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결국 너를 만/났/다.
못난 담임 노릇으로 일 년에 두 번 있는 소풍, 모인 지 두 시간도 못 되어 아이들 몽땅 돌려보내고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남포동에 도착, 니가 싸우고 있는 USA의 기업 맥도날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일어나 서점으로 가서 '시집'을 구경하다 김남주시인의 시집 두 권을 사들고 너를 만났지.
얼마 전부터 예술영화전용 극장이 된 그 이름도 애매한 국도에서 드뎌 '박치기'를 봤다. 니가 구워준 CD를 안 봤으니 앞으로는 영화 구워주는 일, 없을까? ^^; 암튼 영화는 조금 코믹했고 많이 촉촉했다. 감독이 강조하는 '희망'을 함께 예감하기엔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긴 했지만... 좋은 영화, 맞다!
속이 편하다는 이유로 내가 권하는, 네겐 익숙하지 않을 저녁을 먹고 다시 서점으로 가서 책구경! 세 번째는 영화 본 후 물어달라던 "경비, 내가 줄까?"를 그때까지 입에 올리지 않은 건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해서였는데... 아주 부끄럽고 미안한 듯 니가 먼저 "샘, 2만원만 주세요"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건넸어야했는데 미안하구나. 사람들은 알까? 이 땅의 행동하는 대학생들이 자기 돈, 시간까지 이렇게 꼻아가며 대추리로 또 어디로 싸우러 다닌다는 사실을? 나도 몰/랐/다. 막연하게 후원하는 단체나 사람들이 있겠지 생각했거든. 전쟁 중인 대추리의 상황을 막연하게 짐작하듯이.
우습지만 앞으로는 내가 네 후원인이 되어줄께.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부끄러워서 우찌살꼬. 미안해서 우찌살꼬. 물론 지금 네 행동은 누구의 영향을 받아서라기 보다는 니 스스로의 주체적인 결정에 의한 것임을 잘 알지만.
"샘은 대추리 오시면 안 되요. 거긴 전쟁이거든요. 아주 위험해요." '나는 못간다'는 뻔뻔스러운 내 말에 돌아온 니 말이 정말 나를 부끄럽게 했다.
이번에는 맞지 말고, 잡히지 말고, 갇히지도 말고 정말 무사히 다녀오너라.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대추리 들판에 새까맣게 몰려온다던 그 전경들, 군인들 속에 또 다른 '니'가 있다면 이를 어쩔꼬? 너희에게 저지르는 '국가'의 이 죄를 어찌 감당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