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유혹 ‘성공’ [06/02/13]
Why? '마시멜로 이야기'는 지난해 11월 출간 때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평이한 주제와 밋밋한 이야기 탓이었을까? 출판사 측도 "간결한 플롯과 메시지가 좀 익숙하다는 점을 걱정했다"고 털어놓는다. 과도한 선인세 지급으로 국내 출판시장을 어지럽혔다는 곱지않은 시선도 사실 없지 않다. 어쨌거나 현재 상황은 사뭇 다르다. 8주 연속 베스트셀러(한국출판인회의 선정) 1위, 판매 부수 35만부…. 처음엔 20대에게 어필했으나 현재는 50,60대 장년층이 책을 구입해 자녀들 선물로 준다는 분석도 있다.

흡사 적은 제작비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와도 닮은꼴인 이 책의 주제는 단순하다. 성공하고 싶으면 현재의 유혹을 참아내라는 것이다. '달콤한 마시멜로'란 바로 현재의 유혹을 상징한다. 그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게, 그리고 경쾌하게 풀어간 게 독자 마음을 움직였다.

저자는 게다가 한 발 나아가 "현재의 유혹을 참는 것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다. 성공한 이들의 밝은 표정에서 그걸 알 수 있다"고 역설한다.

뻔하디 뻔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이런 이야기가 '광풍'처럼 휘몰아 친다는 건 어찌보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공 신화, 1등 신화 집착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요즘 경제.경영서의 컨셉트가 대충 그쪽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보통 사람들에겐 장황하거나 정확한 분석보단 분명한 성공이 더 절실한 법. 이 책은 이토록 인내를 강조하고 있으나,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성공에 꽂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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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2-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이쁘긴 하더군요. 하하...

하늘바람 2006-02-1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지영아나운서가 번역했죠?
 

[Book&Life] 아침독서 10분의 힘 대한민국을 깨운다 [06/02/12]
책 담당 기자를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말과 실천의 괴리가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바로 독서라는 사실이다.

어릴적은 물론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겹도록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책 좀 읽어라.’이지만, 현실은 자꾸 반대편으로만 달아나려 한다. 우리 사회의 ‘한심스러운’ 책 읽기 세태를 꾸짖는 기사도 심심찮게 나오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말뿐이다.

한데 엊그제 말뿐이 아닌, 제대로 된 책 읽기 현장 이야기를 접했다.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학교와 선생님,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대한민국 희망 1교시 아침독서 10분’(청어람미디어)이란 책을 통해서다.

원래 아침독서 운동은 수년 전 일본에서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해 3월 일본의 아침 독서 사례를 묶은 책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란 책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아침독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미 대구와 천안, 광주 교육청에서 아침독서를 시작했으며, 특히 대구시에선 초·중·고 404개 학교 중 402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운동을 도입한 아침독서추진본부(한상수)가 도움을 주고 있다.

겨우 10분 독서로 아이들과 학교가 변할 수 있을까? 아침독서를 직접 경험한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렇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 아침. 하나 둘 교실에 들어서 자리에 앉아 곱게 퍼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속에 책을 읽는 풍경을 상상해보자. 여기저기 모여 왁자지껄 시작하는 아침과는 사뭇 다르지 않겠는가.

대구 달산초등학교 5학년 문정인 어린이는 10분 독서를 ‘아침햇살에 빛나는 찬란한 지식’이라고 했다. 다른 한 어린이는 이를 ‘아침마다 먹는 영양제’란다.‘고요한 정적속에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며 어찌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지 않겠는가.’란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에선 잔잔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아침독서운동엔 현재 전국 500여학교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10분은 짧지만, 책 읽는 10분은 결코 짧지 않다. 책 제목처럼 우리 아이들의 아침독서 10분은 대한민국 희망 1교시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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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2-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치만, 10분 동안 책 읽고 나면, 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수업 못할 것 같은데요. -_-;

하늘바람 2006-02-1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워낙 책을 안 읽으니 하루 1분이라도 읽으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책읽기 습관을 [06/02/12]
요즘처럼 각종 영상미디어에 익숙해 있고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에 푹 빠져 살고 있는 아이들이 독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여러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매체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서의 중요성’은 구시대의 진리로 치부돼도 되는 것일까.

세계적인 컴퓨터ㆍ소프트웨어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건 하버드대학의 졸업장이 아니라 내가 자라난 시골 작은 마을의 도서관이었다”고 강변한 바 있다.

국내 컴퓨터 보안 업계의 대표적 인물인 안철수씨는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 당장 급한 문제는 해결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책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국내외 IT산업 거장들도 독서광

아이러니 하게도 국내외 정보기술(IT)산업의 거장들은 인터넷 시대에 오히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독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측면에서 유익하다. 먼저 책 읽기는 글쓰기ㆍ말하기뿐 아니라 여러 학습 능력 향상에 효과가 크다. 영국 버밍햄대학에서 아주 어려서부터 책을 접하며 성장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말하기ㆍ듣기, 쓰기, 읽기, 계산, 형태 및 공간지각 능력을 측정하자 책을 꾸준히 읽은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언어 능력의 경우 평균 2배 이상 앞섰으며, 기타 계산, 형태 및 공간지각 능력도 높게 나타났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한 기초 능력인 창의력 또한 책을 읽은 아이가 안 읽은 아이들보다 높게 나왔다. 놀라운 일은 이 창의력 지수가 책을 한권씩 늘려갈 때마다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독서와 관련된 생활 습관이 주도적인 학습 태도와 성적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삶의 희로애락에 대한 감동은 아이의 정서를 풍부하게 함양해줄 것이며 책을 읽으면서 펼치는 상상력은 아이를 창의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바람직한 삶의 모델에 대한 정립, 독서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의 향유 등 자라나는 아이에게 독서가 끼칠 수 있는 순기능은 무궁무진하다.

이렇듯 아이들에게 중요한 독서와 점차로 독서하는 환경에서 멀어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독서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독서 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자녀에게 맞는 독서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 막연히 독서가 중요하다는 생각만 갖고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독서를 강요해서는 자녀를 독서하는 아이로 만들기 어렵다.

독서는 습관이다. 독서 습관이 길러지지 않은 아이는 책 읽는 행위가 전혀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은 행위를 강요받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해 책과 더 멀어질 수도 있다.

아이의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부모는 먼저 책 읽기가 지닌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여러 문제 때문에 잠시 책에서 멀어진다 하더라도 부모가 계속해서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 준다면 결국 아이는 책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관심있는 책으로 재미 유도해야

아이가 독서를 소홀히 여기는 시기일수록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시간과 환경을 배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아이가 책을 재미있게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아이가 관심을 갖는 분야의 책을 권해준다면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의 학습 분야나 생활 환경을 잘 살펴보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한 책을 보여주고, 관심이 덜한 부분은 그림과 사진을 통해 재미있게 접근한 책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이렇듯 아이에게 부담감을 주지 말고 아이의 특성에 맞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책과 친숙하게 만들어준다면 아이는 점차로 독서를 즐거운 행위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러운 독서 습관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환경과 특성에 맞는 방법으로 즐거운 독서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이는 아이가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회구성원으로 행복한 삶을 일굴 수 있도록 해주는,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박진규 아이북랜드 대표이사) = 서울경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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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인류학자 다이안 포시 출행
[동아일보 2006-01-16 04:43]
[동아일보]

왜 유인원은 여성을 좋아하는가.

영화 ‘킹콩’의 고릴라 콩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어디 영화뿐이랴. 실제 유인원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류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3대 유인원으로 불리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연구의 큰 획을 그은 학자는 각각 제인 구달, 비루테 갈디카스, 다이앤 포시라는 여성이었다.

초기 연구는 주로 남성에 의해 주도됐다. 그들은 유인원을 가까이서 관찰했지만 짧은 기간에 그쳤다. 갈디카스의 말을 빌리자면 남성은 “뛰어난 자연주의자이지만 근본적으로 모험가”였다.

여성에게는 시간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밀림 속에서 수십 년씩 유인원과 함께 살며 행동을 연구했다. 그들은 관찰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아플 때면 치료해 주며 친구가 됐다. 장기적이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밝혀 나가는 유인원 연구에 여성은 제격이었다.

여성 연구자 중에서 유인원에 대한 애정을 가장 열정적으로 보여 준 이는 포시였다. 그는 나중에는 학자라기보다는 ‘여전사’로 살았다.

1932년 1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물리치료사로 평범한 삶을 살던 포시는 35세 때 인생 진로를 바꿔 르완다 밀림에 들어가 18년을 고릴라 연구에 바쳤다.

고릴라 밀렵꾼이 극성을 부리자 그는 사냥꾼을 고용해 이들을 잡아들이는가 하면 이들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잡아들인 밀렵꾼을 고문한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현실 참여적 연구 방식이 논란을 일으키자 그는 한동안 미국으로 돌아가 교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과격한 환경운동은 비극으로 끝났다. 1985년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그는 밀렵꾼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됐다.

포시가 관찰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고릴라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19세기 프랑스 탐험가 폴 두 차일루가 고릴라를 ‘광폭하고 사악한 반인반수(半人半獸)’로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끈질긴 관찰을 통해 고릴라가 민주적으로 무리의 질서를 운영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포시가 보여 준 동물세계는 ‘인간적’이었다. 매정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인간세계가 오히려 ‘동물적’이지 않은가.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 기사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다이앤 포시 책 한권 소개합니다.

 

 

 

 

만화와 글이 조합되어 아주 재미있고 영화를 보는 듯해요.

저는 읽으면서 울기까지 했답니다.

그만큼 감동이 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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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인으로서의 정지용, 그리고 정지용이 쓴 동시_전 병 호



일반적으로 정지용 시인은 대중들에게 「향수」를 쓴 ‘시의 거장’으로 그 이미지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지만 동시인으로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일찍이 1930년대 문단을 풍미한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간파한 적이 있다. 그 말에 걸맞게 지용은 지금도 변함 없이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 시의 성좌(星座)’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가 한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이 같은 선구적 위치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그가 일찍이 수준 높은 동시를 썼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지용이 쓴 동시는 몇 편일까
정지용 동시를 말하기 전에 먼저 대상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게 느껴진다. 왜냐 하면 지용이 생전에 동시집을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펴낸 책 중에서 시집은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 두 권뿐이다. 그 중에서 『정지용 시집』 제3부에 실린 시의 일부가 오늘날 말하는 정지용 동시인 것이다. 박용철은 제3부에 실린 작품을 가리켜서 ‘자연동요의 풍조를 그대로 띤 동요류와 민요풍 시편’이라고 말했다. 제3부에 실린 시는 모두 23편이다. 일반적으로 전반부 16편은 동시이고, 후반부 7편은 민요풍 시로 나뉜다. 그러나 이런 견해를 좇아 정지용 동시를 16편으로 묶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먼저 「호수 1」을 보자.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호수 1」 전문

틀림없는 동시이다. 그것도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갈래머리를 한 여자 아이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르는 동시인 것이다. 또 「호수 2」는 어떠한가.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호수 2」 전문)’ 이 작품도 동시이다. 이 시들은 『정지용 시집』의 제2부에 실린 시들이다. 정지용 동시를 말하는데 이 시들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밖에 고르는 이에 따라서 제2부의 시를 일부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지용에게는 시의 전반부는 동시이고 후반부에 가서 어른 목소리를 드러내는 소위 ‘동시적 발상이 주조를 이루는 성인시’도 의외로 많다.
한편 작년(2004년)에는 박태일이 동시 두 편 「넘어가는 해」1), 「겨울밤」2)을 발굴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신소년’ 1926년 11월호에 ‘지용’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이 두 편은 지용의 다른 시집에는 실리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정지용 동시는 제3부의 작품을 중심으로 고르는 이의 기준에 따라서 얼마간 달라진다. 그렇지만 넉넉잡아 30편은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1) 불까막이/불까막이//들녘지붕/파먹어라//내려왔다/쫓겨갔나//서쪽 서산/불야 불야
   (「넘어가는 해」 전문)
2) 동네집에/강아지는/주석방을//칠성산에/열흘 달은/백통방을//갸웃갸웃/고양이는/무엇 찻나
   (「겨울밤」 전문)

>>지용은 그 당시 문단에서도 동요 동시 작가로 알려졌을까
지용은 그 당시에도 동요 동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를 가리켜 김환태는 ‘가장 완전하게 동심을 파악한 동요 동시 작가’라고 평했으며, 석은과 이양하는 정지용 동시의 뛰어남을 지면을 통해 밝힌 적도 있다. 그는 좌경적인 작품을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학가동맹에서는 아동분과위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가 아동분과위장으로 추대된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체에서는 어떠한 활동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그가 일반으로부터 동요 동시 작가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참고로 말하면 지용은 1933년 8월경 반카프적 입장에서 순수문학을 옹호하려는 취지로 구인회를 결성하고 이를 이끌어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카톨릭 청년’지의 편집에 관여했던 만큼 카프파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정지용 동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대체적으로 정지용 동시는 1922년을 전후한 습작기의 소산으로 여기고 가볍게 처리해 온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박용철이 시집의 발문에서 ‘많은 눈물을 가벼이 진실로 가벼이 휘파람 불며 비누방울 날리든 때’의 부산물이라고 언급했고, 또 오탁번은 ‘민속적 정서에 바탕을 둔 가벼운 소품들’ 정도로 취급하기도 했다. 정지용 시의 본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어디까지나 현대 자유시이지, 동시와 민요시 또는 시조가 아니라는 전제가 강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이를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지용 동시를 폄하하거나 그렇게 가볍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정지용 시집』이 발간된 것은 1935년이다. 1935년이라면 지용이 시작의 원숙기에 들어선 시기이다. 지용은 첫 시집을 펴내면서 동시를 민요풍 시와 함께 별도의 장을 설정하여 수록했다. 시조를 제외시킨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이다. 이는 지용이 동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내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정지용 동시에는 작품의 의미가 비교적 짙게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지용의 일반시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전체적인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단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요청된다. 이에 대해 일찍이 김종철은 ‘대단히 높은 정신적 경지를 나타내는 지용의 시들은 그의 동시의 변형’이라는 견해를 피력했고, 김학동은 ‘초기의 동요나 민요풍의 시편들은 그 뒤로 전개되는 「바다」와 「신앙」과 「산」의 시편에서 보인 고고한 정신적 태도와 표현 기법의 바탕’이 되었다고 보았다.

>>지용은 언제부터 동시를 썼을까
지용은 1926년 6월에 발간된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 일반 시 3편, 시조 9수와 함께 「서쪽 하늘」, 「띠」, 「감나무」, 「한울 혼자 보고」, 「딸레(인형)과 아주머니」 등 5편의 동시를 발표했다. 이것이 지용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동시이다. 지용의 이 동시들은 주로 일본유학 시절을 전후한 시기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용은 22살이 되던 해인 1923년에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서구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리고 28살이 되던 1929년 3월에 졸업한 이후 모교인 휘문고보에 영어과 교사로 취임한다.
정지용의 시작 과정을 작품 경향에 따라 살펴보면 대략 3단계로 나뉘는데 이 시기는 제1단계에 해당한다. 이 때 지용은 도시 이미지를 추구하는 모더니즘 계통의 시와 함께 토속적 향수와 실향 의식을 담은 동요류 및 민요풍 시편들을 발표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게 된 많은 동시들은 물론 노래로 작곡되어 널리 불려지고 있는 「향수」도 이 때 씌어졌다.


>>>지용은 왜 ‘동요류 및 민요풍 시편’을 쓴 것일까>
지용은 일본 경도에서 여섯 해를 보냈다. 지용은 유학 초기에 새로운 서구 문물을 접하면서 많은 경이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해탄 건너 멀리 이국의 하늘 밑에서 고향 옥천에 대한 향수와 고독도 절실히 느꼈다. 그는 압천(鴨川)이라는 냇가에 하숙을 정했다. 이 곳은 고향 마을의 자연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시상을 다듬으며 압천을 따라 거닐었다. 그러나 지용이 이 압천에서 만난 것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자연 풍경만이 아니었다. 압천 상류엔 케이블카 가설 공사장이 있었다. 그는 이 곳에 강제로 끌려와 중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와 그들의 비극적 참상을 함께 보았다. 망국민의 비애를 처절하게 느낀 그는 그 당시 노동자들의 모습을 「지용문학독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수백명식 모이어 설레는 일판에 합비 따위 노동복들은 입었지만 동이어 맨 수건틈으로 날른대는 상투를 그대로 달고 온 사람들도 많았다. 째앵한 봄볕에 아지랑이는 먼 불타듯하고 종달새 한끗 떠올라 지즐거리는데 그들은 조선의 흙빛같은 얼골이매 우리라야 알아듣는 왁살스런 사투리며 육자배기 산타령 아리랑 그러한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용이 조선에서 온 유학생임이 밝혀지자 그토록 거칠고 사나웠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신랑 신부 볼모 잡듯이 그를 환대해 주었다고 한다. 지용은 그 때 고국에서 온 이 노동자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그들을 찾아 향수를 달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현해탄 건너 고향에는 꿈에도 그리는 그들의 가족이 있었고 지용에게는 무척이나 사랑한 누이동생 계용이 있었다. 이처럼 압천 유역은 그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면서도 한편으로는 망국민의 비애와 울분을 터뜨리게 하는 곳이었다. 그는 이런 심정을 시로 승화시켰다. 이것이 『정지용 시집』의 제3부에 실린 동요류 및 민요풍 시편들인 것이다. 이 시들은 망국의 설움을 달래고, 나아가서는 민족의 동질성 고취와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간절한 심정에서 씌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지용 동시는 전승 설화, 세시풍속, 민요 등을 주요 소재로 한다. 또한 우리 시의 전통적인 율격을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다. 우리는 지용을 전통지향적 시인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그의 동시는 전통지향 정형적 동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향토적 색채가 짙다. 이것은 일본 경찰의 총검 아래서도 조선의 자연 풍토와 조선인의 정서와 우리 언어를 끝까지 고수하려고 했던 그의 항일의식을 드러 낸 것이기 때문이다. 정지용 동시를 가리켜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이 유년 시절의 동심과 조화되어 민요의 율조를 타고 고독과 비애로 표상’했다고 한 김학동의 말은 그의 동시가 어떤 배경에서 씌어졌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지용의 동시는 사실상의 망향가이면서 망국민으로서의 서러움을 달래고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던 영혼의 노래였던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지용이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윤동주 및 청록파 시인들에게 끼친 동시에 대한 크나큰 영향이다. 잘 알다시피 청록파 시인은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이다. 이 중 박목월과 조지훈은 동시를 썼다. 특히 박목월은 박영종이라는 본명으로 많은 동시를 발표했고, 동시단에서도 또렷한 족적을 남긴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 지용이 ‘문장’지에서 추천한 시인들 중에서 박남수도 동시를 썼다.
그런데 정지용과 윤동주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생이고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으므로 15년 차이가 난다. 윤동주는 일본 동지사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하던 중 1943년 사상범으로 몰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졌다. 정지용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다. 윤동주는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이 시집은 윤동주가 죽은 후인 1948년 그가 남긴 시 30편을 모아 펴낸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서문을 정지용이 썼다. 윤동주는 윤석중, 강소천, 일본의 오가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평생을 두고 가장 좋아한 시인은 정지용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지용의 동시를 애독했다. 그런 만큼 『정지용 시집』은 윤동주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두 사람이 다 민족의 수난기에 허망하게 희생되었다는 비극적 사실도 같다. 이처럼 당대 최고 시인인 정지용이 동시를 썼다는 사실은 그 당시 젊은 시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두 번째는 그의 최후 행방에 관한 것이다. 정지용의 시가 해금된 것은 1988년이다. 6·25 당시 녹번리 초당에서 지내다가 정치보위부에 의해 납북되었지만 월북인사로 분류되었다. 그 동안 그의 최후에 대해 여러 증언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1950년 미군기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유력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주장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지용 시인이 북한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향신문 2000년 11월 1일자에 실린 한 편의 기사는 필자를 아연케 했다. 기사의 제목은 ‘정지용 시인의 기막힌 사연’이었다. 정지용 시인의 셋째 아들 이름은 정구인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행방불명 된 아버지를 찾는다며 집을 나섰던 셋째 아들이 50년 만에 아버지 정지용을 찾아 달라고 북에서 서울로 연락해 온 것이다. 그러면 월북했다던 정지용은 그 동안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같은 북녘 땅에 살면서도 아들의 안부조차 모르고 살았거나 아니면 아예 월북하지도 않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정지용 동시를 읽어 볼 수 있는 책

『정지용 전집』(민음사, 2003)
-시전집
『향수』(미래사, 2001)
-시선집(개정판)
『엄마야 누나야』(보리, 1999)
-앤솔러지, 동시선집
『해바라기 씨』(비룡소, 2002)
-그림책


▶▶▶전병호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청주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정지용 동시’를 연구했습니다. 1981년 ‘소년중앙문학상’과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계간 <아동문학평론>에 『재운이』, 『샛강 아이』 등 여러 권의 동시집 서평을 발표하였으며, 지은 책으로 『꽃봉오리는 꿈으로 큰다』, 『소금 얻으러 간 날』, 『꽃 속의 작은 촛불』, 『들꽃 초등 학교』 등이 있습니다.




(※ 이 글은 월간 <동화읽는가족> 2005년 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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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2-1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북 옥천 출생이지요...... 동시도 쓰셨군요~~~

하늘바람 2006-02-1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출생까지~ 역시 해박하셔요. 세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