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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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 사람이기에 이 책에 들어있는 민족의 아픔, 빨치산, 정서, 하염없는 그리움을 절절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라는 이율배반적인 말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된 나에게 내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부모와 자식의 해방은 매번 왜이리 뒤늦게 찾아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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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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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는 제목만 보고도 이 책 내용의 반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단지 제목만으로, 지나온 세월에 대한 상념과 회한에 빠질 수 있었다. 타고 나지 못해 겪었던 무수한 좌절들, 남보다 시간을 더 들이고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의 속상함 등,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어디 문과와 이과의 구분에만 적용되겠는가? 수학을 잘해도 과학을 못 할 수 있고, 책을 읽지 않아도 말 잘하는 사람도 많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모든 자리에 운명적 타고남은 확실히 존재한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AI로 들려주는 것이 싫어 보통 성우가 낭독하는 것을 선택해 듣는 편인데, 처음에 아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유시민 선생이었다. 방송이나 유튜브로 저자를 많이 봐왔으므로 그의 목소리를 잘 안다. 선생은 7페이지에서 11페이지의 서문을 낭독해주었다. 듣는 동안 사실 좀 괴로웠다. 뒤의 본문도 선생이 낭독한다면 듣기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본문은 이민혁 성우가 낭독했다. 목소리, 발음, 읽는 속도가 완벽했다. 타고난 것이 이렇게 무섭다.

 

갈릴레이뉴턴다윈아인슈타인하이젠베르크슈뢰딩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초등학교 수학에서 전개도, 쌓기 나무를 통해 공간 감각을 배우는데 그때부터 아이의 문, 이과 성향을 알 수 있다. 어떤 아이는 그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완벽한 공간을 상상한다. 그것이 되지 않는 아이는 전개도를 그려서 오려 직육면체를 만들어 보고, 쌓기 나무를 직접 쌓아서 그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이 조금 힘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이 전자에 비해 나쁜 것은 아니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잘 모른다의 다른 말이 될 수 있다. 모르고 이해하기 힘드니까, 열심히 해도 성과가 없으니 관심이 없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운명적 문과에게 과학은 그렇게 다가온다. 이 책은 거의 평생을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한 저자가 타고난 것을 극복하고 자신이 잘 몰랐던 과학의 세계에 눈뜨고 거기서 느꼈던 것을 서술한 것이다. , 존재, 언어 등 보통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생각과 주제를 자신이 공부한 과학으로 생각의 범위를 옮겨보는 과정을 나타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저자가 과학을 공부하는 과정과 거기에서 느낀 새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과생도 어려워하는 경제, 철학, 사회 등을 과학에 접목시키며 인문학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목에서 상상한 것과는 많은 것이 달랐고 생각보다 내용이 상당히 어려웠다. 많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 저자의 주장과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생각에 약간의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물론 나의 부족함 때문일 것이다.

 

타고난 것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만 알고 살면 저자가 말하는 거만한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의 흐름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소개하는 좋은 과학 서적이 많다. 요즘은 지적이고 글도 잘 쓰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도 많다. 책과 그들을 따라 조금씩이라도 과학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면 내가 나를 더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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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1-30 1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운명적 문과!!
저자가 직접 서문 읽어주는 바람에 오디오북 망할 뻔 했군요 ㅋㅋㅋㅋ 역시 전문가가 낭독해야 합니다^^

페넬로페 2024-01-30 19:00   좋아요 2 | URL
저는 전공도 그렇고,
문과와 이과에 걸쳐져 있는 사람인데요.
저한테 타고 난 것의 회한은 손재주 입니다.
뭘 그려도 못 그리고
뭘 만들어도 못 만들고 ㅠㅠ
노래도 엄청 못해요.
다음 생엔 예술가로 한 번 살고 싶어요.

청아 2024-01-30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문 들으실 때 괴로우셨다니ㅋㅋㅋㅋ 유시민 작가님이
페페님의 리뷰를 보신다면 조금 섭섭해 하시겠는데요?ㅋㅋ
어느정도일지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요^^

책은 진작에 사두었는데 책 탑 중간에 슬프게 낑겨?있습니다.

페넬로페 2024-01-30 21:27   좋아요 2 | URL
다른 많은 걸 갖춘 분이라 아마 인정하실지도 모르겠어요.ㅎㅎ
밀리의 서재에서 낭독해 주시는 성우분들이 엄청 잘 하시더라고요.
미미님께서는 양자역학도 혼자 독학하시는 분이라 이 책 저보다 훨씬 더 이해를 잘 하실 것 같아요^^

청아 2024-01-30 21:37   좋아요 2 | URL
저 결국 궁금해서 1분 미리듣기 찾아 들어봤어요ㅋㅋㅋ
페페님이 왜 괴롭다 하셨는지 알것같아요ㅋ

페넬로페 2024-01-30 21:48   좋아요 2 | URL
오, 정말 그렇죠!
본문을 읽는 성우분이 엄청 미남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니까요~~

서곡 2024-01-30 22:58   좋아요 2 | URL
두 분 대화가 너무 우껴요 ㅋㅋㅋㅋㅋ

청아 2024-01-30 23:03   좋아요 2 | URL
유시민 작가님 의문의1패, 성우는 의문의1승입니다. 저 페페님 덕분에 구독 진지하게 고민중이에요ㅋㅋㅋ

페넬로페 2024-01-30 23:40   좋아요 2 | URL
밀리의 서재가 은근 좋은 책도 많고,
불편한 편의점이나 세이노의 가르침같은 베스트셀러를 살짝 엿보기도 좋더라고요.
오디오북도 많고요^^

서곡 2024-01-30 2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아 지못미 유시민 작가님 ㅎㅎㅎ

페넬로페 2024-01-30 23:42   좋아요 2 | URL
제가 유시민 작가님 팬인데~~
작가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충분히 다른데서 커버할 수 있으시죠?

은오 2024-01-31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듣기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낭독은 성우분들께 맡깁시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잘 모른다’의 다른 말이 될 수 있다. 맞습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4-01-31 23:18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 싫어해요.
적당히 못하는 게 있어야 다른 사람도 빛이 나지요. ㅡㅎㅎ
제 스스로 저를 위로하는 말입니다.

저는 잘 모르면 너무 관심이 없는 게 문제인 사람이어서 이번 기회에 과학책에 입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곡 2024-01-31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밀리 이용권 선물을 받아서 쓰는 중인데요 오디오북을 더 들어야겠어요! 오늘 말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4-01-31 23:20   좋아요 1 | URL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잠자기 전에 많이 듣는데 완전 자장가예요 ㅎㅎ
서곡님!
2월에도 건강하시고
더 즐거운 독서 하시길요^^

책읽는나무 2024-01-31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만한 바보‘
뭔가 쿡 찌르는 명칭입니다.
낭독은 전문가에게!!ㅋㅋㅋ
이렇게 우아하면서도 예리한 문장은 역시 페페 님만의 매력입니다.
그나저나 문과 이과....저는 문과생도 아니요. 이과생도 아니요. 저도 애매하게 걸쳐진 인간이라 이도 저도 확실하게 아는 게 없어서 얄팍한 지식을 좀 많이 채워가야겠군요.^^
안부 물어주셔 감사합니다.
늘 그리웠어요.^^

페넬로페 2024-01-31 23:24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 ‘거만한 바보‘가 나왔는데 누구나 한번쯤은 이 말에 양심이 찔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완전 그랬고요.
책나무님 전공이 무지 궁금합니다.

책나무님, 언제나 그리워요.
힘드실줄 알지만 그래도 가끔씩 안부 전해주세요^^
 


 













바쁜 하루를 보낸 날은 의식하지 못하는 걸음을 걷는다. 분명 종종걸음으로 많이 걸었을 거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운동이나 산책의 의미가 없다. 그런 날이면 밤늦게라도 집을 나와 내가 사는 아파트 안을 여러 번 돈다. 밤이 늦었음에도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고 나처럼 걷는 사람도 있다. 서로 걷는 방향이 반대일 땐 계속 머쓱하게 마주치지만 누구 한사람도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고집스런 산책자들이다. 마르셀의 할머니가 <모든 날씨에, 이를테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프랑수아즈가 저 귀중한 버드나무 팔걸이의자가 비에 젖을까 봐 재빨리 안으로 들여놓을 때에도> 건강에 좋은 비와 바람을 맞고자 빗물로 넘쳐흐르는 오솔길로,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고집과 비슷하다.

 

헤어짐이 아쉬워 계속 빙빙 도는 연인도 있다. 그러다 여자를 들여보내고 남자는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차 있을 그의 어깨에 쓸쓸한 피곤함도 보인다. 차의 시동을 켜놓은 채 뛰어다니며 각 동에 물건을 배송해주는 쿠팡 배송원도 있다. 똑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이제 그만 쉬려고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이제는 서로 연락도 만남도 없는 지인의 실루엣에 잠시 모른 척 눈을 돌리기도 한다.

 

대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의 연속이다.

 

나는 요리사가 차려주는 정찬을 먹고, 음악을 감상하며 예술을 얘기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속의 인물들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이 읽기 힘든 이유는 우리와 완전 동떨어져 있는 인물들에 대해 프루스트가 너무 자세히, 장황하게 글을 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프루스트의 글을 통해 그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거기에서 어떤 보편성을 가져와 내 것에 적용시킬지 쉽지 않다. 그저 재미있어 3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7되찾은 시간은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와 가장 많이 연결된다. 마르셀은 탕송빌에 있는 생루 부인(질베르트)의 저택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추억한다.(1편의 첫 부분에도 나와 있다.) 질베르트를 통해 그토록 다른 길이었다고 생각한 메제글리즈 쪽(부르주아, 스완)과 게르망트 쪽(귀족, 게르망트)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들어간다. 화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파리로 돌아왔고 쥐피앵이 샤를뤼스를 위해 운영하는 동성애자의 소굴을 우연히 발견한다. 생루는 전쟁 중에 전사한다.

 

두 번째 요양원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끝내 자신의 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온 화자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는 돌고 돌아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되어 그토록 원했던 귀족의 반열에 오른 베르뒤랭 부인의 마티네(오후 모임)에 초대받는다.(어느새 화자의 나이가 47세 정도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지난 시절의 사람들은 쇠락해 보였다. 스완의 부인이자 포르슈빌의 부인인 오데트는 게르망트 공작의 연인이 되어 있다. 그토록 콧대가 높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오리안)은 인기 없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계속해서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있던 화자가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저택 안마당에 들어섰을 때 들어오는 자동차를 피하려다 고르지 못한 포석에 부딪치고 만다. 몸을 바로 하려고 앞의 포석보다 조금 낮게 깔린 포석에 발을 내딛는 순간, 화자는 엄청난 행복의 감정을 느낀다. 예전에 어머니와 베네치아 여행을 갔을 때, 산마르코 성당 세례실에서 서로 높이가 다른 포석 두 개 위에 섰을 때, 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었을 때, 마르탱빌 종탑의 풍경을 봤을 때와 같은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 행복한 감정은 화자의 절망감을 한꺼번에 제거해 버린다. 행복한 감각과 인상을 포착하려는 욕망 속에서 그는 다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어렴풋하고 눈부신 광경이 다시 나의 의식을 스쳐 가면서 네게 힘이 있다면 지나는 길에 나를 붙잡고, 내가 제안하는 행복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해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방 나는 그 광경을 알아보았다. -p.30]

 

화자는 또한 스푼이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 풀 먹인 뻣뻣한 냅킨으로 내가 살아온 순간이 현재 내가 사는 순간인 것처럼보이는 것을 느낀다. 의도적이지 않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각으로 잊힌 과거를 소환하고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화자가 느끼는 이 순간적인 생각의 변화를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삶이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확실한 이유와 계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감각, 인상, 이미지, 기호에 의해 훨씬 더 많이 좌우된다. 화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되찾은 시간은 화자가 글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첫 시점인 것이다. 여기에 화자의 예술관과 문학관도 들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이 과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감정과 인상은 과거와 현재에서 동시에 느끼며 <과거를 현재로 스며들게 하여 내가 과거와 현재의 순간 중 어느 쪽에 있는지 알기를 망설이게 한다는 공통점이>있다. 시간으로 연결된 경험, 감각, 인상, 습관은 지금의 를 형성하고 그것은 를 초시간적인 존재로 만든다. 시간은 비의지적 감각을 통해, 지금의 나를 이뤘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각자 예술가와 책이 되어 초시간적인 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보고 느낀 것, 자연과 사람, 사물들에 대한 인상을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언어로 남길 수만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수만 페이지가 넘는 책의 문장에 기록된 주인공인 것이다. 화자가 말한 글쓰기의 소명과 문학(예술)만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준다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 또한 타인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나를 현재의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 이 삶은 어떤 점에서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매 순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삶을 밝히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과거는 수많은 음화(陰畫)로 가득 채워진 쓸모없는 것이 된다. 우리의 지성이 이런 음화를 현상하지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의 우주와는 다른 우주, 달에서 보는 풍경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우주에 대해 타자가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p.7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프루스트가 생전에 완성해 발표한 소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 편뿐이다. 오랜 시간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서 칩거하며 지병인 천식과 싸우며 이 방대한 소설을 집필했다. 작가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정한 직업 없이 사교계에 드나들었던 사람이라 이 소설이 자전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프루스트는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뵈브는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작가의 정신과 작품 세계의 특징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지만 프루스트는 생트뵈브에 반대하여라는 작품으로 생트뵈브의 비평을 반박했다.

 

김화영은 프루스트의 생애로 시작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체 줄거리와 작품에 대한 구조와 의미를 설명한다. 일단 문장이 엄청나게 긴 이 소설은 읽기가 힘들다. 읽고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읽고, 그래도 잘 몰라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는다. 색깔이 다른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며 의미 찾기에 몰두해 보지만 어떤 문장은 끝까지 알 수 없어 좌절한다. 김화영은 이 소설을 천천히, 몇 번씩 반복해서 읽으면 <미묘한 감칠맛>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화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 의식 속에 비쳐지는 모든 영상과 운동, 경험의 총체, 삶의 총결산>이다. 그래서 독자는 이 소설에 대한 의미 찾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이 책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연대기가 수록되어 있어 재미있다. 스완의 사랑에 해당하는 시기인 1879년부터 1901년 알베르틴의 죽음, 1919년 말의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오후 모임까지 소설의 중요 장면에 대한 대략의 시기를 알 수 있다. 김화영 선생은 머리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을 위해 남은 생애의 시간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는데, 어서 선생의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한다.(선생은 1942년생이다. 번역본이 나오면 무조건 읽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자서전이 아니며 소설 속 화자는 프루스트가 아니고 등장인물은 오로지 저자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못을 박는다. 이 책은 나보코프가 웰즐리와 코넬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아이디어보다 세세한 부분들의 조합에서 빚어내는 관능적인 불꽃>을 더 중요시 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에 거의 초점을 맞춰 강의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 프루스트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은, 기간에 따른 인격의 끊임없는 진화, 우리가 직관, 추억, 비자발적인 연상을 통해서만 떠올릴 수 있는, 잠재의식의 뜻하지 않은 풍요로움, 내면의 영감이 지닌 천재성에 보잘 것 없는 이성이 종속되는 것, 예술을 세상의 유일한 현실로 보는 시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보코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강의한 내용은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어렵다. 그가 말한 내용에 대해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만 깊이 있는 나보코프의 시간과 과거, 예술에 대한 해석으로 프루스트의 문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나보코프의 강의를 서술했기 때문인지 약간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현실적 삶에 적용시키는 사용 설명서이다. 경쾌하고도 위트 있는, 철학적이며 현학적인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쉽게 접근시켜주고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을 다르게 한다. 한 번씩 피식 웃게 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 책은 프루스트를 통해 자기 계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9개의 섹션을 지금 나의 인생에 직접 대비시키는 재미가 있고, 그것은 결국 소설과 연결된다.

 

알랭 드 보통은 작가 프루스트 개인과 그 주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어쩌면 생뚱맞아 보일수도 있는 소설 속 인물들과 내용에 담겨진 보편성을 보여 준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대한 확장으로 그것의 경이로움을 보게 하는 방법을 알게 한다. 모방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끼게 하는 클리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밝힌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분리되어 있던 베르뒤랭 부인, 스완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세상은 근본적으로 같은 세상이며,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오로지 속물근성이나 사회적인 관습으로 인한 모종의 우연뿐이었다>고 서술했다. 베르뒤랭 부인, 스완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처럼 나와 같은 궤도를 돌지 않는, 속물적이고 허영심 많은 친구를 가졌을 때,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도 뒤에서 깔 수 있는 방법을 보통은 가르쳐 주고 현명한 구분을 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눈을 뜨는 방법에서 프루스트가 우울하고 부러움도 많고 불만도 많은 한 젊은이에게 화가 장 바티스트 샤르댕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샤르댕은 주방기구, 빵 덩어리, 책 읽는 사람, 시장에서 빵을 사서 집에 돌아온 여자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것에 샤르댕은 깊은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샤르댕은 높은 곳에 있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현재에 흥미로움과 매력을 찾게 해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가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에 행복함을 느꼈듯이 우리는 평범함에서,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서 언제든지 <프루스트적 순간>에 눈을 뜰 수 있다. 지금 현재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


-p.4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긴 것은 제5권에 있는데 <일반적인 크기의 활자를 이용하여 일렬로 배열할 경우, 그 길이는 거의 4미터에 이르고, 웬만한 와인 병의 아랫부분을 17번은 충분히 감을 수 있는> 길이이다.

 

요즘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여유 없는, 시간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긴 문장과 씨름해 보라. 당신에게 인내력을, 도망간 집중력을 다시 돌려 줄 것이다. 다만 잘 모르지만 뭔가, 더 큰 후유증을 각오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체력도, 기질도 완전 다른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는 <한 가지 슬픈 일은 아주 많이 아프거나, 아니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기 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3년에 방송된 여름 특집 문학 방송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시리즈를 제작한 로라 엘 마키는 로베르의 말에다 여름휴가를 추가한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2013년 여름 프랑스의 앵테르 방송에서 8명의 전문가가 8개의 섹션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자 관심을 끄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엔 그들이 감동받은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각 섹션의 짧은 서문은 로라 엘 마키가 썼는데, 시간, 등장인물, 프루스트와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들,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예술에 대한 주제를 잘 정리한 것 같다.

 


20221015일 오후 103,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무 이름은 은목서이다.

 

그 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날씨에 하늘의 색깔은 엄청 파랬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와 심은하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볼 때처럼 그저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 들어가서 여러 군데를 둘러보다가 집의 뒤쪽으로 갔을 때, 은목서를 발견했다. 키가 크고 잎도 무성했고 잎마다 꽃이 달려 있었는데, 은목서에서는 너무나도 진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바람에 계속 꽃비도 내리고 있었다. 꽃잎마다 수많은 벌들이 모여 있었는데 혹시 벌에 쏘일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은목서의 향기에 취해 벌들은 인간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가 차에 적신 마들렌 맛을 봤을 때의 경이로움과 행복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은목서의 모습과 향기, 꽃잎이 떨어져 모여 있던 나무둥치와 기와장, 나무와 지붕 사이에 보이던 파랑만이 있는 하늘.....

 

한참을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있던 장면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프루스트라면 지금, 여기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 제목 때문에 과거라는 시점을 더 염두에 두기 쉽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에 있는 시간이지만 과거는 현재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과거는 명백히 현재가 지나간 것이다. 현재가 너무 찰나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알랭 드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시간의 소실과 상실 뒤에 놓인 원인에 대한 탐색이 중심 주제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어떻게 하면 시간 낭비를 중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욱이 충분히 실용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일독할 때 난 과거에 더 초점을 맞춰 읽었다면, 재독할 땐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현재를 더 의식하며 읽었다. 지금, 여기, ‘의 중심에서 무엇을 소명으로 가질지 생각하며, 그것을 빛나는 나만의 문학으로 남겨두는 것이 일단 이 책을 가장 잘 수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므로 만일 내게 작품을 완성할 만큼 충분히 오랜 시간과 힘이 있다면, 비록 그 일이 인간을 괴물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라도 인간을 묘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터였다. 거기서 인간은 공간 속에 마련된 한정된 자리에 비해 반대로 지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세월 속에 침잠한 거인들처럼 그토록 멀리 떨어진 여러 다양한 시기를 살아 그 시기 사이로 많은 날들이 자리하러 오면서 삶의 여러 시기와 동시에 접촉하는 그런 무한으로 뻗어 가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시간속에서

 

 

-p.33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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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1-28 2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은목서나무 이름만 들어봤는데 실제로 보면 이런 나무였네요.
원서가 외국어인 책들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시고 따뜻한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4-01-28 21:0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께서는 이 나무의 이름을 알고 계셨네요.
저는 나무 이름이 너무 궁긍해 군산 시청에까지 전화를 해 보았어요.
우리에게 번역자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청아 2024-01-28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아주는 프루스트!! >.<
(but 후유증 조심) 완벽한 페페님의 처방입니다.ㅎㅎ

‘은목서‘ 사진도 어쩐지 저에게는 프루스트의 디테일한 감정선을 떠오르게 하네요
이 글, 프린트 해 둬야겠어요ㅎㅎ

페넬로페 2024-01-29 00:08   좋아요 2 | URL
저의 처방이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ㅎㅎ
집중력을 더 흐리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요.
은목서를 만난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 감히 프루스트의 마들렌에 견주어 봤어요^^

희선 2024-01-29 0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을엔 금목서와 은목서에서 진한 냄새가 난다는 말 들었는데, 은목서였군요 어쩌면 저 나무 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같은 곳은 아니고, 다른 곳에서...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책 제목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지만, 그 시간이 꼭 지나간 날만은 아니군요 책을 보다 보면 지금 자신을 생각할 때도 있잖아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서도 그럴지... 페넬로페 님이 위에서 쓰신 것처럼 저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질 듯도 합니다

그런 건 그렇다 치고 예술 문학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1-29 09:00   좋아요 3 | URL
금목서 나무도 있군요.
그 나무도 한 번 보고 싶네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여러 번 읽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마 읽을때마다 그 느낌과 해석이 달라 그럴 것 같아요.
희선님은 매번 문학을 하시잖아요^^

새파랑 2024-01-30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드디어 완독하셨네요~!! 그동안 잃시찾 읽는다고 소모했던 시간을 되찾길 바라겠습니다 ^^

소설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게 즐거움중의 하나인데

잃시찾은 너무 다른데다가 심오해서 좀 힘들었던거 같아요...

전 상류층(?) 이야기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류의 막장이 더 땡깁니다 ㅋㅋ

고생하셨습니다~!!

페넬로페 2024-01-30 16: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잃.시.찾 읽기 정말 쉽지 않더군요.
내용의 절반이나마 이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해설서를 계속 읽어 의미라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프루스트 다음으로 발자크 읽고 있는데 재밌네요.
가난을 도스토옙스키 작가랑 조금 다르게 서술해서인지 잘 읽고 있어요.
도작가는 넘사벽이겠지만요 ㅎㅎ

서곡 2024-02-05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나무 이름이 궁금해서 그 나무 앞 건물 사무실에 전화해서 이름을 물어봤었어요 ㅋㅋ 페넬로페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4-02-06 11:58   좋아요 1 | URL
저 나무 이름이 엄청 궁금했는데 그때 바로 물어보지 못해서 뒤늦게 알아냈습니다 ㅎㅎ
2월인데 눈이 왔네요.
이번 주는 설연휴도 있고요.
서곡님, 한 주 잘 보내시고 명절 잘 보내시라고 미리 인사드립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가 소설가로서 추구해 온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는 자화상.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상상하고 펼친 광대하고도 특이한 세계. 뚜렷하지 않은 삶, 정신, 꿈이 있는 도서관. 이것들이 온전히 하루키를 이루지만 맥락의 부재로 하루키가 갇혀 있는 느낌. 여전히 성실하고 착한 남자 주인공에게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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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1-23 1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성실하고 착한 페넬로페님~!!

페넬로페 2024-01-23 12:09   좋아요 3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생활적인 면에서 정말 하루키를 닮고 싶어요^^

2024-01-23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3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4-01-25 18: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맥락의 부재라는 말 딱인 것 같기도 하네요. 갇혀있다는 말도. 새책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사 볼까 하다가도 1Q84도 아직 다 못 읽었는데 무슨하며 마음을 내려놓게 되는데 그것도 하루키가 갇혀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ㅋ 앞으로 하루키가 몆 작품을 더 쓸 수 있을까 이젠 무조건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ㅠ

페넬로페 2024-01-25 19:24   좋아요 2 | URL
노작가에게 어떤 새로움이나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이 조금 어렵지 않나 생각되어요.
1Q84 이후 저도 오랜만에 하루키 작가의 책을 구매했어요.
나쁘지는 않았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았어요. 제 독서 능력이 미진해서 그렇겠지요.
담에 기회된다면 한 번 더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얄라알라 2024-01-26 23:01   좋아요 3 | URL
저는 알라딘의 다른 열정적 고수님과 달리 하루키의 책 업데이트를 한 적이 없는지라 제 마음속 하루키님은 [달리기~~] 책 표지의 반바지 입은 젊으신 분인데, 두 분의 댓글을 읽으며...현실감각으로 하루키를 인지하게 됩니다.

stella K님 응원에 저도 묻어가며 응원을 하루키에게!

페크pek0501 2024-01-28 1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안 샀어요. 제가 안 사는 걸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겠습니당~~
이 책, 너무 인기예요.

페넬로페 2024-01-28 19:07   좋아요 1 | URL
본래 하루키의 찐팬들도 많지만 아마 300 만원이라는 상금이 있는 리뷰 대회때문에 이 책을 많이 읽었을 거예요.
도서관에도 많이 있으니 신중하게 구매 결정 하시길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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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며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한 아래의 문장이 생각났다.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자신의 독자이다. 저자의 작품은 만약 그 책이 아니었으면 독자가 결코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어떤 것을 스스로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시력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진실성에 대한 증명이다

-p.33,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청미래>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프루스트의 말처럼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세상의 다양한 것을 간접 경험하고, 선한 방향으로 집요하게 인식의 틀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인식은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편하게 살기 원하는 느슨함에 금방 무뎌지고 만다. 좋은 게 좋은 것이며, 이 정도면 적당하다는 자기기만으로 금방 돌아가 버린다.

 

이번에 읽은 최은영의 소설은 까탈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읽기 어려웠다는 뜻은 아니다. 세심하고 조곤조곤한 말투와 같은 문장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는 나의 시선과 이해에 대해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까지가 이해의 폭으로 인정되는지, 정말 상대의 살갗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 또한 서늘했고 마음이 아팠다. 책을 읽으며 자기 속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프루스트의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성적에 맞춰 들어간 학과 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웠지만 그럭저럭 졸업을 하고 은행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희원은 자신의 꿈을 위해 다시 대학 3학년에 학사 편입한 늦깎이 영문과 대학생이다. 영어로 된 에세이를 읽고 각자 에세이를 써 와 토론하는 강의에 참가한 희원은 그 수업의 시간강사인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다. 수업의 내용과 그녀의 생각,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는 동질감을 좋아하고, 희원이 앞으로 가게 될 길의 선배로 여기며 그녀에게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희원이 원하는 그 길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따고 시간강사로 출발해서 대학에 자리 잡는, 공부하는 인생이 비정규직으로, 날씬하지 못한 어린 여성으로 차별받았던 희원의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원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에서 그녀의 길을 따라가지만 그들은 계속 대척점에 서 있다. 그녀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용산에 지금 희원이 살고 있으며, 희원이 벗어나 다른 길로 가고 싶었던 그 길에 그녀가 있었으며, 결국은 자리 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자리에 현재 희원이 분투하며 버티고 있다. 엇갈림과 짧은 인연 속에서의 그들의 대척은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소심한 희원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등불과 같은 것이었다. 희원은 그녀라는 빛을 좇고 성장하고 있었다. 이 책의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짧은 분량임에도 장편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면에서 생각할 것이 많았다.

 

현역으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회계학을 전공했다. 희원처럼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했기에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매번 허덕이며 공부를 따라가야 했다. 우리 과(학과의 특성상)에는 여상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회사 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에 온 언니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에게 회계 원리는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었고, 학점을 향한 집요하고도 억척스러움은 성실과 노력의 다른 말이었다. 그들이 대학에 다시 온 이유는 많겠지만 아마 직장에서의 차별이 가장 컸을 것이다. 가끔씩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그들에게 차별은 없어졌는지, 자신의 꿈을 향해 항상 더 가보고 싶었는지가.

 

[그것이 어떤 문장이든, 그녀는 내가 자신보다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힘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거 말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 주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p.41]

 

우리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글쓰기를 할 때, 소재와 내용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 은 그런 고민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대학교지 편집 부원이었던 희영은 기지촌 여성이나 가정 폭력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희영은 당연히 그런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대학생이고 심지어 좋은 구두도 신고 다닌다. 희영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계급의 문제를 사회적이면서도 공적인 자리로 끌어내어 해결책을 제시하기 원한다. 희영은 입장이 다르고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일까?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하고, 폭력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폭력을 당한 사람을 이해하고, 차별받아 본 적이 없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그렇게 오만하고 위선적인가?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사람의 죄를 대신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희영과 해진은 미군에게 살해당한 어느 기지촌 여성의 오 주기 추모 집회에서 주한미군의 범죄를 성토하고 미국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정권을 규탄하려 모인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에 경악한다. “범죄는 모국에서! 그러자 누군가 조금 작은 소리로 따라 외쳤다. 강간은 미국에서!(p.70)” Fucking USA. ‘구호도 그렇지만 주변에서 옅게 퍼지던 웃음소리도 충격적이다. 입장만 바뀌면 강간은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생각과 여성 문제를 단지 이슈로써만 이용한다는 사실이 허망하다. 뜻을 같이 하는 조직 안에서도 넘지 못하는 이해와 감정의 폭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으로 서로를 찌르고 분열하는 모습이 지금의 시국을 보는듯해 안타까웠다. 먼 훗날 누군가는 죽고 남아있는 자는 한없이 초라해질 때, 떠오르는 과거에 대한 회한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최은영은 의 화자인 해진을 라고 지칭한다. 내가 너로 표현되고 불리는 것은 나를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너라는 나를 보며 미흡하고 비겁하다고도 생각하지만 너에 대한 연민과 초라함을 느끼기도 한다. 의 해진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은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고민으로 성장해 간다.

 

[정윤의 글을 읽은 당신은 그 글을 읽기 전의 당신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 p.52]

 

이 책의 나머지 소설에도 여러 관계가 있다. 직장 상사와 비정규직 직원인 지수와 다희, 언니와 여동생, 앞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 확실한 조카에게 이모가 쓰는 부치지 못하는 편지, 소리와 그녀의 엄마와 삼촌인 민주와 민혁,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모습들, 희진과 이모 숙희, 기남과 그녀의 차가운 딸인 우경, 기남 남편의 전처의 딸인 알코올 중독자 진경, 기남에게 부끄러워해도 된다고말해주는 우경의 아들 마이클......

 

끊어낼 수 없는 관계에, 기억에, 고통과 폭력에 온통 어둡고 음울했지만 사람이 있는 자리에 무조건 있기 마련인 따뜻함과 희망은 책을 읽다가 마음 아파 눈물 흘리던 나를 건져 주었다. 소설 속 많은 곳에서 발견한 나의 부끄러움도 마이클의 한 마디에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촘촘하고 치밀한 각 소설에 대한 감상을 적기가 너무 어려웠다. 써야 할 것이 넘쳐 그 중 무엇을 가져오고 어떻게 써야 할지 암담했다. 그래도 뭔가를 조금이라도 써야한다는 강박에 감상을 적었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설은 그저 읽어야 하는 것이다.

 

[“부끄러워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워요.”

 

따뜻한 통증이 기남의 등과 배에 퍼져나갔다. 기남은 마이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은 자신을 몰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애가 오히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무슨 이유였을까. 부끄러워도 돼요. 기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말, 기남은 그 말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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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1-22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4-01-22 18:15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의 감상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느낌이면 좋겠습니다^^

Falstaff 2024-04-04 17:21   좋아요 1 | URL
이거 참. 난감하게 됐습니다. 5월 첫 독후감으로 올릴 거 같은데, 저하고는 극적으로 맞지 않더군요. 흑흑흑.....

페넬로페 2024-04-04 17:59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께는 이 작품이 좀 그렇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했어요 ㅎㅎ
5월에 올려주시는 리뷰 잘 읽어 보겠습니다^^

새파랑 2024-01-22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야 저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 찌찌뽕 입니다. 절반 넘게 읽었는데 내용이 좀 무겁지만 좋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1-22 19:5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께서도 읽고 계시는군요.
최은영 작가 좋아해서 벌써 읽으신 줄 알았어요.
생각보다 무거운 내용이 많았지만 글의 힘이 역시나 좋았어요.

청아 2024-01-22 1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리뷰 많이 올라와도 크게 관심 없었는데 페페님 글을 읽으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페페님이 사고의 폭을 넓히려 애쓰시는걸 저는 종종 느껴요. 글에서, 댓글에서도~^^♡

페넬로페 2024-01-22 20:01   좋아요 3 | URL
미미님의 사고의 폭의 확장을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습니다.
제가 워낙 소설을 좋아해 이 책이 좋았는데 미미님께도 보람있는 독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레이스 2024-01-22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 멈췄는데 마무리 해야겠네요^^

페넬로페 2024-01-23 00:23   좋아요 1 | URL
좋은 문장이 많아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희선 2024-01-23 0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경험해야만 어떤 글을 쓰는 건 아니겠지요 거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쓴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다 알지 못한다 해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최은영 소설은 슬프면서도 마음 따듯하게 해주는 듯합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1-23 07:29   좋아요 1 | URL
희선님 말씀처럼 최은영의 소설이 슬프면서도 마음 따뜻해 계속 읽는가 봐요. 문장도 좋고요.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관심 갖는 마음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