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에 짜한 소문이 도는 이 책을 주저하다가 결국엔 샀다. 너무 노골적인 제목의 표지라 무섭기도 하고 좀 부끄러운 심정도 들었는데 (왜?;;;) 의외로 두껍다. 공개채용과 문학상공모를 파헤친 르포이고 자료가 많으니 당연한 일인데 왜 나는 얇은 '현대 사회 요약본'을 기대했을까.

 

신입사원 공채에는 주로 경력사원들이 합격한다고, 문학상 공모에도 이미 등단하고 출판 기회를 갖지 못한 작가들이 응모한다고 한다. 십수 년을 과거에만 매달렸던 조선시대 청장년들 이야기도 언급되는데 수능을 몇번이고 다시 봐서 이번에는 의대에 가겠노라 칼을 가는 친척 아이도 생각났다. 그 아이 뿐이 아니라, 삼수 까지는 한국에서 버텨보다가 소위 스카이에 불합격하면 외국 유학으로 방향을 트는 학생들을 몇몇 봤다. 그뿐인가 대학에 가고도 삼학년 쯤이면 군대가 아닌 '진로 고민'으로 휴학을 신청하고 편입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무얼 위해서. 시험 준비와 통과, 실은 그게 편하고 공식화 되었기 때문이다. 뽑는 사람에게 뿐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시험 한 번이 편하다. 붙는다면.

 

얼마전 문학상 수상작에 실망했고 의리로 사는 이상문학상집도 그닥 재밌게 읽지 못한지 오래다. 저자 장강명이야 그쪽 사람이니 문학상 문제가 큰 화두겠지만, 난 부차적으로 언급되는 취업 이야기에 눈길이 더 간다. 엘리트 주의 아래 '1등만 살아남는' 세상의 현실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아, 더럽네. 많은 '천재 아닌' 아이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휘둘리다 어디로 가는건가. 아직 절반을 다 못 읽었다. 주말에 붙잡고 있자니 마음이 더 무거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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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서점에서 서서 앞부부만 읽었는데, 와하~~~ 장강명 정말 감각 하나는 알아줘야한다니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꼭 장강명이 아니라 누구든 쓸 수 있는 이야기지만 기자 같은 느낌으로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써내려가니 관심이 쏠리는 것 같더라구요.
문학상도 그렇고 대학이야기도 그렇고.
아이가 자랄수록 ‘무얼 위해서 사는 건지..‘ 이런 고민만 늘어갑니다.

이 와중에, ‘의리로 사는 이상문학상집‘에 전,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유부만두 2018-06-24 10:16   좋아요 0 | URL
입시와 입사 이야기, 문단 이야기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요. 센스도 문장도 깔끔하고 질척대지 않아요. 얄밉기도 하고.... (왠지;;;)

psyche 2018-06-2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서재에서 계속 보이길래 궁금했는데 다 읽고 어땠는지 말해줘

유부만두 2018-06-24 10:17   좋아요 0 | URL
생각 보단 괜찮아요. 그런데 예상을 뒤집는 내용은 아니고요, 나도 읽으면서 여러 고민을 함께 하게 만들어주네요. 이제 후반부 들어갑니다.
 

오늘 아침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에서 '다코네의 우울'과 '엄마' 두 편을 읽었다. 남편의 지인 딸 결혼식에 가야하고, 남편 근무지를 따라 해외로 이사해야 하는 여자들. 남편의 출근 후 혼자 남아 자신의 고민과 긴장을 감당해내야한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물건을, 혹은 커다란 상실을 감당해야 하는데 남편은 그녀들의 애원하는 눈길에서 어떤 적의를, 혹은 악의를 느낀다.

 

커다란 서양식 호텔, 처음 먹는 양식에 긴장해서 예행연습까지 하는 다코네. 자신과 함께 벽 안쪽에서 숨어 걷는 쥐 한마리의 기척마저 느낀다. 지인의 딸 결혼식, 신부 머리에 쓴 흰 장식을 흘끗 쳐다본다. 이미 거쳐온 의식, 이제는 어른의 자리에 앉아서 무사히 치뤄낸 한 편의 사교극.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식당에서 여종업원을 희롱하는 사내의 자유를 보고 신문에서 읽은 어느 여직공, 성추행 당해 미쳐버렸다는 다른 여자의 사연을 생각한다. 그날밤, 다코네는 기차에 치고도 살아 의식은 생생한 악몽에 시달리고 아침까지 그 여운이 지난밤 양식당의 긴장과 함께 몸에 서려있다. 음식은 무엇이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 음식의 기름기가 찻물 위에 어린다. 소화가 잘 되었을라나.

 

두 명의 도시코, 이제 갓 엄마가 된 이 두 사람은 남편들을 따라 중국에 왔다. 근무지로 정식 이주를 하기 전 항구도시 여관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이 된다. 한 명의 도시코는 얼마전 아기를 폐렴으로 잃고 이웃 도시코의 통통하고 '날카로운 젖냄새' 나는 아가를 부럽고도 아픈 마음으로 쳐다본다. 이후 중국 내지쪽으로 이사한 '아기 잃은' 도시코는 나른하고 편안한 오후, 남편은 정원의 해먹에 누워 새장 안의 금문조를 쳐다보는 옆에서, 자신에게 온 분홍빛 편지를 펼친다. ... 타인의 비극에, 흥분하는 부인의 모습이 섬찟한 남편. 아내는 고집스레 금문조를 풀어줘야 한다고, 방생해야 한다고 하며 닿지 않는 새장쪽으로 손을 뻗는다. 달큰한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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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잠에서 깨버려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다시 잠들기도 아깝고 힘들어서 책을 읽었다. 아침에는 전날 읽었던 책 보다는 단편을 찾아 읽는편인데 벌써 6월, 벌써 17일,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어. 맑은 하늘에 일상이 어색한 기분이 드는 아침,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이 생뚱맞은 이야기를 읽는다.  

 

'마죽'에는 마흔 훌쩍 넘고 낡은 옷 두 벌로 연명하는 말단 '오위'가 나온다. 이름도 없이 그저 빨간 코에 굽은 등으로 묘사되는 이 사내는 온갖 멸시와 조롱에도 바깥으로 분노를 표현하기 보다는 조용히 자책하고 도망가는 편을 택한다. 참다참다 한 마디, '안돼겠구먼, 자네들' 에는 비애와 서글픔이 배어나온다. 다만 그 '박해에 울상짓는 인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을 뿐. 그에게 작은 소망, 혹은 집착이라면 '마죽' (저자의 시대에서도 백여년 전의 미식이라고...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듯)을 실컷 먹는 것. 부유한 집의 사위인 도시히토라는 사내가 그의 소망을 들어주겠다며 술김에 약속하고 오위를 얼러 숲을 지나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숲에선 여우를 만나 자신의 도착을 알리라 호령도 하는 도시히토. 모든 면에서 오위와는 정반대의 인물. 집에 도착해선 마를 마당 가득 쌓아두고 큰 솥 가득 마죽을 쑤게 한다. 큰 은그릇에 넘칠듯 담긴 마죽에 질려버린 오위. 감당할 수가 없는 그의 집착은 사라진다. 그 많은 마죽을 억지로 먹이는 고문이 이어질까, 걱정할 찰나 다시 나타난 어젯밤의 그 여우!

 

'묘한 이야기'에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전령이 나온다. 이번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나이. 지에코라는 젊은 새댁은 비오는 날 한사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겠다며 친정집을 나선다. 그녀의 남편은 1차대전 참전으로 유럽에 나가있는 상태. 지에코가 기차역에 도착해 바라보는 역 창문 밖은 착시인지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인사를 건네는 낯선 빨간 모자의 사나이 (짐꾼이나 노동자의 복장인듯)가 남편의 상태를 알아오겠다면서 사라진다. 섬뜩한 느낌에 지에코는 그후로 빨간 모자만 보면 소스라치게 되는데. 남편이 귀국 후 더욱 이상한 이야기를 듣곤 남편과 함께 근무지로 이사한다. 그녀의 행동의 배후에 숨겨져있던 계획이 설명되는 마지막 부분이 귀엽기도 했지만 '자네가 조선에 갔을 때' 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쎄한 기분이 들었다.

 

식구들은 아직 잠에 빠져있는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식구들이 야속하기도 부럽기도 하다. 현실은 여기, 지금은 유월. 자꾸만 마음이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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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6-17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당할 수가 없는 그의 집착은 사라진다..요 문장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라쇼몬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책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어요. 다시 읽고 싶네요. 유부만두 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유부만두 2018-06-18 09:54   좋아요 0 | URL
오위가 마죽을 기다리고 또 그 순간을 두려워하는 장면은 꽤 섬세해요. 아마 다시 읽으시면 예전 감상을 강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씩 천천히 떼어 읽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음산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요.
 

'야성의 외침'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화자가 개였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착하고 순하게 꼬리를 흔드는 개가 아니라 채찍을 맞고 얼음 위를 지치며 야성을 품은 개.

 

잭 런던의 단편집에서 '삶의 법칙'을 골라 읽었다. 선거 휴일 아침, 인간의 복잡한 삶을 생각한다. 이게 다 뭐람. 어차피 살다 가는 인생. 북아메리카 원주민 코스쿠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차가운 날, 매서운 바람을 가죽을 뒤집어 쓰고 모닥불 앞에 앉아서 고스란히 맞고 있다. 아들과 손자 손녀들은 천막을 접고 짐을 꾸려 썰매에 동여맨다. 그리고 개들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아들이 온기어린 손을 코스쿠시의 머리에 얹으며 이별을 고한다. 그들 방식의 장례. 곁에는 손녀가 준비해준 장작더미. 마지막 잎새가 되는 장작더미와 함께 얼음 위에서 코스쿠시는 커다란 삶의 법칙을 따라야한다.

 

이젠 앞도 보이지 않는 눈은 이미 역사 속으로 앞서 가고, 어린시절 발자욱을 따라가며 보았던 늙은 사슴과 늑대떼의 사투를 기억에 펼쳐놓는다. 두어번 쓰러지고 반격하고 다시 내달린 사슴. 발굽으로 강하게 떨궈낸 늑대를 짓밟은 사슴. 사슴의 발 자국과 눈 위에 남은 자취 위에서 생생하게 떠올리는 삶의 의지. 눈 위에 번진 피. 생생한 기억만큼 지금 코스쿠시도 목숨줄을 붙잡고 한 번 더 싸울텐가. 싸우면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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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씨의 책 '아무튼 스릴러'에서 언급되는 책이라서 구입했다.

 

 

배송된 책에는 떡하니 19금이라고, 비닐로 싸인 책이 그 안에도 띠지가 꽁꽁 봉하는 포장으로 배송되었다. 훗,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역겹고 지겹고 짜증이 났다. 범인의 자기연민이 끝없고 책 뒷면의 '살육에 이르는 병, 사랑' 이라니. 책 링크도 걸기 싫다. 마지막이 강한 반전이라고 해서 완독했다.

 

계속해서 정유정 작가의 책 '종의 기원'이 생각났다. 끔찍한 악의 이유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걸 상상으로 밝혀내 까발리고 글로 옮기는 사람들과 돈을 주고 사서 읽는 사람들, 그중에 나. 연쇄살인범 수사극을 보기도 했었는데. 마음이 무겁고 싫다.

 

이 소설의 마지막 트릭이 잠깐, 아, 하는 순간을 만들기는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세계, 호감형 범인, 그의 미소에 넘어가는 멍청한 여자와 헛된 희망으로 일을 망치는 여자, 자신보다 30살 이상 연상 예순다섯의 퇴직 형사에게 매달리는 여자, 가슴으로만 묘사되는 여자, 그 극점에 앉아있는 엄마...라니...그 도식에 분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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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6-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의 명성(?)을 익히 들었는데 덕분에 안 읽어도 책이 늘어서 좋아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6-04 13:13   좋아요 1 | URL
네... 한 권 지워드렸습니다. ^^;;;

syo 2018-06-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억합니다. 전 평생을 추리나 스릴러 장르에서 반전이나 트릭을 맞추는 일이 없이 사는데, 이 책은 맞췄어요! 그걸 맞추고 나니 정말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남긴 게 없는 똥덩어리가 되었지요....

유부만두 2018-06-04 19:16   좋아요 1 | URL
syo님은 정말 스마트 하신가봐요. 전 까맣게 모르고 그 마사루(?) 모자(?!)의 서술을 순진하게 (하하, 그 범죄 이야기를 사서 읽은 저는 과연 순진할까요) 따라 가다가 우웩 했어요. 아니 그 반전 (물론 syo님 처럼 미리 간파한 독자도 있지만) 하나 갖자고 이 똥덩어리 피비린내 썩은내 나는 난리를 봐야합니까. ㅜ ㅜ 이걸 읽고나니 정유정 작가는 ‘종의 기원‘에서 정말 많이 순하게 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psyche 2018-06-0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제목은 익히 알고 있는 책인데 덕분에 안읽어도 되네 ㅎㅎ

유부만두 2018-06-06 08:29   좋아요 0 | URL
어휴.... 괜히 사서 읽었어요.... 에비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