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꽃이 빨리 피어서 축제를 기획한 이들이 무척 당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3년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꽃들이 열렸다고나 할까. 기후 위기의 증거로 자연 생태계에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사실은 망각하고 꽃에 취하고 만다. 어쨌거나 그에 발맞추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무리에 끼는 일은 어렵고 아파트 한쪽에 동백나무가 꽤 크게 자란 걸 확인하는 날들이다.


봄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각자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그 겨울 속 추위를 견딘다. 한 겹의 옷을 벗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조금씩 겨울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보드라운 바람에 슬그머니 마음을 내려놓는다. 봄이구나, 봄이니까, 봄이라서 마음은 자꾸 느슨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

실패한 봄이 나를 지나간 후였다

꽃이 혼자 지던 날


무게중심은 어디서나 숨길 수 없다

저기 막 사라진 사람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앞 촉이 닳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

치욕 같은 맨발을 내 보인 사람들


울고 있는 동안은

눈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미 나를 지내간 내 거짓말


나는 가볍고

구름은 금세 몸을 바꿔 흩어져

한 번도 우리는 우리를 관통한 적 없었다


나는 지금 울고 있는 것 아니라

막 안개를 지나온 것이거나

안개와 섞여본 적 없음을 알았을 뿐

지나가던 눈물을 훔쳐 살 뿐


그리하여 매번 너무 늦게 울었거나

안개에 얼굴을 묻는

발 없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 「안개 속의 거짓말」, 전문)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긴 줄을 세우는 그런 사월이다. 나를 지나간 거짓말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만우절로 시작된 4월이라 그럴까. 거짓과 눈물이 나뒹구는 4월이다. 새로이 탄생할 거짓과 슬픔이 자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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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안개비가 내렸다. 화요일 밤부터 시작된 비는 수요일에는 흠뻑 내렸고 어제는 안개비로 오늘은 미세먼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안전 안내 문자는 일상이 되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친근한 건 아니다. 황사용 마스크를 챙겨서 사용해야 한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라고 가족에게 말했다.


며칠 전 언니가 마스크를 정리했다. 모든 물건이 그렇듯 마스크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이미 많은 개수의 마스크가 유통기한이 지났고 그래도 순차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한 것들을 식탁에 꺼내 놓았다. 나도 방에서 마스크를 찾았다. 책장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여기저기 마스크가 가득했다. 여유분이라고 하기엔 많았다. 아마 가방에도 하나쯤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사용하려고 챙겨둔 마스크. 예고 없이 끈이 떨어지거나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려고 한 것들.


마스크 한 장 사려고 요일에 맞춰 약국에서 대기하던 시간들, 방문한 약국에 품절된 마스크 안내문을 보고 다른 약국으로 찾아 빠르게 이동하던 순간들. 3년 전 봄은 그랬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고 병원 방문도 자제하라던 그 시간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이제는 패션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마스크. 생각난 김에 뉴스 기사를 검색했더니 필터 효율이 떨어지지만 밀봉된 상태면 큰 차이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면 마스크는 딱히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3년이라는 시간 한 몸처럼 사용했으니 이제는 마스크가 없는 상태가 이상할 정도다. 나 역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열심히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는 마스크를 쓰기 힘들 테니 그때는 화장을 하게 될 것 같다.


3월 중순부터 마스크 필수가 아닌 권고 사항이 되었고 최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친구는 마스크를 벗는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초롱초롱한 눈빛만으로 표정을 확인하는 것과 얼굴 전체를 보는 일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고. 그만큼 눈빛이 중요한 것일까.


마음의 마스크는 어떨까. 외부로부터 오는 무언가를 막아낼 마스크. 함부로 쉽게 터져 나오려는 것을 막아주는 마스크. 나는 그런 마스크가 필요한가. 이미 마음에 착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은 잡념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 쓸데없는 생각들, 의미 없는 사고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마음의 마스크를 쓴다. 평온을 위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도 마스크 역할을 한다. 몇 권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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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07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너무 좋은 책이 많이 나와요. 저도 다 읽어볼래요.

자목련 2023-04-10 09:24   좋아요 0 | URL
수이 님과 함께 읽게 될 책, 신나요!!

희선 2023-04-0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마스크 안 해도 된다니... 그래도 저는 그냥 나가지 못하는군요 코로나가 아주 사라진 게 아니기도 하니... 가끔 공기가 안 좋기도 하고 어제는 황사도 온다고 했군요 오늘도 공기 안 좋다고 한 듯합니다 마음에 쓰는 마스크... 있으면 좋겠네요


희선

자목련 2023-04-10 09:24   좋아요 0 | URL
미세먼지가 심각한 요즘은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더라고요. 희선 님,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책장 읽기 프로젝트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나쓰메 소세키 읽기 두 번째를 겨우 마쳤다. 어쨌든 읽었다는 게 중요하다. 『산시로』는 지난달 『태풍』에 비하면 수월하게 읽었다. 아주를 덧붙여도 될 정도다. 소설은 주인공 ‘산시로’가 대학에 다니기 위해 도쿄로 오는 기차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의 주인공 산시로는 시골 촌뜨기인 것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것처럼 그도 구마모토를 떠나 도쿄로 온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이니 두려움도 적지 않다. 기차에 탄 사람을 살피는 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승객과 어색한 눈 맞춤. 그리고 우연하게 동행한 한 여인과 여관 투숙까지. 말 그대로 그냥 옆에서 잠만 잔 산시로에게 여인은 배짱이 없다고 말한다. 산시로는 순수한 청년일까. 글쎄, 소설을 읽으며 지켜보면 알 것이다.


개운치 않은 만남을 뒤로하고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서 산시로는 선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난다. 복숭아를 맛나게 먹는 것 외는 모든 게 따분해 보이는 남자. 산시로는 그가 도쿄를 다 아는 것처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곧 자신이 살게 될 도쿄의 삶. 도쿄 대학 생활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당부가 담긴 편지와 하숙집,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은 대학. 스물셋의 청년에게 도쿄는 아마도 고교 진학을 위해 다른 도시로 온 내가 느낀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이 차오르는 것. 산시로가 어머니의 소개로 도쿄 대학의 ‘노노미야’를 만나 지하의 연구실에서 나와 연못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 모습은 지하와 지상, 어둠과 빛, 이상과 현실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소세키가 의도한 건 아닐 텐데. 어쩌면 소세키가 의도한 건 이처럼 회화풍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산시로가 가만히 연못의 표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커다란 나무 여러 그루가 물속에 비치고 그 밑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그때 산시로는 전차보다, 도쿄보다, 일본보다 멀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그런 느낌에 엷은 구름 같은 쓸쓸함이 가득 밀려들었다. 그리하여 노노미야의 지하실에 들어가 홀로 앉아 있는 듯한 적막감을 느꼈던 것이다. (43~44쪽)


연못에 비친 풍경, 산시로가 고개 들어 마주한 언덕에 부채로 이마 위를 가리고 기모노를 입고 있는 한 여자. 그 아름다운 색채에 반한 산시로는 넋이 나갔다. 구마모토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신여성이라고 할까. 어머니가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바라는 구마모토 출신의 여성이 아닌 도쿄의 여성. 산시로의 삶으로 들어와 그를 흔들어 놓을 게 분명했다. 소설은 산시로가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고의 차이를 발견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들려준다. 성장소설로 볼 수 있고 연못가에서 만난 여자를 향한 연애소설로도 볼 수 있다.


산시로의 마음을 가져간 그 여자는 누구인가. 노노미야가 리본을 선물한 여자. 노노미야와 사귀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시로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연결된 그녀는 ‘미네코’다. 대학에서 사귄 ‘요지로’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요지로가 추앙하는 선생 히로타는 물론이다. ‘히로타’는 바로 기차에서 복숭아를 먹던 남자였다. 스승이면서 친구 사이로 모두가 연결된 상태였다. 그들의 사이에, 산시로가 흡수되었다고 할까.


요지로는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히로타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추진한다. 문예지에 그를 추천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모임을 만들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독려한다. 산시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도쿄의 여러 곳을 안내해 주고 문화를 소개해 준 게 고마워 모든 활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요지로가 자신에게만 그런 태도를 보인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떤 모임이든, 어떤 장소든 그곳엔 항상 미네코와 노노미야, 노노미야의 동생 요시코가 있다. 요지로는 그들과 스스럼없이 지내지만 산시로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 특별한 감정이 자란 미네코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런 쪽에서는 미네코가 한 수 위다.


산시로를 제외하면 그들은 이미 도쿄에 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립감을 느낀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히로타 선생을 만나 책과 철학에 대한 토론 비슷한 걸 할 때, 서양 문화나 외국어에 대해 알지 못할 때 산시로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떤 불분명한 경계, 한계를 느낀다고 할까. 소설은 그것을 산시로에게 생긴 세 개의 세계로 설명한다. 하나는 멀리 있는 시대, 산시로가 돌아가면 돌아갈 수 있는 세계, 두 번째는 이끼 긴 벽돌 건물이 있는 대학, 산시로는 그 안의 공기를 알 수 있다.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고 나갈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봄처럼 찬연히 흔들리는 세계로 미네코가 있는 세계로 가장 의미심장하고 눈앞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세계다. 산시로는 어떤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아니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를 둘러싼 노노미야, 요지로, 히로타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산시로는 잠자리에서 그 세 세계를 늘어놓고 서로 비교해보았다. 다음으로 그 세 세계를 뒤섞어 그 안에서 하나의 결과를 얻었다. ……요컨대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고 몸을 학문에 맡기는 것보다 나은 건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굉장히 평범하다. 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생각했으므로 사색의 노력을 따져 결론의 가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 쉬운 사색가인 자신이 볼 때 그렇게까지 평범하지는 않다. (107쪽)


우리는 모두 산시로였구나 싶다. 방황하는 청춘, 시대를 읽고자 애쓰고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의 분출구를 찾고자 했던,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모르던 서툰 감정들. 소세키의 산시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재 이 봄을 살고 이겠구나 싶다.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될 것인가, 스스로 풍경을 만들어 갈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한 뜨거운 청춘이 한 단계 성장한 산시로와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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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3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선생의 <마음>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다 읽어야 하는데... 마음에 급하네요.

서툴었던 나의 감정에 대한 생각들, 왜
이리 공감이 가는지요.

자목련 2023-04-03 08:38   좋아요 0 | URL
<마음>도 좋다는 평이 많은제 제 책장엔 마음이 없습니다. ㅎ
어느 시절의 나와 마주한 듯한 감정,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제저녁엔 일본과의 야구 경기를 보다가 말았다. 초반에는 기대를 했고 중반에는 응원을 했고 후반에는 채널을 돌렸다. 야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 경기 중계를 시청했다. 9회 말 투 아웃부터라고 하지만 그 말은 어제의 경기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팬이 아닌 나에게도 매우 아쉬운 경기였다.


3월인데 남부 지방에서는 낮 기온이 여름같이 뜨거웠다는 걸 뉴스를 통해 접했다. 날씨가 왜 이래를 떠나 미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날들이다. 그 날씨를 만든 장본인이 지구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언제나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건 인간이고, 자연은 그런 인간에게 경고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 비가 온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맑음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맑은 하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봄의 공기가 잡히는 그런 오후라 하겠다. 봄의 공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환기를 위해 열어둔 바람이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느낌, 그 바람에 가만히 기대어 있어도 좋을 느낌이라 하겠다. 산행을 가도 좋을 것 같고, 꽃망울 터지는 매화를 시작으로 꽃들을 보러 가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오후. 그런 오후지만 밖이 아닌 안에 있고 이런 소설을 읽을까 싶다.





알라딘에서 2022년 올해의 책이라고 선정된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좋아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말하는 해방이 같은 것일까. 읽어보면 알 것이다. 드라마로 방영된 「사랑의 이해」의 원작인 이혁진의 『사랑의 이해』,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아서 드라마랑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혁진 작가의 『누운 배』를 기억하고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뤘을지 궁금하긴 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 산불재난에 대한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하는 오후. 낮은 조금씩 길어지고 밤은 조금씩 짧아진다. 그 봄밤을 채우는 건 꽃이 될 것이다. 봄의 공기를, 봄밤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의 맛을 뿜어내는 꽃들. 다시 또 꽃들을 기대하는 봄이다. 아무렇지 않게 봄을 만나는구나 싶다가 이 봄이 감사한 봄이라는 걸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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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도 어제 한일전 야구 조금 보다가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점수차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호주에 이어 두번 연속 지는 일이 생겨서 아쉽네요.
몇년만에 wbc경기 볼 수 있어서 좋은데, 우리 대표팀의 경기를 조금더 오래 보고 싶습니다.
따뜻한 토요일이예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3-13 10:38   좋아요 1 | URL
한일전이라 더욱 아쉬운 것 같아요.
무척 추워요.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망고 2023-03-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해방일지 자목련님 리뷰 넘 기대됩니다 이 책 참 재밌고 찡했거든요😂

자목련 2023-03-13 10:38   좋아요 0 | URL
읽는 중인데 재밌고 찡하다, 맞는 것 같아요^^

coolcat329 2023-03-12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기중에 봄이 느껴져서 좋은 요즘이에요. 코로나로 삼 년을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미세먼지는 그냥 그러려니하네요. 어쩌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위험할 수 있는데 말이죠.
<아버지의...> 저도 꼭 읽으려고 하는데 대출 예약이 꽉 차서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비가 온다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23-03-13 10: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미세먼지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ㅎ
<아버지~>는 읽고 있는데 망고 님 표현대로 재미도 있고 생각도 많게 만드네요. 활기찬 한 주 이어가세요^^
 

예배를 드리고 점심엔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는 아니고 맛있는 파김치가 생겨다. 어려서는 파김치의 맛을 몰랐다. 어디 파김치뿐이랴. 모르는 것투성이고, 편견에 먹어보지도 못하고 상상의 맛에 갇혀지냈다. 현재까지 이어져서 아직도 나는 굴을 먹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가, 어린 시절 엄마가 굴을 조새로 까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정작 영양가 넘치는 굴의 맛을 모른다. 그리고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굴을 팔아야 해서 한 번도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에겐 어린 딸에게 굴의 맛을 알려주는 것보다 그걸 모아서 팔아야 하는 이유가 더 컸을 거라고. 


냉장고에 어리굴젓은 아직 밀봉된 상태 그대로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이고 작은언니가 먹거나 다른 누구에게 주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 속 엄마는 김치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는 김치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동네 친구들과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깨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을 나는 지독하게 싫어했다. 창피했다. 철없던 나는 엄마의 그 작은 여유를 인정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밤 독서를 했다. 밤 독서라는 말이 괜히 근사하다. 봄밤 독서라고 해야겠다. 추워도 봄이니까. 이주혜의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를 읽고 있는데 너무 좋은 거다. 좋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보다 더 좋다. 엄마의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는 늙은 엄마의 모습을 잠깐 상상해 봤다. 나는 엄마를 닮았고 내가 늙는다면 그게 엄마의 얼굴이 될까. 책을 읽다가 에드리언 리치의 책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을 꺼냈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글에서 언급하는 비비언 고닉의 책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주혜는 내가 자신의 글을 읽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책을 통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말이다.


이주혜가 글에서 이름에 대한 부분이 등장하는 데 그 게 참 좋았다. 사실, 다른 부분도 넘 좋다. 내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았다. 큰 오빠는 아명까지 있었다. 세상에 그 시절에 아명이라니. 세 자매의 이름은 돌림이 있고 언니와 작은 언니의 이름의 한자는 그나마 뜻이 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큰 오빠를 낳고 아들을 하나 더 바랐지만 내리 딸을 낳은 엄마. 큰 언니와 작은 언니까지는 괜찮았지만 나도 딸이라서 그랬을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남동생의 이름은 항렬자를 넣어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나쁘지 않았고 어떤 이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나 할머니의 이름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를 끼고 자면서 항상 자신의 이름을 외우게 했다. 그래서 엄마 이름보다 할머니의 이름을 먼저 알았다. 나를 명명하는 이름, 나의 존재를 부여하는 이름. 여성이 이름을 갖게 된 시점, 오직 남성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던 존재, 그 이전에는 여성은 이름이 없는 존재였다는 게 너무 아프다. 고모의 이름은 기억하면서도 작은엄마의 이름은 한참후에 떠올린다. 


정확함이 이름 붙이기의 기본이라면 이름 바꾸기의 전제는 애정이다. 오직 애정으로 붙이고 또 붙인 이름만이 길어질 수 있고, 우리는 마음을 다해 긴 이름을 부르는 수고로움을 자처할 것이다. (「이름에게」, 중에서)


최근 아끼는 동생은 자신의 이름을 개명할 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휴대폰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개명할 이름으로 바꿔 저장했다. 그리고 통화를 할 때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려 노력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가 생각한다. 자목련이라는 이름, 내가 지은 이름이 좋다. 블로그의 존재를 아는 친구들은 나의 다른 이름, 자목련을 안다. 


이주혜의 산문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가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고. 당신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해도 연결되고 어느 순간 어떤 지점에서 마주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근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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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06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안 올라간다. ㅠ.ㅠ

수이 2023-03-06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재, 북플 다 이상하던데요. 저도 사진 한장 올리는데 8분 걸렸어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 맘으로. 알라딘 일 제대로 안 하네요 😡

자목련 2023-03-07 08:34   좋아요 0 | URL
노화된 제 컴퓨터 때문인가 싶었는데 아니었군요. ㅎ

유수 2023-03-06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주혜는 내가 자신의 글을 읽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저자지만 저도 그랬어요. 연결의 느낌과 글, 저도 흠뻑 공감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3-03-07 08:37   좋아요 1 | URL
뭔가 깊게 연결된 느낌이었어요. 신기하면서도 반갑고, 아무튼 이 산문집 좋습니다!

얄라알라 2023-03-06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자목련님 글, 문장은 짧은데 어느 한 문장도 흐름 안에서 뺄 수가 없이 정교하게 짜여짐...
자목련님의 기억에 저절로 같이 빠져들다 나왔습니다^^

자목련 2023-03-07 08:4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와의 시간이 아쉽고 그랬어요.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은...

페넬로페 2023-03-06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는 굴을 싫어했는데 요즘에사 굴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해 먹은 굴떡국이 그렇게 맛나더라고요.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유가 별로 많지 않은 세대였잖아요.
저는 엄마가 그렇게 돈을 떼이면서도 계모임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사나운 애착도 읽고 이주혜의 산문도 읽어야겠어요^^

자목련 2023-03-07 08:43   좋아요 1 | URL
굴떡국을 먹어도 저는 슬그머니 굴을 건집니다. ㅎ 아마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입맛인 것 같아요. ㅎ
맞아요, 계모임. 엄마에게 그건 절대적인 무언가였을지도 모르는데.
즐겁게 만나세요^^

레삭매냐 2023-03-06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 술을 진탕
퍼먹고 난 다음날 아침
친구들과 채석강에 나가서
굴 따시는 분에게 사 먹은
굴 생각이 납니다.

그 굴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생뚱 맞지만 굴전이 먹고
싶네요.

자목련 2023-03-07 08:47   좋아요 1 | URL
기억과 맛은 멋진 조합 같아요.
음, 주말에 굴전을 추천합니다!!

구단씨 2023-03-06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주혜 작가님, 소설이 아니라 산문으로 신간을 만나게 하는군요. <자두>도 좋았는데요. ^^
<사나운 애착> 그렇고,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 좋네요...

자목련 2023-03-07 08:51   좋아요 0 | URL
<자두> 참 좋죠, 이 산문집도 좋습니다.
구단씨 님의 댓글도 좋고요!