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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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안 좋은 점부터 짚어주고 싶다.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책이다. 솔직히 나도 한번쯤 들어본 용어들이라서 망정이지, 거기에서 나오는 단어의 10%는 거의 몰라볼 뻔했다. 심리학에서 나오는 용어라고만 생각해두고 넘어가라.
 두번째, 다중인격장애에 대한 묘사는 훌륭했으나 <이기적유전자>라는 책과 연결하는 건 아무래도 억지설정이었다. 아무리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타인의 혼까지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어찌할 것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치히로는 자신의 다중인격마저도 다루기 힘든데, 어떻게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남의 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문제란 말이다.
 자칫하면 '다중인격장애에 관한 소설을 한번 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소설'을 쓴 것으로 착각될수도.
 뭐, 해리성다중인격장애 자체가 아직도 연구대상이라서 소설상으론 자세히 표현하지 못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게다가 막판의 치히로를 보면 참.... 어쩌면 천재처럼 몸 자체가 태어날때부터 인격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어졌는지도. 씁쓸하다.)
 어쨌던, 이 분 못보는 사이에 글쓰는 실력이 더 향상되셨다.
 새벽 한시까지 잠도 안 자고 소설을 본 적은 이번이 인생에 있어 5번째였다.
 '검은집'에서 본 것보다 더 한 긴장과 공포가 이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만들었다.
 스릴러보다는 심리적인 갈등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듯.
 게다가 연애에 치중된 소설도 아니어서 굿이었음. 굳이 평가하자면 별 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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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량 2010-11-04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데뷔작이라는데...

갈매미르 2010-11-05 11:13   좋아요 0 | URL
일본에서는 <푸른 불꽃>부터 데뷔작이었습니다. 영화로도 방영된 적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검은 집>으로 인해 인지도가 생겼고요. 이 분의 소설은 전부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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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츠 이치라는 작가를 접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꽤나 얇은 책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휙휙 펼쳐보며 넘어가려고 했으나, 호러소설로 유명해진 그와는 달리 매우 서정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되었다. 무라카미 류같은 부류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4개의 길다면 길고, 짤막하다면 짤막한 이야기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사정을 담고 있었고, 어두운 현대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빛에 대한 갈망과 새로운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별히 '잃어버린 이야기'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김명민이 열연을 했던 '내사랑 내곁에'가 생각나게 하는 내용이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오른팔 빼고는 전신이 마비된 환자의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에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통은 단편적으로 끊어져 있었으나 도리어 그런 점이 매력이었다. 결말도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말이다. 제목때문에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내용들이 왠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같이 생각되기도 했다. 장소도 사건도 인물도 전혀 매치가 안되는 단편소설들에서 단지 하나의 연관점이 있다면, 그것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들의 고독하고 쓸쓸한 노력. 어느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사랑이란 감정은 없으며, 그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 소소한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어쨌던, 그 너머에 빛이 있다면 사랑이 있네없네하는 싸움이 진정 소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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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클럽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이가서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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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스크 클럽이라는 제목보다는 후자의 제목으로 더 네이버의 평이 좋다니, 사람의 심리란 참 알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정말 간단히 19금적 그림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무튼 '마스크클럽'이라는 책은 상당히 사람을 중독시키는 책이었다. 7명의 여자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이 등장하지만 여자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주 잠깐 등장하는 편이며, 여자보다는 여자들에 의해 죽은 평범한 남자의 시각으로 반 정도는 흘러가버린다. 하긴 광기에 찬 사람의 시점보다는 평범한(그것도 감정이 거의 없는) 화자의 시점이 더욱 객관성에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자칫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쓰레기' 도시 구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자들의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사라가 머릿속에서 윤색해버린 영화의 스토리같이 내용은 최악으로 엇갈려서 진행된다. (살해당한 남자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면, 이 글을 보고 난 락가수 NIN의 Closer MV를 떠올렸다.) 나아가 무라카미 류의 영혼에 대한 인식도 담겨져있다. 지구를 표현하는 여자의 둥근 몸 앞에서 무수히 작아지는 남자의 몸은 SM관계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의 대부분이 SM취향 레즈비언들이라는 소문들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몇천년에서 몇만년동안 유지되었던 가부장제 사회때문에 극단적으로 일그러진 여성들에 대해서도 담겨져 있기 때문에, 무라카미 류의 SM찬양적인 내용만큼이나 더욱 꽉찬 책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본내용은 절반도 안되는 분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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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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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개정판 표지에 그려진 그 누군가의 얼굴은, 일단 여자의 얼굴이나 표지만 딱 볼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얼굴이다. (마지막에 밝혀지지만.) 아마 이 책에서 나타나는 섹스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약, 난교, SM 등이 난무하는 관계에서는 엑스터시도 사랑도 아름다움도 없다. 그저 원초적이고 적나라한 관계일 뿐. 그 안에서 철저히 무력하게 끌려가서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그저, 무력을 지켜보는 경멸감뿐이었다. 어째서 그렇게나 젊은 사람들이 그런 세계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고, 류가 본 외국인과 일본인 여자에 관한 이야기만 약간 등장할 뿐이다. 사실 그래서 전혀 현실감이 없는 일인데도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은근히 외국인들에 대한 기분나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뭐, 외국인들에게 수많은 일본 여자들을 뺏기는 남성들이라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자업자득 아닌가? 그 문화 속 가부장제부터가 문제있는 일인데. 뭐 여러가지 잡소리를 중략하고, 그렇게 혐오스러운 책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유는 원초적인 세상 속에서 류가 발견해낸 피묻은 유리조각, 그 속에서 비치는 '무언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대한 묘사들 중 그 어느 것도 저 상징물만큼 어울리는 것이 없다.) 세상은 넓은 것이고, 우리가 겪은 그 어떤 험난하고 험악한 경험도 부드러운 것에 감싸여 있는 한낯 유리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그 속에 있고, 난 그 안에서 언제나 무한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본다. 사실상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무라카미 류의 영혼과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이것은 무라카미 류의 가장 소극적인 저항이자, 가장 밝은 희망에 빛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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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8 - 아더 왕의 죽음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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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대한 이야기, 성배에 대한 이야기라면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아발론 이야기이다.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나오지만, 역시 장마르칼이 멀린의 광팬이기도 한지라 1권부터 멀린의 포스가 아주 쩔어준다 ㄷㄷㄷㄷ 뭐랄까 예상한 이야기와는 완전 딴판인 이야기였다. 편력을 돌면서 쉼없이 공적을 세우고 사랑을 나누며 결국엔 성배의 신비를 쟁취하는 기사들의 이야기는 좋았으나, 너무나 방종했다. 너무나 잔인했다. 지나치게 잘난 척하며 명예를 쫓았다. 자신의 개인적인 사랑과 자신의 고집으로 책임감도 지지 않은 채 스스로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와 그 결말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으나, 스스로 파멸을 불러온 아더와 그의 아들간의 싸움을 지지해준 멀린의 말과 같이, 이 아발론 연대기는 왕과 편력기사들이 겪는 인간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록 성장소설과는 달리 비싼 대가를 치르며 죽어가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무의미한 싸움의 결정적인 시작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을 걱정해주고 돌봐주며 마지막에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던 가웨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는 결국 성배의 신비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책에 적혀있는대로 그것이 패배의 징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권부터 8권까지 꽤 두꺼운 책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다음 줄거리에 대한 호기심때문에 결국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기사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유별난 영국의 여왕숭배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던 책이었다. (아무래도 섬에 살다보면 여성성이 강해지는 건지도.) 마비노기라는 고대 저서와 함께 아발론의 모든 이야기에 대해 적절히 이야기를 섞어놓은 점, 그리고 아름다운 몇몇 시들을 중간중간에 첨가했던 점, 그리고 박식한 역주의 설명 모두가 감탄을 자아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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