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초반부에서 발자크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19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32살이나 많은 51세의 베르나르 프랑수아 발자크와 결혼한 발자크의 어머니, ‘안 샤를로트 살랑비에는 장남인 발자크에게 그 어떤 사랑도 주지 않았다. 발자크는 태어나자마자 유모의 집에 맡겨져 만 네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 뒤에 다른 집에 하숙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만 부모가 있는 집에 올 수 있었다. 일곱 살이 되어 방돔의 오라트리오 수도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가 7년 동안 있었다. 그곳은 학교였지만 발자크에겐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이 대세가 되고, 부르주아 계급이 모든 것을 장악해 나갈 때, 발자크의 부모에게도 돈은 중요했다. 그들은 소르본 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한 발자크를 공부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와 공증인의 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해야 했다. 설움과 불만을 가득 안은 채 청소년기를 보낸 발자크는 20세가 되어 작가가 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부모의 뒤통수를 친다. 당연히 반대한 부모에게서의 경제적 지원은 끊어지고, 파리 레디기예르 거리 9번지의 다락방에서 발자크는 공장 식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로서의 성공과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이중적인 것이었다. 발자크는 희곡 크롬웰을 집필해 프랑스 국립극장(Comédie-Française)에서 상연할 계획을 세웠지만 그 작품은 실패했다. 발자크는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듯, 비슷한 내용의 작품을 엄청난 속도로 써대기 시작한다. 작품의 의미와 예술은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설공장이었다.

 

[그가 그 속에 몸을 감추고 수상쩍은 사업을 했던 익명이라는 외투를 잘 알게 된 오늘날 우리는, 이 수치의 세월에 그가 문학적인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기 소설에서 찢어낸 넝마조각으로 남의 소설을 깁고, 다시 남의 소설에서 플롯과 상황을 훔쳐내서 자신의 졸작에 이용하곤 하였다. 온갖 종류의 짜깁기를 뻔뻔스럽게 맡았고, 남의 작품을 다림질하고 늘리고 고치고 물들이고 유행에 맞게 뜯어고쳤다. 그는 온갖 것에 다 손을 댔다. -p.95, ‘발자크 평전’]

 

발자크 평전의 번역자 안인희 선생은 역자 서문에서 그의 소설이 가지는 결함의 목록은 상당히 길게 이어진다. 몇 가지만 꼽아보아도 질낮은 감상주의, 신문 연재소설 투의, 때로 터무니없는 줄거리 전개, 극단적인 과장법, 치명적인 문체의 결함등을 들 수 있다.’ 썼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초반부를 읽고 난 다음 완독한 발자크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은 츠바이크의 해설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방해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럴 것 같다. 아는 것이 병이다.) 주인공 펠릭스의 어린 시절이 발자크의 어린 시절과 거의 비슷했고, 이 책 전반에 걸쳐있는 과도한 표현과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무리한 에피소드가 혹시 발자크의 공장 식 글쓰기 때 묻어있는, 아무리 서울에 살아도 끝까지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특히 인용한 안인희 번역자의 글에 계속 발목이 잡혀 발자크 소설의 본질이나 위대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한 번씩 보이는 우울한 표정이나 딴 생각, 침묵에 여자는 그 이유가 궁금하고 그의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펠릭스나탈리 드 마네르빌 공작부인에게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는 상념이나 성격의 기복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 긴 편지글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와 지금 어떤 유령의 지배를 받고 있고, ‘격심한 고통을 안겨주는 옛 감정(p10)’이 나타나는 사연을 설명하며 나탈리의 이해와 더 깊은 사랑을 바란다.

 

이 구절은 발자크가 1828년 다브란테스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과 비슷하다.

 

[내 고통이 나를 나이들게 만들었습니다.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당신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p.52, ‘발자크 평전’]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냉대로 시골의 보모에 맡겨진 펠릭스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다. 그런 이유로 항상 우울하고 체념이 몸에 배여 있으며, 명상에 빠지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다섯 살에는 기숙학교의 통학생으로 보내지고, 그 뒤에 오라토리오회 수도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로 갔는데 그곳에서 8년 동안 지낸다. 부모의 후원이 없어 가난하고 비굴하게 천민처럼 살아야 했다. 열다섯에 파리에 있는 기숙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고 위축되어 산 탓에 펠릭스의 몸은 그 나이의 남성에 비해 왜소했다. 긴 전쟁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부르봉 왕가의 루이 18세의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에서 그는 한 여인(그녀는 펠릭스를 아이로 착각했다.)을 보고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의 어깨에 입맞춤을 한다.(이 소설 속 장면에 많이 놀랐다.) 침울한 펠릭스의 성격을 치유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펠릭스를 앵드르 강변의 프라펠 성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맡긴다. 펠릭스는 단지 느낌만으로 사랑에 빠진 그녀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걸어서 골짜기(클로슈구르드)의 백합인, 모르소프 백작의 아내 앙리에트 드 모르소프를 찾아가 만난다.

 

펠릭스와 앙리에트의 플라토닉 사랑이 시작되고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다. 왕정주의자인 모르소프 백작은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10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나라 밖에서의 오랜 생활로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병을 얻는다. 그는 망명생활 중 체념에만 빠져 있어 루이 18세가 집권해도 요직을 차지할 능력이 없었다. 두 아이인 마들렌과 자크도 병약했다. 모르소프 백작의 결함에서 오는 뒤틀림과 광증은 정신병적인 발작으로 이어졌고 앙리에트가 그 모든 것을 참으며 받아내고 있었다.

 

그 뒤로 클로슈구르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 펠릭스의 파리 진출, 출세 등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그것은 그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사람의 활동과 출세는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이 집권했을 때 가능하고 남들보다 엄청난 혜택을 본다. 펠릭스가 갑자기 루이 18세의 인정을 받고 큰 활약을 하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밀어주는 것은 똑같다. 이러한 것이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 세상과 인간상, 인간의 심리를 잘 서술해낸 발자크 인간극의 가장 큰 역할과 위대함일 것이다. 펠릭스가 파리로 떠날 때, 모르소프 부인은 그에게 파리의 사교계와 궁정에서의 행동지침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 구절은 딸아이에게 권해주고 싶을 만큼 상세하고도 의미가 깊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길을 떠나는 레어티즈에게 아버지인 플로니어스가 해 준 말처럼 유익했다.

 

펠릭스는 앙리에트가 흘리는 눈물을 사랑의 영성체, 성혈(聖血)(p.103)’처럼 생각하며 받아 마시며 순수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파리에서 그는 육체적 사랑에 눈떠 영국 여자인 레이디 더들리와 사귄다. 그 소식을 듣고 앙리에트는 상심하며 삶의 끈을 놓아 버린다. 사랑은 어느 한쪽으로만 존재할 수 없고, 육체적인 사랑을 욕망하지만 그것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것엔 한계가 있고, 그 끝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는가?

 

이 소설은 펠릭스의 긴 편지를 받은 나탈리 드 마네르빌의 짧은 답장으로 끝난다. 어떤 독자는 나탈리의 편지 때문에 이 소설이 납득되고 좋다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주된 내용인 소설은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사랑으로 끝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나탈리의 편지는 이 소설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발자크의 개입 또는 장식으로 보인다. 이 편지가 없었다면 어릴 때부터 불행을 겪어 오고 앙리에트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녀를 배신하며 전형적인 사회적 인간으로 변신하는 펠릭스의 마음, 회한, 우울을 훨씬 더 잘 살려주었을 것이다.

 

발자크의 인간극 중, ‘시골 생활 전경에 속한 이 소설의 표현들과 에피소드가 약간 과했지만 역자의 그 속에서 현실의 인간 유형을 찾기보다 어느덧 역으로 현실세계에서 그의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p.402)’는 말처럼 현실에서 비슷한 인물과 인간이 엮어가는 행동,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발자크 소설을 읽는 재미다.

 

[“그래요, 살고 싶어요!” 그녀는 내게 기대기 위해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거짓이 아닌 실제의 삶을 살고 싶어요. 여태껏 내 삶에서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며칠 전부터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었는지 세어 봤답니다. 아직 살아보지도 못한 내가 죽다니, 말이 되나요?”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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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29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잖아요. ㅎㅎㅎ 보기에 열 댓 정도일 뿐인 펠릭스가 겁대가리 없이 백작부인의 목에다가 입술을 대고 쭈욱.... 우아.... 19세기 프랑스 소설 아니면 생각도 못할 장면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발자크. 크... 안 읽으려 해도 눈에 띄면 꼭 읽고야 마는 나쁜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흑흑...

페넬로페 2024-04-29 16:25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납득이 잘 안 되지만 자꾸 그렇게만 생각하면 앞으로 발자크 잘 못 읽게 될까봐 그런 상황 그냥 덮어두고 읽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여성이고 남성이고 다 정부를 둬서 괜찮않을까? 같은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발자크 읽어야 해요
독서 동아리에서 읽고 있거든요 ㅎㅎ

Falstaff 2024-04-29 16:33   좋아요 1 | URL
여태 읽은 최고의 발자크는 <잃어버린 환상>이었습니다. 근데, 최고로 장황합니다. 막 미쳐 넘어가기 바로 전까지 말입죠. ㅋㅋㅋㅋ 그래서 인기가 없는 거 같더라고요.

페넬로페 2024-04-29 16:35   좋아요 1 | URL
8월에 읽을 예정입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던데
더운 여름에 미쳐 버리면 어떡할까요! ㅎㅎ
 

처음에는 인생 책 네 권을 어떻게 고를지 암담했고, 고민되었지만 알라딘 서재 친구들이나 작가들의 <인생네권>에 자극받아 그냥 쉽고, 가볍게, 의식의 흐름대로 골랐다.

 

페넬로페의 인생네권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은 고전의 전범(典範) 같은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이 인용되고, 응용되며, 다양하게 변형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가 소름끼친다. 특히 오이디푸스 왕은 삶이 정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을 인식시켜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가르쳐주는 인생의 지침서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세 번 읽은 책이다. 중학교 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라스콜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하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이 노파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했고, 세상의 누군가는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라스콜니코프의 주장에 동의했다. 중학생인 내가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40대에 읽었을 땐,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살해한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자격이 의심되었다. 그 어떤 이유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도덕적인 면이 우선되었다. 50대를 훌쩍 넘어 최근에 다시 읽은 죄와 벌에서는 그저 <인간 라스콜니코프>만 보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성마르게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지.그와 환경적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은 것 같은 라주미힌은 저렇게도 긍정적이고 활기찬데 왜 라스콜니코프는? 엄마의 마음으로 라스콜니코프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내게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꾸어준 책이다. 물론 그 전에도 세상의 불공평성과 폭력, 이기심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은 나를 한 발짝 더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나를 힘 빠지게도 했다. 아무리 아우성치고, 발버둥 쳐도 이놈의 자본주의 세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감에 젖어 누군가가 희망을 얘기할 때, 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관주의자가 된 듯하다. 언젠가 성당에서의 성경 공부 시간에,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난 이 책을 인용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이 없는 곳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ㅠㅠ

 

  

로버트 먼치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밤마다 읽어준 책이다. 아이가 이 책을 너무 좋아해 수백 번 넘게 읽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가 커 가는 모습, 그러다 엄마는 늙어가고 다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들.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아! 인생, 인생, 나는 늙어가고, 늙어가고.오래된 책 냄새가 많이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이번 생은 책과 함께 망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갈 수 밖에.


알라딘 서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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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4-24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생은 책과 함께 망했다. --> 우와아아아 짝짝짝!!!

페넬로페 2024-04-24 16:2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서곡님께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은하수 2024-04-24 15: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 흥한거 아니구요~~~??^^
책과 함께 하는 페넬로페님의 이번 생 쭈욱 응원할게요 ~~

페넬로페 2024-04-24 16:24   좋아요 2 | URL
책을 사랑한 반어적 표현이었지만, 한편으로 책만 읽어 아쉬운 마음도 조금 있습니다. 앞으로는 책과 함께 흥하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은하수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 2024-04-27 12:08   좋아요 2 | URL
독서 외에 영화 미술 음악 감상 등으로 세계를 좀 더 넓히고 싶다가도 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독서가 제일 쉬웠어요 일까요 ㅎㅎㅎ 책과 함께 흥하는 생 저도 응원하고 또 열망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7 12:43   좋아요 1 | URL
전에는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왜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는 느낌입니다.
서곡님, 응원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4-24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 지글러의 책을 넣을까 하다 말았는데 넣었다면 페넬로페 님과 장 지글러로 만났겠네요. 제가 넣으려던 책은 [인간 섬] 이었어요.

페넬로페 2024-04-24 16:4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장 지글러의 책을 좋아하신다는 거 알고 있죠~~
<인간 섬>도 읽어보겠습니다^^

stella.K 2024-04-24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죄와 벌을 넣고 싶었는데 역시 저는 부활을 거부할 수 없어서...ㅠㅠ

페넬로페 2024-04-24 17:35   좋아요 2 | URL
결국 도스토옙스키냐, 톨스토이냐의 문제군요 ㅎㅎ

Falstaff 2024-04-24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포클레스가 제일 앞에!! ㅎㅎㅎ 고스톱 치다가 다 잃고 막판에 쓰리고, 광박 씌운 기분입니다. ^^

페넬로페 2024-04-24 18:46   좋아요 0 | URL
‘오뒷세이아‘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오뒷세이아보다는 ‘오이디푸스‘나 ‘필록테테스‘, ‘안티고네‘쪽이 더 당기더라고요.
막판에 쓰리고, 광박, 좋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4-04-24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페넬로페님의 네권의 범위가 엄청 다양하네요~!!

저도 1번, 2번 너무 좋아합니다 ㅋ

4번은 의미긴 있는 책이군요 ㅜㅜ

페넬로페 2024-04-24 21:11   좋아요 2 | URL
네 권을 저에게 의미가 있는 책으로 정했어요.
지금 다시 보니까 4번이 찡하네요^^

모모 2024-04-25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잘 보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페넬로페 2024-04-25 0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모님!
저도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희선 2024-04-25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을 중학생 때 처음 만나셨군요 읽을 때마다 다르게 생각하시다니... 사람 세상에서는 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게 잘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고 어딘가에서는 없어서 굶고... 따님한테 밤마다 책을 읽어주셨군요 그런 책 기억에 많이 남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4-25 08:26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다보니 책과 관련된 저만의 스토리도 많은 것 같아요.
인생 네 권 고르기 쉽지 않았는데 해 보니 또 재미있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4-04-25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읽다 울었어요 ㅠ

페넬로페 2024-04-25 15:28   좋아요 0 | URL
네, 내용이 슬픈데 주구장창 읽었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4-28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은 생각나지 않아 인생 네 권에 못 넣었는데 넣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 장편을 읽고 도선생이 천재라고 여겼거든요.^^

페넬로페 2024-04-28 14:06   좋아요 1 | URL
<죄와 벌>뿐만 아니라 도선생님의 작품중에서 경쟁되는 것이 많았어요. 작가의 여러 경험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산책을 하다보면 유모차에 누워있는 갓난아기나, 엄마 아빠와 놀러 나온 아이들을 만난다. 얼마 전에 아기를 낳은 조카가 가족 단톡 방에 아기의 동영상을 자주 올려준다. 아기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옹알이를 하며 잘 웃는다. 아이들을 보면 예쁘고 귀여워 저절로 마음이 환해지는 미소가 지어지지만, 한편으로 왠지 슬프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저 아이들이 헤쳐 나갈 세상이 아득해 보여서이다. 별것도 없는 세상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이 쓸모없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지켜내야 하는지 그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윌리엄 스토너>의 삶에도 반짝했던 순간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아무 희망 없이 노동만으로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집안에서 자란 스토너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해서일 것이다. 4년간 농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스토너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부모와 척박한 땅이 있는 고향이었다. 대학 2학년 때 그는 교양 과목인 영문학 개론수업에서 아처 슬론 교수가 읽어주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져자신의 진로를 바꾼다. 그는 대학에 남아 영문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처음으로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죽음을 말하고 있다. 살아있음에도 죽음을 인식해야 우리는 더 지혜롭게 살 수 있다. 스토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이 소네트에 감동받았다. 이 시가 그에게 공부에 대한 열정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삶에 미리 죽음을 끌어당겨 섞어버린 것처럼 스토너는 평생을 살아간다. 아내 이디스와 딸 그레이스, 부모님, 그가 사랑했던 캐서린에게 한 번도 진정으로 책임이란 걸 지지 않았다. 피하고 견딤으로, 사회에서 벗어나기 좋은 대학이라는 곳에 매몰되어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게 그의 삶이었다.

 

평론가 이동진은 이 소설을 “‘스토너패배한 자의 변명과 후일담을 담은 소설이 아니다. 삶에는 근원적인 고독이 엄존하고 그 고독에는 영광과 상처가 공존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삶의 가치가 삶 자체일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작품이다. 그 가치가 사랑과 우정이라도 그렇다. 가치가 훼손되고 목적이 좌절되며 소망까지 상실되어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사람의 단순한 세월이 꼬박꼬박 묵직하게 흘러간다. 미련하지만 끝내 위엄을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성실하고도 위대한 문학이다.” 라는 감상을 남겼다.

 

이동진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순간순간 치받는 분노와 속상함도 많았다. 스토너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가 한 선택과 체념이 분명 불행을 가져올 것인데도 무심하고 무기력한 스토너가 이해되지 않았다. 스토너는 자신의 전공인 문학속의 세계에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스토너에 대해 그런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스토너가 바로 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먹먹하기도 했다.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잘 되는지가 보이지만 사실 내 인생은 그렇지가 않다. 나또한 용기를 내지 못했고, 나를 먼저 생각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세상에 등 돌리는 일이 많았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가 회한에 빠지지 않고 그가 그 자신이었음을 느끼고 자신이 쓴 책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좋았다. 남들 눈에 실패작으로 보이는 삶도 괜찮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저 온전히 자기의 느낌과 생각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된 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점점 더 관대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이렇게 물러지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난 스토너를 이해하며 삶이 별것 아니라는 여유와 냉소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 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 것 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팔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유쾌한 소설을 읽었다. 읽는 내내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졌다. 뭉클함도 있어 숙연해질 때도 있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단순화시켜 쿨하게 사는 순례 씨가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이 소설 여기저기에서 툭 튀어나오는 유머코드도 의미심장했고 통쾌했다.

 

유능한 세신사였던 75세 순례 씨는 땀 흘리지 않고 버는 돈을 불편해한다.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에서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p.13) 살고 싶어 순례(巡禮)라고 개명했다. 그녀는 자기 소유의 4층 건물인 순례 주택을 싼 값에 사람들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남자 친구 박승갑 씨의 외손녀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오수림을 잘 키워주었다. 순례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순례 씨를 닮아 있다.

 

순례씨와 수림은 가족보다 더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 나이를 초월한 친구 사이다. 그들은 서로를 최측근이라 여긴다. 가깝고 정이 깊지만 그들은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과 허용되는 것이 분명하고 아주 독립적이다. 순례 씨는 어른이다. 그런 어른이 키운 중학교 3학년인 수림이는 영민하고 단단하며 감사할 줄 안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순례 씨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글쎄.”

막연했다.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씨 생각 동의.” -p.53]

 

정말이다. 사람은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도, 어른답게 살기도 어렵다.

 

 

스토너와 순례 씨의 삶을 잠깐 들여다본다. 그들은 똑같이 열정을 가졌고,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선택해서 살았다. 하지만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순례 씨다. 누군가 나에게 누구처럼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난 머뭇거리지 않고 스토너가 아닌 순례 씨처럼 살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부터 나의 롤 모델은 순례 씨이다.

 

[“수림아, 이 지구에 내 최측근이 딱 한 명 있는데 누구지?”

오수림.”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 한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가 떠올랐다. 나도 순례자가 되고 싶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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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31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사람 있다니 좋을 것 같네요 그런 사람은 한사람이면 되죠 소설에 나온 사람이지만 부럽네요 소설이라고 해서 꼭 현실과 다른 건 아니기도 하겠습니다 소설 속 사람과 같은 사람이 현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죠


희선

페넬로페 2024-03-31 09:15   좋아요 1 | URL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도 저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분명 현실에서도 있을거예요.

hnine 2024-03-31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은실 작가를 어린이, 청소년책들로만 읽어 알고 있었는데 순례주택은 꼭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오랜만에 작가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보면 스토너의 삶을 닮은 시기가 있고 또 어느 시기는 순례씨의 생각과 삶과 비슷하기도 하고, 그렇게 복잡하게 진행되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

페넬로페 2024-03-31 10:25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더라고요. 오히려 청소년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았어요.
네,
hnine님 말씀처럼 인생은 여러 시기를 거치는데 스토너의 삶을 닮은 시기가 훨씬 더 많지 않나 생각했어요. 이제부턴 순례 씨처럼 살고 싶어졌어요. 巡禮하는 자세로요 ㅎㅎ

새파랑 2024-03-31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순례씨 보다는 스토너~!! 심심해 보이고 무난해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특별할건 없지만 유일한 나의 인생~!!

페넬로페 2024-03-31 14:56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은 스토너~~
근데 스토너처럼 너무 쉽게 사랑하는 여자를 보내시면 안됩니다 ㅎㅎ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19세기 프랑스 여러 분야의 풍속을 그대로 담은 발자크 적 리얼리즘 소설인 인간극은 세밀하고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등장인물의 생김새부터 (발자크는 관상이나 골상학을 믿는 게 틀림없다.) 성격이나 자라 온 환경, 사건의 전개 등을 독자들의 상상력이나 해석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자크의 소설을 읽기 쉽다고 착각한다.

 

어둠 속의 사건이 그랬다. 프루스트를 읽고 난 다음 선택한 발자크의 소설은 프루스트에 비해 은유와 주어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길게 쓴 문장이 없어 술술 잘 읽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0페이지쯤 읽었을 때, 노트를 가져와 사건과 인물에 대해 정리하며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격변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과 변화에 순응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대조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그 당시 사회, 법률, 재판, 정치와 연결시킨 발자크의 글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혁명의 결과엔 늘 실망이 따르지만, 공통적으로 그 목적은 오랫동안 누려온, 부당하고 불평등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왕권과 귀족의 권위는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으며, 그들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거나 약탈되었다. 왕족과 귀족들은 망명자가 되어 왕정복고의 기회를 노리고, 부르주아는 국가로부터 귀속재산과 귀족의 지위까지 사들인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역사의 전반에 등장했지만 그들은 돈과 함께 옛 귀족이 가지고 있던 명예나 지위도 원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부르주아인 마르셀이나 스완, 베르뒤랭 부인, 오데트가 포부르 생 제르맹지역의 살롱에 가기를 원했고, 결혼을 통해 귀족의 작위를 얻는 데 집착한 이유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돈만으로는 진정한 품위를 얻기 힘들어서였다. 부르주아(시민계급)는 가문의 전통을 상징하는 공작이나 백작, 후작이라는 지위, 이름 중간의 를 사용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새로운 역사와 권력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한 밑천 잡은 고리오 영감이 그의 딸들에게 돈을 쏟아 붓는 것도, 귀족 숭배자이자 왕당파의 오노레 발자크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에 를 넣어 오노레 드 발자크가 된 경우도 똑같은 이유이다.

 

 

공드르빌 영지의 드 시뫼즈 후작 부부는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이었던 독일의 귀족들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1790년에 재산을 빼앗기고 단두대에서 참수된다. 영지는 국유재산으로 환수되어 다시 매각되는데, 나폴레옹에 의해 국가참사회 의원으로 임명되고, 오브현의 실세인 말랭이 비밀리에 사들인다. 말랭은 프랑스 혁명이후 격변하는 시기에 12번의 정부가 바뀔 때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인물이다. 어둠 속의 사건에서 발자크는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인물(나폴레옹, 푸셰, 탈레랑, 시에예스)을 함께 등장시키는데, 말랭은 푸셰의 페르소나로 보일 정도로 푸셰의 삶을 똑같이 답습한다.

 

드 시뫼즈 후작의 쌍둥이 아들과 그들의 사촌 로랑스 드 생시뉴는 나폴레옹 정권에 반대하고 왕정복고를 위해 투쟁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열정이 넘치고 의리가 있지만,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주위를 둘러보는 데 실패한다. 혁명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계속 누려온 기득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민중이 고통 받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지키고자 하고, 돌려받기 원한 것은 그들의 재산과 권위이며,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의 명예인 것이다.

 

로랑스 드 생시뉴는 그 시대 여성답지 않게 당차고 용감하다. 발자크의 표현대로 로랑스는 오연(傲然)하다. ‘남성적인 결단력과 금욕적인 강인함(p.74)’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과 가문,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나폴레옹의 암살을 응원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린 그들의 사촌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나폴레옹을 만나러 위험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폴레옹에게 굽히며 그들의 사면을 청한다. 자신을 끝가지 도운 미쉬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아들 프랑수아를 책임진다.

 

이 책의 표지인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절망적인 남자>는 보기에도 강렬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 위로 손을 올린 그림 속의 남자에게 당혹감과 놀라움, 절망, 불안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마 이 남자는 미쉬일 것이다. 보잘것없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미쉬를 거두어 관리인 자리까지 준 시뫼즈 후작 부인의 호의를 갚고자 그는 죽을 때까지 시뫼즈 형제와 로랑스를 위해 헌신한다. 발자크는 이 책의 초반에 미쉬에 대해 길게 서술한다. 미쉬의 미래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고, 독자는 미쉬가 정치와 법의 희생양이 될 운명임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발자크는 민중인 미쉬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그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격변하는 시기에 인간이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미쉬처럼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거나, 또는 자코뱅당의 수장이 되어 귀족을 단두대로 보내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귀족을 도울 수도, 귀족을 감시하는 경찰의 끄나풀이 될 수도 있다.

 

미쉬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역사에 발 빠르게 편승하여 민중에서 서민으로 자신의 신분을 바꿀 기회가 분명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쉬는 의리를 지키고 도덕적인 인간으로 남는 선택을 한다. 그런 미쉬같은 약자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요구되는 것은 희생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고 넘어가기 위해 한 사람 정도는 죽어줘야 하는 세상에,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선택되는 것, 그것이 미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집정정부 시대였던 1800923, 보베성에서 상원 의원 클레망 드 리가 납치되는 실제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 어둠 속의 사건은 각자의 인간이 추구하는 자신만의 신념과 정치적 선택이 격변하는 역사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와 작정하고 덤벼드는 무고적(誣告的) 악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학에서 인용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 탁월한 정치적 분석을 담고 있다(p.343)’는 알랭의 말처럼 발자크는 문학을 통해 그 당시 프랑스 사회와 정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금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그대로 담은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도출하고 분석하게 해준다. 그것이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사회가 재판을 창안한 이후로, 사법 당국이 범죄에 맞서 누리는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사회가 무고한 피고인들에게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재판은 쌍방향이 동등한 것이 아닙니다. 스파이도 경찰력도 갖고 있지 못한 방어 측은 자기 고객들을 위해 사회적 힘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무고함이 의지할 수 있는 건 논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배심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논리라는 것은 선입견을 가진 배심원들의 정신에는 무력한 것이 보통입니다. -p252]

 

[어둠 속의 사건은 인간의 삶이 역사의 굴곡과 얽혀 있어서, 인간의 운명이 결국은 역사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패멸하는 역사의 희생물로 그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342, 작품 해설 중에서]

 

소설 어둠 속의 사건은 실제 인물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조제프 푸셰를 빼놓고 읽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소설속의 인물로도 등장한다. 푸셰는 말랭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등장하는데 발자크는 이 소설에서 이중적으로 푸셰를 등장시킨다. 발자크는 푸셰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의 본성을 정확하게 알아본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실제 인물 푸셰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보나파르트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유용한 충고와 소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자신의 기량과 유용성을 증명해 보인 데 만족한 푸셰는 자신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삼가면서 만사를 굽어보는 위치에 머무르고자 했다

P.98, ‘어둠 속의 사건중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역시 푸셰를 완벽히 분석한다. 탁월한 전기 작가인 츠바이크는 혁명을 시작으로 빠르게 변화되는 프랑스 역사 속에서 기회주의자인 푸셰의 삶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푸셰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배반을 밥 먹듯이 하고, 그 누구에게라도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인간이다. 수도사 출신이지만 종교를 저버리고, 루이 16세와 친구인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리옹에서는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무수하게 학살했다. 항상 본심을 숨기고 끝가지 기다리며 마지막엔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 선다.

 

츠바이크는 푸셰를

-정치적 인간,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

-무미건조한 사무실형 인간,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사람

-현실주의자, 기회주의자

-가장 교활한 사내,

-영리한 계산의 달인

-팔색조, 집요한 모사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일념

-탁월한 정치적 지성을 가진 사람

-철면피, 무쇠 인간

-이기적이고 냉정한 사람

-남을 우롱하기를 즐기는 사람

-비도덕적 인간형

으로 다양하게 묘사했다.

 

로베스피에르는 푸셰를 음모의 괴수라고 했으며

나폴레옹은

내가 아는 정말로 완벽한 배신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바로 푸셰이다(p.297, 조제프 푸셰)”라고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조제프 푸셰는 서로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10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에게 믿음은 없었다.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언제라도 상대방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푸셰를 불신하고 화를 내며 증오하기까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푸셰에게 벗어나지 못하며 10년을 보낸다.(p.199)’.

 

푸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협박한다. 정적을 위협하기 위해 언제라도 써먹을 수 있는 숨긴 정보가 가득하다. 영화 더 킹에서 검사인 한강식(정우성)이 필요할 때 하나씩 써 먹는 수법과 같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세력과 손을 잡고 무자비하고 비열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며 물론 잘 살고 있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신념과 의리, 도덕, 인간성을 다 버리면 행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의 영역이다.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아서도 안 되지만, 그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사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사는 것, 살아내는 것은 매번 어렵다. 발자크도 츠바이크도 정확한 답을 주진 않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람, 삶을 통해 또 한 번의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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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5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하고 독서모임하신 줄 알았어요! 😹

페넬로페 2024-03-25 09:03   좋아요 2 | URL
앗, ㅋㅋ
이제 확인하고 왔어요.
그레이스님과 6년째 독서모임 하고 있습니다.
주로 고전을 읽고 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4-03-25 10:35   좋아요 1 | URL
^^

자목련 2024-03-25 13:41   좋아요 2 | URL
저도 혼자 두 분이 같이 읽으셨나, 우연인가 궁금했는데.

새파랑 2024-03-25 1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드 페넬로페‘ 님으로 불러야 할거 같아요~!! 요새 발자크에 빠진 페넬로페님~!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셔서 인지 다른 책들은 쉽게 읽으시는 군요~!!

제가 저번에 플로베르를 읽었을때도 느꼈던 건데, 발자크나 플로베르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4-03-25 13:39   좋아요 3 | URL
‘드 페넬로페‘, 영광입니다 ㅎㅎ
어찌하다 보니 계속 프랑스 소설을 읽게 되었어요.
이왕 시작한 거 스탕달과 플로베르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선 2024-03-26 0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다보니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사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친일파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파(밀정)로 바뀐 사람... 지금도 다른 남의 뒤통수 치는 사람 있겠네요 어떤 시대든 그런 사람은 있지요 큰 뜻을 갖고 살지 않는다 해도 개인으로는 부끄럽지 않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해도...


희선

페넬로페 2024-03-26 09:50   좋아요 2 | URL
네, 어느 시대고 이런 사람이 수두룩해요, 지금도 그렇고요.
희선님 말씀처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모두 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을까요!
 


 












우연히 영화 어톤먼트를 보게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왓챠에는 없었고, 되도록 고객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으로 내가 찾는 영화대신 그 영화와 비슷한 내용의 어톤먼트를 추천받았다. 이 영화의 원작이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라는 것도, 내용도 전혀 모른 채, ‘한 번 봐볼까?’라는 생각으로 봤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오열하고 말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악의에 의해 이렇게나 허무하게 끝날 수 있는가에 대해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분노가 치밀었다. 너무 화가 났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느끼는 불행의 강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의 집단적인 죽음보다 한 개인에 초점 맞춰진, 그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세게 다가올 수 있다. ‘로비 터너의 인생이 불쌍했고, 그가 하루하루 견뎌낸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같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는 것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영화보다 인물의 감정 하나하나를 더 세밀하게 표현했다. 생각, 느낌들이 생생했고 더운 날씨가 주는 끈적임과 짜증, 권태, 욕망 등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압축된 영화보다 긴장감은 조금 덜 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이미지와 이미 알고 있는 사건으로 인해 소설을 읽는 데 몰입이 잘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100페이지쯤 지나고 나서 작가의 문장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치명적인 일은 한 순간의, 일시적인 현상만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보일수도 있는 것을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분량이 길다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의 반을 사용한다. 런던과 조금 떨어져 있는 탈리스 가의 저택에 여러 인물들이 모여든 19356월의 어느 3일 동안 일어난 일과 인물들의 삶에 대해 작가는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을 파멸시키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마저 평생 고통 속에 몰아넣는 치명적인 일은 모든 것의 유기적인 결합으로만 일어날 수 있기에 작가는 그것에 대한 원인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브리오니한 사람이 거의 부각되지만, 소설에는 세실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아주 적극적인 동조에 의해 로비 터너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로비 터너는 탈리스 가의 파출부인 그레이스의 아들인데, 정원사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여섯 살일 때 말도 없이 가족을 떠나버린다. 로비는 탈리스 가의 도움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는 다시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탈리스 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탈리스 가의 세 자녀인 레온, 세실리아, 브리오니는 로비처럼 확실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레온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평범한 은행원이 되었고, 세실리아는 케임브리지의 거튼 대학을 나왔지만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다. 당시 여자들은 대학 졸업 증명서도 받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독립하기 위한 직업의 선택이 마땅하지 않고 그렇다고 단조로운 집에 머물기는 싫어한다. 세실리아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브리오니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이다


자주 심한 편두통에 시달리는 그들의 어머니인 에밀리 탈리스는 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그녀는 침대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에밀리는 한낱 파출부의 자식인, 자기들의 도움으로만 학업을 할 수 있는 로비가 케임브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다시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보다 로비가 뛰어나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낀다. 이 저택에 레온과 그의 친구인 초콜릿 사업가 폴 마셜이 올 예정이고, 부모의 이혼으로 갈 곳이 없는 이종 사촌인 롤라와 그의 쌍둥이 남동생은 이미 와 있다.

 

브리오니는 유아실의 활짝 열린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분수 앞에서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일어난 일을 쳐다보며 오해한다. 그 오해는 브리오니의 상상 안에서 부풀려지고 단정된다. 서재에서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목격한 브리오니는 또 한 번의 오해를 하며 자신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스토리를 더욱더 굳히고, 로비의 편지에 씌어져 있는 ‘cunt’라는 단어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 번도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은 채 브리오니에 의해 상상되어진 것은 로비에게 배은망덕한 인간의 굴레까지 덧붙여져 그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브리오니는 느끼지만 이미 그것은 어른들이 처리할 일로 넘어가 브리오니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건이 되고 만다.

 

36개월간 감옥에 갇혀 힘든 생활을 한 로비는 감옥 생활 대신 제2차 세계대전에 사병으로 참가한다. 프랑스 북부 지역으로 파병되기 전 로비는 가족과 의절한 채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세실리아와 짧게 만난다. 어색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로비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세실리아는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로비는 됭케르크 마지막 철수 일인 194061일 브레이 듄스에서 사망했고, 세실리아는 그해 9월 독일군의 밸엄 지하철역 폭격으로 사망한다. 이 허무한 두 사람의 죽음으로 브리오니는 그들에게 직접 용서받을 기회를 잃는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작가로 평생을 산 브리오니에게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브리오니에게 글쓰기는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짜릿함뿐만 아니라 세상을 축소하여 손 안에 넣는 즐거움까지 맛보게 해(p19)’준다. ‘상상하고 바라던 대로 글을 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완벽한 세상이 탄생(p.62)’하는 소설이 글쓰기의 최고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문장을 읽는 일과 이해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손가락을 굽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장을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 어느 것도 끼어들지 못했다. 기호가 해석되는 과정엔 어떠한 시간적 틈도 없었다. ‘()’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눈앞에는 한여름 울창한 숲 뒤 저 멀리에 있는 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대장간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갔으며,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선선하며, 자갈이 깔린 길은 구불구불 이어져 숲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p.63]

 

읽는 일과 이해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끼어들지 못하는소설처럼 브리오니는 로비에게 타격을 가한다. 결국 브리오니의 속죄도 그녀가 쓴 소설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 글쓰기, 소설은 어쩌면 상상의 세계에서만 완벽한 것인지도 모른다. 글쓰기의 재능으로 상상되고 단정된 것들은 그 속에서 숨 쉴 수 없을 만큼 읽는 것과 느끼는 것이 동시에 진행되며 완벽하게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 글 속에 담긴 것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 작가는 자신이 만든 허구에 경탄하며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다. 브리오니는 끝까지 속죄라는 단어에 글쓰기의 망상과 자기애를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불행하게 만든 이들을 생각하며 평생 괴로웠겠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글쓰기 세계에서 스스로 위로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만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작가 이언 매큐언은 그의 문장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압축된 말을 가져와 인용한다.

 

[“몰란드 양, 당신이 품어온 의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겁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이 시대를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영국 사람입니다. 게다가 기독교인이지요. 제발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똑바로 보고 이해하고 판단해주세요. 그런 잔혹 행위를 해도 된다고 교육받은 적이 있습니까? 법이 그런 것을 묵인해 주고 있나요? 사람들간에 직접적인 왕래와 서신 교환이 잦은 이 나라에서, 남의 눈을 피할 길 없는 이 나라에서, 도로와 신문 덕분에 세상에 비밀이란 남아 있지 않게 된 이 나라에서 그런 잔혹 행위가 비밀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몰란드 양,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던 겁니까? 그들은 어느새 복도 끝에 다다라 있었다. 그녀는 수치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제인 오스틴, 노생거 수도원중에서 p.9]

 

영국인이라도, 기독교인이라도, 교육받은 사람이라도, 비밀이 없더라도, 제인 오스틴의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과 시기, 질투, 실수로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속죄는 종교적 원리에서만 통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속죄한들 이미 불행에 빠진 사람의 인생을 되돌리지 못한다. 그러니 일어나는 일을 똑바로 보고 이해하고 판단해야할 것이다.

 

브리오니를 연기한 배우 시얼샤 로넌이 영화 작은 아씨들조 마치였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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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9 15: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이틀이 무신 화두 같이 다가옵니다.

속죄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어쩌면 속죄는 스스로를 위한 게
아닌가 싶네요.

소설은 예전에 매큐언 선생에 빠졌
을 적에 읽었는데, 영화도 한 번 보
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02-29 15:33   좋아요 1 | URL
특히 이 소설에서 매냐 님께서 말씀하신 ‘속죄‘에 대한 느낌을 더 전달받은 것 같습니다. 용서에 대한 의미도 더 깊게 다가왔고요.
‘속죄‘가 이언 매큐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하던데 과연 좋았습니다. 덩케르크와 연결시킨 것도 탁월했고요.^^

얄라알라 2024-02-29 22:51   좋아요 1 | URL
제가 이언 매큐언 열심히 읽었던 당시, 레삭매냐님 영향을 받았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4-02-29 15: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품(영화) 딥빡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브리오니 땜에 브라우니도 싫었던 기억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2-29 15:35   좋아요 0 | URL
저 정말 로비가 너무 불쌍하고 속상해서 꺼억꺽 울었다니까요.
소설에서는 브리오니의 엄마도 한 몫 단단히 하더라고요 ㅠㅠ

coolcat329 2024-03-01 07:01   좋아요 0 | URL
저도 진짜 딥빡!

Falstaff 2024-02-29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 이이가 쓴 <암스테르담> 독후감 올릴 겁니다. <속죄>도 <칠드런 액트>도 <암스테르담>도 다 재미있더라고요. 이번에 다시 매큐언한테 폭 빠진 1인이었습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2-29 16:33   좋아요 3 | URL
작년부터 계속 프랑스 소설 읽고 있는데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조금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저도 계속 매큐언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해요.
내일 <암스테르담>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2-29 17:04   좋아요 2 | URL
암스테르담
반전이 있는 소설
넘 좋았죠^^

얄라알라 2024-02-29 22:53   좋아요 3 | URL
폴스타프님의 매큐언 사랑^^ 물론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3월 1일 독후감 올라오는 군요^^ 놀러갈게요~~

그레이스 2024-02-29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죄가 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용서받았다는 느낌, 불완전하단 생각을 했습니다.ㅠ

페넬로페 2024-02-29 18:01   좋아요 1 | URL
자신의 방식으로만 속죄를 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용서 받았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저 살아 있는 사람들 마음이 끝까지 편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가가 이런 것들을 잘 살렸더라고요^^

희선 2024-03-01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잘못한 걸 용서해줄 사람이 없군요 그러면 괴로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소설이 안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 일은 자신이 멋대로 생각하면 안 될 듯해요 그걸 알게 됐다 해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한데... 알고 싶으면 당사자한테 물어봐야죠 어려서 그랬다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4-03-01 08:51   좋아요 1 | URL
어려서, 잘 모르니까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결과였어요. 그래서 용납되지가 않고요. 어쩌면 용서받을 수 없기에 속죄할 기회를 스스로 없앴는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꼬마요정 2024-03-01 0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이 영화 진짜 너무 좋아해요!!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색감이랑 배경도 너무 예쁜데 로비랑 세실리아랑 너무 슬퍼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나온 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죠. 가해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몇 없는데 그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어요. 가해자는 늘 용서받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그들에게 끊임없는 죄책감을 안겨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나마도 가해자에게 양심이 있다면 그렇겠지만요.

페넬로페 2024-03-01 08:55   좋아요 2 | URL
저도 완전 영화를 몰입해서 봤어요. 너무 먹먹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아, 데이비드 컴버배치, 어쩔 것이야 ㅎㅎ
셜록과는 이미지가 완전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가해자가 평생 고통을 받고 사는 건 당연한데도 피해자는 영원히 더 힘들 것 같아요.

coolcat329 2024-03-01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죄 읽고 브리오니가 너무 싫어서 죽겠더라고요.
시얼사 로넌도 덩달아 싫어지고 ㅎㅎ

페넬로페 2024-03-01 08:57   좋아요 1 | URL
어쩜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정말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시얼사 로넌은 다른 영화에 나와도 관객들은 브리오니가 연상되어 괴롭다고 다들 얘기해요.

coolcat329 2024-03-01 10:26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시얼사가 나오는 영화는 그 이후로 한 편도 안봤어요.

서곡 2024-03-01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속죄 녹색 드레스가 떠오르네요...페넬로페님 삼월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4-03-01 09:39   좋아요 1 | URL
네, 그 녹색 드레스가 정말 예뻤어요.
3월인데 날씨가 많이 추워요.
벌써 3월인데, 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니 더 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4-03-0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안그래도 이언 매큐언 작가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궁금해서라도 나중에 영화도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인간의 어리석음이 결국....ㅜ
그래서 피해를 입은 주인공들은 어쩐답니까.
이건 속죄를 한다고 해도 용서받기 힘든 상황이 아닐까? 페페 님의 리뷰를 읽기만 해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페넬로페 2024-03-02 09:03   좋아요 1 | URL
저도 이언 매큐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시잖아요, 실천이 잘 안되는거요.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면서 내처 책까지 읽었어요.
가해자도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건 이유가 안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에게 너무 치명적이라 ㅠㅠ

새파랑 2024-03-03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속죄 재미있나보네요~! 저는 구판? 으로 사놓긴 했는데 왠지 손이 안가더라구요...표지 때문인가? ㅋㅋ

오늘 당장 찾아아봐야겠습니다. 브라우니가 나빴나보군요!!

페넬로페 2024-03-03 19:17   좋아요 1 | URL
네, 맘이 넘 아픈 소설입니다.
책 읽으시려면 영화보지 말고 시작하시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내용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