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 ] 감정에도 말더듬이 증세가 있었던 것이다. 내 감정은 언제나 시기를 놓쳐버린다. 그 결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각기 다른, 고립된, 서로 연결되지 않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미미한 시간의 엇갈림, 미미한 지체가 언제나 내 감정과 사건을 전혀 다른, 마치 그것이 본질적으로 무관한 듯한 상태로 바꿔버린다. 60

[ ] 나는 이러한 얼굴에 직면한다. 중요한 비밀을 고백할 때에도, 미에 대한 격렬한 감동을 호소할 때에도, 자신의 내장을 꺼내어 보여주는 듯한 경우에도, 내가 직면하는 것은 이러한 얼굴이다. 그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충실히 나의 우스꽝스러운 초조감을 그대로 흉내 내어, 마치 무시무시한 거울처럼 변해 있었다.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그럴 때에는 나와 똑같이 추한 얼굴로 변모한다. 65

[ ] 그는 햇빛 아래에서 혼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상이 가슴에 와닿았다. 봄날의 햇빛과 꽃 속에서,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그는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주장하고 있는 그림자, 아니, 존재하고 있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햇빛은 그의 단단한 피부에 스며들지 못함에 틀림없었다. 136

[ ] 우리들과 세계를 대립 상태로 만드는 무서운 불안은, 세계건 우리들이건 어느 족인가가 변하면 해소되겠지만, 변화를 꿈꾸는 몽상을 나는 증오하니까 몽상을 아주 싫어하게 됐지. 하지만 세계가 변하면 나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변하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으로 밝혀낸 확신은 오히려 일종의 화해, 일종의 융화와도 비슷해. 있는 그대로의 내가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세상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불구자가 결국 빠져드는 함정은 대립 상태의 해소가 아니라 대립 상태의 전적인 시인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그러니까 불구는 불치가 되는거야. 140

[ ]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불구라는 사실은 언제나 눈앞에 놓여 있는 거울이야. 그 거울에 종일 내 전신이 비치고 있지. 망각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나에게는 세상에서 말하는 불안 따위는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뿐이지. 불안은 없어.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건, 태양이나 지구나 아름다운 새나 보기 흉한 악어가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거지. 세계는 비석처럼 움직이지 않아. 146

[ ] 내 생각이 이해하지 힘든 걸까? 설명을 필요로 할까 하지만 내가 그 이후로 안심하고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믿게 됐다는 사실은 너도 알겠지? 불안도 없어. 사랑도 없고. 세계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도달하고 있는 거야. 이 세계를 일부러 ‘우리들의 세계‘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런 식으로, 세상의 ‘사랑‘에 관한 미몽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어. 그것은 가상이 실상과 결합하려는 미몽이라고 - 이윽고 나는, 결코 사랑받지 못한다는 내 확신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양태라는 걸 알게 됐지. 150

[ ] 가시와기가 암시하며 내 앞에서 즉흥적으로 연출해 보여줬던 인생에서는, 산다는 것과 파멸하는 것이 똑같은 의미밖에 지니지 못했다. 그 인생에는 자연스러움도 결여되어 있거니와 금각 같은 구조의 아름다움도 결여되어, 말하자면 끔찍한 경련의 일종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에 내가 크게 이끌리고 자신의 방향을 설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우선 가시로 가득한 삶의 파편으로 손을 피투성이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두려웠다. 가시와기는 본능과 이지를 같은 정도로 경멸했다. 기괴한 모양의 공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굴러다니며 현실의 벽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행위조차 되지 못했다. 요컨대 그가 암시한 인생이란, 미지로 가장하여 우리들을 속이고 있는 현실을 무너뜨리고 다시는 조금이라도 미지를 포함하지 못하도록 세계를 청소하기 위한, 위험하고 천박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164

[ ] 가시와기는 뒷면에서 인생에 도달하는 어두운 샛길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친구였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파멸로 돌진하는 듯 보이면서도, 의외의 술수에 능하기에 비열함을 그대로 용기로 바꿔 우리들이 악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금 순수한 에너지로 환원시키는 일종의 연금술이라고 해도 좋았다. 181

[ ] 가시와기를 깊이 알게 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미를 싫어했다. 곧바로 사라지는 음악이라든지 수일 후에 시드는 꽂꽂이라든지, 그의 취향은 그러한 것들에 한정되어 건축이나 문학을 싫어했다. 그가 금각에 온 것도 달이 비치는 동안의 금각을 찾아서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의 미는 얼마나 불가사의한 것이가 연주자가 성취하는 그 일순간의 미는 일정한 시간을 순수한 지속으로 바꾸어, 확실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살이와 같은 단명의 생물처럼, 생명 그 자체의 완전한 추상이며 창조였다. 203

[ ] 미는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미라는 것은 마치, 뭐라고 할까, 충치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 해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더 이상 아픔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치과 의사에게 뽑아달라고 하지. 피투성이의 자그만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209

[ ] 미적인 것, 네가 좋아하는 미적인 것, 그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인식에 위탁된 나머지 부분, 잉여 부분의 환영이야. 네가 말하는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의 환영이야. 원래 그런 건 없다고도 할 수 있지. 할 수 있지만, 그 환영을 강력하게 만들고 최대한 현실성을 부여하는 건 역시 인식이야. 인식에 있어서 미는 결코 위안이 아니거든. 여자이고 아내이기도 하겠지만 위안은 아니야. 하지만 결코 위안이 아니면서 미적인 것과 인식과의 결혼에서는 무언가가 생겨나지. 덧없는, 물거품과도 같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지만 무엇가가 생겨나지. 세상에서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그거야.˝ 313

볕뉘

1. 스무해 가까운 시절에 금각사를 가본 적이 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숨가쁘게 보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 안의 금빛, 어두움 속에 찬란이 겹치기도 했다. 미추의 이분구도가 약간 거슬리기도 했고, 광염소나타나 최근 박물관을 모티브로 한 단편도 겹쳤지만 그 자체로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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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 ] 내가 말하건 남이 말하는 것을 듣건 철학적 담론은 내게 크나큰 즐거움이네. 자네들 돈 많은 사업가들의 담론은 짜증스럽기도 하거니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자기들이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자네들 같은 친구들이 불쌍하기도 해. 자네들 생각이 옳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자네들이야말로 불쌍하다고 생각해. 아니 확신해. 20

[ ] 어떤 행위든지 행위 자체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네. 이를테면 술을 마시건 노래를 부르건 대화를 하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는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 않네. 오히려 행위가 행해지는 방법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네. 아름답고 올바르게 행해지면 아름다운 행위가 되고, 올바르게 행해지지 않으면 수치스러운 행위가 될 것이네. 41

[ ] 외모는 뛰어나지 못해도 가장 고귀하고 가장 훌륭한 연동을 사랑할 때는 몰래 사랑하는 것보다 공공연하게 사랑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 45 연인에게는 신들도 인간들도 완전한 자유를 준 셈이네. 그렇게 볼 때 이 나라에서는 연동을 사랑하는 것도, 연인의 청을 들어주는 것도 아주 아름다운 일로 간주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걸세. 46 추하게 행한다 함은 나쁜 사람에게 나쁜 방법으로 청을 들어주는 것이고, 아름답게 행한다 함은 고상한 사람에게 아름답게 청을 들어주는 것이네. 나쁜 연인이란 혼보다 몸을 더 사랑하는 범속한 연인이네. 그래서 그런 연인은 한결같지 않은데, 한결같지 않은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47 그래서 우리의 법은 연인은 연동을 뒤쫓고 연동은 달아나도록 격려하는데, 이런 시련과 시험을 통해 연인과 연동이 이 두 부류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지. 또한 그런 이유에서 첫째, 연동이 빨리 잡히는 것은 추한 일로 간주되네. 만물의 시금석인 시간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지. 둘째 돈이나 정치권력에 잡히는 것도 추한 일로 간주되네... 그런 것들은 어느 것도 확고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은 것 같기 때문이지. 48 미덕에 관련된 종노릇. 48

[ ] 의술이란, 몸을 채우거나 비우는 것과 관련하여 에로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학문이라네. 그리고 명의란 그 과정에서 좋은 에로스와 나쁜 에로스를 구분하여 몸이 나쁜 에로스보다는 좋은 에로스를 받아들이도록 변화를 유도할 줄 아는 사람이라네. 53 일자는 자신과 불화함으로써 자신과 화합한다. 활과 뤼라의 조화처럼. 그렇지만 조화에 불화가 내재한다든가, 조화가 불화하는 요소들로 구성된다고 말하는 매우 불합리하네. 그것은 아마도 높은 음조와 낮은 음조가 처음에 불화하던 상태를 나중에 이 두 음조가 화합하는 상태로 바꿈으로써 조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음악이 할 일이라는 뜻인 것 같네. 54 누구에게든 그것을 적용할 때는 그것을 즐기다가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네. 그것은 마치 의술에서 산해진미를 즐기되 병에 걸리지 않도록 식욕을 조절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과도 같다네. 56

[ ] 누구를 어떻게 찬미하든 올바로 찬미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찬미의 대상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이며 어떤 혜택을 베풀 수 있는지 말로 설명하는 것이라네. 따라서 에로스의 경우에도 우리가 먼저 그분의 성격을 찬미하고, 그런 다음 그분께서 주시는 선물들을 찬미하는 것이 옳을 걸세. 73 에로스는 정의뿐 아니라 절제에도 누구보다 많이 관여한다네. 쾌락과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절제인데, 그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하지 않다고 누구나 동의하니 말일세. 76

[ ] 지혜와 무지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옳은 의견을 가졌지만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대로 알다시피, 그것은 아는 것도 아니고 무지도 아니라오-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어찌 지식일 수 있겠어요? 진실에 관여하는 것을 어찌 무지라 할 수 있겠어요? 옳은 의견이야말로 그처럼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는 것이라오. 그러니 아름답지 못한 것은 필연적으로 추하고, 좋지 못한 것은 필연적으로 나쁘다고 우기지 마세요. 마찬가지로 에로스가 아름답거나 좋지 못한다고 동의한다고 해서 그분이 추하고 나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92

[ ] 그럼 에로스는 무엇이지요? 필멸의 존재인가요? 앞서 살펴본 경우처럼, 그분은 필멸과 불멸의 중간에 있습니다. 94 방편이 없던 페니아가 포로스의 아이를 갖기로 작정하고는 포로스 옆에 누워 에로스를 잉태했지요.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추종자이자 시종이 된 것은,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생일잔치 때 잉태된 데다 본성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자인데, 아프로디테는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96

[ ] 에로스는 포로스의 아들이지만 페니아의 아들이기도 하여 다음과 같은 처지에 놓였어요. 첫째, 에로스는 언제나 가난하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드럽고 아름답기는커녕 늘 맨땅에서 자며, 대문 밖이나 길바닥에서 노숙합니다. 어머니의 본성을 타고나 그에게는 늘 결핍이 따라다니기 때문이지요. 그런가 하면 또 에로스는 아버지를 닮아 아름다운 것들과 좋은 것들을 얻을 방편을 마련해요. 용감하고, 대담하고, 활기차고, 영리한 사냥꾼이고, 언제나 새로운 계략을 꾸미고, 지식을 열망하고, 재간이 좋고, 평생 동안 지혜를 사랑하며, 영리한 마술사이고, 약초 다루기와 언변에도 능하지요. 96 그대는 에로스를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사랑받는 이로 생각한 것 같으니 말예요. 그래서 그대에게는 에로스가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것은 실제로 아름답고 부드럽고 흠 없고 완벽하고 축복받은 자로 간주되지만, 사랑하는 이는 그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97,98

[ ] 사랑은 반쪽도 전체도 찾지 않는다는 거예요. 반쪽이나 전체가 다행히 좋은 것인 경우를 제외하면 말예요. 사람들은 병들었다 싶으면 자기 발이나 손도 절단하려 하니까요.102 활동의 목적은 몸과 관련해서도 혼과 관련해서도,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하는 것입니다...모든 인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잉태 중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한창때의 나이가 되면 본능적으로 출산하기를 원하게 돼요. 그러나 추한 것 안에서는 출산할 수 없고, 아름다운 것 안에서만 출산이 가능해요. 남녀의 관계가 곧 출산히니까요. 이러한 잉태와 출산은 신적인 것입니다. 필멸의 존재 안에 내포된 불사의 요소니까요..이런 출산에서는 아름다움이 운명의 여신과 출산의 여신 역할을 합니다. 103 잉태하여 터질 듯이 부풀어오는 자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크게 달뜨는 까닭은, 아름다움을 가진 자가 잉태한 자를 격렬한 산고에서 해방시켜주기 때문이지요....사랑이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하고 출산하기를 원하지요. 104 새끼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지요. 105

[ ] 필멸의 존재는 본성상 가능한 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는 원칙은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적용되니까요. 영원한 삶은 생식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생식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남겨 낡은 것을 대치하게 하죠. 106 우리가 학습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식이 우리를 떠나기에 있는 것이지요. 망각은 지식이 떠나가는 것인데, 학습은 떠나가는 기억 대신 새로운 기억을 주입해 같은 지식으로 보이도록 우리의 지식을 보존하니까요. 모든 필멸의 존재는 이런 식으로 보존되지요...늙어서 소멸하는 것이 자기를 닮은 젊을 뒤에 남김으로서 보존된다는 말이에요...보편적인 열성과 사랑은 다 불사를 위한 것이니깡. 107

[ ] 젊어서 아름다운 몸에 초점을 맞추되, 길라잡이가 그를 제대로 인도할 경우, 먼저 한 사람의 몸을 사랑하여 그 안에 아름다운 담론을 낳아야 해요. 그러고 나서 그는 한 몸의 아름다움은 다른 몸의 아름다움과 대동소이하다는 것...이것을 깨닫고 나면 한 몸에 집착하는 것은 경멸스럽고 보잘것없는 일이라 여기고는 그런 집착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그 다음 단계는 그는 누군가 몸의 매력은 보잘것없어도 혼이 단정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보살펴주며 젊은이들을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담론을 낳고 추구하게 될 거예요...여러가지 활동 다음으로 그는 여러 지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그래야만 그가 그곳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제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보면서 어떤 젊은이나 사람 또는 특정 행위 같은 특정 사물의 아름다움에 더는 노예처럼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그것은 언제나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형상이 하나랍니다. 다른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그것에 관여하되, 그것들은 생성되거나 소멸하지만 그것 자체는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고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관여하지요. 111,112,113 아름다운 몸에서 두 아름다운 몸으로, 두 아름다운 몸에서 모든 아름다운 몸으로, 아름다운 몸들에서 아름다운 활동으로, 아름다운 활동에서 아름다운 지식으로, 끝으로 아름다운 지식에서 아름다운 것 자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저 특별한 지식으로 나아감으로써 드디어 아름다운 것 자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라오. 114 신들의 사랑을 받고 불사의 존재가 되는 일에는 인간의 본성에 에로스보다 더 훌륭한 조력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115


볕뉘

0. 미학 모임에서 읽는다하여 금각사와 함께 본다. 책갈피 워딩을 하다가 왠일인지 어제 다 날려버렸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선명하게 밑줄이 그어졌다.

1. 읽으면서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하는 리오타르의 왜, 철학을 하는가와 가라타니 고진의 자연철학자를 탐구하는 모습이 겹친다. 사교와 수사의 모습, 그 구조에 대한 긴장감이 덜했는데, 이 책으로 비교적 자세하게 느끼게 된 것 같다.

2. 친구가 고인의 파일을 통째로 보내왔다. 그 가운데 몇 화일을 열어보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김수영....숙제화일들에 소설가인 고인의 진수같은 것이 느껴졌다.

3. 이런 얘기를 서평을 쓰고 있는 친구와 저녁 겸 정종 한잔하면서 나누었다. 플라톤 대단한 친구일세...스승의 업보를 디딤돌 삼아 이천년을 우려먹다니...이제 스승에게 우리를 돌려줘야지....자네가 간 길을 거슬러 올라가볼거야..

4. 읽을 책들이 늘었다. 천병희선생님의 번역에 흠잡을 길이 없다. 순탄하고 박진감있게 읽혔다. 밖은 비바람이 거세고, 눈도 내렸다고 한다. 춘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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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영의 봄‘ - 우체국과 학교가 있는 섬마을 집집마다엔 감나무가 없다. 감나무 대신 당종려가 고개를 두런거리고 있다. 그렇게 일주로를 걷다보면 태산목이 내려다보는 바다와 섬. 그곳엔 봄이 수평으로 졸고 있다. 길가에 도열한 춘백들이 웅성웅성하다 배꼼거리고 벌들이 왱왱거린다. 그러다 양지바우와 바다거울에 비친 이른 봄볕에 매화마저 우숩다. 나폴리 나폴리 건물들은 이름을 빌려 말하지만 여긴 신봉 여긴 일운 여긴 산양 여긴 미륵미륵 답한다.


2.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3.

두 도시의 탐색

‘이 다리를 건널 거야‘ - 꽃을 꽂아. 거울을 봐. 징검다리를 건너봐. 총총. 거울을 봐. 꽃을 꽂아봐. 총총. 거리를 걸어. 눈을 감아. 소리를 들어. 냄새를 맡아 봐. 삶의 기울기. 흘러내려 고인 삶들을 봐. 눈을 꼭 감아. 소리를 들어 향기를 맡아. 소리를 질러. 소리를 만들어 봐. 향내를 만들어 봐.

_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마. 들어보렴 시선을 낮춰 기어보면 더 잘 들릴거야 무엇을 그르치고 있는지. 아무것도 하려 하지마. 그제서야 하고 싶은 것이 보일거야. - 실험극, 구석으로부터 (대전 구 정동교회)


볕뉘.

0. 꽃이 그립다. 몸에서 돋아날 것 같은, 오돌도돌 꽃몽오리가 염증처럼 흘러내릴 것 같았다. 산양일주도로 동백이 보고 싶었고, 그걸로 양이 차질 않아 제주 수선과 동백, 그리고 덤으로 겹홍매화를 보고 왔다. 물리도록 목에 간당간당 호흡을 가쁘게 할 정도로 꽃을 사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버스와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 저기여기를 다녀오다.

1. 통영에 가기 전 새벽이 막 거스를 즈음, 라디오에서는 김민기의 봉우리, 길이 흘러나왔고, 통영가는 동안 거가대교를 지나면서 윤동주의 새로운 길과 백석의 시에 곡을 입힌 김현성의 여러 시를 어느 한 구석에 집어넣고 있었다. 눈이 시큰거리도록... ...

2. 제주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정류장에 들러 물어보지만 대답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노선을 익힐 겸....버스를 타고 제주 중산간도로를 거침없이 지나가자 바람에 비까지 섞여 있다. 성읍환승장을 들러 여기저기 꽃과 마을을 돌아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말고 택시를 잡아 갤러리로 향해버렸다.

3. 그의 삶과 천착이 고스란히 느껴져 괴롭기도 했다. 서울 전시회 영상을 보고 있는데 그의 말이 잡힌다. 오름의 몇천장의 사진에서 추리고 추려서 한 70점..그런데 그것이 몹시 부족하더라는....미리 작품을 간주하고 작업을 하였더라면 덜 했을 건데...그러지 못해 아쉽다고....오름 하나만 잡더라도 평생할 꺼리이자 넉넉하고 광활하다고 말했다. 사진이라기보다는 사진을 매질을 이용한 그림이다라는 말이 수긍이 갔다. 그래서 흐리고 비가내리는 삼달국민학교 구석구석을 음미하며 거닐어 보았다. 수선화도, 동백도, 숨은 돌담길도 .....황홀하기까지한 매화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돌아오는 길은 몹시 길었다. 걷고 걸어 중산간도로를 돌고 돌아본다......급행버스에 몸을 뉘이니 졸음이 쏟아졌다.

4. 대전을 갑천, 대전천, 유등천을 경계로 여러 섬들이 나눠지기도 한다. 아마 삶들도 그러할 것이다. 갑천북단은 서울의 삶들과 닮아있어 유성터미널은 오분 십분단위로 새벽버스조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원도심과 둔산의 신도심.....예전에 산호여인숙과 대동작은책방을 하던 벗은 구 정동교회를 세를 들고 쓸고 다듬어 문화예술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굵은 실선이 아니라 가느 점선들의 연결망을 때때로 불꽃처럼 피어난다. 이번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두 도시의 탐색이라는 주제로 연극, 무용, 두도시의 전시를 통해 그 마음들을 모아 작품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30명 예매. 전석 매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마음의 파장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5. 꽃갈증에서 시작한 다른 도시의 탐색은 생각보다 많은 그늘을 남겨놓는다. 전혁림와 아들의 삶을 통한 그림...대통령 회의실 뒤편에 전혁림 통영그림이 잡혔다. 하지만 그가 군조나 오히려 단청이나 전통사찰의 색과 무늬에 천착했다는 걸 이제서야 느끼게 되었다. 그림과 꽃 허기를 달랠 즈음 여긴 꽃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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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 1 ] 네 감수성 정도는 -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남 탓하지 마라/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서먹해진 사이를/친구 탓하지 마라/유연한 마음을 잃은 것은 누구인가//짜증 나는 것을/가족 탓하지 마라/모두 내 잘못//초심을 잃어가는 것을/세월 탓하지 마라/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안 좋은 것 전부를/시대 탓하지 마라/희미하게 빛나는 존엄의 포기// 네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바보야//

[ 2 ] 벚꽃 - 올해도 살아서/벚꽃을 보고 있습니다/사람은 평생에/몇 번 벚꽃을 볼까요//기억한 게 열 살 무렵부터라면/아무리 많이 잡아도 일흔 번 정도/서른 번 마흔 번 보는 사람도 많겠지/너무 적네//더 많이 보는 기분이 드는 건/선조의 시각도/섞이고 포개져 자옥해지기 때문이겠지요//곱다고도 수상하다고도 이상하다고도/할 수 있는 꽃의 색/흩날리는 벚나무 아래를 한적히 걸으면/한순간/명승처럼 깨닫게 됩니다/죽음이야말로 정상 상태/생은 사랑스러운 신기루라고//

[ 3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내가 가장 예뻤을 때/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생각도 못한 곳에서/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아무도 내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순수한 눈짓만을 남기고 다들 떠나버렸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내 머리는 텅텅 비었고/내 마음은 무디어졌으며/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나는 아주 불행했다/나는 무척 덤벙거렸고/나는 너무도 쓸쓸했다//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그렇게...

[ 4 ] 지천명 - 어떤 사람이 와서/이 꾸러미의 끈 어떻게/푸느냐고 묻는다//어떤 사람이 와서/뒤엉킨 실 묶음/어떻게 좀 해달라고 한다//가위로 자르라고 조언하지만/싫다고 한다/할 수 없이 돕는다 꼼지락 꼼지락//살아있는 인연으로/이런 것이 살아있다는/그런 것인가 그렇지만 별로//휩쓸리고/휘둘려/지치고 지쳐//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다/어쩌면 아마/수많은 친절한 손이 도와주는 것이다//혼자서 처리해 왔다고 생각하는/나의 여러 연결점에서도/여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티 내지 않고//

[ 5 ] 뒤처짐 - 뒤처짐/화과자 이름으로 붙이고 싶은 상냥함/뒤처짐/지금은 자조나 덜 떨어졌다는 의미/뒤처지지 않기 위한/바보 같고 슬픈 수행/뒤처진 것에/매력과 분위기가 있는 것인데/뒤처진 열매/한가득 포용할 수 있는 것이 풍족한 대지/그렇다면 네가 뒤처져라/네 여자로서는 이미 뒤처졌지요/뒤처지지 않고 앞서서/우걱우걱 먹히지 않겠다/뒤처짐/결과가 아니라/뒤처짐/화려한 의지로 존재하라//

[ 6 ] 기대지 말고 - 더 이상/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더 이상/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더 이상/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더 이상/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오래 살면서마음 속 깊이 배운 건 이 정도/내 눈 귀/내 두다리만 선들/무슨 불편이 있으랴/기댄다고 한다면/그저/의자 등받이뿐

볕뉘

0. 동네 미술관에 갔다가 한 작품에서 우연히 이탁오를 다시 만났고, 그 곁에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가 함께 있었다. 궁금증을 참을 길이 없어 구하니 제법 시간이 걸린 뒤에 도착하였다.

1. [6]의 기대지 말고라는 시는 이 책에는 없다. 소녀감성을 자극하려는 듯 사진과 발췌한 시들만이 이렇게 담겨있다. 기대지 말고라는 원서를 곧 구입하게 될 듯싶다.

2. 감수성/벚꽃/뒤처짐. 버티다가 총회 뒤풀이를 다녀왔다. 인사는 해야할 것 같은, 어쩌면 지천명을 지나 그 관계의 끈이 도드라져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틀로 사고하고 사유하고 삶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몸이 먼저 밀고가는 듯이 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진눈깨비는 오고, 비는 내리고... ....

3. 그리고 밤늦게 헤어지면서 참 욕심의 밑절미나 미련같은 것이 남아있구나 하는 한숨도 나왔다. 모임의 관성이라든가, 고민의 이력이나 생각의 이력이 보이지 않음을 얕은 취기가 생각을 밀어부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통증은 다음 날 책선배의 만남과 낮술에 조금 달래졌다.

4. 이바라기 노리코의 삶을 알지 못한다. 윤동주의 시를 일본 교과서에 3편이나 실리게 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죽음이후마저도 깨끗한 무엇이 들어있는 것 같다.

5. 동백꽃이 무척 보고싶다. - [2] 벚꽃은 사실 무척 쓰고 싶던 문구였다. 쓰면 선을 넘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였는데, 이리 마음을 미리 펴놓은 것을 알고 놀랍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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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리어왕

1.

[ 1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햄릿 없는 햄릿은 상상 불가능하고, 우리가 햄릿을 읽고 보는 이유도 햄릿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햄릿에 끌리게 되는 걸까? 그럿은 햄릿에서 볼 수 있는 양극의 신비로운 공존 때문이다...햄릿은 우리의 반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보편적인 사고와 행위는 있음과 없음, 선과 악, 허구와 실재,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이분법적인 사물 인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작은 햄릿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탈하여 마음의 준비가 최고 이며 순리를 따라야지라고도 말한다. 이런 무심한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는 햄릿이 이분법의 세계에 속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햄릿의 중간에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이 놓여 있어, 인간의 존재문제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뤄내고 있다. 저자는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옮겼다. 216-217

[ ] 아무 상관 없어. 우린 전조를 무시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잖은가. 죽을 때가 지금이면 아니 올 것이고, 아니 올 것이면 지금일 것이지. 지금이 아니라도 오기는 할 것이고. 마음의 준비가 최고야. 누구도 자기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지 모르는데, 일찍 떠나는 게 어떻단 말인가? 순리를 따라야지. 199

2.

[ ] 리어: 언니들 것보다 더 비옥한 삼분의 일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말하라 코딜리아: 없습니다. 전하 리어: 없습니다? 코딜리아: 없습니다. 리어: 없음은 없음만 낳느니라. 다시 해봐.

[ 1 ] 코딜리아에게 사랑은 말이 아닌 침묵이고 행동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제자리인 가슴을 떠나 입으로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182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은 그녀의 진실에 대한 집착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가 가진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모든 사물을 있음과 없음, 진실과 허위, 선과 악, 미와 추 같이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하는 거의 본능처럼 굳어진 습관 말이다. 184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그 정도는 때로 섬뜩할 지경이다. 우리가 코딜리아의 순수함이나 사랑과 진실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거리감을 느낀다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89 리어왕은 코딜리아보다 훨씬 더 경직되고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사고한다. 그의 입장은 ˝없음은 없음만 낳느리라˝라는 말에 요약되어 있다. 그의 사고 체계에서 있음과 없음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벅이고, 그 둘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낳는다. 186

[ 2 ] 리어가 ˝제 새끼를 잡아먹는 놈˝보다 코딜리아를 대하겠다는 선언. 앞으로 다가올 모든 태풍과 광기와 선악의 투쟁과 생사의 고통과 그 비극적인 결말을 잉태한 이 우주적인 미움과 분노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근원은 리어가 삶과 우주에 대해 품고 있는 절대 긍정의 힘이다...리어의 절대 긍정과 절대 부정이 내포하는 세계가 바로 이 인물의 폭이며 크기이기 때문이다. 192 리어왕의 비극은 이분법적 사고의 승리인 동시에 패배라 할 수 있다. 코딜리아에게 이분법적인 없음 말고 다른 표현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리어의 가슴속에 있는 절대 긍정의 에너지가 그 반대편인 절대 부정 쪽으로 실핏줄말큼이라도 흐를 수 있다면 리어왕의 비극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다....리어는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을 절대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옳다라는 관성)...빛과 어둠, 물과 바람, 하늘과 땅이 서로를 껴안으려고 돌진하나 화합하여 공존하는 법을 모르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휘몰아칠 때 우리는 이 현상을 태풍이라 부르고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이 그리할 때는 광기라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러와 코딜리아의 이분법적 사고는 모든 갈등과 비극의 근본 원인이다. 193 사랑은 있음과 있음의 직접 대결이 아니라 없음과 있음의 간접 대결이다. 195

[ 3 ] 리어는 자신이 선하다고 나서서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 온갖 죄인들을 욕하면서 자신을 그들과 구분하여 ˝난 지은 죄보다는 덮어쓴 게/더 많은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밑바닥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그리고 자신은 선한 쪽에 속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그의 비극은 거의 자신이 유발시킨 것이지만 그 가장 커다란 원인은 그가 의식하지 못한 채 따르고 있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211 그의 표현방식도 문제다. 자기에게 고통을 주은 원인을 질병으로 정의하여 공격이나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전히 이분법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밖에서 안으로 옮겨 왔으므로 고통이 증폭될 뿐이다. 212

[ 4 ] 시간은 숨어 있는 흉계를 드러내고 감춰진 잘못을 창피 주며 비웃지요. 27


볕뉘

0. 바닷가를 찾았다. 한 카페를 찜해두었는데, 책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도시같은 카페가 다소 시끄러웠다. 낚시인들이 들낙거리고, 중장년이 붐볐다. 파도가 보이는 곳. ‘블루하라‘라는 영문카페이름이 다 읽고 돌아서는 길에 인상깊다 싶다. 어쨌든 따사로운 봄날에 매듭을 짓는다.

0.1 물론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너무도 대단하거나 대단했다고 오르내리고 작품을 볼 안목과 마음이 서성거리지 않았기에 더 그러하였다. 친구의 몇 편의 시. 몇 편의 연극. 사랑하는 배우. 가까운 벗의 영화시나리오. 가까워졌다 아주 멀어진 친구의 작품. 달뷴에 희곡에 대한 글. 낭독에 대한 묘한 관심들....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자극을 했을 것이고..이것이 4대비극 한 질을 구매하게 했고....한 십년 전 스스로도 입질을 했었다는 사실이 당겨져 올라왔다. 이제 한 번 완독한 셈이다. 겨우.

0.2 문학, 특히 희곡에 문외한이고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약한 편이라 버거웠다. 인문사회학이면 그래도 몇 가지 개념에 술술 읽어나가지만, 유독 소설이나 문학은 인물을 잡아내는 것이 힘들고(워낙 그런면에서 효율만 바라는 독서가인지도 모르겠다.) 인물을 그려낼려고 하지 않았다. 고백이라면 고백일 수 있겠다. 그래서 실험적인 소설이나 단편, 중편들만 새겨보는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0.3 연달아 읽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번역가의 비평문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이분법의 인물, 그것이 비극의 원점이자 영점이고 그것으로 분석을 그물망처럼 이어가고 있어서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완독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1. 마지막 책을 덮고 난 뒤, 왜 비평을 그리하였을까에 의문을 두어봤다. 에세이가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 활자이상을 담는 그 무엇. 한 인물 한 인물에 담으려는 논리, 감정(감성), 윤리라는 다소 경직된 설명으로 담을 수 없는 그 무엇. 그럴까. 대화 한 마디 한 마디에 감정이 강하게 섞여있거나 사물로 이어져 있는 표현이 전혀 만연체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말을 한다는 것.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그 말 속에는 사건이 잠재되어 있고, 빈말이 아니라 한 인물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 굳이 말한다면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번 낭독을 다시 해 봐야겠지만...)

2. 그리고 작금의 명멸하는 왕들에 대해 견주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무의식 중에 악함으로 꼬리표를 짓는 습관들. 그 초보적인 사유들. 비극을 잉태하는 인물들. 어쩌면 삶의 관점과 행동만큼만 역할이 주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순리를 받아들이고 이분법의 노예의 사슬을 끊는 순간에만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인줄도 모르겠다. 과연 그러할까. 인간은 인지부조화의 생리를 가지고 있는데 반성을 가져올리도 만무하지 않을까. 여러 탑들은 너무도 높아만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 허물고 다시 쌓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3. 시간의 거울을 되비치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을 거는 일이다. 안으로밖으로 커지고 넓어지고 자유스러워지는 일이다. 나름 의미있는 이월의 독서였다.

4. 나의 사적인 도시가 아침 손에 잡혔다. 첫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사물을 대하는 한 예술가의 작은 끈으로 된 작품이었다. 사물을 달리 대하는 숫한 감정의 뿌리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웅얼거림...웅성거림...그것을 발견해내는 한 예술가의 흔적과 그것을 대하는 한 블로거의 글이 맺혔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에 매여 있지 않다. 서로 다르게 피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다른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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