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결혼 민음사 세계시인선 46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김종철 옮김 / 민음사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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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uries of Innocence

W. Blake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A robin redbreast in a cage
Puts all Heaven in a rage.
A dog starv'd at his Master's Gate
Predicts the ruin of the State......
Each outcry of the hunted hare
A fibre from the brain does tear.
A skylark wounded in the wing,
A cherubim does cease to sing......
Every wolf's and lion's howl
Raises from Hell a human soul.
The wild deer, wandering here and there,
Keeps the human soul from care.
The lamb misused breeds public strife,
and yet forgives the butcher's knife......
It is right it should be so;
Man was made for the joy and woe;
And when this we rightly know,
Thro' the world we safely go.
Joy and woe are woven fine,
A clothing for the soul divine;
Under every grief and pine
Runs a joy with silken twine.
The babe is more than swaddling-bands;
Throughout all these human lands
Tools were made, and born were hands,
Every farmer understands......
He who doubts from what he sees
Will ne'er believe, do what you please.
If the sun and moon should doubt,
They'd immediately go out.
To be in a passion you good may do,
But no good if a passion is in you.
The whore and gambler, by the state
Licensed, build that nation's fate.
The harlot's cry from street to street
Shall weave Old England's winding-sheetㅡ.

순수의 전도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아기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모든 늑대와 사자의 울부짖음은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건져올린다.
여기저기를 헤메는 들사슴은
근심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켜 준다.
학대받는 양은 전쟁을 낳지만,
그러나 그는 백정의 칼을 용서한다ㅡ
그렇게 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기쁨과 비탄은 훌륭하게 직조되어
신성한 영혼에는 안성맞춤의 옷,
모든 슬픔과 기쁨 밑으로는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아기는 강보 이상의 것,
이 모든 인간의 땅을 두루 통해서
도구는 만들어지고, 우리의 손은 태어나는 것임을
모든 농부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대가 무엇을 하건, 그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이 의심을 한다면
그들은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열정 속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열정이 그대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국가의 면허를 받은 매음부와 도박꾼은
바로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거리 저 거리에서 들려오는 창부의 흐느낌은
늙은 영국의 수의를 짤 것이다......

 

 

  

역시나 블로그에다가 메갈을 지지(?)하는 글을 썼더니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이 줄었다. 뭐 상관없다. 나도 제1여당의 꼬봉이며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나 그들의 편인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네이버가 싫다. 이놈의 블로그때문에 곤란을 먹은 게 두 번인데, 하나는 여기에 올린 음악 때문에 벌금을 빼먹힌 사건, 또 하나는 해킹 걸려서 내 대학시절 썼던 모든 논문들과 레포트들을 다 날려먹은 사건이다.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나고나니 블로그는 리뷰를 정돈하고 저장하는 창고가 된 느낌이다. 꽤나 훌륭한 임시저장같은 기능이 있으니 그럴 리는 없다 생각하지만 그런 역할도 없어지면 미련없이 블로그 떠날 생각도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한 여성이 너무나 어이없이 죽었다. 그 일을 계기로 하여 메갈이 거의 처음으로 옳은 소리를 하였고 그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지고 급기야는 여태까지 잘 먹고 잘 사는 권력자가 메갈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기계적 좌파'라 지적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아무래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이론을 지지하는 듯하지만, 윌리엄 블레이크는 그닥 이런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성서의 힘을 빌어 용기있게 소수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천사를 고지식하게 그리며 악마의 발언을 일리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의 균형을 이룩하려면 우선 나 하나만이라도 한 편으로 치우쳐야 하며, 그것도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볼 때부터 그의 시를 꽤 흥미있게 받아들였으며, 윌리엄 블레이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다. 지금도 그 순위를 바꾸게 한 다른 시인이 없다.

 요새 한 시인의 불명예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팝콘먹으며 구경하다 이런 글을 봤다.
 "우리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러더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우웨엑.
 난 만일 애가 있다면 세상과 싸우라고 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많이 당한 걸 생각하면 그 짐을 애한테 또 지게 하고 싶진 않다. 그 문인의 자식 분은 대체 어릴 때부터 학교와 집안 싸움에 얼마나 치였기에 그렇게 해탈한 걸까? 요즘 세상은 경험만 중시하지 순수는 그닥 중시하지 못하고, 정의만 찾느라 부정의에 빠진 사람들의 자초지종을 잘 듣지 못하는 듯하다. 지나치게 불균형하고 기운이 모순되어 있으며, 무슨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가 매일매일 가속되고 있다.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니라, 계속 파멸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떻든 간에 지금 여기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같이 앞으로 걸어나갈 테지만, 나는 두렵다.

 P. S 그러고보니 블레이크가 트러슬러에게 보낸 편지에선 이랬다.
 "어떤 것이 도덕적인 그림인가에 대한 당신의 견해와 나의 그것이 너무나 어긋나는 것이어서 당신이 나의 예술적 방법에 화를 내시게 된 것에 대해서 나로서는 매우 큰 유감입니다."
 니 눈에 어장관리처럼 보여서 죄송합니다.
 시급 최하로 받는데다 부모님에게 절반은 드리며 사는데 감히 집에서 처덕처덕 기어나와서 더치페이할 때 커피값밖에 낼 수 없어 죄송합니다.
 니가 쏘맥마실 때 나는 맥주 마셔서 죄송합니다.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퍽 유감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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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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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련된 연애심리도 그 깊은 곳에는 사나운 자연이 숨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과 이미지도 그렇고 가벼운 듯하면서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들도 그렇고, 이 시인은 상당히 센고쿠 나데코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 캐릭터가 중학생이었으니, 이 시인이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싫어한 이유가 자신의 나이를 자각하게 되서였다면 상당히 이 시는 성공적으로 젊음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

 

 짧으면서도 활력이 있는 시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약간 벙쪘다고 할까. 전쟁을 일상에서 겪어본 분이라서 그런지 파격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태연하게 시체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요즘 에세이로 유행하는 사노 요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어떤 사연으로 이혼을 하시고 각각 활동을 하게 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금 동업자끼리 같이 결혼해서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부부 중 한 쪽에 가족의 불화가 있다면 가정을 이루기가 쉽지 않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시인에 대한 소개에서는 '개나 고양이도 키우지 않는' 독거노인으로서의 생활에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날 시인의 시까지 담은 이 시집에서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일면 쓸쓸함을 자아내는 요소가 있었다. 시를 사생활과 연관지어서 쓰는 시인들의 유일한 폐단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씁쓸함을 묵묵히 견디는 시인은 절대 시에서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시인이 의식적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난 이 시집의 제목 중 '고집'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 포임 아이, 즉 시적 관점 같은 것을 갖기 위해 가족들을 잃어버린 그의 슬픔같아 보여서.

 

빌리 더 키드

고운 흙이 먼저 내 입술에 그리고 차차 큰 흙덩이가 내 다리 사이에 배 위에. 개미집이 부서져 개미 한 마리가 내리덮은 내 눈꺼풀 위를 잠깐 긴다. 사람들은 이제 울지 았고 삽질하며 상쾌한 땀을 흘리고 있는 모양이다. 내 가슴에는 그 상냥한 눈의 보안관이 뚫은 구멍이 두 개 있다. 내 피는 서슴지 않고 그 두 개 도피로로 빠져나갔다. 그때 비로소 피가 내 것이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피가 그렇게 되면서 내가 조금씩 되돌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내 위에 내 유일한 적수인 건조하고 푸른 하늘이 있다.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 내가 달려도 쏴도 심지어는 사랑해도 내 것을 빼앗기만 해온 그 푸른 하늘이 마지막에 단 한 번 빼앗지 못할 때. 그게 내가 죽을 때다. 이제 나는 빼앗기지 않는다. 나는 비로소 푸른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침묵도 그 끝없는 푸르름도 무섭지 않다. 나는 지금 땅에 빼앗기고 있으니까. 나는 돌아갈 수 있다. 더는 푸른 하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이제 내 목소리는 응할 수 있다. 이제 내 총소리는 내 귀에 남는다. 내가 듣지도 쏘지도 못하게 된 지금.

나는 죽이는 것으로 사람을 그리고 나 자신을 확인하려고 했다. 내 젊은 증명법은 붉은 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남의 피로 푸른 하늘을 온통 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피를 원했고 오늘 그것을 얻었다. 나는 내 피가 푸른 하늘을 어둡게 하고 마지막에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푸른 하늘을 보지 않는다. 기억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땅의 냄새를 맡고 내가 땅이 되는 것을 기다린다. 내 위를 바람이 흘러간다. 나는 더는 바람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곧 내가 바람이 되니까. 곧 나는 푸른 하늘을 모르면서 푸른 하늘 속에 살 것이다. 나는 별이 된다. 모든 밤을 알고 모든 한낮을 알고 그러면서도 계속 떠도는 별이 된다.

 

 

 

 

 페이트 시리즈에 나오는 빌리 더 키드라는데 왠지 시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하여 한 번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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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공포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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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하나의 세계이다.
 행복에 속했던 무엇이 성교 중에 사라진다. 가장 완벽한 사랑, 행복 자체에도 갑자기 모든 것을 죽음 속으로 전복시키는 욕망이 들어 있다. 쾌락의 와중에 난폭하게 범람하는 무엇은 심리적이지 않은 슬픔으로, 그리고 두려움을 주는 무기력으로 극복된다. 물기 없는 눈물들이 서로 뒤섞인다. 쾌락은 궤멸하는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가슴을 저미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순간에 대한 느낌이다. 과거에 느꼈으나 무엇에 대해서인지 모르며 다시 불러들일 수도 없는 질투이다. 기쁨으로 충만했던 음경의 수축은 갱신 불가능의 느낌과 겹쳐지면서 울고 싶은 욕망과 비슷해진다. 우리는 많은 동물이 산란을 하거나 짝짓기를 하는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엇이 끝난 것이다. 가장 강렬하게 사랑할 때 무엇이 끝난다.

 

 

꽤나 오랫동안 이 책을 잡고 있었나 보다. '섹스와 공포'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사진을 찍었는데 책을 읽는데는 막상 반년 정도가 걸렸다. 아무래도 제목 때문에 집에서만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해에 이 책이 유행해서 정말 좋았고, 동시에 뭔가 좀 더 당당히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악스트라던가 문학 잡지에서 이 책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를 다루지 않았더라면, 직장 동료로부터 "이런 야한 책을 좋아한다니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는 소릴 들었을 때 요즘 이 책이 이슈임을 강조할 수 없었을 테고 반격의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충 파스칼 키냐르와 로마,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맞받아쳤다. 잘난 척을 하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이렇게 무식이 튀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을 교정해주려는 의도에서라도 일부러 내 학과 이야길 꺼낼 때가 있다. 그렇다. 사실 일부러 꺼낸 이야기가 맞다. 사실 섹스와 공포라고 하면 모임과 정치 아닌가? 그런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사회가 아닌게 안타깝다. 나에겐 그들이 보는 드라마의 썸타는 이야기가 더 야하고 추하고 끔찍하다.

 이번에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에이즈 걸릴 확률은 남자가 80퍼센트 이상이라던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누가 물어봤더라. 그래서 난 에이즈 걸린 사람이 치매걸릴 확률이 적다고 이야기하려 했다가 그냥 얼버무렸어."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다시 나오네. 에이즈 때문에 사회에 섹스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교회같은 육체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 증세가 세상에 번져가고 있다 한다. 작가는 그에 맞서기 위해 성의 역사 2부작을 썼고 그 1부작이 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결코 야한 책이 아니다. 나는 결코 책을 욕하거나 손상시키는 인간을 참아내질 못하겠다. 아직도 그 뻔뻔스러움에 치가 떨린다. 강한 사람에게 한없이 약하면서 약한 사람에겐 한없이 강한 척하는 인간이 있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임시방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성을 혐오하고 에로스를 직시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을 정치꾼이라 욕하면서 매번 투표철 되면 근거없이 1번을 찍는 추태와 같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붙이는 정책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고 여성과 남성이 섹스를 해야 세계에서 아이가 나올 수 있다. 물론 동성끼리의 결혼도 보장해야 인간의 자유가 좀 더 완전해질 수 있다. 권태에 지지 말자.

 어제의 개인적인 일은 그렇다치고, 오늘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진이 자기네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한 기이한 문제도 있고 서프러제트 영화 도중 아저씨가 여성을 때린 사건도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리뷰를 썼다. 역시 등산은 생각의 정리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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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서양문학의 향기 6
지나이다 기삐우스 지음, 석영중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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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 비애! 당신의 입술에
영원히 감도는 여운, 아, 정열!
비애! 비애! 영원한 시험,
보다 확실한 올가미.

나는 비애에 젖어
멋쟁이 청년들과 입 맞추고
너는 비애에 젖어
밤이면 다른 여자의 손을 잡는다.

비애-슬픔, 비애-슬픔,
빵과 함께 먹고 물과 함께 마신다.
너의 초원에는 한줄기 슬픈 풀잎이 있다
러시아여.

 

 

작별, 이별에 대한 시가 굉장히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시가 일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는 해도 혁명가로 살아간 그녀들의 사랑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문학에 드러날 줄은 몰랐다. 어느 영미시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었고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자아냈다.

 

 좌파들이 잘 모르는데 스탈린은 사람을 대거 감옥에 가두거나 총살한 것도 모잘라 문화를 말살하는 깡패로 사실상 유명했다. 이 시집에서 보다시피 수많은 여성시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고발하고 있는데, 높으신 분들은 그녀들이 마녀라느니 반은 창녀고 반은 수녀라느니하는 식으로 조롱한다. 특히 내가 분개한 건 마리나 쯔베따예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이다. 위의 비애!라는 시를 쓴 시인이다.

 

특히 빠스쩨르나끄는 모든 러시아 시인 중에서 그녀를 가장 높이 평가하여, 비록 그녀가 "온갖 종류의 히스테리를 압축된 형태로 구비하고 있고" 따라서 "그런 여자와 결혼할 것은 꿈도 꿀 수 없지만" 재능의 측면에서는 "보통 남자가 그녀의 천재성을 십분의 일만 가져도 시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 라고 썼다.- <레퀴엠> p. 142

 

 충격적인 건 저 평을 쓴 인간이 10년 이상 그녀와 서신왕래를 한 친구며, 마리나는 이미 유부녀라는 사실이다. '친구'에 대해 저딴 식으로 추근거리면서 모욕을 주니 마리나가 이름을 남겼을 때 넌 듣보잡이 된거다 멍청아.

 

 

최근 프로듀스 101이 한창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던 팟캐스트던 개인 방송이던 무엇이던 간에 돈 벌려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게 좋은 거 같다. 이전에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선 돈 벌겠다고 인디밴드 홍보하다가 보컬을 게스트로 초대했는데 진행자 세명 다 음악에 대해 완전 무지한 거 다 들통난 적이 있다. 한 명은 게다가 힙합 욕했다가 완전 처발려서 고성내면서 씩씩대고. 실은 그 방송 듣고 그 프로그램에 더 이상 나가는 게 쪽팔려서 게스트 역할 때려쳤는데 그 분은 아직도 그 방송 계속 하고 있나 모르겠음. 아프리카에선 아이돌이 방송하면서 책 홍보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워낙 잔지식이 없어서 스토리만 적어온 듯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저조하니 겁을 먹은 듯 계속 책 홍보를 진행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방송 주제에 대한 사랑과 철저한 준비가 기반으로 깔려 있어야 뭘 할 수가 있다. 후자 이야기 말인데, 저 방송은 어떤 남자애가 추천했었다.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데다 마초이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인간의 말은 하나도 안 듣는데 지지리 돈 관리도 못하는 인간이었음. 나중에 손엔 금빛가루같은 거 묻히고 삐끼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거 아닐까 두렵다. 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네.

 아무튼 유명세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신들의 시를 '성숙한 포도주'라고 비유하며 꿋꿋이 책상에 앉아 펜을 든 이 당돌한 여성들의 시는 고금에 널리 읽히는 고전시가 됨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집에 나온 네 명 중 셋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물론 모스끄바의 콘서트홀에 검은 슬랙스에 하이힐을 신고 등장하여 자작시를 낭송한 벨라 아흐마둘리나는 정말 대단한 여자다. 그러나 씁쓸한 게 이 여자는 정치와 관련된 글은 하나도 안 쓰고 자연, 사랑, 이별을 표명했다는데... 예술관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뭐랄까 '천상여자'답네. 그래서 골치아픈 생각하기 싫어하는 청중에게 환호받은 거 아닐까? 그러다 결국 얼굴에 주름이 생겼단 이유로 인기도가 점점 하락하게 되다니, 이런 비참한 삶들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아무리 마음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무덤을 너무 크게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미모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천재로 선택받기를 원했지만 단 한번도 후자로 사회에서 선택받은 적 없는 여성들. 골방에 갖힌 미친 여자들. 그들의 절규가 과연 언제까지 히스테리로 치부될 수 있을까?

 

 

* 어떤 레즈비언 분이 퀴어문학같다고 의견을 제시하여 이 시가 담긴 레퀴엠 시집을 퀴어 목록에 넣는다. 예전에도 올린 시지만 다시 한번 올려본다. 잘 읽어보시길.

우리는 헤어지는 법을...

안나 아흐마또바

우리는 헤어지는 법을 모릅니다
어깨를 나란히 정처 없이 걸어갑니다
해는 벌써 저무는데
당신은 생각에 잠겨 있고 나는 침묵합니다.

성당에 들어가 장례미사와
세례식과 혼배성사를 구경하고
서로에게 얼굴을 돌린 채 나옵니다...
어째서 우리는 그들처럼 살 수 없을까요?

묘지에 들어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짓밟힌 눈 위에 함께 앉읍시다
당신은 눈 위에 막대기로 그립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 살 큰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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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백과사전 - 명언으로 만나는 사기 백서
왕서우보 지음, 한정선 옮김 / 휘닉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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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의 귀공자인 당신이 지금 공무에 충실하지 않고 법령을 무시하면 결국 국가의 법령이 무력해지고, 그렇게 되면 제후들이 출병해 침략해올 것입니다. 제후들이 출병해 조나라를 침략하면 당신의 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당신과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공무에 충실하고 법을 지켜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대한다면, 나라가 강대해지고 조 씨 정권도 더욱 안정될 것입니다. 당신은 조나라의 귀족으로서 백성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위의 구절은 다스리는 사람, 즉 보스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행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인간관계에 대한 대목이 가장 많이 나온다.

 

 천하 사람들이 대체로 시장에서 교역하듯 돈을 보고 교제를 한다는 것, 부귀와 영화를 과시하려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지만 속으로는 나쁜 인간이 있다는 것, 좋은 말을 쓰게 듣고 재물을 주고받는 걸 최고로 치는 소인들이 있다는 것 등등. 이 책을 보면 정말 친구를 가려서 사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배우자나 동거자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머니가 성당의 모임에 나가는 걸 좋아하시는데, 그쪽에서 사귀는 친구 한 분이 암 초기로 판정되셨다고 한다. 무려 지름 30cm 정도의 암덩어리라서 큰 병원을 가야 한다. 몇번 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신경질적인 사람이기도 해서,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등 건강을 챙기려 노력하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 뜻밖에도 그동안 병을 키우고 계셨으니 어머니는 상당히 놀란 듯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또한 인간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배우자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어서 납득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인간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라고 어느 페친이 이야기했었다. 나도 사실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애초에 인간관계때문에 병까지 얻느니 차라리 나와 맞는 사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물론 자기수양도 중요할 것이다. 항우처럼 자만하지 않고 유방처럼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되 한신을 끊어낼 때처럼 냉정하게 행동하는 소양을 길러야 한다. 그런 능력도 없다면 혼자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욕을 먹는 게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자기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니 차라리 낫지 않을까? 나는 백로인데 세상 천지에 까마귀 떼 뿐이라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있는게 종족을 보전하는 길일 것이다. '백로'라는 나의 존재는 손상되지 않기 때문.

 보통 한신은 토사구팽당한 불쌍한 존재로 나오는데, 이 책은 한신에 대한 대중적인 평가를 떼어내고 한신이 역모를 꾸몄던 부분을 실음으로서 그에 대해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사성어, 명문장, 명문장이 생겨난 배경, 고사성어를 적용시킬만한 역사적 사례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시간적 배치를 아예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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