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나쁜 쪽으로


[ ] 생각해봐, 사람들은 더이상 공장에서 노동운동이나 자본가의 착취를 연상하지 않아. 왜냐하면 공장은 모두 텅 비어버렸거든. 더이상 살아 있는 공장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아. 죽어 있는 것들 뿐이지. 죽은 공장은 아름답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생각해봐. 세상은 미학적 가능성으로 차고 넘치고 그걸 잘만 이용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어. 아주 쿨한 방식으로 말이야.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야. (노동자들을 다 제거해버리는 방식으로 말이야.) 버려진 공장은 박물관이 되고 버려진 아파트는 갤러리가 되고 버려진 발전소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되지. 뭔가 기분 나쁜 게 있어? 바로 그걸 팔아버려, 그럼 넌 부자가 될 수 있어! 26

[ ] 춤을 출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모여 있는 우리들이 아무것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춤 속에서 우리는 거리를 유지한다. 껴안지 않는다. 각자의 춤에 몰두한다. 그렇게 우리들은 개인주의자들을 위한 천국으로 간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개인주의자를 위한. 그곳은 텅 비어 있다. 나 자신조차 없다. 27

[ ] 우리, 우리들....끔찍하게 쌓아올려진 이 모든 것이자 그것을 쌓는 데 인생을 탕진한 바로 그자들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라니? 모두 그저 쫓겨 온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오직 그 점에서만 우리들은 동지가 아닌가? 28

[ ] 알 수 없다. 걷는다. 더 나쁜 쪽을 향해 걷는다.32

[ ] 그는 언제나 바라볼 뿐이었다. 이미지는 살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를 덮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말을 걸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그것은 편리하고, 편리한 것은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문득 그는 이미지의 바깥을 상상하고 있었다. 한 구체적인 정신을 그는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혼란에 빠졌다. 37

[ ] ˝ 곧 문제는 삶 전체로 확장되었다.˝ 그는 고백했다. ˝나는 이해하기를 원했고, 그것은 줄줄이 실패했다. 실패할 때마다 모든 게 조금씩 불확실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확실해진 단어들을 버렸다. 사용 가능한 단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38

[ ] 구닥다리 얘기 없이 현대인들은 단 한마디도 말할 수 없다. 모든 구식 개념들이 형체를 잃고 부서져내려, 더이상 원래의 사용법을 유추할 수 없을 만큼 자폐적인 즐거움이 되어버렸닥 해도, 우리는 그것들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자연과 같다. 구식의 개념들이 자연이 되어 우리의 곁에 머무르고, 우리는 즐겁게 자연을 탕진한다..40

[ ] 나는 세상이 미치광이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배웠다. 종교와 기술, 그리고 섹스 중독이 세계를 결정한다. 41

[ ] 여전히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다.....우리 앞에 시간들이 새 침대 시트처럼 하얗고 보송보송하게 펼쳐져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리는 그 시트를 더럽혔다. 다음날 시트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우리가 몇 장의 시트를 더럽혔는지 모르겠다. 46

[ ] ˝시간이 갈수록, 살아가는 데 많은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삶은 놀랍도록 단순한다. 단순성에는 물론 일정량의 손실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쾌락적이다. 손실의 즐거움. 그것을 우리 현대인들은 알고 있다. 아니 우리는 그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스로를 조금씩, 영원히, 지우는, 즐거움. 잃어가는, 태워지는 즐거움. 그 쾌락을 제대로 즐기는 길은 영원성을 음미하는 것이다. 48
[ ] 미래에 관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나에겐 없다. 50

2.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 ] 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들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혹은 자기 변화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 맑스, 포이에르바흐 테제 3번

[ ]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게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데 있다. - 맑스, 포이에르바트 테제 11번

[ ] 아리기의 역사이행 4조건: 1) 세계의 해석과 변혁, 주체의 해석과 변혁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한 이론이 대중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만큼 명료해야 하며, 실천적이고 정책적인 설득력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2) 그와 별개로, 대중 스스로 세계를 변화시켜 나ㅏㄹ 새로운 주체로 스스로를 변혁하는, 생활혁명의 힘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3) 자본주의역시 능동적으로 조직과 기술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4) 수세에 몰린 자본의 반격이 지속될 것이기에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세계 혁명의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7~9

[ ] 브루노 라투르는 자연과 사회이 분리를 전제로 한 모든 생태주의 운동과 과학이론은 한편에서는 사회와 분리된 자연이라는 추상에 매달리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 무관하게 정치적 협상에 매달리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그는 자연과 사회 사이에 과학적 생산이라는 제3항을 개입시켜....집합적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23
[ ] 현재까지의 <지식-권력 구성체>는 정치와 지식생산을 분리시키고(상,하원,국가) 지식 생산 내에서도 분과학문들 간의 분리/불통을 공고화하면서, 사회 시스템 전체의 운영은 최종적으로 정치가들이 좌우하는 ˝대의제도˝의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위 라투르의 모델을 문제의 진단(난국)에서 해법의 발견(컨설팅)과 해법의 제도화(제도), 우선순위의 결정(위계화), 전 과정의 계획과 평가(총체성의 시나리오화)의 모든 단계마다 정치가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통섭형 연구방식으로 직접 참여하여 토론을 거쳐 합리적 방안을 찾아내는, ˝대의제를 넘어서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연구를 올바르게 ˝사회화˝하기 위한 사전 준비도 꼭 필요하다. 28

[ ] 진보적 이념들 간의 새로운 통섭을 위해 각 운동들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진보적 이념들간의 분리와 적대를 넘어서야 한다. 맑스주의(와 사회주의, 코뮌주의 등)(적), 생태주의(녹), 페미니즘(보), 급진민주주의(와 무정부주의 및 소수자운동)(흑) 등의 분리가 그것이다....현실적으로는 <자연자원+인간노동+생산수단=생산과정>의 반복적 순환 과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각각의 주요 쟁점이 <자연자원(녹)+인간노동(녹-보-적)+생산수단(적)=생산(녹-보-적)>에 이르는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가설은 ‘녹-보-적‘ 연대가 나열식 결합일 수가 없고, 주체화(노동력 재생산)양식과 생산양식(노동대상과 생산수단의 소유 및 통제 양식)의 특정한 형태의 결합이라는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의 변혁의 내재적 구성 요소로 서로를 내적으로 제약하며 결합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노동력 재생산의 탈가부장적 리모델링과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문화-정치-과학기술의 순환적 연결 분석이 요구된다. 29~30

[ ] 한국의 좌파운동은 학문적으로는 분과학문의 제도적 틀에, 사회운동에서는 부문운동의 틀에 묶여 왔다. 그런데 맑스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이론은 그 자체로는 통섭적 성격을 지니는 데 반해, 개개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현실적으로는 분과학문과 부문운동의 틀 내에 갇혀 실제로 통섭적 연구를 수행하거나 통섭적 실천을 제대로 수행한 경험이 거의 없다. 31

[ ] 제도화된 예술은 마치 스포츠에서 그러하듯이 인간 감각의 전문화/예각화의 기록을 축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나 그 대신 예술가 개인을 포함한 개개 인간에게 내재한 복합감각-감성의 억압과 소외(이에 따른 무의식적 신경증화)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 따름이다. 32
[ ] 현재 상태를 지양하려는 노력은 긍정적 가치 창조의 전망을 여는 (부정보다는 희망을 창조하는) 노력과 분리될 수 없다...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할 새로운 비전은 개인과 사회와 자연 중 어느것도 특권화하지 않은 채 삼자 사이에 비-배타적이고 공생적 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35

[ ] 정서적 역능만 해도 욕망, 충동, 감각, 느낌, 정서 들이 합쳐진 하나의 메타체계로서 외부 자극의 수용과 뇌의 지각, 신체 상태들의 변화들로 구성된 특수한 ‘신체풍경‘의 질적 변화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주체라는 것은..구조-접속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적 존재이다. 36
[ ] <자유-평등-연대의 가치를 ‘체화‘한 개인들 간의 경제적-문화적-과학적-윤리정치적 어소시에이션>을 발전시켜야 한다. 41

[ ] 수동적-반동적 감정으로 물든 주체가 어떻게 능동적-진보적 감정으로 충만한 주체로 거듭날 것인가의 문제는 ‘각성의 정치‘만이 아니라 ‘감정의 정치‘, ‘인식의 정치‘만이 아니라 ‘체화의 정치‘라는 더 확장된 ‘프레임‘을 요구한다....인간주체는 동일성의 논리와 차이의 논리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의 변증법적 ‘절합‘을 통해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 43

[ ] 헤겔과 니체가 절대정신이라는 인식적 주체 혹은 초인적 의지의 주체라는 일방에게 손을 들어줌으로써 감각적-감정적 주체를 억압했고, 억압된 것의 복귀로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를 외면했다. 44

3. 끝없는 이야기

[ ] 무엇을 보더라도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이 순간부터 네 자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무기 없이 떠나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냥 내버려 두어라. 어린 여왕 앞에서는 모든 것이 똑같은 것처럼 너도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어리석은 것이든 지혜로운 것이든 상관없이 전부 똑같이 여겨야 한다. 너는 그저 찾고 물어볼 수 있을 뿐이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71
[ ] 우리처럼 많은 걸 알면,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모든 건 영원히 되풀이되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세상은 텅 비어 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거야. 생긴 것은 다시 없어져야 하고, 태어난 건 죽어야 한다. 모든 것은 상쇄되는 거야. 선과 악, 어리석음과 지혜, 아름다움과 추함. 모든 것이 공허하다.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97
[ ]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넌 짧게. 우리는 길게....여왕의 존재는 시간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계산된다. 여왕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 항상 새로운 이름이. ...새로운 이름만 얻게 되면 어린 여왕은 다시 건강해질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왕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야. 100
[ ] 사람들은 환상 세계를 없애려고 하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 때문에 쉴 새 없이 인간 세상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거짓의 물결을 불어나게 한다는 걸 모르고 있다.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린 환상 세계 주민들의 물결 말이다. 그들은 거기서 산송장으로 허상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기들의 곰팡이 냄새로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켜야 하지.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230
[ ]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전부. 우리는 사람들을 지배하지. 그리고 무는 거짓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상상을 먹고 살거든, 우리는 그 상상을 조종할 수 있다. 이 힘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힘의 편에 붙어서 힘을 나누어 갖기 위해 힘에 봉사했지 231
[ ] 이 모든 것이 특정한 길을 가는 자의 마음 상태와 의지에 달려 있다. 환상 세계는 끝이 없으므로 어디나 중심이 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중심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가깝거나 멀다. 중심으로 오고 싶어 하는 자에게 전부 달린 것이다. 248

[ ] 올바른 이름만이 모든 존재와 사물들에 실재성을 준단다. 틀린 이름은 모든 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지. 그것이 거짓이 하는 일이다. 272

[ ] 모든 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네...하지만 오로지 껍질이 깨질 때만 그렇지 296

[ ] 한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지만 옛날 옛적에 대해 들려줄 수 있습니다. 과거가 그 이야기와 함께 탄생하는 거지요. 361
[ ] 현명해진다는 것. 그것은 기쁨과 고통. 두려움과 동정심. 명예욕과 굴욕감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했다. 위대해진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초월하고 아무것도, 아무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며, 또한 타인의 혐오나 애정도 완전히 무관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526
[ ] 오직 너의 세계를 기억하는 동안만 너는 소원할 수 있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기억을 다 소비해 버렸지. 더 이상 과거가 없는 자는 미래도 없어. 그래서 저들은 늙지도 않아...저들 자신이 더 이상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저들에게는 아무것도 변할 수 없어. 584

[ ] 저들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단다. 언어를 잃어버렸지. 그래서 내가 저들을 위해 이 놀이를 생각해 냈지....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겨우 스물네글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할 거다. 글자들은 언제나 똑같고 다만 그 조합이 달라질 뿐이지. 글자로부터 단어가 형성되고 단어로부터 문장이, 문장으로부터 장이, 그리고 장이 합쳐져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지. 587

[ ] 위스칼나리들은 ‘나‘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았고, 어쨌든 그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으며 항상 ‘우리‘라고만 말했다. 599
[ ] 그 선원들이 상상력으로 배를 움직이는 거라고 설명했다ㅏ....자신들의 상상력을 완전히 하나로 합쳐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더 빨리 항해하고 싶으면 여러 명이 함께 해야 했다. 601


[ ] 변화의 집은, 바깥보다 안이 더 크단다. 622


[ ] 땅속에서는 영원히 밤이 계속되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바스티안은 선택도, 결정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우연이나 자비로운 운명의 힘으로 언젠가 올바로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저녁마다 갱 속에서 태내온 것을 위로 가져와 저물어 가는 햇빛에 내놓았다. 그러고 저녁마다 그의 작업은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불평하지도, 분개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전부 잃어버린 것이었다. 참을성이 많고 조용해졌다. 647

[ ] 우리는 생명의 물! 저절로 솟는 샘이라네. 너희들이 우리를 많이 마실수록 더욱 풍성하게 흐른다네. 661

[ ] 갈증이 가실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기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찼다. 살아 있다는 기쁨, 그 자신이라는 기쁨이. 이제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하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제일 멋진 점은 이제 원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665

[ ] 브레히트는 문학을 사회정치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브레히트처럼 문학을 생각하면 작가는 독자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어야 하고 독자를 가르쳐야 하지요.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내가 무엇을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693
[ ]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율리시스로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들을 수 있게끔 하지 못하지만 뒤마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문학가가 아닙니다...695
[ ] 우리 유럽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무‘로 뛰어들어야만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창조적인 힘을 깨울 수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지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이기도 하고요. 699

볕뉘

0. 3위에 2를, 2위에 1을 투명하게 놓는다. 이야기들은 겹치고 이어진다. 잇지 못한 이야기들은 서로 뿌리를 내리며 잡고 있다.

1. 심광현저자는 자신은 행위-구조로 세상을 본다고 주장하는 NL과 PD 가운데 PD였는데 자신은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점을 반성하고 성찰하고 더 풍부해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 어쩌면 지난 30년동안 처음의 반성과 마주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2. 김사과는 탕진하는 것이 우리라고 말한다. 말을 잃어버려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잃어가고 태워지는 즐거움만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할 말을 잃는다. 작품 속에서도....그저.....뒤샹의 변기처럼....그것이 샘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3.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서 아니 또 다른 길이 주어져 있다. 밖으로 난 길이 아니라 안으로 난 길들이다. 그 무궁무진함. 환상도 아니고 상상도 아니고 그것이 현실일게다. 그래서 우리는 찾는다. 아니 빌린다. 현실에서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신화의 고리에서 마음을 빌린다. ...어쩌면 내려놓지 못하는 아둔함. 그래서 새로운 것을 짚을 수 없는 현실. 두 손에 잡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모두.....그제서야 시작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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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술에 대한 개념이 시대의 변화만큼 확장되고 변했다는 것이다. 몸은 5층짜리 백화점의 60년대의 예술개념에 사로 잡혀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 현실은 최고층 빌딩이 여기저기 세워지는 만큼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는 몸도 마음도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예술의 다른 면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변화를 읽기 전에 뇌단층 촬영이 가능한 1990년대의 뇌과학과 마음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 ] 식물이 뿌리로 영양분으로 흡수해서 생장하는 것이라면, 동물은 뇌를 사용해서 생명력을 유지해가는 개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뇌는 외부의 변화를 내면화하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다음 운동을 예측하는데 원활하도록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사람의 뇌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본디 파충류, 포유류, 인류의 삼부의 뇌를 모두 가지고 있다. 파충류가 가지고 있는 식욕,성욕, 수면욕, 공격욕를 바탕으로 해서 情을 감정하는 기억을 갖는 포유류의 뇌, 그리고 지각을 갖고 정교한 행동과 생각을 설계하는 인류의 뇌의 삼부뇌로 되어 있다. 감각은 특수감각 (시각 75% 청각 20% 후각 3% 미각 2%)과 체성감각, 그리고 내장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 ] 뇌는 좌우뇌의 경계를 가르는 뇌량과 보고, 느끼고, 움직이는 지각과 행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몸과 마음, 말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어느 하나의 기능이 떨어진다면 다른 것도 동시에 활력을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뇌섬엽은 공감에 깊이 관여하고, 배내측전전두엽이 감정과 감각을 연결하고, 통합지각영역이 있어 분화와 결합을 잘 이어주고 있다.
[ ] 산업화 시대나 자본주의 사회가 정해진 것을 발전시키는 좌반구위주의 뇌활용에 집착했다면, 르네상스 시기나 고대 그리스는 좌우뇌의 균형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우뇌에서 좌뇌, 그리고 좌우뇌의 통합 활용과 같이 21세기는 새로운 균형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 ] 바람직한 예술은 이러한 통합적인 능력을 응용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 ] 감각적 시각에서 지각적 시각으로: 시각위주의 표현과 과도함으로 표출된 예술은 편향되어 대중과 올바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작가주의 영향나, 진정한 예술을 요구하는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상황주의 등이 예술의 삶되기를 요구했지만 이 역시 20세기의 시각예술중심적인 실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 지각생태학: 제임스 깁슨은 시각중심의 순수지각 개념과 달리, ˝자연적인 시각은 바닥에 의해 지지되는 몸에 지탱한 머리 속에 있는 눈에 기반하고 있으며, 뇌는 하나의 완전한 시각적 시스템의 단지 하나의 중심 기관일 뿐이라고 제안한다.˝ 감각이 고정된 것이라면 지각은 살아있는 것으로 외부환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물망처럼 움직이는 생명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시선은 고정될 수 없으며 8-12 Hz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물을 느끼고 본다. 스냅사진이나 렌즈구경의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는 감싸안는 시각, 걷거나 움직이면서 보는 이동하는 시각이 대부분이고 정부가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생명학이 내부구조를 다룬다는 점에서 외부환경과 생명체의 관계를 다루는 생태학과 다르다고 봐야 한다.
[ ] 생명체는 먹고살기위해서 외부에서 주어주는 환경을 어포던스 affordance(자연이 주는 혜택이자 선물)로 만들어 왔다. 그래서 생명은 그리 단순하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환경과 불가분하게 뿌리내리면서 지각하고 있고, 자기-의식은 인지적인 앎만이 아니라 비인지적인 유형의 앎, 즉 허구, 환상, 꿈, 매혹 등을 포함해서 본능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3.

[ ]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각적 지각은 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몸에 달린 머리에 있는 눈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시각적 지각이 발견하는 어포던스는 눈만이 아니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몸과 머리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들의 자유로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적, 사회적 생태계의 파괴와 인위적 어포던스의 독점적 집적은 대다수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지속 가능한 삶의 기회를 위혀바고 제한하고 손상시키고 있다....이와 같은 자연 생태학적, 사회 생태착적 위기와 직면한 시각예술의 과제는 무엇일까?

[ ] 깁슨에 의하면 그림의 기능은 어떤 대상의 재현이나 복사가 아니라, 작가가 주목했고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고려한 것(상상한 것)을 보존하는 것이다....외부 변화에 저항하며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어포던스를 제공하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 ] 불변하는 생태학적 환경의 배치는 기하학적으로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시각적 앵글들이 포개진 장소들의 배치이다. 이렇게 많은 앵극을 지닌 장소들의 포개짐이 있는 것은 하나의 환경적 배치 속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동네 뒷산의 작은 숲 속의 계곡 경사면의 단일한 배치 속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새들과 곤충들과 다람쥐의 시각적 앵글들과 그들의 보금자리가 포개져 있다. 하늘에 퍼져 있는 <감싸는 빛>의 광학적 배열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변화하면서 숲의 전체 지형과 그 속에 위치한 나무들의 배치에 끊임없이 바뀌는 음영들을 만들어내지만, 그런 변화는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숲의 배치의 불변적인 것과 상관하여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 숲 안에 거주하는 생명체들에게 따뜻함과 시원함을 교대로 제공하면서 다양한 어포던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실제로 숲의 굴곡진 지형을 거닐면서 머리를 돌려 가며 다양한 앵글로 나무들의 다양한 배치를 둘러 보아야 한다. 동영상으로 이어지는 영화는 이런 시각적 경험을 잘 포착해줄 수 있는 데 반해, 사진이나 그림은 그런 경험들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영화의 쇼트들은 계속 흘러가다 끝이 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려운데 반해, 그림이나 사진은 - 불변적인 것과 가변적인 것의 상호작용의 특정한 패턴을 포착하려고 노력하는 한에서- 그 특정한 패턴 자체를 고정된 형태로 시각화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어느 경우든 하나의 배치 속에 겹쳐지고 포개진 앵글과 장소들의 역동적인 생명감을 포착하여 시각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락 할 수 있다....현대미술의 흐름은 자본의 순환법칙과 유사하게 물리적 시각 physical vision > 자연적 시각 natural vision > 더 큰 물리적 시각 pv+ pv증가분)이라는 순환 법칙에 의해 작가와 관객 모두의 자연적 시각을 소외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 ] 위 표의 종축은 여러 이미지들이 무관하게 순차적인 단계를 의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들뢰즈는 정동과 행동과 관계가 일어날 때마다 정동의 지각, 행동의 지각, 관계의 지각이 동시에 수반되기 때문에, <지각-이미지>는 다른 종류의 <운동-이미지>들로 확장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각-이미지>는 단순히 운동-이미지의 분화의 출발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5 가지 이미지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지각-이미지>는 다른 모든 이미지들이 그 속에 <포개져> 있는 보금자리와 같은 것이다.지각-이미지는 이미 정동의 지각, 충동의 지각, 행동의 지각, 반성의 지각이자 관계의 지각이라는 주장은 지각 자체가 이미 행동이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어떤 어포던스를 발견하고 줍는 행위라는 깁슨의 주장과 일치하는 셈이다.

[ ] 21세기 예술의 과제: 생산기구의 변혁시킨다는 것은 대립들 중의 하나를 뛰어넘는 것이다. 극복되어야 할 제약은 문자와 영상의 대립, 기술과 내용의 대립, 작가과 관객의 대립, 연주회와 청중의 대립과 같은 장벽들이다. 장르적 벽을 넘어 사진에 제목을 붙일 줄 아는 기술적 능력, 음악적 기술과 문학적 기술의 협력 등이 필요하다. 생산자로서 작가의 정치적 진보의 기초는 지적인 생산과정의 여러 전문적 제약과 대립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이다.......작금의 현실은 좌우뇌 분리환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 ] 예술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

이상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미학/문화연구)의 마음의 과학과 예술: 지각의 생태학과 이행기 예술의 새로운 과제 강연에서

볕뉘

0. 생각길은 이리저리 만나게 될 것이다. 인근 미술관에 갔다가 매주 세미나가 있다는 걸 확인해두었다. 미학이론에 천착하던 심교수님의 강연을 듣다.

1. 찾아서 들은 강연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쉽게 설명해주어 흐름과 하고자 하는 논지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WHO가 2020년 우울증*치매의 비율이 2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단다. 생산성을 떨어뜨리려면 적을 부상시켜 다른 병사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이다라고, 경제활동인구가 치매환자와 함께 현격하게 줄게된다는 설명을 한다. 물론 이런 판에 박힌 설명을 좋아하진 않는다. 위축시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것도 미적이지 않다.

2. 많은 부분 동의한다. 그 생각길로 접어드는 방법도 여러갈래일 것이다. 좀더 멋지고 통쾌한 쪽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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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절 시인이 아닌 우리의 내면에도 변덕스러운 날씨에 언뜻언뜻 드는 별 같은 그런 지층이 있다. 긴 시간의 층들은 두텁다. 이미지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주 짧은 시간의 층들은 너무나 얇다. 긴 시간의 층들 사이에 끼인 짧은 시간의 층들은 어느 무심한 발굴자의 삽질에 의해 너무나 자주 무심하게 파괴된다. 32

[ ] 어느 날, 트라클의 시를 읽다가 내가 잊고 있던 뮌스터의 첫인상이 20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한 채 문득 찾아왔다. 아주 짧은 시간의 층이라 얇아서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트라클의 시가 내 시간의 얇은 지층 하나를 돌려주었던 것이다. 시를 읽는 어떤 시간은 이런 시간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 돌아오는 시간. 그 시간을 새로 발견하고는 그 시간으로 들어가보는 것. 32

[ ] 삼척이라는 말조차 잊어버리고 난 뒤 다시 삼척을 들추어보니 떠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이 기차역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는 떠오름 속으로 들어가 영영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오래 중첩된 인간의 역사도 삼척삼척이라고 한 시인이 중얼거릴 때 그림자 너머 어디론가 가고 싶었던 인간의 순간적인 기억만 남는다. 우리는 도착하고 떠나가는 장소를 사랑한다. 이곳에는 일탈의 일렁이는 무늬가 있다. 몸에서 나온 냄새와 영혼의 냄새는 이곳에서 하나로 짜여진다. 누군가 싸준 김밥 냄새도. 41

[ ] 김밥은 잘 정돈된 혼돈을 뜻한다. 김밥에 말려진 재료들은 강, 바다, 들판에서 온 것들이다. 채소, 어묵, 햄, 그리고 간을 한 밥. 이 모든 것들은 소금에 섞이면서 혼동을 갈무리하며 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김밥은 소금이 몰고 오는 혼동이 자물린 차가운 시간을 뜻한다. 소금을 친 음식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운 시간 속, 소금은 그냥 널브러져 있다가 음식이 차가워지면 진면목을 드러낸다. 절여진 시간이 입안으로 들어올 때 얼마나 짜고 쓴지 우리는 알지만 그 유혹을 차마 떨치지 못한다. 삶의 짠맛을 보기 위해 우리는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자주 목이 막히고 떠나오던 기차역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데도 말이다. 42


볕뉘.

0. 무심히 에세이를 읽다가 밑줄띠지를 달아놓는다. 시간을 발라내어 다루는 모습들이 오묘하다. 자물린 시간. 절여진 시간들.......

1. 잃어버린 줄 알았던 얇고 짧은 층의 시간이 돌아오는.......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조금 더 깊은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새김된 시간들로 지금은 더 탄탄해지거나 새롭게 변주되는 앞이 다가오느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발굴된 시간들을 서로 잘 다루는 것이 우리의 다가올 시간을 다룰 기회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디가 아니라 어디로 향해있는 시간들을 손아귀에 모시고 있는 것이 더욱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또 어디로 떠나려고 하는 시간들이 서로의 마음을 더 일렁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 차가운 시간도, 절여진 시간도 꼭꼭 씹어 시간의 즙을 낼 수 있다면, 아마 우리의 삶들은 이리 팍팍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시간의 층을 켜켜로 가지고 있는 시간부자들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을 다르게 연주할 수 있는 듬직한 자산가인지도 모른다. 왕년의 시간만 우려먹거나 훈장처럼 주렁주렁 걸고 있지 않는 한, 곁의 다른 이들의 시간이 섞여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있다면 말이다.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보거나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리 짜고 쓰지만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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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침반은 훨씬 더 유연한 도구라서 이용자가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해 자신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지도를 버리고 나침반을 택하기로 하는 것은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01
[ ] 누에는 조도의 변화나 누에 간의 밀집도 등 환경 조건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런 누에의 생명 주기를 존중하는 유연하면서도 대응적인 접근법이 필요했다. 102
[ ] 랩의 합의된 사항이 ‘유일무이함, 영향력, 마법‘을 지향한다는 점이었다. 유일무이함이란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것을 연구한다는 뜻이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작업하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것으로 넘어간다......지식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향력을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뜻이다....이 개념은 ‘시연을 못 하면 폐기한다. demo or die....전개 못 하면 폐기한다라는 새로운 모토록 채택했다...우리는 단단한 고체보다는 액체나 기체가 되고 싶습니다...116
[ ] 이끄는 사람은 ceo라기 보다는 정원사에 더 가깝다. 정원사는 꽃에 물을 주고, 배양토를 돌보고, 울타리를 손질할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창의성이 폭발하고 정원에 있는 모든 식물과 야생 생물들이 번창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휘권이 없다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성공의 열쇠는 규칙도 아니고, 심지어 전략도 아니다. 성공의 열쇠는 ‘문화‘다....중요한 것은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124~125


[ ]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과학은 콩팥 연구에 접근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뇌 연구에 접근했다....하지만 보이든과 그의 연구 그룹인 합성 신경 생물학 그룹은 뇌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취급하는 편이다. 그리고 분리된 기관이라기보다 서로 겹치는 여러 시스템의 소재지로 파악한다. 249
[ ] 책임감 있는 개입이란 혁신이 더 큰 시스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대상보다 시스템을 우선한다는 것은 책임감 있는 혁신에는 속도나 효율성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미치게 될 전반적 영향에 끊임없이 주목하는 것이고, 사람과 지역 사회, 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257 대상을 창조하는 쪽에서 관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강조점을 옮긴 것도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258
[ ] 스스로를 진화적 조각가라고 하거나, 참여적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바꾸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264


[ ] 지금까지 일어났고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변화의 규모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심 찬 고등학생이 새로운 형태의 생물을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흥미로운 데서 그치지 않는다....이것은 우리가 리스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서 철저히 재고해야 한다는 뜻이다.....안전보다 리스크를 실행한다는 것이 맹목적으로 리스크에 뛰어들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혁신에 드는 비용이 줄어들면서 리스크의 본질도 바뀐다는 것을 제대로 알라는 뜻이다...기업에 자금을 지원한 투자자나 벤처 캐피털리스트도 새로운 접근법에 익숙해져야 했다. 132-133
[ ] 프라이버시는 세상에 자신을 선택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힘이다. 142
[ ] 해당 프로젝트에 딱 맞는 사람을 배치했고, 배치된 사람이 해결책을 찾는 데 헌신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어라. 그들의 자발적 시도를 용인하고 신뢰해라.....위로부터 새로운 규율을 부과하는 대신 이미 기업내에 있는 긍정적 일탈자들의 재능을 활용한 것이다.157,159
[ ] 비판은 우리 작업에 관한 것이고, 불복종은 우리 작업 자체다. 172 금지된 연구 컨퍼런스, 불복종상 175

[ ] 불확실성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 이 책의 원칙을 관통하는 큰 테마다./이제야 겨우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을 만큼 뭔가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우리는 세상이 완전히 바귀는 단계를 통과하는 중이다...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적응력이 있다. 생산성에 초점이 맞춰진 있었지만 이 원칙들은 우리의 새로운 역할을 배우고, 그 역할이 더 이상 효과가 없을 때 버릴 수 있을 만큼 유연해지게 해줄 것이다. 285-287


볕뉘

0. 겉표지의 과장광고들, 소개글도 그러하다. 낚였다. 혹시나 한 것이 잘못이었던 게다. 더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알아야할 몇가지 원칙정도로 말했으면 좋을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미디어랩에 대한 과찬을 아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별하나도 감지덕지 후하다. 그나마 정보가 조금 있다는 것일뿐...

1. 기후, 경제, 재난, 인공지능......무수한 쓰나미들 가운데 어쩌면 저자들이 말한대로 특수 인공지능분야는 극히 제한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의 폭에 대한 감지력은 어느 하나에 머무를 수 없을 것 같다.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에 명민해져야 하는 것도 맞다. 숱한 위험들이 서로 송두리채 우리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사실도......늘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고수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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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왜 청년들이 월 40만 원짜리 방에 사는 주제?에 커피 한잔에 6,000~7,000원 하는 예쁜 카페에 죽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쾌적한 공간에 머무르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럽다. 예쁜 집을 가질 수 없는 청년들은 그 욕구를 잘 꾸며진 카페에서 채운다. 상경한 청년(19~29세)들은 평균적으로 보증금 1,395만원에 월세 46만 원짜리 집에 산다...왜 이들은 쾌적한 공간에서 누리는 잠깐의 여유마저도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로 비난 받아야 하나?

[ ] 이력서에 적힌 취미들은 화려하지만, 그중 태반은 앞서 말한 가성비 좋은 취미들로 여가를 보내거나 ‘시체놀이‘라고 적어도 무방할 것이다. 대신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취미 할 권리‘를 보장하는 날을 꿈꾼다. 나에겐 그게 요가였지만 그것이 무엇이 됐든, 우리는 업무에서 단절된 상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하루 한 시간 이상 몰두할 권리가 있다.

[ ] ‘신상을 안까고 모이는 2030‘: 요즘 젊은이들이 학벌, 나이, 직장, 사는 곳 등의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모임 주제에 따라 취미나 정체성, 생각 등을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모임을 선호한다는 것....한 독서모임의 회원들은 모임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서로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학교나 회사에 다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이 차이가 띠동갑 이상이어도 ‘00님‘이라 부르며 서로 존중해주는 게 이들끼리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 ]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청년은 세대로 묶이기 전에 현재의 사회구조로 인한 고된 경험에 공감하고 대안적 삶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고민의 공동체‘에 가깝다.

[ ] 윗세대가 굶는 데서 벗어나 충실하게 물질적 부를 늘려가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현재 젊은 세대는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고급 욕구를 지닌 세대다. 그 욕구를 사회 분위기가 받아주지 못하니 서른이 넘어서도 방황한다.

[ ] 청년 세대는 촛불을 통해 거의 처음으로 정치에 깊게 관여하는 경험을 했다....‘삼포세대‘라는 말이 대변하듯, 지금의 20~30대는 수동적이고 불쌍한 존재, 시대를 이끌기에는 주체성이 한참 부족한 세대로 인식됐었다.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처럼 역사의 주체로 기록되지 않을 거라는 자조가 팽배한다....무릇 연애나 취업이 ‘다른 친구들을 제치고 나는 누린다는‘ 죄책감이 된 세대다. 희망차고 도전적인 ‘청춘‘이라는 말 대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체념의 정서가 지배적인 젊음,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느 또래 청년의 비아냥이, 이들을 광장으로 모이게끔 불을 지폈으리라.

[ ] 이것은 청년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당신 역시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회 일반의 문제라고. 그러니까 동정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청년세대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볕뉘

0. 한 열흘 전, 한밭 벗들과 위의 ‘신상을 안까고 모이는 모임‘류의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는 조한혜정교수가 윗세대가 좀더 상황을 구조적으로 본다고 말을 보탠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이 변했다. 무척이나 말이다. 거꾸로 그 말은 구조에 집착하거나 일상에만 관심을 둔다는 말로 읽힐 수도 있다. 묶어두려고 둘수록 20대후반은 치고올라오는 20대초반이나 10대후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세대를 핑계삼아 해설하는 것은 자신에게 붙어있는 관성을 애써서 흔들지 않으려는 ‘꼰대‘정신의 발로 일 것이다. 움직임의 방향에 관심을 두는 것, 이미 움직인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탈각해야 할 것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1. 몇몇 20대초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나눌 기회들이 종종 있다. 지금까지 부모님들이 원하는대로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또 딴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얘기해주지 않는 부모세대의 얄궂음, 자신의 가족만 챙기는 심리 밖은 논의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20대 후반인 저자의 말 역시 그러하다. 정규직으로 어렵게 입사를 했는데, 그 때부터 정작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고민에 다시 휩싸이게 된다고 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정면 승부해야 되는 질문을 회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20대 연구원으로 생활을 고려하는 졸업학기 공대여학생은, 남성주류의 꼰대밭을 어찌 헤쳐나가며 살아야하는지 걱정을 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도 무수한 남초 꼰대지뢰밭의 일상의 경험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3. 부모세대는 아마 그럴 것이다. 아직도 최저임금이 인상하듯이 평균적인 삶이 질과 양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물리적으로 허한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인 저지선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소비해보고 선택해본 세대라고 자식세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쾌적하고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당신들과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같다는 점을 깨우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4.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이에 따라 유예되는 것이 아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서로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논의는 불꽃이 튀도록 정면승부할 수록 어쩌면 세대도 나이도 세상과 사회라는 괴물을 순치하는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자다 일어나보니 어느 새 나는 ‘꼰대‘라는 벌레가 되어있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것이다. 세상은 수십차례 객토를 했음에도 골동품이 되려는 이들로 차고 넘친다. 그 깃발을 들고 있는 이 역시 ‘나‘였다.

6. 지난 토요일 다시 모임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같이하다. 20대초반의 한 친구의 가까운 꿈이 집을 짓는 것이라는데 놀랐다. 윗세대가 로망처럼 갖거나 전재산을 털어 만드는 일을 대단치 않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해나는 것, 그녀에게 이미 많은 집짓는 기술을 갖고 있고, 일과 삶의 매듭을 꾸려가는 것들이 몸에 배여있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길을 걷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다. 왜 그렇게들 살지 못할까....마음을 건네다오....저 편에....서로...세상은 열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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