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평점 :
어제가 전태일 열사 40주기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그는 죽었다.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이 책 마지막 장에 간략하게 나와 있다. 그 간략한 내용 속에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이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를 만나고, 분신자살한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열사이자 투사이고, 한 엄마의 아들이자 사랑을 하는 젊은이였고,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자 한 노동자였다.
예전에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눈시울 붉혔는데 지금은 전태일이란 이름에 무덤덤해졌다. 청계천에 있는 동상을 보아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생각만 할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현재의 삶속에 그의 삶을 되돌아볼 여유가 충분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사회과학 출판사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가 연대해 만든 공동 기획·출판 도서 <너는 나다>가 그런 여유를 나에게 주었다.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출판사마다 다른 접근법으로 전태일을 말한다. 첫 번째 레디앙은 ‘전태일 열전’이란 이름 아래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이야기한다. 현재 살아있는 동명이인 전태일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학창시절, 가족, 사랑, 노동 등으로 분류하여 실었다. 인천, 평택, 전주, 부산, 거제에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영업자이자 고용주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전태일도 있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삭막하다. 일과 술을 제외하면 다른 활동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알바로 생활하는 다른 전태일이 너 활기차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것은 다시 고용주인 다른 전태일의 말에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문제점을 환기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가장 많이 전태일을 떠올려주었다.
후마니타스의 만화 ‘나태일&전태일’은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지.” 만화 속 배경은 게임개발부서다. 주인공은 나태일. 잠시 쉬러 간 곳에서 외계인을 만난다. 지구 정복하러 왔다는데 그에게 진다. 이 낯선 외계인이 회사에서 일한다. 그가 외계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에게서 다름은 보지 않고 하나의 노동자로만 본다. 외계인은 이주노동자로도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다른 노동자로도 환치가 가능하다. 여기에 편의점 알바녀를 등장시켜 사회의 또 다른 비정규직을 비춰준다. 결국에 보여주는 것은 게임 개발하는 나태일이나 전태일이나 모두 열사나 투사가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임을 말한다. 열사란 단어에 짓눌려 있던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으로 다시 살아난다.
삶이보이는 창의 ‘열혈청춘’은 청춘일기와 청춘수다로 구성되어 있다. 청춘일기는 청년 노동조합 ‘청년 유니온’의 조합원들 이야기다. 이들은 우리가 집밖에서 혹은 집안에서 늘상 마주하는 청년들이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입으로 자신들을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왠지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너무나도 밝은 웃음에 놀라고 나도 같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청춘수다’는 스물다섯 살인 세 명의 남녀를 통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충격적인 것은 “경희대가 너무 높다고, 경희대 다니는 애가 자기 같은 애를 만나겠느냐는 거”(14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대학서열이 연애서열, 입사서열로 바뀐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의 욕망을 좀더 깊이 보여주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철수와 영희는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란 제목에 부제로 하종강의 노동백과를 붙였다. 다섯 이야기로 나누어지는데 제목과 부제처럼 노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다. 단순히 노동에 대한 것에 한정되지 않고, 시대의 변화와 역사도 함께 담고 있어 많을 것을 배울 수 있는 알찬 구성이다. 특히 6.25 당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보다 지금 법이 못하다고 한 부분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근로기준법이 일본 노동 기준법을 번역하면서 노동대신 근로를 넣은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자들이 거의 죽었다는 사실과 새로운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바로 전태일이란 부분에서 왜 전태일 열사가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