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의 편지
파스칼 로즈 지음, 이재룡 옮김 / 마음산책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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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눈빛의 작가 사진에 끌려서 책을 주문해 보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더구나 이 작가가 38세에 쓴 첫 장편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바로 그 해 자신이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동맥 파열과 관련된 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왔으니.
어린 시절 존경했던 작가 톨스토이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기록했다는
책 소개에 이르면  이 책을 외면할 방도가 없었다.

다석 유영모가 평생의 스승으로 삼은 이가 바로 톨스토이였다.
몇 달 전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를 재밌게 읽으며 톨스토이의 작품을
모두 챙겨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에게 보내는 파스칼 로즈의 편지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굳혔다.

왜 하필이면 톨스토이였을까?
톨스토이가 82세 되던 해 어느 아침 서재에서 나는 아내의 기척에 진저리를 치며 집을 떠나
그 며칠 후 어느 역사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평소 그가 기차여행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했다는 것도 한 단서가 될 것이다.
자신이 평소 그토록 싫어하던 곳에서 숨을 거둔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인생은 그렇게 사람의 뒤통수를 친다.

톨스토이가 매일 자신의 일기에 다음 날짜를 적고 "만약 내일도 산다면"의 약자  S. J. V를
덧붙였다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산 사람.

파스칼 로즈는 톨스토이를 우상이나 영웅으로 높은 곳에 모셔 두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의 변덕과 단점까지도 모두 끌어안았다. 
세계적인 대문호가 그녀에게는 "티티새처럼 울었기 때문"에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피티에-살페트리에 병원에서 아프지 않을 때의 삶은 너무 강렬한 쾌락이라
나는 끊임없이 감동을 받습니다.
소시지국수를 세 입 먹으면 그것은 왕의 관능, 비할 데 없는 관능입니다.(30쪽)

밑빠진 독처럼 기억은 모두 달아났지만, 햇살의 청명함과 창문의 투명함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수간호사의 부드러운 음성과 손길의 부드러움에서 성자를 느꼈다니
그녀는 쓰러져 갑자기 실려간 그곳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3년간의 투병생활을 통해.

"산 채로 죽었던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파스칼 로즈의 유일한 다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진실, 오로지 진실,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 그 외 다른 것을 쓰는 것은
자신에게 허용하지 말 것. 양념을 치지 말 것.(22쪽)

한마디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나는 지금 애초에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도 분간이 안 가는  
조미료 범벅의 냄비를 마구 휘젓고 있는 기분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랍시고, 뭔가 나만의 요리를 해보겠다고 하다가 뭐가 잘못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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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6-12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이옵니다
제 요리는 무슨 맛일까요....곰곰

플레져 2006-06-1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 보다는 톨스토이가 더 좋아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부활은, 너무 어릴 때 읽었지만
다시 읽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하답니다. 그 사랑 느낌을 받지 못할까봐...ㅎㅎ
여인의 얼굴이 정말 강렬하네요. 피할 방도를 저역시 못찾겠습니다.
일단 보관함...^^

로드무비 2006-06-1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보관함은 무신.^,.~
이번주 책 반납할 때 넣어보낼게요.

mong님, 님의 냄비에서는 아주 담백하고 꼬신 냄새가.^^

건우와 연우 2006-06-1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멋진 리뷰,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nada 2006-06-1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
정신이 뻐쩍 나는 말이네요. 앨리스 워커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얼굴에 반했었는데, 이 분도 땡겨요~~ 톨스토이가 "티티새처럼 울었"다니... 역시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 같아요.

프레이야 2006-06-1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정도.. 양념을 치지 않을 것.. 멋진 리뷰에 멋진 작가의 책이네요.. 난 지금 담백한 요리를 하고 있는걸까..

DJ뽀스 2006-06-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좀 먹어서 동화같은 톨스토이의 단편들 보고 머리속에서 뭔가가 띵~하고 울렸습니다.
앞으로도 섭렵하고 싶은 대작가님, 언젠가 1220쪽에 달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꼭 완독하고 싶어요 ^^:

반딧불,, 2006-06-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이 리뷰의 맛이라니!

rainy 2006-06-1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절망도, 고민도, 너무 깔끔하고 힘있고 정의로와요^^
속 마음 다 알길 없어도. 그런 믿음이 생겨버렸어요^^

2006-06-13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6-1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 J. V. 그런 마음가짐, 몸가짐이 제게도 필요한 것 같군요.

로드무비 2006-06-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저도요.^^

말의 허망함님, 우와, 아침에 우편함에서 엽서를 한 통 꺼내 읽는 기분이에요.
짐작하시는 것처럼 제게 엽서 주시는 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들 이상한 짐작 속에서 외로워하고 몸부림친다니까요.ㅎㅎ
깔끔하고 당당한 것도 저와는 거리가 먼 얘기고요.
다만 글 속에서라도 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달까요?
나이가 가끔 의식됩니다.
너 지금 겨우 이러고 살아야겠냐?
하는 음성을 듣지요.
이곳에서 너무 오래 놀고 심하게 마음을 붙이는 듯할 때.
그래도 좋은 책 읽고나면 간단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나중에 성장한 마이 도러가 읽기를 바라며.

님의 이야기는 약간의 그리움을 품고 읽게 됩니다.
좋아요.
앞으로도 들려주시길. 물론 내킬 때!^^

rainy님,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꼭 뭔가를 멋지게
속여넘기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반딧불님, 쪼매 입에 맞으신가요? 다행.^^

DJ뽀스님, 우리 함께 꼭 도전해 보자고요. 불끈=3

배혜경님, 담백하고 화사하시기까지 하세요.^^

꽃양배추님, 또 한 명 이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마르그리트 뒤라스.
직접 교유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뒤라스의 가끔 때로 심통 사나워 보이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인생을 알면 심통스러운 표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제 생각. 히히~

건우와 연우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차분하게......^^

sandcat 2006-06-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 오로지 진실,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이라니!
그러니 저 눈빛도 가능한 거겠지요.

검둥개 2006-06-1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압니까, 예상치 않게 멋진 부대찌게가 되어 나올지?
다 끓여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라고요. 홍홍 ^.^

DJ뽀스 2006-06-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라스..ㅋㅋ
불소설시간에 모데라토 칸타빌레 번역숙제하면서
궁시렁거리던 친구들이 젤 먼저 떠오릅니다. ㅋㅋ

2006-06-14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6-1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체크님,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전 몰랐어요. 그런 데가 있는 줄.
꼭 가볼게요. 랄랄라~~

DJ뽀스님, 친구들이 왜 궁시렁거렸을까요? 궁금.^^

검둥개님, 예상치 않게 멋진 부대찌라니, 어디 저도 오늘
그런 행운을 꿈꾸며 김치찌개에 햄이나 몇 조각 넣어볼까요?^^

샌드캣님, 저 눈빛 가지고 싶기도 하고 안 가지고 싶기도 하고.
묘한 마음입니다.^^

딸기 2006-06-1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렬한 눈빛의 작가의 사진에 끌려서 책을 주문해 보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리뷰의 첫 문장만 보고 추천을 누르게 되는 건 참 오랜만의 일입니다.

DJ뽀스 2006-06-1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궁시렁거렸냐면 -_-;;;;;;;;;;;;;;;;; 당연히 숙제하기 싫어서죠!!!
그 당시에 번역본이 없어서 베낄 수도 없는 처지라 ㅋㅋㅋ

로드무비 2006-06-1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하긴, 아무리 모범생도 숙제는 하기 싫은 법.
요즘 같으면 인터넷 통해 후딱 해치울 수 있었을까요?^^

오오, 월컵러버딸기님, 정말 화끈하십니다.
첫 문장만 보고.^^
 
서울의 밤문화 - 낮과 다른 새로운 밤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1
김중식.김명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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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문화>라는 책이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머릿속으로는 
한때 시궁쥐처럼 들락거렸던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주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자고 "밤문화 = 주점"으로 자동연결되어 버렸을까.
그런데 서울의 밤문화는 술, 혹은 향락산업과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황금빛 모서리>의 시인 김중식이 공동 필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래 전 우연히 시인과 잠시 공유했던  밤의 문화가 떠올라서.

어느 날 성대앞의 시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시인들의 시낭송대회가 끝나고
모 주점에서 열린 뒷풀이 자리에 김중식 시인이 참석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시인들의 시낭송은 기억에 없고, 신xx 시인이 그 주점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른 <약속>이라는 노래만 한 곡 달랑 귓가에 남아 있다.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은,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곡이었는데......

어느 하늘 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 밑 억세게 황량한 들판이어도 좋아
공간 가득히 허무가 숨쉬고
그리고 하늘 밑 어디에라도
내 시선이 뻗어 그 무한의 거리가
까무러치도록 멀어서
혼자서만 외로워지는 그런 곳이면 좋아
거기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이 반가워지면 좋아 음--

때로는 유행가가 시보다 더 절실하게 마음속에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그날 밤이 그랬다.

각설하고 결론을 말하면, 내가 기대한 김중식 시인이 맡은 2부 "현대 서울의 밤문화"는
조선일보 김명환 기자가 담당한 1부  "근대 서울의 밤문화"에 훨씬 못 미쳤다.
책 속이든 활동사진이든 근대 풍경이라면 넋을 잃고 보는 나의 취향을 감안한다고 해도
시인 고유의 감성은커녕 꼼꼼한 취재가 뒷받침된 것도 아닌, 평이한 글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기생의 기원부터 권번 기생들이 창간한 그들의 애환을 털어놓은 잡지 <장한長恨>,
그들이 가정 파탄의 주범으로 몰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온 '기생 여급과 남편이 연애할 때
처의 태도'라는 <삼천리> 지의 기사, "가정에 섹스압필을 주어라"라는 어떤 이의 웃기는 대안에
이르기까지  근대의 도입 부분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이 책은 서울에 관한 담론의 출발로, 서울 문화예술의 원형을 발굴하고 창조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서울문화예술총서' 제1권이다.
"거대도시 서울에 꽃핀 지난 100년간의 밤풍경"은 취지나 제목만 거창했지,
1909년 문을 연 우리나라 제1호 요릿집 '명월관'에서 현재의 룸살롱이나 주점까지
한마디로 술집 변천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그 잘난 밤의 문화는 남성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었다.
세상이 달라져서 여성들도 당당하게 밤의 문화를 주도하는 세상이 되긴 했다만
내용을 살펴보면  뭐 그렇게 신통방통할 건  없다.
심야영화관이나, 헬스클럽, 찜질방, 혹은 새벽까지 불 밝힌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끄는 모습 정도랄까.

노래방, PC방, 찜질방, 룸살롱 등 방(밀실)에서 이루어지던 밤문화는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함께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된 '효순 미순 추모 촛불집회'로
광장으로 나오기에 이르렀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한마디로 "서울의 밤은 밀실과 광장의 아수라백작"(154쪽)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라도 남기지 않았으면 시인에게 아주 섭섭할 뻔했다.

 



본문 속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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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6-1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김중식 시인과 공유했던 밤의 문화. 시는 잘 몰라도 황금빛모서리는 자주 펼쳐보는 시집이에요.

건우와 연우 2006-06-1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각도에서 읽어내리는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보면 `나는 절대 리뷰를 쓰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신기 신기...

가시장미 2006-06-1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통방통.. 이라는 단어가 눈에 딱 들어오네요. ^-^
그런데 '신통방통할 건 없다.'에서 맥 빠집니다. 으흐흐흐

kleinsusun 2006-06-1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 여급과 남편이 연애할 때 처의 태도' 라는 기사 재미있겠는데요.
근데...이거 남자가 쓴 거죠? 참아라...현명하게 대처하라...뭐 이런 내용인가요?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6-06-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기사 제목을 소개하는 정도예요.
가정을 음악화(=술집화)하고 아내로서 섹시한 매력을 보강하라,
뭐 그런 대안이랄 것 없는 대안을 제시하더군요.
근대에 대한 책으로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책이 있는데
한 번 읽어보셔요.^^

붉은가시장미님, 맥빠지게 해서 지송혀유.^^;

건우와 연우님, 별 말씀을.
저같이 얼렁뚱땅 쓰는 껄렁한 리뷰말고 리뷰다운 리뷰를 써서
올려주시라요.^^

수단님, 저도 한때 애지중지하던 시집입니다.^^

검둥개 2006-06-1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근대에 대한 책이 정말 많이 쏟아져나오는 거 같아요. 눈치 없는 저 같은 사람까지도 읽게 되었으니. 그러나 저러나 섹스압필은 또 뭡니까요? 궁금해죽겠네요. ^^

로드무비 2006-06-1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눈치없는 사람이라니, 자신을 그렇게 구박해야겠수?^ . ^
섹스압필, 저도 궁금한데 기생처럼 외모를 가꾸고 애교를 피우라는
이야기겠지요. 뭐 별 것 있겠어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 학교 2
마띠유 드 로비에 지음, 까뜨린느 프로또 그림, 김태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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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집 아홉 살 딸아이가 한사코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있다.
2년째 한 갈래로 질끈 묶는 헤어 스타일 고수와,  치마 절대 안 입기,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학습지 젊은 남자 선생님께 반말하는 것.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어른이 묻는 말에 입을 떼 제대로 대답만 해도 다행이다 했더니,
학습지 선생님에게는 그것이 나름의 애정 표현인지 무조건 반말이다.
어른에게 왜 반말을 하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원칙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저절로 생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른이야말로 원칙 같은 게 좀 확고하게 있어서 아이가 물어올 때마다 자신있게
대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그렇지 못하다.

"넌 왜 항상 그 머리만 고집해? 어느 날은 짧게 단발도 하고 땋기도 하고 그러면 예쁘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의 입에서는,

"그러면서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치마 문제도 마찬가지.  엄마가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해 보여주지 않는 한,
아이를 100프로 설득할 순 없을 것 같다.

--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순 없어요.

그것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학교" 두 번째 권인 이 책의 큰 주제이다.
지금이야 나도 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사소한 잘못을 달려와 고자질해 바치면 
그러면 안된다고 점잖게 말한다.
하지만 간혹 텔레비전에서 왕따나 친구들의 폭력으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흐느끼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친구가 이유없이 때리거나 괴롭히면 숨기지 말고 엄마에게 이야기 해 줘야 해!"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그런 당부를 해야 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는 가스똥이라는 꼬마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며
코믹한 그림과 함께 어떤 주제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왜 어른들은 항상 이래라 저래라 해요?

어서 가서 자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의 손에 끌려가며 가스똥이 묻는다.
아빠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빠 엄마 같은 어른들은 너희보다 오래 살았고, 그만큼 세상에 대해 잘 아니까.
아빠랑 엄마가 너희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건
너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거야.

아이의 모든 질문에 나의 대답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로서 미처 모르고 있던 현명한 대답이나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준다기보다는,
솔직한 자세로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라는 것이다.

아이가 재미있게 읽는 것도 읽는 거지만, 다정하고 코믹한 일러스트에
한 장면 한 장면의 내용이 꽤나 구체적이어서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는
예비, 혹은 초보 학부모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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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6-06-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때 올빽 포니테일이 제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ㅋㅋ

로드무비 2006-06-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ㅎㅎ 그랬군요.^^

nada 2006-06-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똘한 주하.. "그러면서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ㅎㅎ

아이 키우자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6-08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 엄마는 왜 항상 그 모양이야?

제 귀에는 그렇게 메아리 칩니다.;;

치니 2006-06-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에는 그냥 '모르겠어'라고 한 적도 꽤 많은거 같아요.
그게 더 안 좋으려나...

Mephistopheles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회에 머리모양에 많은 변화를 한번 줘보세요..^^

플레져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 이름 '어린이책'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요 ^^
저도 가끔은 어린애...ㅎㅎ
너무 순종적인, 얌전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아, 그래도 패션만큼은 내맘대로 했습니다 ^^
형제들이 많아서 저 하나쯤은 뜻대로 하게 두신것 같아요 ㅎㅎ

검둥개 2006-06-0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와 같은 헤어스타일이라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실없기는 ^^;;;

얼룩말 2006-06-0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하면 안돼?' 순간 경직됩니다. 주하 넘 맘에 들어요^.^

프레이야 2006-06-0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당차고 똑똑한 주하네요~~ 님과의 말싸움이 늘 재미나게 들려요.

건우와 연우 2006-06-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주하..아이들이 가끔 어른 말문을 턱 막지요. ^^

로드무비 2006-06-1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마이 도러는 아주 가끔 드물게 똑똑해 보여서...^^

배혜경님, 저한테만 당차니 그게 문제지요.ㅎㅎ

얼룩말님, 왠지 님과 마이 도러 죽이 맞을 듯.^^

검둥개님, 그 헤어스탈이 사실 제일로 편하죠?
게으른 사람에게는?=3=3=3

플레져님, 패션 하나만은 마음대로 하셨다니!
그것만 해도 어디예요?
전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순둥이였디요.^^

메피스토님, 많은 변화라 하시믄, 삭발 내지는 뽀글이 빠마?=3=3=3

치니님, 저도 모른다고 자주 합니다.
모를 때는 모른다고 하는 게 낫겠죠, 뭐.^^
 
틈새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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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는 세 가지 길밖에 없대. 달아나든가, 방관하든가, 부딪치는 것.
영화 <씨티 오브 조이>에 나온 대사야. 나는 주로 방관하는 편이었어.
하지만 방관하는 게 더는 허용되지 않을 때가 오지.
그러면 달아나거나 부딪치는 수밖에. (‘문밖에서’ 95쪽)


영국에서 온 친구랑 영화를 한 편 보러 갈 건데 추천해 주고 싶은 게 없냐고
당시 내가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던 어른이 근무 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 전 날 호암아트홀에서 본 영화가 바로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인도 빈민가가 배경인
영화 <씨티 오브 조이>.
처참하리만큼  지독한 현실과 의로운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영화가 참  좋았으므로
나는 두 말 없이 <씨티 오브 조이>를 권했다.
몇 시간 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그런 영화를 좋아하고 권할 수 있어? 로드무비 이제 보니 의외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열은 영화 한 편에 대한 감상의 차이로도 시작된다.
이혜경의 이 책 어느 소설에도 영화관을 나서며 엉뚱한 발언을 늘어놓는 남자를 보며
이 사람이랑은 안 되겠구나, 깨닫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꼭 영화 <씨티 오브 조이> 때문만도 아닌 것이, 오랜 기간 아주 절친했던 그 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느 날 문득 눈을 뜨니 아주 데면데면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혜경의 단편 ‘문밖에서’에 나오는 “보랏빛 씨스루 블라우스” 는
어찌 보면 영화 <씨티 오브 조이>보다 내게는 더 저릿한 상징으로 느껴진다.
우연히 모임이 이루어져 꽤 오랜 기간 지속이 되고 있는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쿨하고 자유로운 전문직 독신여성 들의 정기적인 모임.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본,  여성적인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한 멤버가,
어느 날 남자랑 극장에서 나오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기억나니? 우리가 돈을 모아 H에게 선물한 보랏빛 씨스루 블라우스.
그 옷을 H가 한 번이라도 입었을까? H가 자기의 연애를 알리고 싶어 했을까?
(...) H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건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H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던 걸까?(97쪽)


남자들은 예쁜 여자보다 ‘쎅시’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치마 입은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친구를 쎅시하게 보이도록
돈을 모아 야사시한 씨스루 블라우스를 선물하는 친구들.
얼핏 보면 다정다감하고 예쁜 풍경 같지만, 그 씨스루 블라우스를 강제로 선물 받아본 사람의
곤혹스러움은 상상도 할 수 없으리라.
친구나 애인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당한 간섭이나 그 끈끈이주걱 같은
관계가 무섭고 싫어 나 또한 오래도록 세상을 겉돌았다. 지금도......

이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사람 관계에 대해, 무서운 세상에 대해,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을  긁어주는지, 심지어는 가렵다고 느끼지 않은 부분조차
조용히 알려주는 것이다.



단편 '문밖에서'에 나오는 내 기억 속의 영화 <씨티 오브 조이>와
보랏빛 씨스루 블라우스만 가지고  리뷰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기엔 너무 허전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밑줄을 친
멋진 문장 하나 를 옮겨 적는다.


--흙이 무너지지 말라고 봉분 중간을 빙 둘러가며  끼워넣은 솔가지가,
나와 남 사이에 그토록 선명한 금을 긋고,  그토록 오랜 세월 불안을 견디며

살아낸 한 생애의 이마 위에 얹힌 화관 같다.('피아간(彼我間)' ,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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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6-0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영화, 음악, 좋아하는 야구팀, 종교, 그리고 이데올로기 이런 게 두 사람이 친해지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입맛과 주량 아닐런지... ^^

hnine 2006-06-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문에서 오랜만에 저자가 책을 내었음을 알고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로드무비님은 벌써 후기를 올리셨군요.
영화 씨티 오브 조이, 저도 오래전에 호암아트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피아간'...한자를 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로드무비 2006-06-0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별로 관심이 없던 작가인데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 읽는 재미에 흠뻑.^^
('시티 오브 조이' 개봉한 게 1993년인데, 어쩌면 우리
옆자리에 앉아 봤을 수도 있겠네요.)

에로이카님, 그럼요.
그 어마무쌍한 모든 것보다 입맛과 주량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에요.
맞으면 물론 더 바랄 게 없지만.^^

반딧불,, 2006-06-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전작도 좀 강력했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근데 무슨 책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네요.

nada 2006-06-0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우격다짐 미용실로 끌고 가신 친구분 이야기 2탄이네요. - -;;;;

"굉장히 쿨하고 자유로운 전문직 독신여성들의 정기적인 모임"에서 갑자기 무서워지는 건 왜일까요..

마태우스 2006-06-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정말 멋집니다. 친구나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당한 간섭...키야... 시스루 블라우스라는 제목에 혹해 들어왔다가, 감동만 만땅 받고 갑니다. 죽었다 깨나도 쓸 수 없는 멋진 리뷰를 보는 곤혹스러움을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죠.
"심봤다>..."

oldhand 2006-06-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봤다!

치니 2006-06-0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이해는 오해에서 비롯된다고도 하듯이...
친하다고 해서 상대가 원하는 모든걸 알수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꾸 아는 척을 하네요...반성 중.

날개 2006-06-0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봤다!!! ^^

건우와 연우 2006-06-0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 씨스루블라우스를 사주었을것 같은 느낌이...
과유불급은 <관계>에도 통용되는것 같아요

2006-06-07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6-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티 오브 조이>가 아니라도 그 선생님과는 데면데면해질 사이였을 겝니다.
로드무비님이 좋아하는 영화의 취향도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영국에서 온 친구를 생각해서 토속적인 영화 <심봤다>를 권해드릴꺼 그랬나요. ^^

로드무비 2006-06-0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아이고, 아침에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요.ㅎㅎ
문학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가는 걸
이해 못하는 분이었으니까요.
참다운 인생의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영원에 있는 건데
사소한 것들 가지고 싸우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니
어떤 부분은 대화를 아예 접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워낙 좋은 분이어서 관계를 놓고 싶지는 않았는데
세월 속에서 절로 그렇게 되더군요.
그러고 보니 호암아트홀에서 그분과 본 영화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였네요. <심봤다>가 아니라!ㅎㅎ

그 사람들의 심리님, 저도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몰라요.
결혼생활도 옆에서 보니 뭐 그저그렇더만, 뭐 그리 자랑이라고.
아마 너무 멋진 님이 부러워서, 같이 고생 좀 하자고 자꾸 결혼을
권하는 게 아닐까요?ㅎㅎ

건우와 연우님, 전 씨스루 블라우스를 선물받는 입장이었습니다.
"좀 꾸미면 예쁠 텐데!" 하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말이 듣기 싫었어요.
어쩌면 저도 어떤 친구에게 또다른 의미의 씨스루 블라우스를
강제로 안겼는지 모르겟군요.;;

날개님, 따라쟁이!=3=3=3

치니님, 그런데 또 우정이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간섭하고 간섭받는 게
행복할 때도 있긴 있어요. 그죠?
인간의 딜레마.^-^;;

올드핸드님, 콩주 아빠도 이제 보니 따라쟁이였구만요.^^

마태우스님, 가끔 어리둥절한 댓글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시는 분.ㅎㅎ
하늘하늘하고 아른아른한 시스루 블라우스를 보러 들어오셨군요.
그런데 추리닝 입은 로드무비가 헤벌쭉.ㅋㅋ
다정한 댓글 감사 드립니다.^^

꽃양배추님, 그 모임에 대해 구구절절 쓰지 않았는데도 아시는구랴.
분위기가 느껴지죠?
이 작가가 모든 작품을 통하여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사람 사이의 그 어느 정도 거리란 과연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냐?
저도 아직 그 고민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에요.
미리, 아예, 발을 빼지는 말자, 솔직하자, 정도.
글고보니 미용실 2탄 맞네요.^^

반딧불님, 전 문예지에서 작품을 두어 편 읽어본 정도였어요.
나중에 이전 작품집도 찾아 읽고 싶네요.^^



플레져 2006-06-08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밖에서와 피아간이 참 좋았어요.
제목이 너무 안일한 거 아니야 싶었던 문밖에서가
의외의 소득이었답니다.
바탕체로 해서 그런가 로드무비님의 리뷰 중에
젤로 멋진 것 같아요 ^^;; 내용이야 말할것도 없구요.
씨티오브조이, 그 포스터는 기억나요. 영화를 왜 못봤는지... 흑.

2006-06-08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6-0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제가 읽은 소설이 로드무비님의 리뷰에 등장하다니!!!
너무 감동했어요 ^.^
이 단편을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로드무비 2006-06-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별걸 다 감동하셔요.^ . ^
'문밖에서'가 특히 재미있었어요.

플레져님, 리뷰를 절반 썼다가 다운되어 날려먹는 바람에
'한글'로 썼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쓰길 잘했네요.
우리가 소설 보는 안목이 있잖습네까!ㅎㅎ
사실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parc 2006-06-09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보니 저도 '틈새' 책이 읽고 싶어져요. 문화의 취향이 다름을 인정해주고, 또한 서로의 문화취향에 발을 한발짝 들여놓는것도 사실 괜찮은 일일텐데요..^^
더불어 아직 보지 못한 '시티 오브 조이'도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6-06-10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rc님, 책 귀퉁이를 살짝 접어놓고 싶은 문장들을 많이 만나실 거예요.^,.~
시티 오브 조이에서의 패트릭 스웨이즈 정말 멋졌고요.


balmas 2006-06-1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멋있는 리뷰!
마지막 인용문도 넘 멋있어요. :-)

로드무비 2006-06-1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역시 안목이 있으시다니께유.^,.~
 
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30년 만의 대형 태풍'이라는 기상 예보관의 말을 흘려듣고 고향집에서 나와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몰던 잡지사 기자 고사카.
차창을 뚫고 들이닥칠 듯한 폭풍우의 위세에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잠시 갓길에 차를 대려는 중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자전거를 끌고 씨름하는 소년을 만난다.

마치 영화로 그 장면을 보는 듯 요란한 빗소리와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되는데.
두 사람은 고속도로의 열려진 맨홀 뚜껑과 그 주변에 굴러다니는 아동용 노란우산을 발견한다.
이렇게 가슴 철렁한 도입부가 또 있을까!
거기다 소년 신지는 알고봤더니 남의 마음을 읽는 사이킥(Psychic)이다.
16, 17세의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 사람들의 과거와 숨겨진 마음을 읽는다니,
이건 폭풍우 몰아치는 밤의 고속도로보다 더 무시무시한 설정이다.

--나처럼 어리고 아직 세상물정도 잘 모르는데, 보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어떻게 할 거죠? 보이잖아요? 들리잖아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고사카 씨라면 어떻게 할까요?(103쪽)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몇 달 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아주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리뷰 쓸 생각은 못했다.
게임에 이긴 상대방이 최대한 힘을 모아 내려친 뿅망치에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아무리 정교한 장치가 있든 놀랄만한 반전이 있든  추리소설은 내게 "이래도? 이래도?"하고
충격과 재미를 강요하는 뿅망치 같았던 것.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일반적인 추리물과는 좀 달라 보인다.

폭풍우 치는 날, 도로의 맨홀 뚜껑을 아무 생각 없이 열어놓고 가버린 차의 운전자들처럼,
아내와 다투고 난 후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물다가 무심코 눈에 띈 화분을
아래로 던져 지나가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인간의 무신경한 얼굴이 있다.
내가 바로 그 무심한 행동의 주인일 수 있고,  어느 순간 그 앞을 지나다
화분을 맞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지도 않는 능력을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어 사람의 무시무시하고 추악한 면들을
보고 듣지 않을 수 없는 두 소년의 고뇌와 갈등에 이르면......
내가 봐버린  것들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얼마만큼 행동할 것인가.

폭풍우 치는 밤에 시작된 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열쇠들보다 내 마음을 끈 것은
그런 심리적인 측면과 인간의 선택 부문이었으니, 이 소설은 내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재미있는 추리소설로 기억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고사쿠와 결혼할 뻔했던 사에코라는 여성이다.
아니, 그 여성이라기보다는 그녀가 펼쳐보였던 확신이 가득찬 인생의 청사진.
그러한 것을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아서일까?
그림으로 치면 '맨홀'과 '청사진'이라는 두 개의 오브제가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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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6-0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인가요, 납량특집 공포소설인가요? 독서폭이 정말 넓은시네요... 그리고 무슨 영화 예고편처럼, 내용은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호기심 유발시키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로드무비 2006-06-0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제 독서 폭은 사실 무지 좁고요,
리뷰 쓰겠다고 자원해서 얻어 읽은 책이에요.
며칠 전에 읽었는데 이제야 씁니다.
어떤 부분 관심 가는 데도 있고 재미있었어요.^^

플레져 2006-06-0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홀과 청사진, 절묘하게 어울리는데요? ^^
섬뜩한 느낌이 먼저...

로드무비 2006-06-0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추리소설을 많이 안 읽어봤지만 추리소설로는
좀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초능력보다도 그걸 가진 소년들의 고뇌가 제겐 섬뜩했고요.
제목을 생각하니 적당한 게 안 떠올라 그냥 주워섬긴 거랍니다. 헤헤~

sudan 2006-06-0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주워섬기신 제목이라기엔 너무나 그럴 듯해요. 오옷. 공포 영화 예고편 마냥 섬뜩한 분위기를 잔뜩 느끼게 해주시는데요?

로드무비 2006-06-0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제가 좀 호객행위에 재조가 있습니다.ㅎㅎ
그건 이미 아시죠?^,.~

mong 2006-06-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추리쪽도 좋아요~~
(꼬시는 중...ㅎㅎ)

로드무비 2006-06-04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너무 깊이 빠질까봐 걱정이예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