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교향곡 4부작의 4부에서 

아론 콥랜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영국은 수세기에 걸쳐 "음악이 없는 나라 land without music"라 불리었지만 

미국은 음악이 "아직" 없는 나라... 미국적 음악을 만든 미국 작곡가들은 

20세기에 나오게 되는데 그 중 누구보다 아론 콥랜드. 


말년에 그는 

뉴욕시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은둔자처럼 살 수 있는 시골에 집을 지었고 

실제로 그 집에서 은둔자처럼 살았다. 모더니즘 양식이 어느 정도 보이는 집이고 

초라한 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그의 삶에서 보여준 절제, 검박함이 드러나는 집이다. 

(.....)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조금 찾아보니 그가 살았던 집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이나 보았다. 





아슈케나지와 그의 스위스 집이 

나오는 다큐가 있었는데 아슈케나지의 집은 

............ 아 저기서 그처럼 피아노 칠 수 있으면서 산다면 

매일 초월의 체험이겠. 매일 현세를 떠나 저 너머로. 아니 현세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의 집도 넓은 창이 있었고 창밖은 그 그림같은 스위스 산들의 풍경이었다. 


뉴욕주 시골에 지었다는 콥랜드의 집은 

그에 비해 현실적인 집이라 느껴지긴 한다. 





이제는 이런 용도로도 쓰인다는 Coplan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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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방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피아노에서 음 하나가 울렸다고 상상하라. 그 음 하나로 당신 방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방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 -- 음악에서 음의 요소가 강력하고 신비로운 역할을 한다는 증거다. 

이걸 조롱하거나 폄하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 아론 콥랜드 


읽고 싶은 음악 책들이 

발견된다. 짧은 입문서고 audible에 오디오북이 있어서 

일단 오디오북으로 구입한 책이 있는데 
















For the love of music: the art of listening. 

저자가 직접 읽었다. 저자의 발음으로 그의 이름은, 마우체리. 

어제 발견한 책이고 어제 알게 된 저자인데 이미 긴 세월 유명한 지휘자, 유명한 음악인. 

책. 참 잘 쓰셨다.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언제나 이해 중이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해와 사랑을 온전히 전함. 허세 없고 왜곡 없음. 그런데 지적임. 이런 문장을 쓰는 이런 필자들, 뜻밖에 흔한 유형 아닌 저자들. 이런 감탄이 든다. 학부 전공으로 음악 이론을 공부했고 동시에 불문학 종교학 등등 인문학을 넓게 공부했나 보았다. 


아론 콥랜드의 위의 말을 책 제사로 쓰고 있다. 

리히터가 연주하는 피아노에 홀렸던 동안 

같은 생각 여러 번 들었다. 정말 어떻게 음 하나에 이 많은 것이 담기지? 

어떻게 음 하나가 이 많은 것을 바꾸지? 그러니 음의 연속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The rest is noise: listening to the 20th century로 유명한 알렉스 로스의 후속작. 

The rest is noise에서 20세기의 클래식 음악에 (재즈도 다루긴 하지만 클래식과 연계하여) 집중했던 그가 

이 책에서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이거 뭐라 불러야 함. 락이든 힙합이든 뭐든 "팝"으로 통칭?) 사이를 바삐 

오간다고 한다. 그는 뒤늦게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해서 모차르트에 탐닉하다 바로 라디오헤드로.

그러는 책이라고. 
















Counterpoint: A memoir of Bach and Mourning. 

어머니와 사별하던 동안 다시 발견하는 바흐. 그래서 바흐와 애도에 관한 회고록.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태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은 바흐가 아마 유일하다... 이런 내용이 

도입부에 나온다. 해변에서 여럿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에도, 산에 올라 혼자 산 아래를 명상할 때에도. 

공부할 때에도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청소를 할 때에도. 삶의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뜻밖에도 적합하고 필요한 

무엇을 주는 음악. 


리히터에 따르면 

바흐를 듣는 건 정신위생의 차원. 




 









Language of the spirit: an introduction to classical music. 

널리 호평받고 있는 2014년의 베토벤 전기 Beethoven: Anguish and Triumph 저자의 책이다. 

이것도 도입부만 보아도 좋은 책임을 모를 수 없다 생각했다. 

















알렉스 로스를 뛰어난 음악사, 문화사 저자로 알려지게 했다는 이 책. 

이건 이미 갖고 있었다. 막 전공서 느낌 그런 건 아니지만 논의가 본격적이라 (음악 용어나 음악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평균적 독자의 사정같은 것은 무시한다. 처음 몇 페이지 넘겨보기만 해도 용어와 고유명사들이 즐비한...) 이미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면 읽기 고생일 책으로 여기고 보관만 하다가 


꺼내와서 넘겨 보니

....... 좋은 책. 음악 찾아 들으면서 음악 책 읽다가 

철학 책 읽으면, 아 철학 책은 사실 고문의 부드러운 형태 같은 거구나. 이런 실감 든다. 

철학이나 문학연구 책을 읽으려 하면 형장으로 끌려가는 느낌 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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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스트라빈스키와 

64세 림스키-코르사코프. 그가 타계하던 해 1908년의 사진.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을 하고 싶어했지만 

그의 야심에 비해 재능이 부족하다 판단한 그의 부모는 그를 법대에 보낸다. 

법 공부를 하지는 않고 (4년간 50번쯤 수업에 갔을 거라 회고) 코르사코프의 막내 아들을 

대학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코르사코프를 숭배하던 스트라빈스키는 친구를 통해 코르사코프를 만나게 되며

그가 쓴 곡을 코르사코프에게 보여주지만 그 곡은 코르사코프에게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는다. 

작곡을 하고 싶다면 화성학과 대위법을 공부해야 해. 이것이 코르사코프의 조언이었다. 그의 격식있는 조언이었다. 

"음악? 네가?"로 번역해도 된다. Don't go away mad, kid. Just go away. 


스트라빈스키는 실제로 바로 본격 작곡 공부에 진입하고 

3년 후 다시 코르사코프를 만나 그의 곡을 보여주는데, 이 때 코르사코프는 경악했다. 

3년 동안 일어난 진보라 믿을 수 없을 엄청난 진보가 일어나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코르사코프의 

수제자가 된다. 





스트라빈스키와 코르사코프의 저 사진이 

이 Keeping Score 스트라빈스키 편에서 잘 쓰이고 있다. 

그가 이십대이던 시절이 있었고 그의 스승은 코르사코프였으며 

그것은 20세기의 처음 연대로서........... 이런 게 실감이 난다. 

<봄의 제전>은 진정 새롭고 혁명적인 음악이고 진정 러시아적 음악이기도 하다고 한다. 

드뷔시의 음악이 French language in action이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Russian language in action. 

아도르노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이 "훼손된 주체"의 음악이라고 <신음악의 철학> 이 책 도입부에서(아마 "서문"에서) 

바로 못박으시던데 스트라빈스키를 놓고 아도르노와 다른 음악학자들 사이 이견, 논쟁이 있을 거 같고 

아마 아도르노에게 러시아 음악에 대한 방어에 가까운 무엇인가 있을 거같다는 느낌 계속된다. 

















이 베토벤 전기. 

사도 읽을 시간 없고 읽지 않을 것이니 사지 않으려고 버티다 

오늘 주문했다. 그런데 쇼팽 전기도 그렇지 않고 리스트 전기도 그렇지 않은데 

이 전기는 매우 (거의 애타게....) 기다려진다. 아마존 리뷰는 전원 호평. 극호평. 

"나는 수백권의 전기를 읽은 전기 애독자다. 이 전기가 내가 읽은 전기 중 최고다." 


세 음악가들 전기를 다 올해 안에 읽는다면 좋겠다. 

아.................. 그러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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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o Dudamel은 베네주엘라 출신 

80년대생 아직은 젊은 지휘자고 특유의 오버액션이 유명한가 보았다. 

오늘 처음 본 이름. 이것저것 보다가 그가 <신세계 교향곡> 지휘하는 것도 보게 되었는데 

저 신들린듯함은 명지휘자다운 열정인지 아니면 쇼맨쉽인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내게 


그냥 웃겼음. 

그래서 웃다가 

댓글 보는데 

누가 이렇게 썼다. 


"두다멜, 교황 앞에서 악마들림 시전." 


이게 왜 이리 웃겼나 모름. 

시작할 때 교황 떨떠름한 표정이다. 

연주자들 중 웃음을 참는 듯한 이들도 있다. 




므라빈스키 다큐멘터리에 그의 아내도 꽤 많이 출연한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한다. "86년 페레스트로이카 당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격변이 기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고통(agony)이 러시아의 운명이다. 밀려드는 악의 물결에 저항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는 만족할 줄 아는 동물이 아니었다. 자기 음악에만 몰입하면서 다른 모두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를 잊지 않았다.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재산을 가지면 안돼. 모두를 잃는 게 어떤 건지 나는 1917년에 이미 체험했어. 다시 모두를 잃는 일은 겪을 수 없어. 오직 신이 우리에게 명하는 대로 살도록 하자."" 


다큐멘터리가 끝나기 직전에 그녀가 하던 말은 이런 거였다: 

그는 인생을 사랑했다. 우리가 들판으로 나가면 그는 밀밭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었다. 풀밭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그러면서 행복해 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차가움도 들었다. 시간이 녹이 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그가 말한 적이 있다. 시계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시간이 녹슨다고. 그는 실제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삶이 매순간 사라짐을 느낄만큼 민감한 사람이었다. 


풀밭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죽음의 차가움도 들으며 

삶이 사라지는 매순간을 감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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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음악에서 유지했던 고립주의, 국수주의와 

러시아 음악의 민족주의를 비슷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오류다. 

19세기 러시아 민족주의를 이끈 음악가들은 서구의 지배를 경계하고 그에 맞섰다. 

프랑스는, 자국 음악이 최고라는, 자기들보다 잘난 사람들이 바깥에 없다는 믿음으로 자기들 것을 옹호했다. 

프랑스 음악은 고립 속에서 진화했다. 그러니까 프랑스 음악은 캥거루 같은 것이다. 이게 프랑스 음악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다면 잠시 캥거루가 얼마나 특별하고 귀여운 동물인가 기억하기 바란다. 


20세기 음악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드뷔시 소개하기 전 

교수가 하던 말이 이런 거였다. 드뷔시는 이 경향 안에 있다. 그는 음악에서 프랑스 고립주의를 체현하는 

인물이고 그에게 바흐 1인 제외하고 독일 음악은 배울 것 없는 음악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드뷔시는 처신에서 여러 모로 미덥지 않은 사람이었고 

생전 다수 사람들에게서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그와의 삶이 고달프지만 그를 떠날 수도 없어서 (그를 사랑하기는 했으므로) 고통을 겪다가 자살을 시도하는데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한 드뷔시는 우선 그녀의 몸에서 돈이 될 모두를 찾아 제거한 다음 그녀를 병원으로 보냈다. 그녀는 몸은 마비되었으나 의식은 있던 상태에서 이 모두를 알았고 마침내 사랑에서 치유되었다. 퇴원 후 그녀는 그와 이혼했다. 그의 도덕적 결함에 대해 열거할 수 있는 일화들이 많다. 한 친구는, 그에게 윤리가 있다면 수코양이 정도의 윤리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수코양이의 윤리를 가진 그가 

천사같은 음악을 썼으니. 우리는 그의 천사같은 음악을 공부하도록 하자. 




천사같은 음악. 

여기 분명히 어떤 조롱이 담기게 말한다. 

조롱이 담긴 찬사. 그 찬사가 유보 없는 찬사임에도 동시에 어김없이 조롱이 담기는 찬사. 

자신의 취향, 자신의 평가에서 정직할 수 있을 때 이런 양가성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양가성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게, 그게 그러니까 정직할 수 있음의 증거일 것이다. 양가성, 정직함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선생에게서 배울 때 자극되거나 해방되는 정신의 면모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배우는 사람 각자에게 자기발견의 차원이라서 조금씩 다를 것이다. 


아무튼. 프랑스의 오만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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