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스 7
이치구로 노보루 감독, 이지마 마리 외 출연 / 매니아 엔터테인먼트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밀레느! 노래는 하트야!

 

 

린 민메이가 젠트라디와 인간 간의 전투를 노래로 종식시킨 지 50년 후.

그러나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크로스 7 기체 내 인간들로선 음악의 효과가 완전히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시대.

1화는 록밴드 파이어 봄버 팀의 밀레느의 첫 영입 기념 콘서트에서부터 시작된다. 

 

 설정으로 봐선 처음부터 남자보컬 바사라의 맘에 들어 여성보컬로 들여온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이 녀석은 탈가정 소녀;;; 그것도 막시밀리언 함장과 미리아 시장의 딸이다. 아빠와 엄마가 각각 함대와 도시를 거느리고 있는 만큼 엄청난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데도 가출을 감내할 만한 사정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물어봐도 밀레느는 입을 꼭 다물고 있고 상황을 보아하면 엄마와 아빠가 언론 앞에서건 사적 공간에서건 만나기만 하면 충돌하는 게 원인인 듯;;; 어머니는 음악으로 인해 감화를 받은 젠트라디 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느가 록커가 되는 건 반대한다. 그러나 일부러 엄마의 마음에 안 드는 짓만 하는 14살 철부지 딸의 억지에 반은 져준다. 그러나 조건을 다는데, 감린이라는 군인과 맞선을 보라는 것.

 밀레느도 감린을 만나는 게 싫지는 않다. 그러나 이 감린이 굉장히 고지식한 청년이라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일단 사사건건 우주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바사라를 딴따라라고 하면서 비웃는데 어찌 '내가 이 밴드에서 베이스 겸 보컬을 하는데'라고 떡하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름 정숙한 요조숙녀인 마냥 연기하지만 문제는 그 연기가 굉장히 어수룩하다는 데 있다. 결국 밴드 멤버들에게도 맞선 상대에게도 자신을 속이게 되는 밀레느. 처음엔 어머니의 양육에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고, 자유를 미끼로 해서 딸을 속박하려 했으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녀도 나름 계획이 있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첫째로 거짓말을 옵션으로 추가한 건 밀레느 자신이 선택했고, 둘째로 감린이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남자였다.

 

 

 

노래로 산을 움직이겠다는 남자 바사라. 

 

 이제 마크로스 시리즈, 아니 마크로스 7을 마지막으로 노래하는 파일럿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녀석은 시티7에서 전투경보가 떨어지면 배틀로이드를 끌고 우주에 나타나지만 '절대 전투를 하지 않는다'. 처음에 나타나서 뭔가를 발사하긴 하지만 그건 총알이 아니라 스피커다. 일단 소리가 충분히 들리도록 환경을 조성한 뒤에 기타로 변신시킨 조종키를 잡고 이 녀석이 뭘 하는가 하면 '노래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인정신이 충만한 감린이 처음에 이 녀석을 보고 욕을 퍼부으면서 당장 부수기 전에 내려오라 협박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제정신인가?

 뭐 이 녀석이 제정신인가는 둘째치고(...) 변명을 좀 하자면 바사라는 사실 목표가 있어서 노래를 부른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도록 만들고 싶다는 목표. 이것도 이 녀석에 관해서 변호가 안 되는군 젠장. 아무튼 이 녀석의 노래 어딘가에 아니마 스피리치아라는 게 있어서 프로토데빌이라 불리는 적군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괴로워하며 도망을 간다. 게다가 이 녀석의 기체 조종 실력이 꽤 신박해서 적군이 총알을 퍼부어도 막 이리저리 로봇을 움직여서 피한다. (탄막게임?) 노래하면서 화가 나서 총도 쏜 적이 있다. 그러고보면 총을 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연장에서 밀레느를 밀친 깡패들에게 주먹을 쓰고 나서 후회하는 걸 보면 그냥 평화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특이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애니메이션이 흥한 이유는

워낙에 좋은 록음악과 개성있는 캐릭터, 그리고 그들만이 지닌 각자의 고민이 해결되가는 스토리때문일 것이다.

 

 계속 우주전투에 등장하여 적을 노래로 격퇴하다보니(...) 이에 흥한 군인들이 속속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일단 민메이의 팬이자 군의관인 치바가 사운드부스터라거나 사운드의 에너지에 색깔을 입혀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신박한 기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육안에 확실히 보여서 그런지, 그 광선을 보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리고 그것에 맞은 적군은 비명을 더 크게 지른다(...) 그러나 파이어 봄버가 민간인들로 구성되다 보니 확실히 통제될 수 있는 군용밴드를 만들고 싶었던 장교는 재밍버즈라는 밴드를 만든다. 그러나 워낙 바사라같은 천재가 나기 힘들다보니 군의 시도는 계속 난관에 부딪친다. 파이어 봄버는 유명해진만큼 그들을 향한 질투와 스캔들에 둘러싸인다.

 

 

바사라는 바사라대로의 고민이 있다. 프로토데빌들이 전혀 자신의 노래를 들으려하지 않을 뿐더러, 노래를 들으면 고통스러워하거나 도망간다는 점.

바사라가 가장 난감해한 적이 바로 시빌이다.

 

 그러나 마크로스 시리즈가 늘 그렇듯이 강력한 프로토데빌인 시빌도 그의 노래실력에 감탄한다. 여러번 지구로 쳐들어와서 스피리치아를 빼먹고 바사라를 말 그대로 반죽음에 처할 뻔하게 한 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신이 여행한 은하도 구경시켜주는 등 소통을 시도한다. 결국 마지막엔 모두와 함께 바사라의 노래까지 부른다. (역시 노래는 노래방에서 모두와 같이 불러야 가사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다?!)

 바사라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결국 마크로스 7을 떠나버린다. 하지만 참 아까운 캐릭터다. 패션감각과 함께(...) 비중을 좀 살렸어도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감독은 은근슬쩍 바사라와 시빌 간의 로맨스까지 노린 듯하다. 그녀가 힘을 잃고 마크로스 7 변두리 숲 속에 봉인되었을 때 바사라가 매번 기타를 들고가서 노래한 걸 보면, 바사라도 그녀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충사 애장판 10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 속 풍경을 마치 그림처럼 그려놓았다. 아 참 그림이지 이거.

 

 만화책에서도 그렇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겠는데, 1기와 달리 2기에서는 시작과 끝(스페셜)이 매우 절묘하게 맞아들어간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같은 이야기랄까. 둘 다 광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첫 시작은 우연히 광주와 비슷한 맛의 술을 만든 양조장 가문이야기이고 끝 마무리는 특별한 벌레를 잡아죽이기 위해 광주로 인공벌레를 만든 충사가문 이야기이다. 뒤의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겠다. 1기에서처럼 벌레를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이어나가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1기에서 벌레에 대한 소개 그리고 벌레가 일으킨 초자연현상에 말려드는 개인 혹은 마을이야기를 펼쳐나갔다면, 2기에서는 벌레를 이용하려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충사 1기에서도 나왔듯이 벌레는 보통 인간세계에 큰 해는 끼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1기에선 초자연현상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경솔함으로 인해 사건이 터지거나

혹은 벌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 현상 자체를 이용하는 인간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SF에선 사악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영리를 위해 과학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듯이 충사의 세계에서도 간혹 충사 자신의 사정으로 인해 벌레를 이용하는 충사가 있나보다. 사실 사악한 주교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종교의 힘을 사용한다거나, 아까 말한 과학자가 등장한다거나 하는 스토리는 흔해빠졌다. 그러나 그것이 충사의 세계로 옮겨질 땐 약간 특이한 형태로 변화된다. 바로 가문의 형태로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6화 '꽃에 취하다'에서는 한 정원사 가문이 나오는데, 벚나무에서 벌레를 먹은 아이를 발견하고 나서부턴 약사 가문으로 바뀌어버린다. 그것도 모잘라 그 가문 모든 남자들이 그 여자아이 하나에게 미쳐서, 그녀의 생명을 좀 더 오래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 약을 찾아 먼 고장에서 온 소녀들의 머리를 잘라 여자아이에게 접붙이기까지 한다;;;

 사실 공포 장르에서 가문은 꽤 오래 전부터 써먹은 소재이다. 에드가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는 폐쇄된 마을이라던가 가문의 비밀을 상당히 좋아하는 공포소설작가였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에드가 앨런 포보다 더 SF적이고, 사람들은 그 이유가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크툴루 신화에 있다고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쓴 작품 <벽 속의 쥐>를 보고나서, 초자연현상을 대대로 이용하는 가문이 있다는 설정이 공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대로 저주받은 가문이 하나둘씩 처절한 죽음을 당하는 광경이 사람들에게 연민어린 공포를 준다면, 반대로 그걸 비밀의 서로 만들어 봉인해두고 어떤 순간에 그걸 적을 향해 풀어놓는 가문이란... 흠;;; '저게 인간이냐?'라는 생각과 함께 혐오감을 유발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약한 계층인 벌레가 일으키면 아름다운 초자연현상. 그것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일으킬 경우 어떻게 되는지 충사에서는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가문의 희생자인 쿠마도.

 

 충사에서 사실 1화 이상 연속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주 드물다. 심지어 충사 1기 분위기를 장악해버린 누이도 한 번 얼굴을 비추고 이후 계속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판에 이 녀석은 특별편으로, 그것도 2화정도 되는 분량으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아트는 커녕 캡쳐로나마 검색창에 등장하지 못하는 슬픈 캐릭터이다(...)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가 미나이 가문의 충사이기 때문. 그는 본래 벌레를 볼 수 없는 몸이었지만, 가문에서 혼을 강제로 빼내 광주로 만든 벌레를 삼키게 만든 이후로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혼이 없는 상태'인지라 벌레에 씌인 사람처럼 말도 별로 없고 감정표현도 매우 적다. 게다가 그에게 사랑 비슷한 기운을 몰고 온 여자가 탄유라는 게 문제인데... 1기에 의해 생성된 끈끈한 깅코탄유 팬들에 의해 묻히게 될 듯. 하지만 난 이렇게 무뚝뚝한 캐릭터 상당히 맘에 드는데 엉엉 ㅠㅠ 혹시 충사의 쿠마도를 찾는 분이라면 발로 찍은 캡쳐가 여기 있습니다 쿨럭...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도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 전개였다. 다음에 나올 충사 속장 후반도 기대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カラコレ DRAMAtical Murder BOX商品 1BOX=8個入り、全8種+特典1種 (おもちゃ&ホビ-)
ム-ビック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밍크! 죽지 말고 살아.

1. 사실을 밝히자면 난 리뷰를 기분에 따라서 쓰는데,

지금은 상당히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애니의 평가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리뷰의 분량에는 영향을 끼치리라고 본다. 먹고 살 현실에서의 일이 위기에 몰리다보니 애니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애니의 내용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보는 게 반전밖에 없기 때문에(아무리 BL물이었다지만 액션씬에 좀 신경을 써주던가, 최소한 작붕이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스포일러하는 것도 상당히 난감하다. 그러므로 일단 리뷰는 짧게 쓰겠다.

 

 

2. 이 애니는 아오바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여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러나 영웅(?)은 따로 있다.

아오바는 딱히 그 영웅을 찾을 생각을 하진 않지만, 우연히 그 영웅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아픔과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주변과 자신마저 망가뜨린 코우자쿠, 반대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노이즈 등. 여기서 특이한 설정은 기계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고, 사람과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의 스포일러를 향해 나아가는 좋은 힌트가 된다. 아오바는 사람의 무의식을 자신의 말로 통제할 수 있고,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의 맨 얼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이 때 인간하고처럼 기계하고도 대화를 나눈다.

 

 

3. 밍크는 인디언의 분위기가 강하다.

부족이 거의 몰살당하다시피하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 그는 토우에 재벌이 세운 섬을 파괴하고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다.

그러나 사람과 기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아오바를 보고 그는 다시 삶의 의욕을 찾는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이성을 되찾고 이 애니의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튼 이 애니는 여러가지에서 부족하지만 메시지는 의외로 강력하다. 게다가 아까 말했다시피 배경은 디스토피아인데, 과학에 대해 또 무한대로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딱히 엘리트층이나 과학자같은 지식인들이 양심적이어야 한다는 주제도 아니다. 단지 이 애니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은 든다. 모든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소통을 하면서 상처를 지워나갈 수 있다면 시원스럽고 얼마나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D.G 레드 데이터 걸 1 - 최초의 사자, Novel Engine
오기와라 노리코 지음, 이하윤 옮김, 키시다 메루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1.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소설이 있다. 그것도 5권에서 짤려서 최근 나온 6권의 내용은 짤려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즈미코가 미유키를 좋아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이막스를 깔끔하게 내려놓았으니 제법 깔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 소설을 보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원작에 꽤 충실한 편이라고 한다. 

 주제는 자신을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취급해 주길 바라는 이즈미코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이다. 그녀는 히메가미로서 엄청난 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어머니도 제대로 만날 수 없고 신사에 갖혀 살다시피 한다. 그래서 신사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까지 운전기사가 차로 바래다줘야 한다;;; 다행히 친구들은 제대로 사귀고 있는 모양이지만, 간혹 심기가 뒤틀려진 애들이 그녀를 괴롭히는가 보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선 아직 백지상태인지라, 와미야같은 지박령에게 매혹당하는 등 적당히 힘 있는 것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린다. 

 

 2. 이 녀석이 와미야. 본체는 지박령 까마귀였지만, 이즈미코의 운동(춤)에 종속당하여 그녀를 매혹시켜 신사에 붙잡아두려고 하며 자신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도 이즈미코 옆에 남자가 따라다니는 걸 질투하지 않나, 그 이후로도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면 이즈미코를 몰래 짝사랑하는 것 같다. 미유키가 이즈미코에게 '와미야가 인간화한 얼굴이 네 취향 아니냐'라고 했을 때 이즈미코가 반박 못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걸 봐선 일부러 모습을 인간화한 것도 은근 이즈미코에게 먹히길 바랬던 게 아닌지... 나중엔 미유키랑 친해져(자신은 미유키가 철저히 무능이라 불쌍해서 봐줬다고 주장하지만) 그에게 능력을 빌려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즈미코를 사당에서 벗어나 도쿄라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해 준 첫번째 계기가 와미야의 해방이다. 이즈미코하고 같이 얼굴을 나란히 놓고 보면 어쩐지 옛 남친 혹은 학창시절 첫 사랑같은 분위기가 흐르지 않는가? 그 묘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서 이즈미코는 해방의 전환기를 맞는다.

 

3. 그 계기가 된 게 미유키. 

 포즈는 멋있게 보이지만 사실 쥐뿔도 능력이 없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성격 때문에 어릴 적엔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이즈미코를 많이 괴롭혔다. 이즈미코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소심한 성격은 미유키가 원인이라고 함. 그 정도면 심각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쿨하지만 냉정한 성격이라, 아마 이즈미코가 자신을 변화시키려 결심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경호는 커녕 학교를 같이 다니는 것도 거부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고 할까. 마유라가 약혼자인 척 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이즈미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해도 될 걸 '아무리 그 방법이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거짓은 가까운 사람들을 상처입히니까 안 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땐 솔직히 감동받음. 

 기본적으로 이즈미코에게 거리를 두고 1화에서 완전히 이미지를 망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인 듯하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이즈미코와 미유키를 차별한다고 할까. 이즈미코를 딸 이상으로 감싸주고 미유키는 방치하거나 혹은 괴롭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즈미코 앞에서 대놓고 무능하다 까발리고 하찮은 놈 취급하기 때문에 이 셋이 만나면 이즈미코는 골치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만류하질 못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미유키가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 말하지 않으면 몰라.'라고 끈질기게 말한 이유는 그 셋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미 그 때는 이즈미코가 소심한 성격을 벗어던지고 분노의 폭발을 막 표출한 이후였으니 그녀가 속내를 털어놓기도 쉬웠을 거라 계산한 게 아닐까. 원작의 얘기지만 이즈미코가 자신을 좋아하는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고백을 하려 분위기를 잡질 않나 여러모로 무서운 놈이긴 하다;;; 작정만 했으면 타카야나기처럼 여자들 여럿 울리지 않았을까.

 

 4. 이 놈이 타카야나기인데 얼굴은 제로스처럼 생겼으면서 성격은 극도로 비뚤어진 야비한 성격의 인물이다. 겁도 완전 많음;;; 그런데 음양사에 천부적인 기질이 있는지 세계유산을 가리는 학원제에선 모든 학생들에게 주술을 거는 등 제법 선수를 잘 쳤다. 운없게도 그 자리에 히메가미가 있었을 뿐(...) 이 녀석도 히메가미를 장애물이라 인식했는지 강력한 매혹을 써서 학원제가 끝날 때까지 자기네 편으로 잡아두려고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개로 변신하게 되는 수모를 당한다. 악역은 악역인데 좀 많이 모자라다고 할까. 최종보스라 보기엔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 아마 이 스토리 자체의 유일한 단점이 이 녀석일 것이다. 매혹을 쓰려면 주술을 쓰는 본인도 좀 더 매혹적인 캐릭터였어야 하지 않았나?

 아무튼 오랫만에 매우 풋풋한 러브스토리를 봐서 흡족하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한국 대표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만남
김유정 외 원작, 연필로 명상하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1. 교육방송의 먼치킨 EBS의 후원을 받아서 그런지 고전의 느낌을 정말 잘 살렸다. 봄봄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나레이션을 썼지만, 봄봄의 작가 김유정이 송만갑에게 판소리를 배운 적이 있어서 제법 그럴싸하다. 문제는 성우가 판소리를 하기엔 창법이 좀 부족했다고 해야 하나... 주인공이 우직한 노총각이라는 설정이라 '아무럼 어떠냐'라는 심정으로 뚝딱 만든 듯 쩝쩝... 그래서 0.5점 깎였다. '돼지의 왕' 영화를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우리나라는 유튜브라거나 다른 인터넷 매체에서 스카우트하거나 헤드헌터해서라도 신인 성우를 좀 더 발굴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다른 데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

 

 2.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 소설은 대사는 물론 나레이션에서조차 사투리가 섞인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우들의 대사가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성우들이 연습을 많이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특히 동이 성우가 상당히 잘해줘서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대를 버리고 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작품의 핵심 포인트는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 달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비치는 메밀꽃의 하얀 빛을 잘 잡아내었다. 나귀도 상당히 귀엽게 그렸다 ㅋㅋㅋ 실제의 묘사에선 늙은 나귀에 대한 묘사가 좀 잔인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여담이지만 이효석은 그 당시 한국 작가들이 다 그랬듯이 상당히 가난했다. 그래서 친일파가 되었는데도 그닥 친일 활동은 하지 않아 항상 가난하게 산 듯.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통속 소설도 썼는데, 이는 나중에 서브컬쳐 리뷰로 다룰 예정이다. 워낙 글을 세부적으로 잘 쓰는 작가라서, 그 당시의 성 풍속도 세세하게 다뤘다. 왜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간간히 성적 묘사들이 나오지 않던가. 그걸 캐치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3. 김유정의 봄봄. 워낙 김유정은 유명한 작가이니 1번에서 말한 것 외에 다른 건 생략하겠다.

 

 김유정의 작품 중에서 항상 헷갈리는 게 동백꽃과 봄봄이다. 그런데 이번 애니메이션으로 인해서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백꽃이 가볍고 장난스럽게 신분 차이(?)가 나는 같은 동네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면, 봄봄에서는 갑을관계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당연히 점순이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의 장인어른이 갑, 주인공이 을이다.

 

 뭐 현대에서는 여자도 돈을 버니(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 싫다는 여자들이 많으니) 영화에서의 상황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자나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이나 뭔가를 매개로 하여 어수룩한 사람 이리저리 부려먹는 불한당들은 많다. 주인공도 작품 내에서 계약을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하는데, 이는 현대에서 말하는 '근로계약서'와 다르지 않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로 일을 시키는 회사도 많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도 말장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사회에선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데도 회사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눈다. 장인은 점순이가 '크면' 결혼식을 치룬다고 하지만 점순이의 키는 짜리몽땅하기만 하다.

 

 결국 주인공은 데릴사위로 평생 일해야 할 것인가. 결국 마음씨 착한 주인공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아니면 점순이한테 가오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장인하고 한바탕 싸우다가 장인의 불알(...)을 잡아당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주인공과 장인은 심각하게 분노해있고 가족들은 당황해있는 상황. 봄봄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럽고 한바탕 우스운 해프닝으로 표현하지만,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이 요즘 유행하고 있지만, 실상 진보집회에 나가보면 전혀 싸가지 없지 않다. 진보적인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월드컵 경기 때보다 더 쓰레기를 잘 치우며, 80년대에 투쟁을 겪으신 분들의 어깨운동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높으신 분들은 일본의 가부키를 신파극으로 바꿔온 정신으로 상황을 부러 엽기적이고 심각하게 만드는 듯하다. 봄봄의 장인을 보고 좀 배울 수 없겠는가?

 

영화에선 안 나오지만 일러스트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장가를 가는 듯. 투쟁승리 ㅋㅋㅋ

 

 

4.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첨지가 일베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남자 츤데레'라 불리는 걸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이걸 보고 상당히 깊은 인상이 남았다고 하는데, '모든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음... 일베를 하는 사람들 중 남자이거나 남자같은 사람들이 다수인 걸 볼 때 이 소설은 남자들에게 특히 다가오는 것 같다. 가난함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한 슬픔? 사실 난 남자들이 왜 이 소설에 그렇게 꽃히는지 잘 모르겠다 ㅋㅋㅋ

 

 그런데 내가 딱 하나 현진건의 소설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분의 작품이 읽다보면 육성지원이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술 권하는 사회'는 진보를 표명하는 남자들이 자주 쓰는 변명(?)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보면 현진건의 소설 대사와 그닥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아예 술에 만취해서 페북에 정치글을 남발한 페친분이 다음 날 머쓱했는지 장난스럽게 마지막 부근 대사 전문을 인용한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아무튼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입에 딱딱붙는 대사들이 많음엔 분명하다. "흉장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라던지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던지. 근데 이런 비극적인 대사들이 입에 딱딱 붙는다는 사실이 개탄스럽긴 하다(...)

 

김첨지가 설렁타을 사는 장면에서도 앵돌아서서 기다리는 게 남자 츤데레의 정석이 느껴집니...

 흠흠. 아무튼 영화에서는 설렁탕의 국물도 안 보이는데 이걸 보고 얼마나 설렁탕이 먹고 싶었는지.

 현지건이 자주 찾았다는 '깃자집'도 아직 있는지 궁금한데, 사실 이 집은 설렁탕보다는 선지와 비지가 주 메뉴였다고 한다. 크... 어쩜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있는지.

 

 

 

 어쨌던 여러분 설렁탕은 사랑입니다.

 그 영화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속초 소야촌을 찾아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속초에서 한우 전문 집을 찾으려면 그 집밖에 없음.

 기름기가 잘잘 넘치고 국물도 굉장히 찐하고 고기도 많고 씹는 맛도 연하고 크 지존입니다.

 어째 식당 광고를 한 것 같지만 정말 맛있게 먹어서(...) 정말 추천합니다. 내가 원래 고깃집을 추천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여긴 진짜 하... 기회되면 또 갈 것임. 메뉴가 많지만 가면 또 설렁탕 주문할듯.

 근데 가격이 8000원 비싸... 딱히 옛날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제대로 된 설렁탕은 좀 가격이 있군요.

 

5. 남친과 신영극장 가서 보고 와서 이 책도 빌려왔다.

 요즘 내가 상당히 흥미있어하는 주제라 (서브컬쳐가 우리의 육체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다만 이 책 외에도 밀린 책들이 상당해서 언제 돌려줄지가 문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