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복잡한데 뭐랄까, 좋은데? 했던 앨리스 스미스의 '데어 벗 포 더'를 읽고 나서 여름이 저물고 아, 이제 가을이 오는구나 할 때 챙겨둔 책 <가을>을 입동 다음 날 읽었다. 아침 온도 4도, 첫눈이 내렸다. 


제목이 주는 '가을'의 인상은 소설 속에서 풍성하게 수확을 하지도 않고 회한에 차 있지도 않다. 소설 내내 오가는 삼십 년, 혹은 육십 년의 시간과 세대 차이 동안,독자는 '누가' 말하고 '누가' 보는가에 집중해야만 고꾸라져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여기 혹은 저기, 지금 아니면 그때, 아마도 봄 혹은 여름의 화요일 아니면 수요일에 영국의 소도시에서 삼십대 혹은 열한 살 엘리자베스는 엽집 할아버지와 (그만이 듣고 이해해 주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의 첫 챕터는 '데어 벗 포 더' 처럼 급작스럽다. 뺨과 뒷통수를 맞는 기분도 들었다. 해변의 시신, 혹은 정신은 몸/물질의 안에서 또 밖에서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 해변의 모래알, 햇볕, 주변의 인간들, 너, 나, 독자의 시선에 사인을 보낸다. 자, 잘 봐. 정신 잘 차리라고. 


대니얼 할아버지는 엘리자베스의 열한 살 때 이미 팔십 대의 노인이었다. 작곡도 하고 책과 미술품을 즐기고 (공부하고) 옆집 꼬마에게 건네는 인사는 늘 "잘 있었니? 뭘 읽고 있니?". 뭔가를 읽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추억하고 (싸우며) 해석하고 잊기 위해 (싸우며) 지내는 할아버지, 그런데 그 할아버지도 백하고도 한 살 잡숩고 요양원에 누워계신다. 그를 매주 찾아가 귀에 대고 (읽는 중인 책 이야기도 하고) 가망 없는 미술사 강사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어디 갈 계획도 없지만 여권 갱신 하면서 자기 자신의 '진짜 아이덴디티'를 증명하려 공무원들과 싸우고) 평생 합이 맞지 않았던 엄마와 일상사의 수다를 나눈다. 잠깐만, 빠지면 섭하니까, 부재하는 아버지와 그에 대한 꿈도 넣어줍시다!? 오케이. 


소설 전체는 오해, 혹은 말장난과 확대되는 중의적 이야기의 밀페유mille feuilles를 쌓는다. 지금 2016년의 브렉시트로 불안하게 분열되고 이민자 혐오를 터뜨리는 영국, 1960년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여성 팝아티스트 (이미지의 이미지로 작업했던) 폴린 포티, 그녀의 타자성, 혹은 박제된 여성성, 2차대전 중 단편적인 프랑스에서의 (아마도 유대인 이송) 기억, 너무 똑똑했던 다섯 살 아래 누이,  더해 엮여서 연극이나 독서로 등장하는 오비드의 '변신', '멋진 신세계', '나귀가죽', '템페스트' 의 제국주의와 인간의 징글 징글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멋들어지게 보인다. 뽐내봅시다, 우리의 독서 경력! 프루스트도 빠지지 않긔.


그러다 독자가 책 제목 '가을'을 잊을 무렵, 툭 튀어나오는 여름 오빠와 가을 누이 노래의 슈퍼마켓 광고영상. 소설 후반부에 급발진하는 주인공의 엄마(의 진짜 모습) 만큼이나 당혹스럽다. 아, 내가 읽은 건 뭘까, 어지럽고 갸우뚱하면서 입맛을 정리하는 박하맛 쵸콜릿을 먹는다. 그래도 <데어 벗 포 더>의 인물 유형들이 재결합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심스레 정리를 해보는데 스스로 골방/나무/늙은 몸/관에 들어가 눈을 감고 회상에 몰입하는 다니앨 옹 부터 열한 살 여자아이와 삼십 대 여성이 이인삼각조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공식이다. 하지만 두 소설이 확연히 다른 것은 두 소설이 출구로 뚫어 놓은 창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 그리고 독자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요, 고백할게요. 

잘 모르겠어요. 이 소설은 어려운데, 은근 읽히고, 또 좋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열한 살 (조숙하고 반항적인) 아이가 옆집 팔순 할배와 노닥거리는 건 (토 나올 것 같은 온갖 CSI 영상이 떠올라) 싫었어도, 매 챕터에 나오는 여러 책들, 그림 이야기들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말장난과 툭 툭 튀어 나오는 인생의 격언들이 가슴을 치더라고요. 


나, 앨리스 스미스 좋아요. 이제 겨울 읽을라구요. 아마도 입춘 전에.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11-10 20: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이 <가을>을 읽어야 할 텐데, 그냥 <겨울>부터 읽을까봐요…;

유부만두 2021-11-10 20:50   좋아요 2 | URL
겨울은 또 얼마나 비슷하게 또 다르게 이야기를 플어놓을까요? 전 이번 책으로 앨리스 스미스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말장난과 역사 이야기도 좋았어요.

Falstaff 2021-11-10 20:55   좋아요 3 | URL
제가 소싯적부터 자주 쓴 구절 가운데 이런 게 있습지요.
아무리 추워도 11월까지는 가을이라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라고...
ㅋㅋㅋㅋ

Falstaff 2021-11-10 2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오, 며칠 있다가 읽을 책입니다. ㅎㅎㅎ
앨리 스미스는 <데어 벗 포 더> 미끼로 잠자냥 님의 낚시에 제대로 걸려 계속 읽고 있는데, 아이고, 진짜 괜찮아요!!!

유부만두 2021-11-10 20:48   좋아요 3 | URL
전 ‘데어 벗 포 더’가 더 나았어요. 그래도 앨리스 스미스, 이젠 제 작가입니다. (도장 꽝) 책에 ‘월튼네 사람들’ 이야기도 나오는데 … 팔스타프님, 아시죠? 그 느낌?!

Falstaff 2021-11-10 20:50   좋아요 3 | URL
아이고, <월튼네 사람들> 그게 은제쩍 드라마예요. ㅋㅋㅋㅋ
우짰든 이 앨리 스미스라는 스칸디나비아 혈통으로 보이는 스코틀랜드 레즈 언니의 글은 정말, 정말 마음에 들어요!!

붕붕툐툐 2021-11-10 2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데 은근 읽히고 또 좋은 책 너무 궁금해요! 이 가을의 끝을 잡고 읽어보고 싶네용~~

유부만두 2021-11-11 08:26   좋아요 2 | URL
선생님, 가을 다 갔어요~~~ 담주에 수능이에요!

이 책은 좀 어지러운 편이고요 <데어 벗 포 더>가 더 정리된 느낌이에요. 두 소설 다 좋았어요.

붕붕툐툐 2021-11-11 21:59   좋아요 1 | URL
아... 가을 보내줄게요..ㅋㅋㅋㅋㅋㅋㅋ

라로 2021-11-11 0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부만두님께 넘 약하니까…😳

유부만두 2021-11-11 23:01   좋아요 2 | URL
훗, 낚이셨군요, 라로님.

psyche 2021-11-14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더 안 사려고 했는데 <데어 벗 포 더>를 꼭 사야할 것 같은 느낌이...

유부만두 2021-11-17 07:17   좋아요 0 | URL
데어 벗 포 더, 추천합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확실한 기쁨‘을 안고 가시는 거에요. 근데 언니야, ‘밀크맨‘도 꼭 챙기셔야해요! ^^

2021-11-18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8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르투갈은 주제 사라마구와 호날두의 나라로, 에그 타르트의 나라로만 알고 있으면서 그 굴곡진 역사와 한, 혹은 업보는 몰랐다. 스페인 옆 나라, 쯤으로 (그런 취급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잘 아는 나라 사람이!) 관련 책이나 영화를 찾아볼 생각이 없었으나 .... 


포르투갈 사람과 결혼해 그곳에 거주중인 (그리고 미술사를 전공해 책을 낸 경력이 있는) 최경화 작가의 책으로 포르투갈을 정식으로 소개 받은 기분이 든다. 여행 (거주) 엣세이지만 개인 이야기로 달큰하고 예쁘게만 만든 책이 아니라 '제대로' '재미있게' 쓰인 책이다. 리커버의 표지의 그림들은 하나 하나 포르투갈의 문화와 역사적 요소를 나타낸다. 닭이 뭐게요? 알아맞춰 보세요. 


복잡한 왕족사는 사진을 곁들인 도표로 깔끔하게 설명하며 역사는 지형, 문화, 현대 사람들의 삶과 함께 연결된다. 16세기 최고의 해양술로 세계의 한계를 넓히고 끔찍한 노예 이동을 시작했으며 스페인과는 계속되는 긴장/평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1930년대 시작한 살라자르의 40년에 걸친 독재는 1974년 봄, 카네이션 혁명으로 불리는 혁명으로 자유를 되찾았다. 지금은 유럽에서 위축된 경제적 지위를 갖지만 느긋한 속도와 대서양과 아프리카를 면한 땅은 멀리 있는 내게도 열려있다. 추천.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11-05 09: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세덕 만두님. ㅋㅋㅋ(세계사 덕후)

유부만두 2021-11-05 13:32   좋아요 4 | URL
세계사 덕후 (꿈나무) 만두 입니다. ^^
열심히 읽어 볼라구요! (돋보기를 닦으며)

책읽는나무 2021-11-05 11: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닭이 몰까?? 뭘까??
포르투칼 잘알못이라 닭이... 닭이??
저는 파두랑 포르투칼 사람들이 엄청 웃어 준다는 얘기만 들어본 것 같아요ㅋㅋㅋ
40년 동안의 독재ㅜㅜ
저 에그 타르트 좋아하는데...포르투칼 빵이었군요^^ 꿀팁 정보(왜????)네요

유부만두 2021-11-05 13:37   좋아요 5 | URL
옛날 포르투갈에서요, 어떤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썼는데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 증거로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장담했대요.
그런데 판사가 식사중이던 구운 닭이 벌떡 일어나서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ㅎㅎㅎ
이차돈의 하얀 피 보다는 훨씬 나은 버전 같아요. 누명을 쓴 사람이 죽지는 않았으니까요.
포르투갈은 2차대전 당시 중립국으로 버티면서 ‘신의 가호‘를 입었다고 했다지만 그 당시 부터 계속 독재 정치 하에 있으면서 파르마의 성모, 파두(우리나라 뽕짝 같은 포르투갈 가요), 축구 등으로 폐쇄적 사회로 40년이 지났대요. 70년대에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어쩔 수 없이 뒤쳐진 나라 경제와 분위기는 남았고요.
에그 타르트 말고도 이 책에는 꿀팁 정보가 많습니다. 추천해요.

mini74 2021-11-05 1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길준이 리스본을 작은 런던같다고 했던거 기억나요. ㅎㅎ리스본행야간열차보며 카네이션혁명이며 궁금했는데 오!! 소개 고맙습니다 ~~

유부만두 2021-11-05 21:07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

바람돌이 2021-11-05 17: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일상속 포르투갈어 ‘빵‘
옛적에 스페인 갔을 때 포르투갈을 왜 뺐을까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중입니다. 저도 이 책 읽고 언젠가 가고야말거야 주먹 불끈!!! ^^;;

유부만두 2021-11-05 21:07   좋아요 2 | URL
빵!!! 생명의 단어가 포르투갈어였지요.
저도 주먹 불끈 쥡니다.

붕붕툐툐 2021-11-05 22:34   좋아요 2 | URL
저도요, 저도요! 코로나 정리되면 1순위로 갈 곳이에요!!ㅎㅎ

scott 2021-11-07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스본 수도원에서 파는 에그 타르트
만두 만큼 맛있습니다 ^.~

유부만두 2021-11-08 06:29   좋아요 0 | URL
리스본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면 진짜 중 진짜겠네요.
 

책 없이 시간을 때워야 했는데 글자를 읽을 기운은 없어서 웹툰을 봤다. 이백 여 편을 다 봤으니, 실은 시간과 마음을 비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 순삭, 하면서 고민도 현실에서 순삭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 전에 나왔고 2005년엔 티비 드라마로도 제작 되었었다는데 (그것도 신세경 박유천 주연) 전혀 몰랐다. 

큰 폭발 사고로 오른 쪽 눈의 시신경(과 전체 몸)을 변화 시켜 냄새를 후각이 아닌 시각으로 아주 정확하게 인지하는 고등학생 윤새아. 이 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간 관계의 이야기다. 

방화사건, 연쇄살인, 국제마약조직의 마약 판매, 청계천 오염, 마약향수 등의 테마 속에 윤새아는 위기에 빠지고 헤어나온다. 그리고 연애도 한다. 여자 고등학생 주위에 성인 경찰, 연구원 그리고 화가가 포진해있고 새아는 혼자 일어서려 애를 쓰면서도 '여자'가 된다. ;;;; 

향/냄새가 주제이다 보니 향에 미친 천재와 조종 당하는 정신 이상 연쇄 살인자가 나오는데 범죄 관련 부분은 수위가 꽤 높다. 만화에서는 둘로 나뉜 향 천재, 향 살인마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 '향수'를 찾아 읽었다. 



'향수'의 주인공 장-밥티스트 그루누이(개구리)는 루이 14세보다 백년 후, 1738년 여름에 태어난다. 모친은 그를 낳자마자 방치해 죽길 바랐지만 도리어 영아 살해로 모친이 처형된다. 체취가 없고 기이하게 혐오감을 주는 아이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파리의 향수 장인 가게에서 600 여개의 향을 제조 하며 큰 이익을 남겨주고 자신은 향 '추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남프랑스로 내려간다. 그가 거쳐가는 인물들은 모두 황망한 죽음을 맞는다. 그루누이는 광야의 동굴에서 7년을 지내고, 몽펠리에의 귀족 과학/철학자의 이론에도 협조하며 여정을 이어간다. 향수의 고장 그라스에서 기술을 배우는 그루누이. 자신의 무취와 향제조를 이용해 주위 사람들을 조종하는 한편 살인을 통해 향의 '정수', 생명과 아름다움의 '정수'를 향으로 뽑아내려한다. 25명의 여성들은 그의 재료가 된다. 아무런 목소리도 반발도 내지 못한다. 소설은 역겨운 인물의 혐오스러운 범죄를 그리는데 인물을 실제로 상상하기 보다는 그 주변의 상황, 냄새를 더 열심히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성 스물 다섯이 죽고, 공포에 떠는 것은 완전히 무시한다. 마지막 희생자는 열일곱의 로라. 거부인 그 아버지는 (메리 셸리의 <마틸다>의 아버지 처럼) 자신의 딸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다. 최고의 향의 재료는 꽃, 미인이라는 (하지만 더해서 생명력과 악(취)도 필수라는) 뻔한 공식을 강조한다. 소설 전체가 범죄자의 서사이며 그의 '처벌'도 주인공의 의도대로 완성 된다. 노골적 성경 패러디와 시대사 병치는 과격하고 희화화된 묘사까지도 작가의 계산 속에서 안전하고 솜씨좋게 펼쳐진다. 다 읽고 '이게 뭐야' 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교훈이 빠진 빅토르 위고의 향도 나는듯 하고 피해자의 공포나 목소리를 지워버린 스티븐 킹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작가 쥐스킨트의 다른 작품을 딱 하나만 더 읽어 보고 싶다. 



찜찜하고 싫었다면서 영화 까지 왜 찾아 봤는지 과거의 나를 혼내주고 싶다. 영화는 개망작이니 나의 시간은 벌을 호되게 받았다. 책에서 비꼬듯 서술하는 문장과 여러 18세기 인물들의 악착스러움, '오래 지속되는 정수'를 향한 덧없는 갈망을 영화는 보여주지 못한다. 비열한 살인자 그루누이, 타인의 피를 빠는 주인공은 어리숙한 천재가 되어 향에 집착하며 화면도 공범자로 피해자의 나신을 열심히 펼친다.  (전리품에 취하는 그는 '냄새를 보는 소녀'의 연쇄 살인자와 같다) 영화에는 가부키 화장을 한 더스틴 호프만, 콰지모도 같은 그루누이, 범죄자의 향에 취하는 스네이프 교수가 나온다. 툭툭 끊어지는 이야기에 처형장의 대축제 장면은 성경 인용에 더해 실소가 나올 뿐이다. 



다 읽고, 다 보고 나서 나중에 무슨 변명인가 싶다. 향에, 무엇에 미치면 그 '정수'를 소유하고자 광기를 부리게 되는 건가. 토요일 부터 엄한 곳에서 엄한 냄새를 맡으며 평소엔 잊고 살던 세상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힘들게 돌아온 나의 일상이 소중한데 왜이렇게 추워진거냐. 나는 비염이 심해서 향수나 향이 진한 제품은 쓰지 않는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1-10-21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냄새를 보는 소녀‘...웹툰 원작이 있었군요?
저는 예전에 신세경이 나온 그 드라마를 본 것 같아요.신세경을 좋아하는 편인데...무심히 텔레비젼 채널 돌렸는데 냄새를 맡는 게 아니고 본다!!라는 소재가 너무 신기해서 몇 편 챙겨 봤었네요.^^
냄새를 보는 특이함으로 같이 수사를 진행해 갔었던 것 같아요.신세경이 귀여워서 계속 헤~~입 벌리면서 봤었던ㅋㅋㅋ
쥐스킨트는 이상하게 ‘향수‘만 빼고 찾아 읽게 되더라구요?향수는 호불호가 있는 듯 합니다.
만두님의 리뷰를 읽으니 오늘같이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더 읽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군요...더 음침하게요ㅋㅋㅋ

유부만두 2021-10-21 09:45   좋아요 3 | URL
쥐스킨트의 <향수>는 잘 만든 소설이에요. 읽기 시작하면 계속 따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매우 불쾌해요. 여러 층위의 이야기로 분석할 수도 있고, 다양한 각도로 볼 수도 있는데 ... 여성의 목소리가 없어요. 전혀요. 그나마 ‘대사‘가 있는 고아원 보모도 이리 저리 치이는 ‘유형‘으로만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작가의 솜씨가 좋아서 더 기분이 나빠요;;;;

2021-10-21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1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1-10-21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목소리가 없고, 여성조차 이리저리 치이는 ‘유형‘인데 작가의 솜씨가 좋을 때의 절망을 저는 필립 로스에서 보았는데 쥐스킨트도 그렇군요. (아.... 패쓰할까 봅니다)
저도 코가 좋지 않은데 전 아직도 진한 향수를 좋아하는 ㅠㅠㅠ
날이 많이 추워졌어요. 저는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답니다^^

유부만두 2021-10-21 10:02   좋아요 2 | URL
이 소설은 패쓰하세요. ^^
그런데 전 이 절망감을 씻을(?) 다른 작품 하나만 더 읽고 싶어요.
많이 춥더라고요. 나흘 만에 잠깐 나갔다가 가디건 위에 반코트 겹쳐 입고 다시 나간 사람이 접니다. 어제요. 오늘은 더 춥다는데..... 뭐에요, 가을이 벌써 끝난건가요? 이런 반칙이!!!!!

수이 2021-10-21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려서 가을이다! 하니 가을 탈 새도 없이 겨울이 왔다고 합니다. 오리털 파카 입고 광화문 다녀온 1인이 전합니다. 맨발에 샌들 신고 마트 가기는 이제 무리더라구요. 발가락 시려워 죽을뻔 했어요 🙄

유부만두 2021-10-23 13:53   좋아요 1 | URL
얼마전 뉴요커 기사 제목이 생각났어요.
Welcome to Fall, the Two Days Between Summer and Winter
그렇습니다. 가을은 단 이틀이었더랬어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일 년 전. 빈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화계, 그리고 정치계 인사들을 일 년 동안 따라가면서 (역자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여행을 하는 책이다. 장면마다 저자의 감상 및 평이 첨가되고 때론 신랄하게 혹은 환호하며 백년 이상의 시간 차를 (잠시) 잊게 해준다. 맥콜리프의 파리 시리즈와 비교해서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도록 구성된 책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은 낯설기도 하고 파리 쪽에서 만났던 릴케는 조금 더 주체적으로 다방면 (주로 원거리) 연애를 주도한다. 펜으로 여인들을 어루만지고 (참, 릴케는 애도 있는 유부남) 부유한 여인들은 그에게 돈과 숙소를, 더해서 장미도 제공한다. 아직 가시엔 찔리기 전. 시대가 그런 건지 예술가들 연애사들은 꽤 복잡하고 질릴 정도다. 프로이트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의 첫 장, 1월 1일은 멀리 미국 남부에서 총성으로 시작한다. 열두 살 루이 암스트롱이 새해 첫 시작을 축하하고 싶어서 총을 쐈고. 이 장난꾸러기는 보호감호소로 가고, 그곳에서 음악적 스승을 만난다. (자, 이렇게 시작하면 끝까지 달릴 수 밖에)  2년 전 도난 당한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12월에 가서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었고 12월 31일 파리로 돌아온다. 이 책의 작가는 매달, 모나리자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써놓으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스포.... 역사가 스포일러다)


1913년 초에 빈에 히틀러, 스탈린, 티토가 함께 있었다는 것과 가을엔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무질이 지중해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쩌면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눈빛을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무질은 이해 8월이 날씨가 좋았다고 소설 시작에 썼지만 1913년 8월 빈의 평균기온은 18도 였다. 5월에 (탈영 후) 뮌헨으로 간 히틀러는 공원에서 젊은 부부와 스치는데 이들의 돌이 막 지난 아기는 후에 히틀러의 애인이 되는 에바 브라운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식으로 역사 속 그 장면을 다소 억지스럽게 살려내며 독자들의 과몰입을 부추긴다. 1913년은 또한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한 해이다. 이들의 잔뜩 억누르지만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편지들, 냉기 흐르는 학회 전경에 더해 이 해를 거듭 '친부 살해'의 테마로 이해할 이유는 많다. 어쩐지 아버지!를 부르고 다투고 대들고 죽이지만 다시 아버지의 탈을 쓰는 작가들이 유달리 많았다. 헷세는 부인과 사이가 나빴고 부부 싸움 후엔 꼭 세세한 기록을 소설의 옷을 입혀서 기록했고 주저하고 고민하고 겁과 말이 많이 많은 카프카는 사랑이 실패할까, 성공해서 결혼하게 될까, 그래서 개인의 시간이 줄어들까, 아니면 사랑을 되돌려주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이때도 미친 테러리스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무차별 총기 난사로 어린이 여럿을 죽이고, 어떤 미친 놈은 가족 살해후 시내로 나가 방화 후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독일식 우드스톡 행사에서 젊은 벤야민은 연설을 하고 10월 차베른 사건은 독일의 시민권 위에는 군권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DH 로렌스는 차털레이 부인의 모델이 될 여인을 만나며 토마스 만의 '베니스의 죽음'은 여러 의미를 띠면서 독자들을 만났다. 12월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며 스타 탄생을 했으며 이탈리아에서 프라다는 개인 샵을 오픈했다. 유명인들의 편지(의 사본)를 매달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가 시작했으나 실패했고 젊은 뒤샹은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 놓으며 예술사에 획을 그었다. 알베르 카뮈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책에선 안 나오지만 보부아르가 10월에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65년 재위중인 큰아버지 황제에 스트레스가 많다. 게다가 황태자비는 출신 신분으로 지위를 인정받기가 어려웠으며 공식 석상에서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황태자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가족을 아꼈다. 이들 부부는 이듬해 1914년 여름 사라예보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정신 없이 과거 속 일 년을 이틀에 살아 냈다. 그리고 역시나, 읽을 책 목록이 길어졌다. 내 개인의 책 쌓기 역사는 이렇게 되풀이 되는가.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1-10-14 2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일단 보관함으로 보내놓습니다.
근데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유부만두님처럼요^^

유부만두 2021-10-15 07:48   좋아요 2 | URL
저 역사 잘 모릅니다...다만 아는 사람 나오면 반갑고 그랬어요.

이 책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 이야기가 많아서 새로운 이름들을 많이 만났어요. 토마스 만이 ‘마의 산‘을 구상하면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데 .... 아이고 했고요. ^^ 이 책은 따지자면 역사책, 이라기엔 좀 애매하네요. 하지만 꽤 흥미롭게 읽었어요.

scott 2021-10-14 2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전 이책 엄청 즐겁게 읽었습니다
헤세-카프카-프로이트 -니체-릴케 서간집을 흥미롭게 읽어서 인지 저자의 위트 넘치는 문장과 정교하게 달별 날짜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원서-번역서
모두 사릉합니다 !ㅎㅎ

루 살로메 작품들 추천 합니다!! ^^

유부만두 2021-10-15 07:50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전 이름만 알던 인물들의 사생활, 인간성을 엿본 기분도 들었어요. 카프카, 정말 짜증나더군요. 릴케가 프랑스에서보다 더 활발한 건 의외고요.
새로운 만남/발견은 토마스 만이에요. 그의 소설을 (중간도 못 읽은 것들) 완독하겠다고 다짐을 (또) 했어요.

루 살로메도 챙길게요. 추천 감사합니다. ^^

유부만두 2021-10-15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사진 (하인리히 쿤)이라는 책 내용 읽다가 놀람

mini74 2021-10-15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13년이 이렇게 엄청난 일들과 인물들이 !!! 보고싶어요 찜입니다 유부만두님 !!

유부만두 2021-10-19 10:34   좋아요 1 | URL
이 책 꽤 흥미롭습니다. 추천해요. ^^
 

되다. Becoming, a Devenir. 

다른 누구(의 무엇/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충만한 인생일 것이다. 그 길고 짧은 여정 동안 무수한 실패와 과오가 있어도 (부정하거나 감추지 않고, 과오를 인정하며) 그래도 목적지는 자기 자신. 다른이들과 함께 하는 자기 자신. 세계 속의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


보부아르의 일흔 여덟 해 동안 '지저분 한 시기'와 '치열한 시기' 더해서 '회고하는 시기'를 며칠에 걸쳐 구경하면서 질리기도 여러 번이지만 다른 이의 인생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더불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 나이 먹어서 만나는 보부아르는 몇십 년에 걸쳐 보아온 소설가, 철학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나이 드는 동안 그가 기다려 주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노년의 모습, 고민, 다른 여성들과 미래의 여성들을 생각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보부아르 다큐 중 '낙태 합법화' 시위에서 여러 여성들과 함께 외치는 구호 Solidarite (연대)가 크게 크게 울려 퍼진다. 


자,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으니, 다른 책들 읽기로 나의 연대감을 표현하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1-10-13 08: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어요????
리스펙 몇 개를 드려야 할지...^^
며칠 전 이 책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는데 살째기 빼고..다른 책으로 자리 바꿈 했었어요.ㅋㅋㅋ
보부아르의 나이 든 노년의 모습이 궁금한데...나이 차 가는 유부만두님을 기다려 준 듯 하다고 느끼셨다면 푹 빠져 몰입 독서 하신 듯하게 느껴집니다..절로 몰입하며 읽어 보는 만두님의 감상이기도 하구요~~저도 요사이 줄곧 보부아르란 위인에 대해 늘 생각하는 하루 하루네요^^

유부만두 2021-10-14 07:29   좋아요 3 | URL
그쵸?! 이 책의 저자 케이트 커크패트릭에게 리스펙을 곱배기로 드립니다.

책은 읽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는 데 정말 크게 공감하고 있어요. 보부아르는 여성 독자의 나이대에 따라 그에 맞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요. 뭐 저야 재미있는 (여러 의미로요) 책을 읽을 땐 늘 푸욱 빠져서, 과몰입하면서 읽습니다. 사르트르의 노환 장면에선 (이 책은 묘사도 꽤 좋습니다) 시부모님 생각도 나고 (으응????) 그랬다니까요.

단발머리 2021-10-14 2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반 정도 읽다가 멈춤 상태거든요. 근데 사르트르 노환 장면 때문에라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무지 궁금합니다요.

유부만두 2021-10-15 07:51   좋아요 2 | URL
전 나이가 들면서 작가들의 노년에 대한 글, 과거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갑니다.

공쟝쟝 2021-10-25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 보부아르처럼 늙고 싶어요. 사르트르와 대비되서 더욱더 훌륭하게 느껴졌던 그... 아 놔, 보부아르 페이퍼쓰겠다고 해놓고 아예 잊고 있다 유부만두님 서재 들어와서 생각나버림...ㅋㅋㅋ (도리도리 다시 잊자)

유부만두 2021-10-27 22:50   좋아요 1 | URL
다시 생각 났으니, 어쩔 수 없는겁니다. 보부아르 페이퍼를 멋지게, 쟝쟝님 스타일로 써 주시는 겁니다. 그걸 읽고 우리들 가슴엔 불이 타오르겠....(아, 제가 왜 이러지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