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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10-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더불어 절대 애 낳지 말아야지 라는 결심도 굳혀주네요.

프레이야 2006-10-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서워지네요...

해리포터7 2006-10-24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느낌이네요..

해콩 2006-10-2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기.. 실제로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래서 저런 발상이 더 무서워요. 사실 6월엔 월드컵이 있어서 저 사진이 더 오버했는지도 모르지만 학교 게시판에 붙여진 저 홍보물을 보고 아이들은 은근히 감동하는 눈치인 것 같았어요. 더 무섭죠?
 

[동무와연인] 니체는 놀잇감에 불과했다/김영민
“만남을 어느별이 도운걸까요” 루 살로메 앞에 선 니체는 그저 눈시린 통속이었지만
그녀에게 연애란 ‘3’의 놀음 둘만의 밀회를 허하지 않았다
한겨레
» 루 살로메, 파울 레, 니체. 이들 셋의 만남은 루 살로메에게 ‘3’이라는 운명적인 놀이였다.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⑦ 루 살로메와 니체-3 혹은 살로메의 아이러니

총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남자들의 세상과 그 논리에 직수굿하게 응종하기 싫은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목에서 늘어진 스카프가 남자들이 만든 자동차의 바퀴축에 말려들어 운명보다 빠르게 죽어버릴까, 아니면, 남자 한 명이라도 품에 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져 스스로의 운명을 완결시킬까? 만일 명민한 약자들이 쉽게 빠지는 시적 히스테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슬기를 산문적 근기와 이드거니 섞을 수 있다면, 필시 그 여자는 운명보다 느리게 사는 법을 익힐 것이다.

강자의 취향이 약자의 운명으로 주어질 때, 총명한 약자는 흔히 자신의 삶을 극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그 운명의 차꼬를 떨쳐버리려 한다. 빈대와 더불어 초가삼간을 태우는 짓은 반드시 어리석은 자들의 몫이 아닌 것이다. 히스테리, 그것은 운명 속에 억압된 약자의 재능이 몸을 통해서 말하는 방식이자 그 몸을 태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치 헤겔과 대치하는 니체처럼, 남성지배체계 속의 똑똑한 여자들은 시적 히스테리 속에서 주어진 운명과 절망적으로 대치하다가 부실(不實)의 꽃으로 아름답고 슬프게 미쳐간다.

하지만 그녀는 카미유나 밀레바 마리치와 달리 남자-애인을 위해 무료봉사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명성 속에 자신의 재능을 동화시킬 수 없는 게 그녀의 천품이자 기질이었다. 그렇다고 권력과 자본의 구애를 뿌리치고 진실과 정면으로 대결해서 꿋꿋이 사는 여자, <성>(카프카)의 아말리아와 같을 수도 없는 여자가 그녀였다. 운명보다 빠른 걸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운명보다 느리게 살 줄 알았던 여자, 바로 그녀가 루 살로메(1861~1937)였던 것이다.

운명보다 빠른 걸음으로 운명보다 느리게 사는 방식은 물론 ‘놀이’이며, 그녀는 놀이의 명수였다. 꼭 그녀만이 아니라, ‘총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남자들의 세상과 그 논리에 직수굿하게 응종하기 싫은 여자’는 으레 놀이에 능하게 된다. 그리고 호이징하의 놀이론과 달리 매력적인 약자에게 놀이는 종종 생존의 문제다: 그것은 다만 한가하고 무익한 형식성의 유희가 아닌 것이다.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1958)에는 놀이가 ‘가면을 쓰고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임의의 행위’로 정의되는데, 기이하게도 이것은 루 살로메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이 현기증의 놀이는 3(삼각형)의 구조, 그 긴장의 아이러니 속에서만 생명을 얻는다.

신과 조국과 남자의 그림자 속에 묻히기를 거부한 그녀는 가면을 쓰고 남자들로 하여금 현기증의 쾌락에 도취하게 만든다. 그것이 곧 생존이 된 아이러니인 것이다. 방년 17세였던 그녀는 목사 H. 길로트의 지식을 왕성하게 소화하지만, 이 유부남의 혼인 제의에 실망하고 스위스로 도피한다. 짐멜이 분석한 ‘연애유희’라는 개념처럼, 연애는 유희이니, 이 목사처럼 설맞게 혼인을 바라는 것은 반칙! 마찬가지로, 혼인이라는 상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 연애라는 아이러니.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그녀를 처음 본 니체가 건넸다는 유명한 인삿말이다. 역시 심오하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니체 특유의 화법이다. 호사가들은 니체와 루 살로메를 엮어 공상의 애드벌룬을 띄우기 좋아하지만, 둘 사이의 만남과 사귐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통속, 통속, 그저 보아주기에도 눈이 시린 통속일 뿐이다. 파울 레가 그녀에게 니체를 가지고 놀지 말라고 부탁했을 만큼 그녀 앞의 니체는 조급했고 들떴으며 상상할 수 없이 비철학적이었다. 38세의 니체는 변변한 데이트조차 없이 21살의 그녀에게 청혼함으로써 전래의 남성주의적 반칙을 반복한다. 그러나, 아뿔싸! 21살의 그녀가 실로 사랑한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니체의 손’이었고, 그것이 그녀의 아이러니였다. 이것은, 마치 히틀러의 섬세하고 하아얀 손을 좋아하고 신뢰했던 하이데거의 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흔에 가까운 이 천재 철학자는 혼인이라는 상식으로 얼뜨기처럼 무장한 채 그녀의 아이러니와 불구적으로 대치한다. 물론 통속적으로 상처받은 남자의 반응 역시 통속적이니, 니체는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중상모략에 턱없이 호응하며 루 살로메를 ‘성불능자’로 매도하는 데에 이르고 만다.

그녀는 26세 되던 1887년 안드레아스와 혼인하지만, 얼마 후 둘 사이의 계약을 통해 이혼을 제외한 모든 행동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이를테면, 그것은 3(그녀, 남편, 자유)이며, 3이기에 가능해진 아이러니의 삶, 그 긴장이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물론 길로트 목사의 경우에도 그것은 3(그녀, 길로트의 혼인, 공부/유학)이라는 운명적인 놀이였다. 니체가 죽기 몇 달 전인 1900년 4월, 39살이 된 그녀는 남편 안드레아스, 그리고 약관 24살의 연인 릴케와 더불어 고국 러시아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역시 3이며, 그 아이러니의 긴장이 주는 역설적 통기(通氣)다. 니체와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내내 3(그녀, 파울 레, 니체)을 유지했고, 단 한 번도 둘만의 밀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루 살로메는 결코 니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는 너무나 서툴고 우정에는 너무나 무거웠던 이 천재의 재능을 담박 알아낸다: “니체에게는 이런 영웅적인 성격이 있다. 우리는 니체가 새로운 종교의 예언자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는 많은 영웅을 제자로 삼는 사람이 될 것이다.”(루 살로메의 일기 중에서)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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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애정 결핍 테스트

[러브테스트]여자도 가을 탄다? 애정 결핍 테스트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가슴이 허전하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마음 한구석이 저려오며 채워지지 않는 이 느낌!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지만 가을바람은 여심도 흔들어놓는다. 나는 지금 얼마나 고독한 걸까? 가을 타는 여자들을 위한 애정 결핍 테스트.

[체크리스트] 1. 애정 결핍도 알아보기
다음 중 당신에게 해당하는 것을 체크하세요!
최근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한 느낌이다.
날씨가 흐린 날은 왠지 내 기분도 다운된다.
여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모임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돌면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한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혼자 있을 땐 인터넷상으로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
쉽게 상처 받는 편이다.
책이나 영화를 보며 우는 일이 많다.
가방이나 쿠션을 껴안고 앉아야 편하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는 버릇이 있다.
핑크색이나 하늘색을 좋아한다.
스킨십을 좋아한다.
안겨 있거나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보다는 우유가 좋다.

뒤에서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귀는 남자가 반나절만 연락이 안 돼도 안절부절이다.
음료를 마실 때는 빨대로 마시는 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사랑뿐이었는데 늘 채였다.
무리 중에 있으면 돋보이고 싶은 욕구가 크다.
인형을 좋아하는 편이다.
잘 때는 베개라도 안고 자야 잠이 잘 온다.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다.
담배나 군것질거리를 입에 달고 산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낀다.
현재 남자친구가 없다.
엄마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전화 통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나 형제 사이에서도 샘이 많은 편이다.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자주 느낀다.
매니큐어나 피어싱을 즐긴다.
섹스한 뒤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남자는 키가 크거나 덩치가 좋아야 섹시하다.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연하의 남자는 사귀고 싶지 않다.


29~35개 애정 결핍 초중증형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애정결핍이 최고조에 달한 당신. 친구나 가족의 별 뜻 없는 말 한마디에도 크게 상처 받는다. 종일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곱씹다가 이내 우울 모드에 쉽게 빠진다. 자살을 생각하는 일도 많다. 선천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타입.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다. 모든 사람이 전부 당신만을 사랑하고 챙겨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듯해도 정작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딱히 없다. 어쩌다가 내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에게도 서운하기만 하다.

연애도 잘 될 리 없다. 응석받이에다가 투정을 자주 부린다. 남자의 작은 실수도 덮어주지 못하고 이내 화를 낸다. 늘 서운하고 속상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데이트는 늘 다툼으로 끝나는 일이 많다. 당연히 남자도 지쳐서 달아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을 많이 받고 싶어하는 타입은 그만큼 주기도 한다. 선물을 자주 하는데 상대가 원하는 것인지,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볼 것. 또한 주는 만큼 기대가 커서 늘 서운함이 앞선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당신은 손을 잡거나 기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 주위 남자들에게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한다. 연인 사이에 해야 할 행동과는 구분 짓도록 하자. 당신에게 섹스는 아주 중요하다. 사랑해야 가능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다고 해도 남자가 섹스 후 곯아떨어지거나 조금 소홀하면 크게 상처 받는다. 자신의 몸만 원한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상대의 외박은 곧 외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심도 많다. 신뢰는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22~28개 애정 결핍 과다형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당신은 사랑스러운 투정꾼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늘 조용하고 외로운 듯한 이미지가 몸에 배어 있다. 외로움을 강조하여 사람을 사귀는 편이다. 친구들 없이 못살고 전화기를 붙들고 사는 편. 외로움이 많아 주변에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신의 칙칙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떠나는 사람도 많다. 거울을 보고라도 웃는 연습을 많이 한다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좋은 생각,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어볼 것. 그렇다고 항상 왁자지껄한 장소만 찾다가는 군중 속의 고독감을 크게 느낄 테니 천천히 컨트롤하자.

정이 많은 당신은 말 한마디 표현 하나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사랑을 원하는 모습도 남자를 달아오르게 한다. 그러나 사이가 틀어지면 심하게 상처를 받아 상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내뱉어 버린다.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가는 일이 허다하다. 말을 내뱉기 전에 세 번 이상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당신의 격한 감정도 진정되고 실수하는 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함과 지옥을 함께 선물하는 연인이 되지 않는 연습을 해보자.

무드를 잘 타기 때문에 카사노바에게 빠지기 쉬운 타입. 그만큼 상처를 받으므로 성실한 타입이 어울린다. 섹스에 대한 진도는 차근히 나가는 것이 좋다. 급작스런 섹스로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들면 당신은 오랫동안 괴로울 것이다. 성관계시, 삽입보다 부드럽게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는 당신은 충분한 전희를 원한다. 애무가 부족해지면 이내 사랑을 덜 받고 있다는 생각에 빠진다.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하지 말고 당신의 성향을 파트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또 약간의 변태적인 행위나 가학적인 행동은 당신을 궁극적으로 상처받게 하므로 미리 상의하도록.

15~21개 애정 결핍 위험형
난 사랑이 부족한 편일까?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타입은 애정 결핍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계절을 타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다 보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간혹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당신은 스스로 혹시 내가 받는 사랑이 부족한 걸까 묻곤 한다. 그러나 천성이 밝은 편이므로 금방 우울 모드에서 벗어나는 것이 장점.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하는 힘이 있으므로 좀더 밝고 건강한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당신은 감정 조절 능력이 있으므로 스스로 위험한 생각에 빠뜨릴 상황은 만들지 말도록.

평소 잘 지내다가도 연인 사이가 되면 사랑 부족증이 나타난다. 자신의 시간과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며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좋다.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인 중재 능력을 발휘해 한쪽이 지나친 사랑을 갈구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도록 리드할 것. 당신에게 사랑을 담뿍 줄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훨씬 쉬울 것이다. 이러한 조절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당신의 사랑이 롱런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단, 상대가 당신을 냉정하게 느끼지 않도록 설명하거나 표현해주는 것이 좋다.

스킨십에 있어서도 적당히 치고 빠질 줄 아는 당신은 남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섹스도 남자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리드할 땐 리드할 줄도 아는 멋진 여성이다. 단, 주위 말에 솔깃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도덕성이나 섹스 라이프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은 반복적인 룰에서 벗어난 것. 상대 남자가 바람을 피우거나 몸이 피곤한 상태가 되면 애정 결핍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니 대화를 자주 갖도록 한다. 또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

8~14개 애정 충만형
난 가끔 외로워지곤 해
당신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타입은 아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것이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원동력.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가득한 상태다. 성격이 원만하고 밝아 주위에 친구도 많은 편. 주변에 여자친구뿐 아니라 남자친구도 많다. 사람은 밝은 쪽을 지향하고 원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노력하지 않아도 주위의 관심과 사랑이 따른다. 만약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욕심일 뿐이다. 가끔 외로움도 타지만 외로움도 즐기는 편.

표정이 다양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당신은 남자들의 관심도 많이 받는다. 언제나 남자를 기쁘게 하고 애교 넘치거나 귀여운 면이 많기에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상대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나 연인 관계도 원만하다. 다툴 일도 별로 없지만 다투게 되더라도 금방 화가 풀리는 타입이기에 사랑스럽다. 화가 날 일을 해놓고도 화를 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당신의 장점이다.

연인의 스킨십이 줄어들거나 섹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유쾌하게 의사 전달을 할 줄 안다. 만약 그가 좀 서운하게 굴더라도 무슨 일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편. 의심이 없고 오래 고민하지 않는 무덤덤한 성격이다. 연인이 서운하게 대해도 당신을 챙겨줄 사람이 많기 때문에 궁극적인 외로움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이다. 단, 당신과 조건이 너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심한 마음고생을 할 수 있으니 애초에 깊은 관계까지 끌고가지 말 것. 당신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7개 이하 애정 과다형
외로운 게 뭐야?
선천적으로 밝은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종교나 지인 덕분에 밝은 심성을 가진 유형이다. 마음의 여유와 함께 성격도 모나거나 지나친 감성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외로울 틈이 없이 바쁘기도 하다. 괜히 분위기를 타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치부한다.

늘 밝고 명랑하며 에너지가 넘친다. 엽기적인 타입도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에 인기도 많다. 절대 고독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남자를 사귀어야 할 이유가 없거나 남자에게 깊이 빠지지 않는 것이 이 타입의 특성.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고 친구들과 지내기도 바빠 오히려 연인이 되면 상대방이 서운해할 타입이다.

연인에게 지나치게 바라거나 기대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최상의 커플이 될 수 있다. 고독한 상대를 만나도 상대방의 기운에 휩쓸리지 않고 사랑스럽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사람. 늘 마음이 넉넉하여 주변 사람을 잘 챙긴다. 이 중에는 집안 분위기 자체가 밝고 부모님부터 개그맨 자질을 가진 경우도 많다.

사랑을 나눠줄 줄 알기 때문에 스킨십이나 섹스에 문제가 생겨도 이내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센스가 있다. 당연히 적대감을 가진 상대도 없기에 늘 행복한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 섹스에 트러블이 생겨도 나쁘게 생각을 몰고 가거나 상대방 탓을 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한다.

당연히 장기 연애를 하는 사람이 많다. 연인과 헤어지게 되더라도 상대방이 원인이 되거나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에서다. 실연의 아픔을 깊게 겪어본 타입도 아니다. 단, 진지한 관계시 가벼워 보일 소지가 있으니 주의할 것. 비슷한 타입을 만나면 결혼을 해서도 행복한 시간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현명한 여자다.


글 / 김희영(연애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박은미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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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10-1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슬아슬 애정충만~ 그런데, 이건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 아닌가요?

해콩 2006-10-1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역시 애정충만~ 그러나 남자친구 운운하는 부분의 설명은 잘 맞지 않는 걸요. --;;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진의 못다한 이야기들

 

 

민족문제연구소

 

[편집자 주]  문화방송의  대표적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1999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꼭 100편을 제작하고  종영을 고했다. 해방 후 한국 사회는  이 책의 제목처럼  침묵을 강요당한  질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방송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숱한 진실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 둘 시청자들 앞에 펼쳐졌다.  이  책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을  직접  담당한  PD들이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중파의  찰나성을  극복하기 위한 작업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진실을 알리는 데는 항상 남 모를  용기가 따르는 법.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아래는 책의 목차와  제1회  임종국 상을 수상한 정길화 PD의 머리말과 목차이다. 한편 출판 기념회는  10월 13일(금) 오후 7시  한국노총 회관 1층에서 열린다.

 

목차>>>

 

1부 억압과 폭력의 나라

불행했던 도시 빈민의 역사, 무등산 타잔|김동철
버림받은 인권, 삼청교육대|채환규
군대 가서 죽은 내 아들아|이규정
버림받은 애국심, 북파공작원|이규정
5공의 3S 정책, 스포츠로 지배하라|강지웅

2부 풀리지 않는 역사 속 미스터리

땅에 묻은 스캔들, 정인숙 사건|김동철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는가|장형원
김형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이규정
친일파, 그들만의 면죄부|정길화
대한민국에는 강남공화국이 있다|유현

3부 헤어나지 못한 굴레, 레드 콤플렉스

분단의 너울, 연좌제|정길화
아름다운 민족주의, 조용수|김환균
잊혀진 대학살, 보도연맹|이채훈
대한반공청년단의 비밀|김환균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은 진실인가|곽동국

4부 미국과 일본, 당신들의 대한민국

섹스 동맹, 기지촌 정화 운동|이모현
1994, 불바다 발언과 전쟁 위기|최승호
소파, 동맹의 초석인가 덫인가|이모현
맥아더, 영광스런 그의 전쟁|김환균
감춰진 일본의 음모, 핵 개발|박건식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년의 발자취

 

 

책머리에>>>

 

문화방송의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우리 현대사를 정직하게 응시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어 1999년부터 방송되었다. 첫해에는 ‘제주 4·3’을 필두로 열세 편이  제작되었는데 다행히 사회적인 반응과 방송계의 평가도 좋아  이후 계속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 속 사건의 숨겨져 있던 내막을 심층 추적하여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고, 괴어 있던 증언의 봇물을 터뜨려주었다.  시대적인 억압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많은 피해자와 증언자들이  글자 그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카메라 앞에 나섰다. 사람들이 쉽사리 볼 수 있는 방송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꽤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호응했다.

그  덕분에 이 프로그램은  현대사 증언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2005년까지  장장 7년간 모두 100편이 방송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는 강자와 승자에 의해 장악되었고 언설(言說)의  통로 또한  가로막혀 있었다. 기득권 세력은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채 자기 극대화와 영속화를  위해 질주했고  국민은 침묵을 강요당하며 순치되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는 고스란히 질곡과 기만의 역사다. 언론은 이른바 제도권 매체로서 권력에게 가장 먼저 동원되고 포섭되는 대상이었다.  해방 공간, 분단과 전쟁, 봉건독재와  군사독재가  엄혹하게 이어지면서 권력은 진실을 압박했다. 국민도 언론도 할 말을,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했다. 역사는 불구였고 편파였다. 그래서 한국의 대나무밭에는 언제나 혀 짤린 말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시대의 가위눌림이었고 양심의 어혈(瘀血)이었다.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렇게 오랜 시간 응축되었다가 비로소 나타났다. 이 프로그램이 있기까지  6월 항쟁과  문민정부 그리고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장구한 민주화의 도정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그에  비하면 방송사 내부 일선 현업인들의 노력은 미약하고 어중되다. 기회주의, 무임승차 시비는 여전히 뼈아프다.  어떻든 제작진은 때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기회가 왔을 때 할 말은 한다는 자세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했고,  이는 사계의 평가와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나타났다. 친일파, 보도연맹, 한국전쟁과 포로, 일본의 핵 개발, 북파공작원,  정인숙 사건, 실미도, 10·26, 삼청교육대, 유서대필 사건, 소파(SOFA), 한반도 전쟁 위기 등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현대사의 뜨거운 논쟁거리들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성원으로 100편이라는 고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출판계에서의 ‘러브콜’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방송이 끝나고 담당 PD들이 곧바로 다른  부서로 투입되는 등의 사정으로 성사가 쉽지 않았다. 사실 책을 펴내는 일은 기록 문화 진작과 프로그램 주제를 확대하는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다. 이 책은 해냄출판사의 기획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고맙고도 뜻있는 일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현대사를 바로 아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에서는 100편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뜨거운 감자와 같은, 그러나 꼭 짚어야  할 20개의 역사적 사건을 우선으로 삼았다. 13인의 PD들이 자료를 뒤지고 기억을 더듬어 이 작업에 동참했다.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 이후 더 진행된 내용들도 포함했다.

바야흐로  이제 우리 사회에는 말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만개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조심스런 표정으로 억눌린 역사의 진실을 토로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 것만 같은데, 지금은 ‘언제나 누구나 말할 수 있다’의 세상이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말하고 또 줄줄이 댓글이 달린다. 누구나 말의 성찬을 펼치는데, 가히 요설(饒舌)의  지경이다.  지금 세간에 흘러넘치는 ‘언설의 향연’은 놀랍고 또 미심쩍다. 봇물처럼 터져나온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진실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다. 하지만 이즈음의 난만한 언설들이 제때 할 말을 하는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문제는  진정성에 달려 있다.  훗날 이 시대를 주제로 또다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나온다면 참으로 고약한 일이 될 것이다.

출판에 임하며 드는 생각은 이 책에서 나오는 말들이 지금 세간에 떠다니는 항설(巷說)로,  혹은 후일담이나 자학사관 따위로 치부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자못 우려스럽다. 2005년 방송 종료  후 바로 나왔어야  할 책인데 출산일이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든다. 냉소주의가 미만한  가운데  비이성적인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작금의 한국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시청자와 독자 여러분의 질정과 성원을 바랄 뿐이다.

2006년 가을 13인의 저자를 대표하여 정길화(2005년 제1회 임종국상 언론부문 수상자) 

 

 

추천사>>>

 

조정래 (소설가)

7년 전에 방영되기 시작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유심히 보면서,  역사는 느리게나마 발전한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며 숙연했었다. 이 프로그램은  100회에 걸쳐서 왜곡과  기만으로  점철된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데 큰 몫을 해냈다.  그  일에 앞장선 많은 PD들은 새 역사의 막장에 선 광부들이었다.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한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엮은 이 책이 국가 권력에 의해 기록된  역사만을 주입받고 강요받았던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새로운 각성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기억하자, 아직도 다 말해지지 못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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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0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봐야 할 책이군요. 숙연해지는 기분입니다...;;;;
 

[동무와연인] 아버지의 ‘호의’는 ‘살부’로 돌아오고/김영민
내가 정복한 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갖게 해주마!
프로이트는 융을 불렀지만
‘신’의 자리에 ‘성’을 놓은 그를 목사의 아들 융은 거부했다
한겨레
» 프로이트와 융.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프로이트와 융-성(性)과 신(神)

프로이트(1856-1939)와 융(1875-1961)의 관계를 떠올리면 어떤 지긋한 슬픔의 상념을 피할 수 없다. 내 개인의 정서적 이입 탓이겠지만, 우선 그것은 ‘호의가 관계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동무론의 제1의(第一義)와 관련된 것이다. 더불어,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은혜를 베푼 상대에게 분노 속에서 버림받곤 하는 배은망덕의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쾌락원칙을 넘어서>, 1920)는 프로이트 자신의 쓸쓸한 회오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1907년 3월의 어느 날, 32세의 융이 이 사계의 대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13시간을 거푸 얘기하며 의기투합한 사건은 유명하며, 또 유명한 만큼 징후적이다. 프로이트는 이 호감을 지속적인 호의로 발전시켰고, 이후 5년간 그와 공동작업을 펼치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나 결국 그가 창안한 정신분석운동을 국제적으로 파급시키는 과정에서 그 호감과 호의는 공적 신뢰와 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실로 관계의 세속성은 사적 호감과 공적 신뢰 사이의 하염없는 어긋남을 그 본질로 한다. 그래서 ‘본질 없음이 곧 세상의 본질’(아도르노)이다. 혹은 마치 사이드가 ‘텍스트의 세속성’을 말하는 것처럼, 호감과 호의라는 사적-심리적 텍스트는 세속적 상황과 관계의 혼만잡착(混滿雜錯)에 부딪치고 얽힘으로써 그 비본질의 본질을 스스로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융을 ‘국제정신분석학회’(IPA, 1910년 창립)의 회장으로 선출시키기도 했지만, 그 13시간의 불길한 조짐이 예시한 것처럼, 이 정신분석학의 황태자는 황제의 호감과 영토를 뒤로 한 채 제 갈 길로 가고 말았다.

스승 프로이트는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부르주아 과학자였다. <환상의 미래>(1927)의 말미에서 그는, “과학이 줄 수 없는 것을 다른 곳에서 얻으려 하는 짓은 환상”이라고 결론짓는다. ‘평생 권위를 까부순 죄로 내 자신이 권위가 되었다’는 아인쉬타인의 회고와 같이, 평생 인간의 갖은 환상들을 까부순 죄로 프로이트 역시 스스로 현대 학문의 환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융은 목사의 아들이었고, 그 목사의 아들은 결코 환상을 버리지 않는다. 목사의 아들이라면, 단언하건대, 필경 니체나 슈바이처 사이의 진자 운동 속에 머물 수밖에 없을 테다. 그렇게 보면, 막스 베버가 시사하듯이 종교와 세속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성의 분화인데, 융의 ‘통합적’ 심리학을 ‘분석심리학’이라고 부르는 일은 역설적이다.

알다시피 프로이트와 융을 이간시킨 초점을 성이론에 둔다. 융은 공동작업의 후반기에 들면서 신경증의 성적 토대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의식의 심리학>(1912)을 통해 살부(殺父)의 기치를 분명히 한다. 급기야 1914년에는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탈퇴하고 만다. 일면 이 관계는 억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과 목사의 아들 사이의 갈등으로 비치기도 한다. 기질과 취향은 종종 대의와 이론의 탈을 쓰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융은 프로이트의 성이론을 비판하는 틈틈이 그의 비(非)종교성을 냉소적으로 거론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비종교성이 대단한 것인양 떠들어대곤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그가 상실해버린 신의 자리에 성(性)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이미지의 도그마를 만들어 놓았다”(<회상, 꿈, 성찰>, 1961). 융에 따르면 신이 추방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성적 리비도’가 ‘숨어있는 신(Deus Absconditus)’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융은 스승의 심리를 (극히 융답게!) 발밭게 ‘분석’하는데, 프로이트가 그토록 성에 집착하는 이유를 “종교적(신비적)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면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것”(같은 책)이라고 단언한다. 또 다른 제자 아브라함(1877~1925)의 지적처럼, 융은 결국 ‘목사의 아들’이었고 프로이트의 성이론을 소화하기에 기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고 보면, 문제의 틀은 신(神)과 성(性)이다.

‘내리사랑’이라고 하듯이, ‘치사랑’은 그 중력만큼이나 어려운 모양이다. 프로이트와 융 사이에 오고간 편지글을 살피노라면, 그 내리사랑의 내력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분노 속에 버림받는 배은망덕의 운명…” 운운하는 그의 탄식에 실감이 생긴다. 둘 사이의 관계가 상종가를 쳤던 1910년 8월 10일자의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융을 가리켜 ‘나의 아들이자 나의 계승자’라고 뜨겁게 부른다. 역시 같은 해의 6월 19일자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그들 사이의 관계를 질투하는 이들이 사방에 득시글대는 현실을 환기시키고는, 밀려드는 역경을 헤치고 견결히 함께 버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때로 내키지 않더라도 자신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을 생급스레 강조하고 있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그러나, 그 모든 잘난 아들의 운명처럼 융은 프로이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릇 아버지는 죽여야 하고, 스승은 능가해야 하는 법! 영리하고 반지빠른 이 목사의 아들은 프로이트의 ‘과학적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었고, 신화와 정신주의(spiritualism), 연금술과 동시성의 이론을 일구면서 그 나름의 일가를 이루었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융의 이반은 반종교주의적 프로이트를 보완하거나 견제하면서 정신분석 속에 종교의 자리를 살려놓은 셈이다. 한편,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주류를 이룬 프로이트의 후예들은 융의 분석심리학을 체계적으로 소외시킴으로써 그 살부의 죄를 다시 묻고 있다. 그나저나, 나는 호의가 구원하지 못한 둘 사이의 관계를 지금도 슬프게 추억할 뿐이다: “내 아들 알렉산더여! 내가 정복한 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네가 정복할 수 있도록 해주마!”(융에게 보낸 프로이트의 편지 1910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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