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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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로 되돌아간다. 굳어지고 완고해진, 온전하지 못한 기억 속에서 성기고 희미해진 빛을 따라 움직인다. 기억의 숲에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오래된 빛은 나를 왜곡되거나 잘못된, 또는 혼란스러운 길로 안내한다. 설령 확실하게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지나간 인생의 밝은 빛조차 완벽하게 재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식으로 해석되고 비틀어진 그 기억들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무슨 단어로 그 느낌들을 생생하고도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 존 밴빌은 제목 그대로 <Ancient Light>를 따라 한 남자의 50년 전과 10년 전의 과거, 현재를 오가며 집요하게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준다. ’알렉산더 클리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그의 15세 때의 몇 달에 대해-‘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우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p.14)’-서술한다. 매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했지만, 하이픈으로 연결된 부연설명이 가득한 삽입구가 읽기를 방해했다. 마치 영어 독해를 할 때, 주어 찾기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기억의 파편 조각들을 짜 맞춰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작가는 그런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거의 끝부분까지 힘들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를 했고, 결국 나에게 감동과 여운, 무수한 생각을 하게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0년 전, 15세의 소년 앨릭스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봄바람에 치마가 뒤집어져 팬티가 노출된 어떤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처음엔 그를 향해 하늘에서 곧장 덮쳐 내려오는 듯한 여신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의 엄마 같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것이 앨릭스와 가장 친한 친구인 빌리 그레이의 엄마인 미시즈 그레이(실리아 그레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 빌리의 집에서, 거울 속에 자신의 나신을 비추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또 다른 거울을 통해 엿 본 그는 그녀를 향한 수줍지만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하지만, 사실 그 대상이 늘 배경에 불과한,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의 모습이기도 한 미시즈 그레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이 한 사춘기 소년의 성을 자극했고 그는 어떤 다른 여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테니스 클럽에서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시즈 그레이는 소년을 차에 태우고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질문한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p.61)” 이 말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왜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들의 친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소설의 끝에 그 당시 미시즈 그레이의 사정이 조금 밝혀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나 도덕적 심판이 아니었다. 계속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드는 의문점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의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한 번의 일탈로 거침없이 시작된 육욕의 향연이었는지, 그 일탈이 소년에게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미안함의 책임이었는지, 답답한 시골구석에 갇혀 사는 중년 여자의 몸부림이었는지.....결국 이 모든 것이 노년이 된 알렉산더의 회상이기에 그 역시 추측과 자신의 생각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알렉산더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10년 전 임신한 채 자살한 알렉산더의 딸 캐스로 인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아내 리디아의 현재의 모습. 또한 악셀 판더(문인, 비평가, 교사)‘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알렉산더와 그의 상대배우인 돈 데번포트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사원인 빌리 스트라이커의 인생에 대해서도 나이 든 알렉산더는 관심을 갖는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날 하루를 감당하며살아간다. 각자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 늙어버린 알렉산더 역시 아픔과 회한을 가진 채 하루를 감당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준 쓰라림을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순명으로 승화시킨다. 딸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밤새 광증에 시달린 아내 리디아를 진정시키고 힘들어 둘이 침대에 누웠을 때, 커튼 사이의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빛이 들어와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의 형태로 보이는 바깥세상의 이미지는 아름다웠다. 새벽빛에 비친 선명하게 뒤집힌 세상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 완벽하게 슬픈 것도, 온전히 기쁜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오래된 빛에는 몇 개의 단편 소설로 출간해도 좋을 풍성한 내용들이 서로 교차되며 서술된다. 매 페이지마다 단편 소설 하나가 들어있다고 느낄 정도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단어 하나마다에 들어있는 비유도 좋았다. 구절구절 멈추어, 작가 존 밴빌, 아니 소년 앨릭스 그리고 노년이 된 알렉산더와 얘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고 공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 많은 아름다운 문장의 감상을 표현하기 어려워 책을 들고 카페에 간 날이 많았다.

 

산책길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햇빛에 완전히 노출된 사진보다 빛이 살짝 들어간 사진이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세상 모든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없듯, 노년에서 바라 본 과거는 전체적인 난파 속에서 건져 낸 무작위적인 표류물(p.14)’일 뿐이다. 그것들로 고해성사를 하든, 미숙함에 대한 어리석음을 인정하든, 지나온 인생의 여정은 그 어떤 것이라도 슬프고 아름답다. 여전히 모호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삶의 전진적인 난파에 부표가 되어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여러 우주가 있고 그것이 모두 함께 존재하며 모두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키티의 낙원의 평원과 마찬가지로, 이 무한한 층이 있고, 무한히 가지를 뻗는 현실 안 어딘가에서도 캐스는 죽지 않았고, 그애의 아이가 태어났고, 스미드리가일로프는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또 미시즈 그레이가 살아남았고,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젊고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듯이. 어떤 영원한 영역을 믿어야 할까.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나의 모든 죽은 자는 어차피 나에게 다 살아 있고 나에게 과거란 영원히 빛나는 현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다 살아 있지만 사라졌다. 이렇게 말들로 이루어진 연약한 내세에만 있을 뿐.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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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 화려한 영광과 찬란한 시련의 헝가리 역사
빅터 세베스티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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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을 읽기 위해 읽은 책.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격동의 역사를 서술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읽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집약적이고 흥미로운 구성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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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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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베르 카뮈에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이름이 있다. 번역가 김화영 선생이다. 그가 카뮈의 많은 작품을 번역했기에 결혼여름도 김화영 선생의 번역으로 읽고 싶었다. 그러나 녹색광선 출판사의 표지에 마음이 바뀌었다. 바람에 넘실대는, 흰 포말이 가득한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닷가에서 한 쌍의 남녀가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의 제목인 결혼과 완벽히 어울렸기 때문이다.

 

결혼여름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카뮈의 연예사와 결혼에 대한 것 인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에 카뮈 자신은 물론, 그 어떤 남녀의 사랑에 대한 것도 들어있지 않다. 제목과 책표지에서 내가 오해하고 착각한 것이었다. 물론 이건 나의 책임만은 아니다. 출판사의 책표지 역시 한 몫 한 셈이다. 결혼여름1936년에서 1937년 사이에 쓴 에세이를 모은 결혼, 1939년에서 1953년 사이에 쓴 에세이를 모은 여름을 한데 묶은 책이다.(p.9)

 

여기에서 카뮈가 선택한 단어인 결혼은 작가의 알제리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카뮈가 태어나서 자란 알제리에 대한 경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느끼는 무한한 애정과 같다. 알제리의 강렬한 태양과 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카뮈에게 지금 이 순간의 환희와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다음 생을 삭제시켜 버린다. 현실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들 인생의 목표이자 가치인 것이다.

 

나에게 알제리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페스트를 통해 먼저 보고 들은 나라다. 이 책에서 카뮈가 여행하며 서술한 알제리의 도시인 티파사, 오랑, 제밀라, 알제는 여전히 나에게 이국적이다. (나의 남은 생 동안 이곳에 가보기는 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너무 이국적이라 상상만으로는 카뮈의 표현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길목에서 만나게 될 아름다움, 슬픔, 행복, 죽음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가진 삶의 열정과 감정을 모두 소진할 필요를 말해준다. 애써 남기고 맹세하며 인내하여 신의 약속을 받아낼 이유도 없다고 한다. 카뮈가 서술한 결혼에서 그의 소설 이방인의 의미가 뚜렷하게 보인다.

 

'봄에 티파사엔 신들이 머문다(p.19)’로 시작하는 티파사에 대한 자연찬미는 살아가는 동안 명심해야 할 기본 조건을 가르쳐준다. 편견에 맞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고 생활의 기술인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고, 거기에 자유가 있다.

 

침묵과 황폐함이 지배하는, 사멸한 도시인 제밀라에서는 그 어느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내일도, 다른 날도 오늘과 같을 것인 우리의 현존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거부라고 카뮈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훗날을 거부하고 내 앞에 놓인 현재의 풍요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내 현존의 불안과 무력함을 없애는 것이다. 거기에 나머지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여유만 있다면 그럭저럭 우리는 이 세계에 머물 수 있다.

 

카뮈의 알제에 대한 사랑에는 그곳에서 살아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감정과 위트가 있다. 알제는 자연의 혜택이 넘쳐난다. 가르침, 약속, 암시도 없이 그저 아낌없이 내주는 곳이라 그곳에서 맘껏 누리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움과 가난이 공존한 알제에서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젊음을 소진하고 곧바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수영을 때리고’, 여인들에게 다가가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짧은 찰나를 그들은 즐긴다. 나머지 세월을 뒷골목의 카페에서 수다로 보낼지언정. 알제의 시민은 청춘을 만끽하고 서른 살이 되면 다 쓰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나머지 삶을 살아간다. 부모가 되고 자식을 키우며 인생의 끝을 기다린다. 서울 시민들이 절대 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우리의 나머지 생은 안정되고 풍요로운가? 걱정은 없으며 행복한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알제인처럼 우리에게도 자부심이 있는가?

 

[한 존재와 삶 사이에 단순한 일치가 행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른단 말인가? 또한 장수하고 싶은 욕망과 죽을 운명에 대한 이중의 자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조화가 더 온당하게 인간과 삶을 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오직 현재만을 우리에게 덤으로주어진 유일한 진실로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내가 나의 척도와 만족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도록 내버려 두란 말이다! 아니 그럴 것도 없이 눈에 보인다. 피에솔레, 제밀라, 그리고 햇빛을 받고 있는 항구들이. -p.71~72]

 

 

1939년 이후에 쓴 에세이를 모은 여름은 지중해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소설 페스트의 도시인 오랑, 레 콩쉴 계곡의 아몬드 나무, 유럽의 여러 도시, 남아메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토스카나의 화가,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아이스킬로스, 프로메테우스, 헬레네, 신화, 전쟁을 넘나들며 카뮈는 순례자가 된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는 인간의 부름과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이 대면할 때 탄생한다고 했다. ‘수수께끼에서 그는 작가의 부조리에 대해 서술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대중은 그저 신문의 기삿거리 하나로 작가를 알게 된다. 대중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신문기자가 만들어낸 작가의 이미지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작가는 명성을 얻게 된다. 작가가 여러 작품을 쓸 필요도 없다. 보통 작가는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작품을 위해 술도 마시지 않지만 대중은 작가가 해롱거리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을 거라 믿는다.

 

또한 작가가 책에 쓴 내용이 작가 자신의 얘기가 분명 아닌데도 대중은 그것이 작가 본인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카뮈는 그것이 낭만주의가 물러준 유치한 유산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한 인간의 작품들은 대체로 그가 느끼는 향수나 유혹의 역사를 되짚은 것이지, 실제 자신의 이야기인 경우는 거의 없다....어떤 작가도 감히 자신을 곧이곧대로 묘사하지는 못한다(p.156)’고 말하고 있다.

 

김화영 선생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과 더불어 카뮈의 결혼여름20세기 프랑스 3대 시적 산문이라고 했다. 확실히 카뮈가 쓴 이 에세이는 아름답고도 철학적이며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녹색광선 장소미 선생의 번역은 현대적이고 깔끔하지만 카뮈 문장의 아름다움이 살짝 덜 묻어나오는 것 같아 아쉬웠다. 김화영 선생의 번역에 비해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카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알제리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프랑스의 알제리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알제리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카뮈의 어머니는 알제리에 계속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택하여 프랑스 정부를 옹호했다. 카뮈는 알제리 자치권을 인정하거나 연방정부를 구성하면 알제리계 프랑스인과 아랍인들 간의 공존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으며, 알제리의 완전 독립에는 부정적이었다. 전쟁기간 동안 양측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전협정을 위해 헌신했으며 체포된 알제리인들을 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기도 했다.(작가연보 중, 1954) 나는 카뮈의 인간 실존과 부조리 사상을 좋아하지만 그의 알제리의 독립에 대한 생각에는 항상 실망한다.


젊은 시절의 카뮈는 배우 알랭 들롱을 닮았다.


[우리가 남에게 어떻게 비치든 어떤 온당치 않은 자리를 차지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누구이고 마땅히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만으로도 삶을 채우고 노력을 쏟기에 충분하다.....또한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우리의 책무는 모든 단어들을 동원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 노력하는 것임을 배웠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찾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마다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젠가는 모두가 찾아와 불타오를, 숨어있는 태양의 중심에서 좀 더 가까이 맴돌 것이다. -p. 15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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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2-02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화영 선생이 번역한 책을 갖고 있는데, 언제 읽게 될지...

페넬로페 2026-02-02 16:4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한 번에 이해가 잘 안되어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어요.
계속 읽으니 뭔가 의미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다음엔 김화영 선생 버전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요.

카리나 2026-02-03 0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애정하는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받아서 읽고있는데
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매일 표지만 보고 있어요ㅎㅎ

사실 읽기 시작은 했는데 이해가 잘 안되어서 꾹꾹 눌러읽고 있는 중이에요..

페넬로페님에게도 어려웠다고 하니 조금 위로가 되네요.다 읽고 페넬로페님 글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6-02-03 09:40   좋아요 1 | URL
책표지 정말 멋지죠? ㅎㅎ
저렇게 누군가를 기쁘게 사랑해 본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책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계속 반복해서 읽었어요. 그랬더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게 조금은 보였어요.

이 책에는 여러 사유가 있는데 작가가 인용한 것들을 우리가 그동안 다 읽어냈다는 것에 자부심 뿜뿜하더라고요.

카리나님, 계속해서 열심히 읽어보자고요, 화이팅♡♡♡

그레이스 2026-02-03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때문에 탐나네요
저도 다른 출판사로 있는데,,, ㅠㅠ

페넬로페 2026-02-03 10:40   좋아요 0 | URL
정말 표지가 한 몫 했죠!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 고아 소년 “존”의 근대로의 여정 (1881~1918)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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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김규식의 삶과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근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김규식에 대한 자료를 추적해 평전을 완성한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완벽한 평전이지만, 책의 자세한 내용과 높은 가격으로 대중에게 멀어지고 학술서의 역할만 할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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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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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네이버에 일론 머스크가 한 말이 올라와 읽은 적이 있다. 머스크의 말이 약간 생뚱맞았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강렬해 잊혀지지 않는다. ‘저 미친X이 하는 말이 나중엔 다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머스크가 한 말처럼 설마 했던 일이, 인간의 상상이라고만 여겨졌던 것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 버젓이 실현되고 있다. 단숨에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

 

바둑의 원리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완패(물론 5국 중 이 9단이 1승은 챙겼지만)했을 때 나 또한 충격이 컸다. 바둑은 결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바둑을 두는 사람의 창의력이 어우러진 고난도의 게임이다. 승부를 예측하기도 힘들다. 그런 진입 장벽이 높은 바둑의 세계를 알파고가 너무 쉽게 정복해버렸다.

 

알파고의 승리는 다시 말해 인공지능의 승리였다. 알파고는 바둑인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의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알파고는 모든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 것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장강명 작가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그것이 좋고 감동을 준다면 많은 사람이 읽을 것이다. 소설을, 사람이 아닌 AI가 쓴다면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혀질 것은 확실하다. 하물며 거기에 신박함과 재미가 더해진다면 매번 소재가 거기서 거기인 한국 소설을 누가 읽겠는가?

 

장강명 작가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작가도 인공지능의 영향과 전망에 대한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책에 몇 개의 대답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담대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먹고 사는 문제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들의 대답이 그렇게 여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편리함을 도와주는 도구이지만,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빅테크 기업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붙인다면 결국 인간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장강명 작가가 202312월부터 20241월까지 전 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에 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 서술된 책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으로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에 대해 바둑 기사 각자의 생각과 앞으로의 대처방안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들어있다. 이들의 대답이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의 3분의 2정도 분량의, 지루하기까지 한 그들의 대답은 결국 AI가 대세이고 바둑은 인공지능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 기사들은 이제 거의 바둑 AI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훈련한다. 인공지능을 거부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면 전혀 승률을 낼 수 없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바둑기사들은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바둑이 예전의 낭만을 잃었을지는 몰라도 나름 장점도 많아 기사들은 별 불만이 없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훨씬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는 것을 대다수가 인정하는 분위기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바둑 세계의 판도를 바꾸었다면 문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장강명의 질문이 계속된다. 사실 그 질문은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계속되지만 이에 대한 답이 확실치 않은 것은 이미 대세가 된 인공지능에 대한 대처방법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도덕적이며 인간적인 것을 들이밀기는 늦었다.

 

작가 자신도 답답하고 잘 모르기에 고작 가져온 것이 소설 ‘1984’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고 ’1984‘를 경계할지라도 우리에게 달라질 것이 있을까? 작가 말대로 신자유주의의 원리로 빅테크 기업이 움직이고 그것을 권력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이용해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의 인물로 자신이나 가족을 바꾸는 것이 인기를 끈 것도 인간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세가 된 인공지능이지만, 장강명 작가는 이 시점에서 멈추고 생각하고, 모두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의 진행을 위해 고민하자고 한다. 정말 작가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작가가 가져온 여러 가지에 역부족을 느낀다. 문학도로서의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맞이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분명히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시작과 목적이 바둑 기사와의 인터뷰와 분석이었지만 너무 길게 서술해 지루했다. 뒷부분 역시 관념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누구나 느끼고 있는 위기와 거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정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걱정된다.

 

장강명 작가의 아내의 쾌유를 빈다. AI이든 뭐든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밥벌이를 빼앗지 말고 인간의 병만 척척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암과 치매를, 지금 당장.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인공지능처럼 쓸모 있고 강력한 기술은 마치 야수와 같다.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 강하든 약하든,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에 적대감을 품고 있든, 아니면 월-E처럼 안전하고 유용한 도구처럼 보이든 간에 말이다. 사실상 그 야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아직 거리에 나오기 전뿐이라고 봐야 한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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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避我路 2026-01-2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의 건조하리 만큼 사실적인, 그래서 더 또렷해지는 사태 파악과 의미 부여를 사랑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미화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거기서 변화를 찾아야 하는 것이겠죠.

페넬로페 2026-01-28 17:51   좋아요 0 | URL
네^^

단발머리 2026-01-28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를 내어 놓고, 정해져 있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도, 그걸 진지하게 풀어간다는 점에서 저는 장강명이 한국 사회에서 소설가 이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저도 이 책이 있습니다^^

가지고 있다고 알라딘에 자랑만 했었는데, 페넬로페님 글 읽고 나니 더 궁금해졌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 )

페넬로페 2026-01-28 20:18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국 사회의 여러 요소에 대한 장강명 작가의 치열한 고민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응원해요.
단발머리님의 감상
궁금하고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