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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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사람으로 인해 기쁠 때도 많지만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괴로운 일도 그만큼 많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혈연이든, 이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테디 웨인의 <아파트먼트>는 바로 그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그로 인해 상처받는 젊음, 그러나 그렇기에 또 한걸음 나아가는 청춘의 이야기이다.

<아파트먼트>는 책표지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주홍과 민트로 나뉜 네모난 공간, 그 가운데에는 타자기가 놓여 있다. 그런데 그 타자기는 조금 어긋나 있다. 이 네모난 공간은 ‘나’와 ‘빌리’가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를 상징한다. 그들은 둘 다 작가의 꿈을 안고 컬럼비아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수강 중이다. 소심한 데다가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는 합평 시간에 동료 수강생들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의기소침해 지는데, 그때 유일하게 빌리가 칭찬해준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나’는 빌리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과 함께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도움이 손길을 내민다. 사실 ‘나’는 대고모의 큰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학비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던 참에 빌리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는 선뜻 자신의 아파트 한 공간을 내준 것이다. 둘은 그때부터 하우스메이트로 지내면서 같은 꿈을 꾸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 그러나 모든 관계에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라 ‘나’와 빌리 사이에도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처럼 상호보완적인 한 쌍이 되리라고, 이 관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나’의 생각과 달리 둘 사이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질투였다. 나는 빌리의 눈부신 재능을, 자기처럼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손쉽게 인간관계를 맺는 그의 능력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한다. 반면 빌리는 ‘나’의 부유함, 그 풍요로움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생 일이라곤 해보지 않은 듯한, 여자보다 더 부드러운 ‘나’의 손을 조롱하면서 열등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으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책 표지의 주홍빛 공간에 새겨진 민트색 글자나 민트색 공간에 새겨진 주홍빛 글자처럼 서로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 때문에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성장 배경도, 계급도,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두 성인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법적인 이유로 이웃에게 자신이 그 아파트에 살고 있음을 들켜서는 안 되기에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지내야 했던 ‘나’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항상 허기져있다.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선뜻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편한 현대인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가 만일 다른 학생들처럼 기숙사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갔다면 몸은 불편했을지언정 소소한 추억은 더 많았을 테고, 스스로 ‘근본적으로 결함 있는 존재’라고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빌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그는 누에고치 같은 그 공간을 영원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지켰을 것이다. 그 편이 삶을 헤쳐 나가기에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가장자리에서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284쪽)로 남는 편이 훨씬 좋았을지도 모른다. 타인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일 따위는 전혀 모르는 채 예전과 똑같이 외롭지만 편하게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실로 그런 삶, 아파트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원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결국 새가 알을 깨듯이, 누에고치도 날아가야만 하듯이 ‘나’ 또한 그 공간을 떠나야만 했고, 그런 그 앞에는 전보다 상처받을 일이 많을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진짜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이제 그는 진짜 자기가 담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분명 있을, 그 지나간 청춘을 <아파트먼트>는 이 가을처럼 쓸쓸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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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9 11: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 큰 어른이 함께 사는건 힘든거 같아요. 생활방식도 그렇지만 가치관도 그렇고 ㅎㅎ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가을에 어울리는 책 같습니다 ^^

잠자냥 2021-11-09 11:17   좋아요 5 | URL
네~ 이미 지나간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 그 분위기가 좀 더 쓸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09 1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거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부대끼며 사는 것과 고독하게 사는 것 사이 어느 지점에 아주 이상적인 소수의 하우스메이트가 함께 사는 방식이 있을텐데, 그 이상을 현실화 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잠자냥 2021-11-09 11:28   좋아요 5 | URL
ㅎㅎ 아마 인간인지라 이상적인 하우스메이트와 살더라도 또 그 안에서 뭔가 문제가 생길 거예요.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생긴 것 같더라고요.

mini74 2021-11-09 1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질투는 나의 힘이기도 하지만 파괴의 신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젊은 시절 가졌던 그 많은 감정들이 나이가 들면 좀 사라질까 했는데 , 어딘가 짱 박혀 있는거더라고요. 나란 인간은 성숙하지 못한 ㅠㅠ ㅎㅎ 절에라도 가야할까요. ㅎㅎ

잠자냥 2021-11-09 16:23   좋아요 4 | URL
젊은 거니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공쟝쟝 2021-11-09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청춘좀 살아본 잠자냥 여사의 가을 뚝뚝 서평..

잠자냥 2021-11-09 16:23   좋아요 5 | URL
MZ는 좋겠어, 아직 청춘이라~~~? 흥

공쟝쟝 2021-11-09 16:59   좋아요 4 | URL
나 내일로 간다 ㅋㅋㅋ 나 청춘이여 ㅋㅋㅋ 잠자냥님 내일로 알아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1-10 00:05   좋아요 0 | URL
내일로 그거 기차 이름 아니여??

coolcat329 2021-11-09 17: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두 남자의 상황 설정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어요.
뛰어난 재능과 사람들과도 유연하게 잘 어울리지만 가난한 사람과 원만한 인간관계가 어렵고 적응력도 부족한 그러나 돈은 많은 사람.
처음 듣는 작가인데 두 남자의 파국으로 흐르는 과정이 흥미로울거 같아요.

잠자냥 2021-11-10 00:04   좋아요 1 | URL
이런 상황 설정이 그다지 새롭지는 않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별것 없는데도 이상하게 한 번에 쭉 읽게 되더라고요.
 
불만의 집
사샤 나스피니 지음, 최정윤 옮김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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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사연을 품고 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도시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수천 개의 이야기가 밤마다 그들과 함께 잠들고 아침이면 깨어나 또 다른 이야기가 거기에 덧붙여질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또 어떤 이의 이야기와 뒤섞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므로. 그러나 이곳은 너무나 큰 도시이기에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이야기가 섞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일이 드물기에 인연이라는 말로 그 관계의 특별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큰 도시가 아니라, 2~30명 정도의 소규모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라면, 그리고 그곳이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궁벽한 마을이라면,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서로 관련 없이 동떨어져, 독립될 수 있을까? 한집 건너 한집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라면? 아마 이런 마을에서 나 홀로 무리와 어떤 관련도 맺지 않고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종종 그러듯이, 나도 가끔은 한적한 바다마을이나 산골마을의 생활을 꿈꾸기도 하는데,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주저하게 된다.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생활 때문이다. 실제로 이른바 ‘귀농생활’을 하던 도시 사람들이 몇 개월 또는 몇 년 만에 그 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이유 중 하나가, 사생활이나 익명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생활환경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여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어딘가에 위치한 ‘레 카세(Le case)’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이제 젊은이들도 거의 떠나갔고 나이 든 사람들만이 남아서 살아가는, 고요하기 짝이 없는, 몰락의 냄새가 폴폴 나는 그런 마을이다. 2차 대전 때는 독일군과 파르티잔들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현재는 궁벽한 탄광 마을로 사람들은 이런 험난한 삶 때문에 대부분 심성이 메말랐고 외지인을 배척하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이웃끼리도 서로 믿지 못한다. 게다가 마을 주민도 몇 없는데, 마치 저주처럼 죽음이 끊임없이 일어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인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을 지경이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급커브 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탄광에서는 매몰 사고가 터지며, 또 때로는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마을을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 하지만,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발이 묶인 듯이 이곳에서 불평과 불만 아래, 마을을 떠나 성공한 이웃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그를 증오하며 묵묵히 살아간다. 그리고 이 가련한 사람들은 아침이 밝아오면 모두 근심 가득한 표정과 촉촉한 눈빛으로 힘겹게 장을 보러 간다. 의사의 물약과 카페의 술잔을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오래 전에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 ‘사무엘레 라디’가 갑자기 마을로 돌아오고 그의 등장으로 마을은 온통 술렁이기 시작한다. 에세드라의 손자였던 사무엘레, 그에게는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고, 그런 그의 귀환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반가울 리가 없다. 집집마다 사람들은 문을 닫아걸고 창밖으로 사무엘레의 모습이 보일 때면 혀를 차며 그를 욕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무엘레를 향한 그들의 적의 어린 시선과 함께,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사무엘레가 저지른 그 ‘수치스러운 일’에 견주어 보아도 그에 못지않게 수치스러울 일들이 마을 사람들 저마다에게 하나씩은 다 있는 게 아닌가!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이 마을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간음과 배신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바람난 남편과 바람난 아내들. 그들 끼리 얽히고설킨 관계를 따져보다 보면 어쩌면 이 마을은 모두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이다. 바람을 피우지는 못하지만 병든 아내를 두고 젊고 아름다운 점원을 흠모하는 상점 주인, 빼어난 외모를 지닌 딸을 이용해 팔자를 고치기를 바라는 탐욕스러운 어머니, 소설에 빠져 운명의 사랑을 꿈꾸는 소녀도 있다. 그런데 이쯤은 이 마을(사람들)이 지닌 다른 비밀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납치와 감금, 실종, 살인 등 끔찍하고 추악한 비밀들이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속고 속이고, 죽이고, 훔치고 사기 치고, 원한을 품고 복수하며 살아온 것이 이 마을 주민들의 삶이다. 꼭 그렇게 악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즐거워한다. 레 카세 주민들은 이렇게 서로 얽혀, 이 작고 음울한 마을의 음산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권태에 시달리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욕망과 배신, 탐욕과 살인, 원한과 복수를 양식으로 삼아 쾌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서서히 모두가 어느 정도는 괴물이 되어간다. “레 카세가 일종의 괴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레 카세가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곳을 서서히 갉아먹는 걸까?"(474쪽)

<불만의 집>은 처음에는 읽기 수월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각 장의 화자로 등장해 자기 처지와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다음 장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독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도 많아서 이름이 헷갈려 다시 앞 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해야 한다. A와 B, C 중에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가 진실일지 알 수 없어 아리송해지는 순간도 여러 번 있다. 그러나 몇 개의 커다란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 저마다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이야기의 정점을 향해 치달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퍼즐을 맞춰가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외따로 떨어진 협소한 마을에서 수 십, 수백 년, 몇 세대를 걸쳐 함께 살아온 이 사람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얽혀 배신과 원한 망상과 탐욕, 원한과 복수로 점철된 사연들을 풀어놓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 어쩌면 이 ‘레 카세’가 아닐까 싶어져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는 드물기는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연도 있다. 그조차도 이 세계와 비슷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묘미는 그 수많은 사연들 속에서 ‘반전’을 찾아내는 재미인데, 나는 이 작품에서 중간쯤에 한 번 깜짝 놀랐고, 뒷부분에서 여러 번 놀랐다. 맨 끝장을 읽고 나서는 내가 뭘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싶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흥미진진한, 너무나 추악하고 기분 나쁜 사연들 때문에 불쾌하고 음울한 기분이 드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간발의 차이로 그토록 원하던 삶을 놓쳐’버리고 유령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삶의 신기루를 찾다 길 잃은 사람처럼 몸을 질질 끌고’(271쪽) 다니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련한 모습이 그저 저 먼 나라의 상상 속 마을 ‘레 카세’에서만 일어나는 일처럼 여겨지지만은 않는다. 이 책 속에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불결함, 포기, 신성모독, 배신, 거짓, 어리석음’도 있다(278쪽). ‘레 카세는 나무’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은 ‘썩은 과일’이라는(184쪽)말, 왠지 소설 속의 말로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비관적인 세계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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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1-02 13: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찜은 이미 해놨었는데...아웅 이정도일줄은..ㅠ추가주문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잠자냥님 나빠요!!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1-02 13:10   좋아요 6 | URL
전 이런 음침한(?) 내용도 좋아히는지 진짜 재미나게 읽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도 나오면 챙겨보려고요. 등장인물들 누가 연기할지 궁금 기대. ㅋㅋㅋㅋ

다락방 2021-11-02 13: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는 화자 여러명 돌아가며 하는거 진짜 싫어하는데 다 읽고나서 다시 앞장을 봐야 하는 그런 소설은 또 좋아서 일단 이 책을 찜합니다. 인생..

잠자냥 2021-11-02 14:37   좋아요 6 | URL
재미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읽어보세요~ ㅎㅎ

새파랑 2021-11-02 14: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반전이 있고 깜놀하는 책이군요. 일단 표지가 완전 마음에 듭니다. 불만이 확 느껴져요~!! 저도 찜~!!

잠자냥 2021-11-02 15:40   좋아요 6 | URL
중간의 반전에서 한번 쾅~ 놀랐는데 뒤에도.... ㅎㅎㅎ

독서괭 2021-11-02 15: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음침하다고..! 저도 좀 음침한 거 괜찮고, 퍼즐 맞추는 재미가 있는 소설 좋아합니다…!

잠자냥 2021-11-02 15:40   좋아요 5 | URL
이거 퍼즐 맞추기 난이도 상이에요. ㅋㅋ 전 다 읽고 나서도 제가 퍼즐 조각 몇 개 어디 흘린 느낌...

붕붕툐툐 2021-11-02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응~ 자냥이 지나치게 비관적이구나~ 담엔 <만족의 책> 읽는 걸로~~(근데 이 책 넘나 재밌을 거 같다는!!)

잠자냥 2021-11-02 20:51   좋아요 3 | URL
쌤 그래서 쌤 때문에 조금 밝아진 거예요! 일일명상! ㅋㅋㅋ 쌤 이 책 한번 읽어봐~~~

mini74 2021-11-02 17: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 ~~ 악! 잠자냥님 넘 좋아요 ㅎㅎㅎㅎ 귀여운척 해봤어요. 죄송해요 빠른 사과 ㅎㅎ 그만큼 이런내용 좋아요 ㅎㅎㅎ 이름과 이야기들이 헷갈린다니 ㅠㅠ 메모 필수인가요 ㅎㅎ

잠자냥 2021-11-02 20:52   좋아요 3 | URL
어머 귀여워! ㅋㅋㅋㅋ

coolcat329 2021-11-02 2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레 카세...이 세상의 축소판같은 마을이네요.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나오는근요.
자꾸 앞장 들춰봐야 하는 소설 쫌 귀차나 싫은데요...또 중간 쾅! 반전이 있다니 아휴 또 엮이는 소리들 막 들리네요. 🤦

잠자냥 2021-11-02 21:33   좋아요 4 | URL
네~ 출간 2개월 만에 넷플릭스 드라마화 결정되었다던데, 정말 드라마로 만들기에 아주 어울리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당근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유부만두 2021-11-08 0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을 놀라게 만들었다면 꽤 솜씨 좋은 작가 아닌가요?

잠자냥 2021-11-08 09:29   좋아요 2 | URL
ㅎㅎㅎ 아무튼 재미난 작품입니다! (좀 불쾌한 부분이 있습니다만...ㅎ)

그레이스 2021-12-09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리뷰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12-09 17: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축하드려요 ^^ 적립금 사냥냥이시네요~!!

mini74 2021-12-09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적립금사냥냥. ㅎㅎ 새파렁님 표현 넘 웃겨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

쎄인트saint 2021-12-09 17: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1-12-09 18: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사냥냥 ㅋㅋㅋㅋㅋ 축하드려요^^

건수하 2021-12-09 20: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잠자냥님 축하드랴요~ ^^

초란공 2021-12-09 2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사냥냥ㅋㅋㅋ 그렇습니다. ㅋㅋ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인간들이 사는 모습을 라쇼몽 효과와 성경의 가르침을 버무려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요^^
 
목로주점 1 펭귄클래식 121
에밀 졸라 지음, 윤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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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베즈, 그녀의 삶은 언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좀 더 세세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본 영화를 또 볼 때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면들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목로주점>을 다시 읽노라니, 아, 제르베즈 이 여자야, 이때 이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지! 옆에 있었다면 뜯어말리고 싶어지는 장면이 여럿 있다.

첫 번째 잘못된 선택- 그 남자 아니야, 아니라고
제르베즈, 그녀가 무려 열네 살에 애를 낳게 만든 그 남자, 랑티에. 작품 초반부터 독자는 이 두 연인(?)의 비참한 생활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여보시오, 제르베즈, 젊은 처자여, 랑티에 그 남자는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니까! 소리를 치고 싶어진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애가 둘이나 딸렸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르베즈 열네 살, 랑티에 열여덟이다. 제르베즈 또한 잘 알고 있다. “랑티에는 아내가 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녀는 걸핏하면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 ‘마카르’를 피해 집밖으로 쏘다니기를 좋아하고 그러던 중에 이 랑티에와 살림까지 차린다. 파리는 정말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랑티에와 함께 이 거친 도시의 허름한 호텔 구석방에서 살림살이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발칙한 모자장이 랑티에는 열심히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다가 결국 그중 한 여자와 달아난다. 랑티에가 잘한(?) 일이라곤 ‘아델’과 달아난 덕분에 졸라가 제르베즈와 아델의 언니 ‘비르지니’ 사이의 그 불멸의 빨래터 싸움 장면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선사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제르베즈가 이 형편없는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한테 의지하고 매달리는 장면을 읽다 보면 그녀의 인생은 첫 단추부터 아주 잘못 꿰어졌음을 알 수 있다. 랑티에가 달아난 뒤 제르베즈 또한 ‘이제부터 자기의 삶이 도축장과 병원 사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만’(1권 45쪽) 같다고 불길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두 번째 잘못된 선택- 그러니까 그 남자도 아니라고!  
랑티에한테 질려버린 제르베즈는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그저 두 아이들을 잘 키우고자 마음을 다잡고 세탁부로 부지런히 일한다. 그런데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이 처자에게 남자가 꼬이지 않을 리가 없다. 함석공 ‘쿠포’는 끈질기게 제르베즈에게 구애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그녀는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연다. 발을 동동 구르며 그녀를 말리고만 싶어진다. 대부분의 독자가 그러할 것이다. 아니야, 이 처자야, 그도 아니라고! 쿠포가 독자를 위해 <목로주점>에서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면 제르베즈에게 청혼하고, 그녀와 결혼식을 치른다는 점이랄까. 졸라는 빨래터 싸움 장면에 이어, 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또 기가 막히게 묘사한다. 가히 불멸의 명장면이다.

이 결혼식은 제르베즈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가 앞으로 모진 비바람에 시달릴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혼식 당일 퍼붓는 소나기를 보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지친 하객들은 우스꽝스러운 차림으로(그러나 그 점을 그들만 모른다), 이렇게 잘 차려 입었으니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며 루브르 박물관 구경에 나선다. 거기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예술 작품을 둘러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지루해 짝이 없어 하면서 박물관 안을 헤매고 또 헤맨다. 결혼식을 다룬 두 그림,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과 루벤스의 <시골 마을 결혼식>을 보고도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음란한 장면을 찾아서 키득거리고, 농담을 주고받을 뿐이다. “여기 좀 봐요. 여기 이놈은 토하고 있고, 이놈들은 민들레에게 물을 주고 있구먼, 그리고 또 이놈은…… 세상에 아주 다들 난리가 났군.” 그들의 눈에는 그저 먹고 마시고, 음란한 것만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은 제르베즈나 쿠포의 일생,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의 일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와 센강의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는 일행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의미심장하다. 강물은 ‘기름에 찌든 쓰레기, 낡은 병마개, 야채 껍질’ 따위를 실어 날랐고, ‘오물 더미는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곳, 다리의 아치가 둥근 지붕처럼 덮고 있는 어두컴컴하고 왠지 불길한 지점’에서 잠시 멈추고는 한다. 이제 막 결혼식을 치른 신부와 신랑, 하객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런 것들이라니 제르베즈와 쿠포의 앞날이 밝을 리가 없다. 심지어 결혼식 당일 제르베즈의 길을 막아선 이는 장의사 일꾼 ‘바주즈’가 아닌가! 게다가 결혼식 당일 밤, 제르베즈에게 ‘자기가 데려다 주러 올라가면 고마워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말까지 한다. 아아, 불길하기 짝이 없다.

세 번째 잘못된 선택- 쿠포를 우쭈쭈하다니!
‘오 분 만에 묶여서 평생을 가야’한다는 결혼을 해버린 제르베즈. 그럼에도 그녀의 인생에 봄이 찾아온다. 한때지만 틀림없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으리라. 제르베즈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세탁소를 차릴 꿈에 부푼다. 쿠포는 오랫동안 구애한 끝에 결혼했기에 제르베즈를 사랑하고, 둘 사이에 귀여운 아이, 그 문제의 딸래미 ‘나나’도 태어난다(<나나>의 주인공). 하지만 이 행복한 나날도 잠시. 쿠포가 일하던 중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크게 다치고, 제르베즈는 그를 치료하느라 가진 돈을 몽땅 날려버린다. 그래도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남몰래 제르베즈를 연모하던 옆집 청년 구제는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가게를 차릴 비용을 빌려준다. 그 덕분에 제르베즈는 드디어 자신만의 가게를 열게 되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가게는 날로 번창한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후로 게을러진 쿠포는 서서히 술독에 빠져서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을 몽땅 술값으로 날리곤 한다. 제르베즈는 이 못난 남편을 초기에 잡았어야 하는데, 쿠포의 몸이 아직 회복이 덜 된 거라 그런 거라면서 늘 우쭈쭈 어르고 달래며 술값을 쥐어준다. 게으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남편을 더 북돋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때도 제르베즈, 그녀의 불길한 운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졸라는 여러 복선으로 암시한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쿠포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던 노파의 눈길이라던가, 성공의 상징인 세탁소 안에서 제르베즈가 술에 취한 쿠포와 키스하는 것을 ‘첫 추락’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추락은 걷잡을 수 없다. 랑티에, 그놈이 돌아온 것이다.

네 번째 잘못된 선택- 서방을 둘이나 두다니!
눈치 빠른 독자라면 다른 여자와 야반도주했던 랑티에가 언젠가는 제르베즈 앞에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랑티에는 제르베즈가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다가 놀랍게도 게으름뱅이 주정꾼 쿠포와 가까워져서 제르베즈와 쿠포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이때 제르베즈는 반쯤은 정신 나간 쿠포를 뜯어말렸어야 했다. 일하지 않고 늘 술에 취해 살고 있는 남편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예의바른 태도 등으로 동네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랑티에. 그러나 제르베즈는 랑티에의 짐 가방에서 ‘담배 냄새를, 겉만 번지르르하게 차리고 다닐 뿐, 사실은 더러운 남자의 냄새’를 느낀다. 랑티에는 <목로주점>에서 가장 혐오스런 인물로, 그가 세탁소에 또 다른 기둥서방으로 눌러 앉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랑티에는 ‘치마들 틈에서 여자들의 가장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게’ 너무나 좋다. 자기는 계속 예의바르게 말하면서도 세탁소 여인들이 주고받는 천박한 얘기들이 좋아서 일부러 여자들이 천박한 말들을 쓰도록 부추긴다. 졸라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세탁소 냄새, 땀에 젖은 맨팔을 드러내고 다림질을 하는 여자들이 있는 곳, 은밀한 규방처럼 동네 여자들의 은밀한 속옷들이 다 까발려 있는 이곳은 바로 그가 꿈꾸던 곳, 오랫동안 찾아 헤맨 나태와 쾌락의 피난처’라고(2권 25쪽). 이런 놈을 또 다시 집안에 들이다니, 제르베즈 오, 이 바보! 이후로 제르베즈의 추락은 끝을 모른다. 그녀의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이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그녀의 ‘불행을 이용해서 다시 자기를 가지려고 혈안이 된 더러운 인간이 막고’ 서 있는 형국으로 흘러간다.

제르베즈는 랑티에가 자신에게 혹시 손이라도 대지 않을까 경계하는데, 그는 의외로 점잖게 군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이 몹쓸 인간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제르베즈도 그와 함께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쿠포가 술에 잔뜩 취해 온 방 안에 토사물을 쏟아놓은 그날, 일은 벌어지고 만다. 이때도 제르베즈, 그녀는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 장면을 졸라는 참으로 또 기막히게 묘사한다. 요맘때부터 싹수가 노란 ‘나나’가 하필이면 그 장면을 보는 것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토사물 위에서 뒹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유리에 얼굴을 대고는 어머니의 속치마가 다른 남자의 방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나는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미 사악한 쾌락에 눈을 뜬 아이의 크게 뜬 두 눈에는 색정의 호기심이 달아오르고 있었다.’(2권 59쪽)

다섯 번째 잘못된 선택-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그래도 제르베즈에게는 다시 정신을 차릴 만한 기회가 있었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없이 선량하게 군 ‘구제’의 친절과 제르베즈보다 더 처참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던 이웃집 어린 소녀 ‘랄리’를 보고 무언가 깨달을 만한 점이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구제의 존중과 배려를 받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며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어린 두 동생을 보살피고 집 안을 늘 깨끗하게 정돈하던 랄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연민과 함께, 저토록 불행한 환경에서도 희망의 한 자락이라도 붙잡으려 애쓰는 아이를 기특하고 안쓰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한때뿐이다. 그녀는 구제와 그의 어머니의 도움의 손길을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당연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빚진 돈에 무감각해진다. 구제의 어머니는 이런 그녀의 타락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구제 또한 그랬을 터이지만 그는 제르베즈에 대한 사랑으로 그녀의 그런 모습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쿠포와 랑티에 두 남자들과 함께 살면서 타락해버린 제르베즈의 도덕성은 이제 되살릴 수가 없다. 그녀 또한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탕진한다. 그녀 또한 술에 입을 대면서 쿠포와 마찬가지로 주정뱅이의 길을 걷는다. 제르베즈에게 얼마쯤 의지하던 랄리는 그녀의 취한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 친다. ‘독주 냄새를 풍기는 숨결, 흐리멍덩한 눈, 일그러진 입,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자신의 주정뱅이 아버지와 다름없이 제르베즈 또한 술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간에 선 랄리는 어두운 눈길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 본다(2권 163쪽). 마치 지붕에서 떨어지던 쿠포를 지켜보던 그 노파처럼.

여섯 번째 잘못된 선택- 그만 좀 먹고 마시라고!

<목로주점>에서는 진탕 먹고 마시는 장면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파리 하층민의 삶에서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인생의 즐거움이란 없어 보일 정도이다. 한때는 ‘올바른 사회에서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던 제르베즈도 이런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혼식 피로연때부터 질리도록 먹고 마시고, 생일파티랍시고 또 진탕 먹어댄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일을 게을리 하고, 세탁소가 기울어갈 때도 두 기둥서방 쿠포와 랑티에는 제르베즈에게 받은 돈으로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면서 이런저런 음식과 술을 먹어댄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감각마저 잃어버린 제르베즈도 서서히 먹고 마시는 일에만 몰두해 간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섹스하고. 일차원적인 만족, 동물적인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무슨 일에든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먹지 않고 지내는 것만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2권 222쪽) 그들은 가난한 시궁창 속에서도 먹고 마시는 일 만큼은 멈추지 못한다.

가세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이제는 먹을 것조차 없다. 어린 나나는 이런 집안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도 주정뱅이, 어머니도 주정뱅이, 거지같은 집구석엔 빵 한 조각 없이 술 냄새만 진동’(2권 188쪽)한다고. 그리고 먹을 것이 없는 더러운 집안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치고 박고 쿠포와 제르베즈 두 사람은 종일 으르렁거린다. 나나는 이런 집구석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고, 집밖이 더 편해진다. 마치 저 옛날 아버지의 손찌검을 피해 집을 달아나고만 싶었던 제르베즈의 삶과 판박이다. 이 거리의 아이들은 대부분 나나와 같다. ‘가난과 악덕을 뒤집어쓴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뒤범벅이 되어 모두 함께 타락해 간다. ‘사과 바구니에 썩은 사과가 들어 있을 때와 같은 이치’(2권 175쪽)이다. 제르베즈는 다시 날품빨래 일을 하게 된다.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세탁해 내던 부지런했던 여자에서 어느덧 ‘더러운 물속에서 더러운 때와 싸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여자로서의 긍지도 사라지고, 그 옛날 지니고 있던 자부심과 상냥한 애교도 잃어버린 제르베즈. 감정을 느끼고 예의를 차리고 존중받는 것들에 대한 욕구도 사라져 버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인생이 참으로 처참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누추한 봉쾨르 호텔 구석에서 시작된 이 지긋지긋한 삶. 과연 잘못은 누구에게, 어디에 있을까? 졸라는 ‘제르베즈는 비참한 가난 때문에, 엉망으로 망쳐버린 삶의 불결함과 고단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로리유 부부의 말을 그대로 쓰자면 그녀는 게으르게 아무렇게나 살았기 때문에’ (2권 284쪽) 그렇게 비참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손찌검을 하던 제르베즈의 아버지 ‘마카르’- 주정뱅이 마카르. 그가 빚어낸 비참한 환경과 유전은 그대로 이렇게 되물림 되어 제르베즈의 삶을 망가뜨린다. 아버지를 피해 파리로 달아났고, 하필이면 또 쓸모없는 두 남자를 만났고, 그중 한 인간은 또 하필이면 주정뱅이가 되고, 그런 그와 살다 보니 마찬가지로 주정뱅이가 되어 삶을 놓아버린다. 제르베즈와 쿠포 이 두 부부는 제르베즈의 아버지 마카르가 그러했듯이 나나를 비참한 환경 속에 방치한다. 나나는 제 엄마 제르베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것이다.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도, 알코올 중독 같은 좋지 않은 유전적 요인도 계속 이어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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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0-21 12: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섯번째 실수가 두번 나와욤!ㅎㅎㅎ 하.. 근데 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 거 같이 콕콕 와닿네요. 특히 그 남자 아니야! 와 그만 좀 먹고 마시라고!(오늘도 먹고 마실 예정에 신난 상태~ 또르르~~ㅠㅠ)

잠자냥 2021-10-21 12:38   좋아요 4 | URL
어머 쌤 고마워요~ ㅋㅋㅋ 역시 쌤은 그런 거 잘 보시는구낭! 수정할게요~
저도 이 책 보니까 먹고 마시는 거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능 ㅋㅋㅋㅋ

프레이야 2021-10-21 13: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리뷰 넘 재미나요 ㅎㅎ

잠자냥 2021-10-21 14:16   좋아요 4 | URL
재미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이 없군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10-21 14:0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니까, 햐, 되게 많은 부분을 잊고 있었구먼요. ㅋㅋㅋㅋ
이렇게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시대가 되는 거 아니겄습니까.

잠자냥 2021-10-21 14:18   좋아요 5 | URL
맞아요. 다시 읽어보니 으잉 이랬던가 싶더라고요. 이 책 다시 읽은 덕분에 클로드 랑티에(<작품>)나 에티엔 랑티에(<제르미날>) 등 제르베즈 자식들 이야기는 좀더 생생하게 읽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 정말 대단합니다~~~

새파랑 2021-10-21 14: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지같은 집구석‘은 에밀졸라의 다른 작품인 <집구석>이랑 연결되는 건가요? ㅎㅎ

˝제르베즈˝도 어떻게 보면 좀 나태해지고,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한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하긴 하루하루 사는것 말고는 생긱할 여유가 없었으니~~ 두명의 남편과 같이 사는건 저는 좀 쇼킹 했어요 ㅋ 게다가 두 남펀끼리 더 친하다니 이건 프랑스식 개방적 사고 ? 😅 잠자냥님 리뷰 읽으니 다음책은 에밀졸라로~!!

잠자냥 2021-10-21 15:28   좋아요 4 | URL
쿠포 그 사람도 참 어처구니 없지만, 전 랑티에가 너무너무 싫어요. 세탁소 망하니까, 사탕 가게에 죽치고 앉아서 이젠 사탕 쪽쪽 빨아먹는 그 기생충 같은 인간!!!! 으으..... 랑티에 성을 가진 그 아들들이 랑티에의 이런 면모는 안 닮았는지(유전이 안 됐는지) 저도 곧 <작품>이나 <제르미날>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21-10-21 16: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잠자냥 님 리뷰도 또 엄청 재미있네요. 재미있는 책으로부터 재미있는 리뷰는 탄생하는 것인가 봅니다.

저는 쿠포가 처음에 되게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근데 지붕에서 떨어지고 나서 게으름에 익숙해지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사람이 성실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매일 알게 모르게 노력에 의한 것이었나 싶고요. 그렇게 성실했던, 또 제르베즈를 사랑했던, 잘 살아보고자 했던 사람이, 일 안해버릇 하니 거기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부인이 번 돈을 탕진하기만 하다니. 어쩌면 이쪽이 더 가기 쉬운 길이기 때문에 앗차 하는 순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근데 나나 는 왜그렇게 재미없을까요, 잠자냥 님... 왜... 왜... 왜.............

잠자냥 2021-10-21 16:24   좋아요 4 | URL
맞아요. 징글징글 막장드라마! 넘나 재밌는 그것. ㅎㅎㅎ
쿠포 정말 의외로 성실해서 어허 요놈 봐라?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지켜봤더니, 역시나... 지붕에서 떨어지고 난 뒤 끝없는 추락..... 근데 정말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좀 어려운가봐요. 왜 바쁠 때 사람들이 더 바짝 이것저것 하잖아요. 게을러지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인간의 본성! 졸라가 그걸 잘 포착한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게 참 어렵다는 것도 잘 안 것 같기도 해요.

<나나>는 정말 의외죠. <목로주점>에서 그려진 나나의 성격이나 묘사만 보면 <나나>도 엄청 생동감 있게 재미날 거 같은데... 왜 재미없는지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음 달에?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10-21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르베즈라는 여자를 모르지만 이 여자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십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러고 저러고 하다가 어떤 경우와 경계를 넘어가버리면 ‘에라 모르겠다‘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런걸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조만간은 아니고 내년 초쯤 에밀 졸라 만나고 싶어요^^

잠자냥 2021-10-21 16:51   좋아요 5 | URL
맞아요. 정말, 제르베즈 ‘에라 모르겠다‘의 끝판왕.... ㅠㅠ

2021-10-2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1-10-21 21: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이 장문의 제르베즈 지적글은 제가 책을 읽고 읽겠습니다.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

잠자냥 2021-10-21 22:05   좋아요 4 | URL
네~ 이 글은 책 다 읽으신 분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mini74 2021-10-22 09: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여자야 그게 아니라고 ㅎㅎ에서 잠자냥님의 진심이 확 읽혀집니다 ㅎㅎ 마지막 그만 좀 막고 마시라고 ㅠㅠ는 제 이야기인줄 뜨끔했습니다 ㅠㅠ

잠자냥 2021-10-22 10:34   좋아요 3 | URL
아이고, 정말 제르베즈 지켜보니 복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 나쁜 남자들을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고... ㅠㅠ
그만 좀 먹고 마시라는 말은 제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ㅋㅋㅋㅋ

공쟝쟝 2021-10-25 15: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단 눈으로 아주 거칠게 제목만 읽었습니다. 뭔가 소설 읽은 후에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리뷰라서.... 이놈의 에밀졸라 열풍은 올해 안에는 발 꼬락이라도 담가놔야지.. 안되겠어여...!!

잠자냥 2021-10-25 16:56   좋아요 3 | URL
그래요~ 그래. 이 글은 책 다 읽으신 분을 대상으로 쓴 글이었습니다요!
책 다 읽고 보세요~

독서괭 2021-10-26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막장드라마 하이라이트만 뽑아서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같아요 ㅎㅎ 재밌지만 가슴을 치게 될 것 같네요. 아이고 답답아 답답아 한치 앞을 못 보냐.. 하면서요. 위에 다 읽은 분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셨지만 전 그냥 다 읽었습니다. 책 읽고 읽어야지 하다가는 읽을 글이 남아나질 않겠어서요 ㅎㅎ

잠자냥 2021-10-26 16: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괭님 오늘 밀린 숙제하느라 바쁘시겠어요! ㅎㅎ

독서괭 2021-10-26 16:45   좋아요 1 | URL
네 너무 밀려서 일단 좋아요부터 눌러놨습니다 ㅋㅋㅋ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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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 엔리케스.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읽고 머리에 각인된 작가. 최근 번역 출간된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를 반가운 마음에 냉큼 사서 읽었다. 여전히 음험하고 서늘하며 위험하다. 유령이 나타나고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전혀 생뚱맞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섬뜩한 공포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서는 느낌이다.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이 책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꼽았다. 나도 이 작품의 서늘한 공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품의 주인공 ‘메치’는 실종 아동들 기록 보관서에서 일하고 있다. 기록 보관소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지만 찾아오는 이들은 드물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면 경찰이나 검찰이 문서를 갖고 간 경우가 많고 이곳에 기록이 보관된 아이들은 실종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단지 종이 더미에 불과하다. 나날이 보고서와 자료가 수북이 쌓여간다. 간혹 가족이나 친지들이 찾아와 잃어버린 아이들의 행방을 찾기도 한다. 놓친 실마리는 없는지 각종 문서와 자료를 훑어본다. 또 때로는 새로운 의혹이나 자료를 들고 오기도 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부모에 의한 납치 피해자들’이라고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 아기를 데리고 잠적해 버린 경우가 가장 필사적인데, 아이와 함께 달아난 쪽은 대부분 어머니이다.

아이들은 왜, 어쩌다 사라졌을까? 메치는 기록 보관소 아이들의 서류를 훑어본다. 아이들은 종종 나이든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거나, 갑자기 아이가 생겨 겁을 먹고 사라진다. ‘술주정 부리는 아버지, 새벽부터 자기를 강간하는 양아버지, 밤에 등 뒤에서 수음하는 남동생을 피해 달아난 아이들. 클럽에서 술에 취해 며칠 동안 정신없이 놀다가 막상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밖을 떠도는 아이들’(224쪽)이 대부분이다. 유괴나 납치를 당한 여자아이들은 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매춘 조직으로 끌려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은 채 발견되거나 납치범들을 살해한 뒤 경찰에 검거된 아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악의 소굴을 벗어났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라진 아이들의 사연을 문장(文章)으로 지켜보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다. 심적으로 힘들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진다.

이렇게 사라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한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에서도 아이들을 향한 이 세계의 폭력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소아 성애 조직이 아이들에게 마수를 뻗치고, 매춘부의 아이들을 방에 가두어 놓고 사진을 찍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가난에 찌든 여인들이 돈 몇 푼 받고 자신의 아이들을 소아성애자에게 팔아넘기고, 광장에서 소아성애자들에게 사냥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를 가는 대신 칼을 든 채 무리 지어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매춘’을 하는 아이들, ‘마약쟁이 엄마가 데려다 놓고 방심한 사이에 발코니에서 떨어진 아이들, 목에 열쇠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서너 살짜리 아이들, 택시 운전사를 죽이고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거리에서 매춘을 하는 아이들’(128~129쪽) 등등.

이런 끔찍한 풍경을 서술, 나열함으로써 뭔가 다른 효과를 노리는 건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다). 단지 독자의 관음증을, 호기심만을 자극하려는 술수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리아니 엔리케스는 영리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자의 관음증을 자극하면서도 그런 인간의 비뚤어진 본성이, 그 이기적인 본성이 바로 이 세계의 비참함을 불러왔음을 폭로한다. <돌아온 아이들>의 주인공 ‘메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기록 보관소에서 무료함을 달래고자 아이들의 문서를 읽어본다. 그러다가 그 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는 소녀 ‘바나디스’의 기록을 읽게 되고, 서류를 덮고 나서도 이 매혹적인 아이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한다. 이 아이는 어쩌다 사라졌을까, 이 예쁜 외모라면 틀림없이 납치되어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으리라. 살아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또 그 나름대로 어른들에게 착취당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단지 서류상에서 존재하는 바나디스를 향한 메치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져간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메치의 친구로 기자인 ‘페드로’는 메치의 기록 보관소를 충실히 이용해 사라진 아이들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고 그로 말미암아 주위의 인정과 함께 명성을 얻는다. 바나디스의 기록을 보고 그 또한 관심을 갖는다. 아이는 이 평범한 두 어른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그토록 매혹적이다. 페드로는 어느 날 동영상을 입수한다. 동영상 속 소녀는 화질이 좋지 않아 또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바나디스일 것 같다. 그 소녀가 틀림없는 것 같다. 메치는 냉큼 그 동영상을 확인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러나 자꾸만 보고 싶다.


그녀도 그 휴대 전화 영상을 보고 싶었다. 아니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병적인 호기심을 선행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256쪽)


그러던 중 놀랍게도 어느 날 그 바나디스가 메치 앞에 실제로 나타난다. 메치는 아이의 사진을, 기록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바다디스를 단번에 알아본다. 사라진 그 소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바나디스의 가족과 친지들은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아이를 다시 만나자 미친 듯이 기뻐하다 기절하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메치는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나디스가 실종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전화 한 통화 하지 않던 인간들이 저 난리를 피우니 말이야. 더구나 그전에 저 아이가 소년원에 들어갔을 때 면회를 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 열네 살 때 거리에서 매춘을 시작했을 때도 저들은 아이를 구하려고 애를 쓰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았으면서…….’

언론도 모순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신기하게도 바나디스가 나타난 이후로 곳곳에서 사라진 아이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돌아온 아이들의 상태가 기묘하다. 아이들은 실종된 지 몇 년이 지나 돌아왔음에도 사라졌을 당시 그 모습 그대로이다. 3년 전에 아버지와 험하게 말싸움을 하다 두드려 맞고 집을 나간 아이는 돌아왔을 때  눈두덩이가 부어올라 있었고, 아랫입술은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24시간 전에 두들겨 맞은 듯한 몰골이다. 메치는 아버지가 그 아이를 구타했다는 사실을 기록 보관소 문서에서 본 적이 있다. 이런 정보라면 기자들도 다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도 아이가 돌아오자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오로지 감동적인 상봉 장면만 부각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기자인 페드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바나디스를 중심으로 한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신매매범들과 뚜쟁이들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바나디스를 비롯해 아이들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나타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돌아온 아이들이 그동안 자신의 노력을 다 망쳐 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취재고 뭐고 아무 쓸모도 없다고 화를 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입수한 ‘바나디스 영상’은 방송국에 큰돈을 받고 팔아버릴 생각이다. 그 돈을 받고 이 끔찍한 나라를 뜰 것이라면서 메치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그때 메치는 페드로에게 묻는다. “왜 여기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다른 데도 똑같을지 어떻게 알아?” “내 말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는 거야.”(280쪽)

그러니까, 아이, 소녀, 가장 여리고 나약한 존재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온갖 폭력을 자행하는 어른들은 아르헨티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 곳곳에 있다. 집안에서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구타하고 성폭력을 자행하며, 그런 집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아이나, 납치되거나 유괴된 아이들이 또 다른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비단 아르헨티나의 어느 어두운, 가난한 뒷골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이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아이들의 영상을 찍고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어른들, 그것으로 한탕 돈벌이를 하려는 어른들, 그것으로 기사를 써 부와 명성을 얻으려는 어른들은 이 세계 곳곳에 있다. ‘돌아온 아이들’은 사라졌을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 어른들 앞에 나타나 자신들을 폭력에 노출되게 한 어른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어떤 것인지, 자신들의 잘못을 쉽사리 깨닫지 못한다.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10대 청소년부터 젊은 여성, 혼자 사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계급별로 다양한 여성의 삶이 그려진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주변의 가까운 이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거나 억압 받고, 상처를 입어 그로 인해 고통스럽게 살아간다(<우물>,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때로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여과 없이 표출하기도 한다(<호숫가의 성모상>, <심장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카르네>). 이들의 삶을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팔다리가 절단된 유령보다도 더 끔찍하게 무서운 것은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살아있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이 세계가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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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0-13 13: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게 배달되고 있는 책입니다.
바로 읽으려고 합니다.

첫번째 스토리부터 유령이 난무하
니, 기대만빵이네요.

잠자냥 2021-10-13 16:14   좋아요 4 | URL
흥미진진해서 냉큼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유부만두 2021-10-13 13: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가 이번에 국제 작가 축제에서 강연 하는(한??) 작가군요. 무서운 이야기라고요? 찜. (아후, 이게 몇 권 째에요. 찜 찌다 늙겠어요)

잠자냥 2021-10-13 16:15   좋아요 4 | URL
네, 이번에 우리나라까지 왔더라고요. 공포/호러 장르이긴한데 무서운 거 잘 못 읽는 제가 소화가능한 정도이긴 합니다. ㅎㅎ

mini74 2021-10-13 16:42   좋아요 5 | URL
너무 찌면 만두는 터질수 있어요 유부만두님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1-10-13 13: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님의 리뷰되는 책들은 우선 보관함에 넣고 봅니다!!!
내가 읽어 보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 길잡이가 되는 느낌을 주는 분들 중 한 분이신데....보관함에 일단 담고 보니 내보관함이 언젠간 폭발하지 않을까?걱정 되는군요ㅜㅜ 빨리 읽어서 권 수를 줄여나가야 할텐데..일단 담고만 있으니ㅜㅜ

잠자냥 2021-10-13 16:16   좋아요 4 | URL
저 위에 보관함 달인 유부만두 님이 잘 아실텐데 알라딘 장바구니랑 보관함은 절대 터지지 않아요! ㅋㅋㅋㅋㅋ

mini74 2021-10-13 16: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던 8미리란 영화가 생각나네요. 거기서도 실종된 여자아이들을 찾는 ~~ 궁금하고 읽고 싶어집니다. 저도 찜 *^^*

잠자냥 2021-10-13 17:20   좋아요 4 | URL
오 그렇군요. 이 책도 언제 한 번 읽어보세요~

붕붕툐툐 2021-10-13 2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로 무서운 건 호시탐탐 나를 놀려 먹으려는 자냥이~😱
원래 담배는 침대에서 피우는게 제 맛(멋?) 아닙니까?ㅎㅎ

잠자냥 2021-10-14 00:09   좋아요 4 | URL
해헤헤헤 쌤 그러다 침대에 빵구난다요~

coolcat329 2021-10-15 16: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도 너무 읽고 싶네요.. 사실 제목만 봤을 땐 별로였거든요.
정말 내용이 심적으로 힘들거 같긴 한데 궁금하긴 합니다.

잠자냥 2021-11-05 20:33   좋아요 4 | URL
사실 표제작은 그렇게까지 인상 깊지 않은데 그 작품을 표제작으로 꼽았더라고요.

그레이스 2021-11-05 16: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불조심 표어!^^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독서괭 2021-11-05 16: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냥오별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11-05 18:54   좋아요 1 | URL
아 ㅋ 역시나 아이디도 책에서 얻으셨군요 ^^

새파랑 2021-11-05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립금은 다 잠자냥님께 ㅋ
생각해보니 <변신>에 ˝잠자˝를 보고 아이디 만드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괭 2021-11-05 18:52   좋아요 5 | URL
그 잠자 맞다고 하신 것 같아요 ㅋㅋ

잠자냥 2021-11-05 20:34   좋아요 4 | URL
네 그레고리 잠자의 잠자 고양이의 ‘냥’을 합친 조합입니다. ㅎㅎ

초딩 2021-11-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짝짝짝~

thkang1001 2021-11-07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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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맥주를 마셨고 오늘도 숙취에 시달린다. 그런 아침에는 오늘만큼은 퇴근 후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지, 하는데 집에 도착할 때쯤엔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 또는 6캔을 주섬주섬 담고 있다. 그러면서 딱 2캔만 마셔야지 다짐하지만 밤 11시를 넘길 즈음에는 빈 맥주 캔이 모조리 찌그러진 채 식탁 위에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시 숙취에 시달리며 생각한다. 아, 이렇게 순간의 쾌락에 지고 마는 한심한 인간이라니! 어쩜 그리 매순간 쾌락에 지고 마는가?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는 바로 이렇게 삶의 쾌락과 즐거움에 몸을 던지는 이들의 이야기로, ‘케이크와 맥주’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 등장한 관용구로 물질적 쾌락, 또는 삶의 유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작품 시작은 처음부터 그런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첫 문장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걸어 찾는 사람이 출타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중요한 용무인 양 들어오는 대로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그 용무란 것은 전화를 받은 사람보다 전화한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 마련이다.’ 작가인 ‘나(어셴든)’는 이 메시지가 그다지 반갑지 않다. 누군가가 뭔가를 부탁하려는 전화이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 이는 어셴든의 동료 작가 ‘로이’인데, 이어서 이어지는 그에 관한 묘사를 읽노라면 로이는 당대 명성을 쌓은 유명 작가이지만, 인간적으로나 작가 개인으로서나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로이에 견주면 그리 유명하지도, 명성을 크게 누리고 있지도 않은 어셴든은 대체 그가 자신을 왜 찾는지 궁금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목적이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유명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된 로이는 어셴든에게 그에 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노년에 이르러 거장으로 칭송받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사실 어셴든은 드리필드가 무명이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이다. 로이의 요청에 어셴든은 자연스레 옛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 작품의 재미는 ‘나’의 회상, 즉 열여섯 소년 시절에 한 마을에 살면서 가깝게 지내게 된 에드워드 드리필드와의 일화를 지켜보는 일에 있다. 특히 드리필드의 부인 ‘로지’는 그 추억을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주는데, 그녀야말로 삶의 유희와 쾌락에 온몸을 던진, ‘케이크와 맥주’의 철학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끝 무렵, 사회 변동이 심하던 이 시기에 신분 이동도 심해, 신흥 부르주아들이 전통 신사 계층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셴든이 사는 ‘블랙스터블’의 상류층(귀족)들은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다. 성직자인 어셴든의 숙부와 귀족 가문 출신인 숙모는 특히 더 그렇다. 이런 마을에 어느 날 드리필드와 그의 아내 로지가 이사를 온다. 그런데 이들은 이 보수적인 마을에서 너무나 튀는 존재이다.  드리필드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데다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명성도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있는, 한마디로 블랙스터블의 고귀한 사람들이 보기엔 형편없는 집안 출신의 형편없는 인물인 것이다. 한 술 더 떠 그의 아내 로지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자자한데, ‘펍’에서 일하던 여성이라느니, 마을의 누구와 내연 관계였다느니 등등 이 보수적인 동네 사람들에게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종자들이다. 숙부와 숙모는 당연히 어셴든이 이 비천한 자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아직까지 계급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던 어셴든 그 자신도 그들과  어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연히 ‘자전거 사건’을 계기로 그들 부부와 인사를 하게 되고, 두 부부는 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다.

십대 소년이었던 어셴든은 처음에는 드리필드 부부를 보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보수적인 세계관에 물들어 있었기에 그들 부부의 기행(?)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그의 눈에 드리필드 부부는,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어 보이며, 모든 일에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거리낌이 없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끊임없이 그를 민망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는 이 자유로운 부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자신이 속한 블랙스터블의 모순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블랙스터블 사람들은 ‘가식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며 ‘체면이라는 가면’(100쪽)을 쓰고 살았던 것이다. 드리필드 부부를 통해 얻은 이런 깨달음은 훗날 작가가 되는 어셴든에게 여러 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는 저 ‘로이’처럼 무분별하게 명성과 성공만 좇는 인물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작가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어셴든은 이제 거장이라 불리는 드리필드에게도 조금은 냉소적인데, 그가 읽기에 그의 소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너무 긴 데다 무딘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려 동원한 멜로드라마적 사건들도 시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는 진실성이 있으며 최고의 작품에는 생동감이 어려 있고, 불가사의한 개성도 느껴진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드리필드가 거장으로 칭송 받게 된 데에는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초창기에 드리필드는 문단에서 겨우 인정받는 정도였다. 일류 비평가들은 그를 칭찬하면서도 미적지근했으며 젊은이들은 그를 마음껏 씹어댔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했지만 그가 영국 문단의 거목 중 하나로 우뚝 설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하자 ‘문단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드리필드가 명성을 얻은 까닭은 ‘단지 오래 살았기 때문’이라는 이 냉소적인 시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서머싯 몸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닐까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케이크와 맥주>, 144쪽)


<케이크와 맥주>는 어셴든과 드리필드 부부의 일화를 지켜보는 재미만큼이나 작가들의 삶과 명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드리필드’의 전기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꿈에 부푼 로이는 있는 그대로의 드리필드를 그리기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윤색된 이미지의 드리필드를 그리고자 한다. 때문에 어셴든이 들려주는 추억 속의 드리필드, 그러니까 서민적이고 평범하고 자유분방한 그의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면서 그런 일화는 과감히 무시한다. 예컨대 싸구려 펍에서 보드빌을 부르는 드리필드,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절의 습관 때문에 ‘고기와 채소를 먹고 나서 빵 조각으로 접시를 싹싹 닦아 먹는 버릇’이 있는 드리필드, 돈 문제에 부도덕했던 드리필드, 아랫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서 이상한 즐거움을 찾는 ‘결점’을 지닌 드리필드, 목욕을 싫어하던 드리필드 등등은 로이가 절대로 그리고 싶지 않은 ‘거장’의 모습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런 드리필드의 모습은 유명 문인, 거장 작가로서 지켜야 할 품위에 어긋나며, 득이 될 일이 없다. 게다가 드리필드의 두 번째 부인인 ‘에이미 드리필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드리필드 전기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첫 번째 부인 로지를 완전히 지워버리거나 드리필드를 망치는 데 일조한 여자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런데 로지는 정말 드리필드를 망친 악녀였을까? 두 번째 아내, 에이미 드리필드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로지는 남편 에드워드 드리필드에게 대단히 해로운 영향을 끼쳤을까? 로이와 에이미의 말처럼 로지는 ‘지적으로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편보다 열등’한 여자였으며 드리필드는 첫 번째 결혼에서 ‘아주 불행’했을까? 그러나 어셴든은 로지에 관한 이런 그들의 평가에 씁쓸하지만 조용히 미소 짓는다. 자신이 보아온, 직접 느꼈던 로지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로지에겐 분명 결점이 많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솔직함과 자유분방함,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활력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훌륭한 작가로, 하층민의 삶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려낸 능력을 지닌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줬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드리필드의 모든 명작이 로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탄생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로지가 떠난 후, 후견인인 트래퍼드 부인을 만나 그녀의 ‘관리’ 아래 명성과 성공을 얻은 드리필드. 그러나 그의 작품은 물론 그 자신도 생기와 개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면, 작가에게 아니, 한 인간 개개인에게 명성과 성공, 그리고 삶의 즐거움과 쾌락은 과연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서머싯 몸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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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10-01 13: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멋진 글과 맥주의 관계가 좀 더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을 쓰실 때 어떤 맥주를 드시는지~ 이런거요! (테라만 아니길...ㅋㅋ)

잠자냥 2021-10-01 13:25   좋아요 5 | URL
하하하, 테라는 아닙니다요! 국산 맥주 중에는 서울숲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1-10-01 13: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ㅎㅎ 4캔이 윤회하는 저녁에 극히 공감하는 1인입니다! 이 책 읽고 나서 어떻게 편맥을 안 할 수 있을까요?ㅎ 만원네캔의 행복이 지속되는 삶도 좋은데요! 즐건 연휴되시구요!ㅎ

잠자냥 2021-10-01 14:15   좋아요 4 | URL
ㅎㅎㅎ 그러게요, 오늘은 심지어 긴 연휴의 첫 시작일! 편맥 필수입니다! ㅎㅎ

Falstaff 2021-10-01 14: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작가 어셴든이 첩보대 R 대령한테 스카웃 되기 전의 이야기군요!
ㅋㅋㅋㅋㅋ 저처럼 배에 내장지방 잔뜩 끼면 4캔은 절대 못 마십니다.
걍 25도 쐬주 한 병에 금성맥주 반 리터면 딱입지요!

잠자냥 2021-10-01 14:48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인간의 굴레>의 그 필립 녀석이 <어섄든>의 첩보원 되는 그 중간 과정? ㅋㅋㅋㅋㅋㅋ 이런 깨알(?) 재미도 재미나네요. ㅋㅋㅋㅋㅋ

오늘도 즐겁게 25도 쐬주 즐기세요~ ㅎㅎ

공쟝쟝 2021-10-02 09:58   좋아요 1 | URL
오 이게 나름의 작가 삶에 빗대어 순서(?)가 있어요? 순서 아시면 알려주세요! 저도 서머셋 몸 가장 유명한 책은 읽은 사람입니다. (크흠흠!)

잠자냥 2021-10-02 13:30   좋아요 1 | URL
쟝쟝/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인간의 굴레>-<케이크와 맥주>-<어셴든> 이렇게 읽으면 더 재미날 거 같긴해요. (근데 전 아직 어셴든 읽기 전이라능)

coolcat329 2021-10-01 1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글 읽고 많은 분들이 만원 네캔 하실듯 하네요. ㅎㅎ

잠자냥 2021-10-01 15:01   좋아요 3 | URL
아니, 여러분 책을 읽으시라고요! ㅋㅋ 케이크와 맥주만 사먹지 마시고요! ㅋ

수이 2021-10-01 16: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 맥주를 마시라는 글로 알아듣고 캔맥주를 사서 집에 들어가는 중인걸요 🙄

잠자냥 2021-10-01 16:28   좋아요 2 | URL
크하하- 좋습니다. 이 글 그냥 맥주 마시라는 글로 하지요! ㅋ

다락방 2021-10-01 16: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도 않지만 그래도 접대용으로 늘 냉장고에 넣어두고 있기는 하거든요. 이 리뷰 읽으니 너무 맥주 마시고 싶네요. 그렇지만 오늘 저녁은 소주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잠자냥 2021-10-01 16:28   좋아요 4 | URL
ㅋㅋㅋ 소맥 말아요. 부장님~ 모름지기 부장님은 소맥이죠.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0-01 16: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낮맥 하고 들어왔어요. 막둥이 옆에서 치킨 먹는 동안 전 맥주에 만화책 읽었고요. 인디언썸머인가요? 여름의 끝자락의 끝자락입니다. 치얼스!

잠자냥 2021-10-01 17:01   좋아요 2 | URL
하, 오늘은 안 마시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10-01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주에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숲 마셔봐야지잉~~😁

잠자냥 2021-10-01 22: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쌤 저랑 건배! ㅋ

mini74 2021-10-01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죠 이 분위기는 ㅎㅎㅎ 맥주를 부르는 글인가요.

잠자냥 2021-10-01 22: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러게 말이에요. 이게 다 몸 때문입니다!

coolcat329 2021-10-01 2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은 관심없고 다들 맥주 얘기만 ㅋㅋ 이번 리뷰는 참 안타깝네요

잠자냥 2021-10-01 22: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금요일이고, 연휴 시작이라 그러려니 합시다! ㅎㅎ

공쟝쟝 2021-10-02 09:5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그럴 줄 알았는데 책과 맥주에 진심인 사람들..ㅋㅋㅋ 그거 아세요? 저 제2의 성 읽는 동안 술 딱 두번 마신거..(심지어 연휴도 껴있었는데..)

잠자냥 2021-10-02 13:31   좋아요 1 | URL
쟝쟝/ 대박… 진심으로 열심히 읽으셨구려! 크게 칭찬하오.

케이 2021-10-12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잠자냥님. 잘 지내시죠? 결혼 전에는 혼자 맥주 마시는 게 낙이었는데 임신 준비하면서 술을 완전히 끊어서 벌써 술 안 마신 지 2년도 넘었네요. 남편도 맥주 한 캔만 마셔도 다음날 못 일어나는 사람이라 자연히 술과 멀어졌어요. 저희 부부는 요즘 수면욕이 모든 욕구를 압도하고 있어서 술도 맛난 음식도 전혀 생각이 안 나고 그저 실컷 자는 게 소원이네요.ㅜㅜ 서머셋 몸 소설은 재미 측면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더라고요. 이 책도 궁금하지만 저의 유일한 독서 가능 시간이었던 아기 재우는 시간에도 독서가 힘들어졌어요. 아기들이 꽤 무거워져서 아기 매고 두 손으로 아기 엉덩이를 받치거든요. 그래야 그나마 허리가 덜 아파서요. 그러다 보니 손을 못쓰게 되어 아기 재우는 중에도 손에 책을 들 수가 없어요. 흑. 그래도 현재는 애 키우는 게 우선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오랜만에 잠들기 전 안부 전하며.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잠자냥 2021-10-13 08:31   좋아요 1 | URL
수면욕! ㅎㅎㅎ 제 동생 둘 다 자고 싶다고 엉엉 운 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그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그 조카들이 어느덧 둘 다 돌을 지나서 요새 한 녀석(제 바로 아래 동생 아이)은 엄마가 가서 자라고 하면 인형 안고 쪽쪽이 빨다가 혼자 잠들고, 또 다른 녀석(막냇동생 아이)는 밤에 재우면 이제 새벽에 깨서 우는 일은 사라진 모양이에요. 케이 님 쌍둥이들도 곧 그런 날이 올 겁니다! 손목 얼른 낫길 바랄게요!

은오 2023-01-23 0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맥주 별로 안좋아하는데... 술자냥님 하이볼 좋아하십니까? 저랑 살면 하이볼 맛있게 말아드림

잠자냥 2023-01-23 09:28   좋아요 1 | URL
하이볼도 좋아하긴 하는데….

얄라알라 2023-01-24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요새 북플 온라인 potluck 열리는 잠자냥님 서재, 댓글 맛집 냥님의 서재에서 툐툐님의 안녕까지 확인하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툐툐님, 그리고 골드문트님 덕분에 저는 쐬주가 25란 걸 알았어요^^ 엊그제 병나발 불었던 소곡주는 43이던데, 그냥 소주는 43의 반 정도네요^^ 다락방님도 술 부름에 응하셨고, 저도 잠자냥님 글 읽다보니 뭔가 마시고 싶어집니다. ㅎ

은오 2023-01-24 01:10   좋아요 2 | URL
오잉? 얄라님!!! 이 글 2021년 글인데.... 제가 어젯밤에 잠자냥님 서재 구경하다가 댓글 달아서 얄라님께 알림 갔나봐요 ㅋㅋㅋㅋㅋ 미쳐 ㅋㅋㅋ

얄라알라 2023-01-24 0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공, 그렇네요? 저는 툐툐님 서재 들락이며 안부전해도 통 연락 없으시다가 이 포스팅에서 보아서 얼마나 반가웠는지...그나저나 알라딘 북플 시스템을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게 alarm이 오는지 ㅋ 지금 보니 2021년 잠자냥님 올리신 글이네요

은오 2023-01-24 01:37   좋아요 2 | URL
진짜 반가우셨겠어요...😭 북플 앱 설정에서 알림수신 설정 들어가면 “내가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한 글에 친구가 댓글을 달았을 때” 알림을 수신할지 말지도 체크할 수 있더라고요. 따로 해제하지 않으면 수신 체크가 되어있고요. ㅋㅋㅋㅋㅋ 얄라님이 예전에 이 글에 좋아요를 해두셔서, 얄라님 친구인 제가 여기 어제 댓글을 다니까 알림이 갔습니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