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미야쟈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OST를 피아노곡으로 아름답게 살린
    Carl  Orrje  Piano  Ensemble 의 [Studio Ghibli Works] 앨범을 듣고 있다.

    쳐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흔들거리지 않는 -
    적당한 발람함과 통통 튀는 경쾌함과 고귀하게 아름다운 주옥같은 곡들이
    한번에 여러 책들을 폭식하여 소화불량으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나의 뇌와...
    내 영혼을 부드럽게 치료해주고 있다.

    음악은 - 어떤 장르 상관없이 -
    내 영혼의 영원한 치료약이다.

    피아노, 플룻, 섹스폰, 대금 등의 경음악을 들을 때는 달콤한 쉐이크를 마시는 기분 -
    걸걸한 목소리의 재즈 가수의 목소리와 그 즉흥적인 악주의 조화로움은 담배 맛이 나며 -
    발라드나 R&B는 부드러운 믹스커피 맛 -
    세상을 쩍쩍 갈라놓을 것 같은 강렬한 하드코어, 메탈, 락 등은 시원한 탄산수를 마신 듯
    통쾌하고 신이 나지.

    러시아 음악은 눈 내린 추운 겨울 날, 따뜻한 난로 주위에 앉아 마시는 쓴 보드카 -
    팝송의 그 맛깔나는 가사들을 들으면 내가 마치 그 주인공 같고 -
    남미의 노래들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마른 땅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고 싶어지지.

    제 3세계의 음악들은 또 얼마나 이색적이고 원시적이며 순수한지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들 중 버릴 게 하나라도 있을까 싶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 중 -
    아름다움을 탐미하는 것과
    소리들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과
    삶, 생각, 감정 등을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과

    세상의 모든 멋진 것 - 심지어 어둡고 아주 쓴 이야기까지
    글로 표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얼마나 멋진 본능인가.

    책을 읽는 행위가 '밥을 먹는 것 '이라면
    음악을 듣는 행위는 '식후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랄까.

 

      

   
   Hedel house_Piano

 

 

     학아.
    음악이 있어 이 칠흑같은 세상이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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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ephistopheles > 27년전 역사 그리고 지금..

1980년

5월 17일 (토요일, 맑음)

24시 00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 시내의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며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5월 18일 (일요일, 맑음)

9시 40분
계엄군이 전남대생 50여명의 등교를 저지했다.
10시 15분
전남대생들이 "계엄해제", "휴교령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이자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진압. 이에 학생들이 금난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5시 40분
유동 삼거리에 공수부대가 충돌하면서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19시 02분
계엄사령부는 광주의 통행금지시간을 저녁 9시로 앞당겼다.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3시 00분
증파된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했다.
9시 30분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맞서 누문동 파출소를 불태웠다.
10시 00분
금남로에서 시민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이 전개되었다.
14시 40분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15시 00분
광주 시내의 기관장과 유지들이 대책회의를 갖고, 시위진압을 완화해달라며 계엄당국에 건의했다.
16시 30분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부상을 입었다.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8시 00분
광주시내 고등학교에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0시 20분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중이던 남녀 30여명이 속옷차림으로 공수부대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18시 40분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였다.
20시 10분
도청을 향하는 시위대들은 금남로, 충정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및 경찰과 대치했다.
21시 05분
노동청 쪽에서 시위대의 버스가 경찰저지선을 돌진하여 경찰 4명이 사망했다.
21시 50분
광주의 실상을 왜곡보도하는 데 분노한 시위대가 광주 MBC건물에 방화했다.
23시 00분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이 사망했다.

5월 21일 (수요일, 맑음)

0시 35분
노동청 방면에서 시위대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을 전개했다.
2시 18분
광주 전역의 시외전화가 단절되었다.
4시 00분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로 향했다.
4시 30분
시위대가 광주 KBS건물에 방화했다.
8시 00분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시위대가 20사단 병력과 충돌했다.
10시 15분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드링 전면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10시 19분
광주세무서 건물이 전소됐다.
11시 10분
대형헬기 1대가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12시 59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했다.
13시 00분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13시 20분
금남로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에 쓰러졌다.
14시 15분
도지사는 경찰헬기를 타고 시위해산을 종용했다.
14시 35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과 장갑차 수십대를 탈취했다.
14시 40분
시위대가 지원동 탄약고에서 TNT를 탈취했다.
15시 48분
공수부대원들이 시내 빌딩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16시 00분
화순, 나주 지역에서 무기를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와 시가전을 전개했다.
16시 43분
대학생들이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2대를 설치했다.
17시 30분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다시 철수했다.

5월 22일 (목요일, 맑음)

9시 00분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이 집결했다.
10시 30분
군용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경고전단을 살포했다.
11시 25분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을 호소하고, 도청 옥상에는 검은 리본과 함꼐 반기가 계양되었다.
13시 30분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를 방문하여 7개항의 수습안을 전달했다.
15시 08분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5백여명이 광주에 도착했다.
15시 58분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40분
도청광장에 시체 23구가 더 도착했다.
21시 30분
박충훈 신임 국무총리가 "광주는 치안부재상태" 라고 방송했다.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떄 흐림)

10시 00분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10시 15분
학생수습위가 특공대를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을 시작했다.
11시 45분
도청과 광장 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가 계시되었다.
13시 00분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해 시민 17명이 사망했다.
15시 00분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고,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되었다.
19시 40분
최초 석방자 33명이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공수부대가 운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14시 20분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 간의 오인 총격전이 발생했다.
14시 50분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5월 25일 (일요일, 비)

11시 00분
김수환 추기경이 광주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와 함께 구호대책비 1천만원을 광주시에 전달했다.
15시 00분
제 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00분
재야인사들이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1시 10분
학생수습대책위원들이 광주지역 범죄발생 예방, 식량공급, 청소문제등을 논의했다.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5시 20분
계엄군이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했다.
8시 00분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일명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10시 00분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4시 00분
학생수습위원회가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금 등 8개항을 요구했다.
15시 00분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00분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을 브리핑했다.
19시 10분
계엄군의 공격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시민군은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시켰다.
24시 0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일제히 두절되었다.

5월 27일 (화요일 맑음)

3시 00분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4시 00분
도청 주변이 완전포위되었고, 금남로에서는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4시 10분
계엄군 특공대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에게 사격을 계시했다.
5시 10분
계엄군이 도총을 비롯한 시내전역을 장악하고 진압잔전을 종료했다.
6시 00분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방송했다.
7시 00분
공수부대가 20사단 병력에게 도총을 인계했다.
8시 5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다시 개통되었다.

 

5.18 항쟁당시 165명 사망.
5.18 항쟁 이후 약 376명 사망.
사망자들 평균연령 27.5세.
고등학생 11명
중학생 6명
초등학생 2명


외면하지 마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27년 전 그날의 역사입니다.


2007년 1월 28일, 경상남도 합천군의 군민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황강변 "새천년 생명의 숲"의 새로운 명칭을 "일해공원"으로 확정했다.
日海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아호이다.

믿으세요....
바로 지금 우리의 역사입니다.

 

뱀꼬리 : 일해공원에 관련된 사항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습니다. 군민들의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벌인 적도 없다더군요. 군수의 단독행동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는군요.  과연 합천군수의 뇌구조는 어떤 몰골을 하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궁금증에 합청군청의 군수 프로필을 봤습니다. 존경하는 인물항목에서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박여사는 든든한 원군이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출처를 빼먹었어요..^^ 지식체널 e 라는 책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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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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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그 아픔이 가슴에 통증을 일으킬 정도로 크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든.
그래서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상처가 왜 낫지 않고 계속 곪는지 알 수 있다면.
아픔 따위 두려워 할 순 없지.
 

나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연한 자에게는
몰두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 좋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든 간에,
적어도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상황을 잊을 수도 있다.
그런 종류의 일로 나는 채린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이를테면 추리소설 같은 것.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살해될 확률보다
아는 사람,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죽을 확률이 더 높다.
사랑은 잔인하다.

- 본문 222~223쪽에서

 

 

- 백수생활백서, 박주영.
((민음사 2006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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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아는 사람은 할 수 있는 것 -
상대의 영혼을 죽일 수 있다는 것.
 

2006.08.21 23:21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말로 해놓고 보면 역겨우리만큼 평범하다.
완전한 일반론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로서 몸 속에 느꼈던 것이다.
문진 속에도,
당구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네 개의 공 속에서도,
죽음은 존재해 있었다.

 

 

- 개똥벌레,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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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흔히들 '살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물' 도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동물이나 인간처럼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닐 뿐, 식물이 가만히 있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도 함께 있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쓸모없어졌다고 버려지는 모든 물건들에 애도를 표합니다.
'버림'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슬픈 일 아니겠습니까.

302moon 2007-05-1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글보다 더 끌리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비로그인 2007-05-16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엣, 별말씀을...(머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