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전
곽재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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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전'이 별주부전이나 전우치전같은 전통고전이었는데 놓친 책인줄 알았다.

소설의 무대는 서기 391년에서 412년 무렵의 시기이고 한반도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가야국을 비롯하여 지금의 경상남도 서북부지역의 다라국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당시 고구려는 신라와 손을 잡았고 백제는 가야국과 손을 잡고 전쟁을 한바탕 치루고 치열하게 대치중인

시절이었다. 백제의 아왕은 이미 한 차례 전쟁에 진 후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하고 겨우 고구려의 눈치만

살펴야하는 서러운 신세로 전락했지만 복수를 하기 위해 은밀히 전쟁을 준비중이었다.

아왕은 백제의 귀족들에게 고구려와 다시 전쟁을 하려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른 백제는 전투력이 현저히 떨어져 고구려를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귀족들은 대거 백제를 탈출하기에 이른다. 이 때 백제의 귀족인 협지도 아내와 노비인 사가노를 데리고 탈출무리에 합류한다.

원래 사가노는 한강 근처에서 고기를 잡고 회를 뜨는 사내였는데 워낙 회뜨는 솜씨가 출중하여 소문이 자자했었다.

하지만 백제의 국운이 기울자 손님이 끊기게 되고 먹고 살 방법이 없자 손님이었던 협지에게 찾아가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여 자진노비가 되었다. 출중했던 음식솜씨 덕분에 협지네와 함께 가야국을 거쳐 유구국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피난민들이 워낙 많자 사공들은 과도한 재물을 요구하고 협지는 많은 재물을 주고서야 배에 오르게 된다.

큰 기대를 품고 가야에 도착했지만 몰려든 피난민들로 해서 거렁뱅이가 넘치고 가지고 있던 재물도 모두 잃은 후 협지는 노름에 빠지고 결국 사채를 끌어다 쓰다 사가노를 귀한 장군의 묘에 같이 순장하는 곳에 팔아넘기게 된다.

 

한편 가락국의 명문인 출씨 집안의 딸인 랑랑은 고명딸로 고이 자란탓에 고집이 세고 억세기로 유명한 여인이었다.

장사로 돈을 번 출랑랑의 아버지는 백제와 고구려의 싸움터로 향하고 그 뒤 소식이 끊어진다.

출랑랑은 어려서부터 고구려의 무사에게 배운 칼솜씨로 비록 출신성분은 비루하나 수완이 좋아 큰 돈을 번 용녀의 수하에 들어가 칼을 쓰는 무사로 살아가게 된다.

배를 타고 바닷길을 누비면서도 혹시나 아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촉을 세우던 출랑랑은 자신만의 세력을 키워 부하들을 모은 후 바다를 떠도는 도적 두령 '마귀모주'로 불리며 신화적인 존재가 된다.

자신의 집을 망하게 한 옥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옥왕에게 향하던 출랑랑은 옥왕을 죽이기 직전 위기를 맞게 되고 목숨을 내어주면 아비를 찾아주고 평생 편안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출랑랑는 역적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미 죽어 뼈가 된 장군의 부인묘에 순장되고 만다.

 

이렇게 사가노와 출랑랑은 장군과 장군부인의 묘에 순장되면서 질긴 인연이 시작된다.

출랑랑의 기지로 무덤에서 겨우 살아난 사가노는 출랑랑을 구출하여 함께 복수의 여정에 오른다.

 

마치 홍길동전을 보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출랑랑의 멋진 칼솜씨와 그녀가 휘두르는 명검 봉문도와 용봉도의 칼날이 느껴지는 듯하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오히려 여성의 지위가 훨씬 높았던게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큰 세력을 움켜진 여자 용녀는 '고용된 사람'이란 뜻으로 신분이 미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큰 야망을 품고 결국 가락국의 왕비가 된 보통 여자가 아닌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더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 출랑랑은 그저 말괄량이로만 말하기에는 부족할만큼 도저히 함부로 볼 여인네가 아니다.

출중한 칼솜씨며 거창한 말솜씨..오죽하면 '마귀모주'로 우는 아이까지 울음을 멈추게 했다지 않은가.

백제의 아왕이 용녀가 보낸 검에 써보낸 문구가 무엇인지 소설이 끝나기 직전까지 궁금증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솔로몬의 지혜처럼 훌륭한 판관으로 나오는 하한기는 가야 지역의 벼슬아치로 이를테면 다라국에 망명한 인물로 그려진다.

처음에는 죄인들을 잡아들이는 병졸로 활약했지만 항상 죄를 공정하게 밝히고 처벌하는 것으로 칭송을 받게 되어 역적으로 몰린 사가노와 출랑랑을 취조하게 된다. 역사서에는 하한기가 이름이라기 보다는 존칭이나 관직이 이름이 아닐까 추측한다.

 

실제한 역사와 픽션을 교묘하게 어우려 진짜 고전을 탄생시킨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어린 시절 김해지역을 여행하다 모티브를 얻었다는데 스토리를 풀어내는 솜씨가 그저 재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사료를 찾아내어 완성시켰으니 노력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더구나 여리고 정직한 사가노와 왈가닥 출랑랑의 복수의 여정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띠지에는 영웅의 역사가 아닌 패배자들의 역사라고 했지만 사가노와 출랑랑은 결코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아주 치밀하고 날카로운 풍자가 인상깊은 역사소설...오랜만에 훌륭한 작품을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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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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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대이든 투쟁의 시간들이 있었다. 저자가 태어난 80년도에도 최루탄 연기속을 뛰어다니던

학생들이 있었고 군사정권이 끝난 후에도 투쟁과 구금의 질곡을 겪었던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투쟁의 역사는 존재했다. 주제는 다양했다. 이데올로기가 주류였지만 자본주의와 노동자들의 충돌이

있었고 사대주의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독재와 도시개발에 따른 반발까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있었다. 지금도 지방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올라와 도심 한가운데에서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마 먼 미래의 어느 날에도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다. 다른 문제와 주제를 담아서.

이 책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베이비붐세대의 몰이해를 넘어 또 다른 문제와 고군분투한 젊은이들의 투쟁일지이다.

글쎄 왜 여전히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유전되고 옛영화를 돌려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일까.

 

 

누군가는 고생도 모르고 자란 샌님같은 아이들의 허약함을 걱정했지만 그들은 결코 연약하지 않았다.

연약하게 늘어져 살기에는 여전히 세상은 개판이었고 색만 교묘하게 바뀐 권력의 부조리들이 난무했던 것일까.

책 속에 등장하는 태의, 즉 주인공은 투쟁의 최전선에서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전사로 나온다.

그런 그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미학과 학생이었다는게 아이러니이다.

그가 그린 서울대 교정의 모습은 아마 거의 사실일 것이다. 어딘가로 끌려가는 걸 두려워하면서 온종일 중얼거리는 미친 남자도 있었을 것이고 교정을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란 이름의 개도 있었을 것이다.

말미에 작가는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작중에 태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현승선배나 미쥬, 혹은 소신과 자신의 눈 하나를 맞바꾼 진우일 수도 있다.

소설이 아니고 일지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2000년대 즈음 서울대를 다니던 청춘들의 일지인 셈이다.

젊다는 건 부당함과 맞서는 투지가 있어서 좋다. 무모함이 더해서 어른들을 불안하게 하지만.

투지의 역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선배이면서 연인이 되기도 했던 미쥬와의 미숙한 사랑도 존재했다. 전에는 선배의 여자이기도 했던. 젊은이들의 사랑이란게 다 그렇다. 뜨겁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달뜨기만 하고 방향성은 엉망인.

'너희는 세상과 세상과 싸우는게 아냐. 세상이란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거야. 끝이 없는 윤회 같은거지.' -본문중에서

그랬다. 이 투쟁일지를 읽으면서 나는 내 젊은시절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으니까.

빨간 색과 검은 색으로 된 양면 패딩 점퍼가 등장하고 좀 더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장면만 달라졌을 뿐.

막걸리와 순대국과 쇠파이프와 곤봉과 화염병과 깃발과 체포와...또 그러니까...거의 모든 것들이 똑같다.

 

 

밥같은 건 생전 할 것 같지 않았던 미쥬는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다 한 남자의 아내로 주저 앉고 쇠파이플 휘두르며 전국을 누비던 태의도 토끼같은 아내와 자식을 둔 평범한 남자가 되었다. 그게 인생이다. 내 젊은 날 최루탄 연기를 밥먹듯 마셨던 선배들도 심지어 호적에 빨간줄을 남겼던 선배들도 누군가의 남편으로 아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로 날밤을 세우던 진우는 진짜 전사가 되었고 예정된 수순처럼 더러운 정치판에 발을 디딘다. 보수든 진보든 어디에 속해있던 살아가는 모습을 비슷해진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죽음으로 삶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쥔 통치자들이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잠언을 여기 내린다: 살아서 잘하라. 너희의 삶은 찰나일지라도, 너희의 죽음은 영원하다...'-본문중에서

나도 인생의 후배들에게 잠언을 내린다면, 과거의 시간들이 어떠했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다만 과거의 기억이 미래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시간에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삶은 비교적 성공했다는 것...혹시 부끄러움이 있었다 할지라도 삶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고 족쇄로 나를 얽매는 또 다른 부끄러운 일 같은건 만들지 말라는 것.

30년을 훌쩍 넘어서 최루탄 매캐한 교정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추억의 책이 되었다. 아 내 날아간 학점은 떠올리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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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쇼크 - 과잉 인구 시대, 지구와 인류를 위한 최선의 선택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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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당시 거의 이길뻔한 전투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역전되고 말았다. '인해전술'이라고 일컬어졌던

이 방식은 인간자체가 곧 무기가 되었다는 뜻인데 그만큼 당시 중국의 인구는 몇 만이 없어져도 티도

나지 않을만큼 거대했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중국의 인구는 14억에 이르는데 이 수치도

정확한 것이 아니란다. 산속 깊숙이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과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인구는 짐작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당시 중국의 참전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는 달라지고 말았다.

이웃나라의 역사를 쥐고 흔들만큼 거대한 인구수를 자랑하던 중국도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못하고

결국 한자녀정책을 내어놓는다. 만약 그 정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인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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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세계적으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테러집단은 거의 무슬림들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적대를 하고 있는 집단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데 그 적극적인 방법에 인구를 늘리는 정책이 있다고 한다.

온통 사막뿐이고 자원이 없는 그들이 선택한 자원이 바로 인구라는 것이다. 중공이 '인해전술'로 전투를 했듯이 모든 것이 부족한 그들이 인구를 늘려 자원화하면 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은 골치가 아파진다. 좁은 땅덩어리에 빡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면 삶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살기로 인구를 늘리고 있다니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먹고 살기가 바쁘니 교육은 엄두가 안나고 대를 이어 슬럼가에서 살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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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은 모자라는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아프리카의 무슬림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했다. 그러다보니 프랑스는 어린이의 30%가 무슬림이고 파리에서는 45%라고 한다.

2027년이면 프랑스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절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구수를 늘리는 것이 자신들의 영역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 무슬림들이라면 언젠가는 거의 무슬림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

먼나라의 일들이 남들 일만이 아닌 것이 인구가 늘어나면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들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비효과'와 같이 그들의 조그만 날개짓이 우리에게 엄청난 폭풍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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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자원들은 고갈되기 시작할 것이고 쓰레기는 넘쳐나고 공기는 더욱 더렵혀지고 식략은 부족할 것이다. 이미 그런 현상들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절실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물부족현상이다. 지구의 기후변화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더불어 물의 고갈이 계속되고 있다. 물이 풍부하다고 믿었던 우리나라도 어느 새 물 부족국가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뒤늦게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환경을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되돌이킬 수 없는 자연의 역습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베이비붐세대를 넘어서 인구감소정책을 시행하여 안정된 출산수를 유지하고 있다가 이제는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50여년 후에는 인구증가의 정점을 찍고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중국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인구조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고 일본은 자연스럽게 인구수를 조절하여 지금은 실버세대를 부양할 젊은 세대가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우리도 일본의 사례를 따라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저출산이 답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다소 걱정이 되는 것은 인구가 줄어들면 나타나는 부작용은 없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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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인구수는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줄어든 인구수만큼 입도 덜어지니 자원자체가 조금만 필요하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자연은 덜 시달리고 회복을 하게 될 것이고 환경은 개선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인류에게 절실할 것은 인구감소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려면 종교와 상충되는 낙태를 허용하고 그러기전에 철저히 피임을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인구를 줄여나가야 햔다는 것에 동감한다.

이제 먼나라의 인구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무시무시한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인구폭탄을 대비하여 서로가 노력하는 지구인들이 되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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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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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달콤 쌈싸름한 초코렛을 먹고 난 느낌이다. 사랑이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으니까.

전작 '미 비퍼 유'가 죽음으로 갈라놓은 사랑이어서 가슴이 미어졌지만 여기 싱글맘 제스와

이혼남 에드의 사랑은 조금 피곤하고 경쾌하고 키다리아저씨의 헌신이 느껴지는 사랑이다.



열 일곱의 어린나이에 임신을 한 제스는 철부지 남편 마티의 사업실패와 게으름으로 졸지에 가장이 되어버린다.

결국 마티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요양차 떠나버리고 마티와 전애인 사이에서 태어난 니키와 자신의 딸 텐지를 키워야 하는 싱글맘이 된다. 니키는 여덟살이 되던 해 제스에게로 와서 이제 열 여섯 살 소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스카라를 칠하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은둔형 아이로 웃음을 잃은 채 살아간다.

낮에는 청소부로 밤에는 바텐더로 투잡을 뛰느라 정신이 없던 제스는 어느 날 텐지의 선생님으로 부터 연락을 받는다.

텐지가 수학에 엄청난 재능이 있고 명문학교인 세이트 앤에서 장학금을 주면서 입학하기를 바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90%의 장학금에도 불구하고 교복이며 수학여행등으로 1년에 2000파운드가 필요하며 우선 등록비로 500파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밀린 고지서와 집세마저 빠듯했던 제스는 절망하지만 텐지는 세이트 앤에 입학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행복해 한다.

텐지의 사정을 잘 아는 담임선생은 스콜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일등을 하면 5천 파운드의 상금을 받을 수 있고 그 상금으로 세인트 앤의 학비로 충당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드디어 제스는 니키와 텐지, 그리고 덩치만 크고 침을 질질 흘리는 개 노먼을 데리고 스코틀랜드로 향한다.

남편이 남기고 간 고물 롤스로이스를 타고서, 하지만 그 차는 2년동안 등록세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언제 멈출지도 모를 고물 자동차이다.


잘 나가는 소프트프로그래머 애드는 학창시절 컴퓨터밖에 모르는 소심한 아이였다.

애든 대학시절 절친인 로넌과 회사를 차리고 승승장구하던 애드는 어느 날 대학시절 우상이었던 디나를 만나게 되고 열정적인 사랑에 휩싸인다. 하지만 디나의 얄팍함에 금방 질린 애드는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자신의 수표를 끊어주고 얼마 후 자신의 회사에서 신상품이 출시되면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주게된다.

니나는 증권계통에서 일을 하는 자신의 오빠를 동원하여 엄청난 이익을 내게 되고 애드는 내부거래자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잠시 피해있으라는 변호사의 조언으로 남부 해안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던 중 청소부였던 제스를 만나게 된다.

그 날 저녁 제스가 야간에 일을 하고 있는 바에 나타난 에드는 술에 취하게 되고 제스를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게 된다.

타고 간 택시에서 그의 신분증과 돈이 떨어져있었고 제스는 텐지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그 돈을 훔치게 된다.

제스는 그 돈으로 스코틀랜드로 향하다가 그만 길에서 경찰에게 걸리게 되고 마침 지나던 에드는 이상한 이끌림으로 그들 일행을 스코틀랜드 올림피아드 시험장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이렇게 에드와 제스일행의 이상한 여정이 시작된다. 냄새 나는 개 노먼은 침까지 흘리고 하루면 도착할 거리인 여정이 텐지의 멀미로 속도를 낼 수 없어 3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니키와 텐지를 괴롭히는 이웃 피셔 형제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렸던 니키는 에드의 도움으로 활력을 찾아가고 제스 역시 남편이 떠나간 후 전혀 관심이 없었던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텐지는 우여곡절끝에 시험장에 도착은 하지만 깨어진 안경과 잘못된 시험문제때문에 멘붕이 오고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만다.


내부고발자 혐의로 곧 감옥에 가게 될 운명의 에드와 어떻게든 텐지를 사립학교로 진학하게 하고자 하는 제스의 여정은 좌충우돌, 파란만장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열기가 조금씩 느껴진다.

오랫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를 외면했던 에드는 제스의 사랑으로 가족의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되고 제스와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우연히 자신의 돈을 제스가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버린다.


사랑의 아픔에 시달리던 제스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 힘을내고 자신이 에드의 돈을 훔쳤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진심으로 후회와 반성을 한다.

하지만 에드는 제스를 떠나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서로 아픔만 남긴 채 사랑은 끝나고 만다.



 

어려서 읽었던 연애소설들이 떠올랐다. 쉬운 사랑은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제스와 에드의 운명같은 사랑도 감동스럽지만 겨우 아홉 살의 나이차가 나는 제스와 니키의 모자간의 사랑도 감동스럽다. 이미 자신을 떠난 남편이 전애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절대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과 기피증에 걸린 아들조차 진심으로 껴안는 제스의 사랑은 충분히 보상받아 마땅하게 보인다.

통장 잔고에 10파운드에 돈이 남아있는 순간에도 다시 사랑을 꿈꾸게 된 에드와의 아픈 이별에도 불구하고 제스는 다시 일어선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가스렌지를 뿍뿍 문질러 닦아내고 허드렛 일들을 찾아 나선다.

자신이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었으므로. 참으로 대단한 모성앞에 숙연해진다.

더구나 돈 한푼 없는 상황에 덩치만 크고 골치덩어리처럼 보였던 노먼이 죽음에 이를만큼 다치게 되자 치료비가 엄청나게 나올 것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제스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깨닫는다.


이 소설은 단지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그리고 내 집에 들어온 동물도 엄연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신이 낳은 아이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전남편의 아이까지 껴안는 에드의 사랑도 멋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선택이었을텐데 이런 점은 참 부럽다.

싱글맘이지만 캔디처럼 씩씩한 제스의 억척스러움과 넘치는 사랑이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닐까.



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조조 모예스의 작품들은 감동과 사랑과 헌신이 그대로 녹여져있다.

그녀가 결국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자신안에 사랑이 고여있지 않으면 절대 이런 글들이 나올 수 없는 아주 따뜻한 작가이다. 흠 굳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은 행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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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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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이란 주제를 아니, 여성의 성기를 빗대어 세상에 도전장을 냈던 이브 엔슬러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녀의 이름은 낯설어도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연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녀가 왜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 '브이데이'라는 운동을 창설하고 전사로 변했는지는 그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속에서 유추할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의 성폭력이라니...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의 사촌오빠로 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했었다.

왜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이런 무자비한 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그것도 피를 나눈 혈연끼리 말이다.

가장이면서 가정을 장악했던 아버지는 그녀를 사랑했었고 그녀를 범했으며 나중에 그녀를 죽이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런 상처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방탕 그 자체였다.



알콜과 마약 거기에 섹스중독에 이르기까지 그 어린 영혼에게 깃든 죄악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상처를 그렇게라도 잊고 싶었던 몸부림이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여성운동가가 되고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사랑이 깊고 정의로우며 용기가 있는 인물인지를 알게된다.

아직은 젊은 오십대 중반에 찾아온 자궁암은 전사였던 그녀를 무릎꿇게 만든다.  언젠가 분명 찾아올 죽음이었지만 자신의 죽음은 이런 방식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단다. 하긴 그녀는 암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만큼 허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자궁을 들어내고 결장과 직장마저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배설물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야하는 비참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녀는 왜 자신에게 이런 비극이 생겼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본다.

'내 피속에 있었을까?', '잘 울지 않아서였을까?', '난잡한 성관계 때문이었을까?'

물론 유전적인 요인과 그녀가 살아온 환경이 암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이런 비극앞에서는 원인을 따지고 싶어질 것이다. 


 



그녀는 유일하게 감동받았던 종교의 신에게 기도한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가져가 주세요.'라고.

몸이 느끼는 통증도 두려웠겠지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두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감정을 억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에 너무 솔직했고 에너지는 넘쳤으며 더구나 암에 걸릴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 자신의 몸에서 만큼은 도도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여성성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잘라내고 똥주머니를 차야하는 처지라니...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7개월의 치료기간동안 그녀는 그녀에게 속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화해하고 떠나보내고 그리고 받아들인다.

어린 딸을 방관했던 엄마를 용서하고 그녀의 죽음을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어쩌면 자신도 그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심지어 죽음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죽음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그녀를 구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불행에 빠졌을 때 자신이 살아온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녀가 병상에 누워 절망하고 있었을 때 그녀의 삶에 들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병상을 지킨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음을 충분히 느껴야한다.

15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은 두 줄짜리 이메일을 보냈고, 13년을 함께 살았던 남자는 카드 한장을 보냈고, 그 만큼의 기간 동안 사귀었던 다른 애인은 아예 연락도 없었다니..사랑에 대한 실패, 힘이 되는 기억도 없고 절망이 훨훨 타올랐다는 그녀의 탄식이 가슴아프다. 하지만 그깟 남자들 쯤이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세상에 나온 그녀가 반갑다. 역시 죽음도 그녀의 투지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던 것 같다. 물론 언젠가는 그녀를 데려가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우아한 방법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녀에게 어울리니까.


죽음과 조우한 고통의 시간조차도 거침없이 넘어서는 그녀가 오랫동안 그늘속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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