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문명이 고통스럽게 계발했던, 아내와 자식을 향한 책임이 파시즘 내에서 시드는데 

개인이 계속해 규제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며, 어찌 되었든 양심이 청산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독일의 내면성의 사도들이 내놓았던 이념들과 반대로, 양심은 자아의 바깥에 있는 실체적 무엇에 대한 자아의 헌신으로 성립한다. 양심은, 타인이 갖는 진정한 근심을 자기 것으로 삼는 능력이다. 이 능력엔, 감수성과 상상력의 상호 침투로서의 반성이 포함된다. 거대 산업에 의해 독립적 경제 주체가 폐기되고, 이에 따라 도덕적 결정의 토대가 무책임하게 와해되고 있으며, 반성 또한 시들 수밖에 없다. 영혼, 죄가 자신을 인식할 가능성으로서의 영혼이 부패한다. 


*영어 구절을 같이 보는 게 좋겠을 대목들: 


어찌 되었든 양심이 청산된다 : conscience is being liquidated in any case 

양심은 자아의 바깥에 있는 실체적 무엇에 대한 자아의 헌신으로 성립한다 : conscience consisted in the self's devotion to something substantial outside itself 


양심은, 타인이 갖는 진정한 근심을 자기 것으로 삼는 능력이다 : [conscience consists] in the ability to make the true concerns of others one's own 


감수성과 상상력의 상호침투로서의 반성 : reflection as an interpenetration of receptivity and imagination 

영혼, 죄가 자신을 인식할 가능성으로서의 영혼이 부패한다 : The soul, as the possibility of guilt aware of itself, decays 


<계몽의 변증법>에서 "영혼, 그것은 죄의식" 이 놀라운 주장 

맥락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다. <반유태주의의 요소들>에서 6번 섹션에 나오고 영어판에서 164쪽이다. 

정확히는 위와 같은 문장이었다. 영혼, 죄가 자신을 인식할 가능성. 


양심이 청산되고 영혼이 부패한 인간들만 고위공직에 있는 나라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ㅜㅜ 

그들에 맞서, 그들을 말할 언어를 이렇게 조금이라도 확보했다. 장하... 지는 않지만. 어쨌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부랴부랴 쓴 오늘 저녁의 포스트. 이 정도면 서재질 아주 열심히 하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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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가 주제인 말들은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짐 모리슨의 위의 말 발견. (혹시 그의 노래 가사인가?) 

끝의 Whenever you interact with people, don't be there primarily as a function or a role, but as the field of conscious presence. You can only lose something that you have, but you cannot lose something that you are. 여기 60년대 정신 있는 것 같다. "presence" 이 말을 좀 강한 의미로 쓰기도 하던데 ("강렬하게 존재함" 같은 의미로. 그래서 "매혹"의 의미로), 그런 용법도 어쩌면 60년대의 유산인지도. 


80년대가 우리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은 무엇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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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S American Experience 시리즈에서 제작한 

67년, Summer of Love 다룬 에피소드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다. 


American Pastoral 영화화되고 개봉하면서 50년대, 60년대도 재고하는 분위기인 것 같던데

(로스의 원작이나 맥그리거의 영화나, 50년대는 순수와 번영의 시대, 60년대는 급진주의가 사회적 희망이던 시대.. 라는 관념을 반성하는 내용이라 짐작되고) 이 영화, 로스 원작을 시나리오 각색한 작가 존 로마노는 특히 아주 강력하게 (부글부글 화난 목소리로) "플라워 칠드런, 평화와 사랑, 록음악과 마약의 낭만 같은 60년대 후반에 대한 상투화된 기억은 다 틀렸다" 같은 얘기도 했다. 사람들이 60년대로 기억하는 어디에나, 미국의 추악함이 (누구도, 지금까지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있었다. 


위의 American Experience 에피소드는 

전체적으론 67년 샌프란시스코 "사랑의 여름"만이 아니라 60년대 전체가 미국의 삶을 어떻게 변모시켰나 보는 내용이고 

당연히, 60년대의 유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60년대의 아이들(이제 노인들)이 우르르 나와서, 자부심에 차 회고하는 장면들도 많고. 그렇긴 한데, 평화와 사랑, 이상주의가 60년대의 전부였다 식은 전혀 아니고 그 시대의 아픔, 그리고 그 시대가 남긴 아픔 이런 것 정직하게 정면으로 보는 대목들도 꽤 있다. 그래서, 존 로마노의 분노한 "제대로 봅시다"는 좀 (어쨌든 미국에서, 이전 시대의 재평가는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트럼프 당선이 안긴 충격과 닿아 있는 흥분인 듯. 


오늘 박근혜 씨와 관련해 일어난 일들, 들은 말들이 

간절히 맥주 마시고 싶어지게 하는 저녁 7시. 두 캔 정도는 마셔도 내일 생활.... 에 무리가 없긴 하겠지만.  

안된다 vs. 마셔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이다. 


이것도 토론 주제로 쓸 때 있다. PBS의 American Experience 연작 다큐멘터리와 비슷하게 

우리도 <한국의 경험> 연작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내가 보고 싶은 에피소드와 이유.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근접하나. 하긴 만든다면, 거의 모든 에피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요소가 있어야만 할 것 같기도. 




*그러고 보니 과거의 유산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이러는 열의에서 

미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누군가는 그런 작업을 하겠지만 고립된 작업이거나 '발퀄'이거나 ; 

아무튼 사회 전반적으로, 과거와 착잡한("troubled") 관계만이 있었지 않나. 


미국이 가진 자산엔 지식인들도 있다. 대학만이 아니고 출판계나 기타. 그리고 약한 의미에서, 지적인 

관심 및 추구가 있고 '정신의 삶'을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은 아마 '딥레드' 스테이트의 인구 3천 미만인 곳에서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곳 제외하면 어디에든 있을 거라 짐작한다. 아마존의 독자 리뷰들만 보아도 알아지는 그것. 


12년 대선 때, 한국에서는 대학교수들도 다수가 박을 지지한다, 심지어 인문학 전공 교수들도 그녀 지지한다. 전체로 보면 7-80 퍼센트가 박을 지지한다고 보겠다.. 이런 얘기를 선배에게서 들은 적 있다. 혹시 통계로 확인 가능한가? 들으면서 경악했고 사실 지금도, 지금까지도 못 믿겠는 심정. 만일 사실이라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이상한 ("fucked up") 한국적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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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원작 American Pastoral이 

이완 맥그리거 감독, 출연으로 영화화되었고 미국 영국에서는 이번 주 개봉을 했거나 할 예정인가 보았다.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인 것 같지는 않고 (혹은 명목적으로만 주연), 그의 딸로 출연한다는 다코타 패닝이 주연인 듯. 

맥그리거는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인물(all-American golden boy 였다가, 성공한 사업가, 아름다운 부인, 사랑스러운 딸)인데, 그에게 일어나는 역사의 비극, 운명의 장난이 내용인 듯. 그 비극, 장난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딸이 베트남전 시기 급진화되면서 

미국의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되는 일. 다코타 패닝의 연기가 압도적이라고 벌써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음. 


트럼프 당선 이후 이 방송 저 방송에서 

"지금이야말로..." 취지로 결의를, 투지를 다지던데 

이 영화를 놓고도 LARB에서도, BBC Radio3에서도 같은 방향 인터뷰와 논평들을 하고 있었다. 

기이하지만 시의적절함. 미국의 이상을 재고할 때. BBC Radio3에서, 미국 출신이고 지금 런던 대학에서 미국문학 가르치는 사라 처치웰과 인터뷰한 걸 들었는데, 인터뷰에서 아래 대목 옮겨오고 싶어졌다. 처치웰은 Entitled Opinions에도 출연해서 <위대한 개츠비> 주제로 한 시간 얘기한 적 있다. 말이 굉장히 (정말, 굉장히) 빠르고, 빠르면서 문어체다. 그 내용이 대단히 아주 알맹이 있는 쪽은 아님에도, 말솜씨 자체로 (그것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감전되는, 그런 느낌 든다. 아래 그녀 말 한 문단, 이거 말하는데 40초도 걸리지 않음. 외모가, 극우 논평가 앤 쿨터 조금 연상시킴. "트럼프는 <개츠비>를 읽었고 이해 못했을 것이다"는 마지막 문장. 좋지 않나. (아무리 상대가 트럼프라 해도) 그런 말 싫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좋다. 







BBC: The American Dream has entered, let's say, a new phase this week, and the nature of that phase will be different to different people. But, if you are able to recommend a book for the new American president Donald Trump, what would you pass to him, as an American citizen yourself? 


(이 주, 아메리칸 드림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그 단계의 본질이 무어냐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미국의 새 대통령 트럼프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할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Sarah Churchwell: Yeah. Well, this will be predicated on the way that he would understand the book I gave him, which I can't say that I have any great faith in. And I'm not making jokes about him being moronic, I'm making jokes, or not jokes, making a pointed comment about demonstrable unwillingness to learn. The only lesson he seems to want to take from things are the lessons that he already believes, whatever message he wants to hear. I'd be tempted to give him The Great Gatsby because I think it is a great story about how America can go wrong. I think that Jay Gatsby is a cautionary tale for exactly the kind of person Donald Trump is turning into, or Jay Gatsby could have turned into. But I wonder how successful this kind of thought experiment is with somebody who, as I say, doesn't do a lot of thinking on the evidence. But I guess, uh well, he's probably read Gatsby and not understood it. 


(이건 내가 줄 책을 그가 이해할 것이냐에 달려 있는 문제긴 한데, 그가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이 내겐 없다고 일단 말해야겠다. 이건 그의 멍청함에 대한 농담이 아니고 그가 보여주는, 입중 가능한 학습 의지의 부재에 대한 농담, 아니 일침이다. 그는 그가 이미 믿고 있는 교훈, 그가 듣고 싶은 메시지만을 받고 싶어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그에게 주고 싶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미국이 어떻게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되려고 하는 인물, 개츠비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 정확히 그런 인물에게 줄 수 있는 경고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증거를 놓고도 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사고 실험이 무얼 보여줄 수 있나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이미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고 이해 못햇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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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어 루스벨트에 대해 마릴린 얄롬이 해준 얘기 중엔 

그녀가 독서 모임을 운영했던 일, 영부인 시절 친구와 3주간 미국 로드트립을 했던 일("상상할 수 있겠어요? 미국의 영부인이 여자친구와 둘이, 차를 몰고 로드트립 한다는 걸?")이 있다. 


얄롬 얘길 들으면서도 엘리노어, 더 알아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그럴 기회가 (시간이) 없었다. 

사실 정규직............. 되기 전엔 없을 듯. 이게, 그래서 평생 없게 되고 마는 일이 일어나선 안되겠는데. 


그녀의 말들 찾아보니 

분명 몽테뉴를 읽은 것 같다. 내가 몽테뉴를 읽지 않았어도 몽테뉴를 읽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음은 

허세인가. 바로 위의 말도, 몽테뉴의 영향이 있는 말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이 되는 것은 너의 권리일 뿐 아니라 

너의 의무다. Remember always that you not only have the right to be an individual, you have an obligation to be one." 이런 말도 어쩌면 19세기 미국 사상가들 누군가 했던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몽테뉴를 생각하면서 했던 말일 수도. 


"멈추어 널 두렵게 하는 것을 정면으로 보라." : 이 조언은 

정신의 삶,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두려워 차마 품지 못했던 생각이나 쓰지 못했던 문장. 그런 거 있지 않나? 특히 한국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 아닌가. 아무튼 


그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문장을 쓰지 않더라도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보기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싶다. 




*채점은 정말 고되고 네버 엔딩. 

잠시 걷다 와서 더 하고 <그것이 알고싶다>를 봐야겠는데 

9시면 자는 내게 11시는 좀 멀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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