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기욤 뮈소의 신작이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라갔다. 뭐 베스트셀러라서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늘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렇다. 중간에 한두 작품 정도가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몇 권을 연속으로 읽으면서 비슷한 전개와 상황에 조금은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은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좋았다. 늘 익숙한 구성과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한 번 잡으면 변함없이 끝까지 정신없이 읽게 만든다. 약간 무겁고 난해한 책을 읽고 난 후라면 더 좋은 책이다.

<천사 3부작>으로 갑자기 성공한 작가 톰 보이드와 타고난 미모와 능력으로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오로르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둘의 간략한 정보를 제공한 후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짧게 보여준다. 그리고 오로르에게 차인 톰이 등장한다. 이 이별은 그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든다. 폐인이 된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편지를 짧게 교차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의 문을 연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망가진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를 이루었지만 이것은 자신을 파괴하는데 이용될 뿐이다. 그러다 찾아온 밀로의 고백은 그가 파산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이것에 집중할 정신이 없다. 아직 오로르에게 차인 실연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폭풍우 치던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이 그가 창조한 소설 속 여자인 빌리라고 말한다. 아무리 약물 중독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순순히 믿을 정도는 아니다. 몇 가지 실험을 거치는데 놀라운 놀랍도록 비슷하다. 정말 그녀는 소설 속에서 나온 진짜 빌리일까?

빌리와 톰의 만남은 현실과 환상의 만남이다. 그들이 밀로의 부가티 차를 몰고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후 벌어지는 모험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그와 그녀는 하나의 계약을 맺는다. 그것은 그녀가 그와 오로로를 다시 결합하게 만들어주는 것과 천사 3부작 마지막 권을 마무리해서 그녀를 소설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오로르와의 결별 후 치명적인 병이 생겼다. 백지증후군이다.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몇 차례 영감이 떠오르지만 컴퓨터만 켜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여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폐인으로 변한 베스트셀러 작가 톰, 그가 소설 속에서 창조한 여자라고 주장하는 빌리의 동행과 여행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녀에게 버림받는 순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그지만 이 여행을 통해 세상과 다시 접촉하게 된다. 시간 단위로 쪼개고, 공간을 나누어 이야기를 빠르게 풀어내는 방식은 변함없다. 각 장마다 하나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그와 친구들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고, 새로운 관계가 모험 속에 펼쳐진다. 책 중간중간에 대문호에 대한 그의 찬양과 한국 독자를 위한 조그마한 배려도 즐거움을 준다. 뮈소의 작품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역시라고 외칠 것이고, 처음 만났다면 그의 다른 작품에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작가다. 몇몇 SF문학의 거장을 제외하면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가 얼마 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Clannad)’를 통해서였다는 사실도 낯선 이유 중 하나다. 이 애니 속에 표제작 <민들레 소녀>의 문장이 반복되었는데 이것을 한국 독자들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검색엔진에서 클라나드를 치니 많은 글들이 보인다. 애니의 평도 좋은데 또 볼 것이 늘어난 것 같다.

모두 열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약간 낯선 느낌을 준다. 아마 기존 SF단편에서 본 느낌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독특한 이력도 눈길이 간다. 죽기 전까지 학교 수위로 일했다니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나의 선입견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서문이 이것을 약간 거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SF문학을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한 것이 가장 크다. SF문학 전문 번역가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을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분량을 보고 빠르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숨에 읽기는 했지만 예상한 속도보다 더디게 읽혔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문장과 시들과 그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이 생각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SF문학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단편도 있다. 오히려 판타지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도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을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과 비교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놓고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부쩍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가장 쉽고 편하게 읽고 인상적인 작품은 바로 표제작 <민들레 소녀>다. 시간 여행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에 약간 밋밋한 느낌을 주었지만 뒤로 가면서 펼쳐지는 반전이 단숨에 강한 여운을 던져주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단편들은 문화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많다. 미국 소비문화와 점점 기계에 의존하는 생활에 빠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데 한 편 한 편이 의미심장하다.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에 나오는 빅 짐이 스티븐 킹의 소설 <언더 더 돔>에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것인지 아니면 킹의 오마주인지 궁금하다.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는 호시 신이치인지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유사한 결말을 보여준다. 곳곳에 이런 흔적이 보이는데 모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단순히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의 명성을 알려주는 것인지 좀더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이 작품집은 오락성이 강하지 않다. 멋지고 긴장감을 불러오는 전쟁도 없고 미래에 대한 탁월한 묘사도 없다. 하지만 미래 속에 현실을 담아내고, 그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클라나드에 나온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요새, 태양의 신전을 왜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어떻게 만들었는가, 라는 부문이었다.”(238족)라는 문장이다. ‘왜’보다 ‘어떻게’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목적보다 수단에 목매는 현실을 보여준다. 작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작품을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6
김종일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리즈가 벌써 5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사실 첫 권이나 두 번째 권이 나왔을 때만 해도 곧 끝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협소한 장르문학 시장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스터리 장르도 고전을 하는데 공포라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다음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이번 단편선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낯선 작가들이 많이 나온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풀어내는 힘이 전작들에 비해 약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늘 평균 이상을 보장하는 김종일의 <놋쇠 황소>는 굉장한 긴장감과 힘을 보여준다. 영화 <올드 보이>의 한 대사로부터 시작하여 학창시절 피해자였던 친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해자가 편히 잔다는 속담을 뒤집어 보여주면서 풀어내는 학창시절 잔혹사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마지막 복수의 장면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명희의 <늪>은 고문기술자를 화자로 내세웠다. 80년대 암울했던 현실을 대공 고문실의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되살려준다. 연쇄살인사건을 겉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고문을 가하는 자의 시선을 담고 있고, 역사의 한 순간과 어두운 결과가 가슴 한 곳을 묵직하게 만든다.

이종권의 <오타>는 공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공포영화의 공식을 빠르게 답습하는 듯하여 더욱 그렇다. 장은호의 <고치>는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전개라 아쉬움을 준다. 좀더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긴장감을 하나씩 높여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류동욱의 <시체X>는 기차에 몸을 던진 시체의 정체에 대한 궁금점을 잘 다루고 있다. 시간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데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힘이 조금 약하다. 모희수의 <기억변기>는 이미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SF문학에서 다룬 소재를 공포와 연결시켰는데 역시 결말이 쉽게 예상된다. 화자의 변화를 좀더 깊숙하게 다루었다면 익숙한 소재를 뛰어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임태훈의 <네모>도 역시 낯익은 SF 설정이다. 서울에만 나타난 알 수 없는 존재를 다루고 있는데 요즘 펼쳐지고 있는 개발독재에 대한 문화 비판적 성격이 강하다. 네모로 불리는 물체의 등장과 사람들의 변화를 좀더 유기적으로 다루고 분량을 늘렸다면 좋았을 것 같다. 엄길윤의 <벗어버리다>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옷의 반격으로 볼 수도 있는데 공포가 약하다. 황태환의 <살인자의 요람> 역시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중반까지는 갇힌 곳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가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무서운 현실은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이종호의 <오해>는 제목처럼 나 자신도 이야기의 전개를 오해하게 만들었고,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해가 어떤 결과를 유발하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해피엔드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사회가 안정되어 있을수록 비극을 즐기고, 위험도가 높고 불안정할수록 코미디 등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대로라면 현재 우리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나 자신도 말이다.

이 미스터리 단편 모음집은 해피엔드를 노골적으로 지양한다. 읽다보면 읽음직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거기에 예상한대로 흘러가는 결말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만족도를 높여준다. 일상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낯선 상황으로 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비극과 반전이 바로 그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서술 트릭을 이미 전작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 경험했지만 단편 속에서 만나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1999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잡지에 실었던 열한 편의 단편을 모았다. 각각 분량이 다르다. <천국의 형에게>같은 단편은 편지 형식으로 분량이 두 쪽 정도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함축된 많은 이야기를 담고 반전을 보여준다. 길다고 해도 중편이라고 할 정도의 길이를 가진 이야기는 없다. 이 단편집에서 비교적 긴 <강 위를 흐르는 것>은 명확한 사실을 밝히기보다 추리와 가능성만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다. 마지막에 진실이란 단어가 과연 모두에게 행복한 것일까 하고 묻고 하나의 행복이 다른 행복을 불러오는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으로 나온 이야기 <언니>는 예상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서술트릭을 잘 사용하는 작가의 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니에 대한 질투가 과연 그렇게까지 확대될 이야기인가는 뒤로하고 섬뜩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벚꽃 지다>는 가정 폭력을 다루지만 이것을 가족내부의 시선과 이웃의 눈을 교차시키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전환을 통해 속과 겉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환기시키고 의문을 품게 만들고 트릭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지워진 15번>은 점점 불안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상 수위로 높여가면서 파국으로 이끌고 마지막 문장은 애잔한 느낌을 전해준다.

<죽은 자의 얼굴>은 섬뜩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가 만난 사건이 다시 현재에 재현되는데 그 결말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대가족 속에는 숨겨진 비밀이 얼마나 많을까! <살인 휴가>는 한 스토커에 대처하는 여자 이야기다. 중반까지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여성의 심리와 행동을 반영한다면 마지막 몇 쪽은 광기와 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짜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이다. 참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바로 <영원한 약속>이다. < in the lap of mother > 은 도박 중독을 조심하라면서 바로 옆에 도박장을 만드는 우리의 모순된 현실에 대한 비극적 결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존엄과 죽음>은 한 노숙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선의에 의한 것이든 악의에 의한 것이든 폭력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펼쳐진 반전의 한 단어는 역시 서술트릭의 대가답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방역>은 읽을 당시는 친구와 선행학습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유치원에서 자신의 딸이 중하위라는 말에 선행학습을 말하고 있었다. 자세하고 깊게 그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남에게 뒤쳐진다는 불안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내가 아이를 가르치면서 보였다는 반응은 소설 속 장면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순히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 문제임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한국의 현실이 일본의 과거임을 자주 느끼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다. 불안과 공포와 아이에 대한 소유욕과 욕망 등이 뒤엉켜 있고, 부모의 역할을 점점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한 가족의 불안정한 공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모가와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를 읽으면서 호루모가 뭔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해 재미있게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 호루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이 대항전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약간의 의미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전투가 펼쳐지는 대항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 청춘남녀들의 미묘한 사랑 이야기도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여섯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가 연작으로 읽힌다면 이번 소설은 한 남자가 화자로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아베고,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자 삼수생이다. 그가 이름부터 이상한 동아리 교토대 청룡회에 가입하게 된 것은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서다. 그 방법은 신입생 모집 동아리에 가서 한끼 식사를 때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끼 식사를 위해 간 곳에서 첫눈에 반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사와라 교코. 그가 반한 것은 특이하게도 이쁜 얼굴이 아니라 코다. 그렇다고 그녀가 못생긴 것은 아니다. 단지 아베가 코에 더 집착한다는 의미다.

이 소설을 판타지 청춘연애소설로 분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랑 때문이다. 아베는 교코를 좋아하고, 교코는 또 다른 동기인 아시야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런 묘한 관계 속에 벌어지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호루모 대항전이란 판타지 경기와 더불어 뒤로 가면서 상승효과를 드러낸다. 하지만 진정한 재미는 이런 엮인 관계가 아니라 개성 강한 캐릭터 때문이다. 첫 대항전에서 귀어를 잘못 말해 호루모를 외친 귀국자녀 다카무라나 일자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구스노키 후미 등이 바로 그들이다. 

다카무라는 호루모를 외친 후 사무라이 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베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중에 제17조를 행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구스노키는 그 존재가 미미한 듯하지만 은근히 강한 인상을 준다. 특이한 외형 덕분에 본짱이란 별명으로 불리지만 알고 보면 무서운 실력을 지니고 있다. 알 수 없는 듯한 그녀의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지만 보는 재미를 준다. 이 둘은 아베가 집착하는 코를 가진 사와라 교코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무사히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후반부의 재미는 바로 이 둘이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과 집착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아베의 행동과 심리를 통해 묻고 있다. 처음에 아베가 교코에게 빠진 것이나 교코가 아시야에게 반한 행동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청춘의 열정에 휩싸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순수한 사랑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시절 누구나 경험하듯이 이 같이 뜨거운 감정은 빨리 끓어오른 것만큼 빠르게 식는다. 물론 이 감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역시 소수다. 그런 점에서 교코와 아시야의 결합은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집착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야 안 것이지만 이 소설은 작가의 처녀작이다. 이 작가와 함께 비교되는 모리미 도모히코의 처녀작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모리미 도모히코가 몇 편의 소설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직 겨우 두 권 읽은 이 작가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읽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뭐 정확히는 어떤 작품이 대표작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