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너희들에게 쓰는 첫 편지구나.
나도 참 무심하기도 하지...
올해는 담임도 아니고... 비교적 한가롭게 살고 있는데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귀여운 네놈들에게 편지 한 통 못 쓰고 뭘 하며 살았누...

처음 동아리를 만들고 너희들 반짝이는 눈빛을 맞닥드렸을 때의 그 느낌이 살아오는구나.
독서동아리 함께 하겠다고 너희가 찾아왔을 땐 솔직히 나도 산마루도 낯설고 뻘쭘했었다. 너희도 마찬가지? ㅋㅋ 너희는 우리의 무얼 믿고 찾아왔던 것이냐? ㅋㅋㅋ 학교운영위원회실에서 가졌던 첫 모임 때, 아직 얼굴을 못 익혀 미안스러워했던 기억도 있군. 그땐 우리가 그랬구나. 그치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업에 들어가서도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참~ 왠지 모르게 든든하더라. 다른 아이들에겐 쪼~끔 미안하지만 우리만의 교감이랄까 공감이랄까 뭐 그런게 느껴져서. 너희들도 그랬냐?

안 쓰던 편지를 이렇게 쓰게 된 건, 음~ 조금 심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요즘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하려는 것이 과연 무얼까'하는 동아리활동에 관한 뒤늦은 성찰일 수도 있어.

산마루나 내가 처음 동아리를 꾸려나가려 마음 먹은 시점부터 이야기해야할까?
통 책읽을 시간이 없는 너희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느낌을 나누고싶다'는 것이 산마루와 나의 소박한 첫 번째 목적이었다. 마침 교육청에서 주어지는 예산도 있으니 너희에게 몇 권의 책은 사줄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사실 너희들 책 사볼 용돈, 궁하잖아. 우리 학교 도서실에도 좋은 책이 진짜 많지만 '내 책'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니까. 그건 소유욕을 떠난.. 뭐랄까 친밀감? 무엇이든.

그리고 너희랑 하고 싶은 활동도 많단다. 이미 몇 가지는 치러냈지. 솔직히 생각보다 참여하는 숫자가 적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희가 학교공부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영화와, 역사와 문화를 숨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단다. 은빛 물고기처럼 생기있게 파닥거리는 너희들 모습을 상상했지.

내신도 신경써야하고 내년이면 고3이니 슬슬 수능 걱정도 될거고... 학교 공부에 대한 이런 저런 부담도 만만치 않지? 하지만 애들아~ '공부'란게 과연 무얼까?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시간에, 책상머리에 붙어앉아서 하는 '공부'만이 '공부'의 전부일까? 평소 수업시간에도 가끔 이야기했지만 '진짜 공부'란 그렇게 바로바로 효과가 드러나는, 수치로 환산되어 성적이 나오고 등수가 매겨지는 그런 부분보다 훨씬 넓고 깊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겨 나가는 것, 나라는 사람을, 또 나의 생각을 남에게 자신있게 표현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또는 설득 당하고 옳다고 배운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공부란 그런 것이며 그런 것이라야하는 것 아니겠니? 교과서는 그 내용 중 아주 좁은 부분일뿐이라 생각해.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걸까? 그것도 그렇게 열심히 해야하는 걸까?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 남들이 애기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서?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 오직 그런 목적만으로? 대학, 직장, 임금, 지위 그런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것들만 충족되면 내 삶이 따뜻하고 행복할까?  가치있는 삶이란 어떠해야할까?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해. 식상한 말이 되겠지만 행복이란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부와 지위만으로 이룰 수는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늘 오늘과 현재를 희생하라는 말... 기만스러워. 지금 행복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미래 어느 시점에 행복할 수 있을까? 내 행복의 정체에 물질과 지위 이외에 또 다른 무엇도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말이야.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산마루나 나는 너희들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나보다. 오늘, 당장, 학교라는 공간 또는 그 밖에서 함께 행복을 느끼고 싶었나보다. 그것도 중요한 공부방법, 공부목적의 하나라고 믿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 힘들수도 있지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러면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도 부쩍 자랄 거라고. '활동하는 건 조금 힘들지만 요즘 나, 무지 재미있고 무지 즐거워~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고 함께하는 친구들도 모두 다르지만 소중한 존재야~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이런 것이 살아가는 것이구나' 뭐 이런 감탄 말이야.

요즘, 너희도 산마루나 나도 조금 느슨해졌지? 정기 모임에서도 얼굴을 볼수 없는 두빛나래가 점점 많아지고 준비한 활동들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 교육청 강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홉산, 각종 다른 토론 행사 참여, 달빛산행 등등.. 책 읽어내기도 빠듯한데 자꾸 이런 저런 곳으로 나들이 가자니깐 짜증도 날거구.

흠... 고민을 많이 했단다. 그렇지만 역시 너희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너희에게 부담을 주는 동아리 활동이라면 무엇이 행복할 것이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무엇보다 너희 스스로가 행복하고 뿌듯하고 만족스러워야지. 그래야 함께하는 우리도 행복하지. 자기존중감, 행복감도 전염성이 있나봐.

그래서 더 이상 동아리 활동을 하기 힘든 사람은 빼주기로 했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해.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이것이 탈퇴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다음부턴 빠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지.

처음... 독서동아리 꾸릴 때, 그건 일년을 바라본 일종의 '약속'이었다. 산마루와 내가 욕심이 많아 이런 저런 외부 활동에 너희를 참여시키고 싶어했던 건 인정! 하지만 미리 나눠주었던 [활동 계획서]에 그런 내용들은 모두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그건 모두 선택 사항이었지. 산마루도 나도 너희에게 강요할 수는 없단다. 강요하고 억눌러 상대방의 숨통을 죄는 교육은 어떤 명분을 갖다대더라도 참교육이 아니라고 보거든. 

최소한의 활동- 매월 두 번 있는 독서토론 모임과 놀토마다 있는 교육청 강연-은 우리의 처음 약속처럼 나름대로 성실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해. 물론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는 등 사정이 생기면 빠질 수도 있지. 그러나 최소한 산마루나 나에게 사전에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 오버일까? 너희에게 무리한 요구일까?

독토동아리... 뒤늦게 찾아오는 바람에 탈락된 아이들이 여럿 있었단다. 우리들의 활동이 너희에게 이제는 부담스러운 무엇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다른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될 수도 있었을거야. 너희는 일종의 특혜를 누리는 것이고 너희 중 누군가가 그 혜택을 부담으로 느끼고 이제와서 빠지길 원한다면 그건 결과적으로 다른 아이가 누릴 수도 있었을 그 혜택을 빼앗는 짓이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

이게 바른 선택인지 여전히 많이 고민스럽지만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간에 빠질 수 있는 건 이번 한 번뿐이야. 그리고 빠지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활동하도록 하자. 최소한 우리들이 정한 책은 다 읽고 모임에 참가하도록 노력하고, 교육청 강연도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참여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미션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되도록 산마루와 나도 더 신경쓸게.

나름 성실하게 열심히 참여하는 너희들 모습, 너무 이쁘고 대견해. 지금은 너희가 다소 힘들더라도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 틈틈이 행복감을 느낀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고, 또 당장 도드라지게 표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의 이 시간들이 언젠가 너희 삶에 빛나는 무엇이 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구나.

두빛나래-기대에 들떠 이름 짓고 만나왔던 우리 독서동아리, 여전히 애정이 있고 함께 하고 싶다면 짧은 답장 써줄래? 문자도 좋고 찾아와서 귓속말로 속삭여도 좋고, 책상 위에 쪽지를 남겨도 좋아. 20일(수), 21일(목), 22일(금) 삼일 동안 기다릴게.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지 않는 사람은 아쉽지만 이쯤에서 빠지는 걸로 생각할거고. 혹시 you가 빠졌다고 산마루나 내가 미워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겠지? 우린 그렇게 유치+치사하지 않단다. ㅋㅋ

우리가 끝까지 '함께'이기를 바랬다. 그치만 조금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너희들 모두 여전히 소중하고 이쁠거야. 교사라는 직업의 원죄 중 하나는 아이들을 탓할 수 없다는 것! ^^ 어떤 상황에서도. 산마루나 내가 스스로도 모르게 너희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아픔을 주었다면 그  본심이 무엇이었든 우리들의 잘못일거야. 표현법이 세련되지 못했거나 너희 마음을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 언제나 어른보다 더 너그러운 너희가 이해해주길 바래. 그리고 산마루와 나의 '본심'이 무엇이었을까... 한 번만 생각해주길 바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떠난다고 해도, 남는다고 해도 너희들 똑같이 다~ 이쁠거야.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이뻐해야하는 것' 힘들지만 이것 또한 교사의 의무거든. ㅋㅋ

2007년 6월 19일 교무실에서 강낭콩과 산마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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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 고생이...
나무는 제 스스로 잎을 떨굽니다
 

발신: "김은영" 9797097@hanmail.net

제목: 스승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날짜: Wed, 15 May 2002 16:47:13 +0900 (KST)

 

선생님 저 은영이예여....

잘 지내시져....저 지금 일하고 있어요....

선생님한테 자격증 땄다는 말도 안했죠??  죄송해요....고등학교 때 선생님 말 잘 들은적도 없는데.... 졸업하고 나서도 이렇게 못되게 구니.....  저 병원에서 일한지 이제 두달 다 되어 가요.... 개인 병원이긴 한데 3교대 하거든요....

사실 저 오늘이 스승의 날인지도 몰랐요.... 일하다 보니깐 시간 가는줄 모르겠는거 있죠?? 아까 전화 했었는데 안 받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멜로...ㅋㅋ 선생님 이해해 주실꺼죠?? 이해해 주세요....

선생님 보고 싶네요...선생님 다른 학교로 안 가셨죠?? 맞죠? 누군 다른 학교 가셨다 하고 누군 안 갔다 하니깐 넘 헷갈리는거 있죠??

선생님.....은영이가 고3 때 다짐했던걸 이루었어요.... 너무 기특하죠?? ㅋㅋ ....그게 다 선생님 덕분인거 같아요... 저랑 부딪히는 일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가장 절 이해해 주고 그랬던거 같아요....

선생님 고맙습니다....만약 선생님이 저에게 힘을 주지 않았더라면 전 아마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자포자기 하며 살았을 텐데.....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그리고 연락도 자주 못 드리고....넘 넘 죄송해요... 제자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언젠가 시간이 되면 꼭!! 꼭! 찾아 뵙겠습니다..... 글로써 선생님께 안부를 전하는 저를 용서하세요....

늘 건강하시구요.....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래요....

아참, 그리구 꼭! 이번년 안에는 시집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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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4-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년은 시집가는 년이 되길... ㅋㅋ
제자들 편지 읽노라면 간혹 감동적이죠.
저도 18년 전 받은 편지를 아직 갖고 있습니다.^^ 파일에 곱게 넣어 두었죠.
옛날 제자들 오면, 보여주곤 한답니다. 배꼽잡고 웃죠 ㅋㅋ
간혹 잘 쓴 반성문도 튀어나와 난리가 난답니다.
 

선생님, 저 아난이예요...

저도 이제서야 제대로 읽게 됬어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저는 역시 아직 어린거겠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것중에 어느것은 이해가 가고 어느것은 아직 제가 알기에는 힘든것 같아요..(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오늘.. 술을 좀마시고 왔어요..... 제가 충격이 너무 컸던걸까요..... 아직 잊혀지지가 않네요..
곧 12월 9일날.. 그 친구 제가 소중했던 그 친구 막제가....남해에서 한다고 하는데 저도 꼭 갈꺼예요.....물론 같은 과 친구들 역시도요.....제가 너무 마음이 약해서 그런걸까요....아니면 제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걸까요....정말 잊혀지지가 않아요....

어제 꿈에 그 친구가 나온거 같았어요
생각이 나질 않지만.... 친구랑 함께 같이 웃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긴 하는데 도무지 생각을 하려 해도 제대로 생각이 나질 않아요... 다른 친구들..그리고 엄마 역시도 꿈에 나오지 않는게 좋다고는 하시는데 자꾸 아쉬운건 뭘까요......

저는 아직 어린걸까요.... 큰 마음 먹고 이겨낼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제가 너무 바보같아요..

 친구 먼저간 이세상에서...
그저 죽는게 두려워서,, 무섭다고 이렇게 얘기하곤 했었는데 그 말 하는 제자신이 너무나도 우습다고 해야할까요........ 그저 더 살아보겠다고 ... 저 자신이 너무 우스워보입니다 친구가 먼저 갔는데, 죽음을 너무 두려워 하는 제자신이 너무 우스워보여요...

선생님 어쩌면 좋을까요....
이 고통..이 슬픔 금방 사라질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먼저간 그친구가 못다한 생 못다한 일들...... 제가..아니 우리친구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것은 아는데...... 쉽게 되질 않네요...

 언젠간 잊고서 다들 열심히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살아갈텐데.. 그 친구를 잊을까봐 두렵습니다... 제탓인거 같기도 하고.. 너무 나도 제가 작아진 느낌입니다.....

선생님께 이런말들을 할수있어서.. 너무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그저 밉고 나쁜짓하던 아이일 뿐이였는데..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두서없이 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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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11-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리기는 뭘 많이 컸구만.

나도 오늘 한 잔 했는데...
알딸딸하다.

친구 잘 보내주고
열심히 잘 살자.

그동안 속 많이 썩여드린 부모님께 안부전해주고~

널 믿어.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 알지?
이젠 다 커서
니 자리
니 마음
찾아가는 것 같아
든든하고 기쁘다.

건강하렴!
지금처럼!!

나도 고맙고 감사해.
 

아난

너무 오랜만이지? 스승의날 짧게 통화한 후 처음이다야~
그런데 답장이 너무 늦었네. 이런 저런 일들... 뭐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맘 잡고 컴 앞에 앉아야 답장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2001년이었나? 근무하던 학교에서 친했던 바로 옆자리 샘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지. 그때...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개학하고 계속 우울에 빠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했던 적이 없었기에 충격이 컸던 것 같아. 술 마시고 많이 울었지? 나도 그랬어. 그냥 눈물이 나데. 원래 곧잘 '허무'해하는 성격인데다가, 가을이기도 했고... 4~5개월 정도 힘들어 했던 것 같아. 지금은? 사람이 참 간사하지? 아니 머리가 나쁜건가? 까먹고 잘 살아. 그저 아득하고 아련하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공허'가 가끔 밀려오긴 하지만.

인생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서 기인하는 걸까? '삶'에서 오는 걸까? 참.. 힘들지?

아난이도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지. 그 나이 때 나도 그랬어. 공부도, 친구도, 다른 무엇도 별 의미가 없어보이고 삶 자체도 그렇게 보였던 시간들. 지금?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삶'이란 '죽어가고 있는 과정'이니 여전히 허무해. 그렇지만 아난아, '어차피 소진할 인생이지만' 아니, 어차피 소진할 인생이기에 더 '가치'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내 인생을 남에게 휘둘리고 싶지도 않고 나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들을 하고 싶고. 흠... 가치와 의미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너무 고루하고 진부한 답이지? 아무튼 내가 보기엔 너는 지금 한창 '상실'과 '허무'로 인한 '우울'에 빠져있는 것 같고, 그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찾아오는 것이고, 언젠가는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고, 다시 바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야! 그 혼란에서 빠져 나온 너는 옛날의 아난이가 아닌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성숙한 너 일거야! 그러니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우울하다면 바닥까지 내려가 우울해보는 것도 인생의 경험이 될 것 같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인간의 생래적 화두에 대한 해답은 사람마다 다 다른 거란다. 누구의 답이 맞다고도 할 수 없고 틀릴 수도 없는. 네 스스로에게 가치있는 답을 씩씩하게 찾아가려무나.

감정이 잦아들고, 저 멀리 벗어날 출구가 보이면 답장 줄래? 늘 건강하렴. (너, 여전히 빼빼 말랐지?)

 2006. 11. 11. 빼빼로 데이에 빼빼 마른 아난이에게 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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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1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를 먼저 보낸 아난이의 편지에 님께서 따뜻한 마음을 담아 보내신 글에 울컥해집니다. 인생에 대한 두려움,,, 그러고 보니 죽음이 아니라 삶이 두려운 거였어요. 저 말이에요. 해콩님, 몸도 마음도 편안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해콩 2006-11-1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저는 말예요, 혜경님... 죽음과 삶.. 두 가지가 다 두려워요.. ^^ 누구나 그렇겠지요? 어제 오늘... 시네마테크에서 켄로치와 함께 살았답니다. 머리가 지끈거려요~ 휴=3

글샘 2006-11-1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죽음과 삶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생 수업에 나오잖아요. 왜, 뒤에서 큰 차가 달려와 나를 죽이려고 할 때 든 생각, 머리가 하얗게 비는 그런 순간. 텅 비우고 살아야 죽음도 삶도 두렵지 않을 거라고, 이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만 가득하네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아난이예요. 까먹은건아니시죠?ㅋ

정말 오랜만에 메일쓰는것 같아요..

학교 강의 시간인데 딴짓하느라고 메일이며 이것저것 보다가

예전에 쌤이 보낸 메일이 있더라구요.

하나하나 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예전 생각도 많이 났었고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남겨주신 글 하나하나가 이제와서 보니

더더욱 느껴지는거 같아요.^-^ 철들었다고 말씀해주실꺼죠?ㅋ

 

대학에 오니까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많이 힘들고

버겁기도 했었어요. 이제는 좀 괜찮아 졌지만요..

하루하루 지내는게 예전보다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처음에는 새학교에 새친구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서

너무 나도 재밌다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동안 일도 많았었구요..

 

오늘 무언가 하소연을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 메일 보고

아, 샘한테 메일 보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해주실꺼죠?

 

여태까지 이런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왠지 이런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왜 이것밖에 못하는지..

갑자기 머리를 맞은것 처럼 멍해지고 무기력해졌어요..

강의 내용도 들어오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왜이렇게 밖에 못하는건지, 왜이렇게 살아야하는지,,

갑자기 산다는게 왜이런지...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조차도요.....

 

얼마전 같은과에 있는 친한친구 한명을 먼저보냈어요..

하늘나라로....

처음 겪은 일이라 너무 나도 당황스럽고 미치도록 슬프기도 했어요..

아까 싸이월드를 하는데 그 친구 사진을 보는데

너무 눈물이 날꺼같더라구요..

다들 슬픈데.. 우는 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참는다고 혼이 났어요..

그 친구 사진은 웃고 있는데.. 옆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데 옆에 없고, 목소리도,, 그 웃음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게 너무 싫었어요...

먼저 간 친구 때문에 이러는건지.......

 

선생님, 제가 갑자기 왜이럴까요...

자신이 없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고 무엇이든 해내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졌어요..

제가 설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구요..

어떻게 해야될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도 많이 만나서 수다도 떨고 싶고 놀러 다니며 함께하고 싶은데..

싸이월드 사진속에서 친구들은 항상 자주 만나고 함께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 많은데...

저는 그럴수도 없으니....

제가 어쩌면 좋을까요.......에고,,

 

선생님

갑자기 이런 메일 보내서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ㅠㅠ

멍하게 생각 없이 이래저래 말도 안맞게 쓰고..죄송합니다ㅠㅠ

 

2006년 11월 09일 목요일, 오후 15시 41분 1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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