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같기도, 옛날의 영광을 곱씹는 뒷끝 역사소설 같기도, 전혀 PC하지 않은 차별주의 편견대서사 이기도 하지만 계속 읽게 만드는 힘과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스칼렛은 멜라니의 출산을 도왔, 아니 맡아냈고, 무례한 레트의 도움으로 아틀란타를 빠져나왔다. 쓸모없는 노예 여자아이와 버거운 어린 아들, 멜라니와 신생아를 다 이끌고 타라로 향하고 있다. 불타는 창고, 폭발음, 후퇴하는 남군에 사상자들, 해는 졌고 갈길은 먼데 레트는 동행하지 않겠다고,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겠노라고 (이제 와서요?) 선언하고 진한 키스를 한다. (실은 두번째임) 그리고 싸다구를 맞는다.





자신과 일행을 버리고 떠나는 레트에게 화를 내고 폭언을 쏟아내지만 스칼렛은 주저앉아 울지 않고 정신 바짝 차리고 타박타박 (아니, 들키면 안되니까 조심조심 그리고 늙고 약한 말과 함께 느릿느릿) 고향으로 간다. 이 길을 레트가 일행을 모시며 동행하지 않았기에 스칼렛이 주인공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고향에선 더 큰 위기와 절망적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첩첩산중. 허기진 스칼렛은 옆 농가의 버려진 밭에서 무를 뽑아 한 입 먹고는 구토를 하며 쓰러진다. 그러곤 울부짖는다.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 그녀는 뒤집어진 세상에서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로,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오디오북은 (살짝 낯간지러운 톤으로) 스칼렛과 레트,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전달한다. 게다가 번역은 종종 매우 어색하다. (안정효 번역 '가아프가 본 세상'에 비하면 뭐;;;) 유명한 위 장면의 As God is my witness 의 번역은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시지만"으로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시지만 나는 절대로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 이 구절이 나만 이상한건가? 격정적인 장면에서 짜하게 식었다고요. 새희망 교회에서 처럼.


어쨌거나, 스칼렛은 이제 명실상부 타라의 주인이고 땅의 소중함을, 부동산의 가치를 깨달았고, 발가락의 물집이 씅이 나있는데 저택 앞에 파란 군복의 양키가 어슬렁 거리며 나타났다. 두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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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07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영화 진짜진짜 오랫만이다!

유부만두 2020-12-07 06:30   좋아요 1 | URL
그쵸?! 80년 전에 만든 영화래요.
전 중학교 때, 그러니까 막둥이 나이에 본 기억이 나요.

라로 2020-12-07 0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저영화 시어머니와 최근에 봤어요. 그래서 두번째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느낀 것은 흑인 아주머니 역할의 배우 목소리 때문에 힘들었다는,,, 😅

유부만두 2020-12-07 06:31   좋아요 1 | URL
옛날 영화라 다른 배우들 목소리도 꽤 강렬해요. 전 흑인 아주머니 영상은 아직 만나기 전인데 (그냥 유명 장면만 찾아 봤거든요. 책 다 읽고 영화 제대로 보려고요) 상상은 가요.

scott 2020-12-07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악만 들어도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작품 ㅎ
멜라니아 역활 맡았던 배우가 올해 104세 나이로 세상을 떴어요.
그러고보니 영화가 무려 80년전에 만들어졌네요.

유부만두 2020-12-08 08:45   좋아요 1 | URL
웅장한 음악이지요?! 드디어 저 장면에서 스칼렛이 1차 홀로서기 혹은 변신이죠!
옛 이야기가 편견의 시대와 작가에게서 나왔을지라도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그 힘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네요.
 

예고 영상에서 처럼 <퀸스 갬빗>은 여자 아이가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승승장구 하는 이야기이고 그 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빌런은 의외로 남자가 아니다. 장면 장면들은 전통적 남녀관계를 희화하고 뒤집는데 가만 들여다보면 남자들은 극복해야 할 한계요 넘어야 할 산으로 나오는 반면 여자들은 적극적인 가해요소로 함정을 파놓아 베스를 위험에 빠뜨린다. 


베스의 인생에서 약물과 알콜 중독을 심화시킨 인물들은, 내면의 갈등이나 허영을 부추기는 건 여자들이고 체스를 가르치고 사회에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침입한 당돌한, 게다가 반칙까지 하는 베스를 눈감아주고 끼워주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돕고, 인정해준다. 베스를 롤모델로 삼고 체스 클럽을 만들고 연습하는 건 남자아이들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 민주적 미국이 아닌 소련, 그것도 따뜻한 실내가 아닌 실외 공원, 다수의 할아버지들이 하얀 백색의 코트를 입은 베스를 인정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베스는 챔피언이라기 보다는 무해한 공주님 같다. 남자들이 졌으면 손에 입 맞추는 대신 무릎을 꿇어야 할 것 아니냐.


이 재미있는 7부작 드라마 내내 상투적인 '남성적 폭력'은 비켜간다. K드라마에서라면 아버지의 존재도 부각되었겠지만 그는 멀리 흐릿하게만 스쳐가고 대신 체스를 주신 아버지가 딸의 인사를 받는다. 남자 인물들이 나올 때 마다 혹시가 그가, 그들이 베스를 성적으로 심리적으로 착취할까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들이 베스를 사람으로 대하자 그걸 감사하다고 적었다, 내가. 멍충이 같이. 대신 여성인물들인 어머니, 친구, 원장님과 여성 기자 들이 베스의 인생에 독약을 들여오고 그녀의 마음에 불안 허무 그리고 포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베스가 내내 그리워하고 '복기'하는 친어머니가 시작이었다. 여성들의 연대도 (특히 졸린의 엉성한 캐릭터라니) 헐겁고 작위적이라 남성 조력자 팀에 비하면 걸리적 거릴 뿐이다. 


재미있게 봐 놓고서 다음날 아침에 이렇게 투덜거릴 일이냐 싶지만 난 뒷북이 전문이니까.


드라마 내내 베스는 체스를 해나가며 점점 예뻐진다.


<덧> 어쩐지.... 남자 작가 소설에 남자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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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고아원 친군 러시아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요. 양엄마도 그렇고,,,저는 양엄마가 그녀를 착취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암튼 저는 이 드라마 넘 재밌었어요!!! 재밌게 봤고,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에요. 저는 왜 이런 스토리에 껌뻑 죽는지!

유부만두 2020-11-26 08:13   좋아요 0 | URL
네 양엄마나 졸린의 도움은 무시할 수 없죠. 그런데 양엄마의 ‘방임’이 너무나 커서 베스가 위험에 빠지는 게 무서울 정도에요. 졸린은 뭐랄까 너무 만들어진 조립식 캐릭터라 다양성에 대한 면피용 같고요. 여성인물들은 베스를 직접 착취하진 않지만 (그들 자신의 비극에 괴롭고) 베스를 중독으로 이끌어서 원망스러워요.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 성공 성장, 주제는 기운나게 하잖아요.

psyche 2020-12-0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막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고. 유부만두가 지적한 부분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봐야지

유부만두 2020-12-07 06:46   좋아요 1 | URL
재미는 있는데 여성 인물들의 연대가 없고 남자들이 다 하면서 여자 하나, 흑인 하나 끼워 주는 (캐릭터의 생생함이나 개연성 핍진성 없이) 식이라 좀 싫었어요. 남자들이 너무 다 착해요. 그럴리가 없다는 걸 여자 시청자들이 다 아는데 ‘자 여자 이야기 여깃다, 즐기렴‘ 하는 거 같기도 했어요. 남자가 만든 드라마 라는 게 계속 느껴져요.

아, 그런데 재미 있습니다. (자아분열)

ares 2021-08-03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이 지적하신 부분 다 받고 동의.. 다만 저도 살면서 남자들의 도움을 더 많이 받았던 사람으로서 변명하자면. 현재 사회의 지배자들인 남자들이 간혹 더 포용력있기도 합니다. 극중 베스가 하는 말 있어요 여자냐 남자냐는 나에게 중요치 않다고요. 대부분의 여자가 베스처럼 최강자가 될순 없지만 사회구조적인 어려움에도 모든 걸 극복하는 최강자 캐릭터 베스는 성별을 뛰어넘는 감동과 ‘저런 여자가 존재할까..? 아니 가능할까..?‘ 라는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유부만두 2021-08-03 22:24   좋아요 0 | URL
네, ares님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시리즈가 주인공을 도구로 써서 남성캐릭터들(의 선행)을 부각시킨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여성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약/악했고요. 빠른 흐름과 신나는 영상에 매료된 만큼 실망한 기억이 남네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지금같은 사회구조에서 남성들의 도움 없이 앞으로, 위로 나아가는 여성들이 나오기는 어렵겠군요.
 

넷플릭스 드라마 7부작. 

아홉살에 엄마를 사고로 잃고 고아원에 간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의지할 사람도 정을 붙일 물건도 없었다. 이미 아버지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고 삭막한 고아원, 썰렁한 건물 천장에 나만의 다른 '세상'이 그려지고 나서야 아이는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혼자라도 이 '세상'을 버텨낼 수 있다. 체스의 세상이 열렸다. 다만...


약물과 알코올 중독과 승부욕에 더해서 주위 사람들의 비극이 (엘리자)베스를 붙잡고 있어서 7부작 내내 그녀의 성장과 승부를 두손을 쥐고, 안타깝게 (가끔 통쾌) 함께 지켜보았다. 베스의 두 어머니의 비극이 처절한 만큼 그녀의 승리가 아름답지만 불안하고 또 가식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무표정한 베스의 마음엔 얼마나 어두운 이야기들이 갇혀있는지.


나이 많은 아저씨가 소녀를 대할 때, 고아원에서 남자 간호사가 알약을 나눠줄 때, 입양한 가족의 양아버지가 차가운 눈빛을 던질 때, 엘리자베스에게 진 상대 남자 선수가 얼굴을 일그러 뜨릴 때, 예상되는 폭력적인 장면이 이어지지 않아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런 학습된 공포가 찾아오는지 분하지만)  



체스 드라마 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이세돌과 택이가 생각났다.  결말은 착하고 귀엽고 어쩐지 응팔같기도 했다. 체스 룰을 몰라도 충분히 경기 장면을 즐길 수 있다. 다만 .... 토마스 브로디생스터, '러브 액츄얼리'의 그 귀여운 꼬마가 키만 크고 수염이 난 애늙으니 모습의 이십대 후반으로 나와서 많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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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괴이하다 싶었는데 그 의미를 알고 나니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애니에서 그려지는 여고생은 일정하게 발랄하고 역시나 그렇게 소모적이다. 


외톨이 책벌레 남학생의 사회성 기르기에 소비되는 여학생 사쿠라도, 뜬금없이 여학생이 따라 붙는 찌질한 남학생 (이름도 그 유명한 春樹 하루키)는 더 싫었다. 시한부 여학생, 약속 장소 가는 길에 사고. 정말 끝까지 대환장.


발랑 까진 여학생이 순수한 남학생과 바다로,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호텔에서 아슬아슬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유혹과 우정, 아니면 성장의 그 순간을 남자 어린이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에서 그리는 애니 '바다가 들린다'도 생각난다. 우리 나라 버전으로는 남이섬에서 일박이일 여행 후 커플이 된다는 칠공팔공 전설의 할아버지 로맨스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 들은 넷플릭스에 있기에 싱크대 청소하면서 봤다. 짜증이 많이 나서 수세미질을 더 박박 했더니 부엌이 깔끔해졌다. 짜증은 가시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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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1-25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부엌이 엉망인데 이거 보면서 청소할까? ㅎㅎㅎ

유부만두 2020-11-25 18:30   좋아요 0 | URL
분노의 수세미질을 하실 수 있어요. ㅎㅎㅎ
요즘 잘 지내시나요? Life Goes On 입니다.

잠자냥 2020-11-25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추석 연휴인가에 케이블에서 하는 영화로 봤는데요. 그 영화로 드디어 이 기괴한 제목의 실체를 알게 됐죠... 대체 이 영화 왜 그렇게 인기 많았나 싶었어요. 보면서 계숙 부글부글... 근데 정말 끝까지 대환장. 아 진짜 췌장이 녹는 것 같은 대환장 파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0-11-25 18:31   좋아요 1 | URL
췌장이 녹아버리지요. 어쩌면 일본 영화/애니의 여고생들은 한결같은지요.
지루하다가 안타깝다가 화가 나요.

han22598 2020-12-01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잠깐 궁금하긴 했는데, 그런데 알고나면 알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것 같아서 그냥 지나갑니다ㅋㅋ

유부만두 2020-12-02 14:56   좋아요 1 | URL
....설명을 하지 않을게요.
 

'화양연화'로부터 30년쯤 시간이 흐른 뒤의 홍콩. 홍콩 사람들, 서양인들과 인도 이민 노동자들, 영어와 일어, 힌두어에 중국어의 여러 방언들이 뒤섞이고 폭력과 마약이 온갖 음식과 연기, 땀과 함께 범벅인 곳 충칭맨션 근처에 심야식당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 화양연화 때 보다 5년쯤 더 젊은 양조위가 경찰 633호로 나온다. 함께 나오는 금성무는 사복 경찰로 범인을 쫒아 달리며 권총도 쏘다가 무서운 누나도 만나지만, 양조위는 경찰복을 입고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거나 밤 근무 중 커피와 (애인에게 건넬) 간식을 사는 조용한 경찰이다. 그리고 그 평온한 경찰복과 그의 눈빛은 어쩐지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그러니까 나 같은 관객의 마음에) 나름대로 강력한 무기다. 반면 근래 뉴스의 홍콩 경찰은 훨씬 과격하고 폭력적이다. 반환 삼년 전의 홍콩은 다시 화양연화였다. 


불법가택침입에 우렁각시, 제복 패티시즘이 넘치고, 인종 차별에 온갖 사랑 클리셰가 범벅인 이야기인데도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한다. 94년, 5월이 나에게도 화양연화였기에.  


나무 하나는 목, 나무 둘은 림, 셋이면 삼. 


막내가 다시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고 나는 떡을, 아니 밥을 한다. 그러다 축 늘어져서 물을 뚝뚝 흘리는 행주와 눈을 마주쳤다. 이렇게 춥고 축축한 날이면 캘리포니아와 홍콩을 생각하게 된다. 중경, 충칭의 매운 음식도. 



이 두 홍콩 경찰은 21세기에 와서 2000년 전 이야기 '적벽대전'의 주유와 제갈공명으로 만난다. 촉한(중경) 쪽 인물은 금성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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