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들>에서 나탈리 부부의 서가가 이혼하기 전. 

<서재 결혼시키기> 이 책에서, 결혼과 함께 부부가 하게 되는 서재도 결혼시키기를 격하게 감동할 만한 일로 

쓰지 않았던가. 아닌가. 양가적이었나. 이것도 지금은 없는 책이라 당장 확인할 수는 없는데 기억하기론, 바로 그래서 

나는, 에이 그건 아니지 했던 것 같음. 책들도 지극히 사적, 개인적인 물건이어서 개인 소장인 책들은 은밀하게 자기들끼리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나. 이별 선고 후 남편이 자기 책들 빼간 다음 나탈리가 


내가 노트도 많이 했던 레비나스도 가져갔어. 

아니 부버도 가져갔네? 


이럴 때, 집이 좁아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둘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면 

절대로, 더더구나 '애독'했던 책이면, 내 책이 아닌 책들 사이에 두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 들 만하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그 점에서 예민한 사람에겐, 조금 공포스웠을 수도. 

원래 남편 책을 자기 책처럼 보았던 마음대로 보았던 거면, 남편의 입장에서. 





결말에서 나탈리의 딸, 아들과 뒷편의 서가. 남편 책 빠지면서 비었던 공간이 나름 채워진 다음. 

딸, 아들이 들고 있는 얇은 책이, 파비안이 딸이 낳은 아기 선물로 보낸 어린이를 위한 철학 책들. 

아들이 "철학 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하면서 웃는 장면. 




파비안과 근황을 나누고 공원을 산책함. 산책하면서 나탈리는 파비안에게 이런 얘길 한다. 


여자는 마흔을 넘기면 끝이야. 

마흔을 넘기고도 사랑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영화에서나 일어나. 

(...) 심각한 건 아냐. 내 인생이 끝난 것도 아냐. 

사실 내면 깊은 곳에서, 지금 상황에 준비가 되어 있었어. 

날 동정할 필요는 없어. 지적으로 충족될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그것이면 충분히 행복해. (I'm lucky to be intellectually fulfilled. It's enough to be happy). 


파비안은 "What wisdom"이라며 지지. 여기 이 두 문장, I'm lucky to be intellectually fulfilled. It's enough to be happy. 이 두 문장 놓고 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어쨌든 "지적인 충족이면, 족하다"는 적지 않은 경우 진실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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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의 삶 전부를 보는 예민한 시각과 감정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린 풀이 자라는 소리와 다람쥐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고요의 너머에 있는 그 굉음 때문에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bbc radio3 문학 팟캐스트에서 이언 샘슨이 연재하는 

죽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편지들 중 조지 엘리엇 편. Middlemarch에서 위의 대목을 인용한다. 

"문학 밈이 되어버린 구절" "냉장고 자석용 인용구"라면서.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과연 그런 듯. 

그런데 저 대목에 이어지는 짧은 한 문장까지 (구텐베르크에서 검색하니 이 문장으로 문단이 끝난다)

담고 있는 이미지는 찾아지지 않는다. 이 문장까지 포함하면, "냉장고 자석용 인용구"로는 조금 부적절. 


"현실은, 우리 중 가장 영리한 이들도 멍청함을 두툼하게 껴입고 돌아다닌다.

As it is, the quickest of us walk about well wadded with stupidity." 


나보다 연상이며 혼자 사시는 여자 선생님 댁에 

주말 오후에 방문해서 내가 읽어간 한 챕터에 대해 얘기하고 듣기.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이다 Middlemarch. 

소설을 (책을) 잘 읽고 집중해서 생각, 상상하고 논의하기. 이런 것이 '정신의 삶'에 불가결하다는 믿음. 그런 

믿음이 있는 선생님. 지치지 않고 책의 전부를, 이미 읽고 얘기한 장들이든 아직 그러지 않은 장들이든 inside out, 

upside down,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즐거워하는 선생님. 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그런 선생님과. 그런 샘을 만날 

기회는 이제 영영 없을 것 같으니, 그렇게 읽는다면 어떨까 할 수 있는 한 상상하면서 (내가 1인 2역 ㅋㅋㅋㅋㅋㅋ) 

혼자서라도 읽어야할 책이라고 결정함. 


샘슨에 따르면, 엘리엇이 남긴 편지는 무려 9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아래 이미지는 7권). 

편지까지야. 조지 엘리엇의 편지까지 읽고 싶어지기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데 편지까지도 

자기 전부를 들여서 (장난으로, 장난 삼아 쓰더라도) 썼던 사람들의 편지에 있는 그.. 직접적인 위안력? 

"(타인의) 영혼이 자신과 나누는 내밀한 대화, 이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바슐라르가 감탄했다는 이 말. 

내밀해지는 개인. 그런 개인을 보는 게, 그 자체로 구원일 때 있지 않나. 암튼 편지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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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읽은 아일랜드에 관한 작은 책에 

1916년 부활절 봉기와 패트릭 피어스에 관한 대목이 있다. 

수업 준비하면서 그 책 처음 읽던 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는데 

그 대목에서 예상치 않게 눈물이 줄줄. ㅜㅜ 그러니까 이 분도, 그냥 이 분 얘기를 (영어 초중급 학습자용 

둔하고 짤막한 말이라도) 하기만 하면 감동 보장. 그런 분인가 봄. 


멋있는 분 아니십니까. 꼿꼿하게 사셨던 분. 

억압 앞에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분. 


그 점, "꼿꼿하게" 이걸 늘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진 것 같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싸움을 포기함이 지는 것이다. 

싸움은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의 약속을 지켰고 

미래에게 전통을 전해 주었다." 구글 검색하니 나오는 그의 이런 말도

감동적. 특히 마지막 문장. "우리는 과거와의 약속을 지켰고 미래에게 전통을 물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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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지화면은 별로 땡기지 않을 듯한데 

실제론 여러 장면 매혹적이고 특히 나레이션이 기가 막힌 bbc 제작 프랑스 혁명 다큐멘터리. 

제목으로도 말하고 있지만,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에 두고 프랑스 혁명을 보는 내용이다. 시작할 때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A provincial lawyer from Arras, he had been destined to a life of obscurity until 1789 when he was propelled into the storm center of the greatest event in history since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the French Revolution. The revolutionaries challenged the might and arrogance of the French court at Versailles. They executed their king and created a republic. Their watchwords were Liberty, Equality, and the Rights of Men. 


(아라스 출신 시골 변호사로 평생 무명 속에 살았을 그는 1789년, 로마 제국 몰락 이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 프랑스 혁명, 그 폭풍의 중심으로 밀려 들어갔다. 혁명가들은 베르사이유 왕궁의 권력과 오만에 도전했다. 그들은 왕을 처형했고 공화국을 창조했다. 그들의 구호는, 자유, 평등, 인간의 권리였다.) 


장면, 음악, 나레이션이 

Twin Peaks 강력히 연상시킨다. (Twin Peaks, 이것 90년대 초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 위대한 작품 아닙니까). 

전체주의적 국가 폭력.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우리가 극복해야 할 부정적 유산이게 한다. 이런 입장인 Simon Schama와 그 정반대 입장에서 로베스피에르의 급진주의를 칭송하는 지젝과.. 두 사람이 중요하게 출연한다. 


그런데 둘 다 맞고 틀리지 않는지. 혁명의 유산, 그 전모에 대해선 

깊이 분열되고 모순되거나 양가적인 반응이 합당한 반응 아닌가 한다. ("이것이 너희가 말한 자유와 평등이냐, 이 

두발로 걷는 파리의 야수들아?" 영국의 한 신문이 9월 학살에서 파리 시민들의 악마적 살해, 강간 등등 앞에서 했다는 절규. 그 신문도 이해되고 파리의 야수들도 이해되는........) 


로베스피에르의 아래의 말을 보면 

정말 양가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런 말에, 긍정을 환호를 어찌 안할 수 있음. 그게 다는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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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그렇지 않나. 

한국에서, 이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상으로 (윗사람을 위해) 하는 일. 

한 번은 수업에서 이런 얘길 하다가 (우리가 대화 무능인 이유 중 하나로), 한국에 돌아와서 

놀라며 체험했던 것 하나는 내가 상대의 말을 잘 들으면 어느 순간 상대에게 내가 얕보이는 일이라는 말을 했더니 

즉각 공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긴 하다. 그리고, 심지어 대학생들도 겪는 일. 


소통, 대화 능력에서 모범인, 조직의 수장. 

그런 사람 과연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이해 못함, 이해 않음이 권리면 (그도 윗사람을 향해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아랫사람에겐 일관되게)

관계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점점 더 멍청해지게 되어 있지 않나? 그래서, 무능이 권리고 유세게 되지 않나? 


오늘 수업에서 다시 한 번 

우리가 대화 무능인 이유.. 가 주제 중 하나였고 저렇게 세밀한 얘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잘 말하고 잘 듣기..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하자. 결론. 



*위 이미지는 슈피겔 지와 아도르노가 했던 인터뷰의 첫 대화. 웹에서 영어 번역이 구해진다. 

SPIEGEL: Professor Adorno, two weeks ago, the world still seemed in order. . .

ADORNO: Not to me.


이 짧은 두 마디론 아도르노의 '부정' 정신이 조금 보일 따름이겠지만 

아도르노가 다른 사람들과 한 대화로 기록되어 있는 것들 보면, (당연하지만) 잘 듣고 잘 말하셨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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