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들>에서 저 대사가 한국어 자막에선
"여자는 마흔 넘으면 끝이야" 정도였던 듯. 영어 자막은: After 40, women are fit for the trash.
여자 나이.. 생각하니 여자 나이 서른, 마흔, 쉰을 비교하던 우디 앨런의 이 영화 생각 났다.
예전에 보고 무슨 기록을 남겼나 찾아보니, 이런 걸 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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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는 기분은 착잡할 거라고들 했지만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마흔이 되면 온힘을 탕진한 것 같을 거라고들 했지만
역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쉰이 되면 회복 불가의 상처를 입을 거라고들 했는데
.... 정말로 그래...."
이쯤 되는 대사가 등장한다. 지나 롤랜즈가 미아 패로우에게. 와인을 곁들인 점심을 같이 하면서.
"They say turning 30 is ...., and I ...." 이런 식 문장이 세 번 반복되는데, 앞의 서른에서 쓴 단어는 기억도 나지 않고 (전혀 강력하지 않은 단어였나보다), 마흔의 경우엔 "crushed" ("you will be crushed turning 40" 였나), 쉰의 경우엔 "traumatized"였다. 둘 다 번역으로 딱 좋은 우리말 표현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 이 영화 보면서 가장 마음을 잡아 끈 대사.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지만, 그에 놀라움이 계속 있긴 한데 동시에,
아무 생각 없기도 하다. 체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나이에 놀라며 인생을 반성하는 여유, 그게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 이 영화에서 지나 롤랜즈가 하는, 내가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을 살아온 것일까, 내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은 것일까. 같은 검토는 나도 오십세나 되어야 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어쨌든, 서른도 마흔도 남들 하던 말과 달리 아무 생각없이 넘겼지만
쉰은 다르더라.... 쉰은 정말 "trauma"더라............., 라고 나도 느낄 거 같다.
정말 이제 내 삶이, 끝을 향해 한 걸음이라고 느낄 거 같다. 지금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 영화도 베리만 영화 같은데, 촬영 감독이 베리만의 수많은 영화들을 촬영했던 스벤 닉비스트.
어떻게 발을 빼야할지 알 수 없게 깊은 허위와 기만의 삶을
오십세가 되어 눈 떠보니 그런 삶을 살고 있더라 ........ 하더라도,
그러나 지난 세월엔 진짜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기억들이
나에게 다시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될 평화로움을 준다.
는 메시지와 함께 끝난 영화였다.
러닝타임 88분. 짧은 데다가 굉장히 재미있어서, 크게 힘 안 들이면서 몰입해 볼 수 있다.
아이고. 그래도, 힘들다 힘들어. 오늘 또 김치를 세 통 (얼마나 많이 먹는지, 저번 세 통 담가서 3주도 못 간 거 같다), 담그느라 허리가 휘는 거 같았는데, 그러다 영화도 보자니 힘들긴 하다. 술 마시면 덜 힘들잖을까 유혹이 들었지만, 안 마시고 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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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은 정말 놀라운 느낌일 것 같긴 하다.
마흔은, 의외로 (이십대엔 마흔이란 나이가 올 거라고 믿을 수도 없지 않았나)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지 않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듯.
<다가오는 것들>에서
여혐의 표준 레퍼터리라고 해야 할 저런 대사가 나와서
사실 나온 순간 으잉? 뭐야? 왜 저런 대사를 하게 해? : 진지하게 고민했음.
아니 사실 더 고민 안긴 건 저 대사 전인데, 다른 여자가 생겼음을 말하는 남편에게 나탈리가
"왜 그걸 내게 말해? (....) 당신은 날 평생 사랑할 거라고 믿었어. 믿었던 내가 바보지." 이런 말할 때.
한국어 자막이 조금 놓치는 섬세함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평생 사랑할 거라고 믿는다"는 관념 자체가 문제적이라 주장하고 싶다.
으. 여기서 끝낼 포스트가 아닐 텐데 (무엇이 문제적이냐 써야 할텐데)
갑자기 아무 생각 없어지고 길이도 길어진 편이라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