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용실에 두피관리를 받으러 가면서 지난번에 다 읽으면 헤어디자이너 선생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한 [울분]
을
드렸다. 그리고선 나는 의자에 앉자 마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으려고 펼쳤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의 제목을 보신 최선생님께서 "어머 이 책 다시 읽으시는 거에요?"라며 아는 체를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도 예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요즘 아들아이 때문에 다시 읽고 있어요."라신다. 우리는 순간 같은 책을 동시에(?) 집어들고 읽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나는 이 책을 오래전에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읽으면서 "어쩌면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거의 좌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처럼 교만한 사람은 사실 봤던 영화도 다시 못 보고 읽었던 책도 다시 못 읽는다. 내가 반복해서 보거나 읽는 책과 영화는 정말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니까.
내가 기억력이 좋았다면 가령 지금 홀든이 읽고 있다는 책 이야기 부분 같은 것은 대강 넘어가면서 읽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고 그래서 첫장부터 처음 읽는 것처럼 꼼꼼히 다시 읽을 수 있었고 홀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을 자세히 읽을 수 있었다.
기억하고 싶어서 여기에 다시 옮겨 적는다.
![](http://blog.aladin.co.kr/fckeditor/editor/Images/quote_start.gif) |
|
|
|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도서관에서 실수로 빌려온 책이었다. 도서관 사람이 엉뚱한 책을 내준 줄도 모르고, 그대로 방으로 가지고 와버린 것이다. 이삭 디네센이 쓴 『아프리카 탈출』이었다. 형편없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주 좋은 책이었다. 난 무식했지만, 책은 정말 많이 읽었다. (중략)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처럼 때때로 웃음을 주는 내용이다. (중략)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물론 그런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이삭 디네센과 같은 작가는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다.(중략)
어쨌든 난 새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서 『아프리카 탈출』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은 이미 읽은 것이었지만,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읽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다. p.31~33 |
|
|
|
![](http://blog.aladdin.co.kr/fckeditor/editor/Images/quote_end.gif) |
홀든이 지금 읽고 있다는 이삭 디네센의 『아프리카 탈출』은 아마도 본명은 카렌이며, 필명이 이자크인 이자크 디네센을 의미하는 것 같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물 이삭('웃음'이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까. 처음 이 작가를 몰랐을 때 나는 이자크라는 이름만 보고서 남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 작가인 걸 뒤늦게 그녀의 책 [
바베트의 만찬]
![](http://image.aladin.co.kr/product/45/3/coveroff/8982817751_1.jpg)
을 읽고서 알게 되었다. 바베트의 만찬은 순전히 만찬이라는 단어 때문에 읽었는데 나도 처음엔 형편없는 책을 시간을 낭비하며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정말 읽기를 잘 했고 홀든의 말처럼 아주 좋은 책이었다. 디네센이 알리는 만무하지만 잠깐이라도 형편없는 책이라는 생각을 한 게 미안했다.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저처럼 샐린저씨도 당신을 좋아하나봐요~.^^
『아프리카 탈출』은 아마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
![](http://image.aladin.co.kr/product/592/71/coveroff/8932910049_1.jpg)
를 말하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영문판이나 한글판이나 작가가 '이자크 디네센'의 본명인 '카렌 블릭센'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거지? 그러니까 샐린저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카렌 블릭센이 이자크라는 사실을 알고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졌기 때문에(작가로서) 이삭 디네센의 작품을 읽고 있다고 한 건가? 아니면 번역가인 공경희씨는 샐린저가 카렌 블릭센 이라고 썼는데 그 이름보다는 이자크 디네센이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쓴 건가???
어쨌든 나도 이 문제 때문에 샐린저나 공경희씨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 아니면 원서를 사서 보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ㅎㅎ
내가 읽고 있는, 읽은, 읽게 될 모든 책의 작가를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정말 황홀한 책을 쓴 작가에겐 나도 전화를 해서 내가 그의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나는 책에 대한 말보다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 엉뚱한 사람이다.(내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이지만 쓰자니 쑥스러워서..)
한 때 알랭드 보통을 무지 좋아해서 그의 책을 다 사모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전작주의는 위험하다. 그에 대한 과도한 애정이 빨리 식어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http://image.aladin.co.kr/product/1307/63/cover150/8986836432_1.jpg)
]가 출간 예정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였다면 그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도 외면했을 텐데.
물론 쉽게 외면하지는 못하고 억지로 외면해야 하는 변명을 늘어뜨리며(내 자신에게) 했을 텐데.
이건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출판사 책소개에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어 옮겨 온다.
알랭 드 보통은 공동체 정신이 붕괴한 현대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신에게조차 의지할 수 없게 된 사회에서 소외되어 고립된 우리는 지금 고독 속에서 방황해야 하는 것이 필연일까? 드 보통은 현대의 인간과 사회를 향해서 주장한다. 종교란 하늘나라에서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릴 때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그리고 무신론자들을 향해서 기존의 종교가 가진 미덕들과 제도들은 여전히 가치가 있고 유용하고 위안이 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 각자는 자신의 “신전”을 세우고 그 속에서 사랑, 믿음, 관용, 정의, 절제 등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실천 과정에서 미사, 명상, 문화예술?특히 종교 건축, 종교 미술?등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드 보통은 단순한 무신론자, 반종교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소외를 극복하고 사랑과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공동체 정신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지혜와 희망의 철학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첫 한국 방문에 맞추어 영어 원서의 출간(내년 2월 예정)에 앞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