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전기들도 많은데, 그중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리처드 웨스토폴의 <결코 쉬지 않는>이다. 이 책은 무려 900쪽이 넘는다. 요즘에는 제임스 글릭이 쓴 전기가 각광을 받는다.
뉴턴의 종교적 연구들을 더 호의적이고 더 섬세하게 다룬 책을 읽고 싶다면 프랭크 마누엘의 <아이작 뉴턴의 종교>를 추천한다.
갤리슨의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시간의 왕국>은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인생을 섬세하고 웅장하게 그린 두 장의 초상화다.
푸앵카레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라면 벤저민 얀델이 쓴 짧은 전기를 일독하길 권한다. 얀델의 <명사들 :힐베르트의 문제들과 그 해결사들>은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다비트 힐베르트가 제시한 그 유명한 23개의 수학난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전기 모음집이다. 푸앵카레는 이 대회에서 22번 문제를 풀었다.
개념을 강조한 쿤파 역사학자들과 도구를 강조한 갤리슨파 역사학자들 간의 논쟁은 지금까지도 시들해진 적이 없다. 이론적 과학에 단련된 역사학자들은 쿤 쪽에 기울고, 실험적 과학에 단련된 역사학자들은 갤리슨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도 각 파의 지도자보다 그들을 따르는 신봉자들이 훨씬 더 독단적이다......일전에 역사학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쿤의 신봉자들이 쿤의 견해를 심하게 과장하고 있었다. 쿤은 회의실 뒤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며 신봉자들을 제지했다.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전 쿤파가 아닙니다.”
갤리슨은 ‘임계혼탁critical opalescence’이라는 용어로, 상대성 이론이 발견된 1905년의 상황을 요약하고 있다. 임계혼탁은 물이 고압에서 섭씨 374도로 가열될 때 나타나는 아름다운 효과를 말한다. 374도는 물의 임계온도라고 불린다. 달리 말하면, 물이 끓지 않고도 끊임없이 증기로 바뀌는 온도다. 임계온도와 임계압력에서는 물과 증기를 구분할 수 없다. 이때의 물과 증기는 기체라고 해야 할지, 액체라고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단일 유체 상태다. 임계 상황에 이르면 이 유체는 끊임없이 기체와 액체 사이에서 상전이를 일으키고, 이 상전이는 다채로운 빛깔의 반짝임으로 가시화된다. 이때의 반짝임이 유백색 보석인 오팔의 다채로운 빛과 비슷하다고 해서 ‘opalescenc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앵카레는 철학적 사유를 담은 <과학과 가설>에서 지식의 근원을 더 깊이 연구하면서 ‘절대 시공간’이라는 뉴턴의 개념을 비판했다. 아인슈타인도 그 책을 읽고 연구했다. 그러나 철학 역시 두 사람의 발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상대성이론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사고방식이었다. 도구와 개념과 철학적 사유가 한데 뒤섞여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융합되는 그 순간, 상대성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갤리슨은 쿤파와 갤리슨파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중도의 입장을 견지한다. ‘임계혼탁’의 순간에 이르면, 역사를 궁극적으로 개념에 대한 것으로 보느냐, 근본적으로 물질적 대상에 대한 것으로 보느냐 하는 변덕스러운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푸앵카레는 보수적인 성향이었던 반면, 아인슈타인은 혁명적이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중대한 차이다. 새로운 전자기이론을 찾았을 때도 푸앵카레는 가능하면 옛 이론들을 고수하려 했다. 그는 에테르를 사랑했다. 심지어 에테르가 관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으로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테르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았다. 푸앵카레의 상대성이론은 조각천을 기워놓은 꼴이었다. 그는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지방시’라는 새로운 개념을, 완고하고 요지부동한 ‘에테르로 규정된 절대 시공간’이라는 낡은 틀에다가 기워놓은 것이다.
개념이 바로 결정적 요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낡은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던 탓에 상대성이론의 세계로 엄청난 도약을 했다. 하지만 푸앵카레는 벼랑 끝에서 머뭇거리느라 도약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경우에서는 쿤이 옳았다. 1905년의 과학혁명은 도구가 아니라 개념이 추동한 것이다.
그린은 거시적 대상과 미시적 대상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양자중력이론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즉 거시적 대상에서는 일반상대성 이론처럼, 미시적 대상에서는 양자역학처럼 작동하는 통합이론을 의미한다....그 후 끈이론이 등장했고, 최초로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이 성공으로 발견자들은 끈 이론이 ‘만물의 이론’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타당한 근거를 얻었다.
물리학의 세계를 분할하는 개념을 고안한 사람은 양자역학의 탄생을 주도한 닐스 보어였다. 그는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인이었다. 또 한 명의 동시대인 로런스 브래그는 보어의 개념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미래의 모든 것은 파장이고, 과거의 모든 것은 입자다’
만일 초끈이론이 맞다면 물리학은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이론은 공간의 구조에 관해 아인슈타인조차도 대경실색할 정도로 황당한 가정을 저변에 깔고 있다......이 우주의 시공간이 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는 기존의 관념을 폐기하고, 9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라는 황당무계한 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초끈 이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는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우주의 구조>
오펜하이머는 편지에서 아버지처럼 의젓하게 동생에게 조언을 한다.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들이 많고 많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영혼을 단련시켜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당장의 목표보다 시련을 통해 얻는 보상이 더 크다고 믿는다. 부디 시련이 부질없다고 여기진 말거라. 원래 시련이란 영혼을 지키게도 하지만 고의적인 시련이 아닌 한, 모든 시련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미세한 원자핵의 발견은 ‘대성당안의 파리’에 빗대어 설명되었다. 파리는 원자핵을, 대성당은 원자를 말한다. 그의 실험으로 원자의 거의 모든 질량과 에너지가 원자 부피의 1/1조에도 못 미치는 원자핵 안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월턴은 혼자 실험실에서 경금속 원자인 리튬으로 이뤄진 표적에 수소원자핵을 충돌시키는 최초의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굉장했다. 리튬 원자핵들이 둘로 쪼개지면서 여러 쌍의 헬륨 원자핵으로 분리된 것이다. 헬륨 원자핵들은 입사된 수소원자핵보다 무려 30배가 넘는 에너지를 갖고 방출되었다. ..바로 그날, 테이블 핵물리학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루빈은 조지 가모프가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 그의 제자로 천문학에 입문했다. 그녀는 은하 내부의 운동속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어떤 물질이 은하들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하들 구석구석을 암흑물질이 메우고 있다고 추정했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흑물질은 탐구해야 할 또 하나의 심오한 미스터리다. 우리는 단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안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물질보다는 무겁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위너는 응용수학자로서 제어 시스템과 되먹임 기작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하고, 그 이론을 ‘사이버네틱스’라고 불렀다. 사이버네틱스는 일종의 복잡성의 이론이다. 쉽게 말해, 잘 이해되지 않는 매개들과 불확실한 사건들로 가득 찬 세계를 최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찾아주는 이론이었다.
1947년 1월, 위너는 <애틀랜틱 먼슬리>에 발표한 ‘과학의 반역자들’이라는 논평에서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나는 앞으로 무책임한 군사전문가들의 손에서 훼손될 우려가 있는 연구는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논평이 발표되자마자, 52세의 위너는 어린 신동이었을 때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정보 시대의 우울한 영웅>은 노버트 위너의 세 번째 전기다. 제일 먼저 출간된 전기는 1980년 스티브 하임스의 <존 폰 노이만과 노버트 워너: 수학에서 기술로, 삶과 죽음>이다. 그리고 1990년에는 페시 마사니의 <노버트 워너, 1894~1964>가 출간되었다.
마거릿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다. 검소하게 가정을 꾸리고, 위너를 위해 편안한 가정환경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결혼 초기에 그녀는 친구에게 “노버트는 수학을 하고, 나는 계산을 하지”라고 말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기계와 동물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를 통합하는 제어와 소통이론’으로 정의했다. 이 소통이론의 언어는 수학이다. 아날로그 소통은 직접적인 측정이 가능한 전압과 전류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량의 용어로 세상을 설명한다. 디지털소통은 0과 1이라는 용어로 세상을 설명한다. 0과 1은 두 개의 대안 사이에서 내릴 수 있는 논리적 선택을 대표한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소통은 분석의 언어이고, 디지털 소통은 논리의 언어다.
위대한 과학자엔 두 부류가 있다. 이사야 벌린은 기원전 7세기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표현을 따서 이들을 여우와 고슴도치라 불렀다. 여우는 재주가 많고, 고슴도치는 재주가 딱 하나뿐이다. 여우는 만사에 관심이 있고,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쉽게 옮겨간다.
고슴도치는 스스로 기본이라고 여기는 소수의 문제들에 매달려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파고든다. 위대한 발견은 대개 고슴도치들의 몫이고, 사소한 발견은 대개 여우들의 몫이다.....고슴도치들은 사물의 본질을 파고, 여우들은 경이로운 우주의 세세하고 복잡한 내용들을 파헤친다. 그런면에서 아인슈타인은 고슴도치였고 리처드 파인만은 여우였다.
<세상, 육체 그리고 악마 : 이성의 세 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는 존 데즈먼드 버널이 28세였던 1929년에 처음으로 출간한 책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두 가지 미래가 있다. 원하는 미래와 운명적 미래.
인간의 이성은 이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청소부로서 인공유기체의 효율성을 예측할 수 있다. 강이나 호수의 유기수은을 무해한 불용성 고체로 전환하는 미생물도 생각해볼 수 있다. 폴리염화비닐을 왕성하게 먹는 인공유기체라면 현재 지구상의 모든 해안가에 널려 있는 플라스틱류들을 말끔히 청소해줄 것이다. 어쩌면 폐기된 자동차를 먹어치우는 동물 종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다.
사실 태양계 주위의 우주에는 생명에 꼭 필요한 화학물질들과 물을 충분히 가진 직경 몇 킬로미터 정도의 혜성들이 무수히 많다......태양계가 형성된 지 수십 억 년 동안 혜성이 지속적으로 날아왔다고 본다면, 태양에 느슨하게 묶여 있는 혜성은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다. 이런 혜성의 표면적들을 합산하면 지구 표면적의 천 배, 아니 만 배나 된다. 나는 이런 근거에서 행성이 아니라 혜성에다 생명의 둥지를 틀어야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인간 정착에 필수적인 요소 중 단 두 가지가 부족할 뿐이다. 온기와 공기다. 이제 생물공학이 우리를 구할 때다. 혜성에 나무가 자라게 하는 방법만 알면 된다.
우주공간에서 잎의 피막은 네 가지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생체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원자외선을 투과시키지 않아야 한다. 내수성도 필수다. 그리고 광합성 기관에는 가시광선을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적외선 복사율은 극히 낮아야 열의 손실을 막아서 얼어죽지 않는다.
나무껍집은 단열성이 뛰어나야한다. 혜성의 표면을 파고든 뿌리는 얼어붙은 내부재료들을 녹여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내 한다. 잎이 생성한 산소는 허공이아니라 뿌리쪽으로 방출해, 둥치 주변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공급되어야 한다.
나무는 혜성에서 얼마나 높이 자랄까? 그 대답은 놀랍다. 직경이 약 16킬로미터가 채 안되는 천체에서라면 중력이 약해 나무는 한없이 성장한다. 이 나무는 수백 킬로미터까지 높게 자라면서, 자기가 차지한 혜성 자체의 단위면적보다 수천 배 더 큰 단위면적에 해당하는 태양에너지를 모은다.
세포의 두 기능인 유전물질(DNA)과 효소 역할을 하는 기계(단백질)는 자기증식 기계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능에 정확히 상응한다.
미래를 긴 안목으로 내다볼 때, 나는 태양계가 두 영역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이 풍부하고 물이 부족한 내부 영역은 거대한 기계와 정부주도 사업체가 차지할 것이다. 이곳에서 자기증식 기계는 충직한 노예이고, 인간은 거대 관료체제로 편성된다. 태양이 미치지 않는 외부 영역은 물이 풍부하고 빛이 희박하다. 이곳에는 나무들이 띄엄띄엄 자라고 인간들이 소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혜성들이 드문드문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 보물처럼 간직했던 책이 하나 있었다. 존 더버 윌슨의 <셰익스피어의 참모습>이다.
존 리틀우드는 내가 학생이었을 때,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친 유명한 수학자였다. 그는 이 법칙을 제안하기 전에 이미 기적을 정확하게 정의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기적은 일어났을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어떤 한 사건을 의미하는데,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100만이다.
리틀우드의 기적의 법칙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대략 한 달에 한 번 꼴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우리가 보통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은 약 8시간이고, 그 시간동안 약 1초에 한 번꼴로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루에 약 3만번, 한 달에100만 번 정도의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스테이플던은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다. 그는 철학이 오랫동안 매달려왔던 고질적인 문제를 참신하고 우앟게 풀기 위해 <스타메이커>를 썼다. 그 문제란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전능하지만 완전히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는 창조주를 화해시키는 것이다. 그가 찾은 해법은 우리 우주가 여러 우주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가 생명에 우호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철학적 문제는 결국 미세조정(우주의 물리상수들이 생명 유지에 적함하게끔 특정한 방법으로 미세조정되었다는 것)문제로 귀결된다. 우주학자 리 스몰린은 미세조정 문제에 최초로 다중우주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이렇게 가정했다. 우리 우주는 여러 우주들 중 하나다.
아기들이 태어나듯, 늙은 우주들 안에서 새로운 우주들이 태어나고 있다. 아기 우주들은 부모 우주를 닮았으나 무작위로 갖가지 종류의 물리법칙과 화학법칙들을 타고난다.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다윈의 진화론 과정을 따라서 수명이 긴 우주들이 선택된다. 따라서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수명이 긴 우주 중 한 곳에 존재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자연이 미세조정 문제를 해결했음직한 또 하나의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그중 몇몇 우주는 우리보다 정신작용에서 훨씬 더 진보한 생명체의 진화를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초지능 생명체는 어쩌면 자신의 두뇌로 또는 슈퍼컴퓨터로 복잡성 수준이 조금 낮은 또 다른 우주의 역사를 완벽하게 모의실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리스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와 이 우주는 초지능 생명체의 뇌 안에서, 물질적 재료가 전혀 없이 오직 정신적 구조로 모의실험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개념은 새로운 종류의 가상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진보된 존재들이 창조한 모의실험은 사실상 과거를 재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창조한 모의실험이란 고전적인 개념의 시간고리가 아니다. 자기들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과거를 복원한 것이다. ’
<스타메이커>는 단테의 <신곡>에 비견할 만한 책이 분명하다.
데닛은 사회학자로서 미국의 종교단체들과 관행들을 연구한 앨런 울프의 말을 인용한다.
복음주의의 인기는 교리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대중의 욕구에 영합하는 경향(신도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경향)에서도 비롯된다. 교회는 ‘강력한 종교적 함의’를 갖고 있는 ‘성소’라는 말을 원치 않는다. 성서의 문장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보다는 더 큰 주차장과 더 쾌적한 육아실을 제공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쓴다.
데닛은 물리학자 스타인 와인버그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착한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고, 나쁜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한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도 있다. 바로 종교를 갖는 것이다.
나카오 타카노리에게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그는 ‘밤의 적막을 깨는 시계 초침소리마저 고독하여라’라고 시작하는 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