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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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은 출판사였다. 지금도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편집자로 일하는 지금과 그때는 업무가 크게 달랐다. 그 시절에는 회사의 마케팅/홍보부에서 책을 광고하는 일, 그러니까 책에 관한 카피를 쓰거나, 홍보자료 작성 등을 주로 했다. 그렇기에 그때의 나는 편집의 ‘편’자도 알지 못했다. 신간이 나오면 그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그 책을 가장 잘 아는 사람, 그러니까 편집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는 이 부서, 저 부서를 다니면서 편집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었다. 출판사 자체도 워낙 조용했지만, 편집실은 이 부서든, 저 부서든 일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릴 뿐, 거의 정적만이 감도는 그런 환경이었다. 상대적으로 내가 속한 마케팅팀이나, 디자인팀은 ‘편집’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기에 그랬겠지만, 회사 내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시끄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입사한 신입 사원. 이십 대 중반의 내가 편집실을 드나들 때면 그 무거운 공기가 암울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편집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서 30대 이상이었고,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를 차지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물처럼 담백하고 조용했다. 다들 공부만 열심히 한 모범생들 같았달까. 세월이 흘러 내가 이제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으니, 현재 우리 회사의 마케팅 부서 사람이 나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까? 아무튼, 나는 그때 그 편집실이, 무겁고 조용하고, 변화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은 책과 원고로 둘러싸인 그 성벽, 요새 같은 공간이 그저 답답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다들 여기서 어떻게 몇십 년, 몇 년씩 일하는 걸까? 심지어 대학원을 가거나 유학을 떠나느라 퇴사를 했다가도 왜 다시, 하필이면 이곳으로 돌아오는 걸까? 서른, 마흔이 넘은 사람들에게는 이 변화 없이 정체된 공간이 안락한 것일까? 의아하기만 했다. 딱 3년, 경력 3년만 채우고 떠나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때 나와 같은 시기에 입사했던 동기도 꼭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답답해서 이런 곳에 어떻게 저렇게 오래 있을까요?” “그러니까요, 여길 나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들이 더 이상해요.” “우리 3년만 버텨요!” 


그리고 나와 그 동기는 딱 3년을 채우고 둘 다 신이 나서 이직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그 요새 같은 공간을 다시 그리워할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친하게 지낸 동기였기에 각자 다른 회사를 가서도 오랜 시간 연락을 하고 지냈다. 때로는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우리는 둘 다 원하던 곳으로, 더 역동적이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른바 더 ‘비전’ 있어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마음속에서는 그때 그 요새 같던 공간이, 모든 게 느릿느릿 흐르고, 오늘도 내일도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는 그 공간이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거였다. 그즈음 나는 몇몇 광고 회사를 전전했는데, 광고업은 철저히 ‘을’의 자리에 위치하는 서비스업이었기에 광고주의 요구가 있으면 야근도 휴일도 모두 반납해야 하는 시스템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어 심신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출판사와 광고 회사라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는 내가 좀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하고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출판사는 언제나(!) ‘사양길’에 접어든 직종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 그 첫 직장에서 나에게 재입사를 제안해왔고, 내 동기는 그때쯤 이미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계약직 형태로 그 회사와 일하고 있었다. 나는 몹시 갈등했다. 야근도 없고, 을의 위치에서 항상 대기 중인 삶도 없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까? 거기가 참 편하긴 하지…. 그러다 보니 문득 서른, 마흔 넘어서도 그곳에서 계속 머물고 있던 사람들, 그곳을 떠나서 좀 더 나은 경력을 쌓고서도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너무나 안정적이고 조용하고 변화가 없어서 지리멸렬해 보이는 그곳, 그러나 거기에서도 사람들은 무언가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고, 루틴이 만들어낸 조그만 변화를 보면서 언젠가는 좀 더 나아질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세월을, 인생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나는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몇몇 광고 회사에서 힘겨운 일을 할 때면 돌아가지 않은 내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출판사에서, 이제는 책과 원고에 둘러싸여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으니 어쩌면 나는 그 요새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노라니 문득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했듯이 ‘조반니 드로고’는 군사학교를 막 졸업하고는 넓은 평원을 마주한 북부 국경지대의 바스티아니 요새로 파견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드로고는 자신이 직접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요새에 배속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이 요새는 죽은 국경선에 위치하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 더 이상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름대로 명성이 있었지만, 이제는 형벌, 또는 유배지와 가깝다. 그 앞에는 큰 사막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타타르인의 사막이라고 부른다. 고대에는 타타르족이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전설에 불과하다. 그곳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과거에 일어난 전쟁 중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타타르인의 사막이라 부르는 것일까? 


드로고는 궁금하다. 과연 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저 건물과 흉벽, 포대와 탄약고 뒤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아무도 지나쳐간 흔적이 없다는 돌투성이 사막의 북쪽 왕국은 어떠할까? 요새의 높이 정도라면 몇몇 마을이나 초원, 하다못해 집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아니면 오직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의 황량함뿐일까? 성벽의 음울함, 형벌과 유배가 뒤섞인 모호한 분위기, 낯설고 부조리한 사람들, 철저히 혼자라는 고립감 속에 드로고는 암담해진다. 안정된 주둔지와 편안한 집, 늘 곁에 있던 밝고 유쾌한 친구들, 사관학교 야간 정원에서 감행했던 소소한 모험들로 이뤄진 평온한 체험들 속에서 의기양양했던 그의 자신감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의무만이 강요되는 세계, 엄격한 규율만이 남아 어떤 영광도 찾아볼 수 없는 세계에서 벗어날 기회만을 노린다. “나는 여기 임시로 있는 거다. 언제고 떠날 날을 기다린다.” 다짐한다. 게다가 누군가는 그에게 경고한다. “조심하십시오. 갓 부임하셨으니 시간이 있을 때 가능하면 빨리 떠나십시오. 그들의 광기에 물들면 안 됩니다.” 이런 말까지 들었으니 그가 이 요새에 머물 턱이 없다. 그는 다짐한다. 딱 4개월, 4개월만 채우고 이곳을 벗어나자. 드로고는 과연 그 요새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그 요새에 애정이 생긴다. 드로고 그의 내면에 이미 무감각하게 길든 습관들, 군인으로서의 다소 과한 자부심과 이제 일상이 된 성벽을 향한 가족 같은 애정이 자리 잡는다. 게다가 단조로운 리듬으로 이어진 군 복무는 넉 달 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유혹하고도 남는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든 고역 같았던 수비교대 근무도 어느새 그에게는 습관이 된다. 더욱이 그에게는 희망이, ‘고귀하고 위대한 일들에 대한 예감’이 싹튼다. 저 너머, 타타르인의 사막으로부터 무언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적이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그러면 그때 이 요새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할 것이고, 이곳을 지키는 자신과 다른 병사들은 틀림없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리라……. 이런 희망과 기대감이 그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다. 분명, 도시의 문명사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그는 선뜻 떠나지 못한다.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요새에서 오지 않을 적을 기다리며,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드로고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마의 산’의 요양원 베르크호프를 결코 내려가지 못하는 ‘한스 토카르프’처럼 요새를 떠나지 못한다. 조반니 드로고, 그의 삶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타타르인의 사막>은 평생에 걸쳐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적군을 기다리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군대의 일상과 황량한 사막, 그 경계지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은 지평선 너머에서 언젠가 진군해 올 적을 기다리며 생을 버텨나간다. 이 불확실한 기다림과 습관처럼 반복되는 군 생활 사이에서 드로고는 조금씩 늙고 병들어간다. 늙고 병들어서는 ‘삶에 치유에 대한 희망’이라는 추가 기대사항이 생겨 기쁘게 받아들인다. 한때 간직했던 희망과 전쟁에 관한 환상, 북쪽에서 내려올 적에 대한 기대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또렷이 드러난 지금에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그의 오랜 기다림이, 희망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그의 생은 뜻하지 않은 흐름으로 드로고를 이끌어간다. 요새에 온 것도, 떠나고 싶지 않은 순간 요새를 떠나야 하는 것도 모두 드로고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살아간 나날들은 분명 드로고 자신의 선택이며 그의 삶이었다. 그의 희망이, 꿈이, 기대가, 소망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생 전체가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지 않을 적, 결코 손에 잡히지 않을 그 무언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시간을, 생의 흐름을 보내고 있을 우리, 인간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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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6 18:0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글을 잘 쓰시는 이유가 있었군요~! 곧 알라딘 임원으로 스카웃되시는거 아닌가요? ^^

<타타르인의 사막>은 정말 떠나고 싶은데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완전 공감 백배작품~!!

햇살과함께 2022-02-26 18:17   좋아요 6 | URL
맞아요 글빨(?)이 남다르다 했어요~ 잠자냥님 빨리 책 한권 내세요~

독서괭 2022-02-26 20:18   좋아요 6 | URL
요즘 편집자들이 책 많이 내던데 잠자냥님도 기대해 봅니다~!!

잠자냥 2022-02-26 23:14   좋아요 7 | URL
새파랑님/ 저는 지금 저의 요새를 사랑해서 ㅎㅎㅎ 알라딘이 스카웃해도 요새를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햇살 님과 괭 님의 다정한 말씀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2-02-26 18: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비하면 존 맥스웰 쿳시
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그야
말로 스펙터클하다는 생각이 다
들 정도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는 시
간에 매몰되어 가는 드로고의
요새에서의 삶은, 우리네 그것
에 대한 부차티스러운 은유가
아닐런지요.

어쩌면 광기란,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조
용하게 일상을 파고 들어와
사각사각 소멸시켜 버리는 무언
가는 아닐지 궁금해지는 시간이
었습니다.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읽어봄직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잠자냥 2022-02-26 23:16   좋아요 4 | URL
맞아요. <야만인을 기다리며>도 조금 생각났는데, 이 작품에 비하면 정말 스펙타클하죠! 이 작품 참 좋았습니다~

물감 2022-02-26 19: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 리뷰보다 잠자냥님 개인사가 훨씬 잼나요. 역시 글쓰는 분들은 인생의 굴곡이 다 있네요🥺

다락방 2022-02-26 19:39   좋아요 4 | URL
제가 지금 꼭 이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저보다 먼저 쓰시면 어떡해요? ㅋㅋ


물감 2022-02-26 20:27   좋아요 1 | URL
음 그러면 아쉬운대로 제 리뷰에다 댓글 달아주시면 됩니다요ㅎㅎㅎ

잠자냥 2022-02-26 23:18   좋아요 2 | URL
ㅎㅎㅎ 누군가의 개인사는 가만히 지켜보면 흥미롭지요. 그 사람을 알아갈수록 관심이 생겨서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알라딘 서재 이웃분들의 글이 점점 저 재미나게 느껴지는 거겠지요!

다락방 2022-02-26 19:41   좋아요 1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 님의 리뷰가 참 좋습니다. 일단 제가 정말 못하는 책에 대한 정리를 잠자냥 님의 리뷰에서는 말끔하게 볼 수 있거든요. 정리가 잘 된 글이면서 이렇게 가끔 개인사를 섞어 감정적이 되는데, 그런데 그 감정이라는 것이 흘러넘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딱 선을 지키면서 과하지 않게 조절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잠자냥 님을 글쓰는 천재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글 쓰시는 것에 타고나신 것 같아요. 잠자냥 님 글은 읽다 보면 중간에 멈출 수가 없거든요. 하필이면 오늘 버스 기다리다가 이 리뷰를 읽는 바람에 손 시려 미치겠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끝까지 다 읽었네요.

잠자냥 님, 잠자냥 님은 이런 제 댓글을 좋아하지 않으실 걸 알지만, 하트 드리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2-26 19:50   좋아요 7 | URL
다락방님의 리뷰도 성격이 달라서 그렇지 충분히, 아냐, 아냐, 넘치게 매력적입니다. 두 분이 알라딘 서재의 특징적인 리뷰 세계를 창조하고 계신 중입니다. 낫고 모자르고는 전혀 없어요.
두 분 다 하루 빨리, 불끈 불끈, 잘 팔리는 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락방 2022-02-26 19:56   좋아요 10 | URL
아니, 골드문트 님. 이게 무슨 댓글이에요 ㅠㅠ 아니 저한테 왜이러세요 ㅠㅠ 골드문트 님 넘나 좋으신 분 ㅠㅠㅠ
제가 이번 한 주 너무 바빠 알라딘 마실 잘 못다녀서 오늘 딱 날잡고 다니고 있거든요. 그것은 즉, 소주를 마시고 있단 말입니다. (그게 왜 그 말이야?) 아무튼 제가 지금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ㅋㅋㅋ (좀전까지 안주는 소곱창이었고 지금은 오이지랑 먹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서재 돌아다니고 있는데, 취중의 저에게 이렇게 골드문트 님의 아름다운 댓글이 날아들엇어요.

골드문트 님, 복 받으실 겁니다. 많이 받으실겁니다. 흑흑 ㅠㅠ

독서괭 2022-02-26 20:17   좋아요 6 | URL
이 다정한 댓글들에 오그라든 손가락으로 댓글을 쓰실 인티제 잠자냥님 ㅋㅋㅋㅋ 두분의 댓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2-26 22:03   좋아요 7 | URL
잠자냥님 어제부터 다정해 지기로 마음 먹으셔서 참고 오그라든 손가락 하나,하나 잘 펴서 다정하게 댓글 달아주실꺼에요ㅋㅋㅋ
저도 전적으로 공감이에요^^

잠자냥 2022-02-26 23:21   좋아요 9 | URL
와, 다부장님이랑 골드문트님 오늘 댓글 캡쳐해서 영원히 소장해야겠다!! 다부장님 저 이런 댓글 좋아해요!!!!

그리고 괭님, 책나무님 말씀처럼 저 손꾸락 오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오그라들지 않….았어요! ㅋㅋㅋㅋ 난 다정하기로 했으니까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2-27 0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잠자냥님이 편집자였다니.... 갑자기 존경심이 막막 업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
출판사의 분위기가 그렇단 말이지요. 저는 오히려 좋아하는 책들과 함께하는 생활이라 굉장히 역동적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행운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 잠자냥님의 경험과 소설속 분위기가 이렇게 절묘하게 연결되는 리뷰라니.... 갑자기 타타르인의 사막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입니다. ^^

잠자냥 2022-02-27 11:28   좋아요 0 | URL
ㅎㅎ 에이 존경은요, 밥벌이 수단 중 하나이지요. 출판사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겠지만 제가 처음 다녔던 곳이나 지금 다니는 곳이나 둘 다 아주~~~ 조용하기는 합니다. ㅎㅎㅎ <타타르인의 사막> 그 분위기가 참 좋은 소설입니다.

FLAKSUIT 2022-02-27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다리던 글이 올라왔어요.저도 이책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편집하시는 분들은 글도 이렇게 잘 쓰시는가 봅니다.저도 읽었지만 직장과 빗댄 글이 한참전에 읽은 책을 반추하게 만듭니다.

잠자냥 2022-02-27 11:29   좋아요 1 | URL
와 이 책 읽으셨군요. 이 작품은 노년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이 들 것 같아요! ㅎㅎㅎ

2022-02-27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7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FLAKSUIT 2022-02-27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해 죽어요~%%%%

단발머리 2022-02-28 0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전이지만 이 책 볼 때마다 잠자냥님 생각날 거 같아요. 과메기 2탄인가요? ㅎㅎㅎ
마음이 참 차분해지면서 그러면서 차오르는 감동... 잠자냥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고 또 감사해요.

잠자냥 2022-02-28 09:38   좋아요 2 | URL
하하, 과메기 2탄은 아닙니다만 ㅎㅎㅎ 흐흑 제 글 읽고 이렇게 좋아해주시니 그저 감동이에요!

mini74 2022-02-28 17: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읽다가 수줍게 ㅋㅋ 댓글 남깁니다. 자냥님 책 언제 내시나요. 저 팬하고싶습니다 ㅎㅎ 저는 이 책 읽으며 모래의 여자가 자꾸 생각났어요. 모래에 갇혀 사는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삶이 참 그렇지요 *^^*

잠자냥 2022-02-28 18:19   좋아요 1 | URL
아니 몇 번이나 읽으시다니요! 이런 영광이! ㅎㅎㅎ 아, 맞아요. <모래의 여자>도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삶이 참 무엇인지 말입니다.

leepapggot 2022-03-06 0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년으로 접어든 작년에 이 책을 구입해 놓고 아직 읽지 못했네요. 책상머리에 올려놓고. 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모래의 여자는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 분위기가 뭔지 알겠네요. 얼른 감동을 느껴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22-03-06 10:13   좋아요 1 | URL
네~ 읽어보시면 더 많은 생각과 함께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mini74 2022-03-08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 감동의 리뷰였죠 ㅎㅎ 자냥님 당선 축하드려요 ~

thkang1001 2022-03-08 1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이달의 리뷰에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3-08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당선되셔서 넘 기쁘네요. 잠자냥님 축하드립니다~!!

북깨비 2022-03-08 2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축하드려요! 이 책 간간히 눈에 띄었는데 딱히 끌리지 않아서 별 생각없었다가 최근에 잠자냥님 리뷰읽고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역시 👏

독서괭 2022-03-09 0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잠자냥님 당선작만 묶어도 책 한권 나올 듯한데요 ㅎㅎ

얄라알라 2022-03-10 11:11   좋아요 1 | URL
누군가 독서괭님의 댓글을 눈여겨 보시고 추진해주시면 좋겠네요
잠자냥님 축하드립니다

잠자냥 2022-03-10 20:30   좋아요 1 | URL
모두 감사합니다~!
 
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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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성공이나 권력, 지위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며 또 어떤 이는 건강, 사랑, 애정 같은 가치를 높이 사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최고의 삶으로 여기기도 할 것이다. <면도날>에도 이렇게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다양한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은 최근 읽었던 몸의 또 다른 작품  <케이크와 맥주>와 비슷하다. <케이크와 맥주>처럼 작가가 대단히 속물적인 한 인물을 만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 <면도날>의 화자로, 직업이 작가인 ‘나’는 서머싯 몸 그 자신이다(이 작품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게 서머싯 몸이 작품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나’(그러니까 서머싯 몸 그 자신)는 우연한 기회에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사회적 신분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 없는 인물로, 상류사회는 그에게 인생 전부이며 파티는 숨구멍과도 같다. 사교계의 명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엘리엇에게 사실 일개 작가인 ‘나’는 처음에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의 속물스러움에 때로는 진저리를 치기도 하지만 사람을 잘 챙기고 베풀기 잘 하고 배려심이 깊은 그를 종종 만나며 친분을 쌓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이 엘리엇 템플과 화자인 ‘나’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이윽고 새로운 인물들-래리, 이사벨, 그레이 같은-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미국인인 엘리엇은 사교계의 명성을 좇아 이곳 유럽으로 건너와,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생활을 즐기는데 거기에 그의 조카딸인 이사벨 가족이 함께 하게 된다. 이제 막 스물 청춘인 이사벨과 래리는 약혼한 사이로,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인물들이다. ‘나’ 또한 래리와 이사벨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들을 종종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게 된다. 엘리엇은 조카딸을 사랑하는데 비해 그녀의 약혼자인 래리에게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데, 알고 보니 래리는 번듯한 외모와는 달리 빈둥빈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한량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고향에 돌아와 전쟁 영웅 대접을 받은 뒤 성공가도를 달릴만한 일에 뛰어들고도 남을 텐데 이 청년은 여기저기서 제안하는 좋은 일자리를 다 마다하고 벌써 꽤 오래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래리가 보란 듯이 일자리를 얻어 예전처럼 활기차고 의욕적인 삶으로 뛰어들 것이 분명하리라 기대하던 이사벨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래리와 단 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통해 그가 전쟁터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이후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래리- 그는 정신적인 삶에 몰두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아 나선다.



“난 증권 같은 걸 만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알았어. 그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의학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아니, 그런 건 싫어.”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면도날>, 80쪽)

“그런데 왜 취직을 안 하겠다는 거야?”
“왜냐고 난 돈에 관심이 없어.”
이사벨은 웃었다.
“래리,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난 조금은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만큼은 있다구.”
“빈둥거리는 거?”
“그래.” (<면도날>, 82쪽)



래리가 예전의 모습대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이사벨은 급기야 툭 터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돈에 관심이 없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고 싶다는 래리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위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래리는 하루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가까이 책을 읽고, 소르본 대학에서 하는 강의도 듣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사벨은 도무지 그런 약혼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배워서 뭐하려고 그래?” “현실적으로 별로 쓸모없는 것들 같은데.” 말할 뿐이다. 정신적인 삶에 만족하는 래리를 ‘너는 미국인’이라고 다그치며 이제까지 없던 번영의 시기를 누리는 미국의 발전에 참여하고 이바지하는 삶을 살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래리는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이사벨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데카르트를 읽고 평온함과, 품격, 명석함에 전율하는 사람과 ‘커다란 쇼윈도가 줄줄이 이어진 콘크리트 보도를 걸으면서 모자나 모피코트, 다이아몬드 팔찌, 금장 화장품 케이스 등을 구경할 수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결혼해 삶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그래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다.

서머싯 몸은 이 두 청춘, 이사벨과 래리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보며 그들이,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원하는 바를 얻는지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래리는 그가 찾는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고자 안정적인 직장과 보장된 미래, 사랑하는 약혼녀도 모두 버리고 유럽 곳곳-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등지를 방랑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향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여정은 인도의 아슈라마에까지 이른다. 사실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다가 래리가 인도로 갔다는 부분, 래리가 갠지스강을 바라보면서 정신적으로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는 조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별 다섯에서 갑자기 별 넷으로 하락하는 시점…. 결국 서양인의 방랑의 끝, 방황의 끝은 인도인가, 갠지스강인가 싶어 그놈의 오리엔탈리즘은 입담꾼 서머싯 몸도 어쩔 수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래리는 자신이 바라는 걸 정말 얻었을까?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처음에는 래리의 선택에 사뭇 공감이 갔다. 하루 8~10시간 가까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빈둥빈둥 책을 읽고 배우고 싶은 언어를 마음껏 배우고 여기저기 떠도는(여행하는) 삶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에게는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부유한 환경이 있었다. 그는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현재도 빈둥빈둥 놀면서 지내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온다. 래리처럼 해마다 3천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온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책 읽고 언어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알라딘 서재에는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래리의 정신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방랑에는 얼마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富)가 뒷받침되었기에 조금은 배부른 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그는 어느 순간 그 돈마저도 굴레라고 말하면서 그 굴레를 벗어난다. ‘나’, 즉 서머싯 몸은 그런 래리를 어리석다며 뜯어 말리는데 이런 작가의 어느 정도 속물적인 모습은 참 인간적으로 다가와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돈과 명예, 화려한 삶을 좇는 이사벨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인간 유형은 아니지만 나쁜 여자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사벨뿐만이 아니라 래리를 스쳐지나가는 또 다른 여인들, 수잔이나 소피도 그들의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에 어떤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나름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그려간다. 이 여성인물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밝히고 그것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와 닮았다. 물론 소피가 애초에 선택한 삶은 자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천국 같은 생활을 하다가 그것을 잃게 되니까 보통 사람들이 사는 보통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해서 지옥으로 곤두박질친” 것처럼 “신들이 마시는 넥타를 마실 수 없다면 차라리 밀주를 마셔도 상관없다고 생각”(328쪽)하고 자기를 내던지듯 살아가는 그녀의 선택도 선택이라면 선택이 아닐까. 진짜 천국이 아니면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겠다는, 그 극단적이리만치 성스러움을 고집한 그녀의 모습에서 래리가 ‘결혼을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사는 게 엿 같잖아요.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연히 누려야죠.” (<면도날>, 370쪽)


소피는 이렇게 말했다. 고단한 삶에서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그 ‘무언가’- 그것이 결국 여기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추구했던, 저마다 높이 샀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엘리엇은 사교계의 명성을, 이사벨은 부와 성공을,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장과 사무실을, 수잔은 다정하고 안정적인 삶을, 소피는 지옥이 된 현실을 벗어나기를, 그리고 래리는 정신과 영혼이 충만한 삶을….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그들은 그 ‘무언가’를 찾아 계속 방랑할 것이고, 그러다가 정말 운이 좋은 그 누군가는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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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08 17: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래리랑 저랑도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저도 물질이나 이런거 보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중요시 하거든요. 다만 차이는 래리는 돈이 많고 저는 돈이 없다는거? 😅

잠자냥 2022-02-08 17:32   좋아요 4 | URL
알라딘 서재 분들은 대부분 래리에게 공감할 거예요. 다만 다들 래리처럼 후원자도 없고 돈도 없다능 ㅋㅋㅋㅋ

mini74 2022-02-08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와 ! 넥타를 마실 수 없다면 밀주를 마셔도 상관없는 ㅎㅎ 문장들이 넘 좋아요. 그 무언가를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ㅠ

잠자냥 2022-02-08 17:32   좋아요 4 | URL
진짜 재미나고 탁탁 치는 문장 역시 많습니다~ 역시 몸~~

Falstaff 2022-02-08 1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오, 전 소피가 인상 깊었어요. 내용은 기억하는데 다른 등장인물은 서머싯 몸 말고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이래서 독후감을 써 놓아야 한다니까요. 썼으면 지우지 말고 버텨야 하고요. ㅠㅠ)

잠자냥 2022-02-08 20:36   좋아요 3 | URL
네 소피 인상 깊죠. 저도 몇 년 지나면 소피만 기억날까요? ㅋㅋㅋ 리뷰 강제 삭제당한 골드문트여~

공쟝쟝 2022-02-08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면도날은 뭘까요? 전 이번에 알겠어요. 고독하고 조용한 환경이요… (시골에서 티비소리때문에 지쳐가는 중..) 아 내가 그 상태를 너무 사랑하는 구나…(망했다 망했어!) 자냥님이 물어봐서 저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제일 원하는 건.. 전 돈입니다 돈…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이제 좀 알겠으니까 그를 위해 귀찮은 것들을 제거할 용처로서 돈 돈 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래리에 공감하고 부러워서 짜증난다!!

잠자냥 2022-02-08 21:39   좋아요 2 | URL
ㅋㅋㅋ집에 오래 가 있으니까 당근 고독을 그리워할 거 같았습니다. 래리의 그 삶 저도 증말 부러워요. 하지만 나는 몸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돈을 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인도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능(인도 왠지 씻는 거 불편하대서 여행도 안 가는 나란 사람…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08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면도날은?
돈!!!! 명예!!!!! 권력!!!!!
전부 다 원합니다.^^
또 뭐없나? 찾아봐야겠어요🧐🧐
면도칼의 칼날을 넘어서야죠!!ㅋㅋㅋ
욕망 덩어리!!
그나저나 저도 래리처럼 한 번 살아보고 싶군요ㅋㅋㅋ

잠자냥 2022-02-08 22:24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근데 래리처럼 살아보려면 탄광에서 일도 해봐야 하고 농가에서 막일도 해야 하고 부랑자처럼 떠돌기도 해야 합니다! ㅋㅋㅋ

초란공 2022-02-08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빈둥거리기!!! (원하면 이루어지나요? ㅋㅋ)

잠자냥 2022-02-08 23:48   좋아요 2 | URL
ㅎㅎㅎ 다들 그 꿈이 이뤄지면 좋을 텐데요!

독서괭 2022-02-09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뭔가 뒷받침이 되니까 마음껏 마음의 풍요를 위해 떠돌 수 있는 것이군요.. 영혼의 고향, 그곳은 인도..갠지스..ㅋㅋ 그것 땜에 별 하나 깎으셨단 얘기에 으하하 웃었습니다^^ 전쟁을 겪고 나서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부분에서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무스가 떠올랐는데 삶의 향방은 많이 다르네요.
전 근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으면 진짜 너무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아서.. 적당히 일하고 쉬면서 살면 좋겠어요.

잠자냥 2022-02-09 14:08   좋아요 2 | URL
저도 인도나 갠지스 한 번 다녀오면 이 물욕(책욕심)이 좀 사라질까요? ㅎㅎㅎ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 인생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질 것 같기는 해요.
 
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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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책을 다 읽고 영화도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필 버뱅크’, 그 밉디미운 인간, 그런데 어느 순간 연민이 드는 이 인간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어떻게 연기했을까. 책으로 읽을 때 상상했던 필의 외모에 컴버배치가 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책에서는 분명 필의 외모는 ‘준수’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썩 훌륭했다. 1920년대 중반의 미국 몬태나주 서남부- 드넓은 그곳에서 가장 유력한 목장주인 마흔의 필- 잘 씻지도 않고 이발도 하지 않고 거칠기 짝이 없어 목장 일을 할 때도 장갑을 끼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 그이지만 이런 막일꾼 같은 겉모습으로도 감출 수 없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예일대를 졸업한 똑똑하고 교양 넘치고 다방면으로 재주가 있는 필, 책도 많이 읽고 손재주도 좋아, 음악에도 천재적으로 재능이 있어 못하는 게 없는 이 남자- 그런데 대단한 독설가라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댄다.

그에 비해 그보다 두 살 어린 동생 ‘조지’는 모든 면에서 필과 정반대이다. 퉁퉁한 몸집에 차분하고 수더분한 데다가 머리 회전도 느리다. 달변인 필에 비해 말도 거의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기 일쑤이다. 그래도 그는 꾸준하고 무엇보다 형처럼 남을 비난하거나 면박주거나 타인에게 상처 주는 법을 모른다. 형이 서른여덟인 그를 여전히 뚱땡이라고 놀려대도 뭐라 반항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다. 그 퉁퉁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몸집처럼 상냥한 조지- 이렇게 정반대인 두 형제는 함께 드넓은 목장을 운영하면서 25년 가까이 결혼한 부부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친한 사이였고 자신의 삶으로 상대의 삶을 더없이 보완’(99쪽)해주는 그런 사이이다.

이 작품은 이 두 형제의 관계 설정에서부터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각각 마흔과 서른여덟 중년에 접어든 두 남자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한 침실을 쓴다. 이상하지 않은가? 형제끼리 한 침실을 쓰는 게 뭐가 이상한가, 집이 좁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을 텐데 이들은 앞서 말했듯이 인근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농장주로 아주 부유하다. 땅도 많아 집도 넓어. 그런데 어린 두 형제도 아닌 다 큰 남자 둘이 한 침실을 쓴다니 이거 기묘한데 싶어진다. 게다가 두 형제는 상극처럼 기질도 성격도 서로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지내면서 서로에게 의지한다. 아니, 어쩌면 필이 조지에게 크게 의지했다고 해야 할까.

기묘한 점은 또 있다. 이 거친 남자, 필 버뱅크는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험한 농장 일도 맨손으로 하고,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도 잘 씻지 않고 머리도 되는대로 기른다. 영화에서는 조지가 집안 욕조에서 목욕을 하면서 형에게 욕조에서 목욕한 적이 있냐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필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쓰던 욕실, 그 욕실의 기억이 그에게는 역겹기 짝이 없다. 그는 노마님, 즉 자신의 어머니가 쓰던 물건들이 왠지 께름칙하다. 노마님의 향수와 화장비누, 자수로 새겨 놓은 수건 같은 것들. 욕실에서 나는 여자 냄새는 너무 독했고, 어머니가 빨아서 수건걸이에 널어놓은 하늘거리는 여성 옷가지를 보면 필은 그만 돌아서고 만다. 노마님이 일부러 여성스러운 말투로 말하거나 여성스럽게 길을 걸을 때면 그런 짓은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좀 했으면 하고 생각할 지경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를 찾아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한다. 영화에서는 필과 함께 농장 일을 하는 일꾼들이 호숫가에 들어가 다들 전라로 수영하는데 필은 그들과 절대 섞이지 않고 홀로 자기만의 비밀 장소를 찾아가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듯이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필은 너무나 우아한 귀족이라서, 다른 막일꾼들과 섞일 수 없는 것일까? 20년 전 사고로 죽은 전설의 카우보이 ‘브롱코 헨리’를 우상처럼 떠받들고 카우보이만이 이상적인 남성이라고 믿는 필은 너무나 마초라서 여성적인 물건이나 여성성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혐오스러운 것일까? 그래서 어머니의 여성스러운 물건마저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필은 상냥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조지도 못마땅할 때가 있다. 나약한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고, 심약하고 허영이 많은 것도 그에게는 경멸해 마땅한 여성적인 특징이다.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도, 알코올에 의존하는 것도 나약한 것이다. 그래서 필은 절대 취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징징대는 인간은 혼쭐을 내줘야 한다. 약한 꼴을 보이다니 얼마나 끔찍한가! 그래서 그는 술집에서 만난 ‘조니 고든’을 조롱하고 급기야 두들겨 패기까지 한다. 술에 취한 그가 얕은 지식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 조니 고든은 얼마나 심약한 사람인지, 이 일로 큰 충격에 빠져 폐인처럼 지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이 마초, 필이 무심코 저지른 행동은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하필이면 죽은 조니 고든의 아내 ‘로즈’가 자신의 동생 조지와 엮여 버뱅크 목장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로즈 한 명으로도 부족해 그의 아들, 암사내 같은 아들, 낸시 같은 아들 ‘피터’까지 나타난 게 아닌가! 필은 분노한다. ‘그 여자! 아무래도 그 여자가 세상을 끝장내려는 모양이다. 필이 알던 세상을’-

<파워 오브 도그>는 몬태나주 거친 서부에서 농장주로 살아가는 필과 조지 두 형제 사이에 느닷없이 끼어든 로즈와 그녀의 아들 피터, 네 사람 사이의 팽팽한 갈등과 기묘한 심리 대결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모든 갈등과 심리전의 밑바탕에는 이 독특한 인물 ‘필 버뱅크’의 비밀이 자리한다. 영리한 독자라면(아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필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 아닌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말끝마다 브롱코 헨리를 들먹이면서 카우보이야말로 이상적인 남성이라고 치켜세우는 그. 여성성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혐오하는 그. 암사내라고, 낸시라고 피터를 조롱하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그 가녀리고 섬세한 피터의 몸을 훑어대는 그- 뚱땡이라고 놀려댈지언정 25년 가까이 자신과 한 침실을 쓰던 동생을 빼앗아간 그 여자 로즈를 증오하는 그- 로즈를 만나고 오느라 외박한 조지를 밤새 잠 못 이루며 기다리던 필의 모습은 얼마나 처량하고 궁상맞으면서도 가여운가!

단지 로즈 그 한 여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로즈들은 그로부터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가는 존재는 아닐까. 자신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그 무엇을 너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닐까. 그래서 밉고 또 미운 게 아닐까. 로즈, 그리고 그 모든 로즈들이…. 혼자 있을 때면, 사람들의 지켜보는 눈이 없을 때면 세상 그 누구보다 섬세한 사람이 되는 필 버뱅크- 그러나 그는 이 거친 서부에서 농장주로 살아가려면 외로워져야만 한다. 철저히 외로워지고 혼자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기에. 평생 누구한테 사랑받은 적도 없을 것 같고,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을 것 같은 그- 사실은 술이 두려워서, 술에 취해 무심코 털어놓을지 모를 그 비밀이 두려워서 술을 증오하는 그. 추방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으므로 세상을 혐오한 그- 그래서 자신처럼 달려가는 개의 형상을 알아차린 ‘그’와 또 다른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로 인해 기꺼이 세상을 등지게 되는 필 버뱅크-그 가련한 남자의 쓸쓸한 미소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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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27 11: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뭐죠. 또 완전 읽고 싶네요. 이것도 사야겠어요.
리뷰 읽다보니 잠자냥 님이 필의 약점이 뭔지 알 수 있을것 같네요.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기에..

잠자냥 2022-01-27 12:08   좋아요 5 | URL
네, 이건 애초에 알고 읽어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책 띠지에도 그 약점이 그냥 드러나 있습니다. ㅎㅎ
애니 프루가 이 작품 오마주해서 <브로크백 마운틴> 썼다고도 하네요.

넷플릭스에 영화도 있는데 책 보고 나서 비교하면서 봐도 재미나더라고요- 영화에서는 원작과 달리 생략되거나 덧붙여진 게 있는데 제인 캠피온 감독이 덧붙인 거 중에 잘했다 싶은 것도 있고, 이건 빼지 말지 싶은 것도 있고 그랬어요~

미미 2022-01-27 12: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줄부터 빨려들어가듯 읽었어요! 대출 중이라 예약 걸었고요(사지 않는다고 굳이 알림ㅋㅋㅋㅋ) 말 상이긴해도 컴버배치 잘생겼다고 생각해요😳

잠자냥 2022-01-27 12:07   좋아요 3 | URL
말상 ㅋㅋㅋㅋㅋㅋㅋㅋ 컴버배치 오이씨라고도 부르더라고요. 영화에서도 밉상 연기도 징글징글하게 잘 합디다-

레삭매냐 2022-01-27 13: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단 넷플릭스는 수배해
두었는데, 어찌해야 하나
모르겠네요.

어쩌면 책보다 먼저 영화
로 쓱싹할 수도요...

아 다이렉터가 제인 캠피언
이었군요 명절 기간 동안
도전 ! 아 오이씨 ㅋㅋㅋ

책은 낭중에 중고루다가.

잠자냥 2022-01-27 14:06   좋아요 3 | URL
오이씨의 영화를 보고 책을 나중에 보면 또 다른 맛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ㅋㅋㅋ

독서괭 2022-01-27 14: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오별 오브 자냥!! 리뷰 보니까 책 넘 재밌을 것 같아요. 동생을 빼앗긴 필과 로즈들 사이의 긴장감 흥미진진 하겠네요.

잠자냥 2022-01-27 16:56   좋아요 4 | URL
제가 사실 요즘 자냥오별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긴하지만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

책읽는나무 2022-01-27 14: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왜 자꾸 예전 유부만두님 페이퍼에서 미니님 댓글이 생각나죠?
˝개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만두님은 또 진지하게..개도 나온다고!!
ㅋㅋㅋㅋ
영화도 재밌겠네요?^^

잠자냥 2022-01-27 16:56   좋아요 4 | URL
맞아요. 개도 나와요. ㅋㅋㅋㅋㅋ 영화도 흥미롭게 봤어요. 그 잘생김을 연기하는 못생긴 오이씨...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01-27 1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읽고있어요 자냥님 ㅎㅎ 그래서 살짝만 봤어요. 오이상 말상 ㅎㅎㅎ 컴버배치 나오는 영화도 봐야겠군요.

잠자냥 2022-01-27 18:38   좋아요 3 | URL
잘하셨습니다!

coolcat329 2022-01-27 1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영화 먼저 볼까요? 책을 언제 읽을까도 싶고 ㅠ
진짜 이러다 결국 책을 사게 되더라구요.

잠자냥 2022-01-27 23:21   좋아요 4 | URL
음…. 제 생각엔 책부터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아무래도 생략된 부분이 많더라고요.

coolcat329 2022-01-28 14:29   좋아요 3 | URL
역시 그렇죠? 😅

구단씨 2022-01-27 19: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을 못 보고 영화로 접했는데요
저는 단순히 필의 마음이 질투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언급되는 브롱코를 보면서 다른 뭔가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누구보다 독하고 강할 것 같은 그 남자가 정말 외로웠을 것 같아요.

잠자냥 2022-01-27 23:23   좋아요 3 | URL
네~ 영화만 보면 좀 그런 생각도 들 거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좀 더 친절하게 필을 드러나게 하는 장치를 삽입한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28 0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완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제목이 뭔가 맘에 안들어서 어쩔까 했는데 딱 보고싶어지네요. ^^

잠자냥 2022-01-28 15:28   좋아요 2 | URL
책 제목은 참 그렇죠? ㅋㅋㅋ 저도 제목만 보고는... 음..... 이랬었더랍니다.

프레이야 2022-01-29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은 아직이고 영화를 봤는데 일단 원작은 따로 두고 본다면 피터가 그다음엔 조지를 어떻게 할 것 같았어요. 그럼 농장과 재산이 사랑하는 엄마 로즈에게로 ㅎㅎ 너무 나갔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서는 피터 얼굴이 섬뜩. 그 배우 분위기가 묘하더군요

잠자냥 2022-01-30 10:03   좋아요 3 | URL
ㅎㅎ 영화만 본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요. 저는 원작까지 봐서 그런지 피터가 그렇게까지 나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피터는 농장이나 재산에는 관심이 없고, 엄마의 행복을 바란 것인데 조지는 엄마를 구원해준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엄마가 또다시 과부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케이 2022-02-05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좋다고 하여 소설도 궁금했는데, 재밌을 것 같아요. 필이 사랑에 빠진다기에 당연히 동생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자신의 정체성이 너무 혐오스러워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한다는 점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쓰리 빌보드의 딕슨 경관과 필이 조금 비슷하네요. 딕슨은 그래도 세상과 화해하는데 필은 어떨지 궁금해 집니다.
벌써 2월입니다. 겨울 끝자락이지만 부디 긴장 늦추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p.s 그런데 완벽한 영국 억양을 쓰는 베네딕트가 연기한 필이라니. 의외의 캐스팅이예요.

잠자냥 2022-02-05 15:01   좋아요 2 | URL
영화도 소설도 좋았습니다. 저도 영화 예고편만 봤을 때는 필이 동생 부인하고 사랑에 빠지는 줄 알았지 뭐예요. ㅎㅎ 쓰리 빌보드는 보지 못했는데 궁금해지네요. 베네딕트 연기는 꽤 괜찮았습니다.

입춘이 어제 지났는데 오늘 엄청 춥네요. 케이 님도 쌍둥이들도 감기 조심~

케이 2022-02-05 23:08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제 서재의 [레베카] 백자평 좋다고 해주셨는데, 제가 책 이미지를 [나의 사촌 레이첼]로 잘못 집어 넣어서 그 글은 삭제하고 다시 백자평 올렸어요. ㅋ 혹시 오해가 있으실까봐..댓글 답니다.

잠자냥 2022-02-06 21:02   좋아요 1 | URL
네~ 헷갈리신 것 같았습니다! ㅎㅎㅎ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마리즈 콩데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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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낯선 장소와 사건, 잘 알지 못했던 장소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을 읽으며 나는 스마트폰으로 ‘과들루프’를 검색해 그 나라의 위치와 역사 등을 짧게나마 살펴보고 책 속으로 돌아갔다. 과들루프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 영토이다. 지도를 넓게 펼쳐서 대서양, 카리브해 연안의 과들루프에 이어 아프리카의 말리를 건너 프랑스까지 한눈에 살펴보니 얼핏 삼각형을 이룬다. 말리 또한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곳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은 쌍둥이 남매 ‘이반’과 ‘이바나’가 태어나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간 여정이기도 하다.

이반과 이바나, 두 남매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이다. 엄마인 시몬의 자궁 속에서 열 달 동안 꼭 붙어 지내다가 울음소리와 함께 각자의 삶으로 던져지지만, 아직은 그 세상이 낯설기만 해 여전히 서로를 껴안고 잠든다. 아버지는 없다. 시몬도 이반과 이바나가 태어남으로써 그녀 주변의 많은 여자들처럼 미혼모가 된 것이다. ‘왜 어떤 땅은 유독 다른 땅보다 미혼모들로 넘쳐날까? 그곳 여자들이 더 예쁘고 더 유혹적이어서? 그곳 남자들의 피가 더 뜨거워서? 그 반대다. 오히려 극심한 곤궁에 처한 곳이어서다. 성행위만이 유일한 기쁨인 곳. 그곳에서는 성행위를 통해 남자들은 위업을 달성한 듯한 느낌을 받고, 여자들은 사랑받는다는 환상을 얻는다.’(56쪽)

시몬은 남매에게 이반과 이바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반, 온 러시아를 다스린 차르의 이름이며 이바나는 그 이름의 여성형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세상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남매의 어린 시절은 나름 행복하다.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과 카리브해 지역의 찬란한 햇살, 눈부신 바다 등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들이 자라남에 따라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미혼모의 자식인 데다가 피부색이 검다. 게다가 이 과들루프는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이제는 해외 주(州)가 되었지만 본토에 비해 극심하게 소외되고 궁핍한 땅이다.

이곳에서 힘 있는 자들은 모두가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고, 이반과 이바나처럼 피부색이 짙은 이들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두 아이는 자신들의 피부가 검고 곱슬머리라는 것을, 어머니가 형편없는 보수를 받으며 밭에서 지치도록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단번에 깨닫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남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들은 저마다 결심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이좋은 쌍둥이라도 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는 것과 다짐은 꽤 다르다. 이바나가 사회에 순응해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좀 더 낫게 꾸려가고자 애쓴다면 이반은 자신을 가난뱅이에 검은 피부로 태어나게 한 운명을 저주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반항한다. 물론 거기에는 이반을 향한 뜻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이 크게 영향을 준다.


거짓과 신화, 가식은 무너졌다. 그는 부당하고 독단적인 제국주의적 지배력 아래 보낸 세월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폐해들이 초래됐다는 걸 깨달았다. (67쪽)

이 나라를 떠나야 해. 여긴 독창적인 것이라곤 창조된 적이 없고, 좋은 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는 유럽의 한 속국일 뿐이야. 유럽으로 가서 거기서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쳐야 해. 이반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유럽으로 가기를 바랐지만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더 나은 삶, 그가 과들루프와 말리에서 경험한 것보다 나은 삶의 조건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123쪽)


이반과 이바나는 더 나은 삶을 찾아 과들루프를 떠나 아프리카의 말리,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역경을 거쳐 본토인 프랑스에 도착한다. 이 두 남매는 정말로 가난을 벗어나고 자기들이 각자 결심했던 것처럼 엄마를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의 제목에서 그럴 수 없음을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다. ‘슬픈 운명’이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반과 이바나 남매의 남다른 애정은 삶의 매고비마다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애정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바나가 이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할수록 이반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계속 휘말리고, 그럼으로써 이 둘의 운명은 엄마의 자궁 속에 있었을 때와는 전혀 상반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두 아이는 서로 너무 좋아해서 해치지 못해요.” 그녀는 사랑이 반反-사랑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위대한 아일랜드 작가가 이렇게 노래했다는 걸,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죽이지.”(57쪽)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반과 이바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쌍둥이로 태어난 사이좋은 남매라지만 근친상간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뭇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반과 이바나 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인물들이 그런 관계로 등장하기도 해서 작가 마리즈 콩데는 이런 독특한 관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계속 질문하게 된다, 마리즈 콩데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발생 전후로 일어난 산발적인 테러 사건 중 한 사건에 특히 주목했다. ‘아메디 쿨리발리’라는 말리 출신 테러리스트가 갓 임용된 마르티니크 출신의 스물여섯 살 여성 경찰관 ‘클라리사 장필립’을 파리 근교 몽루주에서 총으로 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극단주의 테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테러리스트에게 희생당한 검은 피부의 여성 경찰관-한 사람은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말리 출신이고 나머지 한 사람도 여전히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의 하나인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그리고 그 사고를 접한 마리즈 콩데 그 자신도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이 테러 사건에 얽힌 인물을 중심으로 상상을 더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똑같이 검은 피부를 지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로, 한 사람은 그런 테러리스트에 맞서는 경찰관으로 대치하다 프랑스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같은 아프리카 땅에 뿌리를 두고 있을 그들이 그렇게 대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반과 이바나처럼 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서로 다정히 지내다 한날 한시에 태어났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나 삶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반이 깨뜨려버리고 싶던 그 사회에 나날이 더 순종적으로 변해간 이바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상을 향한 분노만을 품은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모해간 이반의 삶이 잘못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부조리한 삶을 잉태하게 한 세계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판단은 이 책을 읽는 이들 저마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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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1-21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누워서 폰으로 읽다가 제대로 읽으려고 맥북 켰다. 페이퍼만으로도 압도되는 어떤 지점이 있네요. 굉장히 강렬한 소설일 것 같고. 소설의 세계는 참 멋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에 접속하는 거 좀 두렵지만 언젠가는 꼭 ___++

잠자냥 2022-01-22 13:06   좋아요 1 | URL
누워서 맥북으로 읽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1-22 13:48   좋아요 1 | URL
맥북을 눕히는 게 더 일이여 ㅋㅋㅋ
 
모리츠 단편집 지만지 고전선집
모리츠 지그몬드 지음, 유진일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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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화려한 것도, 이야기가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것도, 또 그렇다고 상상력이 놀라울 정도라거나 상징이 오묘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무릎을 칠 만큼 기막힌 것도 아닌, 그저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이 있다. 담백하게 써내려갔는데 그것이 그대로 삶인 그런 글, 내게는 체호프의 단편들이 그렇다. 그런데 여기 읽고 있노라니 문득 체호프의 단편들을 읽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모리츠 지그몬드. 모리츠는 1879년에 헝가리 동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려 아홉 형제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가난에 찌든 생활을 했고, 이렇게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했던 삶은 그의 생애에 걸쳐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특히 그는 민요를 수집하고자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이런 경험을 바탕 삼아 헝가리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자연주의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모리츠 단편집》에도 그러한 경향의 작품들이 10편 실려 있다. 초기작부터 중기,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실려 있어 작가로서 변화의 과정을 엿볼 수도 있다. 처음 읽는 작가의 경우 첫인상이 중요하다. <유디트와 에스테르>가 내게는 모리츠를 첫인상을 결정짓는 작품이었는데 한 두 페이지 읽었는데도, 어쩐지 이 작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유디트’와 ‘에스테르’ 두 가정주부로, 두 사람은 친척관계이다. 화자는 유디트의 어린 아들로 이 소년의 눈으로 두 여인의 심리가 절묘하게 그려진다. 상류층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소년의 집안은 몰락을 겪어 이제는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생활을 하고 있다. 살던 곳을 떠나야만 했을 때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그래도 친척이 살고 있는 고장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이곳, 그러니까 ‘빈체’ 아저씨가 살고 있는 마을로 숨어든다. 그러나 이 선택은 소년은 물론 소년의 어머니인 유디트에게 큰 상처를 준다. 남부럽지 않게 살던 소년의 가족을 늘 시기하던 빈체 아저씨와 그의 아내 에스테르는 이제 몰락해 찾아온 그들을 종처럼 대한다. 특히 에스테르는 유디트를 더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마부 출신인데 비해 유디트는 집안사람들이 대부분 남작, 백작인 그야말로 진짜 귀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이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다. 자존심이 센 유디트는 유디트대로 아무리 궁핍해도 에스테르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어린 아들을 위해 비굴하게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우유 때문이다.

소년은 우유를 무척 좋아하는데, 가난한 이 집에는 우유를 얻을 젖소가 한 마리도 없다. 돈이 생길 때만 겨우 우유를 구할 수 있는데 그런 일도 극히 드물다. 그에 비해  에스테르의 집에는 젖소가 얼마나 많은가! 소년은 가난하면서도 예쁘고 자존심 센 엄마가 원망스럽다. 자존심을 버리고 동네 여인들과 말이라도 섞으면 우유를 얻기 쉬울 텐데,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소년은 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어느 날, 빈체 아저씨네 집, 그러니까 에스테르에게 우유를 얻으러 가겠다고 말하고, 엄마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년은 빈체 아저씨네 집에 갔다가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보고는 빈손으로 돌아온다. 우유를 얻지 못했다고 힘없이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유디트. 그런데 뜻밖에도 며칠 후 에스테르가 유디트의 집에 우유를 들고 찾아온다. 에스테르는 왜 제 발로 우유를 들고 찾아왔을까? 소년이 제 엄마에게 자신이 본 일을 고자질 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에스테르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는 별것 아닌 듯한 사건을 다룬 이 소박한 작품의 끝부분을 읽다가 유디트의 어떤 행동 때문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냈는데, 이윽고 그녀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또 그 이후의 또 다른 행동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가난하고 몰락했어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또 그 자존심을 꺾어야 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고..... <유디트와 에스테르>는 이렇게 가난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는 두 사람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양 구유> 또한 가난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한 농부가 늙은 아내와 다 성장한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들들은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데 집안은 가난을 면치 못한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최소한 한 끼는 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 가난한 집구석에도 아버지가 뭔가를 남겼는지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유산을 나눌 시간이 다가온다. 죽은 아버지에게 숨겨둔 땅이라도 있는가 싶어 궁금증이 커질 즈음, 그 유산이라는 게 다 낡아빠진 배낭과 부츠 등등 낡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잡동사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헛웃음이 절로난다. 그러나 아들들을 비롯해 노파는 유산을 나누는 데 사뭇 진지하다. 누가 더 좋은 걸 갖고 갈까 싶어 전전긍긍이다. 형제 사이도, 어머니와 자식 사이도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잡동사니 유산 분배 앞에서는 자칫 잘못하다가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다. 태어나서 뭔가를 나눈다는 생소한 경험을 하면서 그들은 ‘소유’라는 개념 앞에서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 허름한 이 집 잡동사니 사이에서 자랐지만 물건을 선택하거나 어떤 것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들 주변의 가족 공동체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가구와 옷 그리고 심지어는 멍에에 박을 녹슨 못 하나까지도 각자의 것으로 바뀌어버렸고, 지금까지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개인 소유라는 것이 극도로 끔찍한 고통과 저주를 동반한 채 그들 사이에 등장했으며 그들이 계속해서 뒤지고 있던 못쓰게 된 자질구레한 소지품 때문에 서로에게 칼을 들이댈 수도 있었다.(<양구유>, 《모리츠 단편집》, 43쪽)


노파는 한술 더 떠 아들들이 제발 각자 떠나주길 바라고 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식들 중 누군가가 그녀와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계속되는 가난을 혐오했고 어떻게든 이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기만을 치를 떨며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머슴살이 하는 아들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편히 살기를 바라는 게 마땅한 일 아닌가 싶을 텐데, 사실 이 집안은 이제 주인집으로부터 쫓겨나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상태이다. 다행히 노파는 목사의 부인으로부터 목사관에 들어와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남은 평생을 살라고 제안을 받은 상태이다. 그 집안은 얼마나 먹을 것이 넘쳐나는가! 노파는 아들들을 당장 떼어버리고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모님의 부엌으로 가기만을 고대’(38쪽)한다. 노파의 이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작품에는 그동안 너무나 빈곤하게 살아서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득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탐욕을 부리는 인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는데, 이 노파와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얼마나 가난한 삶이 고되기에 저렇게까지 할까 싶어서 한 편으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척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린 작품은 그밖에도 여럿 있다. 버림받은 고아가 세상으로부터 냉대받는 현실을 담담히 묘사한 <아르바츠커>, 이웃에 동냥하며 떠돌이 삶을 사는 한 거짓말쟁이 소년의 이야기인 <거짓말쟁이>, 마찬가지로 부모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끝내 궁핍으로 말미암아 몸을 팔아야 할 상황까지 내몰리는 소녀의 이야기 <치베> 등등 이 책 속 주인공들은 거의가 가난한 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그들의 삶이 척박하고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소녀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차게 주장하기도 하며(‘치베’), 비록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꼬마이지만 그 거짓말은 늘 남을 웃기거나  상대를 위하려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거짓말쟁이’). 이렇게 순수함과 선함을 잃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 비해 가진 자들의 행태는 ‘선함’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도리어 무엇을 위한 선함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픈 아이를 미신만 믿고 방치한다고 나무라는 귀족 부인의 모습(‘돼지치기의 가장 더러운 셔츠’)이나, 딸의 가난한 학급 친구에게 매일 밥을 먹여주는 대신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일을 도와야한다는 조건을 달고, 장작을 패러 온 그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박사의 모습(‘이해할 수 없는 일’) 등을 통해 작가는 제 아무리 선한 의도로 가진 자가 없는 사람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아주 잘했다. 그럼 아빠 성함은 어떻게 되니?”
“아빠요.”
펀니커가 대답했다.
“넌 그렇게 부르겠지. 하지만 남들은 어떻게 부르니?”
“당신이요.”
펀니거카 말했다.
“아빠의 성함을 모르니? 버르거 야노시라든가? 아니면 코바치 미하이? 뭔가 다른 이름이 있을 게다. 자! 그 다른 이름이 뭐지?”
“모르겠어요.”
“에이, 네 아빠는 아직 그것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나 보구나....”
“사람들이 널 뭐라고 부르지?”
자기의 딸을 바라보았다.
“벌리커요.”
벌리커가 대답했다.
“그래그래, 그럼 사람들이 날 뭐라고 부르지?”
“아빠라고요.”
“아이, 바보! 멍텅구리!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부르냐고?” (<이해할 수 없는 일>, 《모리츠 단편집》, 91쪽)


밥을 먹으러 온 딸의 친구에게 박사는 그 아이 아버지의 성함을 묻는데, 천진한 소녀의 대답은 ‘아빠’이다. 이 장면에서는 크게 웃음이 나온다. 이 책에 실린 10편 모두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처참한 삶을 그리고 있어 전체 분위기는 어둡지만 그런 중에도 위의 장면처럼 큭큭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이 가진 자나 귀족 앞에서 마냥 비굴하게 굴지 않고 자기 할 말은 확실히 하는 장면들이 많아 그 모습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비록 방법이 조금 어긋나 그 선의의 빛이 바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속의 가진 자들 또한 저마다 나름대로 선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 이 단편집에서는 진정한 악인은 만나 볼 수 없다. 그런 점 또한 《모리츠 단편집》의 매력이 아닐까. 결국 작가는 인간의 선함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구나 싶어 책을 내려놓을 때쯤이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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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9 10: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잠자냥님이 헝가리 체호프라고 알려주셔서 이 책은 새책으로 바로 구매했습니다~! 오늘 도착한다고 하던데 완전완전 기대됩니다. 별이 다섯개라니~! (리뷰는 실눈 뜨고 읽었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2-01-19 10:45   좋아요 4 | URL
책 읽기 전 실눈 뜨고 리뷰 읽는 거 공감입니다. ㅋㅋㅋ 저도 그렇거든요.
새파랑님이 읽으실 때도 체호프스러움이 느껴지길 바라겠습니다!

다락방 2022-01-19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읽기 전이라도 실눈 뜨고 읽지 않고 크게 눈 뜨고 읽습니다. 그러다 스포를 만나면 그도 다 어쩔 수 없는 일.
저도 이 책 사겠습니다. (읽겠습니다를 못쓰는 이 마음..)

잠자냥 2022-01-19 12:28   좋아요 2 | URL
와, 역시 담대한 다부장~ 전 제가 읽으려고 마음 먹은 책 (특히 문학은) 줄거리 부분은 거의 넘어가는 편이에요.

다락방 2022-01-19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이지수는 얼마 안되는데 책값은 왜이래요? ㅜㅜ

잠자냥 2022-01-19 12:27   좋아요 3 | URL
ㅋㅋㅋ 지만지 책 가격 정말 사악하죠. ㅎㅎㅎ ㅠㅠ

잠자냥 2022-01-19 12:32   좋아요 3 | URL
지만지책은 적립금이 아닌 내 돈 다주고 사려면 교보에서 사세요. 그나마 교보가 10%로 할인 가장 많이 함... 예스24는 할인 0% 알라딘은 5%입니다.

아니면 전자책을 노리는 방법도 있는데, 이 책은 찾아보니 교보에서 전자책 출간되어서.... 최종 10,660원에 살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2-01-19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헝가리 체호프!
가난한 삶 속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
왠지 알것 같음요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사물의 안타까움성> 생각나요

잠자냥 2022-01-19 21:59   좋아요 2 | URL
오호, 저는 그 책은 못 읽었는데 궁금해지네요.

mini74 2022-02-10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냥님 ~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리옵니다 ~~

그레이스 2022-02-10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저도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2-10 1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적립금 잔고는 마르지 않는군요~!! 축하드립니다 ^^

독서괭 2022-02-10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체호프를 안 읽어서 댓글을 못 달았던 이 리뷰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