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를 보낸 날은 의식하지 못하는 걸음을 걷는다. 분명 종종걸음으로 많이 걸었을 거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운동이나 산책의 의미가 없다. 그런 날이면 밤늦게라도 집을 나와 내가 사는 아파트 안을 여러 번 돈다. 밤이 늦었음에도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고 나처럼 걷는 사람도 있다. 서로 걷는 방향이 반대일 땐 계속 머쓱하게 마주치지만 누구 한사람도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고집스런 산책자들이다. 마르셀의 할머니가 <모든 날씨에, 이를테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프랑수아즈가 저 귀중한 버드나무 팔걸이의자가 비에 젖을까 봐 재빨리 안으로 들여놓을 때에도> 건강에 좋은 비와 바람을 맞고자 빗물로 넘쳐흐르는 오솔길로,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고집과 비슷하다.
헤어짐이 아쉬워 계속 빙빙 도는 연인도 있다. 그러다 여자를 들여보내고 남자는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차 있을 그의 어깨에 쓸쓸한 피곤함도 보인다. 차의 시동을 켜놓은 채 뛰어다니며 각 동에 물건을 배송해주는 쿠팡 배송원도 있다. 똑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이제 그만 쉬려고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이제는 서로 연락도 만남도 없는 지인의 실루엣에 잠시 모른 척 눈을 돌리기도 한다.
대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의 연속이다.
나는 요리사가 차려주는 정찬을 먹고, 음악을 감상하며 예술을 얘기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인물들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이 읽기 힘든 이유는 우리와 완전 동떨어져 있는 인물들에 대해 프루스트가 너무 자세히, 장황하게 글을 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프루스트의 글을 통해 그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거기에서 어떤 ‘보편성’을 가져와 내 것에 적용시킬지 쉽지 않다. 그저 재미있어 3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7편 《되찾은 시간》은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와 가장 많이 연결된다. 마르셀은 탕송빌에 있는 생루 부인(질베르트)의 저택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추억한다.(1편의 첫 부분에도 나와 있다.) 질베르트를 통해 그토록 다른 길이었다고 생각한 메제글리즈 쪽(부르주아, 스완)과 게르망트 쪽(귀족, 게르망트)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들어간다. 화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파리로 돌아왔고 쥐피앵이 샤를뤼스를 위해 운영하는 동성애자의 소굴을 우연히 발견한다. 생루는 전쟁 중에 전사한다.
두 번째 요양원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끝내 자신의 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온 화자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는 돌고 돌아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되어 그토록 원했던 귀족의 반열에 오른 베르뒤랭 부인의 마티네(오후 모임)에 초대받는다.(어느새 화자의 나이가 47세 정도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지난 시절의 사람들은 쇠락해 보였다. 스완의 부인이자 포르슈빌의 부인인 오데트는 게르망트 공작의 연인이 되어 있다. 그토록 콧대가 높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오리안)은 인기 없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계속해서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있던 화자가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저택 안마당에 들어섰을 때 들어오는 자동차를 피하려다 고르지 못한 포석에 부딪치고 만다. 몸을 바로 하려고 앞의 포석보다 조금 낮게 깔린 포석에 발을 내딛는 순간, 화자는 엄청난 행복의 감정을 느낀다. 예전에 어머니와 베네치아 여행을 갔을 때, 산마르코 성당 세례실에서 서로 높이가 다른 포석 두 개 위에 섰을 때, 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었을 때, 마르탱빌 종탑의 풍경을 봤을 때와 같은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 행복한 감정은 화자의 절망감을 한꺼번에 제거해 버린다. 행복한 감각과 인상을 포착하려는 욕망 속에서 그는 다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어렴풋하고 눈부신 광경이 다시 나의 의식을 스쳐 가면서 “네게 힘이 있다면 지나는 길에 나를 붙잡고, 내가 제안하는 행복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해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방 나는 그 광경을 알아보았다. -p.30]
화자는 또한 스푼이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 풀 먹인 뻣뻣한 냅킨으로 ‘내가 살아온 순간이 현재 내가 사는 순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느낀다. 의도적이지 않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각으로 잊힌 과거를 소환하고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화자가 느끼는 이 순간적인 생각의 변화를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삶이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확실한 이유와 계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감각, 인상, 이미지, 기호에 의해 훨씬 더 많이 좌우된다. 화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되찾은 시간》은 화자가 글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첫 시점인 것이다. 여기에 화자의 예술관과 문학관도 들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이 과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감정과 인상은 과거와 현재에서 동시에 느끼며 <과거를 현재로 스며들게 하여 내가 과거와 현재의 순간 중 어느 쪽에 있는지 알기를 망설이게 한다는 공통점이>있다. 시간으로 연결된 경험, 감각, 인상, 습관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그것은 ‘나’를 초시간적인 존재로 만든다. 시간은 비의지적 감각을 통해, 지금의 나를 이뤘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각자 예술가와 책이 되어 초시간적인 ‘나’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보고 느낀 것, 자연과 사람, 사물들에 대한 인상을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언어로 남길 수만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수만 페이지가 넘는 책의 문장에 기록된 주인공인 것이다. 화자가 말한 글쓰기의 소명과 문학(예술)만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준다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 또한 타인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나를 현재의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 이 삶은 어떤 점에서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매 순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삶을 밝히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과거는 수많은 음화(陰畫)로 가득 채워진 쓸모없는 것이 된다. 우리의 지성이 이런 음화를 ‘현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의 우주와는 다른 우주, 달에서 보는 풍경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우주에 대해 타자가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p.7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프루스트가 생전에 완성해 발표한 소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 편뿐이다. 오랜 시간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서 칩거하며 지병인 천식과 싸우며 이 방대한 소설을 집필했다. 작가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정한 직업 없이 사교계에 드나들었던 사람이라 이 소설이 자전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프루스트는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뵈브는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작가의 정신과 작품 세계의 특징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지만 프루스트는 『생트뵈브에 반대하여』라는 작품으로 생트뵈브의 비평을 반박했다.
김화영은 프루스트의 생애로 시작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체 줄거리와 작품에 대한 구조와 의미를 설명한다. 일단 문장이 엄청나게 긴 이 소설은 읽기가 힘들다. 읽고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읽고, 그래도 잘 몰라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는다. 색깔이 다른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며 의미 찾기에 몰두해 보지만 어떤 문장은 끝까지 알 수 없어 좌절한다. 김화영은 이 소설을 천천히, 몇 번씩 반복해서 읽으면 <미묘한 감칠맛>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화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 의식 속에 비쳐지는 모든 영상과 운동, 경험의 총체, 삶의 총결산>이다. 그래서 독자는 이 소설에 대한 의미 찾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이 책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연대기가 수록되어 있어 재미있다. 스완의 사랑에 해당하는 시기인 1879년부터 1901년 알베르틴의 죽음, 1919년 말의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오후 모임까지 소설의 중요 장면에 대한 대략의 시기를 알 수 있다. 김화영 선생은 머리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을 위해 남은 생애의 시간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는데, 어서 선생의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한다.(선생은 1942년생이다. 번역본이 나오면 무조건 읽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자서전이 아니며 소설 속 화자는 프루스트가 아니고 등장인물은 오로지 저자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못을 박는다. 이 책은 나보코프가 웰즐리와 코넬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아이디어보다 세세한 부분들의 조합에서 빚어내는 관능적인 불꽃>을 더 중요시 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에 거의 초점을 맞춰 강의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 프루스트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은, 기간에 따른 인격의 끊임없는 진화, 우리가 직관, 추억, 비자발적인 연상을 통해서만 떠올릴 수 있는, 잠재의식의 뜻하지 않은 풍요로움, 내면의 영감이 지닌 천재성에 보잘 것 없는 이성이 종속되는 것, 예술을 세상의 유일한 현실로 보는 시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보코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강의한 내용은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어렵다. 그가 말한 내용에 대해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만 깊이 있는 나보코프의 시간과 과거, 예술에 대한 해석으로 프루스트의 문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나보코프의 강의를 서술했기 때문인지 약간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현실적 삶에 적용시키는 사용 설명서이다. 경쾌하고도 위트 있는, 철학적이며 현학적인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쉽게 접근시켜주고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을 다르게 한다. 한 번씩 피식 웃게 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 책은 프루스트를 통해 자기 계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9개의 섹션을 지금 나의 인생에 직접 대비시키는 재미가 있고, 그것은 결국 소설과 연결된다.
알랭 드 보통은 작가 프루스트 개인과 그 주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어쩌면 생뚱맞아 보일수도 있는 소설 속 인물들과 내용에 담겨진 보편성을 보여 준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대한 확장으로 그것의 경이로움을 보게 하는 방법을 알게 한다. 모방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끼게 하는 클리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밝힌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분리되어 있던 베르뒤랭 부인, 스완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세상은 근본적으로 같은 세상이며,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오로지 속물근성이나 사회적인 관습으로 인한 모종의 우연뿐이었다>고 서술했다. 베르뒤랭 부인, 스완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처럼 나와 같은 궤도를 돌지 않는, 속물적이고 허영심 많은 친구를 가졌을 때,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도 뒤에서 깔 수 있는 방법을 보통은 가르쳐 주고 현명한 구분을 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눈을 뜨는 방법’에서 프루스트가 우울하고 부러움도 많고 불만도 많은 한 젊은이에게 화가 장 바티스트 샤르댕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샤르댕은 주방기구, 빵 덩어리, 책 읽는 사람, 시장에서 빵을 사서 집에 돌아온 여자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것에 샤르댕은 깊은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샤르댕은 높은 곳에 있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현재에 흥미로움과 매력을 찾게 해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가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에 행복함을 느꼈듯이 우리는 평범함에서,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서 언제든지 <프루스트적 순간>에 눈을 뜰 수 있다. 지금 현재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
-p.4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긴 것은 제5권에 있는데 <일반적인 크기의 활자를 이용하여 일렬로 배열할 경우, 그 길이는 거의 4미터에 이르고, 웬만한 와인 병의 아랫부분을 17번은 충분히 감을 수 있는> 길이이다.
요즘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여유 없는, 시간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긴 문장과 씨름해 보라. 당신에게 인내력을, 도망간 집중력을 다시 돌려 줄 것이다. 다만 잘 모르지만 뭔가, 더 큰 후유증을 각오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체력도, 기질도 완전 다른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는 <한 가지 슬픈 일은 아주 많이 아프거나, 아니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기 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3년에 방송된 여름 특집 문학 방송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를 제작한 로라 엘 마키는 로베르의 말에다 여름휴가를 추가한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은 2013년 여름 프랑스의 앵테르 방송에서 8명의 전문가가 8개의 섹션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자 관심을 끄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엔 그들이 감동받은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각 섹션의 짧은 서문은 로라 엘 마키가 썼는데, 시간, 등장인물, 프루스트와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들,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예술에 대한 주제를 잘 정리한 것 같다.
2022년 10월 15일 오후 1시 03분,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무 이름은 ‘은목서’이다.
그 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날씨에 하늘의 색깔은 엄청 파랬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와 심은하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볼 때처럼 그저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 들어가서 여러 군데를 둘러보다가 집의 뒤쪽으로 갔을 때, 은목서를 발견했다. 키가 크고 잎도 무성했고 잎마다 꽃이 달려 있었는데, 은목서에서는 너무나도 진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바람에 계속 꽃비도 내리고 있었다. 꽃잎마다 수많은 벌들이 모여 있었는데 혹시 벌에 쏘일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은목서의 향기에 취해 벌들은 인간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가 차에 적신 마들렌 맛을 봤을 때의 경이로움과 행복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은목서의 모습과 향기, 꽃잎이 떨어져 모여 있던 나무둥치와 기와장, 나무와 지붕 사이에 보이던 파랑만이 있는 하늘.....
한참을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있던 장면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프루스트라면 지금, 여기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 제목 때문에 ‘과거’라는 시점을 더 염두에 두기 쉽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에 있는 시간이지만 과거는 현재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과거는 명백히 현재가 지나간 것이다. 현재가 너무 찰나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알랭 드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시간의 소실과 상실 뒤에 놓인 원인에 대한 탐색이 중심 주제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어떻게 하면 시간 낭비를 중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욱이 충분히 실용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일독할 때 난 과거에 더 초점을 맞춰 읽었다면, 재독할 땐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현재를 더 의식하며 읽었다. 지금, 여기, ‘나’의 중심에서 무엇을 소명으로 가질지 생각하며, 그것을 빛나는 나만의 문학으로 남겨두는 것이 일단 이 책을 가장 잘 수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므로 만일 내게 작품을 완성할 만큼 충분히 오랜 시간과 힘이 있다면, 비록 그 일이 인간을 괴물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라도 인간을 묘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터였다. 거기서 인간은 공간 속에 마련된 한정된 자리에 비해 반대로 지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세월 속에 침잠한 거인들처럼 그토록 멀리 떨어진 여러 다양한 시기를 살아 그 시기 사이로 많은 날들이 자리하러 오면서 삶의 여러 시기와 동시에 접촉하는 그런 무한으로 뻗어 가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시간’ 속에서
끝
-p.33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