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 이한우의 지인지감 知人之鑑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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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중심사상으로 움직이던 조선이나 중국에서 보면 논어는 경전에 가까운 책이다.
하지만 현대에서 논어는 아주 어려운 책으로 인식되어진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에서는
아예 접근하기를 꺼려할 정도이다. 하지만 고전의 존재는 시대와 상관없이 지혜를 전한다.
비록 어려운 고전이지만 시대를 거슬러 반드시 읽어야할 책으로 알고있지만 막상 접근하려고
하면 망설여지곤 했다. 저자 역시 한학자에게 논어를 배우기 위해 6개월을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전하는 논어는 우선 읽기 편하다. 다가가기가 쉬웠다는 뜻이다.


저자가 전하는 논어를 이해하게 되면 세상의 이치가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보인다는 뜻은 관상학적이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꿰뚫고 지피지기한다는 뜻이다.
우선 논어가 전하는 의미를 알기위해 저자는 중국과 우리의 역사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비하여 잘 풀어놓았다.

조선의 명군이라 평가받았던 세종은 아버지 태종대에서부터 병조판서를 맡아 병권을 쥐었던
조말생을 정승으로 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논어 학이 편에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에는 그 행실을 깊이 살펴보아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뜻을 조금도
잊지않고 따른다면 그것은 효라고 이를만하다'
세종은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것이다.
결국 조말생은 뇌물죄로 낙향하고 마는데 세종은 그가 너무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었고
반드시 사사로운 행실을 행사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보면 나라를 팔아먹은 간신배가 수도 없이 많다.  리더가 미리 알았더라면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쓴 소리보다 단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논어에서는 바로 이런 점을 경고하고 있다.


'볼 때는 밝음을 먼저 생각하고 들을 때는 귀 밝음을 먼저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함을 먼저
생각하며 몸가짐을 할 때는 공손함을 먼저 생각하며 말 할 때는  진실함을 먼저 생각하라...'
들을 수록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공자가 전하는 지인지감의 첫단계는 시(視)이고, 두번 째가 관(觀)이며, 세번 째가 찰(察)이다.
즉 보고 관찰하고 분별하라는 뜻이다.
황희와 김종서의 일화가 바로 그 것을 증명하고 있다. 김종서가 당대의 명판서이긴 하지만
그의 기운이 너무 굳세고 날래어 일을 과감하게 하는지라 후에 신중함을 잃을 것을 염려한
황희가 큰 호통을 한 적이 많았다. 결국 황희의 염려대로 정승에 올랐지만 수양대군에 의해
제명에 죽지 못했다. 당시 황희의 시(視)가 옳았던 것이다.

이처럼 논어는 수많은 인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무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읽혀져야 하는 이유가 많다.
'사람을 알아보는 거울'이 있다면 인간관계에 실패는 없다.
바로 이 논어를 쉽게 해석한 책이 거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함은 바로 사람을 제대로 해석하고 볼 줄 알아야 실패가 없다는 뜻이니
거울처럼 비춰주는 논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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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짓 - 연애의 모든 순간에 대하여
이정 지음 / 프리즘(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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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빼놓고 인류의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
일단 생명이 이어져 왔던 원천이었고 모든 예술의 기본이었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힘이 되는
중심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사랑을 했고 하고 있으며 지금도 간절한 사랑을 찾아 떠도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시, 미술등 모든 분야의 중심이 되는 그 '사랑'이 참 어렵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사랑'임을 너무 잘 알기에 사랑에 관한 책들이
수없이 나와도 또 사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고대 신화에서 인간은 원래 암수한몸이었다고 한다.  제우스가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나눠놓았다는데 결과적으로 서로를 향해 다시 한몸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사랑'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나누어진 남, 녀는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완벽을 향한 도화선이 '사랑'이란 말인데 문제는 이 사랑조차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말하자면 사랑도 경영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완벽한 사랑'은 없지만 '최선의 사랑'을 향한 교과서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말도 있지만 영원한 사랑이 과연 있기는 할까.
여우같은 사랑으로 상대를 유혹하고 실속있는 사랑을 영위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건 너무 영악하고 현실적인 사랑인데 과연 이런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자꾸 되묻게 된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해답들이 즐비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손자병법'이 떠오른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라는 말도.
평생 사랑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이왕이면 실패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위한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어차피 나이가 들어가면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겠지만 인생의 절정에 있는 순간에는
절대 눈높이를 낮추지 못한다.  지나고 보면 당시에는 그저 그랬던 상대가 사실 최고의 배우자
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을 보면 눈높이를 조금만 낮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 자신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상대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스스로 불완전한 인감임을 지각하고 상대를 보고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결국 운명적인 사랑조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면 고수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라도 이 책을 읽다보면 다시 고개를 낮추게 될  것같다.
내가 상대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를 낮추고 여우같은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아직 애인이 없는 딸 아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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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특서 청소년문학 5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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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내내 어린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부산 영도구 대평동은 조선소와
항이 내려다 보이는 산동네이다. 부산시내에서 태종대를 넘어가는 영도다리를 건너면 있는
그 산동네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같이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겹쳐진다.


가난으로 인하여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막내 동생 동우를 키우다시피했던 그 무렵
육영수여사가 돌아가셨다니 나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아온 것 같다.
당시 6학년이었던 나는 어렸지만 뭔가 대단한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던 것이 떠오른다.
바다에서 삶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월급쟁이 선장이었던 아버지의 사고로 엄마마저 선박의 녹슨 부분을 털어내는 깡깡이일터로
나서야했던 일이며 엄마를 대신해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했던 맏딸의 애처로움.
돈을 벌겠다고 떠난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가족을 몰라라했던 일들이 묘하게
나의 삶들과 겹쳐졌다.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아파트공사장을 전전하며 어린 5남매를 키워야했던 엄마의 얼굴도.


힘든 삶을 꾸려가야 하는 엄마곁에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기둥처럼 버티고 서서 동생들을
거두느라 중학교마저 포기했던 어린 큰딸의 아픔들이 너무 절절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을지 나는 알고도 남는다.
1년 후 다시 중학교에 진학하려고 애쓰는 장면에서 끝이 나버려 은정이가 중학교에 잘 진학했는지 궁금해진다. 작가로서 성공했으니 어려움 속에서도 잘 이겨내고 공부를 하지 않았나싶다.


조그만 골목안에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로 수돗가가 보이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을 보면서 가난했지만 사람 사는 것 같았던 그 때가 더 좋았던가 싶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 채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지금이 더 살기 좋다고 단언할 수 없다.
깡깡이를 하면서 어린 자식들을 키워낸 엄마는 이제 요양병원에서 치매로 죽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이제는 사위어가는 촛불마냥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 대한민국의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살았다.

'깡깡이'란 말은 남편을 통해서 들었다. 목포 어딘가에도 그런 동네가 있었는데 그 시절
깡깡이 부대 엄마들 중 이제는 늙고 사라져 몇 안남은 할머니가 과거를 얘기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책의 주인공이었던 정은이가 막내 동우를 업고 영도다리를 오갈 때 즈음 남편도 그 근처
조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추억여행으로 다녀온 부산 영도는 과거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서 아련하게 전해진다.

고단했지만 아름답고 가슴아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린시절의 나를 만났던 시간이었다.
이곳에 닿기까지 젊음을 헌신하셨던 어머니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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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한 마야
멀린 페르손 지올리토 지음, 황소연 옮김 / 검은숲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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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은 전세계인들을 경악에 빠지게 했었다.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사망하고 범인 두명은스스로 목숨을 끊은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교내 총기사건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총기 허가가 자유로운 미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씁한 뒷맛을 남기곤 한다. 이 책의 무대는 스웨덴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사고의
범인으로 지목된 마야라는 열 여덟살의 여고생의 재판으로 시작된다.


그 사고에서 마야는 살아남았고 또 한명의 범인이었던 세바스티안의 모든 범죄를 조종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후 9 개월째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스웨덴에서도 손꼽히는 재벌 클래스 퍼게만의 둘째 아들인 세바스티안은 누구라도 반할만한
미남이었지만 마약에 중독이 되어있었고 평소 자신을 경멸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마야와 함께
학교로 들어가 교사인 크리스터와 학생인 데니스, 어맨다가 사망하고 사미르는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세바스티안과 어맨다는 마야가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마야는 부자 엄마 아빠를 둔 행운을 스웨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변호사 샌더의 변호를 받는다. 과연 마야는 세바스티안을 조종해서 아버지를 죽게만들고 동급생들과 교사를
죽이게 만들었을까.


마야는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였지만 언론과 사람들은 그녀가 극악무도한 범죄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유명한 변호사라 하더라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마야를 구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소설의 거의 뒷부분에 이를 때 까지도 마야가 과연 세바스티안을 조종한 진짜범인인지
아닌지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마야는 자신의 절친인 어맨다가 자신이 쏜 총에 죽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잘 생기고 부자인 세바스티안에 반해 연인이 된 마야는 세바스티안의 내면에 깊은 어둠을 있고
그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가 있음을 알게된다. 마약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세바스티안과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의 자살소동으로 다시 그에게 돌아가고 만다.
그 사이에 마야를 좋아하던 사미르와 다시 관계를 갖게 되고 두 연인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확실히 이런 장면들은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마약과 알콜이 넘치는 파티가 열리고 자식들이 자유스런 연애와 성을 즐겨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니...내 시각이 너무 고루한 것일까.


마야는 세바스티안을 만나기 전에도 네 명의 남자친구가 있었고 자유스런 연애를 즐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야가 방종한 아이는 아니고 이 시대 스웨덴의 젊은이들의 모습인 것 같았다.
마야는 세바스티안과 어맨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과 후회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어서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변호사 샌더는 마야를 신뢰했고 결국 그녀를 구해낸다.
재판이 진행될 수록 마야에 대한 의심은 점점 사그러든다. 그리고 살아남은 마야의 전 남자친구
사미르의 증언은 역전극의 단초가 된다.

소설이지만 임펙트가 대단한 스토리였다. 언제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현대의 비극이랄까.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마야의 이야기와 스웨덴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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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현대인과 기독교의 만남을 위하여
손봉호 지음 / 샘터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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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면서 잠깐 고민했고 읽으면서도 마치 정답을 찾는 수험생같은 마음이었다.
인간이라면 대부분 과연 신(神)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에 대한 의문으로 늘 고민했고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그 신의 존재가 믿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이름의 신으로 불릴 뿐이라고 생각했다.
카톨릭이나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등 전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에 따라서 혹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까지 그 신의 이름은 여러가지로 불린다고.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면서 완벽을 꿈꾸기 때문에 신이 필요했고 사는동안 아주 막중한
위치를 점하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어떤 형태의 신도 믿지만 어떤 종교의 신도 믿지 않는다.
일단 종교적으로 구획시켜놓은 여러모습의 신들에 대해 신은 믿지만 인간은 믿지 않기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어떤 규정이나 정의가 몹시도 거슬렸다.


하지만 이 세상을 만들고 꾸려나가는 강력한 어떤 존재는 있다고 믿는데 그걸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로 신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신에 대해 궁금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어떤 물음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유학을 마친 학자로서의 그의 정의는 어떠한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나와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지 저자는 첫머리부터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쓰고있다. 오히려 과학이 성하지 않았을 시대의 인간들은 더 순수하게 신을 믿었는데 현대의 사람들은 과학적 증명을 요구한다고 한다. 나를 포함해서.
역사속 수많은 철학자들은 종교를, 특히 하느님과 예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그럼에도 믿었다.
'알기 위해서 믿는다'라는 것이 그들이 믿는 이유였다. 엉뚱한 말인 것 같지만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나도 분명 성경을 많이 읽었고 비록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성경속의 이야기는 믿는 편이다.
일단 못되게 살라거나 나쁜 이야기가 없기도 하지만 인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된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해서 정신문화가 가난해지는 시대일 수록
성경이 더 필요함을 이해한다.


내가 가장 해답을 듣고 싶었던 물음, 즉 '교회를 통해서만 신과 소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베드로가 하느님과 예수를 가장 가까이 영접하는 장소로 교회를 처음 열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신을 만남으로써 정화되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처럼 신을 보지 못하고 교회에 미친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 역시 현대 교회의 나태와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를 통해 신을 오도하고 광신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독불장군처럼 살아오면서 간절하게 신의 이름을 부른 적이 많았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다.
내가 원했던 모든 답은 얻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설득당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이고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분의
아들'이라는 정의 하나는 확실하게 얻었다.
나처럼 신과 하나님, 예수님, 성경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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