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ㅣ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평점 :
꺅! 김려령 작가의 책이야!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현성이네 가족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초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아, 이 가족 정말 멋지다.
화원으로 쓰던 비닐 하우스에서 조금만 버티면 새 아파트 입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살던 집을 정리하고 삼촌에게 돈을 주었는데
그것이 삼촌에게 사기를 당한 거라는 걸 안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이 책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 절망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가족 모두는 쿨하다.
이미 벌어진 일, 되돌릴 수 없으니 온 가슴으로 다음을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단수, 단전으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서 새롭게 지하방을 얻었다.
삼촌을 찾겠다고 회사를 관두고 집을 나간 아빠가 돌아와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은 기쁨이요,
아빠의 딱한 사정을 알고 사표 수리가 아닌 휴가 처리를 해 준 고마운 아빠의 직장 상사도 감사함이다.
아빠의 솜씨로 비좁은 화장실에 샤워기가 달려 샤워가 가능해 졌다는 것과
벽에 선반을 설치해서 이런 저런 짐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작은 행복임을 아는 그런 멋진 가족.
여름엔 한없이 덥고, 겨울엔 무지막지 춥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한다면,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새 학교에서 현성이는 장우라는 친구를 만난다.
장우는 새엄마가 있고, 친엄마도 새 가정을 꾸리고 있다.
친엄마를 따라간 형이 겪을 사춘기~ 쉽지 않았겠지?!
장우와 현성이가 함께 찍은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영상이 이 이야기의 소재이기도 한데,
공부하는 영상을 보며 공부하면 누군가 함께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그 영상이 인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상을 한 시간, 두 시간 보는 이들도 있긴 있겠다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상을 보며 댓글을 다는 이들과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살아가는 힘을 얻는 또 다른 불행한(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아이, 장우.
장우는 현성이가 살던 화원 옆의 화원을 아지트로 삼았는데, 영상을 보고 그곳을 찾아온 형에게 아지트를 빼앗기고 만다.
다시 현성이네 옥상에 새로운 아지트를 꾸미고,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의 다음 화를 찍는데...
비록 두 시간 도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장우는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이 아니라,
견디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녀석이었다.
현성이와 장우가 '우리'가 되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기를 응원한다.
다들 잘 사는 거 같지만,
모두에게는 개개인의 어려운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현성이와 장우의 이야기가 그런 어려운 사정을 가진 우리 각자에게 위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