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샘슨이 버지니아 울프에게 보낸 편지는 

"난 당신을 좋아한 적이 없고 아니 당신과 관련한 모두를 (블룸스베리를, 리튼 던컨 그 사람들을. 바네사가 그린 

당신 책의 야수파 표지들을. 당신의 사색하는 듯한 표정을...) 싫어했다. 문학 전반에서, 그리고 특히 영문학에서

무엇이 잘못인가를 보려면 당신을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로 시작한다. 물론 '회개' 혹은 '개종'한 자의 편지이긴 해서 

그가 작가들에게 보낸 편지들 중 편지의 끝에서 본다면 진심의, 가장 깊은 존경은 울프에게 보내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든 좀 격하고 자세하게 울프와 울프가 대변하는 문학정신 이것에 대한 (그만의 것이 아닐) 반감을 말함. 


그러고 이어지는 말은 

"어쩌면 나는 당신에게서 이 점을 질투했던 것 같다. 

우리 중 누구라도, 예술에 전적으로 헌신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광적이며 강박적이고 기삐하며 비참한 존재, 그런 존재가 되어도 좋다는 허락을 당신이 자신에게 줄 수 있었다는 점. 아니 당신 가족 당신 친구 그리고 당신 남편이 당신이 그런 존재가 되게끔 허락했다는 점. I think I was simply jealous of the fact that you had somehow granted yourself the permission, or were granted permission by your family, by friends, and in particular of course by your devoted husband Leonard, to be the fanatical, obsessive, joyous, miserable being that we all become when we devote ourselves wholly to art." 


우리 모두가, 예술에 헌신한다면 그렇게 되는 

fanatical, obsessive, joyous, miserable being. 

이것, 당장 지금 그렇게 되어보고 싶어지지 않는지. 예술이 아니라도, 집중하고 해야 하는 일을 

그런 존재이면서 하고 싶어지지 않는지. 



*울프와 아도르노가 완전히 일치, 공명하는 지점이 저 말에 있다: "생각이 나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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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직이다고 느꼈던 사례와 이유"가 토론 주제일 때. 

상상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식스핏언더 1시즌 1에피에서 장례식 장면. 

여자 노인의 장례식인데, 남자 노인이 조문을 온다. 그가 고인의 가족일 걸로 짐작하면서 

데이빗이 고인의 관 앞에 서 있는 그 남자 노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말을 하는데, 골똘히 관 속의 

고인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 노인이 하는 말은 


"이 우주에 정의가 있다면, 당신은 지옥에서 똥삽질을 하게 될 거야. 

If there's justice in the universe, you'll be shoveling shit in hell." 

 

고인과 이 노인의 관계는 말해지지 않는다. 고인의 전남편일 수도 아니면 1시즌의 중요한 내용이었던 

루스의 혼외관계.... 그것과 나란히, 고인의 애인이었을 수도. 마치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명복을 비는 것처럼 

맑은 눈으로 골똘히 고인을 보고 있지만, 속마음은 간결하고 정당한 저주.... 나는 완전히 깊이 공감했었다. 내가 똑같은 상황에 있어봤기 때문이 아니라, 내 경험을 확장하면 귀결할 지점으로. 


의외로 이것도 재미있는 주제일 수 있을 것 같고 적어둘 수 있는 다른 사례들도 생각하고 적어두고 싶어진다. 

식스핏언더에 수많은 예들이 있는데, 사실 인물들부터가 그렇다. 네이트. 네이트도 사실 초유의 인물. 브렌다는 말할 것도 없고. 


아래 포스트를 쓰고 보니 

어떤 사람들에겐 그게 내 수업의 학생들을 저평가 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이 서재가, 방문자수..... 매우 적은 서재죠. ㅎㅎ 그렇. 저평가가 있다면 조국의 저평가. 

사온 맥주를 호로록 호로록 다 마셨으니 이제 쿨쿨.. 잘 시간. 낼부턴 정말, 서재질좀 작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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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정직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심지어 미덕이라는 건, 

이 여론의 시대에는 금지되는 사적 견해에 속한다." 


세상에 정직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심지어 미덕이라는 걸... 까지만 기억하던 니체 문장 

Nietzsche, honesty로 검색하니 바로 찾아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곤경의 예로 이것 실감한 적 있다. 수업에서 정직의 미덕이 주제였을 때. 

심지어 우리에겐 정직의 개념도 (공허하게 말고는) 없지 않나는 생각이 들기까지. 정직? 세상에 그런 게 있나요? 정말, 정직은 인생에 거의 아무 도움 안된다로 의견 통일. 있어봤자 즐겁지도 이득되지도 않는 무엇. '자신에게 혹은 사태에 진실하기, 진실하려는 경향 혹은 노력' 이 정도 뜻으로 생각해본다 해도, 그 "자신"이 우리에겐 인식이나 계발의 대상 아님. 자기계발이 산업임에도. 


아마 이 주제는, 예를 들어 미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주제일 듯.  

당연히 미국에도 기만자, 자기기만자들 천지지만 그렇긴 한데 "정직이란 것이 있으며 그것이 심지어 미덕이다" 정도는 어디서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그렇다고 할 사람들이 어디에나 많을 것이다. 


우리의 반지성주의는 이것과 결합하지 않나? 정직이 가치가, 실체가 아니라서 정확한 인식이 어렵고 

정확한 인식이 드물다보니 아무거나 되는대로 말하고 믿기. 내가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기. 아무거나 

되는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정확한 인식은 한층 더 어려워지고. 


하이고 어쨌든, 지난 주 수요일 (그러게 벌써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트럼프 당선 후 

충격 속에서, 쓰던 페이퍼 작파하고 .......... 거의 매일 많인 아니어도 맥주 마시고. 그러던 나는 조금 전 

집회에서 귀가하다가 신촌역에서 팔던 4천원짜리 수면바지를 입고 맥주를 사러 나갔다 왔는데, 수면바지가 어찌나 

보송보송하고 따뜻한지. 그게 행복했다. 4도여도 갑자기 낮아진 기온이라 추울 때, 보송보송 따뜻하게 감싸주는 수면바지. 


일주일 지나니 트럼프 대통령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지고 

다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잘 쓰면서 페이퍼도 더 쓰고.. 공부 열심히 해야겠단 다짐을 하게 되지만 

현실은, 수면바지 입고 맥주사러 가기. 서재에 폭포스팅하기. 내일은 아닐 것임. 내일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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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1-16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리 사회는 정직이란 말, 개념이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미국은 그래도 정직의 가치를 사회가 중요시하는 것 같지만요. 저만 해도 뒤돌아 보면 부끄러운 일이 많네요. 일제와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가치가 많이 전도되었다는 말에 공감이 됩니다.

몰리 2016-11-16 18:10   좋아요 0 | URL
오늘 한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교훈에 ˝정직˝이 있었는데 학교 비리 추적하던 학생들을 부당하게 처벌했던 일 기억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흔히 듣는 유형 얘기인데도, 시국 때문인지 좀 과하게 (속으로) 반응하면서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숨). professional integrity, artistic integrity, 이런 말에서 integrity에 해당할 한국어가 마땅치 않은 것도 이런 사정을 보여준단 생각 들고요. 사실 미국에는 integrity의 면에서 모범인 사람들이 어떤 조직에든 반드시 있었고 있는 것 같거든요. 한국에선, 예외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blueyonder 2016-11-17 17:06   좋아요 0 | URL
네 동감합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이언 샘슨이 편지를 쓴 작가 중 조너선 스위프트. 

스위프트 하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으로, 무엇보다 그의 정직함을 말했다. 

"당신은 가혹하고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상 누구도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을 미워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 


And nobody likes an honest man. 

이것도 여러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 아닌가. 

And nobody likes a dishonest man. 정반대 뜻으로 써도, 거의 같은 정도로 강력하게 맞는 말이지 않나. 

정직해도 싫어하고 부정직해도 싫어해. 정직의 척도에서, 가장 많이 '좋아요' 되는 지점은 어느 지점일까. 


"스위프트는 천재적으로 정직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풍자를 천재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의 풍자는 지금도 우리를 놀라고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 시대의 풍자 작가들은, 문학 제도(기관)의 일부임을 기억하라. 그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불편하기는커녕 편안하고 즐겁게 만든다. 이들에게 문학은 사교술에 속한다. 애호를 획득하는 수단이다. 

스위프트에게, 문학으로 그 누구든 즐겁게 할 의도가 없었다. 그에게 문학은 인기 컨테스트가 아니었다." : 이언 샘슨이 스위프트에 대해 하는 마지막 말들.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이 말 놓고, 

문학에서 혹은 영화에서 TV물에서 '이것이 정직이다' 생각했던 경우와 이유. 이런 걸 언제 수업에서 토론 주제로 써도 좋지 않을까는 생각도 듬. 식스핏언더의 몇 장면과 대사들을 먼저 생각해 보았다. 


스위프트가 한 말로 검색되는 건 뭐가 있나 봤더니 위의 말. 

"그가 이성으로 들어가지 않은 그것에서, 이성의 힘으로 그를 빼내올 수는 없다." 

아 이것도, '번역 컨테스트' 있다면 낼만한 짧은 문장이겠다. 근데 아니 이거 ㅂㄱㄴ 씨 얘기잖아. ㅋㅋㅋㅋㅋ (웃음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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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것들>에서 저 대사가 한국어 자막에선 

"여자는 마흔 넘으면 끝이야" 정도였던 듯. 영어 자막은: After 40, women are fit for the trash. 


여자 나이.. 생각하니 여자 나이 서른, 마흔, 쉰을 비교하던 우디 앨런의 이 영화 생각 났다. 

예전에 보고 무슨 기록을 남겼나 찾아보니, 이런 걸 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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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는 기분은 착잡할 거라고들 했지만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마흔이 되면 온힘을 탕진한 것 같을 거라고들 했지만

역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쉰이 되면 회복 불가의 상처를 입을 거라고들 했는데

.... 정말로 그래...."

 

이쯤 되는 대사가 등장한다. 지나 롤랜즈가 미아 패로우에게. 와인을 곁들인 점심을 같이 하면서.

"They say turning 30 is ...., and I ...." 이런 식 문장이 세 번 반복되는데, 앞의 서른에서 쓴 단어는 기억도 나지 않고 (전혀 강력하지 않은 단어였나보다), 마흔의 경우엔 "crushed" ("you will be crushed turning 40" 였나), 쉰의 경우엔 "traumatized"였다. 둘 다 번역으로 딱 좋은 우리말 표현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 이 영화 보면서 가장 마음을 잡아 끈 대사.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지만, 그에 놀라움이 계속 있긴 한데 동시에,

아무 생각 없기도 하다. 체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나이에 놀라며 인생을 반성하는 여유, 그게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 이 영화에서 지나 롤랜즈가 하는, 내가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을 살아온 것일까, 내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은 것일까. 같은 검토는 나도 오십세나 되어야 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어쨌든, 서른도 마흔도 남들 하던 말과 달리 아무 생각없이 넘겼지만

쉰은 다르더라.... 쉰은 정말 "trauma"더라............., 라고 나도 느낄 거 같다. 

정말 이제 내 삶이, 끝을 향해 한 걸음이라고 느낄 거 같다. 지금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 영화도 베리만 영화 같은데, 촬영 감독이 베리만의 수많은 영화들을 촬영했던 스벤 닉비스트.


어떻게 발을 빼야할지 알 수 없게 깊은 허위와 기만의 삶을

오십세가 되어 눈 떠보니 그런 삶을 살고 있더라 ........ 하더라도,

그러나 지난 세월엔 진짜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기억들이

나에게 다시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될 평화로움을 준다.

 

는 메시지와 함께 끝난 영화였다.

러닝타임 88분. 짧은 데다가 굉장히 재미있어서, 크게 힘 안 들이면서 몰입해 볼 수 있다.

아이고. 그래도, 힘들다 힘들어. 오늘 또 김치를 세 통 (얼마나 많이 먹는지, 저번 세 통 담가서 3주도 못 간 거 같다), 담그느라 허리가 휘는 거 같았는데, 그러다 영화도 보자니 힘들긴 하다. 술 마시면 덜 힘들잖을까 유혹이 들었지만, 안 마시고 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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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은 정말 놀라운 느낌일 것 같긴 하다. 

마흔은, 의외로 (이십대엔 마흔이란 나이가 올 거라고 믿을 수도 없지 않았나)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지 않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듯. 


<다가오는 것들>에서 

여혐의 표준 레퍼터리라고 해야 할 저런 대사가 나와서 

사실 나온 순간 으잉? 뭐야? 왜 저런 대사를 하게 해? : 진지하게 고민했음. 

아니 사실 더 고민 안긴 건 저 대사 전인데, 다른 여자가 생겼음을 말하는 남편에게 나탈리가 

"왜 그걸 내게 말해? (....) 당신은 날 평생 사랑할 거라고 믿었어. 믿었던 내가 바보지." 이런 말할 때. 

한국어 자막이 조금 놓치는 섬세함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평생 사랑할 거라고 믿는다"는 관념 자체가 문제적이라 주장하고 싶다. 


으. 여기서 끝낼 포스트가 아닐 텐데 (무엇이 문제적이냐 써야 할텐데) 

갑자기 아무 생각 없어지고 길이도 길어진 편이라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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