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과 21일 메가박스에서 개최하는 일본영화제를 관람했다. 일본영화라면 애니메이션과 러브레터나 수사선 류의 흥행작밖에 모르던 나로썬 이번 영화제가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9월 20일에는 '오디션'과 '스왈로우테일'을, 9월 21일에는 '버수스'와 '붉은 돼지'를 봤다. 낯선 영화를 볼 때 제일 좋은 점은 선입견 없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개봉일 한 달 전부터 모든 매체를 동원한 광고도 볼 필요가 없고, 특히 외국 영화일 때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도 없다. 그냥 영화 자체로만 영화를 평가하게 되는 것.

이번 영화에 경우에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제외하고는 감독과 배우 이름, 영화 줄거리, 장르도 모르고 영화를 봤다. 보통 영화를 볼 때 나름의 기대치가 있는데, 이런 것 없이 영화를 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안다는 것이 시야를 좁힐 때도 있는 것이다.

'오디션'에서는 일본 특유의 잔혹함, '스왈로우테일'에서는 정체성과 엇갈린 욕망의 문제, '버수스'는 테크노음악같은 액션,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적인 판타지로 간략히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제일 낯설지 않게 봤던 것은 역시 '붉은 돼지'. 다른 세 편의 영화는 지루할 때도 있었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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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카피라이터가 되었어도 한 시대를 풍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까지 쓴 작품들의 제목은 짧고 경쾌하며 시대를 명쾌하게 해부하는 듯한 느낌이다. 거기다 기발한 언어감각까지. 이 작품 역시 그리스 아토스와 터키를 일주한 여행인데, 두 여행을 한자 네 개로 아우렀다. 우천염천.

혹여 독자들이 읽지 못할까봐 한글로 달아주고, 게다가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와 같이 나름대로 대구를 맞춘 제목을 달리까지 했지만, 우천염천의 함축성이 더 마음에 든다. 아토스에서는 비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고생을 했고, 터키에서는 지글거리는 태양 때문에 애를 먹었다. 아마 자기 여행기에 이런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언어감이 있는 작가는 별로 없을 듯 하다. '~ 여행기'류의 무난한 제목이나 추상적이거나 젠체하는 제목으로 포장하는 일은 있겠지만...

수도자들만 사는 아토스는 왠지 하루키와 닮았다. 그의 수필이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는 참 금욕적으로 투쟁하며 사는 듯 하다. 그런 모습이 100% 종교적 확신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아토스 수도자들과 겹쳐진다. 그들은 우리가 도시적, 문명적이라는 것과 스스로 결별하고 비가 구질구질하고 바위 투성이의 섬에서 격리되어 살아간다.

수도원 별로 아토스 미슐렝 가이드를 만들어 별점을 준다던가, 일정이 꼬이거나 길을 잘못들거나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던가 하는 고생은 지극히 느긋하게 묘사된다. 하긴, 이런 일에 일일이 열을 받으면 굳이 여행을 할 필요가 없겠지. 또 그가 묘사하는 그리스의 바다와 산의 묘사는 얇은 비닐 랩이 살갗을 덮듯 밀착된 느낌을 준다.

거기에 비해, 터키 편은 심심했다. 아마, 하루키의 팬이 아니라 보통 독자가 책을 읽었더라면 별셋이상은 주기 힘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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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영어를 잘 못한다. 그래서, 주로 번역된 책을 읽지만, 이 책은 첫문장을 읽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가 원서를 사고 말았다. 물론, 번역본이 대형 서점에 비치되지 않아서 원서를 사게 된 이유도 있지만. 대학 때 왠만한 소설은 꼭 '원어'로 읽으라는 한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책장을 뒤적였는데.. 이게 물건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단어나 문장이 쉽다. 내 알량한 영어 실력으로도 사전을 보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려웠던 단어는 '수의사'. 생전 첨보는 단어였다. 그리고 문장도 짧고, 한 장 역시 짧아서 호흡이 무척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이 책을 소설에 분류를 해놨더라. 아마도 분량이 꽤 되어서 그런 듯 한데... 사실 이 책은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가 읽을 만한 수준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스탠리라는 한 소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린레이크 캠프라는 일종의 교정지도소에 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본 줄거리. 하루에 30피트 깊이와 지름의 구멍을 파는 것이 주요 일과. 아이들은 저마다 이상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게다가, 이곳은 그린레이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물한방울 없는 황무지다.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에 끼어든다. 첫번째는 스탠디의 고조 할아버지가 받은 저주 이야기고, 두번째는 여자강도 케이트 버로의 이야기. 스탠리의 증조 할아버지가 케이트에게 돈을 강탈당한 적이 있었으니, 이 두 이야기는 연결이 있기는 하다.

섬세하게 직조된 이야기.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는 세 시대의 인물과 사건이 스탠리와 제로(실제 이름은 헥터 제로니)와 절묘하게 이어진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스탠리와 제로의 관계는, 마지막 제로의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로 알게 된다. 스탠리의 고조 할아버지의 저주를 스탠리가 푼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이야기를 '굳이' 성장문학으로 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나는 못마땅하다. 어린이문학의 즐거움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 보다 상위의 가치(그들 논리에서)나 추상적 개념으로 이야기를 환원하지 않으면 못견디게 불안한 것. 하지만, 이 책은 성장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이 이야기의 즐거움은 몇겹으로 꼬아놓은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느끼는 쾌감에 있다.

마치 수많은 퍼즐이 하나의 그림으로 딱 맞추어졌을 때의 즐거움에 비유할까. 이야기 시작에서 도대체 왜 물한방울 없는 황무지의 이름이 그린레이크일까, 스탠리의 고조 할아버지와 집시 여인, 케이트 버로와 그린레이크 캠프의 원장, 그리고 흑인 양파 농사꾼, 스탠리의 증조 할아버지와의 관계, 제로와 스탠리 사이의 인연까지... 그야말로 숨가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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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에서 하고 있는 레스페스트 영화제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연대를 갔지만, 역시 연대 앞은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다. 연대 재학생이 그렇게 많아설까? 연대정문에서 신촌지하철까지 이어지는 길은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뛰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민토에 가서 저녁을 먹고, 레스페스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좌석에 가 앉았다. 연대 백주년 기념관. 확실히 영화제에 오는 사람들은 그 나름의 묘한 분위기가 있다. 옷입는 것이나, 책 읽는 것이나.. 예컨대 나처럼 권정생과 이오덕의 편지집 <살구꽃...>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을 듯 하다.

주로 뮤직비디오에 관련된 뒷이야기를 다큐형식으로 만든 짧은 필름들이였다. 초반에 왠 포리너가 올라와서 영어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곧 영화가 상영되었다. 오아시스의 뮤직비디오 제작기와 팻보이즈슬림의 프레이즈유. 기타 등등. 모두 다 뮤직비디오계에서는 엄청 유명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문외한인 나로선 그저 신기한 느낌이었음.

역시 보는 것은 자유지만, 글쓰는 것에는 엄청난 제약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영화였다고 할까?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예술이 있고, 그것을 향유하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많은 이론들이 꽤 덧없어 보인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없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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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의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원서로 읽었었다. -사실 읽었다는 것은 좀 말이 안되고, 번역본과 영어원본의 대조작업만 열심히 했다 --;;;- 20% 할인 이벤트를 해서 오래전부터 빙빙 멤돌다가 드디어 구입하고 말았다.

좀 사족같지만, 나는 책을 살 때 무척 갖고 싶어서 안달을 하면서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책이 있다.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오는 이 시리즈도 여기에 해당된다. 서점에 갈 때마다 위치 확인을 해 놓지만, 막상 산 것은 릴케의 <말테의 수기> 밖에 없다. 왜 그러는지는 도무지 나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유리가면>에 등장하는 장면이 더 인상깊게 남을 정도로 이제 희미한 기억만을 남겼다. 지금 읽고 있는데 캐서린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대책없이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아가씨라고 생각되었지만, 생동감 넘치는 매력이 멋지다.

참으로 기묘하기 그지없는 소설. 많은 사람들이 연애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소설은 일종의 가문 소설로 보아도 큰 차질이 없다. 디킨스나 토마스 만 등의 가문 소설과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두 집안의 운명을 참으로 치밀하게 짚어 나간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연애는 이야기의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린튼가와 언쇼가가 쇠락해가는 과정을 정말 냉정하게 서술하고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잘못된 제목 번역에서 느껴지는 열정이나 격정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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