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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종교적 과거를 떨쳐내려고 했지만, 알게 모르게 내 몸속에 배어있는 기독교 정신(!)은 이 책을 집어 들게 했다. 유대교 집안에서 커 왔지만 냉소적인 뉴요커 기자가 책 프로젝트로 일년간 성경대로 사는 이야기.

 

저자의 전작이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읽는 것이었으니 이 책의 성격은 어쩌면 가장 비종교적일지도 모른다. 구약에 나온 괴상해 보이는 규율부터 (귀뚜라미를 먹는 것 같은 -- ;;)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지키기는 아주 힘든 "거짓말 하지 말라"는 율법까지, 성경과 또 오늘날의 다양한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조금만 다르면 "이단"이라고 쌍심지를 켜고 잡아먹을 듯 으르렁 거리는 우리네 개신교가 한국만의 병폐가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배웠고, 많은 "멀쩡한" 사람들이 각자 구원과 평화를 위해서, 또 드물게 "세계정복을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성경 보충서나 신앙 간증서가 아니다.책 말미에서 저자는 성경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신성함이 있을 뿐, 자신은 여전히 불가지론자이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카페테리아에서 선택적 취사를 하듯 각자 구미에 맞게, (건강에 맞게) 선택을 해야한다고 얼렁뚱땅 꼬리를 내린다. 성경과 종교를 대할 때 가장 겁나는 것은 (저자의 경우가 그러했듯) 내 자신의 주도권을 잃는 것이다. 혹 내가 휩쓸려 가는 게 아닐까, 이러다가 나도 거리의 "예수천당 불신지옥" 광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크신 분의 보호하시는 손 아래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중.용.

 

성경대로 살자면 극단으로 가야할 때가 있지만, 결국 중용이다. 저자 처럼 콕 콕 집어 성경구절을 들이댈 실력은 없지만 성경대로 살려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꼬리를 내리는구나)

 

나는 재미있게 (또 유익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기독교인 내 동생은 이 책의 존재조차 불쾌해한다. 흠.....난 나름대로 청학동 사람들과 연결지으면서 읽었는데. 하긴, 불가지론자이며 백인 유대인은 어쩌면 바닥부터 배우겠다고 공장에 위장취업하는 사장 아들하고 비슷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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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170쪽 - "믿음이 결여된 곳에 '열정'이 존재하기란 힘든 일이다" 다수의 무신론자들이 극단적 종교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까닭을 설명하면서.

 

상권 172쪽 - "시리아에서 한 험담이 로마에 있는 사람을 죽인다" 남을 헐뜯는 '사악한 혀'를 경고하는 탈무드 말씀. 오늘날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상권 200쪽 -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춰도...(잠언 12:23)" 이런 말씀은 성경귀절을 나불거리는 내 동생이 알아둬야 한다.

 

하권 20쪽~26쪽 "붉은암소"를 둘러싼 세계정복을 꿈꾸는 극단주의자들. 저자는 "그건 잠재적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하권 241쪽 - "힘들게 뜬 두 눈 .... 그 속에서 내가 아는 어떤 수녀가 '하나님의 DNA'라고 말했던 것을 봤다. 두 눈이 살아 있었다." 인공수정으로 생긴 쌍둥이 아들을 제왕절개로 처음 만나면서.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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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7-05-01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영어로 집에 있는데 그동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리뷰보니 한번 읽어볼까 싶네. 그리고보니 2008년 리뷰!

유부만두 2017-05-01 07:42   좋아요 0 | URL
재미는 있었어요. 옛~날 책이죠. ^^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밀하고 아픈 이야기를 문학, 소설, 인생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솜씨에 감탄하고 있다. 초반부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나와서 나의 독서 경험을 꺼내본다. 2012년 리뷰.... 벌써 3년도 넘게 지났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흐르는구나.

 

 

 

 

 

 

 

 

 

 

 

 

 

 

 

여름이면 찾아오는 납량시리즈에 그쳤다면, 차라리 책을 덮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잊고 지나갔었을텐데. 지난 여름 읽었던 "처녀귀신" 처럼 그 안에서 울리던 억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1816년 열아홉의 새색시였던 메리 셀리는 시인인 남편 퍼시 비시 셀리, 시인 바이런 경 들과 모인 장마철의 지루한 자리에서 그들과 "피가 서늘해질 이야기"를 짓기로 합니다. 데카메론을 연상시키는 이 모임에서 바로 이 끔찍한, 그리고 슬프기 그지 없는 괴물문학, SF의 고전이 생겨납니다. 총명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손으로 빚어지고 버려지고 추격당하는 이름없는 괴물 이야기. (편의상 그를 A군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미 21세기의 "스노우 맨"과 "렛미인" 등을 접한 독자들은 또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만....

 

문동 세계문학판의 번역을 하신 김선형님의 해설에서 절대 푸른 얼굴의 못 박힌 괴물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말라는 친절하고도 유익한 조언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이미 "프랑켄슈타인"은 어눌한 몸짓에 신음 소리만 내는 덩치 큰 바보(!) 괴물의 이름이 되어 여기 저기에 깔려 있습니다. 1994년 코폴라 감독의 영화는 제목에서 메리 셀리를 강조를 합니다만 괴물 역할의 로버트 드 니로는 파란 얼굴 못잖게 원래 색깔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제발, A군의 모습은 그저 커다란 덩치에 어두운 못난이로만 남겨 두어야 합니다.

 

책은 영국에 남아있는 누이 새빌부인에게 탐험을 떠난 (책의 배경은 모험과 낭만이 춤추던 18세기 후반입니다) 남동생 윌턴이 보낸 편지로 시작합니다. 윌턴은 새로움, 용기, 탐험을 좇으면서 자기 자신이 잘난 남자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만, 그의 앞에 짠 하고 나타난 건 그가 본 받고 싶었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악에 받쳐 망가진 모습입니다. 빅터를 통해서, A군과 주변 인물들 이야기가 거푸 거푸 나옵니다. 하지만 결론은 인간 모두들,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자신하던 빅터를 비롯해 인간 이상의 이해심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모든이들이 인간이 아닌 A군을 내쳤다는 겁니다.

 

오두막집에서 손을 잡아준 눈 먼 노인에게 그는 이렇게 호소합니다.

"저는 불행하고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 세상에 친척도 친구도 하나 없습니다. // 치명적인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다정하고 친절한 친구를 보아야 하는데 혐오스러운 괴물만 볼 뿐이랍니다." (179쪽)

 

외로운 A군이 프랑켄슈타인에게 요구한 것은 그의 짝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박사는 "그의 창조주인 나는 힘이 닿는한 그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할 의무가 있다고"(195쪽) 여기고 일단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만, 인류에 끼칠 해악을 염려해서 ( 자신이 넘어서는 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고) A군의 가슴을 한 번 더 찢어 놓고 맙니다.

 

이제 화가 날대로 난 A군은 프랑켄슈타인의 생활을 망쳐놓고는 그를 쫓는 박사의 약을 올리면서 더욱 당당해집니다.

"살아라, 그러면 내 권능이 완벽해지리라. 나를 따르라. " (278쪽)

A군과 프랑켄슈타인의 추격신을 눈을 감고 그려봅니다. 이제 파란 얼굴 못 박힌 괴물 대신 의지에 불타는 장엄한 "인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쫓는 박사를 위해 극 지방의 얼음 위에 죽은 토끼까지 남겨놓는 이 개념있는 A군은 소설 마지막에서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빛냅니다. 그가 애도하면서 거울을 쳐다보듯 프랑켄슈타인을 대할 때 윌튼은, 또 그의 편지의 독자인 그의 누이나 21세기의 우리들도 잠깐 정숙,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이고, 조수나 파트너도 없이 가족도 그저 멀리서 풍광을 보듯 바라보던 프랑켄슈타인이 단하나의 존재인 A군 만큼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때리고 온 마음을 다해 미워했으니, 피조물인 그도 그 연대감에 매달려 있었겠지요.

 

우리의 A군이 원했던건, 이해 받는 것, 사랑 받는 것, 자기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목숨을 앗아가버린 그가 하는 말은 아무런 변명이 될 수 없겠지만, A군의 존재와 목숨으로 세상의 인정과 찬사를 얻으려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듯 합니다. 다만, .... 윌튼에게 한 마디, "안녕히, 윌턴!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고 야심을 피하세요. 겉보기에 아무 죄가 없어 보여도, 과학과 발견에서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하지만 역시나, (제게는) 이 책은 A군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갑자기 세상에 던져져서 버림 받고 오해 받고 미움 받고, 자신을 "추락한 천사"라고 칭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괴로워했고, 말도 참 많이 하는 이 존재는, 과연 약속대로 죽었을까, 그의 영혼은 지금 그 하소연을 어디에다 풀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프랑켄슈타인>을 다 읽고, 저는 <드라큘라>를 읽었습니다. 작가 브램 스토커의 어머니가 책을 읽고 한 마디 하셨다지요.

"얘야, 셀리 부인의 '프랑켄슈타인'  다음으로 네 책이 최고다. 포우는 근처에도 못와."

 

201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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