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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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서울: 시공사, 2012)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동경35°13′ 북위31°47′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합니다. 그곳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며 두 민족의 수도이자 세 종교의 사원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단순히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수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 종교의 중심지로 이해하고 있다면 <예루살렘 전기>는 독자가 될 여러분의 인식과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을 줄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루살렘의 역사를 통해 세계의 중심과 국제사회에 대한 식견을 제공받을 것입니다.

<신을 만나기 위한 그들의 기다림은 끊임없는 소유욕과 함께 타락으로 물들었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1965년생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릴 시절부터 필연적으로 가지게 된 예루살렘에 대한 관심을 오랜 세월을 걸쳐 연구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예루살렘 이야기를 쓰면서 저자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역사가의 특정한 사관에 구애받지 않는 예루살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전기>는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정치, 문화,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한 세력과 지도자 혹은 정복자를 연대순으로 나열하면서 각각의 시대에 특정한 키워드를 제목으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1부 유대교: 하늘과 땅, 예루살렘과 성전, 지성소와 선택받은 백성들의 이야기 그들은 예루살렘 이미지의 시작이자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대교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의 탄생과 종교의 기원을 본다.

  2부 이교: 예루살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제국 로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는 새로운 정신적 가치가 태동하고 그리스도교의 두각이 돋보인다.

 3부 그리스도교: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면서 예루살렘은 더이상 유대교만의 성지가 아니게 되었다. 정통그리스도교의 의식과 문화는 새로운 예루살렘의 지배코드가 된다. 개종을 둘러싼 박해와 갈등은 분쟁의 씨앗이 된다.

 4부 이슬람: 시대가 그를 원했고 그가 등장했다. 신의 사자 혹은 사도로 불린 정복왕의 탄생과 쿠란의 쓰여짐은 세대를 넘어 오늘까지 예루살렘을 세 종교의 장소로 만들었다.

 5부 십자군: 동서양의 과격한 만남, 회복과 수호를 대의로 내세운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충돌은 문화의 교류 뿐만이 아니라 종교의 교류이며 예루살렘이 동서양의 정신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6부 맘루크조: 피폐해져버린 예루살렘은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고 문화적 중심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이었던 맘루크조는 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가?

 7부 오토만 제국: 예루살렘 재건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수호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회복시킨다. 힘의 논리에 의해 색을 달리 하는 예루살렘의 현장은 피와 복수 그리고 소유욕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8부 제국: '예루살렘 신드롬'을 앓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간다.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 때로는 환상을 좇아 모여드는 정복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9부 시온주의: 축복과 저주의 그날 시온주의는 종말의 때를 위한 마지막을 준비한다. 모두를 적으로 삼을 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기다린다. 종말의 날은 새로운 시작이며 재건된 그곳은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새로운 제사가 이뤄질 것이다.

 

   신학생으로서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본 <예루살렘 전기>는 역사의 묘사에 대한 중립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였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립의 입장이 언제나 중요한 사실을 모두 기술하거나 들여다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염두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을 단서로 책의 유익함을 논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예로 그리스도교의 중심에선 예수에 관한 저자의 진술은 역사성에 기초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의 병고침과 죽은자를 되살리는 행위 그리고 수난과 죽음을 언급하면서 복음서를 인용하거나 요세푸스의 진술을 가져오지만 그를 인간 그이상의 존재는 아니다라는 견해를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중심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간과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무함마드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이미지 해석에도 비슷하게 적용되기도 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각자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상대가 모두 만족할 만한 기사의 내용만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보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역사를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펙트에 손상이 간 이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립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예루살렘을 초기부터 현대에 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의 집합이라는 점과 세계의 모습과 예루살렘의 모습을 비교하여 오늘날 예루살렘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독자마다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제공해준다는 점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는 과학과 경제의 시대로 넘어선 오늘날에도 종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시대로부터 시작되고 탄생된 인류의 문화의 발전사에 새겨진 또 다른 코드가 아닐까요? 예루살렘 전기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그 또 다른 코드의 해석의 관점을 제시해주는 유용한 책이기에 국제사회의 흐름 및 분쟁과 종교의 기원과 인문학을 위한 도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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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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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신명호: 시공사, 2012)

야사와 정사사이 허구에 묻힌 우리들

 

  '야사'란 민간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란 말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의 단어를 가리켜 우리는 '정사'라고 부릅니다. '정사'는 정확한 사실의 역사 또는 그런 기록을 말합니다. 한국의 정사는 대부분 정통적인 역사체계에 의하여 서술된 역사에 의존합니다. 신뢰면에서 우리는 '야사' 보다는 '정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이 쓰고싶은 글을 쓰는 '야사'는 '정사'와는 다른 흥미와 재미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사'에 없는 다른면을 다루거나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이야기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에 있어 '야사'는 '정사'못지 않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습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많은 작품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안방에서 혹은 서점에서 '역사 속 사건'과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대중과 작가의 관심은 보다 색다르고 독특한 '흥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왕과 왕비 혹은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한 '정사'에서 각색이 용이하고 부담이 덜하면서도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가 가득한 '야사'로 관심이 자연스럽게 옮겨집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대중의 관심이 '정사'에서 '야사'로 옮겨가면서 '왜곡'을 경험한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상당부분의 이야기가 '허구'와 '각색'을 걸쳐 태어났고 사람들은 '정사'와 '야사', '허구'와 '실제'를 혼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사회발전에 때로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못된 역사관과 역사 이해를 심어줍니다.

  잘못된 역사 이해를 바로잡고 대중의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필요한 요즘 <궁녀>(신병호: 시공사, 2012)는 우리에게 야사와 정사 사이에서 얻어지는 '실제'와 '재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함께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잘못된 역사 이해만큼 무서운 건 없다. 왜곡은 갈등과 대립을 유발시킨다.> 

 

궁궐에 핀 비밀의 꽃-궁녀

 

  비밀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폐쇄적이고 남성중심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궁궐에 여성인 '궁녀'를 두고 비밀의 꽃이라는 말로 독자들의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시킵니다. 

  저자 신명호는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한 후 주로 왕과 왕실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과 인물들과 역사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책을 써왔습니다. 문헌 자료를 통한 과거의 다양한 소외계층과 사건을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의 결과물인 <궁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궁녀의 다른 면을 많이 알려줍니다. 저자의 글이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과 많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역사 왜곡과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궁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셨나요? <궁녀>를 통해 점검해보시길 바랍니다.

  <궁녀>는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역사의 파편에서 찾아내는 궁녀의 진실: '궁녀'에 관한 상식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자 그동안 우리가 왜 '궁녀'를 잘못 알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바른 이해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장

  2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그녀들: 조선시대 6명의 궁녀를 통해 궁녀의 특징과 굴곡의 삶을 이야기 하는 장

  3장 어떤 이들이 궁녀가 되었을까? '문헌 자료'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이야기로 보는 '궁녀'의 선출 기준과 방식 이야기

  4장 궁녀들은 어떤 체제로 움직였을까? '궁녀'를 조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기능, 역할, 상관관계를 통해 일상을 살펴 보는 장

  5장 궁녀의 일과 삶: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궁녀를 직업으로 구분하여 의식주를 중심으로 경제적인 영역을 다루는 장

  6장 궁녀의 성과 사랑: 정사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궁녀들의 '性'관련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남성중심의 궁궐에서 살아가는 '궁녀'들의 여인의 삶을 조명하는 장

 

  '궁녀' 이야기는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잘못 채색되거나 그려진 궁녀 이미지를 바로 잡아 바른 '궁녀'의 이미지를 갖도록 도와줍니다. 바른 '궁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도 그리고 개방적이지도 않으면서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대표하는 궁궐을 지탱해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자의와 타의 가운데 이뤄나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어렵고 역사 기술이 사실상 남성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궁녀'는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미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역사를 '흥미'와 '재미'로 보는 것은 역사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데 도움은 될지 몰라도 역사를 거울로 삼아 오늘의 삶을 미래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바른 역사관은 우리에게 올바른 미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궁녀'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비주류가 아닌 주류로서 당당히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살아간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속의 궁녀들의 이야기는 침묵의 항변이 아닌 '살아 있는 고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실증적 연구 자료를 정리한 책들이 있습니다.

  '궁녀'들에 관한 <궁녀>(신명호: 시공사, 2012)와 함께 아이들에게는 <조선 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박영규, 주니어김영사, 2010)을 추천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눈높이의 책이 좋은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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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 - 수렵채집부터 GMO까지, 문명을 읽는 새로운 코드
톰 스탠디지 지음, 박중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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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톰 스탠디지(서울: 웅진 지식하우스,2012)

 

  수렵 채집으로붜 GMO까지 <식량의 세계사>는 문명을 읽는 새로운 코드로 식량을 채택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과 전환점을 '식량'이라는 코드를 통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교양서를 내놓았습니다. 인류의 3대 곡식인 옥수수, 밀, 벼 그리고 양, 염소, 소, 돼지, 닭 인류는 곡식과 동물을 길들이는 과정 가운데 문명의 눈부신 발전의 토대를 형성했으며 이들 자원은 무역과 함게 동서양을 잇는 교역을 가능하게 한 주요 자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톰 스탠디지가 전하는 새로운 문명 읽기인 <식량의 세계사> <총, 균, 쇠>가 놓친 또 하나의 열쇠라는 '식량'의 관점이 만들어낸  세계사 읽기의 즐거움을 만나봅니다.  

<1세기 구세계의 무역망이 가져온 교역은 동서양을 잇는 중요 루트였다.>

 

문명을 가능케 한 식량의 변천사

 

  농사는 새로운 생활 방식은 물론이고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의 기반을 제공했다. 이 문화들은 다양한 종류의 식량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식량은 곡물이었다. 근동의 밀과 보리, 아시아의 쌀과 기장, 아메리카의 옥수수등이 그러했다. 이러한 식량의 기반에서 훗날 솟아난 문명들은 고대 유전공학의 산물인 저곡물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p.29-30

 

  저자는 농업 혁명의 결과로 인간과 식물 사이의 상호 의존도가 높아졌으며 문명의 기반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식량은 고대로부터 전쟁과 무역 그리고 사회체제를 이루는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농업혁명은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획기적인 혁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으며 식량혁명이야말로 인류의 발자취에서 뗄 수야 뗄 수 없는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국제적인 통신망의 기반을 보여주는 무역망을 가능하게 한 경로 가운데 식량 무역 경로가 있으며, 새로운 식량이 공급되면서 동서양은 음식 문화와 더불어 독점적 이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깨닫고 충돌과 융화를 경험합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그 둘의 사이에서 자리한 식량과 영향력은 세기를 거듭할 수록 적어지기는 커녕 막대한 영향력을 갖춥니다. 식량의 부족은 기근을 가져와 후진국을 약소국으로 만들고 풍족한 식량을 토대로 무역의 이점을 갖춘 선진국들의 활약은 이러한 영향력을 더욱 잘 보여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코드인 '식량'으로 본 세계사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계사 교양서적이 세계사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합니다.

 

식량의 코드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세계사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언제나 문명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명의 발자취에 남겨진 식량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부분이라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는 바입니다. 세계사는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코드를 가지고 해석되어지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코드와 저자들의 관점은 세계사를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요?

  톰 스탠디지의 새로운 역사 읽기 새로운 코드가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 바라보기가 교양서적이 갖는 독특한 매력을 한껏 뽐내며 세계사 애호가와 입문자들을 유혹하는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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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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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폭 넓은 역사 바라보기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위즈덤하우스:2011)은 한겨례 신문에 '조한욱과 서양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칼럼들을 뼈대로 쓰여진 내용이 모여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사극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달리 한국의 근현대사는 언제나 소외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 책에서 느껴집니다. 각종 사관과 역사의 이해 도구라는 다양한 틀과 관점을 배우면서 보수적인 역사관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진보적인 신문매체의 칼럼을 본다는게 이상해 보일지는 몰라도 역사를 바로보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사란 해석의 관점이 중요하며 하나의 관점이 지지되거나 수용될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의 폐해를 고려한다면 역사 해석은 보다 다양해야 하며 수용하는 자세 또한 폭 넓어야 한다는 견해 또한 너그러이 받아주시리라 믿으며 책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역사라는 거울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마주 보라.>

자극적이며 원색적인 비판과 비평

  한쪽은 지우려고 하고 한쪽은 새기려고 합니다. 약자는 승자의 약점과 치부를 들쳐내고 승자는 자신들의 약점을 지우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면만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어느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약만 다를 뿐 오랜 세월의 기간 동안 자행되어진 우리의 현 주소입니다. 이러한 역사 기록방법은 역사라는 특이한 주제 때문입니다. 역사는 방대한 시간을 모두 기록할 수 없기에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주제를 다루기 마련이고 이는 전적으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에 따라 역사 기술은 자극적이며 원색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으로 가득찰수도 있으며 흐릿하고 완만한 비평을 따르는 기술도 가능합니다.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은 서양사 가운데 '이성의 야만'이라는 주제를 오늘날 한국의 근현대사와 비교 서술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의 사유를 가지고 가장 야만적인 폭거를 자행했던 권력과 지도자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요소들은 책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노'에 대한 확산이 가져오는 또 다른 폭력성에 대한 고려가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혁명적인 노선에 대한 또 다른 '야만'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이중적인 얼굴들

  역사를 거울로 생각할때 역사의 기능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짧게 자신을 돌아보고 거울 앞에서 자리를 뜨기 바쁩니다. 옷 매무새를 고치고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 잡는것은 내일로 미룬채 사람들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지만 잘못멘 신발끈과 망가진 옷 매무새를 지적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간과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그 틈새에 있는 부조리의 사건들을 잘 연결하여 한편의 비판적인 관점과 날카로운 관점으로 국민의 관심사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 인물, 사상에 걸쳐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사람들의 무관심, 몽매함이 역사의 무관심으로 나타났다면 보다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글은 그들의 관심을 이끄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몽매함을 가진 사람이 깨달음없이 공감대로 인한 분노에 공감하여 일어설 경우 이는 또 다른 폭력과 야만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장 진보적인 역사해석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사회적인 부조리와 역사의 바른 이해와 풍성한 관점을 제공받기를 원한다면 시간을 내서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독자 스스로가 보수라고 자부하고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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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1881 함께 읽는 교양 10
마티아스 루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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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의 재미와 즐거움이 매력적인 책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는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결승전 경기의 상황을 사회적 통념으로 은유적으로 대비시켜 철학을 삶 속으로 매력적으로 끌어 들인 작품입니다. 사회의 방관자가 되어서 주어진 상황에 대해 아무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모여있는 사회적 통념을 깨기 위한 유쾌한 성찰의 시간을 통해 철학적 사유의 재미와 즐거움을 발견하는 매력의 기쁨을 만끽해보시길 바랍니다.

  축구와 철학?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어떻게 하나의 틀로서 묶어서 설명할 것인가? 아니 애초에 이 둘은 서로 닮은 공통점과 추구하는 바가 있기는 한걸까라는 의심부터 듭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보면 우려는 기우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철학이나 축구나 모두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터무니없이 쓸데 없는 것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는 삶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축구와 철학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이 아닌 흥미로운 요소들로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철학적 사고로 무장하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소크라테스가 '사고'라는 축구공을 차면서 '세상'이라는 그라운드위에서 수비수들을 주렁주렁 달고 뛰는 멋진 묘기를 상상하며 어울리지 않는 부조리 속의 조화의 깊은 매력을 향해 떠나는 시간은 좋은 것입니다. 

철학의 입문자들에게 전하는 접근방식에 관한 메시지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는 분명 철학책입니다. 하지만 어렵고 난해한 철학책이라기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요소들로 가득찬 철학책이라는 설명을 추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철학책입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표지(핫핑크를 싫어한다면 어쩔수 없습니다.)가 시선을 외면토록 이끌지는 몰라도 책 속의 내용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요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펼쳐진 흥미진진한 경기만큼이나 재미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방관한 사회적 통념들에 대한 각각의 주제를 축구장에서 펼쳐진 상황들과 절묘하게 연결하여 철학을 우리의 삶과의 밀접함 속에 있음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스포츠는 우리의 삶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축구와 철학의 부조리 속의 조화가운데 발견된 유사함을 토대로 철학은 우리의 삶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은 유희이다.' 철학의 매력을 모두가 발견하기를 바란다. 

  저자 마티아스 루는 1976년생의 젊은 철학자이자 철학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저자의 소개글을 옮겨와서 이야기 하자면 그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삶이 결코 우리의 삶보다 구체적이지 못하거나 동덜어져 있지 않으며, 그들의 사색이 삶과 무관하게, 아무 의미 없이 이루어지는 여가가 아니라 바로 그 관념 덕분에 생각과 삶, 감성과 관념 세계, 존재와 사고의 조화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즉 철학의 사유와 관념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정신적 영역에 있어서의 풍요로움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는 축구의 철학을 논하는 책이 아닙니다. 본 책은 축구를 놀이로 그리고 철학을 유희로 보는 관점에서 서로를 연결하여 자연스러운 사고와 관념의 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고프다면 사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삶의 방관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삶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적극적인 참여와 성찰의 시간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통념에 반기를 든다고 할때 그것에 묻어가리라는 희망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있는 선수는 결코 경기장의 열기를 온전히 느낄수 없습니다.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으려면 성찰의 시간을 게을리 하지 마시길 발바니다. '철학은 유희'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특별한 전유물오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며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는 '유희의 철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상의 주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성의 작용은 여러분의 삶에 힘을 솟구치게 하는 감각을 불러 일으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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