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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는 딱 이사카 고타로식 이야기이다.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 그저 편안한 마음만 가져오면 된다. 어떤 장치도 트릭도 함정도 걱정할 것이 없다. 다 알아서 이야기 해준다. 다 예측을 할 수 있고 기분좋은 반전이 있어 좋다. 읽기기는 왜 그리도 빨리 읽히는지, 아쉬움마저도 생긴다. 이 것이 이사카식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미스터리소설 같기도 하고, 명랑소설 같기도 하고 사회의 문제를 담고있는 고발소설 같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명랑한...'은 2003년에 쓴 작품이다. 시간상으로는 '러시라이프(2002)'와 '칠드런(2004)'사이에 쓴 책이다. 사신치바(2005)는 그 이후에 나왔으니 차치해 두고 '러시라이프'와 '칠드런'만을 두고 이야기 하자면 '명랑한..'은 '러시라이프' 보다는 '칠드런' 쪽에 가까운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개나 무게감이나 느낌면에 있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중 '사신치바' 와 '러시라이프'를 좋아한다. 그래서 인지 이번 작품도 내심 기대를 했었다. 하긴 제목에서 이미 눈치를 챘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러시라이프'의 짜임새나 묵직함 보다는 '칠드런'의 발랄함과 가벼움이 엿보인다.
4명의 갱들이 은행을 털고나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미스터리와 맞물려 전개된다. 이 4명의 갱들에게는 각자 독특한 능력이 있다. '상대방의 말 속에서 거짓말을 솎아내는 재주' 를 지닌 1번 갱,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그렇지만 최고의 달변자'인 2번 갱, '동물애호가 이면서 소매치기의 귀재' 인 3번 갱, 그리고 '몸에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어 늘 정확한' 유일한 홍일점 4번 갱. 그들은 흡사 외국 만화에 나오는 '환타스틱 4'와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들은 은행을 터는데 유감없이 발휘가 된다. 그러한 그들이 은행을 털고, 그 은행을 턴 돈을 다른 갱들에게 털리게 되는데...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는 대체로 가볍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가볍지 않은 사회의 문제들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말이다. 청소년 사이에 벌어지는 이지매, 어린 나이에 나이든 사람과의 원조교제, 단 한번의 사랑으로 자식을 낳고 혼자 키우는 싱글맘, 돈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벌이는 파렴치한, 나라의 경제를 망쳐버린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 '적을 감싸는 자도 적'이라고 말하는 부시정권에 대한 일침 등 다양게 드러난다. 하지만 결코 무겁거나 그들을 매도하거나 결론을 내지는 않는다. 가볍게 다루는 척 하면서 읽는이로 하여금 되씹게 만든다. 바로 이런 면이 이사카식 이야기이다.
정신없이 그리고 명랑하게 때로는 재치로 똘똘 뭉친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즐거우면서도 가슴 한켠에 작은 슬픔이 도사리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정의감 같은것이 솟아오른다. 그래서 이사카 고타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