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을 던지고 새벽에 식구들을 깨우는 대신 (다행히 난 밤 10시 전에 다 읽었음)
영화를 보기로 했다.
1957년 영화. 록 허드슨과 제니퍼 존스 주연. 캐서린은 금발이고 키가 컸다지만 제니퍼 존스도 나름 불안한 눈동자의 여주인공 역할이 어울렸다.
과하게 이탈리아 코미디를 넣는 초반이 어색했고, 두 연인이 가까워 지는 단계가 급하게 전개되는 건 아쉽지만, 아름다운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전쟁 장면과 피난길의 비극은 더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비극 직전의 '샤랄라라' 짧은 행복한 부분은 너무나 공식적인 알프스의 관광객 신혼부부 패션이어서 잠깐 웃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선 사람들이 술을 덜 마신다. 소설에선 군인도, 환자도, 의사도, 열차 기관사도, 카페 주인도, 손님도, 임산부도, 산모의 남편도, 모두모두 술을 걱정될 지경으로 (그러다 황달도 걸려가며) 마셔댄다.
영화에선 시각적으로 비내리는 장면과 이들의 운명을 연결시켰는데 (비만 오면 캐서린이 소설에도 없는 패닉에 빠지는 설정), 의외로 마지막 장면은 비가 그친 후 헨리가 병원을 나서고 있다. 너무 허무하니까, 너무 슬퍼서, 감독님이 비를 멈추라 하셨을까.
퇴각길의 즉결심판 장면. 영화에선 리날디를 데려온다. 소설 속에선 젊고 발랄한, 하지만 후엔 피폐해가는 친구인데 나름 잘 각색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이런겁니다. 아 될대로 되라지, 뭐 어때, 하던 심드렁하던 젊은이 헨리가 '무기여 꺼져버렷'이라고 외치게 되는거.
세상 허무하고, 소중한 연인과 삶이 다 부셔져 버리는 게 무기, 전쟁이다. 소설 보다는 영화가 더 반전의 색이 도드라진다. 소설도 그 허무함이 극을 찌르지만, 19살에 한달 전쟁을 겪은 작가 젊은 헤밍웨이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가 전쟁과 죽음에 환상을 가지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록 허드슨도 부럽지 않은 젊은 미모의 헤밍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