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가 지옥에서 처음 보는 죄인들은 방관자들이다.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이들.
천사의 비호와 대시인의 인도를 받아 어렵게 열리는 지옥의 문. 시인 그룹의 제6인으로 걸어가며 으쓱 거리는 단테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뒤 참혹한 지옥의 모습이 계속 되다보니 어느 장면들은 판타지 소설 처럼 읽히기도 한다. (인간과 뱀이 서로 모습이 바뀌는 장면과 얼음호수 위 거인들 모습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죄인들은 성서,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로마 역사의 인물들이고 단테의 시대에서 가까운 과거에 살았던 인물도 있다. 그들은 지옥에서 벌을 받으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있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단테는 부끄러움을 깨닫기도 한다. 지옥의 죄인들의 소원은 기억되고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라서 하나같이 (매국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테에게 자신의 이름과 사연을 말하려 애쓴다. 끔찍한 것은 죄인의 영혼은 이미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데 죄인의 몸은 악마에게 입혀져서 아직 지상에서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의 신곡-지옥 편이 있다면 누가 해당될까 상상해 본다.
지옥의 죄인들의 공통점은 '배신'이다. 신앙과 도리, 의리와 정의를 어긋나게 행동하고 속이며 그릇된 이익을 얻은 자들. 그 중에는 오딧세우스가 있고, 기독교 시대의 작가에게는 당연하게도, 마호메트도 소환되었다. 기독교 세계를 분열시킨 마호메트는 몸이 분열되는 벌을 받아 처참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지옥은 죄인 뿐 아니라 죄인들을 벌주는 괴물들, 이어지는 불과 구렁들 때문에 소심한 단테는 겁에 질려 떠는 모습인데 마지막 장에 가까워지면 단테가 공동체를 배신한 죄인의 머리칼을 잡고 뽑아버리는 행동까지 보인다. 하지만 그가 담력을 키웠다고 볼 수는 없고, 단테도 죄인들의 업보에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 같다. 지옥을 모두 둘러본 다음, 그는 지구의 중심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구멍을 통해 하늘과 별이 보이는 곳으로 빠져 나온다. 마지막 장을 읽고나서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