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터』 가 끝났다. 물론 완결이 아닌, 시즌 1이 끝났을 뿐이지만, 왠지 아쉬움이 느껴진다. 모든 매체를 통틀더라도, 『다이어터』 만큼 내 마음을 흔든, 주인공에 동화된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 난 매주 두 번씩 수지의 좌충우돌 다이어트에 울고 웃고 했었다. 그건 아마 나도 수지와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놓고 표현은 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뚱뚱한 것은 거의 죄악시되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뚱뚱한 사람들도 그런 죄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인들 스스로 그런 "불편함"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젊고-마른-정상인에게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사회니까.  

찬희의 말은 당연하지만,  이 사회가 정상 체중을 가진 사람들보다 비만인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가능한 얘기다. 언제나 정상에서 벗어난 (도대체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소수자들은 "freaks"취급을 받기 마련이니까. 뭐 더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난 그저 다이어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되지도 않는 키보드질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다이어트 개론이 아니라, 내 (경험에 따른) 이야기 혹은 수지의 이야기일 뿐이다. 

너무나 익숙하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가 다이어트를 결심한 때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언제나 똑같아 보이던 얼굴이 오늘따라 갑자기 커보일 때, 잘 입고 다니던 바지가 어느 순간 불편해질 때. 뭐 그런 때가 아니었을까. 그럴 때마다 꼭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그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모든 것은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다이어트는 충동적인 경우가 많아서였을 것이다. 

식사량을 조절하거나, 식단을 바꾸는 다이어트는 가장 기본적인 다이어트지만,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물론 먹는 것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살을 뺄 수 있다. 하지만, 식단 조절은 굉장히 엄격하게 지켜야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상황에 맞게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는 동물이기에, 고통스런 식이조절은 실패할 확률이 너무나 높다. 수지도 『다이어터』 초반부에 그런 오류를 아주 눈물나게 보여주지 않았나!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많이 먹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유독 많이 먹었다고 느끼는 날에는, 먹은 걸 억지로 게워내곤 했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손가락을 억지로 목구멍에 쑤셔놓고 웩웩 거리는 날 발견할 때, 그 때 얼마나 한심하고 서러웠던지. 오늘자 『다이어터』 에서 죄의식을 느낀 수지가 변기통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유난히 가슴아팠다.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인 것이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은, 그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화에 나온 수지의 다이어트 방법을 보면, 식이조절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거, 가장 이상적인 다이어트인 동시에,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다. 왜 이 방법이 고통스럽냐면, 눈에 띄는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90분 운동에 제대로 된 식사는 점심 한 끼, 아침, 저녁은 맛없는 풀 투성이의 식사. 이런 고통스런 고행을 시작했으면, 응당 눈에 띄는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거울로 비춰봐도, 저울로 달아봐도, 변하는 게 없으면, 맥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방법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빠르면 2주, 늦어도 4주는 걸린다. 그렇다고 뭉텅 빠지는 것도 아니다. 아주, 병아리 눈물만큼, 조금씩 빠질 뿐이다.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은 조급증이다.  길게 봐야 가능한 것이 다이어트다. 연예인들이 빠른 기간에 살인적인 감량을 하는 것은, 그들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라도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하루에 10시간씩 운동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니까 이렇게 간단하지, 그 살인적인 감량을 위해 그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참아냈을까. 하지만, 우리는 결과만을 중시할 뿐, 그 과정엔 관심이 없다. 아마도 우리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는, 언제나 눈에 띄는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마는 게 아닐까.   

 다이어트는 금연과 같다. 금연은 (담배를) 끊는 게 아니라, (피우고 싶다는 욕구를) 참아내는 것이다. "한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습관. 비정상적인 세상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는 패배주의적인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겐 만족감을 줄 수 있으니까.  

물론 이 시대에 다이어트는 판타지에 가깝다. 놀랍도록 사실적인  『다이어터』조차도 찬희라는 판타지가 개입되어 있다. 『내일부터 다이어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주술의 힘을 빌어야 가능한 다이어트라니... 어쩌면, 이렇게 환상에 기대는 것이 다이어트를 이루고 싶은 현대인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런지.  

또 하나마나 한 말이 길었다. 그저 2주간 꾹 참으면서, 하루 빨리 수지의 귀환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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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y, I've JUST checked your mail. Hotmail is NOT my main email address. If my sis didn't let me know it, I wouldn't check it till next year. Anyway, I really appreciate it. For you, I enjoyed, and had a great day. :D  

How about Korean films? Are they good or ? Frankly, the list I gave you is not my taste, but typical. My (own private) list is wired. (or you'd say it's eerie! :D) A lot of korean films are, you already know, boring. Just few, good. So it's very hard to recommend you THE "ULTIMATE" LIST.  

Here is the deal. I'll tell you Korean flim list I watched that gave me "(cinematic) shock" this year. Some are released on DVD and will soon, but the others, I'm not sure. I hope they are all released when you BE HERE.  

 

 

1. 페어러브 (The Fair Love)  

Boy meets Girl and they fell in love. But, what if he loves his friend's daughter? It's NOT "American Beauty" or "Damage". It's about "growing up." A special love story, very cute.  

 

2. 경계도시 2 (The Border City 2, Documentary)   

Documented what happened in 2003 HERE. The National Security Law, freedom of ideology and lunatic witch hunt. This is the other side of South Korea you had been. Definitely, sad but true.  

 

3. 집나온 남자들 (Looking for My Wife)   

I'd say it's Korean Odyssey. Hard to meet his wife, Penelope. Some typical but the rest funny. To love and live with is not same. Welcome to the club! :D  

 

4. 원 나잇 스탠드 (One Night Stand)   

3 parted omnibus. You'd feel 1st is normal and 2nd is boring but the last segment, you'll love it. It's story about; culture and gender, friendship and love, misunderstanding and understanding, comedy and melodrama. First of all, Very Funny.  

 

5. 하녀 (The Housemaid)   

Forget about "The Housemaid, 1960" I presented you . This is not remake film. It's- no offence, literally - "totally fucked up" cinema. You'd know my words.  

 

6. 시 (Poetry) 

The title "Si(Korean Pronunciation)" means poetry(詩) but also corpse(屍). This film starts with a corpse and ends with a poem. But this is about ethic and dilemma. Ethic for the parents(or the protector) and ethic for people(or the citizen). If your relative concerns with murder, what would you choose?  

 

7. 하하하 (Hahaha)   

HONG Sangsoo's works looks simple. You couldn't find story well, but you'd feel the mood, think of the relationship about characters and (finally) reflect your life. Watch and experience it, and you'll check his films.  

 

8. 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What is "Seeing?" It is appetite. What is "Movie"? (I think) it is life. (To me) seeing movie is experiencing others' life. They must not be appetite, but we don't care. We want to see MONSTER in the film. Which one has priority, your appetite or others' life? This film would give you an answer. But, Beware!  

 

9.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Bedevilled)   

Assailants and onlookers, which one is worse? Anyone can't live like Boknam(main character's name), but anyone can be(-devilled). Sympathy (and Catharsis) for Lady Vengeance. Hot and Lunatic!  

 

10. emptied for not released film yet.  

 

 

This is it. I'll post it on my blog because it's hard to DO cut and paste film posters I mentioned. In that ways, "Aladin Blog" service is great! Print this post and keep it well. When you be here, you can find Korean films well.  

If you communicate with me, email to sseryuba@empal.com, please.  

Take care!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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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닉네임의 의미는? 제 닉네임의 의미,온라인의 우리 이름,닉네임

시대상으로는 아직 공산 치하의 폴란드. 이야기는 바르샤바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집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한 소년은 친구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친구는 1년 전에 외국으로 떠났으며, 어머니는 아들 친구를 아들처럼 대하고 살갑게 지냅니다.  

소년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밤마다 망원경으로 건너편에 사는 한 여인을 훔쳐봅니다. 그녀는 화가이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소년이 볼 때마다 남자가 바뀌어 있으니까요. 소년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지만,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관한 사과 정도를 전할 뿐이지요. 소년은 우체국에서 일을 하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지냅니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개인적으로 보고 싶어, 그녀의 우편함에 위조된 연금 통지서를 넣고 그녀를 만납니다. 그녀의 아파트에 우유가 배달되지 않는 것을 알고 우유배달을 자청합니다. 소년의 생활은 그녀의 생활에 맞추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애인과 다투고 집에 들어옵니다. 소년은 그녀를 바라봅니다. 되는 일도 없고, 외로움에 흐느끼는 그녀를 소년은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어느 날, 소년의 실수로 그녀는 우체국에서 모욕을 당합니다. 소년은 그녀를 쫓아가 "당신이 어제 운 것을 알아요."라고 말을 합니다. 소년은 자신이 그녀를 오랫동안 훔쳐봤다고 고백합니다. 황당한 그녀는 욕을 하고 돌아섭니다.   

 

다음날 아침, 우유 배달을 하는 소년에게 그녀가 다가가 이야기합니다. "나한테 뭘 원해?" "아무것도요. 당신을 사랑해요." "키스하고 싶어? 아니면, 나랑 잘래?" "우리 아이스크림이나 먹을래요?"  

소년은 꿈에도 그리던 그녀와 데이트를 합니다. 소년은 고백합니다. "친구가 떠나면서 망원경을 주고 당신을 알려줬어요. 처음엔 호기심으로 봤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전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요." "사랑? 그런 건 없어. 섹스만 있을 뿐이지.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있는, 육체에서 비롯되는 이 순간, 이 느낌만이 있을 뿐이지, 그 따위 감정은 없어." 

그녀는 소년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성적으로 미숙한 소년을 농락합니다. 당황한 소년은 본의 아니게 사정을 하고 당황합니다. 그런 소년에게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이게 사랑이야. 이제 화장실에 가서 닦아 버리렴." 소년은 수치심과 상실감에 뛰쳐나가고 집에서 자신의 손목을 긋습니다.   

 

떠난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여인은, 어쩌면 자신이 너무나 심하게 군 게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소년이 그녀를 바라본 것은, 처음엔 관음의 목적이었으나, 지금은 그녀를 원하는 그 어떤 남자들보다 자신을 잘 알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갑작스런 앰블런스 소리에 불길해진 그녀는 소년의 집에 찾아가 보지만, 어머니는 쌀쌀맞게 대할 뿐입니다.  

그녀는 소년의 방에서 망원경을 보고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년의 쓸쓸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느낍니다. 이제 그녀는 소년이 돌아올 때까지 소년의 방을 망원경으로 바라봅니다. 소년이 돌아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나도 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   

 

여인의 이름은 마그다(Magda), 그리고 그녀가 기다리는 소년의 이름은 토멕(Tomek)입니다.  

 

 

 

* 덧붙임:   

    

1.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십계(Dekalog)>는 10부작 연작 드라마입니다. 그 중 5번째 계명과 6번째 계명은 따로 편집해서 극영화로도 개봉되었습니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 바로 그렇습니다.   

 

2. 변호사인 크쥐시토프 피에시에비츠와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는 종교적 계율이자 사회적 약속인 십계에 관한 10개의 이야기를 찍었습니다. 각 편은 각 계명의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꼭 그 계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십계가 율법이자 윤리이듯이, 키에슬롭스키 감독은 이 드라마를 각각의 에피소드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원한 것 같습니다.  

 

3. <십계: 6번째 계명, 어느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같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결말이 서로 다릅니다. 제가 본문에 쓴 내용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고, <십계: 6번째 계명, 어느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는 후일담이 더 들어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우체국에 찾아간 마그다는 팔목을 붕대로 감싼 토멕을 발견합니다. 그녀는 그가 일하는 창구로 다가가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녀의 표정은 반가움과 안도감이 실려 있습니다. 잠깐 망설이던 토멕이 그녀를 향해 이야기합니다. "이젠 당신을 더 이상 훔쳐보지 않아요."  그리고 올라오는 타이틀. "십계, 6번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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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렇군요. 저도 저 10계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토멕이었군요. 이름까지는 기억 못하고...
분명 영화 주안공 이름일거라는 건 짐작은 했지만.
근데 토멕님 영화 공부나 아님 이쪽에 일하세요?
아는 스터디 그룹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토멕님 막 귀찮게 해드려야징~ㅋㅋ

Tomek 2010-07-23 07:19   좋아요 0 | URL
전 영화하고 아무 관련이 없어서 아는 게 없습니다... ㅠㅠ

저야말로 소개시켜주세요. 알고 싶은 게 많은데 혼자만 하려니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

루체오페르 2010-07-2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멕님 안녕하세요! 트랙백이 걸렸기에 반가워 와서 글 잘 봤습니다. 몰랐던 분야에 대해서도 알게됬고 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토멕 이란 닉네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 이 영화와 극중인물인 토멕이 많은 감명을 주었나 봅니다.

결말이 궁금했는데 6계명이 올라오고 여주의 표정을 보니 뭔가...안타깝네요. 새드엔딩인듯^^; 어느 사랑에 관한 이야기...잘 봤습니다.

Tomek 2010-07-23 07:22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 님 반갑습니다. :) 글 읽고 빨리 참여하고 싶었는데 좀 늦어졌어요.:)

결말은 두 개가 있는데 TV판은 새드 엔딩이고, 극장판은 해피 앤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TV판 결말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더 슬프고...

극장판 결말은 이렇습니다.


루체오페르 2010-07-23 22:42   좋아요 0 | URL
오 요즘도 흔치않은 멀티엔딩~
감사히 잘 봤씁니다.^^

iamtext 2011-09-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줌마라 그런가, 전 드라마를 몹시 좋아합니다. 트윈픽스, 십계... 부천에서 킹덤을 다보고 나오는 순간에는, 내 인생에서 이제 더이상의 오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같다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더랬죠. 십계, 정말 흥미진진하죠. 드라마에 다시 빠져볼랍니다.

Tomek 2011-09-01 15:53   좋아요 0 | URL
킹덤! 저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9~12부작이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슬플 뿐입니다...

ㅠㅠ
 
[활동 종료] 6기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어느덧 2010년도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5기에 이어서 6기 신간 평가단에 참여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나름 행운이었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5기 때는 (힘겨운) 직장 생활과 병행해 책을 허겁지겁 읽어 아쉬움이 많았던지라, 6기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찬찬히 읽을 작정을 했었습니다. 시간이 그만큼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꽉 짜인 일상에서 헐거운 일상으로 자리 이동 중,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와, 근 한 달 넘게 책을 읽지 않고 지냈습니다. 서재도 거의 방치하고 지내는 수준이었고, 짧은 기간 (나름) 많이 사귀었던 알라디너 분들과도 소원해졌지요. 5월 중순 부터는 조금 나아졌지만, 그 기간 동안은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활동도 하지 않은 무책임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 5기와 6기 신간평가단을 지원할 때 어떤 마음으로 지원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서평단을 지원하는 첫 번째 이유는 꾸준히 서평을 올려서 나태한 제 자신을 다잡는 기회로 삼고 싶어서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동안 제 입맛에만 맞는 편식한 독서에서 벗어나보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좋은 신간을 발견하면, 알라디너들께 소개해 주고 싶은, 발견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에세이, 과학, 잠언 등으로 묶인 죽음에 관한 성찰입니다. 이 책은 어느 카테고리에 분류해야할지 망설임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쁘게 보자면, 죽음이란 주제를 진중하게 풀지 못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끌어다 쓴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죽음에 대해 여러 담론을 끌고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긍정적인 모습에 한 표 던집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야기의 톤이 시시때때로 바뀌어 당황스러웠지만, 다 읽고 나니, 죽음이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글쓰기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필연적인 이야기니까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는 『십자군 이야기』로 유명(혹은 오명)한 김태권 작가의 학습만화입니다. 아직 서양의 중세 이야기를 다 풀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발간한 이 '동아시아' 프로젝트를 처음 접했을 때는 반가움보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컸습니다. 도대체 언제 끝낼 것인가? "이번만큼은 믿어 달라"는 작가의 말도 있으니, 한 번 더 믿어봐야겠지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는 『사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렸지만, 우리가 익숙해하는, 소위 '설(說)'에 반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사마천이 역사적 사실과 소문을 한데 담아, 독자가 취사선택할 수 있게 했다면, 김태권 작가는 소문은 덜어내고 오직 역사적 사실만을 유추하며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렇기에 조금은 딱딱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역사와 인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이번에는 꼭 완간하시기 바랍니다.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은 일만하고 놀 줄 모르는, 노는 것은 음주와 쇼핑 정도 밖에 모르는 불쌍한 우리들을 위한 책입니다. 세상은 이만큼 진화했는데, 아직도 6~70년대 제조업의 기적을 바라는 높으신 분들은 무조건 야근에 책상에 앉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죠. 이 책은 당연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노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일을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놀이의 반대말은 일이 아니라 우울함"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괴롭게 직장에 메여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생은 고통이지만, 우리는 매 순간 즐거워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는 자기 계발서입니다. 다른 계발서와 다른 점이라면, 『사기』에서 이야기를 끌어온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는 이야기의 교훈을 도식적으로 분류한 것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지엽적으로 푼 것에 대한 반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에 수록된 '이야기'의 재미는 굉장했습니다. '쉽게 풀어 쓴 사기'라 해도 좋을 만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의 저자 김소영 씨는 교수이자 평론가이고 영화감독입니다. 그녀는 정성일, 허문영 씨와 함께 영화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풀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씨네 21>에는 이들의 글이 정기적으로 실렸지요. 책에서 그녀가 이야기하는 한국 영화의 절반가량은 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이라, 텍스트로만 만나야 하기에 아쉬움이 큰 편이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경관은 한 번쯤 따라 갈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순한 가이드가 아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소개는 영화, 특히 '한국' 영화는 시공간을 어떻게 경유하고 견뎌왔는지에 대한 사색을 전해줍니다.  

『디오니소스의 철학』은 술과 철학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면서도 의외로 잘 어울리는 두 주제를 잘 버무렸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습니다. 적은 분량에 고대부터 근대까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술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철학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취한 느낌이 든 것처럼 밀려드는 정보와 사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도만큼은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영단어 인문학 산책』은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 단어의 유래를 들어 서양사의 역사와 문화, 사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영단어 외우기 비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시험에 나오는 영단어를 설명하지도 않지요. 이택광 교수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영어를 시험으로 바라보지 않고, 문화로 대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이야기하는 영어 단어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언어는 문화’라는 기본 명제를 가장 잘 설명하고, 그만큼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는 다분히 전투적입니다. 2010년 한국에서 불온하게 소비되는 '좌파'라는 단어와 순수 학문으로의 기능을 잃은 '인문학'을 접붙인 것만 보더라도 이 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사망선고를 받은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이택광 교수는 지금 2010년 인문학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역시 읽는데 만만치 않은 책이었습니다. 읽기는 했는데, 제대로 읽었는지 회의하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다 죽었다고 생각한 인문학의 효용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각기 언급한 철학자들의 먼지 묻은 서적을 다시 꺼내어 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중요한 책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회화와 음악을 인문학적인 접근이 아닌, 저자 개인의 감상으로 접근한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부분으로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과하게 풀어 놓아서 그 거부감이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화와 미술은 창조자의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결과물입니다. 저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드러내며 회화와 음악을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접근 방법은 참신합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강연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멋대로 부제를 단다면, '이명박 프리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리영희 선생님, 죄송합니다), MB 정권 시대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부터, 토건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대통령의 '삽질 마인드'까지 지금 대한민국에 드러나 있는 모든 문제점을 다루었습니다. 때로는 실소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을 평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에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그냥 실천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그것도 거창한 실천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이야기합니다. 민주주의란 그렇게, 작지만, 개인이 움직여 큰 물결을 만들어 내는 것임을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우울의 심리학』은 우울증에 관해 이야기입니다. 우울증이란 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질병인지를 이야기하고, 그 무시무시한 우울증에 벗어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우울증이라는 게 워낙에 개인별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일반적인 방법이 통할까 궁금해 했었는데, 저자는 일반적인 치료법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울증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위로와도 같은 책입니다. 물론 저자가 겪은 우울증의 진폭은 좀 큰 편이지만, 그녀의 위로는 어설픈 심리 치료보다 훨씬 위안이 됩니다.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는 비만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책입니다. 비만에 대한 너무 일반적인 접근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이 책은 비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한, 착한 성격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착한 그녀들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녀들의 삶은 거의 성직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고나면, 자신을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뒤 고스란히 남는 스트레스. 부족한 시간과 스트레스는 먹을 것으로 귀결됩니다. 착한 여자들이 살이 찌는 이유는 그녀들이 (적당히) 이기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남을 위한 삶은 그만 살고,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상에는 음식 보다 더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7기에도 지원하고 싶었지만, 7월 말에 있을 이사 때문에 지원을 못했습니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8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신간평가단의 책 읽기는 항상 긴장과 비판과 즐거움이 수반되니까요. 그동안 좋은 책 보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롱펠로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불러온 것을 보니 내가 정말로 아픈가보구나.'

전 여동생하고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서로 쌓기만 하고 터뜨리지 않아 결국엔 터져버리고 말았지요. 우리는 한동안 거의 말을 지내지 않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쓰인 명사들이 임종 직전에 남긴 말들을 읽으면서, 유난히 이 글귀에 마음이 아렸던 것은 동생에 대한 아마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틋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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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7-0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짝!!!!!
신간평가단에 참여하면서 즐거웠던 일들 중 하나는 Tomek님 리뷰 읽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끝내지 못한 리뷰가 2권이나 있어서(엉~엉~) 빨리 끝내야...

Tomek 2010-07-09 13:0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잘 썼어야 했는데 성격대로 너무 설렁설렁해서 아쉬움이 도네요...
굿바이님은 7기 지원하셨나요?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D

2010-07-0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0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신간평가단 2010-07-1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습니다. Tomek님. Tomek님 덕분에 든든했답니다. ^-^
설렁설렁이라뇨, 무엇보다 정성스러운 페이퍼, 잘 읽었고, 고맙습니다.

저 위에 굿바이님은 7기 지원을 하지 않으셨답니다. 참 아쉬운 일이죠 ㅜ_ㅜ
그리고 Tomek님의 베스트 다섯권이, 저는 진심으로 궁금하니다. 하하.
이사 잘 하시고요. ^-^ 그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페이퍼 잘 읽고 갑니다.

Tomek 2010-07-10 07:1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지나고나니 자꾸 아쉬움만 남아요... 좀 잘 할걸...

전 모든 책이 베스트여서 다섯 권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5기 때도 그랬고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책들에게 미안해서... :D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수고 많으셨고요. 7기 때도 잘 부탁드려요.
 

저는 유독 사람 얼굴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특히 여배우들의 경우는 거의 최악입니다. 제 눈에는 다들 비슷하게 보여서 영화를 보다가 종종 사람을 놓쳐 이야기를 엉뚱하게 이해하곤 합니다. 거의 안면인식장애 수준이죠. 그래서 사람을 기억할 때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나 특징들로 인식을 하곤 합니다. 생김새는 다르더라도 그 사람의 특징을 구분하는 분위기는 개인마다 다르니까요. 곽지민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배우(의 연기)가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테마가 지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얼 씨와 한여름 씨가 워낙에 강렬한 연기를 했기 때문에 묻힌 느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곽지민 씨는 이 영화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볼 때면, 영화에 이상한 긴장감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이 영화에 드리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로 그녀를 본 것은 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에서였습니다. 황제슈퍼 사장님의 딸로 등장한 최비단.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춤바람에 빠진, 사랑에 굶주린 문제아. 드라마 초반, 황메리(이하나)와 강대구(지현우)의 포복절도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는 와중에서도 최비단이 등장하면 드라마는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코미디로 흐르던 드라마가 갑자기 자신의 장르를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 많지 않은 출연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비중이 원래 계획보다 더 컸었더라면, 아마도 <메리대구 공방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제가 과장해서 쓴 말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리즈 <다세포 소녀>를 보고 그런 생각을 철회했습니다. 그녀는 분명 작품을 장악하는 배우입니다.  

<다세포 소녀> 시리즈에서 그녀는 외눈박이의 동생인 두눈박이 역을 맡았습니다. 두눈박이는 겉모습은 여자지만, 남자입니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면 성전환수술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무쓸모 고등학교의 초거대재벌 F4의 멤버인 명진(윤성훈)은 사랑을 느낍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애써 무시하려하지만, 두눈박이에게 끌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B급 달궁의 원작에서 차용한 명진과 두눈박이의 이야기는 이재용 감독의 영화에서도 쓰였습니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는 인물들의 캐리커처를 다룰 뿐,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원작은 순정변태명랑만화이고, 영화 역시 그 분위기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김주호 감독이 초반에 연출한 에피소드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가벼운 터치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두눈박이, 그러니까 곽지민 씨가 등장하자마자 드라마는 갑자기 진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대책 없던 원작이 갑자기 성과 계급을 다루는 진지한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곽지민이라는 배우의 역할이 큽니다. 그녀는 두눈박이라는 인물을 가볍게 보지 않았습니다. 두눈박이가 형 외눈박이에게 하는 말을 원작과 비교해보면 다가오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눈박이의 힘겨운 삶을 육화해서 보여줍니다. 그녀의 울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과 그와는 반대로 야무지게 앙다문 입은 지금까지 한눈팔며 드라마를 보던 저를 반듯하게 앉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두눈박이의 모습을 보면, 두눈박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 모든 것에 냉담하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숨기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명진의 모습에 설렘을 느끼기도, 사랑을 느끼기도, 그리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두눈박이의 입체성은 온전히 곽지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은 가능성에 머물고 있는 배우지만, 저는 이 배우가 더 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곽지민 씨는 배우라는 스케치북에 자신을 그렸습니다. 그녀가 완성해나갈 스케치북이 같은 그림으로 메워질지 아니면 다양한 그림으로 메워질지는 그녀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배우를 믿습니다. 



 

 

※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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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2010-07-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눈박이때부터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젼 배두나씨와 비슷한 반항아적인 매력이 있는데 아직은 유망주죠. 영화 1~2편 개봉앞둔 게 있다고 알고 있는데 개봉소식은 아직 없네요.

Tomek 2010-07-11 08:38   좋아요 0 | URL
아직은 계속 고등학생 역이라... 성인 연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D 올해 개봉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