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바이러스 - 그 해악과 파괴의 역사
헤르만 크노플라허 지음, 박미화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자라면 번듯한 차 하나 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자동차 면허 하나 못 땄다고 부모가 구박하고 친구들에게 '민폐끼치는 놈' 취급당한다. 심지어 어떤 은행에서는 차 대출 프로그램까지 챙겨놓았다. 대놓고 남자들에게 차 하나 구입하라고 압박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여자란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여러 이유들 중에 하나이다. 내가 워낙 기계를 다루지 못하기도 하지만, 차 안에만 들어서면 인격이 변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관절병원에서는 교통사고 환자들이 매일마다 보험업자 혹은 가해자와 싸운다. 그리고 보험업자나 가해자나 한결같이 자동차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 여기서 '그들'이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 탄 인간'을 말한다. 본인도 그들로 인해 피해를 겪은 적이 있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 본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그냥 지나가버린 적이 많다. 하도 화가 나서 버스회사에 전화해서 따졌는데, 대답이 가관이다. 다음부터는 밖에 서 있으라는 것이다. 요즘엔 공공버스 하나 잡아타려면 차가 씽씽 달리는 차도 옆 내 발밑도 못 미치는 갓길에 서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그 회사 직원은 인간으로서 말한 게 아니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버스가 그한테 그렇게 말하도록 조종했다. 
 처음에 그리스신화에 대해서 말했을 땐 정체를 의심했지만 알고보니 이 분은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 교통계획과 교수였다. 환경운동가가 아닌 교통전문가가 자동차를 근본적으로 헐뜯는 글을 쓴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니 내 생각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보행자교통도 자전거교통도 얼마든지 교통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처음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합리적이고 통계적인 이론, 계급차별정책과 환경문제 등 그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동차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는 그 헌신적이고 집요한 노력은 보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교통사고의 문제가 교통시스템이라는 말도 새롭게 들렸다. 한가지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면, 독일에서 히틀러가 처음으로 도로를 확대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독재자로 불리는 박정희도 새마을운동의 일부로 도로를 확대했었다. 이 부분은 역사가나 연장자 분들이 더 잘 아실테니 이 쯤에서 생략하려 한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교통관련학문에 종사하시는 만큼 자동차의 역사와 발전(이라고 쓰고 퇴보라고 읽는다.)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환경운동가와 차이가 큰 견해는 바로 밑의 글에서 드러난다.

 흔히 차체가 가벼운 전기자동차는 에너지를 덜 소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기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는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 - p236

 전에 봤던 '지구의 미래'라는 책에서도 전기자동차를 극찬했으며, 실제로 우리나라의 환경운동가들마저 전기자동차 대량보급을 생각한다. 그는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만큼, 바이러스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선 심리적 실험도 등장하는데, 저자가 직접 실행하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하며 상당히 재미도 있다. 꼭 진지하게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사실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웃기고 재미있는 실험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 들 중에서 자동차 모는 보통 남자의 극단적인 심리를 주제로 한 공포소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이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난 내 이상형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자동차 몰 줄 모르는 남자가 좋다. 본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천성 걷기를 좋아하는 보행자이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바이러스'에 얽히긴 싫다. 자전거를 몰 줄 안다면 좋지만 몰 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동차 몰기 좋아하는 사람보단 그래도 괜찮다. 특히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상황은 더 골치아프다. 그들은 도로가 조금이라도 가파르고 울퉁불퉁하면 쓸모없어지는 자동차에 자신의 모든 수입을 털어넣는다. 게다가 피규어까지 즐긴다면 상황은 더 재밌어진다! 스포츠카를 탄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에게는 많은 희생이 따름을 본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자는 말보단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일단 우리나라에서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길어진 김에 이 책에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은 이유를 밝히려한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헤르만 크노플라허의 견해는 100점 만점이다. 그러나 저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오역인지 알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게놈은 계획과 지속성을 위한 것이고 두뇌는 개별화와 즉홍성을 위한 것이다.- p180
 

 이렇게 말해놓고서 '게놈이 지배하는 법칙의 심각성'이라는 소제목에서는 단순무식한 게놈의 성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출판사에 본인은 나름대로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을 '서울'이라고 번역한 대목에서는 화가 난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아니라는 주석조차도 없다.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고 길게 늘어지는 면이 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번역때문에 망쳐놓다니. 새삼 번역가의 선별, 그리고 책에 대한 번역가의 지식과 매끄러운 정리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의 미래 - 재앙을 희망으로 바꾸는 녹색혁명
프란츠 알트 지음, 모명숙 옮김 / 민음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최근 환경에 관한 책을 주로 읽는다. 역시 환경운동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 사람마다 제각각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촘스키 씨의 견해대로라면 전세계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환경을 걱정하고 있다는 징조이니 그렇게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글쎄올시다. 본인도 이 책에 반발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전철을 적극적으로 만든다는 의견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아마 독일이 대륙 사이의 평지인지라, 우리나라같이 산이 많은 국가에서 전철을 전국적으로 만들면 피해가 얼마나 커지는지 잘 알지 못하는가보다. 지리산이 고속도로와 철도로 인해 밑이 뚫린다면, 다음엔 강원도 산맥도 뚫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결국 본인이 찬성하는 의견도 있지만 반대하는 의견이 몇몇 있어서 높은 점수는 주지 못하겠다. 전기차는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전기차도 개인 자가용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스포츠카처럼 달리는 전기차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연료 값은 다시 제자리가 된다. 그리고 전기도 언제나 펑펑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연료를 개발하기보다 승용차를 아예 줄이면 해결되는 일이 아닌가!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나쁜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지구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평화전체주의'라도 강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개인적인 분노는 이쯤에서 생략하고. 

 그러나 물론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다. 이 책도 다른 환경에 관한 책들이 그렇듯 재생에너지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태양의 아이들>의 저자 앨프리드 W. 크로스비와는 달리 원자력 발전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태양의 아이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본인도 <지구의 미래>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비록 50억년에 한 번 일이 터진다 해도 사람이 죽지 않은가. 그것도 자연스럽게 죽지 않고 인간이 만든 에너지시설 때문에 죽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국 살인이고, 살인방관자가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최소한의 매너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지네들이 나자렛의 예수마냥 원자력 관련 사고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면 모를까, 과학자들이 더이상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밀로 난방을 한다?'라는 코너에서도 그는 그의 상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감상적인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그의 명쾌한 해답은 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시원한 감동을 준다. 특히 대중교통에 대한 규칙에서 '늦은 시간대에 유동적 버스하차'라는 제시는 본인이 적극 찬성하겠다. 한밤중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법이다. 대통령께서 한 번 청와대에서 나와서 대중교통 출근제로 지내보신다면, 아마 반나절도 안 지나서 대중교통에 혁명이 도입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이다. 그 날이 언제쯤 올까? 이외에도 그는 재생에너지, 윤리교육, 경제와 생태학의 관계, 심지어 영성과 생태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 넘치는 필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믿음가는 정보에 의하면 2010년 7월 남극에서 드디어 기온이 30도에 도달했다고 한다. 유럽은 친환경기업을 위해 대규모예산을 쏟아붓는 중이고, 저자는 독일을 친환경 연료개발도상국으로 비난하고 있다. 저자가 중국과 우리나라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담아 말씀하시는 걸 보면 너무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하겠다. 이 글을 쓴 때는 2006년이다. 이제 2010년, 우리나라는 지금 복지예산을 줄이고 4대강을 흙탕물과 구정물 천지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는 우리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셔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던 우리나라가 독일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만큼 독일 사람의 환경에 관한 글은 우리나라에도 꽤 도움이 된다.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책에 적혀있는 모든 일을 시행하려면 모든 인간이 똑똑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는 똑똑하다. (여자로서는 철없고 우둔하기 그지없는) 남자분임에도 불구하고 가사일을 50 대 50으로 분담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계신다. 배운 여자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원낭비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보는 순간 난 이 분이 희대의 천재임을 깨달았다. 왜 남자들은 일에 있어서 레이디퍼스트를 주장하지 않을까? 정보화시대에 여자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D.I.Y가 유행했던 때를 본인은 직접 목격했다. 아마 우리 다음 시대에는 가구를 만들듯이 '직접 에너지 만들기'가 유행할지도 모른다. 자연엔 생존법칙이 있다. 인간이란 종이 뒤쳐지면 말 그대로 '다음 후손을 남길 수 없다'. 생태학으로 가는 길은 곧 현명해지는 길이다. 환경에 대한 책을 윤리나 교양서보듯이 하자. 일단 본인은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와 인간관계의 맥을 짚는 외모 심리학
사이토 이사무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20살때만 해도 "사람의 외모가 그렇게 중요해? 중요한 건 마음이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엄청난 오류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스캔하거나 투시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내 마음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결국 다른 사람이 내 속마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외모라는 소리가 된다. 언뜻 딜레마로 보이는 이 문제를 이 책에서는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파고들어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까지 차근차근 분석해 나간다. 외모를 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박겉핥기마냥 훑어보고 오랜 시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게 문제이다. 왜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에서도 이렇게 나오지 않던가.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이런 옷 이런 머리모양으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해
 네가 더 뻔해
 

 이 노래가 부담이 간다면, 속으로 찔린다는 말이 아닐까?
 본인은 외모하면 일단 몸무게를 떠올린다. 너무 살찌면 게을러보이기 십상이다. 반대로 너무 말라도 보는 사람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독한 성격을 지녔거나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에게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선 적당한 몸무게와 적당한 살집이 필요하다는 게 나의 견해이다. 실제로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이 책을 보았지만 외모심리학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감정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제스처가 세심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책 보는 사람의 재미를 더해준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제스처의 사진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책의 정확성과 재미를 더 살릴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 표정을 감정 없이 재현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하에서 일러스트만 첨부했는지도. 무엇보다 '외모 심리학'에선 아는 체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충고하지 않고 연구로서의 핵심만 집었다. 본인은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주제가 담긴 페이지, 표지 등등이 핑크색이라서 부담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연애와 인간관계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심리학책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여자들이 보는 연애책이라는 편견을 가지지 않기를. 본인은 남자도 이 책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냉철히 파악할 수 있길 바란다. 남자가 외모를 보고 평가하는 이상, 점점 세계적으로 수가 적어지고 있는 여자가 외모로 남자를 평가하더라도 그들은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여자보다 가꾸기 힘든 게 남자다. 수염이던 헤어스타일이던 패션이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일찍 준비할수록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히 이 책을 소장하시길 권고하는 바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좋은 사람으로 모이려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였다. 마음으로 우러나지 않는 선행은 동정으로 보이기 십상이고, 괜히 안 하던 일하면 내 몸도 쉽게 지친다. 이 심리학 책에서는 그 핵심을 잘 집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부분들에서 일본답게 직접적인 말보다는 제스처 표현을 극도로 강조하고 있으며, 빙빙 돌려서 말하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구절로 끝내는 마무리가 참으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책으로만 보지말고 직접 일상생활에서 보고 실천해라. 그러나 용기도 너무 넘치면 오버와 만용이 된다. 뭘 해도 조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알마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원래 태어날때부터 공간감각이 없어서 오른쪽과 왼쪽도 제대로 분간을 못하던 본인. 지리시간 때에도 남들 다 찾는 강과 산을 찾지 못해서 남들에겐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선생님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끙끙대던 기억이 있다. 결국 수능 때에도 한국지리를 시험과목으로 택했지만, 선생님이 지도만 그려져있는 부록책을 펼치자고 하면 눈살을 찌푸렸더랬다. 이 책에서 나오는 지도들처럼 그림도 많고 알록달록한 지도, 설명이 풍부한 지도로 공부했더라면 지리 공부에 그렇게 헤메지는 않았을텐데. 판타지 책을 보면 처음에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지도가 딸려나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중세 세계도가 꼭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지구의 형태를 그려놓았지만 땅의 형태가 정확하지 않고 들쑥날쑥하다. 게다가 '미지의 땅'에선 여백을 채우려 괴물들이 그려져 있다. 한자만 빼곡히 나열되어 있는 고금화이구역총요도를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지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오지 도시아키의 동서양을 총괄한 지혜와 명쾌한 설명 덕분에 처음 접하는 지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단 설명을 재밌게 보려면 목차가 끝나는 부분에 나오는 지도를 여러 번 펼쳐보고 또 펼쳐봐야 하니, 유의하시길. 일단 지도를 확대한 흑백사진들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이해가 안 가고 모자란 점도 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지도를 설명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개인적으로는 중세 기독교에 대한 설명이 가장 재미있었다. 성지순례라던가 기사단이라던가 아는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여정도 지명으로 상당히 세심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경로를 펜으로 긋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리라 생각된다. 불교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발견할 수 있던 점도 좋았다. 말로만 듣던 오천축도를 직접 보고 일본불교의 여러 사상도 접할 수 있었다. 일본섬을 독고로 표현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지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알고 싶어서 구한 책이지만, 의외의 수확을 거두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시각과 자만심, 탐욕도 지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었다. 노예를 상품으로 표기하는 포르투갈, 남의 성지에 슬그머니 자기 국가의 깃발도 같이 걸어놓는 영국 등 글이나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커먼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오지 도시아키가 맨 마지막에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고 말한 대일본연해여지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뭐 그래봤자 일본이 잘났다는 내용의 지도이겠지만, 어디가 어떻게 훌륭한 지도인지 궁금한데 말이다. 또 한 가지. 가뜩이나 실용성과 과학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아마 이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역시 대동여지도에 대한 미련은 남는다. 만약 그가 대동여지도를 본다면 사방으로 뻗어있는 산들과 강들의 섬세함을 보고 그 미적 중요성을 간파했을텐데 말이다. '고금화이구역총요도'가 인쇄지도라고 설명하는 글을 읽을 때 안타까움은 더 했다. 일본에서도 지도발달사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역사학같은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멋진 학문이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명저 사회학30선
다케우치 요우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책이 도착했을 땐 기대보다 두께가 적고 글씨도 커서 약간 실망했다. 게다가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내용의 책은 개인적으로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내 흥미와 다른 글들도 많고, 책 소개를 읽는 것보다는 직접 원본읽기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본 결과, 이 책을 선택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일단 사회학이 철학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더러, 유독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주저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학은 대학에서의 내 전공하고 거리가 멀다. (영어영문학과는 여전히 사회의 은어와는 몇 광년 떨어진 고어를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순수 사회학관련 책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게오르그 짐멜과 미셸 푸코와 마샬 맥루한 등의 이론에 흥미가 생기다보니 사회학을 접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다케우치 씨는 내 독서 취향과 어느정도 비슷한 편인가보다. 몇몇 마음에 드는 사회학 책들은 눈으로 찜했다가 직접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지금은 내가 읽을 책 목록에 고이 정리해 둔 상태.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읽으리라. 결국 내 책 욕심이 이 책을 부담없이 읽게 하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솔직히 말해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다. 그러나 장점은 많았다. 우선 여러 사회학 책들의 원본을 직접 인용하면서 설명했기에 대강 그 책의 내용과 출판계기가 된 사회배경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오타쿠'라는 일본 특유의 사회현상과 '어쩐지, 크리스털'이라는 소설 등 여러가지 유행했던 것들을 사회학과 연관시켜 설명한 점이 가장 인상깊었다. 대학교수답게 이론 정리를 깔끔하게 해줘서 이해하기도 제법 쉬운 편이다. 

 다른 저자가 쓴 책들을 쓴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에게서 교훈을 아주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첫째로, 진보와 보수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회를 냉정히 바라보고 앞일을 미리 예측하지 않는다는 사회학자로서의 원칙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무리 사회를 평가할 때 자신의 관점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요즈음 진중권 씨 등 사회에 대해 글을 쓰는 교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탐구하는 사람으로서의 냉정한 정신이 많이 모자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짐멜의 소개에서 글쓴이의 이 의견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짐멜은 '자본주의의 매혹'이라는 책에서도 한 번 접하고 이 책에서 다시 접하게 된 학자이다. 똑같이 '사회론'이라는 책을 거론하고 있으면서 의견이 다른 게 흥미로웠다. 전자는 짐멜이 자본주의로 기울었다는 증거라고 평하고 있는데, 후자는 냉혹한 '형식사회학'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왠지 '사회론'은 상당히 어려운 책일 것 같아 원본을 보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는데 이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다시 복학해서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게 되면 이 책을 제일 먼저 찾아보리라. 결국 '세계명저 사회학 30전'은 책을 읽도록 부추겨주는 본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둘째로, 일상 속에서 신비를 찾는다는 저자의 말에 매혹되었다. 이 점은 인생 속에서 신비를 찾는 철학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철학은 심리학 다음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끌리는 점이 몇 가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지마다 둘러진 선홍색 컬러테두리가 아깝다는 생각을 자꾸 했다면 지나친 참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