전이 빠르고(조금 나쁜 쪽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먼저 깨우친 톰은 꼬마 갱단의 리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꾀바르고 능청스럽기도 한, 밥 먹듯이 하는 속임수나 거짓이 장난이나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톰은 소년이었고 성장하고 있었다.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고, 가족을 생각하며, 결정적일 때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낼 줄 알았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허클베리 핀은 동네에서 이름난 주정뱅이의 아들이자 부랑 소년으로 서술된다. 동네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제멋대로인 데다 상스럽고 질이 좋지 않은 아이로 소개된다. 심지어 담배도 피운다. 만약 이번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헉을 그렇게만 생각했을 거고 영원히 톰에 붙은 곁가지라고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 톰의 모험은 딱히 별 거 아닌 게 된다. 톰은 그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헉은 여러 지역을 오가며 모험을 벌인다. 거기엔 흑인 노예 짐이 함께 있다. 헉은 아버지의 폭력과 더글라스 부인과 왓츤 부인의 양육, 학교, 사회의 구속과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짐은 주인인 왓츤 부인이 그를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친다. 이유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같다. 둘 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다.

 

자유를 찾으려는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다. 백인이지만 어리다는 것과 도망자의 신분인 흑인 노예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의심과 탐욕의 대상이 된다. 특히 흑인 노예에 대한 그 당시의 가혹한 폭력은 지금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다. 소설 전반에 있는 거짓과 속임은 헉과 짐이 자신들 앞에 놓인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부분이 힘들고 지루했다. 하지만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마지막에 황당하지만 톰이 등장했던 것도 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그 당시 사회의 폭력과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선한 방법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인인 헉은 짐이 도망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도와준다. 백인은 누군가 다른 백인이 도망자인 흑인 노예를 고발하지 않는다면 깔봐도 되는 시절이었다. 헉은 평등주의자도 아니고 거창한 인류애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헉은 짐을 고발하지 않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거두고 교육시켜준 왓츤 아줌마에게 지독한 짓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비열하고 비참해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마저 든다. 그럼에도 헉은 자유를 갈망하는 짐을, 자신을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는 짐을 고발하지 못한다.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자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짐을 도와주고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요즘 아이들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잘 모른다. ‘흔한 남매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톰과 헉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로 그 시대를 살렸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과 여러 실제 인물이 녹아 있어 우리가 그 시대로 들어가 이 글을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이 두개의 소설 내용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과연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헉은 짐이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살다 살다 이런 검둥이는 난생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헉과 짐이 솔로몬 왕의 재판에 대해 얘기할 때, 짐은 솔로몬이 아이를 반쪽으로 나눠 두 여자에게 준다는 판결에 분노한다. 그것은 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반쪽짜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재판은 반쪽이 아닌 완전한 애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짐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웃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의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헉이 짐에게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자 짐은 요점 같은 소리 하지 말랑게 그러네! 내사 알고 있는 건 알고 있다고 생각헝게. 정말이지, 요점이라는 건 좀 더 멀리, 좀 더 깊은 데 있는 거제. 그건 솔로몬이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당께. 솔로몬에게는 애새끼 하나둘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랑께라고 말한다.

 

솔로몬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할 수 있다. 요점은 좀 더 깊이 있는 것이고 사람은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결국 헉과 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운명을 거부하고 모험을 시작하지만 그 둘의 끝은 다르다. 짐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의 소유주인 왓츤 부인의 유언으로 자유를 찾는다. 반면 헉은 교양 있는 세계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인디언이 사는 지역으로 떠난다. 장난꾸러기 톰이 신사의 세계를 선택했다면 헉은 톰과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문명과 속박에 얽매이지 않은, 야생에서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결국 자유를 찾은 헉과 짐의 여정은 헛되지 않았지만 능동과 수동의 차이는 엄청나다. 짐의 자유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자유는 불안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수록된 삽화,

전자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다운로드 함






 

 







2024 전미도서상커커스 프라이즈, 2025년 퓰리처상브리티시북어워드를 수상한 제임스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소설이다. ’허클베리 핀이 백인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제임스는 철저히 흑인 노예 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제임스는 짐의 완전한 이름이다. 짐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그런 이유로 여기에는 마크 트웨인의 글보다 훨씬 더 많은 흑인 노예의 비참한 삶이 들어있다. 그들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대하는데 거침없는 백인들의 생각과 행동도 그대로 전달된다.

 

소설 제임스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과정이 거의 그대로 진행된다. 이 두 소설이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그 두 소설에 등장하는 똑같은 사람인 흑인 노예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제임스는 헉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이 많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구속하는 잘못된 법과 볼테르, 루소, 로크의 자유론과 관용론을 비교할 수도 있다.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제임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계급 사회의 모순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합리적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숨기고 흑인의 말을 사용해야 하며, 무조건 백인에게 순종해야 한다.

 

영화 노예 12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악랄한 백인 주인이 일요일에 목사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흑인 노예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진행하며 천국에 대해 설교한다. 참고 견디면 끝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노예들에게 심어준다. 제임스는 그런 종교를 비판한다. 백인 주인은 언젠가 하느님이 줄 보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이 받을 처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는 그저 그들이 편리할 때만 신봉하며 사용하는 통제 수단일 뿐이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헉과 제임스는 같이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제임스가 헉을 떠나지 않는다. 오로지 절체절명의 생존 자체가 목표인 제임스를 위해 헉은 여기서도 계속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한다. 가장 좋은 친구 사이인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백인과 유색 인종의 경계적 인물인 헉은 보다 더 성숙한 노예해방론자가 되어 있다.

 

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 원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재해석도 성공적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억지스러움과 황당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퍼시벌 에버렛 작가는 그런 모험적인 시도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불평등은 잘못된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사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엔 수만 가지의 법과 철학, 사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다만 떠나고 투쟁하며 쟁취하기 위한 기본이 읽고 쓰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한 노예의 죽음으로 얻은 몽당연필과 훔친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중인물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은 다름 아닌 미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이다(p.650, 작품 해설 중에서)‘ 이러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미국 정신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여전히 유효한가?

 

[믿음은 진실과 아무 관련도 없어. 좋을 대로 믿으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 백인 소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어도, 어쨌든 백인 소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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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26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니 빠진 허크 씩씩한 소년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 저 멀리 증기선이 부웅~ 붕........
허클베리 핀 만화영화 주제곡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제임스는 영화의 스핀오프를 떠올리게 하네요. 독립적이지 않은, 시점 전환된 스핀오프 느낌이랄까요. 흥미로운 소설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6-02-26 21:00   좋아요 0 | URL
제가 위의 글에도 썼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어요.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소설 제임스 덕분이었어요.
이 작품이 스핀오프 맞는데, 심하게 전환된 면도 있어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잘 만들어 진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6-02-26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심장이 쫄깃할 때도 제법 있었구요. 제임스가 말 똑바로 할 때 좀 통쾌했어요. 근데 진짜 그 백인들은 흑인들이 짐승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페넬로페 2026-02-26 23:1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좋았어요.
마크 트웨인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세밀하게 잘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아유, 그럼요.
백인들이 흑인에게 가했던 폭력은 정말 우리가 상상도 못할 것들이 수두룩 할거예요.

감은빛 2026-02-27 0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핀오프 라는 개념은 주로 미국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봤었는데, 문학 작품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고, 또 상을 받고 유명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이 책을 읽기 위해 마크 트웨인의 두 소설을 먼저 읽으신 페넬로페님 대단하세요. 덕분에 제가 읽었던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에 대해 한참 기억을 떠올려봤는데, 어릴 때여서 별로 생각나는 장면이 없네요.

페넬로페 2026-02-27 08:12   좋아요 0 | URL
어릴 때 동화로 재미있게 읽은 이 소설들에 제가 기억하지 못한 다른 내용들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몰랐어요. 그 시대 미국 남부의 모습이 저랬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제임스 읽으면서 백인이 가한 흑인 노예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yamoo 2026-02-27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합니다~~^^

페넬로페 2026-02-27 11: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6-02-27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 소여의 모험 만화 영화 엄청 좋아했었는데 저도 떠올려보면 톰이 벌을 받아서인가? 담장에 페인트 칠을 하던 장면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리고 허클베리 핀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라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핀을 싫어해서 나도 어린 맘에 세뇌를 당했던 듯도 하고…부랑자같은 모양새도 좀 그랬었고..ㅋㅋ
근데 책을 읽어보면 그동안의 편견을 확 깨버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안그래도 며칠 전 아기공룡 둘리 이야기를 우연찮케 유튜브로 보다가 고길동 아저씨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어요. 어릴 땐 고길동 아저씨 엄청 못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봤었거든요. 근데 둘리 일당들이 엄청난 말썽꾸러기들이더라는…
암튼 이 책은 인종 차별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겠군요.

페넬로페 2026-02-27 19:03   좋아요 1 | URL
그때는 어린 마음에 폴리 이모가 톰을 구박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모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ㅎㅎ
허클베리는 이번에 제대로 읽었는데 이 소설에 이렇게나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어요.
둘리 이야기도 새롭게 들려요. 저도 고길동 아저씨가 너무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임스 읽어보니 그 시절 흑인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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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로 되돌아간다. 굳어지고 완고해진, 온전하지 못한 기억 속에서 성기고 희미해진 빛을 따라 움직인다. 기억의 숲에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오래된 빛은 나를 왜곡되거나 잘못된, 또는 혼란스러운 길로 안내한다. 설령 확실하게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지나간 인생의 밝은 빛조차 완벽하게 재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식으로 해석되고 비틀어진 그 기억들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무슨 단어로 그 느낌들을 생생하고도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 존 밴빌은 제목 그대로 <Ancient Light>를 따라 한 남자의 50년 전과 10년 전의 과거, 현재를 오가며 집요하게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준다. ’알렉산더 클리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그의 15세 때의 몇 달에 대해-‘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우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p.14)’-서술한다. 매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했지만, 하이픈으로 연결된 부연설명이 가득한 삽입구가 읽기를 방해했다. 마치 영어 독해를 할 때, 주어 찾기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기억의 파편 조각들을 짜 맞춰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작가는 그런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거의 끝부분까지 힘들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를 했고, 결국 나에게 감동과 여운, 무수한 생각을 하게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0년 전, 15세의 소년 앨릭스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봄바람에 치마가 뒤집어져 팬티가 노출된 어떤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처음엔 그를 향해 하늘에서 곧장 덮쳐 내려오는 듯한 여신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의 엄마 같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것이 앨릭스와 가장 친한 친구인 빌리 그레이의 엄마인 미시즈 그레이(실리아 그레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 빌리의 집에서, 거울 속에 자신의 나신을 비추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또 다른 거울을 통해 엿 본 그는 그녀를 향한 수줍지만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하지만, 사실 그 대상이 늘 배경에 불과한,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의 모습이기도 한 미시즈 그레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이 한 사춘기 소년의 성을 자극했고 그는 어떤 다른 여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테니스 클럽에서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시즈 그레이는 소년을 차에 태우고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질문한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p.61)” 이 말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왜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들의 친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소설의 끝에 그 당시 미시즈 그레이의 사정이 조금 밝혀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나 도덕적 심판이 아니었다. 계속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드는 의문점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의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한 번의 일탈로 거침없이 시작된 육욕의 향연이었는지, 그 일탈이 소년에게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미안함의 책임이었는지, 답답한 시골구석에 갇혀 사는 중년 여자의 몸부림이었는지.....결국 이 모든 것이 노년이 된 알렉산더의 회상이기에 그 역시 추측과 자신의 생각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알렉산더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10년 전 임신한 채 자살한 알렉산더의 딸 캐스로 인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아내 리디아의 현재의 모습. 또한 악셀 판더(문인, 비평가, 교사)‘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알렉산더와 그의 상대배우인 돈 데번포트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사원인 빌리 스트라이커의 인생에 대해서도 나이 든 알렉산더는 관심을 갖는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날 하루를 감당하며살아간다. 각자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 늙어버린 알렉산더 역시 아픔과 회한을 가진 채 하루를 감당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준 쓰라림을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순명으로 승화시킨다. 딸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밤새 광증에 시달린 아내 리디아를 진정시키고 힘들어 둘이 침대에 누웠을 때, 커튼 사이의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빛이 들어와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의 형태로 보이는 바깥세상의 이미지는 아름다웠다. 새벽빛에 비친 선명하게 뒤집힌 세상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 완벽하게 슬픈 것도, 온전히 기쁜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오래된 빛에는 몇 개의 단편 소설로 출간해도 좋을 풍성한 내용들이 서로 교차되며 서술된다. 매 페이지마다 단편 소설 하나가 들어있다고 느낄 정도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단어 하나마다에 들어있는 비유도 좋았다. 구절구절 멈추어, 작가 존 밴빌, 아니 소년 앨릭스 그리고 노년이 된 알렉산더와 얘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고 공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 많은 아름다운 문장의 감상을 표현하기 어려워 책을 들고 카페에 간 날이 많았다.

 

산책길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햇빛에 완전히 노출된 사진보다 빛이 살짝 들어간 사진이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세상 모든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없듯, 노년에서 바라 본 과거는 전체적인 난파 속에서 건져 낸 무작위적인 표류물(p.14)’일 뿐이다. 그것들로 고해성사를 하든, 미숙함에 대한 어리석음을 인정하든, 지나온 인생의 여정은 그 어떤 것이라도 슬프고 아름답다. 여전히 모호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삶의 전진적인 난파에 부표가 되어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여러 우주가 있고 그것이 모두 함께 존재하며 모두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키티의 낙원의 평원과 마찬가지로, 이 무한한 층이 있고, 무한히 가지를 뻗는 현실 안 어딘가에서도 캐스는 죽지 않았고, 그애의 아이가 태어났고, 스미드리가일로프는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또 미시즈 그레이가 살아남았고,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젊고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듯이. 어떤 영원한 영역을 믿어야 할까.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나의 모든 죽은 자는 어차피 나에게 다 살아 있고 나에게 과거란 영원히 빛나는 현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다 살아 있지만 사라졌다. 이렇게 말들로 이루어진 연약한 내세에만 있을 뿐.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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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26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이란 빛처럼 한 순간에 왔다가 사라지거나, 또 잠시 길게 남아 있기도 하네요.
올려주신 리뷰글을 읽으니 소설의 이미지가 빛처럼 다가 왔네요. ^^
항상 좋은 책, 좋은 리뷰에 감사드리며,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좋은 글을 말의 등에 태운 것처럼 올려 주세요. ㅎㅎ
감사 합니다.

페넬로페 2026-02-26 11:09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제목처럼 빛의 이미지가 많아요. 어떤 삶을 살았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빛의 이미지로 다가올 것 같아요.
요즘은 과거를 회고하는 글이 그 어떤 내용이라도 좋아요.
삶의 관조와 여운, 씁쓸함이 느껴져 그런가봐요.
항상 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힐님께서도 올 한해 건강하게 보내시고 언제나 타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레삭매냐 2026-03-0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다 말았는데...

도서관에 가서 다시 빌려다
마저 읽어야지 싶습니다.

존 밴빌의 다른 소설인
<블루 기타>의 국내 출간
을 기대해 봅니다.
 
부다페스트 - 화려한 영광과 찬란한 시련의 헝가리 역사
빅터 세베스티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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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을 읽기 위해 읽은 책.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격동의 역사를 서술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읽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집약적이고 흥미로운 구성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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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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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베르 카뮈에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이름이 있다. 번역가 김화영 선생이다. 그가 카뮈의 많은 작품을 번역했기에 결혼여름도 김화영 선생의 번역으로 읽고 싶었다. 그러나 녹색광선 출판사의 표지에 마음이 바뀌었다. 바람에 넘실대는, 흰 포말이 가득한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닷가에서 한 쌍의 남녀가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의 제목인 결혼과 완벽히 어울렸기 때문이다.

 

결혼여름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카뮈의 연예사와 결혼에 대한 것 인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에 카뮈 자신은 물론, 그 어떤 남녀의 사랑에 대한 것도 들어있지 않다. 제목과 책표지에서 내가 오해하고 착각한 것이었다. 물론 이건 나의 책임만은 아니다. 출판사의 책표지 역시 한 몫 한 셈이다. 결혼여름1936년에서 1937년 사이에 쓴 에세이를 모은 결혼, 1939년에서 1953년 사이에 쓴 에세이를 모은 여름을 한데 묶은 책이다.(p.9)

 

여기에서 카뮈가 선택한 단어인 결혼은 작가의 알제리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카뮈가 태어나서 자란 알제리에 대한 경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느끼는 무한한 애정과 같다. 알제리의 강렬한 태양과 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카뮈에게 지금 이 순간의 환희와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다음 생을 삭제시켜 버린다. 현실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들 인생의 목표이자 가치인 것이다.

 

나에게 알제리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페스트를 통해 먼저 보고 들은 나라다. 이 책에서 카뮈가 여행하며 서술한 알제리의 도시인 티파사, 오랑, 제밀라, 알제는 여전히 나에게 이국적이다. (나의 남은 생 동안 이곳에 가보기는 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너무 이국적이라 상상만으로는 카뮈의 표현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길목에서 만나게 될 아름다움, 슬픔, 행복, 죽음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가진 삶의 열정과 감정을 모두 소진할 필요를 말해준다. 애써 남기고 맹세하며 인내하여 신의 약속을 받아낼 이유도 없다고 한다. 카뮈가 서술한 결혼에서 그의 소설 이방인의 의미가 뚜렷하게 보인다.

 

'봄에 티파사엔 신들이 머문다(p.19)’로 시작하는 티파사에 대한 자연찬미는 살아가는 동안 명심해야 할 기본 조건을 가르쳐준다. 편견에 맞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고 생활의 기술인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고, 거기에 자유가 있다.

 

침묵과 황폐함이 지배하는, 사멸한 도시인 제밀라에서는 그 어느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내일도, 다른 날도 오늘과 같을 것인 우리의 현존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거부라고 카뮈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훗날을 거부하고 내 앞에 놓인 현재의 풍요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내 현존의 불안과 무력함을 없애는 것이다. 거기에 나머지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여유만 있다면 그럭저럭 우리는 이 세계에 머물 수 있다.

 

카뮈의 알제에 대한 사랑에는 그곳에서 살아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감정과 위트가 있다. 알제는 자연의 혜택이 넘쳐난다. 가르침, 약속, 암시도 없이 그저 아낌없이 내주는 곳이라 그곳에서 맘껏 누리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움과 가난이 공존한 알제에서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젊음을 소진하고 곧바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수영을 때리고’, 여인들에게 다가가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짧은 찰나를 그들은 즐긴다. 나머지 세월을 뒷골목의 카페에서 수다로 보낼지언정. 알제의 시민은 청춘을 만끽하고 서른 살이 되면 다 쓰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나머지 삶을 살아간다. 부모가 되고 자식을 키우며 인생의 끝을 기다린다. 서울 시민들이 절대 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우리의 나머지 생은 안정되고 풍요로운가? 걱정은 없으며 행복한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알제인처럼 우리에게도 자부심이 있는가?

 

[한 존재와 삶 사이에 단순한 일치가 행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른단 말인가? 또한 장수하고 싶은 욕망과 죽을 운명에 대한 이중의 자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조화가 더 온당하게 인간과 삶을 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오직 현재만을 우리에게 덤으로주어진 유일한 진실로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내가 나의 척도와 만족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도록 내버려 두란 말이다! 아니 그럴 것도 없이 눈에 보인다. 피에솔레, 제밀라, 그리고 햇빛을 받고 있는 항구들이. -p.71~72]

 

 

1939년 이후에 쓴 에세이를 모은 여름은 지중해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소설 페스트의 도시인 오랑, 레 콩쉴 계곡의 아몬드 나무, 유럽의 여러 도시, 남아메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토스카나의 화가,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아이스킬로스, 프로메테우스, 헬레네, 신화, 전쟁을 넘나들며 카뮈는 순례자가 된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는 인간의 부름과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이 대면할 때 탄생한다고 했다. ‘수수께끼에서 그는 작가의 부조리에 대해 서술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대중은 그저 신문의 기삿거리 하나로 작가를 알게 된다. 대중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신문기자가 만들어낸 작가의 이미지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작가는 명성을 얻게 된다. 작가가 여러 작품을 쓸 필요도 없다. 보통 작가는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작품을 위해 술도 마시지 않지만 대중은 작가가 해롱거리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을 거라 믿는다.

 

또한 작가가 책에 쓴 내용이 작가 자신의 얘기가 분명 아닌데도 대중은 그것이 작가 본인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카뮈는 그것이 낭만주의가 물러준 유치한 유산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한 인간의 작품들은 대체로 그가 느끼는 향수나 유혹의 역사를 되짚은 것이지, 실제 자신의 이야기인 경우는 거의 없다....어떤 작가도 감히 자신을 곧이곧대로 묘사하지는 못한다(p.156)’고 말하고 있다.

 

김화영 선생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과 더불어 카뮈의 결혼여름20세기 프랑스 3대 시적 산문이라고 했다. 확실히 카뮈가 쓴 이 에세이는 아름답고도 철학적이며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녹색광선 장소미 선생의 번역은 현대적이고 깔끔하지만 카뮈 문장의 아름다움이 살짝 덜 묻어나오는 것 같아 아쉬웠다. 김화영 선생의 번역에 비해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카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알제리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프랑스의 알제리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알제리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카뮈의 어머니는 알제리에 계속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택하여 프랑스 정부를 옹호했다. 카뮈는 알제리 자치권을 인정하거나 연방정부를 구성하면 알제리계 프랑스인과 아랍인들 간의 공존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으며, 알제리의 완전 독립에는 부정적이었다. 전쟁기간 동안 양측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전협정을 위해 헌신했으며 체포된 알제리인들을 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기도 했다.(작가연보 중, 1954) 나는 카뮈의 인간 실존과 부조리 사상을 좋아하지만 그의 알제리의 독립에 대한 생각에는 항상 실망한다.


젊은 시절의 카뮈는 배우 알랭 들롱을 닮았다.


[우리가 남에게 어떻게 비치든 어떤 온당치 않은 자리를 차지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누구이고 마땅히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만으로도 삶을 채우고 노력을 쏟기에 충분하다.....또한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우리의 책무는 모든 단어들을 동원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 노력하는 것임을 배웠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찾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마다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젠가는 모두가 찾아와 불타오를, 숨어있는 태양의 중심에서 좀 더 가까이 맴돌 것이다. -p. 15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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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2-02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화영 선생이 번역한 책을 갖고 있는데, 언제 읽게 될지...

페넬로페 2026-02-02 16:4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한 번에 이해가 잘 안되어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어요.
계속 읽으니 뭔가 의미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다음엔 김화영 선생 버전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요.

카리나 2026-02-03 0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애정하는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받아서 읽고있는데
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매일 표지만 보고 있어요ㅎㅎ

사실 읽기 시작은 했는데 이해가 잘 안되어서 꾹꾹 눌러읽고 있는 중이에요..

페넬로페님에게도 어려웠다고 하니 조금 위로가 되네요.다 읽고 페넬로페님 글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6-02-03 09:40   좋아요 1 | URL
책표지 정말 멋지죠? ㅎㅎ
저렇게 누군가를 기쁘게 사랑해 본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책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계속 반복해서 읽었어요. 그랬더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게 조금은 보였어요.

이 책에는 여러 사유가 있는데 작가가 인용한 것들을 우리가 그동안 다 읽어냈다는 것에 자부심 뿜뿜하더라고요.

카리나님, 계속해서 열심히 읽어보자고요, 화이팅♡♡♡

그레이스 2026-02-03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때문에 탐나네요
저도 다른 출판사로 있는데,,, ㅠㅠ

페넬로페 2026-02-03 10:40   좋아요 0 | URL
정말 표지가 한 몫 했죠!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 고아 소년 “존”의 근대로의 여정 (1881~1918)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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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김규식의 삶과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근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김규식에 대한 자료를 추적해 평전을 완성한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완벽한 평전이지만, 책의 자세한 내용과 높은 가격으로 대중에게 멀어지고 학술서의 역할만 할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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