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소리니까 진지하게 읽지 말 것을 권합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다.
바람구두는 나도 몰랐는데 좌파란다. 게다가 이 녀석은 타고나길 어떻게 타고 났는지 웬 책들을 무지하게 읽는다고 한다. 그냥 무지하게 읽는 것만이 아니라 고전부터 시작해서 최신간, 최신형무기도해부터 손자병법, 3,000원으로 차리는 요리상은 물론 프라모델 조립에 관한 책까지 닥치는 데로 읽는 책벌레라고 한다.  

취미도 잡다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나름 뽕을 뽑는 편이다. 그런데 이 인간이 잡다한 지식에 대한 관심과 달리 '잡기'에는 영 젠병이라 주변 친구들은 모두 300다마(당구)는 너끈히 넘기고, 1,000다마의 경지도 훌쩍 넘긴 다마의 천재들과 어릴 적부터 어울렸으면서도 여태 30다마 이상을 쳐 본적이 없으며, 바둑이나 장기는 물론 대한민국 궁민스포츠라 할 수 있는 화투, 일명 고스톱도 장가들어 처음 배웠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한미한 집안 출신인 바람구두가 어쩌다보니 이름 높은 명문 씨족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장인 어른이 딸내미를 냉큼 집어 넘겨주신 까닭이 오로지 명절 화투 판에 광 팔 사위가 하나 부족했기 때문이더라는 전설이 있다.  바람구두를 처억 보면 생긴 건 장비가 형님하겠고(고로 나는 관우아니면 유비련가?), 술은 말술은 너끈히 마시겠는데다가 온갖 잡기에 능해 마당쇠가 형님하고 인사하게 생겼겄다. 등판도 넓은 것이 와이셔츠는 물론 코트 다리미질도 너끈할 것이며, 허벅지가 두툼한 것이 동네 아줌씨들이 명절 떡살 찧어달라며 군침 좀 삼키겄다.  

하여 장인 어른이 관상을 처억 보니 고놈 자식, 울 딸내미 행복하게 해줄지는 모르겄지만 밤새 화투 한 번 잘 쳐주겠다 싶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셋째 딸을 냉큼 넘겨주셨는데... 오호라, 통재로다. 이리도 방통할 줄이야. 이놈의 사위가 허우대만 멀쩡하지 화투에 화투는 커녕 1월, 2월, 3월 짝패 맞추는 것도 못하는 '호로자식'이더라. 제 짝도 하나 제대로 맞추질 못하니 울 딸내미 긴긴 겨울밤 외롭고 쓸쓸하여 눈물로 허송세월하겠구나.  장인의 애간장이 타는데... 

이놈의 막내 사위. 기껏 처가집에 가도 술 한 잔은 커녕 밥 먹고 돌아서면 책꽂이에서 뭐 읽을 만한 거 없나 찾아보고 책이나 읽어대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밖에... 사위도 변명이랍시고 한단 말이 1년에 네 번 기껏해야 장인, 장모 생신에 한 번, 설, 추석 연휴에 한 번 치니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것이 화투짝이요, 아무리 봐도 그놈이 그놈같고, 줄기는 줄기요, 가지는 가지인데 검은 가지,  붉은 가지는 왜 그리 비슷하게 생겼고, 아버님 싸셨다니 이 어찌 동방예의지국에서 나올 소리인가 싶어 멀리 하였고, 학교 다닐 때는 밖에 나가 놀아나지 않아 착하다 하시더니 이제와서 그것도 못 배웠냐고 야단치는 건 웬말이오~  

하였스렸다. 

기축년 신년을 맞아 이놈의 막내 사위 단단히 결심하여 고스톱에 쓸 놀이대금을 차곡차곡 모으니 헌돈이 수천이오, 새돈이 기만냥이더라. 다른 사위들 오기 전에 우리 빙장 어른께 효도나 하련다 싶어 처가에 도착하자마자 군용 양탄자를 펼치고 신나게 맞고를 치는데, 어허 신통한지고. 한 장 맞추고 까 뒤집으니 뒷손이 알아서 맞이 하여주시는도다. 평소 남몰래 연모하였으나 손길 한 번 주시지 않던 똥 쌍피, 비 쌍피가 설사하며 반겨주시고, 자뻑에 폭탄에 두루두루 치고 나니 장인 어른이 화투패를 털썩 내려놓으며 하시는 말씀, "여보게 사위! 요즘 캠핑 다닌다더니 그게 아니라 어디 하우스만 돌아다녔는가?" 

장인 어른의 군자금을 몽창 알겨먹은 것은 전초전이오, 이제 첫째 사위, 둘째 사위, 손아랫 처남과 2라운드가 시작되었으니 어허, 이게 웬일인가. 각 가문을 대표하여 모여든 이들이 늘 제 밥으로 생각하는 바람구두가 한 번 화투패를 던지니 양 광박에 피박을 씌우고, 고,고,고를 연발하니 어느덧 시각은 인시(寅時, 새벽 4시)를 가리키더라. 셋째 사위 발치 아래엔 배춧잎으로 잔디밭처럼 펼쳐져 있고, 금광맥이 터졌는가, 은광맥이 터졌는가 백동전이 하나 가득이라. "여보게 사위! 이 돈을 무거워서 어찌 다 집에 가져가려 하나. 마침 좋은 금고도 하나 들였으니 보관하였다가 내줌세." 

설 명절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거참 신기하네. 친가에서 설날 아침 새배하고 윷놀이에서도 1등을 하더니 이거 올해 운세 대박이로세. 연휴 끝내고 출근하여 담배사러 편의점에 들렀더니 로또 복권 뽑아놓고 팔고 있으니 이것 또한 인연이니 손이나 한 번 잡아보세. 하여 난생처음 복권 두 장을 거금 4천냥을 투자하였겄다. 낼모레 발표니까. 오호, 이거 한 방이면 뭘 하나 궁리하는데 울마눌이 지긋이 눈을 뜨고 묻기를 "제가 서방님과 함께 살아오는 동안 지금껏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왔던 것은 비록 가난하여도 조석으로 책을 읽고, 허황된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로또 대박을 꿈꾸시다니 곁에서 뵙기가 매우 황망합니다." 

"어허,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견리사의라 하였소. 이익을 취하였더라도 그것이 남의 것을 탐한 것이 아니며, 설령 이익을 얻었다 하더라도 의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의를 행하는 것이오. 어찌 아녀자의 좁은 소견으로 장부의 길을 가로막으려 하시오." 

"그러시다면 소저, 로또에 당첨된 연후에 어디에 사용하시려 하는지 여쭈어도 될런지요." 

"일러 보시오." 

"로또 1억이 되면 어디에 쓰시겠소?" 

"그댈 주리다." 

"10억이 되면 어디에 쓰시겠소?" 

"집을 사리다." 

"100억이 되면 어디에 쓰시겠소?" 

"음, 문화재단을 차려서 50억은 재단기금으로 하고, 나머지 50억은 운영자금으로 하여 잡지를 창간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어찌되었든 좋은 일에 쓰겠소." 

울마눌... 눈을 살포시 뜨고, 날 쳐다보다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으휴, 인간아! 명색이 좌파라면서 로또 맞은 돈으로 문화센터 차리고, 재단 만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니? 그게 명분 있는 짓이니. 하여간 이놈의 인간은 하는 짓마다... 에유, 내가 못살아." 

"음, 부인! 생각 해보니 참 쪽 팔린 일이었구랴."

어차피 안 된 걸 뭐 어떠하오~ 

* 그런데 이 얘기 신문에 칼럼으로 쓰면 욕 먹을까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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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0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재미있어요 꼭 칼럼쓰세요.
그나저나 저도 몇번이나 고스톱에 도전했는데, 도저히 어떻해야 이기는 게임인지 몰라 오년전쯤엔 자포자기 했는데, 이 글을 보니 새로 도전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기네요. 저도 해봐야지 으샤으샤!!
50억 버시면 큰 서재를 지으사 알라디너에게 개방해 주소서..

바람구두 2009-02-03 10:35   좋아요 0 | URL
그리 하겠나이다. ^^

드팀전 2009-02-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뻐해라...나 지난주 로또 만원 어치 사서...오천원 하나 맞았다.
..쪽팔려도 있음 좋겠다.로또!! 이번주에도 살거다.

50억되면 내가 1억은 너네 재단에 출자해줄께...아는 사이이니 모른척은 하지 않으마..
그런데 요즘은 대략 1등이 20억 수준이란다. 너 로또 안해봤구나...

바람구두 2009-02-03 10:36   좋아요 0 | URL
응, 나도 이번에 보고 대략 실망했다.
뭐니? 뭐니? 이거 대박의 수준이 너무 낮아졌잖아.

그런데 우리 재단말고, 나에게 출자하며 안 될까? 흐흐

드팀전 2009-02-03 10:44   좋아요 0 | URL
응...알았어.
(재)바람구두에 투자할께...
그러니 너도 이번주에 나의 로또 당첨을 기대해다오.
6개 중에서 3개맞았으니 이제 3개만 더 힘내면된다. 별거아니야..^^

바람구두 2009-02-03 10:47   좋아요 0 | URL
푸하하...
non-sect radical들의 로또 바람이련가?
그래, 너라도 제발 되렴.

Mephistopheles 2009-02-0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낄낄..
제가 아는 바람구두님이 "타짜"였을 줄이야...

나중에 화투판 벌이지면 '이거 왜이래 나 알라딘 하는 남자야~" 한번 날려주시길..ㅋㅋ

바람구두 2009-02-03 10:48   좋아요 0 | URL
타짜는 아니고...
어쩌다 소 뒷걸음질 하다가 그만 '똥' 밟았지요. 크크

마늘빵 2009-02-0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쿠, 이거 넘 재밌습니다. 바람구두님의 '그 분'도 만만치 않으시군요! 로또 한지 오래됐는데... 이번주에 한번.

바람구두 2009-02-03 11:45   좋아요 0 | URL
^^;;; 하여간...
재밌으라고 쓴 글에 이런 반응을 보이시면 울마눌에게 맞아 죽습니다.
메피님 아주머니만 하려고요.(슬그머니 메피님에게 짐을 넘기는 바람구두)

Mephistopheles 2009-02-03 17:13   좋아요 0 | URL
용호상박입니다.

바람구두 2009-02-03 17:49   좋아요 0 | URL
기런 거야...무선 여자였던 거야? 흐흐

조선인 2009-02-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어떻게 된 게 고스톱 룰은 배워도 배워도 계속 까먹게 되요. 게다가 판 도는 그 짧은 사이에 잠드는 신경줄이라니, 온 가족이 포기했다죠.

바람구두 2009-02-03 12:22   좋아요 0 | URL
그건 뭐 기면발작증이라고요.
병입니다.

마노아 2009-02-0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쑤~ 추임새 넣으면서 읽었어요. 가락이 어찌나 구성지던지요! 칼럼에 꼭 실으셔요. 다 같이 웃자구요! 전 몇 달 전에 똥통에 빠졌다가 깨끗이 샤워하는 꿈을 꿨는데 난생 처음 사본 로또에서 단 한 자리도 안 맞더라구요..;;;; 나중에 친구가 그러는데 목욕하면 안 된다고 하네요. 그럴 수가!

바람구두 2009-02-03 13:13   좋아요 0 | URL
저런 꿈을 잘 꾸려면 그런 꿈을 꾸어야 하는데요.
그나저나 일요일날 꿈꾸고 로또 사고 기다리는 동안엔 냄새 좀 나겠는데요. 흐흐

paviana 2009-02-0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또 한장에 1000원된지 한참전이거든요.ㅋㅋ
글구 100억 되도 세금 22.5% 떼면 돈 한참 줄어들어요.

바람구두 2009-02-03 13:15   좋아요 0 | URL
아, 번호가 한 장에 두 개씩 있더라구요.
그래서 2,000원인가?

100억에 22.5%면 22억5천만원이니 뭐 그 정도면 재단 차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들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좋은 책들 출판하라고 출판사들에게 팍팍 지원해줄 것 같아요. 번역자들에게도 지원 사업 팍팍...

흐흐...하늘은 이런 저에게 로또 대박을 주시오소서.

바람구두 2009-02-03 15:22   좋아요 0 | URL
난 파비님이 댓글 안 달아줘서 고전강독 멈춰버렸다오.
그거 꼭 알아야되요.

paviana 2009-02-03 17:27   좋아요 0 | URL
헉 이런 무서운 말씀을....흑흑흑

stella.K 2009-02-0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거운 소리니까 진지하게 읽지 말 것을 권합니다.

이 말이 더 사람을 진지하게 읽게 만든다니까요.
바람구두님이 좌파니까 그래요.ㅋㅋ
우파였으면 그대로 믿고 읽지도 않았을텐데...
오랜만에 바람구두님식 유머를 보는군요.
기념으로다 추천 한방 때릴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ㅎㅎ

바람구두 2009-02-03 13:33   좋아요 0 | URL
흐흐, 바람구두식 유머라...
그런게 좀 있긴 했지요. 예전엔...

stella.K 2009-02-03 13:41   좋아요 0 | URL
녹슬지 않았어요. 웃겨 주세요.^^

바람구두 2009-02-03 15:16   좋아요 0 | URL
간질간질

딸기 2009-02-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넘 웃기다. 장비 형 관우, 유비라니... 말도 안돼!

바람구두 2009-02-03 15:16   좋아요 0 | URL
흐음... <적벽대전2> 본 거야?
나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딸기 2009-02-03 19:45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런 거 안 봤어.
고우영삼국지 기준인데, 나는...

바람구두 2009-02-04 13:32   좋아요 0 | URL
그건 기준이 너무 높잖아.

turk182s 2009-02-03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바람구두 2009-02-03 15:51   좋아요 0 | URL
ㅎ...

2009-02-03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9-02-03 17:50   좋아요 0 | URL
하, 정말이죠. 흐흐

닉네임을뭐라하지 2009-02-0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오나전 재미나네요
잘 봤어용~

바람구두 2009-02-03 17:50   좋아요 0 | URL
오나전에서 한참 뭔뜻인가? 머물렀어요. 흐흐

기인 2009-02-0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勞道라...,, 로동의 길.. 오늘도 열심히 :) ㅎㅎ

얼마전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봤다가, '로또'를 '로도'로 해석하더라고요. ㅎㅎ
조금은 훈장 선생님 같기는 하지만 ^^; 그래두 재미있었어요 ㅎㅎ

바람구두 2009-02-03 18:33   좋아요 0 | URL
한자는 어째 안 맞는 거 같은데요. 흐흐

Arch 2009-02-03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페이퍼는 이렇게 써야한다는 전범이 아닐까란 생각이 아리까리 떠올랐어요^^
그런데 정말 캠핑 장소 근처에 하우스가 있었던게 아닐까요? 아무리 뒷걸음이더래도 너무 큰똥을 밟은 듯^^
허생전도 떠오르고, 장비같은 바람구두님도 떠오르고.
너무 재미있게 잘 봤어요.

바람구두 2009-02-04 13:02   좋아요 0 | URL
크크... 다행이네요, 아치님에게 그런 칭찬을 듣다니...
(큰 똥 밟았다. 크크)

[해이] 2009-02-03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퍼갈게요ㅋㅋㅋㅋ

바람구두 2009-02-04 13:02   좋아요 0 | URL
어디 쓰시려고요.^^
 

2월 3일까지 한 꼭지... 
2월 4일까지 재단 뉴스레터 마감... 
2월 7일까지 재단 브로슈어 마감... 
2월 11일 재단 조찬강연회 준비(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2월 12일까지 한 꼭지...
2월 13일까지 재단 후원회 총회 PPT 제작...
2월 18일까지 뉴스레터 발송
2월 20일까지 황해문화 발간
2월 25일까지 발송작업 및 원고료 정산
또 무슨 일이 더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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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0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 남으셔요!

바람구두 2009-02-02 10:31   좋아요 0 | URL
헉, 비장해지게시리...
 

꿈을 꾸기 힘든 시절입니다.

얼마 전 『황해문화』 편집회의 자리가 난상 토론장이 되었습니다. 다음호 특집을 ‘교육’문제로 하려했는데, 한 차례의 특집으로 해소될 수 없으며 교육문제로 변죽만 울릴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변명에 불과합니다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 진실 몇 가지를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 계간지가 특집으로 다룰 수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영역들이 꽤 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들라고 하면 저는 종교(특히 기독교)와 교육의 문제를 들겠습니다. 두 가지 모두 시급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지만 섣부르게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곯아 있으며 대안을 모색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필자난도 있지만 너무 거대한 문제라서 후폭풍은 물론 내부에서 방향성을 굳건히 하기도 어려운 문제란 점이 있습니다. 최근 계간지들이 다루고 있는 특집들을 살펴보면 굳이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개 침묵하거나 아카데믹한 틀 속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말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 국가보안법만은 아니란 것이죠.

편집회의 자리에서 나왔던 고민들 중 한두 가지만 소개해보자면 일단 교육문제가 사회문제인데 사회문제를 풀지 않고서 교육문제만을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현상만 진단하는 꼴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왔고, 다른 하나는 불가해한 영역에 대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편집장을 비롯해 『황해문화』 편집위원들이 이미 부모세대의 문화 속에 갇혀버린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요즘 청소년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부모세대 고민의 일단을 훔쳐보았습니다.

학교를 자퇴하는 등 정상적인 교육의 틀로부터 일탈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입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립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 대학을 남들보다 늦게 진학했기 때문에 또 가끔씩 비록 2년제 전문대학이었지만, 다른 대학도 아니고,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나란 존재가 과연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를 궁리해보면 답이 자명합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노라면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정상적인 길로부터 상당 부분 일탈했다가 나중이라도 제 궤도를 찾아 간 셈인데, 이들에게선 삶의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벌어둔 재화가 있으니 현재의 삶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혹여 몰라도 중산층이라 할 만한 부모 세대에 속한 이들의 자녀들 중에서 통계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한 이들이 상당히 많은 듯합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더라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텐데 무지한 탓인지 어째서 그런 현상들이 빚어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대안학교는 물론 국제중, 공교육 재정립만으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잘 모르고요. 

토론까지는 아니어도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실제 경험도 좋고, 생각도 좋습니다.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냥 요즘 아이들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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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9-01-31 10:41   좋아요 0 | URL
쓸데 없는 똥고집이 없다고요? ^^;;;

2009-01-31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09-01-3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의 토론 주제에 어떤 의견이 있을 흥미롭습니다. (꼭 맞는 주제는 아니지만 예전에 제가 썼던 글입니다. http://blog.aladdin.co.kr/maripkahn/550835)

바람구두 2009-01-31 10:40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거나 동감할 수는 없어도 마립간님의 글이나 입장에는 거의 언제나 일관성(일종의 자기완결성)이 있어서 읽고 있노라면 많이 배우게 됩니다. ^^
어쨌거나 지금 제가 궁금한 것은 어른들이 보는 요즘 아이들이라는 다소 소박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면 해서요. 교육문제는 당연히 사회문제이므로 이 문제로 이야기하자면 결국 한 공동체가 사회를 어디로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어떤 철학과 물적 토대를 구축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겠죠.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날밤새워야 하죠. 사양하려고요. 특집으로 채택된 것도 아니라서요. ^^

바밤바 2009-01-31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어린시절부터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이 내면화되다 보니 본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차적인게 된거 같네요. 굳이 비유를 들자면 말 고삐를 쥐고 말고 함께 달리는 행인이 요즘 젊은이들 같네요. 말을 타고 달리는게 더 좋다는 걸 알지만 말타는걸 배울 시간도 없고 말 타다 다리라도 부러질까 두려우니 말과 함께 달리는거죠. 이제는 서서히 말 타고 달리는게 왜 좋은지도 모를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우석훈이 이야기한 세대착취의 하위 피라미드에 속한 세대일수록 말이죠.

바람구두 2009-01-31 10:12   좋아요 0 | URL
아,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자기계발의 내면화로 인해 정작 자신을 잊거나 잃게 되었다는...

드팀전 2009-01-3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목을 보니까..오히려 나는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요즘 어른들은 어떤 꿈을 꾸는가?"

잔인한 질문이거나 혹은
부질없는 질문이거나

대량생산된 진보적 답변이거나 혹은
낭만적 백일몽이거나


'요즘 어른들은 어떤 꿈을 꾸는가? --그리고 무얼하지?'

바람구두 2009-02-02 09:40   좋아요 0 | URL
대박의 꿈을 꾸고, 로또를 산단다. ^^
 

사람이 그리워서 커뮤니티 하나를 만들어 지금도 계속 그 안에 몸을 담고 있다가
사람이 너무 지겹고, 무섭고, 힘들어져서 지금은 운영자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다고 하지만 제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있었기에 제가 찾는 사람이란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어떤 관계에 대한 허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쓸쓸한 세상입니다. 

너무 가까이 할 수도, 너무 멀리 할 수도 없는 ... 가끔 사람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알 듯도 합니다.
예전엔 차마 알고 싶지 않았던 기분인데, 살아보니 세상살이 별것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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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1-2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란 계속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란 생각이 듭니다.
상황은 구두님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저도 그것 때문에 부질 없음을 깨닫 요즘입니다.

2009-01-22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2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2 2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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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9-01-2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써주신 분들께...그리고 스텔라님
사람사는데 허전하고 맥 빠지는 일이 왜 없겠어요.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다가도 힘이 드는데요.
돌아서면 힘들고,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넋두리 하면서도
그 기운에 우쭐하여 또 한 세월을 보냅니다.
고마워요. 여러분이 힘들어 할 때 저도 너른 등짝, 좁은 소견이나마 나누도록 할께요.

2009-01-27 2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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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9-01-28 14:30   좋아요 0 | URL
참 오랜만이네요. 고마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어찌보면 어청수 경찰청장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김석기 서울시경찰청장이 결정된 순간,
이미 경찰의 강제진압은 예견된 것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지난해 촛불집회에서도 물대포와 살수차를 동원한
무리하고 강제적인 진압으로
이미 많은 원성을 샀던 인물이었고,
아이들에게 광우병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던
유모차 촛불 어머니들을 아동학대범으로 몰아갔던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을 경찰청장으로 승진시킨다는 것은
2009년 MB정부 집권 2년을 맞아 시민의 안전과 안녕을 대신해
피도 눈물도 없이 정권의 안전보장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경찰의 무리한 강제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철거민 여러분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악에 바쳐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대한민국을 떠나
그곳에서는 평화롭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 하지만 경찰은 기자브리핑에서조차 기자들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았고,
경찰측 발표에 따르면 그들, 목숨을 잃은 철거민들을 지칭하는 말은 '현행범'이었다고 합니다.

** 잠시 전 발표를 보니 김석기 경찰청장이 승인하여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것이라는 속보가 나왔군요.

*** 경찰은 철거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을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철거민들의 투신이나 기타 위험에 대비한 매트리스 설치 등 안전대책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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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1-20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에 바쳐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대한민국
-> 이 대목이 너무 와 닿네요.

도대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다치고 힘들어야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닌데,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한 것도 아닌데, 단지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했을 뿐인데, 왜 그들은 목숨을 잃고,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와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하는 걸까요? 정말 우울하고 참담하고 막막하네요.

바람구두 2009-01-20 17:27   좋아요 0 | URL
이런 시국에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지만...
요즘 개콘에 안 기자가 인기인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난 경찰특공대 투입하라고 했을 뿐이고...
그 사람들 죽은 건 내 알 바 아니고....

우리나라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들과 일전불사할 각오인 모양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1-20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먹고 살게 해달라고 뽑아줬을텐데 먹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게 하는군요.썅

바람구두 2009-01-20 17:28   좋아요 0 | URL
마음속에서 천불이 입니다.

Kir 2009-01-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행범이라니, 하는 짓만큼이나 말이라고 하는 것도 가관이예요-_-

바람구두 2009-01-20 18:06   좋아요 0 | URL
M(막가)B(보니)...

로쟈 2009-01-2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악하다'는 별로 써본 적이 없는 말인데,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뱉게 되네요. 사악한 놈들...

바람구두 2009-01-20 18:07   좋아요 0 | URL
오늘 국무회의에서 지난 2005년 폐지되었던 검찰 내 공안3과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올초 <경향신문> 칼럼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아냥거렸는데... 아무래도

turk182s 2009-01-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 투석전이 벌어지네요,,작년촛불때는 스스로들 "폭력"이라는그물에 갇혀 이도저도못하더니만 이제는 완전히 스스로, 자연적으로 "비폭력,폭력" 이라는 의제들을 깨네요,,정국이 어떻게될지..암연합니다. 정권 입장에서는 그나마 겨울이고 명절시즌이라 대중집회가 약할거라고 ,사태가 더커지지않는다고 보던데..아침 소식듣고 회사에서도 계속해서 가슴이 떨리더군요,

바람구두 2009-01-21 16:42   좋아요 0 | URL
이미 꽃병도 등장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