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전집’ 다시 뜬다 [06/02/16]
한국문학 전집이 부활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주요 작품들을 망라하는 전집류 발간은 1995년 동아출판사가 펴낸 ‘한국소설문학대계’ 이후 거의 맥이 끊겼다. 그간 몇몇 출판사에서 기획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대형 출판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굵직한 문학 전집물이 잇따라 발간되면서 출판 시장의 주요한 부문으로 자리를 잡는 추세다.

최근의 문학 전집 발간 붐은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문학 전문 출판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문학과지성사는 1년여 전부터 김동인 염상섭 이태준 등 광복 이전 소설가들의 작품을 수록한 ‘한국문학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해 이번 주에 21∼23권을 냈다.

창비는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소설을 수록한 ‘20세기 한국소설’ 22권을 지난해 낸 데 이어 지난달 2차분 14권을 추가했다.

민음사도 10여 년 전 중단했던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의 발간을 재개했다. 기존 작가 총서의 개정판을 내면서 이승우 등 젊은 작가 3인의 작품집을 추가한 것.

시장의 반응도 좋다. 개정판 ‘오늘의 작가 총서’는 최근 3개월간 권당 평균 2000부가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작가의 작품이 많아서 독자들이 전집보다는 낱권 구매를 선호한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20세기 한국소설’은 지금까지 총 30만 권을 찍었다. 박완서 황석영 씨 등 생존 작가의 소설을 골라 낱권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국문학전집’은 지금까지 10만 권을 찍었다.

문학 전집류의 부활은 문학 출판사들이 한국 문학의 주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 작품 셀렉션을 갖춘다는 목적과 더불어 대학입시 논술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20세기 한국소설’은 교사와 연구자가 쓴 작품해설과 낱말풀이 목록을 첨부하는 등 교재 형식을 함께 갖췄다. ‘오늘의 작가 총서’도 “새롭게 쓰이는 고전이면서 수능과 논술을 위한 청소년의 필독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추세와 관련해 이번 주 발간되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는 문학정본과 문학 교육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특집을 실었다. 이 특집에서 한국문학 전공 교수들은 청소년들이 문학을 예술작품이 아닌 대학 입학 수단으로만 접하지 않도록 세심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하대 김만수(국문학) 교수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문학을 배우면서 동시에 즐기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대 한수영(국문학) 교수는 “문학 교육이란 좋은 문학작품에 대한 감별력을 획득하는 훈련 과정”이라면서 “문학 텍스트와 삶의 연관을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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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2-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집이 한동안 잘 안팔렸었나보네요. 몰랐습니다.

하늘바람 2006-02-1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아이가 생기면 전집을 사주고 픈 마음이 없어요
어릴 적 친구들 보니 전집이 있어도 안읽더군요. 부러워 했던 기억만 납니다. 그래서 빌려주면 혼나니 빨리가져와야해 하면서 빌려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전집 중에 탐나는 전집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한솔의 마주보는 인물이야기예요.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어서요. 갖고 프더라고요
 

핑’‘배려’‘마시멜로 이야기’ 등 3파전… “역사적으로 자기계발서는 자본주의와 불황의 산물”

새해로 접어들며 기다렸다는 듯이 ‘마시멜로 이야기’를 필두로 하여 ‘배려’ ‘핑’ 등 자기계발서들의 경쟁이 볼 만하다. 특히 이 세 권의 책은 우화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흥미로운 것은 2005년 경제경영서의 큰 흐름과 분명한 경계를 긋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경제경영서의 특징은 한마디로 거시적 흐름을 살피는 책이었다. 좀처럼 빅 셀러가 등장하지 않는 경영전략 분야에서 ‘블루오션’ 같은 책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고 ‘2010 대한민국 트렌드’처럼 미래사회와 트렌드를 살피는 책과 공병호 박사의 ‘10년 후’ 시리즈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책이 폭넓게 공감을 얻었다. 이는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책을 여러 해 동안 읽어댔던 개인의 관심과 시야가 넓어진 징후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6년이 되자마자 다시 자기계발서 세 권이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말, IMF 관리체계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활성화된 자기계발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개인의 위기감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물론 위기감의 근원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로부터 발생한다. 역사가 증명하듯 자기계발서는 자본주의와 불황을 먹고 사는 꽃이다. 새뮤얼 스마일스의 ‘SELF HELP’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했고, 미국의 대공황기에는 나폴레온 힐이 있었으며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1980년대 미국의 불황과 함께 했다.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성공은 신자유주의의 수용과 고용불안정 같은 사회적 요인과 짝을 이룬다.

기업의 생존 전략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 등으로 시야를 넓혔던 독자가 다시 자기계발서를 선택한 이유는 불황이나 위기감의 실체가 그만큼 뿌리 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또 앞서 든 세 권의 책은 흔한 자기계발서이긴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먼저 ‘한국의 부자들’을 썼던 ‘배려’의 저자 한성복씨는 이 책을 통해 한국형 우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외국산 우화 이상의 호소력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저자는 등장인물 ‘공자왈’을 통해서 ‘배려’의 근간이 되는 공자의 ‘인(仁)’ 사상을 이야기한다. 책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 한 회사의 팀원들을 조명하는데, 그 중 수석으로 입사했고 최연소 차장 승진기록을 경신했지만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인 위 차장의 변화를 통해서 ‘인’을 재해석한다. 야심가인 ‘철혈이마’의 계략으로 구조조정 대상인 1팀으로 좌천된 그가 인도자, 직업조문객, 명함수집가, 공자왈 같은 다양한 캐릭터와 만나며 변화한다는 이야기가 작품의 뼈대다.

‘핑’은 점프를 잘하는 개구리의 이름이다. 책은 꾸며낸 이야기지만, 사실이라며 시작된다. 변화해야 할 처지에 놓인 개구리 핑 앞에 선지자 부엉이가 나타나 멘토(조언자)로서 핑을 이끌어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야기의 맛은 덜한 대신 ‘금언의 보고’라 할 만한 책이다. 소설 ‘연금술사’의 자기계발서 판이라고나 할까. 조금 관념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점이나 웅변적으로 변화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점이 감정이입을 방해하지만 파스칼적 성찰이 빛난다. ‘태도가 곧 성취다’ ‘멘토의 임무는 가르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격려하고 기다려 주는 일이다’와 같은 말은 씹어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젊은 사장이 멘토로서 운전기사인 찰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마시멜로’라는 은유다. 마시멜로는 여러 가지 유혹을 뜻하는데, 운전기사 찰리의 경우 인생을 술과 포커 게임으로 낭비하는 일이며 야구선수 포사다에게는 남다른 야구선수가 되는 데 따르는 희생과 노력을 포기하고 평범한 선수로 남는 일이다. 또 마시멜로는 인내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심리적으로는 ‘만족지연’이라는 개념이다. ‘크고 장기적인 목표달성을 위해 순간의 충동적인 욕구나 행동을 자제하며 즐거움과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을 말하는 만족지연 개념이 바로 마시멜로인데, 이러한 학문적 개념을 마시멜로라는 누구에게나 대입 가능한 보편적 은유로 바꿔 독자를 설득한다. 번역자인 정지영 아나운서와 일러스트레이션 역시 이 책의 숨은 공로자다.

세 권의 자기계발서는 공통으로 동양적 가치를 바탕에 깔고 있다. ‘배려’의 메시지는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인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극기복례가 인이다”라고 대답한 공자의 말을 한 편의 현대적 우화로 풀어놓은 것과 다름없다. ‘핑’의 경우 동양의 선(禪)사상을 바탕으로 한 영적 가르침의 흔적이 작품 전편에 흐르며 ‘마시멜로 이야기’ 역시 인내가 주제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 주간조선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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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1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책들은 나오면 다 손해는 안보는거 같아요. 내기도 쉽고.

하늘바람 2006-02-1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내기 쉬운가요?
 

해외 언론의 서평문화 | 다시 책이다 2004/08/29 04:41
http://blog.naver.com/medius/60005356259

■다양성 우선…유명작가 배제 '철칙'
최근 한국 언론에서도 책이 각광을 받고 있다. 각 방송사는 책 소개 프로그램을 최소한 하나씩 편성하고 있으며, 신문은 지난 96년 일간지 중 최초로 북리뷰를 시작한 문화일보를 비롯해 대다수의 신문들이 책 소개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평의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책이 소개되는 방식과, 선정되는 책의 다양성 등에 대해 보다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이 여러차례 지적된바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일간지 르몽드의 북리뷰, 이제는 은퇴했지만 텔레비전 책 소개 프로그램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베르나르 피보로 상징되는 서평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의 서평 문화의 특징과 장점은 다양성과 심도있는 소개에 있다.


국영 라디오 방송 ‘라디오 쿨튀르’에서 20여년간 책 소개 프로그램을 해 온 올리비에 제르맹은 “내 책 소개 프로그램의 목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가를 알리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책 소개 프로그램, 북리뷰가 한 두개가 아니기 때문에이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대중적이지 않은 저자를 소개하는 데 주력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진행하는 ‘포르 인테뤼에르’는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회에 한명의 저자만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부는 전기형식으로 저자의 삶을 소개하고, 2부는 저자가 쓴 전 작품 검토, 3부는 작가가 직접 고른 음악과 그 음악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르맹은 “이 프로그램은 베스트셀러 작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공영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청취율이나 재정적인 압박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청취자 수는 5만~6만명. 그는 “이 수가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저자가 사장되지 않게끔 감식안을 발휘해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 언론의, 최소한 이 프로그램의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파리〓전영선기자 azulida@munhwa.co.kr

■뉴욕타임스 북리뷰팀 부편집장 줄리 저스트씨
출판 서평으로는 세계적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뉴욕타임스 ‘북리뷰’섹션. 전체 스태프 18명, 편집자 9명으로 이 신문 섹션중 규모가 가장 크고 리뷰기사 한꼭지 출고에 8주를 할애하는 등 제작여건부터가 남다르다. ‘북리뷰’팀 부편집장 줄리 저스트는 ‘객관성과 공평함’을 자신들의 원칙으로 꼽았다.


―리뷰서적은 어떻게 선정하나.
“1주일에 배달되는 600여권중 실용서를 제외한 300권을 2차에 걸쳐 25~30권으로 좁힌 후 전문 리뷰어에게 의뢰한다. 리뷰어는 해당분야의 전문가이며 글을 잘 써야 한다. 리뷰어가 저자, 출판사, 에이전트와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은가 사전에 체크하고, 도착한 원고도 재검토해 공정하고 전문적이며 질높은 리뷰가 되게 한다. 도서선정 기준은 픽션의 경우 글쓰기의 질이고, 논픽션은 글쓰기의 질과 새로운 주제나 가치의 발굴, 같은 주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다.”


―좋은 서평이란.
“리뷰를 읽고 그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이 나게 하는 것이다. 파티에서 그 책을 다 읽은 것처럼 떠들 수 있다면 성공이라는 말도 있다(웃음). 궁극적으로 책을 사고 읽게 만들어야 하지만 우선은 독자에게 대화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크다.”


―악평도 판매에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악평도 홍보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작품이 좋지 않고 신인일 경우에는 철저히 무시한다. 하지만 스타작가의 경우에는 혹평을 한다.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의 판매는 서평과 무관할 때가 많지만.”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등 TV책프로그램들이 상업적 출판물에 집중되는 것은 문제아닌가.
“주로 낮시간대 주부시청자를 겨냥한 프로이기 때문에 책을 읽던 사람의 습관을 바꾸기보다는 책을 안보던 사람을 보게 만든다. 가벼운 독서습관을 형성한다고 비판하기보다는 전체 독자를 늘린다고 봐야 한다.” /뉴욕〓양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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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하늘바람 2006-02-1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좋은 아침이신가요?
 

'도토리' 심조원 대표 | 출판기획자들 2004/08/29 04:02
http://blog.naver.com/medius/60005356002

*'국적있는 어린이책'길을 뚫었다
“자네 시골가서 6개월 동안 할머니들과 얘기나 하다가 돌아오지.” 89년 겨울 서울 합정동 보리출판사 사무실. 입사원서를 들고 찾아온 스물네살의 신출내기 편집자 심조원(37·현 도토리 대표)씨에게 윤구병(57·현 변산공동체 대표)사장은 다짜고짜 낙향을 엄명했다. “듣기만 하라”는 주문도 보태졌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뒤 을지로 출판동네를 전전하다 “배우고 싶습니다”라며 입사를 간청했던 심씨는 도리없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내려가야 했다.

 
동네 할머니들의 옛얘기와 넋두리를 듣고, 녹음까지 했다. 심씨는 ‘유배’같은 생활을 하면서 윤사장의 뜻을 헤아렸다. 사회변혁이 지식인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했던 시절, 그때까지 지식인은 민중보다 먼저 말하고 가르치려 했다. 하지만 바른 관계는 민중이 말하고 지식인은 그것을 담아서 전달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출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자각토록 한게 윤사장의 의도였다. 외적 성장에 비해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어린이 출판분야에서 자연생태·환경 그림책의 전문기획자로 입지를 다진 심씨. 출판인으로서의 그에 대한 ‘담금질’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88년 설립한 보리출판사는 한국적인 어린이 그림책을 추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 책 시장은 위인전과 외국서적 번역물이 주류였고, 전집류의 방문판매에 의존했다. ‘천사주의’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마냥 예쁘고, 환상을 심는 그림책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움트고, 어린이 교육이 갖는 중요성과 ‘국적있는’ 어린이 도서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출판이 모색된다. 보리출판사는 그런 새 흐름을 주도했다.


심씨는 보리출판사가 선보였던 ‘올챙이 그림책’(91년 완간)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어린이 책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는다. “미혼인데다, 특별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품도 아니었는데 새롭게 어린이들을 보기 시작한거죠. 집단화가 안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대상이지만 그들의 세계에도 논리가 정연하고 다툼에도 이유가 있지요.” 어린이에게 한국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다룬 그림책을 보여주고싶었던 심씨는 ‘달팽이 과학동화’(전 50권)를 만들면서 그 구상을 현실로 옮겨갔다.


우선 일러스트레이션이 달라져야 했다. 자연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그림이 아이들의 인지구조에 맞도록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 세밀화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각종 식물, 동물 도감이 많았지만 그림에 느낌이 없거나 외국 것을 베낀게 태반이었던 실정에서 ‘이쁜 그림’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담은 표현기법을 개발해야 했다.


접근 방식도 달라야 했다. “당시 식물도감에는 대개 우리가 먹는 벼, 보리가 없었어요. 또 동물도감에는 한국인과 가장 친숙한 개, 돼지가 없고 코끼리, 사자, 기린 등 열대동물들만 가득했어요. 아이들이 낯선 자연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죠.” 심씨의 문제의식은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자연을 담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품을 파는 일이 시작됐다. 자동카메라를 들고 산, 강을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찍어댔다. 통바지와 고무신 차림으로 1주일에 3~4일은 ‘출장중’이었다. 한겨울 계곡을 넘다 폭설을 만나기도 하고, 모기알을 떠다 사무실에서 키우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특히 그림과 글쓰기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은 기획자의 주요한 몫이었다. 그림책의 종류에 따라 글의 역할이 다르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림을 보는데 글이 방해되면 비켜줘야 해요. 그림으로 모자라면 글이 받쳐줘야 하지요. 글은 그 자체로 그림이 되기도 하고, 때론 캡션(사진설명)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겁니다.” “내 글로 모두 보여줘야 한다”는 작가들을 설득하는 일, 아이들의 언어발달 과정을 고려한 문장을 어른 작가들이 이해하는 것 등이 난제였다.


독특한 것은 집단창작 방식이었다. 심씨는 이를 ‘우르르 시스템’이라고 지칭했는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듯 경험을 축적해야 하는 상황인터라 난제가 등장할 때마다 함께 머리를 맞대야 했던게 출판기획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96년에는 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심씨, 화가 이태주씨 등이 편집기획자집단인 ‘도토리’를 설립해 보리출판사에서 독립했다. 그런 역량을 모아 ‘보리 아기그림책’(5세트·1994년)에 이어‘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1997년),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1998년)을 내놓았다.


이들은 기존의 도감과 형식부터 색달랐다. 학문적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생활에서 서로 연관성을 가진 주제별 분류법을 시도했다. ‘보리 아기 그림책’은 10만 세트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가 됐고, 식물도감과 동물도감은 각각 3만부 정도 팔렸다. 이달초에는 제작하는데 6년이 걸린 ‘나무도감’이 출간됐다. 조만간 ‘곤충도감’도 선보인다. 생태그림책 ‘갯벌에 뭐가 사나 볼래요1’을 시작으로 갯벌살림, 산살림, 들살림 등을 주제로 묶어 약 50여권을 출판할 예정이다.


심씨가 기획출판한 책은 약 100여권. “딱히 히트작이랄 건 없지만 모두가 판을 거듭하며 살아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심씨의 말처럼 어린이 책시장에서는 스테디셀러가 중요하다. 그는 어린이 책시장에 대해서 “출판시장의 의미를 공간에서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 당장 보이는 시장보다 멀리 내다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1년에 10만부가 팔릴 책을 만들게 아니라 1000권씩 10년 동안 팔리는 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이 출판의 특성상 육아일기를 쓰는게 의무이고, 신입사원 모집때는 ‘시골출신 우대’라는 이색 조항이 추가되는 도토리. 현장취재를 책에 반영하고, 박제화된 자연이 아니라 생활과 교류하는 오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편집기획원칙은 도토리 기획의 차별화를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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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상업성' 어린이책 모범
출판기획자라면 누구나 베스트셀러를 내는 꿈을 꾸겠지만,그 맛도 몇번 보고나면 기획의 참맛은 스테디셀러를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단계에서 한국출판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지적하면, 베스트셀러가 안나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생존주기가 너무 짧아졌다는 데 있다.


한 책이 매장에서 살아남는 시간이 극단적으로는 1주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결국 한국 출판의 활로는 스테디셀러를 만들고 이를 꾸준히 유통시키는 구조를 확립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책 전문출판사 ‘재미마주’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1996년부터 출판을 시작했으니 이제 5년 남짓 출판을 했으며, 그간 낸 책이라고는 고작 15종에 이른다. 책 1종 제작하는데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그렇게 만드니 한해에 3종 내면 많이 낸다. 그러고도 이 출판사의 경영구조는 탄탄하다.


“일년에 3권 낸다니까 무척 한가할 것 같죠. 실제로는 정말 바빠요. 책 1권 내려면 작가나 출판사나 한 숨 돌리면서 고치는 여유가 필요해요. 하나하나 됨됨이를 고쳐가다보면 시간이 후딱 가버리죠. 그렇게 천천히 고쳐가는 것이 책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널리 알려진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39)씨를 북리뷰가 주목하는 이유는 ▲작가가 출판사 대표가 되어 작가주의 정신에 입각한 책 제작방식을 정착시킬 수 있었던 점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소규모 출판으로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영모델을 선보인 점 ▲어린이책 분야가 ‘작가주의 정신+상업적 성공’이란 두가지 모델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 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간간이 내리는 지난 월요일 오전, 서울 마포 우편물 취급소 2층에 있는 재미마주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출판경영과 작가주의 정신이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내내 강조했다. 도리어 작가주의 정신에 가장 투철한 책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상업적이라고 보고 있는 듯했다.


“그간 한국 아동 도서 출판은 어린이책을 사업 수단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는 자신의 언어를 자신의 자본으로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있는 출판사에 자신의 언어를 팔았을 뿐이지요. 그러나 이젠 작가 자신이 제작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언어를 상품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그런 작가주의 정신을 반영한 책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어린이책이란 데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가 출판에 뛰어들게 된 경험과도 일치한다.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 81학번인 이씨가 어린이책과 만나게 된 건 1987년. 김민기씨가 만든 어린이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책 제작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이씨는 파리의 서점가에서 그가 대학에서 단편적으로 만났던 유명 일러스트레이션이 모두 어린이책의 삽화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린이책이야말로 완성도 높은 그림을 실어야 한다’는 데 대해 확신하게 된다. 이후 삼성출판사·길벗 등에서 일했던 그는 1996년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 재미마주를 출범시킨다.


재미마주의 책은 지금까지 이른바 ‘죽은 책’이 없다. 모든 책이 끊임없이 재판을 찍는다. 이것이 이 출판사가 일년에 3종만 내고도 탄탄할 수 있는 이유다. 어린이책은 1년에 3000부가 나가기도 어렵다는 현실에서 재미마주의 모든 책은 1년에 평균 1만부는 나가는 스테디셀러다. 이중 ‘세상에서 제일 힘 센 수탉’(이호백 글·이억배 그림), ‘내 짝궁 최영대’(채인선 글·정순희 그림) 등은 재미마주의 간판작품.


“저도 굉장히 상업적이에요. 모두 한 길로 갈 때, 다른 길로 가면 성공한다고 봐요. 그런 것이 가장 상업적인 거죠.”  작가로서 혼신의 힘을 기울인 그림을 내놓으면, 그런 그림을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이씨의 확신은 최근 과열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어린이책 출판계에서 한번쯤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거기에다 ‘장사까지 된다’고 하니, 이씨가 보여주는 제작이념과 경영방침이 어린이책 기획의 긍정적인 모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배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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