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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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제임스 설터

 

톰 행크스의 말처럼 <스토너>는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연대기다. 그렇지만 분명 매혹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엔 나를 매혹시키는 세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 : 이런 멘토를 만났더라면.

 

스토너는 집안의 농사일을 위해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2학년 1학기 때 누구나 듣는 교양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가 결국엔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을 줄이야! 스토너는 아처 슬론 교수의 지도에 따라 책을 읽고 또 읽지만 항상 낙제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다.

 

원래 목표로 하던 농과 수업은 뒤로 하고 점점 더 스토너는 영문과 수업을 늘려가더니 아예 전공 자체를 영문학으로 바꿔버린다. 그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아처 슬론이 그를 교수실로 부른다.

 

모르겠나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스토너는 아처 슬론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묻는다. 슬론은 대답한다.

 

사랑일세.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슬론은 스토너도 미처 깨닫지 못한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을 간파한다.

미래에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젊은이 앞에 진로를 정해주는 멘토가 나타나는 것만큼

근사한 일이 있을까. ‘넌 이걸 하기 위해 태어났어.’라고 말해주는 멘토가 있었더라면

나의 삶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스토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강단에 서 학생들에게 40년 간 영문학을 가르친다.

 

두 번째 장면 : 이런 사랑을 했더라면

 

스토너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이디스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지만 신혼 첫날부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젊은 강사인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 역시 스토너를 사랑한다. 바야흐로 불륜으로 접어든다.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욕망과 공부를 달리 표현하면 사랑과 책이다.

스토너는 책꽂이를 들일 정도로 많은 책을 캐서린의 집에 갖다 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쓴다.

 

스토너는 의자에 널브러지거나 침대에 누운 자세로 역시 그녀처럼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가끔 두 사람은 시선을 들어 서로를 향해 빙긋 웃은 뒤 다시 읽던 자료로 눈을 돌렸다. 때로 스토너가 책을 읽다가 눈을 들어 항상 머리카락이 덩굴손처럼 덮고 있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과 우아한 곡선을 그린 등을 지긋이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느긋한 욕망이 천천히 차분하게 솟아나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어깨에 가볍게 팔을 올렸다. 그러면 그녀는 등을 똑바로 펴면서 고개를 젖혀 그의 가슴에 기댔다. 그의 양손이 헐렁한 로브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난 뒤 두 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누워 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책을 읽다 서로를 바라보다 사랑을 나누다 도로 책을 읽다......

이 장면에서 정신이 약간 혼미해졌던 것 같다. 너무 너무 너무 매혹적이다.

이건 정말이지....... 천국이다. 에로틱하기보단 그저 따스하다.

저 따스함을 표현하기에 나의 언어는 절대적으로 초라하다.

 

세 번째 장면 :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스토너는 대학을 은퇴하여 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신 그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감동적인 죽음이다. 운명의 순간, ‘그의 작은 일부가 앞으로도 있을 책장을 펼치며 그는 짜릿함을 느낀다. 책 쓴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필립 로스가 떠올랐다. 대학 사회가 배경이라는 점, 학생과의 불화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불륜 혹은 섹스라는 소재 등이 로스의 소설과 비슷했다. 특히 주커먼 시리즈 중에서도 <휴먼 스테인>. 콜먼은 출석부를 부르던 중 출석치 않은 두 흑인 학생을 ‘spooks’라 불렀는데, 이 단어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해를 산다. 콜먼은 결국 학교와 타협하지 않다 교수직을 사직한다.

스토너는 스토아적인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 성격이라기보단 관조하고 인내한다. 그러나. 스토너 역시 콜먼처럼 자신의 신념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곤경에 처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학과장이 될 로맥스가 추천하는 찰스 워커의 박사 과정을 실력미달이라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 일로 그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로맥스로부터 불이익을 당한다.

 

스토너에게도 매스터스와 고든 리치라는 대학 친구가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매스터스와 리치는 군대에 자원하지만 스토너는 대학에 남기로 결정한다. 고든 리치는 돌아와 그와 마지막까지 학교를 지키지만 매스터스는 입대한 지 1년 만에 사망한다.

 

주요 인물인 듯 보이는 캐릭터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여성 캐릭터 때문에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가 떠올랐다. <저지대>가우리도 이상한 캐릭터지만 <스토너>의 이디스만큼 괴상망측한 여성 캐릭터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가우리를 이상하다고 해서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혔는데, 숙녀님들, 그래도 가우리는 좀 이상하지 않나요? ) 줌파 라히리는 제임스 설터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빚을 졌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여성 화자로 다시 쓴다면 <저지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의 바스락거림, 취기가 도는 문장은 다분히 제임스 설터를 연상시킨다. 설터나 존 윌리엄스의 문장을 읽을 때면 햇빛 찬란한 바닷가, 황금빛 모래알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듯한 느낌? 혹은 어디선가 짙은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설터의 소설이나 <스토너>를 읽고 우는 것은 슬퍼서라기보단 아름다워서다.

이런 아름다움이 결국엔 소멸할 운명이라는 자각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극복할 수 없음에

눈물 흘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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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 2016-03-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고 있는데 너무 사실적인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들어내는것 같아 왠지 불편한중에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스토너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볼까 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3 12:22   좋아요 0 | URL
저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읽으며 멘붕이었어요 ^^;

징가 2016-03-0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긴 한데 좀 기분더럽다는느낌이라 할까요? 저도 전형적인 꼰대가 되어가는건 아닌가 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벗어난 생각에 이리도 불편해하니

시이소오 2016-03-03 12:35   좋아요 0 | URL
잔혹동화죠. 잔혹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감히 현실보다 잔혹하다고 말할 순 없으니^^;;
그런 현실을 외면하는 게 더 잔혹한 일인지도 모르죠. ^^;;

2016-03-0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히 <저지대>를 읽었는데 가우리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스토너>의 이디스는 결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은 여자라는 기억이 생생한데요...

시이소오 2016-03-03 12:39   좋아요 0 | URL
수바시와 우다얀의 여자 가우리요. 여자 주인공. 기억 나실텐데...^^
우다얀이 죽자 다시 수바시와 결혼해 영국으로 가서 딸 벨라를 버리고
철학 교수가 되잖아요.
그럴 수 있다 싶은데도 눈곱만큼의 모성이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불가였어요. ^^

2016-03-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이소오님 설명을 들으니까 떠올랐어요. 저는 훗날 가우리의 선택보다도 남편의 형과 재혼하게 되는 상황이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어요. 시어머니에게도 소박 맞았던 것 같은데 동정도 가고...^^

시이소오 2016-03-03 12:58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화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소설 같습니다.
객관적 화자였다면 가우리는 남편이 죽자 남편 형(시아주버니)을 꼬셔 다시 결혼해 인도를 탈출,
영국으로 가자 딸과 남편을 버리고 도망친 나쁜 년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가우리를 사랑한 수바시는 `공사`당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




2016-03-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바시가 침착하고 온정적인 화자였던 것 같기는 해요. ^^

시이소오 2016-03-03 15:17   좋아요 0 | URL
수바시나 스토너나 둘 다 스토아적인 캐릭터네요 ^^

2016-03-0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말에 공감이 가요. 스토아적인 캐릭터. 그 분류군에 들어갈 만한 캐릭터예요 정말. ^^

가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보바리즘적 캐릭터 같고.

시이소오 2016-03-03 15:29   좋아요 0 | URL
가우리는 자칫하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캐릭터죠. 조심하셔야 ㅋ

2016-03-03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입장이지만, 조심은 하겠습니다. ^^

2016-03-03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03 18:06   좋아요 1 | URL
자신이 살기위해 사랑했던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딸을
버려야 했던 선택이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수바시와 딸 벨라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자신의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친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녀의 삶이 단순히 페미니즘적 저항`이라 생각진 않아요. 가우리를 이야기하다보면 그런 논쟁들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는거였죠. ^^;

펠릭스 2016-03-0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내용을 잘 구분하여 써 주셨네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다보면 지금의 한국의 교수사회의 분위기와도 비슷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그 조직내의 문화가 있는데도요.
그것은 그 조직의 임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5 09:4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스토너를 읽으면서 대학교수도 꽤 매력적인 직업처럼 보였어요. 좋아하는 문학을 가르친다는 게 부럽더라구요^^

singri 2016-03-0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라히리 ㅡ 제임스셜터 읽는중인데 꼬리로 스토너가 연결됐네요 .언제 이런 긴글에 다 읽었다는 꼬리만이라도 올릴수 있길 바래봅니다ㅋㅋㅋ

시이소오 2016-03-05 09:51   좋아요 0 | URL
줌파 라이리, 설터, 스토너 리뷰 기대할께요^^
 

이번 달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 적어도 44권을 읽었어야 했는데. 하루가 더 있었더라면.

실제로 하루가 더 있었다. 올해 2월이 29일까지인 걸 몰랐다.

28일이 2월의 끝이라 여기고 지레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기를 쓰고 40권을 읽으려 덤볐을텐데. 서른 여섯 권에서 일찌감치 포기했었으니......


 

이 달에 읽은 38권의 책 중 서유미 작가의 <끝의 시작>만은 리뷰를 쓰지 않을 작정이다.

지인의 작품에 호평을 하는 건 비도덕적이고

혹평을 하는 건 비윤리적이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수상으로 축하주를 마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유미 작가는 중견작가가 되었다. 부지런히도 쓰는구나.

자랑스럽고 대견한다는 말만은 하고 싶다.

(미안하다. 유미야. 빌려봤어. 돈 많이 벌면 사서 볼게.^^;;)

 

이달엔 휴...... 이달의 책으로 뽑을만한 책이 무더기다.

읽는 인간, 시의 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토너, 사피엔스, 사회학의 쓸모,

생각의 시대, 인생에 화를 내봤자, 사는 게 뭐라고, 직언, 위험한 자본주의, 가능성의 중심,

과학은 반역이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라면을 끓이며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달의 책을 뽑으면서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밤새 이 책을 읽은 아침에 철학 선생하는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다.

 

읽어라

친구는 뭐야, 자음과 모음이네.....’ 했지만

 

이런 미친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20대 때 쇼펜하우어나 니체를 읽었을 때만큼의 충격.

일본의 니체라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 이 달의 책으로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손을 들겠다.

책을 읽으며 내내 영화 <>이 떠올랐다. 사다코의 비디오를 본 여주인공 레이코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봐 버리고 말았어.”

 

읽어버리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다. 비디오를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되는 셈이다.

사사키 아타루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어느 쪽이 행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불행해질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까 되도록 읽지 마세요 ^^;;)

 

읽어버리고 말았다.

좆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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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6-03-01 0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 불행해질 확률이 높은 책은 읽지 말아야겠어요. ^^;;

시이소오 2016-03-01 08:31   좋아요 2 | URL
감히 추천할수 없네요^^;;

[그장소] 2016-03-01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 1권을 더 줄여야하나...하는중 ㅡ^^;
서점측에선 달갑지 않을 테지만..
암튼 ㅡ천천히 읽기 ㅡ하려고.
그래도 하루 여러권을 같이보는데..
참 성실하시네요!^^

시이소오 2016-03-01 08:58   좋아요 3 | URL
허걱 3331권이라니!!
그장소님 일주일에 한 권으로 줄이세요. 그래야 따라잡을듯. 대단하시네요^^

[그장소] 2016-03-01 09:03   좋아요 1 | URL
어..ㄹ ~저 체크 상태를 고치자니 번거로워 둔건데..
이미 읽은 것들 ㅡ이랑 겹쳐서 그런거예요.
제가 서재시작한지 오래되지않아서.
1년차 새내기 ㅡ니!
1년에 읽는 권수로는 평균 하루 1.5권.. -..
아닐까...싶은.

시이소오 2016-03-01 09:05   좋아요 3 | URL
아무리 겹친다한들
아무튼 따라잡도록 읽겠습니다
그장소님은 도망가세요 ㅋ

[그장소] 2016-03-01 09:09   좋아요 2 | URL
아...전 주로 소설 쪽 인데 속도가 ..괜찮으신지..
철학서나 인문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양적.질적으로 좀 무거워서 저와 다른 시간운용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골고루 읽으시는 분 같아서...ㅎㅎ
저는 갈지자로 걸을거니까..
맘편히 오셔요.^^

시이소오 2016-03-01 09:19   좋아요 3 | URL
갈지자로 가시는 겁니다. 치사하게 엉덩이 흔들면서 경보로 가면 반칙이에요!!^^

[그장소] 2016-03-01 09:42   좋아요 3 | URL
우핫 ㅡ경보 ㅡ갈지자 경보 ㅡ대회 준비위원회인거...들킨거임?^^
ㅎㅎㅎ
예~~썰!^^

깜장앨리스 2016-03-01 09: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40권이라니요. 읽는 속도가 빠르시네요. 부럽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09:18   좋아요 4 | URL
절대로 빠르지는 않아요. 하루종일 책만 읽는데 한달 40권이면 울고 싶어져요. 흑^^;

징가 2016-03-01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시이소오 2016-03-01 09:47   좋아요 1 | URL
지금은 비록 대단하지 않습니다만 대단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징가 2016-03-01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방법 좀 알려주세요 한꺼번에 여러권 보십니까? 아님 한권씩 다이다이 하십니까? 전 도저히 속도가 안나서

시이소오 2016-03-01 09:54   좋아요 1 | URL
한때 저도 10권을 돌려봤는데 저한텐 너무 많더라구요. 3~5권 정도가 적당한것 같아요. 읽다 지치면 바꿔읽고 안 지치면 끝까지 달리는거죠^^ 항상 옆에는 읽어야 할 책 20권 정도가 있는 편이에요 ^^

징가 2016-03-0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충고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1 09:59   좋아요 2 | URL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

시이소오 2016-03-01 10:04   좋아요 1 | URL
아, 너무 재밌는 책은 일부러 야금야금 읽는 거 아시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6-03-0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ㅎㅎㅎㅎㅎㅎ 너무 많이 읽으시는 거 아닙니까 ?

시이소오 2016-03-01 14:58   좋아요 0 | URL
그동안 너무 안 읽은 탓이죠^^;;

깊이에의강요 2016-03-0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굉장합니다^^
부끄러움은 저의 몫ㅠ

시이소오 2016-03-01 18:16   좋아요 0 | URL
굉장한 거 아닌데요 ^^;

지니 2016-03-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ood👍🏻

시이소오 2016-03-01 18: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스텔라 2016-03-01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40권이라니..대단하시네요. 전 새내기라 이번달 겨우 12권 읽었는데..그것도 가벼운 책이랑 섞어서 말이죠 ㅜ.ㅜ
출퇴근 시간에 읽으면 좋겠는데... 차만 타면 졸려서여 ㅋㅋㅋ
암튼 너무너무 대단하십니다. 부럽~~

시이소오 2016-03-01 21:2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저처럼 회사 안 나가면 읽을 수 있어요. 단 굶주려야한다는 단점도 있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3-0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년 걸려 2만권의 책 읽은 작가 한명 알고 있습니다. 긴가민가 했는데 이 속도라면 현실이었네요... 확인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
화이팅입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21:26   좋아요 0 | URL
허걱 40년 동안 2만권이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책만 읽고 살면 좋을텐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해야하니, 그게 관건일듯 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6-03-01 21:31   좋아요 0 | URL
네, 그 분도 번듯한 직장 갖고 있는 투자 애널리스트입니다. ^^ 동시에 책도 쓰는 작가구요. ^^

시이소오 2016-03-01 21:35   좋아요 1 | URL
일하면서 이만권 읽는게 과연 가능한건지. 저는 일종의 프리랜서라 일할땐 한권읽기도 힘들어요. 일 없을때 죽어라 읽어놔야죠^^;

2016-03-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대단하십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21:47   좋아요 0 | URL
대단하긴요. 백수라 책 읽는거 말고 할게 없어서요^^;

cyrus 2016-03-0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쓴 책에 대해서 호평을 할 수 있고, 혹평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심하게 나쁘게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점을 좋다고 말하고, 아쉬운 점은 솔직하게 밝히는 게 왜 나쁜 겁니까? ㅎㅎㅎ 독자의 위치에 서서 지인의 책을 평가할 수 있어요. 지인이 자신의 책을 제대로 혹평하면 거부하고, 귀를 막는 작가야말로 비윤리적인 자세입니다. 서유미 작가님은 이런 사람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22:23   좋아요 0 | URL
서유미작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난감하네요 ㅋ ^^;

VANITAS 2016-03-0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독파 권 수네요. 계속 건승 기원합니다. 좋은 책 많이 올려주세요.

시이소오 2016-03-05 17:14   좋아요 0 | URL
격려 감사합니다 ^^

이정동 2016-03-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단들 하시네예!!~~저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휴우~~~~님들께는 명함도 못 내밀겠어예!!~~
알리딘은 이주일에 한번 이용을 해서 갈 때마다 4~5권씩 사와서 보구 있는데~~~~

열심히 읽어야 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 나름, 인생에서 크나큰 진정한 용기가 무언지 알게 되었고예, 저도 그것을 가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읍니데이!

시이소오 2016-03-06 17:50   좋아요 1 | URL
많이 읽는다고 좋은건 아닐겁니다. 님처럼 진정한 용기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 많고 적고에 상관없이 그게 진정한 독서가 아닐까요? ^^
 


뉴턴의 전기들도 많은데, 그중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리처드 웨스토폴의 <결코 쉬지 않는>이다. 이 책은 무려 900쪽이 넘는다. 요즘에는 제임스 글릭이 쓴 전기가 각광을 받는다.

 

뉴턴의 종교적 연구들을 더 호의적이고 더 섬세하게 다룬 책을 읽고 싶다면 프랭크 마누엘의 <아이작 뉴턴의 종교>를 추천한다.

 

갤리슨의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시간의 왕국>은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인생을 섬세하고 웅장하게 그린 두 장의 초상화다.

 

푸앵카레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라면 벤저민 얀델이 쓴 짧은 전기를 일독하길 권한다. 얀델의 <명사들 :힐베르트의 문제들과 그 해결사들>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다비트 힐베르트가 제시한 그 유명한 23개의 수학난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전기 모음집이다. 푸앵카레는 이 대회에서 22번 문제를 풀었다.

 

개념을 강조한 쿤파 역사학자들과 도구를 강조한 갤리슨파 역사학자들 간의 논쟁은 지금까지도 시들해진 적이 없다. 이론적 과학에 단련된 역사학자들은 쿤 쪽에 기울고, 실험적 과학에 단련된 역사학자들은 갤리슨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도 각 파의 지도자보다 그들을 따르는 신봉자들이 훨씬 더 독단적이다......일전에 역사학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쿤의 신봉자들이 쿤의 견해를 심하게 과장하고 있었다. 쿤은 회의실 뒤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며 신봉자들을 제지했다.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전 쿤파가 아닙니다.”

 

갤리슨은 임계혼탁critical opalescence’이라는 용어로, 상대성 이론이 발견된 1905년의 상황을 요약하고 있다. 임계혼탁은 물이 고압에서 섭씨 374도로 가열될 때 나타나는 아름다운 효과를 말한다. 374도는 물의 임계온도라고 불린다. 달리 말하면, 물이 끓지 않고도 끊임없이 증기로 바뀌는 온도다. 임계온도와 임계압력에서는 물과 증기를 구분할 수 없다. 이때의 물과 증기는 기체라고 해야 할지, 액체라고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단일 유체 상태다. 임계 상황에 이르면 이 유체는 끊임없이 기체와 액체 사이에서 상전이를 일으키고, 이 상전이는 다채로운 빛깔의 반짝임으로 가시화된다. 이때의 반짝임이 유백색 보석인 오팔의 다채로운 빛과 비슷하다고 해서 ‘opalescenc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앵카레는 철학적 사유를 담은 <과학과 가설>에서 지식의 근원을 더 깊이 연구하면서 절대 시공간이라는 뉴턴의 개념을 비판했다. 아인슈타인도 그 책을 읽고 연구했다. 그러나 철학 역시 두 사람의 발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상대성이론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사고방식이었다. 도구와 개념과 철학적 사유가 한데 뒤섞여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융합되는 그 순간, 상대성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갤리슨은 쿤파와 갤리슨파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중도의 입장을 견지한다. ‘임계혼탁의 순간에 이르면, 역사를 궁극적으로 개념에 대한 것으로 보느냐, 근본적으로 물질적 대상에 대한 것으로 보느냐 하는 변덕스러운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푸앵카레는 보수적인 성향이었던 반면, 아인슈타인은 혁명적이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중대한 차이다. 새로운 전자기이론을 찾았을 때도 푸앵카레는 가능하면 옛 이론들을 고수하려 했다. 그는 에테르를 사랑했다. 심지어 에테르가 관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으로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테르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았다. 푸앵카레의 상대성이론은 조각천을 기워놓은 꼴이었다. 그는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지방시라는 새로운 개념을, 완고하고 요지부동한 에테르로 규정된 절대 시공간이라는 낡은 틀에다가 기워놓은 것이다.

 

개념이 바로 결정적 요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낡은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던 탓에 상대성이론의 세계로 엄청난 도약을 했다. 하지만 푸앵카레는 벼랑 끝에서 머뭇거리느라 도약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경우에서는 쿤이 옳았다. 1905년의 과학혁명은 도구가 아니라 개념이 추동한 것이다.

 

그린은 거시적 대상과 미시적 대상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양자중력이론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즉 거시적 대상에서는 일반상대성 이론처럼, 미시적 대상에서는 양자역학처럼 작동하는 통합이론을 의미한다....그 후 끈이론이 등장했고, 최초로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이 성공으로 발견자들은 끈 이론이 만물의 이론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타당한 근거를 얻었다.


물리학의 세계를 분할하는 개념을 고안한 사람은 양자역학의 탄생을 주도한 닐스 보어였다. 그는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인이었다. 또 한 명의 동시대인 로런스 브래그는 보어의 개념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미래의 모든 것은 파장이고, 과거의 모든 것은 입자다


 

만일 초끈이론이 맞다면 물리학은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이론은 공간의 구조에 관해 아인슈타인조차도 대경실색할 정도로 황당한 가정을 저변에 깔고 있다......이 우주의 시공간이 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는 기존의 관념을 폐기하고, 9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라는 황당무계한 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초끈 이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는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우주의 구조>

 

오펜하이머는 편지에서 아버지처럼 의젓하게 동생에게 조언을 한다.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들이 많고 많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영혼을 단련시켜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당장의 목표보다 시련을 통해 얻는 보상이 더 크다고 믿는다. 부디 시련이 부질없다고 여기진 말거라. 원래 시련이란 영혼을 지키게도 하지만 고의적인 시련이 아닌 한, 모든 시련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미세한 원자핵의 발견은 대성당안의 파리에 빗대어 설명되었다. 파리는 원자핵을, 대성당은 원자를 말한다. 그의 실험으로 원자의 거의 모든 질량과 에너지가 원자 부피의 1/1조에도 못 미치는 원자핵 안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월턴은 혼자 실험실에서 경금속 원자인 리튬으로 이뤄진 표적에 수소원자핵을 충돌시키는 최초의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굉장했다. 리튬 원자핵들이 둘로 쪼개지면서 여러 쌍의 헬륨 원자핵으로 분리된 것이다. 헬륨 원자핵들은 입사된 수소원자핵보다 무려 30배가 넘는 에너지를 갖고 방출되었다. ..바로 그날, 테이블 핵물리학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루빈은 조지 가모프가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 그의 제자로 천문학에 입문했다. 그녀는 은하 내부의 운동속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어떤 물질이 은하들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하들 구석구석을 암흑물질이 메우고 있다고 추정했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흑물질은 탐구해야 할 또 하나의 심오한 미스터리다. 우리는 단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안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물질보다는 무겁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위너는 응용수학자로서 제어 시스템과 되먹임 기작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하고, 그 이론을 사이버네틱스라고 불렀다. 사이버네틱스는 일종의 복잡성의 이론이다. 쉽게 말해, 잘 이해되지 않는 매개들과 불확실한 사건들로 가득 찬 세계를 최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찾아주는 이론이었다.

 

19471, 위너는 <애틀랜틱 먼슬리>에 발표한 과학의 반역자들이라는 논평에서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나는 앞으로 무책임한 군사전문가들의 손에서 훼손될 우려가 있는 연구는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논평이 발표되자마자, 52세의 위너는 어린 신동이었을 때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정보 시대의 우울한 영웅>은 노버트 위너의 세 번째 전기다. 제일 먼저 출간된 전기는 1980년 스티브 하임스의 <존 폰 노이만과 노버트 워너: 수학에서 기술로, 삶과 죽음>이다. 그리고 1990년에는 페시 마사니의 <노버트 워너, 1894~1964>가 출간되었다.

 

마거릿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다. 검소하게 가정을 꾸리고, 위너를 위해 편안한 가정환경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결혼 초기에 그녀는 친구에게 노버트는 수학을 하고, 나는 계산을 하지라고 말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기계와 동물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를 통합하는 제어와 소통이론으로 정의했다. 이 소통이론의 언어는 수학이다. 아날로그 소통은 직접적인 측정이 가능한 전압과 전류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량의 용어로 세상을 설명한다. 디지털소통은 01이라는 용어로 세상을 설명한다. 01은 두 개의 대안 사이에서 내릴 수 있는 논리적 선택을 대표한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소통은 분석의 언어이고, 디지털 소통은 논리의 언어다.

 

위대한 과학자엔 두 부류가 있다. 이사야 벌린은 기원전 7세기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표현을 따서 이들을 여우와 고슴도치라 불렀다. 여우는 재주가 많고, 고슴도치는 재주가 딱 하나뿐이다. 여우는 만사에 관심이 있고,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쉽게 옮겨간다.

 

고슴도치는 스스로 기본이라고 여기는 소수의 문제들에 매달려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파고든다. 위대한 발견은 대개 고슴도치들의 몫이고, 사소한 발견은 대개 여우들의 몫이다.....고슴도치들은 사물의 본질을 파고, 여우들은 경이로운 우주의 세세하고 복잡한 내용들을 파헤친다. 그런면에서 아인슈타인은 고슴도치였고 리처드 파인만은 여우였다.

 

<세상, 육체 그리고 악마 : 이성의 세 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는 존 데즈먼드 버널이 28세였던 1929년에 처음으로 출간한 책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두 가지 미래가 있다. 원하는 미래와 운명적 미래.

인간의 이성은 이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청소부로서 인공유기체의 효율성을 예측할 수 있다. 강이나 호수의 유기수은을 무해한 불용성 고체로 전환하는 미생물도 생각해볼 수 있다. 폴리염화비닐을 왕성하게 먹는 인공유기체라면 현재 지구상의 모든 해안가에 널려 있는 플라스틱류들을 말끔히 청소해줄 것이다. 어쩌면 폐기된 자동차를 먹어치우는 동물 종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다.

 

사실 태양계 주위의 우주에는 생명에 꼭 필요한 화학물질들과 물을 충분히 가진 직경 몇 킬로미터 정도의 혜성들이 무수히 많다......태양계가 형성된 지 수십 억 년 동안 혜성이 지속적으로 날아왔다고 본다면, 태양에 느슨하게 묶여 있는 혜성은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다. 이런 혜성의 표면적들을 합산하면 지구 표면적의 천 배, 아니 만 배나 된다. 나는 이런 근거에서 행성이 아니라 혜성에다 생명의 둥지를 틀어야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인간 정착에 필수적인 요소 중 단 두 가지가 부족할 뿐이다. 온기와 공기다. 이제 생물공학이 우리를 구할 때다. 혜성에 나무가 자라게 하는 방법만 알면 된다.

 

우주공간에서 잎의 피막은 네 가지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생체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원자외선을 투과시키지 않아야 한다. 내수성도 필수다. 그리고 광합성 기관에는 가시광선을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적외선 복사율은 극히 낮아야 열의 손실을 막아서 얼어죽지 않는다.

 

나무껍집은 단열성이 뛰어나야한다. 혜성의 표면을 파고든 뿌리는 얼어붙은 내부재료들을 녹여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내 한다. 잎이 생성한 산소는 허공이아니라 뿌리쪽으로 방출해, 둥치 주변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공급되어야 한다.

 

나무는 혜성에서 얼마나 높이 자랄까? 그 대답은 놀랍다. 직경이 약 16킬로미터가 채 안되는 천체에서라면 중력이 약해 나무는 한없이 성장한다. 이 나무는 수백 킬로미터까지 높게 자라면서, 자기가 차지한 혜성 자체의 단위면적보다 수천 배 더 큰 단위면적에 해당하는 태양에너지를 모은다.

 

세포의 두 기능인 유전물질(DNA)과 효소 역할을 하는 기계(단백질)는 자기증식 기계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능에 정확히 상응한다.

 

미래를 긴 안목으로 내다볼 때, 나는 태양계가 두 영역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이 풍부하고 물이 부족한 내부 영역은 거대한 기계와 정부주도 사업체가 차지할 것이다. 이곳에서 자기증식 기계는 충직한 노예이고, 인간은 거대 관료체제로 편성된다. 태양이 미치지 않는 외부 영역은 물이 풍부하고 빛이 희박하다. 이곳에는 나무들이 띄엄띄엄 자라고 인간들이 소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혜성들이 드문드문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 보물처럼 간직했던 책이 하나 있었다. 존 더버 윌슨의 <셰익스피어의 참모습>이다.

 

존 리틀우드는 내가 학생이었을 때,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친 유명한 수학자였다. 그는 이 법칙을 제안하기 전에 이미 기적을 정확하게 정의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기적은 일어났을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어떤 한 사건을 의미하는데,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100만이다.


리틀우드의 기적의 법칙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대략 한 달에 한 번 꼴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우리가 보통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은 약 8시간이고, 그 시간동안 약 1초에 한 번꼴로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루에 약 3만번, 한 달에100만 번 정도의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스테이플던은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다. 그는 철학이 오랫동안 매달려왔던 고질적인 문제를 참신하고 우앟게 풀기 위해 <스타메이커>를 썼다. 그 문제란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전능하지만 완전히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는 창조주를 화해시키는 것이다. 그가 찾은 해법은 우리 우주가 여러 우주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가 생명에 우호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철학적 문제는 결국 미세조정(우주의 물리상수들이 생명 유지에 적함하게끔 특정한 방법으로 미세조정되었다는 것)문제로 귀결된다. 우주학자 리 스몰린은 미세조정 문제에 최초로 다중우주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이렇게 가정했다. 우리 우주는 여러 우주들 중 하나다.

 

아기들이 태어나듯, 늙은 우주들 안에서 새로운 우주들이 태어나고 있다. 아기 우주들은 부모 우주를 닮았으나 무작위로 갖가지 종류의 물리법칙과 화학법칙들을 타고난다.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다윈의 진화론 과정을 따라서 수명이 긴 우주들이 선택된다. 따라서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수명이 긴 우주 중 한 곳에 존재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자연이 미세조정 문제를 해결했음직한 또 하나의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그중 몇몇 우주는 우리보다 정신작용에서 훨씬 더 진보한 생명체의 진화를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초지능 생명체는 어쩌면 자신의 두뇌로 또는 슈퍼컴퓨터로 복잡성 수준이 조금 낮은 또 다른 우주의 역사를 완벽하게 모의실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리스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와 이 우주는 초지능 생명체의 뇌 안에서, 물질적 재료가 전혀 없이 오직 정신적 구조로 모의실험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개념은 새로운 종류의 가상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진보된 존재들이 창조한 모의실험은 사실상 과거를 재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창조한 모의실험이란 고전적인 개념의 시간고리가 아니다. 자기들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과거를 복원한 것이다. ’

 

<스타메이커>는 단테의 <신곡>에 비견할 만한 책이 분명하다.

 


데닛은 사회학자로서 미국의 종교단체들과 관행들을 연구한 앨런 울프의 말을 인용한다.

 

복음주의의 인기는 교리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대중의 욕구에 영합하는 경향(신도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경향)에서도 비롯된다. 교회는 강력한 종교적 함의를 갖고 있는 성소라는 말을 원치 않는다. 성서의 문장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보다는 더 큰 주차장과 더 쾌적한 육아실을 제공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쓴다.


데닛은 물리학자 스타인 와인버그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착한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고, 나쁜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한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도 있다. 바로 종교를 갖는 것이다.

 

나카오 타카노리에게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그는 밤의 적막을 깨는 시계 초침소리마저 고독하여라라고 시작하는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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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에게 과학은 이슬람의 지적 구속에 저항하는 반역이었다.


저 엎어놓은 사발을 하늘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 갇혀 우리는 한생을 살다 간다.

하늘을 향해 도움을 구하는 손을 내밀지 말지니,

하늘도 그대와 나처럼 무력하게 돌고 있을 뿐이다.

 

현 세기에도 우리는 소련의 감옥에 수감되었던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와 목숨을 걸고 스탈린에게 란다우의 사면을 호소한 표트르 카피차를 기억하고 있다.

 

수학자 앙드레 베유와 그를 구해준 수학자 라르스 알포르스도 알고 있다.

 

수학자 챈들러 데이비스. 동료를 밀고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수감됐다.

 

힐베르트는 이 보편적 과정을 발견하는 문제를 결정문제라고 명명했다.

그는 결정문제를 풀게 되면 수학의 유명한 난제들도 모두 풀 수 있다고 믿었다.

 

힐베르트가 70세가 되었을 때, 쿠르트 괴델은 탁월한 분석을 통해 힐베르트의 방식으로는 결정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일반적인 산술규칙들을 포함해 모든 수학의 공식화에는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과정이 존재할 수 없음을 입증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참이나 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유의미한 산술적 명제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괴델의 정리. 괴델의 정리는 순수수학에서 환원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물리학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방정식들을 찾는 일에만 매달려 무익하게 보냈다.

 

노년의 아인슈타인과 노년의 오펜하이머는 블랙홀의 수학적 아름다움에만 눈이 멀어서, 그것의 실제 존재 여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환원주의 철학에 빠져 길을 잃었다. 그들은 모든 물리적 현상들을 몇 개의 기본 방정식들로 환원하는 것을 물리학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프랜시스 크릭은 금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말년에 자신이 주동했던 미생물학 혁명에 대한 개인적인 해설을 책으로 출간했다. 존 키츠의 시구에서 제목을 빌린 <열광의 탐구What mad pursuit>가 그것이다. 그 책에서 크릭이 참여한 두 가지 발견, DNA의 이중나선구조와 콜라겐 분자의 삼중나선구조를 비교, 설명한 부분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기념비 중 하나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알라모에 있는 새뮤얼 곰퍼스의 석상이다. 석상 아래에는 곰퍼스가 했던 연설의 한 구절이 적혀있다.

 


노동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감옥보다는 교사를

총보다 책을

범죄보다 배움을

탐욕보다 여가를

복수보다 정의를

우리의 훌륭한 본성을 배양시켜줄 기회를 더 원한다.

 

새뮤얼 곰퍼스는 미국노동총동맹을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과학이 최근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인간의 현실적 요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상이 한 이유요, 응용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더 즉각적인 이윤에 집착하고 있는 현상이 또 한가지 이유다.

 

토머스 제퍼슨이 자명한 이치라고 주장했던 말이 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에는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수백만 명이 실질과 빈곤에 내몰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원자력발전소들 버금가게 이 지구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도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위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귀가 미세조정공명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공명기는 무음 간격 동안에도 끊임없이 진동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골드의 실험은 음의 고저 구분이 뇌가 아니라 주로 귀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골드가 옳았던 또 다른 이론은 청각이론보다 더 오랫동안 학계로부터 배척당했다. 바로 지구의 자전축이 90도 뒤집힌다는 이론이었다. 1955년 골드는 지구 자전축의 불안전성이라는 제목의 매우 혁명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지구의 자전축이 100만 년에 한 번꼴로 90도 각도로 회전해 이전의 북극과 남극이 적도가 되고, 적도의 두 지점이 각각 양극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암석자기학의 대가였던 조셉 커시빙크는 한 편의 논문에서 캄브리아기 초기에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자전축이 실제로 90도 회전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것은 생명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자전축의 90도 회전이 일어난 시기가 캄브리아기 폭발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골드가 제시한 혁명적인 이론은 그의 저서 <깊고 뜨거운 생물The deep hot biosphere>의 주제이기도 하다. 골드는 지표의 수 킬로미터 아래에도 생물들이 서식하는 또 다른 생물권이 있다고 설명한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먹이>는 무책임하게 응용된 생물학적 지식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이 그 메시지를 듣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빌은 나노기술의 선도자 에릭 드렉슬러의 말을 인용한다. 드랙슬러는 나노기술의 활용을 장려하는 동시에, 오용을 경고하기 위해 포어사이트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다음은 드랙슬러의 말이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합성박테리아는 진짜 박테리아를 압도할 수도 있다. 이것들은 꽃가루처럼 바람에 날려 퍼질 수도 있고, 빠르게 복제해 수일 내에 생물권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 이 위험한 복제자들은 아주 작고 억세고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나노기술은 한마디로, 기능면에서는 생물세포와 비슷하나 구성성분이 달라서 세포보다 훨씬 강인하고 다재다능한 미시 규모의 기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어셈블러도 그중 하나다. 어셈블러는 쉽게 말해 스스로를 복제할 뿐 아니라 다른 기계를 제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공장이다.

 

 

버나드스키는 생물권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지 않았지만, 생물권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지구과학과 생명과학을 최초로 통합한 러시아의 과학자다. 바츨라프 스밀은 프라하에서 교육받고 캐나다에 살면서 스스로 동서양을 잇는 가교임을 자처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버나드스키를 새롭게 조명하고 서구에 그의 이론을 소개하고자 했다. 스밀은 <지구의 생물권 : 진화, 역학 그리고 변화>에서 거의 모든 장에 걸쳐 버나드스키의 <생물권>을 인용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핵전쟁의 결과를 철저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톰 스토니어의 <핵 재앙>을 읽었다.

 

일종의 직업으로서 군인의 소임을 다하는 것과 광신적인 군인의식은 엄연히 다르다. 너무 진지한 타입이 아니었던 발크는 호감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당연히 전쟁에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를 빙자한 허세나 자만심도 없었다. 발크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대단히 훌륭하고 고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전투는 단지 임무였을 뿐이다.

 

하지만 군인의 소임을 인간성보다 더 높이 둔 요들은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악당이 되었다. 그는 군인의 맹세를 신성한 서약으로 여겼다. 군인의 의무는 히틀러에 대한 충성이라고 확신했고, 결국 자신도 히틀러의 광기에 전염되고 말았다.

 

전략폭격이라는 복음을 전파한 것은 1920년대 이탈리아의 줄리오 듀헤였으나, 그 복음을 처음 실천한 사람은 영국의 휴 트렌차드 경이었다. 트렌차드는 중폭격기들을 제작해 독일의 민간경제를 공격하자고 정부를 설득했다. 그 순간, 영국은 과거 특정한 적만을 공격했던 19세기 전쟁의 전통에서 완전히 돌아서버렸다.

 

퀘이커교가 이룬 불멸의 위업은 노예제 폐지였다.

 

오늘날 평화운동에 필요한 교훈도 이것이다. 평화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쟁의 완전한 금지다. 모든 전쟁이 악이지만, 핵무기 사용은 더 악랄한 악이다. 핵무기 폐지가 전쟁을 금지하는 것보다 정략적 목표로서 실현 가능성이 더 크다. 18세기의 퀘이커 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평화주의자들은 보다 무너뜨리기 쉬운 악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 폐지에 성공하면, 다음 세대들이 전쟁금지를 공략하기가 수월해 질 수도 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진리의 힘이라는 뜻의 힌디어로, 비폭력 저항철학을 담고 있다)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것은 비폭력주의 그 이상을 의미했다......사티아그라하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저항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무기로서 도덕적 압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의미다.

 


필립 할리는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히틀러에 대항해 비폭력 저항의 길을 선택한 프랑스의 한 마을에 관한 이야기다.....유대인을 숨겨주면 추방이나 사형이 구형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르 샹봉쉬르리뇽마을은 수백 명의 유대인을 숨겨주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개신교 목사 앙드레 트로크메를 따르고 있었다.

 

르 샹봉쉬르리뇽 마을 이야기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바로 1987년 피에르 소바주가 제작한 <영혼의 무기Weapons of the Spirit>.

 

조지프 로트블랫은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생애의 대부분을 헌신했던 과학자다. 19391월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물리학자 회의가 열렸을 때, 불행히도 그는 폴란드에 있었다. 그 회의에서 핵무기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로트블랫도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공개토론에서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1939년에 그 엄청난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히포크라테스 윤리의 전통으로 생물학 무기개발을 중단시켰던 것처럼, 물리학자들이 핵무기에 반대하는 윤리적 전통을 세울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그때부터 역사는 무정하게 히로시마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944년에 독일에 핵폭탄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을 때에도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 중 단 한 명만 연구에서 손을 뗐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가 바로 조지프 로트블랫이었다. 로트블랫은 로스앨러모스를 더난 후 퍼그워시Pugwash(조지프 로트블랫과 버트런드 러셀, 아인타인 등이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 기구)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노벨 평화상이 수여된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며, 로트블랫이 노벨 평화상을 받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때 학생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요? 오늘 아침에 로트블랫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만세!” 학생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헤이스팅스는 <아마겟돈>에서 동부 유럽에서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마지막 둘째 장에 묘사한다. 스탈린은 19454월에 베를린에 대한 최후 공격을 개시했고, 3주 만에 35만 명을 잃었다. 독일군은 전체 병력 중 약 1/3을 잃었다. 영국군과 미국군은 엘베 강에서 전쟁을 멈췄고 살아서 귀환했다.

 

우리는 두 배로 운이 좋다. 통찰력과 감성이 넘치는 유리 마닌의 <수학과 물리학>이 있는 것도 행운인데다가 섬세하고 꼼꼼하게 영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100
쪽 남짓 된 이 작은 책에 실린 문장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인용할 가치가 있다.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와 같다. 그 기계를 움직이는 나사들과 기어들의 작동방식이 밝혀진다면, 새로운 대형으로 조립되고 정렬될 수 있다. 그 결과 이 세상은 활과 직기를 얻거나 집적회로를 얻는다.’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혁명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혁명과 쿠르드 괴델의 혁명이다. 두 혁명은 기존의 과학 개념을 뒤집고 새로운 과학 개념을 만들어냈다. 하이젠베르크는 고전물리학을 전복시켰고, 쿠르트 괴델은 수학의 토대를 전복시켰다.


 

 

역사적 차원에서 간결하고 탁월하게 과학을 파고든 책이 또 한 권이 있다. 바로 폴 포먼의 <바이마르 문화, 인과성과 양자이론1918~1927: 적대적인 지적환경에 대한 독일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적응>이다.

 

포먼은 클라인의 괴팅켄 연설을 이용해 바이마르 독일의 지적 대반전을 극적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는 파멸과 우울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상징하는 주제곡은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쓴 묵시론적 세계사 <서양의 몰락>이었다.


 

각각의 문화는 발생하고 무르익고 타락하고 완전히 사라지는 자기 현시의 가능성들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하나의 문화에는 조각, 그림, 수학, 물리학이 하나씩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깊은 본질적 측면과 존속기간, 독립성이 각기 다른 것들이 다수 존재한다.’

 

오늘, 과학의 시대가 저물고 회의주의가 승리하고 있다. 이 무대에서 구름은 흩어지고, 조용한 아침의 경관은 명료하게 다시 나타나고......고투 끝에 지친 서양 과학은 영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에드워드 텔러의 <회고록 : 20세기 과학과 정치 여행>은 재밌으면서도 아주 독특한 역사기록이다.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에르빈 슈뢰딩거가 심오한 사색가로서 임루를 완수한 후, 문제해결사들은 새로운 개념들을 이용해 실용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다. 텔러와 그의 친구 한스 베테, 레프 란다우, 조지 가모프 그리고 엔리코 페르미가 그런 문제해결사였다. 그들은 새로운 개념들을 이용해서 물리학과 화학을 기초부터 깡그리 다시 세웠다.

 

보통 달은 지구 둘레를 일정한 방향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오로지 앞면만 보인다. 그런데 달이 그 공전궤도를 아주 살짝 벗아나 뒤뚱거릴 때가 있다. 그때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지역이 가시적인 앞면 가장자리로 슬쩍 드러난다. 무어는 달이 고전궤도를 최대로 이탈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무어는 달이 공전궤도를 최대로 이탈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달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충돌 크레이터 마레 오리엔탈을 발견했다.

 

이런 관점은 원자핵을 발견한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말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리학만이 진정한 과학이다. 나머지는 나비 수집에 불과하다

 

과학에는 크게 두 종류의 학파가 있다. 흔히 역사학자들은 베이컨 학파와 데카르트 학파라고 부른다. 베이컨 학과의 과학은 세부적인 것들에 주목하고, 데카르트 학파의 과학은 개념에 관심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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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8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있는 내용을 직접 옮겨 쓰신 건가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내용을 입력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

시이소오 2016-02-28 18:08   좋아요 0 | URL
워낙에 머리가 안 좋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릴까봐서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2장 주변과 중심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누구에게나 이뤄지지 못한 약속의 땅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일이 한번쯤은 찾아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땅을 파느라 더러워진 옷, 아니 얼룩진 옷......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얼룩진 마음은 기억에서 잊혀질지언정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장면, 비행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공항 부근에 묻고 돌아오는 장면을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며칠을 이 문장과 함께 살았다. ‘얼룩진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내가 약자의 삶을 선택하면, 일부러얼룩진 옷을 입으면 얻게 되는 인식론적 자원이 있다......하지만 나는 당연히 얼룩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정의로워서가 아니다......얼룩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삶이 있다. 얼룩의 이물감, 분노 조절 실패, 사회적 시선과의 싸움.......

 

평화 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얼룩진옷을 벗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행복보다 괴로움이 안전하다. 행복은 지켜야 하는, 피곤한 것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36살에 죽은 파농이 27살에 쓴 책이다. 이런 책은 지식만으로 쓰여지지 않는다. 1970년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성의 변증법>25살에 썼듯이 자기 위치성에 대한 정치적 자각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걸작이다.

 

타자를 만지고 느끼며 동시에 그 타자를 내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왜 그대는 하지 않는가?”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고정희 시전집1,2, 고정희


 

이 책은 시선집이 아니라 시 전집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전집이 아니라 마치 한국 명시선’ ‘한국 현대 시인선처럼 연애편지에 인용하기 좋은 시부터 신학, 민, 자연에 이르기까지 인생과 시대를 아우르는 주제가 망라돼 있다.

 

섣부른 생각이지만 고정희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올까 싶다

시집을 뒤적이다가 <사랑법 첫째>라는 시에 연필을 꽂아 둔다.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로움 짓무른 밤일수록

내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놓습니다

 

이별의 기술, 프랑코 라 세클라.

 

나의 소원은 인류 멸망이다. 내 소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죽사는 모든 사람의 희망일 것이다.

 

시간 차 비극의 제일은 무엇일까. 며칠 전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사랑의 개념,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사제 간에 연인 간에 갈등이....” 이런 하나 마나 한 장광설을 늘어놓던 내게 친구가 말했다. “너는 아직도 그러고 사는구나, 사랑은 그런 게 아냐. 사랑한다, 사랑했다. 이게 서로 반대야

 

비극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별의 기술>이 그렇다. 이별 와중에 의문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부제는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이지만 내용은 이보다 흥미롭고 참혹하다.

 

상대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는 가해자때문이 아니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순간 시작된다.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낸시 홈스트롬

 

살해된 통영 초등생(<한겨레> 2012724일자 1)와 정치학자 이성형 교수의 영면. 두 사건은 내가 사는 세상을 요약하는 듯하다. 충격과 슬픔도 컸지만 열패감이 더했다. , 세상이 세구나.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35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섹슈얼리티, 공공정책, 인종, 군사주의까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다. 이 책은 내가 접한 페미니즘 입문서 중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충분하다. 또한 가슴 죄는 명언들이 즐비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다.

 

너 자신을 파괴하고 눈에 띄지 말라.”는 사회의 메시지, 아니 협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주변인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은 자기부정이다. “‘숨자, 살아남으려면 숨자.’ 라고 생각했다. ”

 

파멸이 약자스스로에 의해 저질러진다면 권력자들은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들인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사회는 어려운 조건에 놓인 어린이를 보호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하며, 선하고 재능 있는 이가 53살에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약성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성경은 언제나 원본 없는 개정판이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정치적(신화적)해석 말고 표현상으로도 바이블은 없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의 앞 구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반대하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보복하지 말라, 저항하지 말라, 앙갚음하지 말라, 대적하지 말라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나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가 가장 맘에 든다.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 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성의 변증법, 술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다.

 

부모 사랑 금기는 오이디푸스/엘렉트라 콤플렉스, 동성애 혐오를 낳았다. 파이어스톤은 이 세 가지 억압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기본 장치이며 가족 폐지를 통한 근친상간 금기의 종식은 성, 계급, 자아 개념을 바꾸는 인류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았다. 현재 가족은 계급 우월과 인생 성패의 기준으로 절대시되고 있다. 가족 제도가 만악의 근원이라거나 인간이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행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한 것은, 가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인위적인 제도라는 인식이다.

 

세 가지 물음, 톨스토이.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


 

며칠 전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주저 없이 엄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나 자신?” “아니면 통찰을 주는 예술가?” 나는 계속 틀렸다. 답은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다. 톨스토이의 우화 <세 가지 물음>에 나오는 질문 중 하나다.

 

톨스토이의 단편은 그의 지혜만큼이나 넘치게 출간되어 있다. 최근 국내 최대 47편을 수록한 책이 나와서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접촉하고 있는책부터 읽기로.

 

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아직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을 만난다. 이 헌신적인 사도들에 대한 내 감상은 세 가지다. ‘, 저 열정이 부럽다.’ ‘천당이 그렇게 좋으면 먼저 가시지’ ‘여기가 지옥인데 뭘 벌써부터 걱정을..’

<경제적 공포 노동의 소멸과 잉여 존재>의 저자 비비안 포레스테는 그의 다른 명저 <고요함의 폭력>에서 이 상황을 요약한다. “지옥은 비어 있고 악마들은 다 여기 있다.”

<경제적 공포><자본론> 이후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서라고 한다.

 

지금 이 체제에 시너를 부을 것인가? 폭탄을 설치할 것인가? 자폭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앎이다. ‘무능한 잉여의 유일한 자원은 생각하는 능력뿐이다. 필독을 권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 자녀 교육, 투표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금 누군가 이 책을 사고자 한다면 결사적으로 말리겠다.....이런 책을 사려고 망설이는 상태라면 이미 연애가 깨졌거나 시작하지도 않은 것이다. 남자가 신뢰를 준다면 이 책의 존재를 알 리 없다. 책을 읽고 진실을 직면한 치료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로 최소 며칠간은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심화학습을 원한다면 자본주의의 고전인 재클린 사스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으면 된다. 자본주의는 사랑과 가족 문제를 여성의 일, 성 역할로 할당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가장 추잡한 남자는 헤어지면서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 희망 고문을 지속하는 자, 두 번째 저질 남자는 거절 못하고 질질 끌면서 여자의 감정과 자원을 착취하는 부류다. 이런 분들은 코끼리에 밟혀 죽어야 한다.’

 

보스턴 결혼 에스터 D. 로스불름 외 엮음, ‘그것


섹스 생활 없는 여성 동성 결혼을 다룬 <보스턴 결혼>을 읽으며 행복해하다가, 새삼 베스트셀러에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다. 여성주의나 동성애는 그들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담론이다....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 편집, 번역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책(이 책!)여성’, ‘레즈비언이라는 레터르가 붙어 툭수분야의 서적으로만 여겨진다면, 공동체 전체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보스턴 사람들>에서 유래한 보스턴 결혼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도시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 간의 동거 관계를 말한다. 보스턴 결혼은 여성에게 돌봄, 연대감, 로맨스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보스턴 결혼>의 매력과 성취는 인류사 전반에 대한 상상력과 모색에 있다. 로맨틱하고 헌신적이지만 섹스가 필수적이지 않은(asexual) 동성 결혼은, 진부한 질문을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꿔놓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섹스, 금욕, 육아, 친밀성, 가족이란 무엇인가.

 

<보스턴 결혼>에는 지시대명사가 많다. “그것 하기”, “우리가 뭐였든 하여간 그거였을 때, 우리에게 있었던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그 여자는 결코 모를, 그 사람 전부를 알 길”, “소녀가 소녀를 만나고 소녀가 소녀를 잃고, 소녀가 소녀를 얻는다.” 이 책에서 섹스는 그것it’이다. 섹스는 미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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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2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 정말 책을 꼼꼼하게 읽으시는군요.. 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2-27 21:48   좋아요 0 | URL
모르는 책이 너무 많아서 컬쳐 쇼크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