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엄마와 산책을 나갔던 꼬마소년은 투정을 부리다가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직은 파란 신호등이지만 곧 빨간신호등으로 바뀔 것을 염려한 꼬마의 엄마는 아이를 막으려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하고 만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은 꼬마의 눈을 가리고 현장을 보여주지 않으려한다.

그 꼬마소년은 노암이었다. 노암은 그후 아동심리학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열 여섯살이 되는 해에 치료가 끝나게 된다.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했던 노암은 현실과 과거의 상처를 오가며 가까스로 삶을 연명한다.

다행히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대학에도 진학하는 등 노력을 하지만 자신의 영혼은 오래전 죽은 것같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상실감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노암과 그의 누나 엘리자에게 맡기고 폐인이 된다. 한 가정의 행복이 노암으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노암은 독특한 취향을 지닌 쥘리아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귀었지만 그녀는 미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떠나고 혼자 남게 된다.

노암은 회사의 중견간부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쥘리아를 떠나 보낸 이후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마흔이 되도록 스쳐가는 여자들과의 가벼운 만남만을 가진 채 사랑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못한 삶을 살게된다.

아마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아이 하나를 낳고 이혼을 한 누나 엘리자를 방문했던 노암은 세 살짜리 조카 안나에게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세 살짜리 꼬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휘와 목소리로 그에게 한 말은

"넌 다섯 사람과 함께 같은 날 심장으로 죽을 것이다."이었다. 순간 심장이 멈출 것같은 충격을 받은 노암은 오래전 자신을 치료했던 아동심리학박사 로랑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녀는 이제 은퇴를 하고 진료를 하지는 않지만 노암에게 리네트를 소개해준다.

 


 

그녀는 사실 정통적인 심리학자는 아니었다. 정신에 결부된 영혼과 몸의 관계에 결부된 모든 지식들에 대해 열려있는 통합적인 접근법으로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리네트는 노암의 조카 안나의 예언은 어떤 막강한 존재가 순수한 영혼의

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에 있는 예언소녀 사라를 만나보라고 권하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도 없었던 노암은 리네트의 조언에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알수 없는 이끌림으로 이스라엘로 향한다.

 


 

자폐아였던 사라는 노암에게 안나와 같은 예언을 들려주고 다섯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알려주기 시작한다.

노암은 사라가 알려준 다섯 사람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이스라엘에서 한 달전 태어난 갓난 아기와 이탈리아의 존경받는 철학박사, 그리고 헝가리의 행복한 부부등을 만나면서 도무지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여정을 끝내려고 한다.

하지만 사라가 보낸 네 번째 동반자의 이름을 본 순간 노암은 미친듯이 암스테르담으로 달려간다.

바로 그가 평생 단 한번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던 쥘리아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지식은 하나의 덫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에 이름을 부여합니다. 그것을 분석하고 분류하며 이로써 그것들을 통제한다고 믿습니다....우리는 영원과 무한에 비해 우리의 삶이 너무도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 합니다.'-본문중에서-

거리에서 만난 수도자의 입으로 전한 인생의 메시지는 사는 내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노암의 영혼을 흔들었다.

뭔가 더 위대한 존재들을 확인하고 자신의 죽음이 과연 언제 도래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지닌 채 사라가 전한 죽음의 동반자들을 만나는 동안 노암은 인생의 의미와 결혼, 사랑의 위대함들을 느끼게 된다.

 


 

'어떤 신비주의적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동일한 영혼이 여러 개의 몸에서 살 수 있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상처로 평생 고통받았던 노암은 쥘리아를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을 사라에게 보낸

리네트의 조언에 과거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있음을 알게된다.


사실 누구나 크고 적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된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꼬마소년의 아픔은

너무나 아프고 안스럽다. 스스로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으로 속죄를 대신하는 것같은 안타까운 모습에 제발 과거로

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노암을 어린시절부터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을까. 그래도 오래전 옛사랑과 재회하여 남은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넣었을 것같아 다행스럽다.

예언을 따라 노암과 함께 한 여정도 신비스러웠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스토리 배치도 훌륭하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삶을 살았던 노암의 아픈 시간들을 어루만져주는 작가의 따뜻한 손길에 위로가 된다.

역시 '밝은 세상'의 책은 늘 행복감을 준다. 실망하지 않을 책을 선택하려면 '밝은 세상'의 책을 집어들기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 70대 소녀 엄마와 40대 늙은 아이의 동거 이야기
최정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흔을 넘긴 어머니와 마흔 중반의 아들의 동거기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까지 차지한 아들은 여전히 늙은 엄마가 차려준 열두첩 반상을 받으며 여전히 툴툴 거리며 살아가고 있단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하는 일도 살림을 하는 일도 다 귀찮다고 하는데 중늙은이 노총각 아들 뒤치닥거리가 반갑지만은 않을 것 다. 그래도 하루에 국을 세가지씩이나 끓여 한 가지라도 더 입에 맞는 음식을 해먹이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의 사랑이 눈에 선하다.

더구나 밥상 차리는 일도 지겨울텐데 술상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술이 등장하지 않는 꼭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매일 술이야~~'가 절로 나온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나이라 해도 건강이 아직 괜찮은 것일까. 늙은 에미가 차려주는 술상을 받는 아들을 부러워해야할지 걱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래전 여인네들은 무뚝뚝한 남편과 노동에 가까운 시집살이를 견디면서 어찌 살았는지..

말순씨도 부잣집 딸로 잘 살다가 남편 잘못만나 팔자가 제대로 뒤집어졌다. 더구나 바람이라니..

눈이 오는 날 그 하얀 눈을 보면서 서른 한 살 남편의 뒤를 쫓아가다가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맨발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눈물과 분노가 섞여 마음이 아팠다. 왜 그런 세월을 살았을꼬. 아마도 자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S자형 몸매는 O자가 되었고 제 몸을 키워주던 젖은 이미 축쳐져버렸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 노화되지 않는다.

 


 

매일 새벽이면 천수경을 외고 절에 다녀오면서 챙긴 떡을 좋은 기 받으라고 기어이 먹이려는 어머니!

돈좀 꿔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자신의 집 족보에 오를 각오라면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머니의 걱정처럼 몸에 하자가 있거나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왜 결혼을 못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못생겼나...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정도는 아닌데...성격이 까칠할까?

시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언제까지 늙은 엄마의 뒷바라지를 받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매일 술상 차려줄 여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나처럼 술 좋아하는 여자라면 모르지만.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해 특가 행사중인 마트까지 전사차림으로 나서는 어머니와 티격태격 하는 일상이 짠하면서도 감동스럽다.  사표를 수 차례 던지면서 가장의 무거움을 어머니에게 넘기기도 했던 이 아들, '우울증인 것 같아!'라는 아들의 말에 외출도 안하고 가끔 자는 아들의 얼굴에 귀를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돈다.

마흔이라도 쉰이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같았을 것이다.

뻑하면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엄마는 노숙자라고 표현하시는-신세다 되는 아들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낙담하여 무슨일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

통장을 내밀며 굶어죽지 않으니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을까...위대하게 다가온다. -물론 요즘에는 제자식을 죽이는 에미들도 있지만-

'나의 지킴이, 나의 사랑'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친손주 재롱도 보고 술상 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장가가서 아이를 낳아도 환갑에 겨우 중학생일테니 둘이서만 재미있게 살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에, 그래도 내 아들 심간 편하라고 대가 끊기는 불효는 저승가서 당신이 받겠다는 모습에, 그 사랑을 다 받고 살고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지금도 바람불면 바다에 나가지마라, 건강조심해라..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온다.

뻐꾸기 우는 북한산 자락에서 며느리도 보시고 손주도 보시고 오랫동안 늙어가는 아들을 지켜보시길 기원해본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매일 올라오는 술상에 같이 걸터앉아 술 한잔 사랑 한잔 잘 마신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라면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이 글귀를 읽으니 어느새 어린시절 1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구멍가게를 뛰어가던 어린 나를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라면값은 20원정도였던 것 같은데 100원으로 5개정도의 라면을 사서 즐겁게 집으로 향하던 그 시절의 나! 60년도 후반이었으니 나는 베이비붐세대인 셈인데 한가정에 아이들이 적어도 서 넛 이상은 되었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그만 낳으라는 표어가 여기저기 보이던 시절이니 한국전쟁후 태어난 그 많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입히는 일들이 걱정스런 시절이기도 했다.

'통일벼'가 나오고 '알랑미'-아마 동남아의 안남미를 그렇게 불렀던 것같다-가 수입되면서 '정부미'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나오고서야 국민들의 배고픔은 어느정도 잦아들었던 것 같다.

'혼분식'이 장려되어 보리밥을 섞은 도시락을 검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제비'며 '라면'을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배가 고파 굶었다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라면 먹으면 되지'했다는 손주 이야기가 우스개처럼 말하는 시대가 온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세월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번창하고 가난을 옛이야기처럼 할 수 있는데는 '라면'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라면조차 사먹을 수 없을만큼 가난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비교적 쉽게 라면으로 주식을 대신 할 수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라면의 대부 '전중윤'회장 덕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삼양라면'!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 라면의 탄생을 보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북이 고향이었던 전중윤 회장은 국내 최초로 보험회사를 설립하고 금융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이라고 부르던 미군부대 쓰레기탕을 먹는 가난한 국민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식품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란 제목에 코끝이 시려온다. 유복하게 자라 배고픔을 몰랐다가 전쟁 피난 후 배고픔을 경험한 전회장은 가난한 국민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삼양식품'을 설립한 셈이다.

하지만 그 한 봉지의 라면이 우리 가난한 국민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스토리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도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뿌리는 중국이라고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만인 셈인데 중국에서 흔히 먹던 건면이 일본으로 건너와 라면으로 탄생되는 스토리도 라면발처럼이나 굴곡이 심했었다니..

일본 역시 전후 배고픈 시절을 경험하고 있었고 건면사업을 하던 묘조식품의 오쿠이씨의 노력으로 라면이 탄생된다.

건면은 저장성을 높히고 유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에 튀긴 라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기름을 선별하기 위해 시간도 참 지난했었다. 산패가 쉽게 되는 기름을 걸러내고 지금의 라면이 튀겨지기까지 모든 발명이 쉽지 않듯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라면의 진화는 참 고단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한일관계가 차가왔던 시절 오로지 배고픈 국민들을 구하겠다는 소신하나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이씨에게 진심으로 호소하던 전중윤회장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소비하고 가장 다양한 라면을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물만 부어서 먹는 라면에서 스프를 분리하고 한끼 식사로 탄생시킨 오쿠이씨의 노력에도 감동받았지만 그 귀한 스프의 제조비법을 전중윤회장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직전 몰래 전하던 오쿠이씨의 진심을 보자니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사람이지만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본에서 탄생된 라면이 현해탄을 건너 '삼양라면'으로 재탄생되고 그 비화속에 숨은 감동을 보자니 무심코 끓여먹던 라면 한 그릇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온다. 라면에 깃든 추억이야 어디 한 둘이랴.

멀리 해외에 갈때도 소중하게 챙기는 음식이었고 요리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었던 라면!

안타깝게 전중윤회장은 작년에 타계를 했다고 한다. 우지파동이 일어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만큼 큰 타격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라면의 대부에게 새삼 고맙고 그에게 라면의 비법을 전수한 오쿠이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식탁에 날마다 오르고 있는 라면속에 두 사람의 시간이 함께 담겨있다.

'라면 쉽게 보지 말라.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 역사를 오롯이 담은 음식일지니...'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의 라면이야기! 참 감동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계획의 철학 - 미루는 본성을 부정하지 않고 필요한 일만 룰루랄라 제때 해내기 위한 조언
카트린 파시히.사샤 로보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동화 '개미와 베짱이'가 떠올랐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와 그 곁에서 노래만 하면서 놀고 있는 베짱이. 과연 누구의 삶이 더 행복했을까.

물론 어려서 읽은 이 동화의 승리자는 개미라고 알고 있다. 겨울이 오자 열심히 일했던 개미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만 놀기만 했던 베짱이는 춥고 배고픈 겨울을 보내고 후회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전쟁후 배고픈 서러움을 경험했던 베이비붐세대의 우리들은 그저 부지런해야 살 수 있다고 배웠다.

선택이 아닌 필수! 몸으로라도 가난을 넘어서야 배고픔을 해결한다는 절대절명의 명제앞에서 게으름은 치욕이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이렇게 일어섰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무계획이라는 말 자체가 이해되기 힘들다. 하루를 24시간보다 더 늘여 쪼게 써야하는 세대에서 보면 무계획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에 '무계획'옆에 철학이라는 훈장을 붙인 저자의 의도가 너무 궁금해진다.

 


 

우리 세대에서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았던 '느림의 미학'이 추구되는 요즘에서 보면 과연 빠르고 계획적인 삶만이 정당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내 책상위에는 스케줄이 빡빡히 채워진 달력이 놓여있다. 직장은 이미 퇴직을 했고 그저 무위도식하는 내게도 무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날 잠들기 전에 다음 날 치워야 할 일들을 확인하고 하다못해 공과금 내는 날이며 책을 읽어야 하는 스케줄까지 빡빡하게 적혀있다.

때로는 이런 삶이 너무 목을 조이는 것이 아닌가 돌아볼 때도 있지만 살아온 습관이 일상이 되어버려 미션을 완성한 후의 희열까지 느끼곤 한다.

 


 

일단 저자가 정의하는 일, 즉 노동에는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노동과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하는 '개뿔노동'으로 분류시켜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하긴 먹고 살아야하니까 일하는 사람이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말하자면 '개뿔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개뿔노동'도 상황을 개선시켜 조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노동이 혹은 일들이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것. 바로 이런 점을 깨달아야 '개뿔노동'도 의미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 포 를 해야하는가. 우리는 너무 늦게 결정해서 오는 실패를 수없이 겪어왔다.

혹은 너무 일찍 포기해서 오는 절망도 맛보았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우여곡절은 너무도 많았었고 때로는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는 커다란 의미가 되기도 했었다. 문제는 너무 일찍 중단된 프로젝트가 혹시 계속 진행되었더라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포기의 순간이 도래하면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제언이 참 마음에 든다.

누구에게 미루지 말고 책임을 인정한다든지 절대 거짓말로 상황을 윤색하게 만들지 말라는 등에 조언은 비록 포기의 치욕은 있지만 비겁하지 않을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의 이런 조언은 죄책감과 후회로 고통받을 사람들에게 묘한 치유감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일을 계획적으로 하는 사람인지 무계획적으로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계획적인 인간이라고 판명이 난다면 계획적인 인간이 될 수는 있을까? 특히 게으른 누구에겐가는 성실하고 인내하는 법이 필요하다.

'간단한 예비훈련 다섯 가지'를 통해 정말 간단히 무계획적이고 불성실한 삶을 전환시킬 수도 있다.

신문을 낱장으로 분리해 한 장씩 폐지함에 넣기라든가,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속도감을 익히는 등 간단하게 훈련을 해볼 수 있다.

 


 

어수선한 일상을 정리하고 계획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아주 꼼꼼한 것까지 조언한다.

모든 계약을 인터넷으로 정리하고 회비가 나가는 회원목록을 정리해서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라는 항목까지 있다.

물론 이런 정리정돈이 무계획적이고 방만한 삶을 치밀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무계획적인 삶'이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적당히 힘을 빼고 절반의 힘으로 효율을 높힌다든지 '내려놓기'와 '내버려두기'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도 큰 도움을

준다. 과연 계획적이고 치밀한 삶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쓸것인가.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의 선택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냐는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인 셈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죄책감없이 극복하는 해법이 녹아있는 여유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한시 - 한시 학자 6인이 선정한 내 마음에 닿는 한시
장유승 외 지음 / 샘터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처럼 긴 호흡의 글이 있는가 하면 촌철살인같은 단 몇 마디의 말로 세상을 압축시킨 글이 있다.

시가 바로 그러한데 제목처럼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읽자는 의미도 있겠고 한시(漢詩)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문(文)을 숭상하던 우리 역사에서 그 옛날 시를 잘 짓는 사람들은 꽤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한자 교육이 사라지고 한자를 잘 모르던 세대에서 보면 낯선 글이 될지도 모르지만 겨우 몇자의 한자속에 깃든 심오한 의미를 생각하며 곱씹어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6명의 학자들과 함께하는 한시는 참으로 그윽하기만 하다.

 


비록 한자를 모르더라도 자상한 해설이 나와있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보면 흔히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뜻이 귀하게 담겨있다.

만고의 진리인 이 말을 오래전 성인에게 들으니 그 뜻이 또 가까이 다가온다. 역시 어른이 되어봐야(몸만 어른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의 참 마음을 알게 된다는데  나 역시도 오십줄을 넘어서야 홀로 계신 어머님이 더 소중한 것을 알았다.

단순히 어른이 되어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는 뜻외에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속뜻으로 해석하는게 더 멋지다.

 


과거에 효란 인간의 본성이자 자연의 원리라고 하였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효(孝)란 기대하기 어려운 성정이 되어버렸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어찌 효까지 바랄 것인가. 다만 마음으로라도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 아닐까.

반포지효라는 고사성어가 갑자기 눈물겹다. 나 역시 효를 다하지 못했으니 자식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싯귀 하나에 갑자기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어쩌면 인생 그 자체가 여행이고 우리 모두는 나그네 일지도 모른다. 그저 잠시 이 시간에 머물다 가는 그런 손님말이다.

이 한시에 바로 그런 뜻이 담겨있다. 조경이란 인물은 선조시대에 태어나 인조를 거쳤는데 슬픔의 시간을 거친 인물이라

그런가 세상을 초월한 듯한 싯귀가 아련하다. 고향이 없는 시대가 되고보니 더욱 이 시가 마음에 닿는다.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인생이니 굳이 태어난 땅이 무슨 소용인가. 지금 머무는 곳이 고향이고 사는 것은 잠시 다녀가는 일인 것을. 요욕칠정의 일이 덧없이 느껴진다.


싯귀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 닿지만 풀이해놓은 글귀들도 참 멋들어진다.

'이별앞에서 우아해질 수 있을까',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밤손님 이야기'처럼 얼른 읽고 싶어지는 머릿글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살다보니 '옛말 그른거 없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절로 공감이 된다.

하루에 한 편 한시(漢詩)로 마음을 닦아보는 것이 어떠할까.

메마르고 각박했던 마음에 온기가 돌고 여유로움이 차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